식량안보,우리 모두의 숙제이다.目次1. 序論1) 쌀의 背景 이야기2) 大麥의 背景 이야기3) 小麥의 背景 이야기4) 目的2. 本論1) 우리나라 쌀의 需給現況2) 우리나라 大麥의 需給現況3) 우리나라 小麥의 需給現況4) 곡물 需給現況으로 본 問題點5) 내가 생각하는 解決책3. 要約4. 參考文獻1. 序論1) 쌀의 背景 이야기우리의 主食인 벼는 그 先祖와 發祥地 모두 아직 確實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植物學적 유연關係로 볼 때 東南아시아에서 발견된 여러해살이 野生 벼의 一種으로부터 分化된 것으로 推定하고 있다. 따라서 벼의 發祥地는 中國 운남성 周邊과 印度의 아삼 地域과 같이 南部 및 東南아시아의 高溫多濕한 地域인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有力하다. 中國에서는 BC 7000년경부터 벼를 처음 栽培하기 始作했고, 印度에서는 BC 5000年경부터 벼를 栽培한 것으로 推定된다. 우리나라로 流入된 벼의 傳來도 여러 가지로 推定되는데 그중 中國 원난 地域에서 양쯔江과 화이허江을 건너, 산둥半島를 지나 漢江 下流로 流入되었다는 主張이 가장 說得力이 있다.사실 벼는 先史時代부터 利用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고 벼를 대충 갈아서 커다란 土器에 넣어 끓여내 걸쭉한 죽 形態로 먹거나 쪄서 먹었다고 한다. 이후 단단한 道具의 發明으로 벼 生産量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벼를 利用하는 方法 또한 지금과 비슷해졌다. 統一新羅부터 쌀이 主食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를 누릴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쌀이 主食이 되기 전까진 粟이나 大麥, 小麥과 같은 雜穀이 주를 이루었는데, 統一新羅 때에도 여전히 一般 百姓들은 大麥, 粟을 주로 利用했었다. 高麗時代까지 쌀은 다른 穀類의 生産量에 미치지 못할 정도였으나 朝鮮時代에 들어서고 난 뒤부터 穀類의 代表가 되었다.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 말고 쌀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포한이로구나. 中암맹 부친 행원키로 이 몸을 팔까 하옵니다. (중략) 백미 삼백 석만 조시옵소서. 中朝鮮時代가 背景인 쌀 消費를 規制하기도 하였다. 또한, 혼·분식장려운동을 통해 밀가루를 中心으로 다른 雜穀을 혼합한 혼·분식이 적극적으로 ?勵되었다. 1970년대까지 쌀의 生産量은 크게 增加하였고 1980년대엔 産業化와 經濟成長이 急擊하게 進行되어 점차 西歐적인 性向이 강해지게 되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쌀 消費를 減少시켰고 現代에까지 이르렀다.2) 大麥의 背景 이야기人類가 栽培한 가장 오래된 作物 中의 하나로 알려진 大麥은 考古學적인 痕迹으로 볼 때, 小麥이나 벼에 비해 1000년 이상 빠른 것으로 推定된다. 이라크의 古代 遺跡地에서 BC 10000~7000년 경, 大麥의 栽培痕迹이 發見되었다는 것을 勘案하면 栽培가 꽤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栽培종 大麥의 起源에 대해서는 一元說과 二元說 등 여러 가지 見解가 存在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러나 現在까지 이줄대맥은 유럽, 北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西쪽과 러시아 地域에만 分布하고 있는 반면, 육줄대맥은 世界적으로 퍼져있다. 이를 통해 人類가 가장 먼저 栽培한 보리는 육줄대맥이라고 推定하고 있다.식용 大麥의 대한 考古學적인 記錄은 없지만 世界 各地의 人類 文明地에서 發見되는 大麥의 痕迹이 오래전부터 大麥이 食糧으로 利用되었음을 나타낸다. 栽培종 大麥의 傳播는 農耕生活이 定着되면서 自然스럽게 이루어졌고, 東方으로부터 西方地域으로의 傳播는 中·新石器時代로 推定된다. 우리나라는 古代 中國으로부터 두가지 經路를 통해 大麥이 傳播되었다고 믿어지고 있다. 하나는 中國 北部로부터 滿洲를 걸쳐 韓國의 北部地方으로 傳來되는 陸上經路이며, 다른 하나는 양자江 流域으로부터 蝗害 또는 南海와 隣接한 韓半島 地域에 傳來되는 海上 經路이다. 現在까지의 考古學적 推定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大麥이 처음으로 栽培된 時機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年 전 쯤으로 보인다.[그림 0 대맥 재배종의 전파 경로]출처 : 참고 문헌에 표기大麥은 벼와 小麥보다도 일찍 人類의 主食으로 使用되었다. 우리나라는 쌀이 부족했던 時節에 大麥이 庶民들서 아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우리나라는 6.25 戰爭 이후 國內 食糧 確保가 優先이었는데 이를 解決하기 위해 政府에서는 粉食?勵運動을 펼쳤다. 그리고 美國 無償援助 小麥이 急增하면서 現在와 같이 밀가루를 쉽게 利用할 수 있게 되었다. 1980年代 이후 經濟成長을 통해 食品의 高級화가 이루어졌으며 國民의 ?習慣 또한 다양해졌다. 이로 인해 빵과 麵類 그리고 菓子류의 消費가 增加하면서 自然스럽게 밀가루의 活用성도 높아졌다.4) 目的우리나라는 지금 쌀 뿐만 아니라 다른 穀類들도 主食으로 使用하고 있다. 그러나 食生活이 西歐化 되면서 現在 韓國에서 栽培되는 쌀의 消費量은 減少하고 있고, 小麥의 消費量은 점차 增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나타나는 食糧安保적 側面에서의 問題點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政府와 國民의 側面에서의 解決책은 어떤 것이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이 레포트를 作成하였다.2. 本論1) 우리나라 쌀의 需給現況[표 1-1 우리나라 쌀 수급량(2008~2013)][표 1-2 우리나라 쌀의 연간 생산량과 1인당 소비량(1965~2004)]출처 : 농림축산식품부[그림 1 쌀 생산량과 연간 1인당 소비량(1965~2004)]출처 : 농촌진흥청쌀을 主食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四季節이 뚜렷하여 벼 栽培를 輸入에 依存하지 않는다. 輸出主導 工業化 전략이 1960年代에 推進되면서 所得上昇이 發生했다. 이는 곧 糧穀소비의 增加로 이어졌고 食品의 消費구조가 변하면서 食糧 공급은 그 需要에 미치지 못하였다. 資源 중심의 農業에서 안정하지 못한 生産量을 보인 穀物 生産은 1970年代 이후에 人的 자본을 根本으로 한 科學技術 위주의 農業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농업 生産性의 向上을 위해 통일벼가 開發 되었고 綠色革命을 일으켜 자급을 達成했다. 반면, 그림1에서 알 수 있듯이 1980년대에 쌀의 消費量과 生産量이 소폭 減少한 것과 표1-1에서 自給률도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1980年代 經濟成長에 따라 國民의 所得수준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食品 消費가 전보다 高級化되처 : 농림수산식품 통계자료(2012)大麥은 6.25 戰爭 이후 食糧難에 허덕이던 時節, 우리나라 사람들을 배부르게 해준 穀物이었다. 이 때부터 韓國의 제 2의 主食으로 자리 잡으려 했으나 그 위치가 바뀌고 말았다. 1978년 이후, 小麥의 消費量이 大麥을 뛰어넘게 된 것이었다. 통일벼가 開發되고 全國으로 普及되면서 쌀의 自給 목표를 達成하였는데 이로 인해 自然스럽게 大麥의 生産量은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표2-1을 보면 1980년 이후부터 大麥의 生産量이 顯著히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표2-2에서 1980년에 약 15kg을 기록한 大麥의 연간 消費量은 1990년까지 눈에 띄게 減少하여 現代까지 3kg에도 미치지 못하는 水準으로 維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食品의 多樣化와 高級化를 통해 國民의 식습관이 바뀐 것을 그 原因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3) 우리나라 小麥의 需給現況연도10a당 수량(kg)재배 면적(천 ha)도입량(천 M/T)생산량(천 M/T)*************8**************************15*************18*************9961119903030.3223*************7320053212.436457.720063341.732545.820073811.934467.420084062.5254410.420093715.1380518.8201027612.5-34.5[표 3-1 밀 생산량(1965~2010)]출처 : KOSIS 국가통계포털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剩餘농산물을 導入하였는데 그 중 小麥이 큰 比重을 차지하였다. 따라서, 國內에서 生産되던 小麥은 剩餘농산물이 導入된 이후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고, 그 후 海外로부터의 輸入이 점점 增加하기 시작했다. 표3-1을 보면, 小麥은 1980년에 181만톤을 輸入하였는데 1960년대에 49만 6천만톤을 輸入한 것과 比較해보면 그 수치가 크게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剩餘농산물 導入으로 인한 小麥의 增加는 여태까지 쌀을 主食으로 했던 우리 國民의로 2배 이상 뛰었는데 經濟 成長에 따른 食生活 패턴의 變化가 그 原因이었다. 國民 중 젊은 世代가 특히 빵이나 국수류 등을 選好하는 傾向이 나타나면서 小麥의 需要는 점차 늘어났다. 표3-3을 살펴보면, 지금까지도 小麥의 需要量은 持續的으로 增加하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4) 곡물 需給現況으로 본 問題點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쌀과 大麥 그리고 小麥의 需給現況을 살펴보았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資料로 볼 때 穀物마다 각각의 消費와 供給의 양이 뚜렷하게 變化하는 時點이 있었고 거기엔 歷史的, 文化的 그리고 産業的인 背景이 존재했다. 이제 이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食糧安保 차원에서의 問題點에 대해 생각해보자.食糧安保란 인구 增加나 災難 등의 要因들을 考慮하여 恒常 얼마간의 食糧을 確保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國內外의 現在와 未來의 食糧 사정을 고려하면서 먹을 것에 대한 안정을 確保하는 것이 食糧安保의 意味라 할 수 있다. 本論의 여러 통계資料를 살펴보면 韓國의 주요 作物들이 過剩으로 供給되거나, 需要量이 급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쌀의 경우 國內에서 生産하고 있으나, 小麥은 대부분 輸入에 依存하고 있다. 그래서 食糧을 安定的으로 確保 할 수 있는 代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小麥이나 수수같이 주로 輸入하는 穀物들은 未來에도 그 輸入량이 擴大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穀物들을 安定的으로 供給하기 위해서는 國內外로부터 供給능력을 提高해야 할 것이다. 食糧 供給을 輸入에만 依存하는 것도 가격 側面에 있어서 問題點이 發生 할 수 있다. 이를 解決하기 위해서 적은 수의 穀物에만 依存하지 않고, 지금까지 需要量이 감소하고 있는 쌀이나 大麥 등의 穀類들을 利用하면서 均衡 잡힌 需要量을 維持해나가야 한다.5) 내가 생각하는 解決책우선 國內生産을 일정 水準에 維持시켜야 食糧安保를 지킬 수 있다는 主張이 있다. 1970년대부터 現在까지 大麥의 生産量과 消費量은 減少하는 추세이다. 우리 周邊에서도 大麥을 이용한 加工食品들을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