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개론 중간고사1. 문학을 이루는 것들로 일반적으로 언어, 인간, 상상력, 감정, 사상 등이 거론된다. 이상의 다섯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여 문학의 정의를 내리시오.문학은 상상력을 통해, 자신이 가진 사상 또는 감정을 언어로 풀어내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인간만의 창작 활동이다.2. 이러한 정의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각 요소별로 서술하시오.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으로서 정의한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동물이지만, 다른 동물들과 다른 인간만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 어떤 것을 비효율성의 추구로 본다. 생명으로서의 원초적·본능적 욕구, 욕망 이외의 어떤 것들을 인간은 추구한다. 그것을 가진다고, 또는 이뤄낸다고 해서 본능적인 허기나 육체적인 욕구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것을 통해 인간은 더 넓고 깊은 것을 보고 또 사유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간다. 이는 때로 낭만이 되고, 철학이 되고, 사상이 된다. 이것들의 기저에는 감정이 있고, 그 모두를 담아내는 것이 문학이다. 인간은 이러한 추구를 통해 자신이 넓혀간 영역에 담겨있는 사상 또는 감정을 다른 인간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비효율적 욕망을 가진다. 이러한 욕망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창작 활동이다.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바로 언어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고 동감을 얻어내기 위해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 문학을 창작한다. 이 때 인간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대방이 100%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저자가 겪은 것 혹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날 것 그대로 전하기 위해, 독자가 자신이 의도하는 바에 가장 가까운 것을 읽어낼 수 있도록 상상력을 발휘한다. 상상력은 거짓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그려내는 것과 가장 닮은 것을 만들어내는 수단이다.3.이러한 문학이 어떠한 가능성 또는 한계를 가지는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2에서 말했듯 문학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비효율성이다. 가장 고차원의 앎은 무지이고, 가장 효율적인 것은 비효율이다. 언젠가부터 인간은 무엇이 재화를 만들어내고, 더 고차원의 기술을 시연하는지에 혈안이 된 것 같아 보인다. 이런 편협함이 끝을 달려 문학에게 칼을 겨눈다. 재화와 기술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다다르고자 하는 최종 목적 때문이다. 이것들은 목적에 가까워 질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가치로우나 목적보다 가치로울 순 없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의 도구가 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을 인생의 목적인거야.’ 라는 말이 있다. 문학의 가능성은 비효율성에서 오며 그 한계 또한 비효율성에 있다.
문학개론 기말고사1. (10점) (분량: A4 2쪽 이내)문학과 미디어의 관계는 1) 문학에 미디어를 소재로 활용한 경우와 2) 문학이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표현된 경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과 2)의 구체적 사례(작품)를 각각 들고(4점)해리포터(소설)에서는 움직이는 사진이 첨부된 신문이 나온다. 그 신문은 마법사 세계에 일어나는 일을 싣고, 해리와 그의 스승 덤블도어 또한 좋은 기삿거리가 되곤 한다. 둘의 평판은 신문을 통해 노골적으로 제시되고, 3편에서 또한 극을 이끄는 시리우스가 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다.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의 삶에 대해 조명한 시이다. 그만큼 극중에서 윤동주의 시는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러한 경험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의 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2)에 초점을 맞춰서 문학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6점)전자책이 등장하고, 문학과 영화가 서로를 모티브 또는 원작으로 제작되면서 문학과 미디어의 경계가 점점 더 허물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이전엔 문학을 단순히 종이책으로만 소비했던 독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을 접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문학으로 볼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로 제쳐두고,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이 소비되며 이전까지 미미했던 문학으로의 관심 또한 상당부분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앞서 말했던 동주처럼, 문학이 미디어를 통해 표현된 것 또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주라는 영화가 개봉한 후에 실제로 윤동주 시인의 시집 판매량이 매우 늘어나기도 했다. 더하여 미디어에서 특정한 문학을 소재로 하거나, 리메이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모든 경우를 아울러, 시대가 변해가면서 문학과 대중문화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다고 보아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예상했던 그것의 부작용과는 달리 문학에 꽤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을 접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문학을 소비한다. 또한 대중문화가 문학을 반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유행도 대중문화로서 문학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유행인 일명 ‘레트로’가 그 하나의 예이다. 사람들은 옛 것이 가져다주는 멋에 집중하게 되었고, 시집이나 소설의 초판을 소장하는 것도 그와 같은 하나의 유행이다. 이러한 문화로서의 유행이 문학으로의 새로운 관심을 환기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또한 이북리더기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면서, 기존의 종이책을 불편하게 여겼던 독자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문학을 소비하기도 한다. 대중은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체득한다. 대중문화가 그것을 돕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고, 그 속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들을 나누면서 문학의 새로운 매력을 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2. (10점) (분량: 시 텍스트가 차지하는 분량을 제외하고 A4 2쪽 이내)하나의 시 텍스트를 예로 들어(2점)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노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내 마음은 촉(燭)불이오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최후의 한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라내 마음은 나그네요그대 피리를 불어주오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나의 밤을 새이오리다내 마음은 낙엽이오잠깐 그대의 품에 머무르게 하오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그대를 떠나리다- 김동명(金東鳴.1901~68) '내 마음은''그것이 어떻게 음악적 효과를 획득하고(4점)이 시에서는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내마음은 ~요, (그대)~하오, 나는 (그대의)~, ~리다 등에서 볼 수 있듯 각 연을 4행으로 구성하여 연의 각 행들이 서로 비슷한 구조를 가지게끔 하였다. 시의 4연이 진행되는 동안 내 마음을 무엇에 빗대어 표현하였는지, 그 마음을 가지고 그대를 어떻게 사랑하고자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운율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진행하고 있고, 반복되는 부분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음악적 효과를 낳는다.또한 이 시는 ~요, ~하오와 같은 어미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연의 마무리를 짓는다. 이런 반복 또한 운율을 형성하고, 시를 읽을 때 마치 노래하는 듯이 느껴질 수 있다. 각 연이 ~요, ~오, ~리다 등으로 끝맺음을 짓고, 시 전체에도 ㄴ,ㄹ,ㅇ,ㅁ 의 자음이 많이 활용되었다. 이 또한 음악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주된 자음으로 쓰이는 울림소리를 활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이렇듯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 울림소리와, ‘촉불’, ‘타오리라’, ‘피리’, ‘품에’ 등의 거센소리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소리를 내되, 중간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을 보여주듯 강인한 마음을 거센소리로 나타낸 것처럼 보인다또, 어떻게 주제를 위한 이미지를 구축하는지 설명해보시오.(4점)이 시는 가장 먼저 내 마음을 호수에 빗댄다. 4연을 진행하면서 당신은 향한 내 마음이 어떤 것을 닮았고, 그것 속에서 나는 그대에게 어떤 사랑을 보내고, 그대를 어떻게 떠날 것인지를 그려낸 시이다. 시인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마치 그림을 그리듯 묘사를 통해 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 시를 읽는 동안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것은 때로 넓고 깊은 호수가 되기도 하고,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 되기도 하고, 달 아래 쓸쓸히 밤을 새는 나그네가 되기도 하고, 그대 품의 낙엽이 되기도 한다.작가는 ‘흰 그림자’, ‘타오리라’ 등 시각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들을 적극 활용한다. 우리는 이러한 시어를 보면 마치 짠 것 처럼 촛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흰 그림자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한다. 시각적 심상에 더하여 ‘뱃전에 부서지리다’, ‘피리를 불어주오’,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바람이 일며’ 등 청각적인 이미지를 자극하는 표현 또한 많다. 우리는 시 속의 ‘나’가 되어, 그가 듣는 것을 들으며 그대를 사랑한다. ‘나’는 때론 약하디 약하게 뱃전에 부서지기도 하고, 하나의 촛불이 되어 옷자락의 움직임에도 하염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가졌지만, 바람이 일면 외로이 그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시인은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이미지를 활용해 독자로 하여금 시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시인은 이러한 이미지를 읽어내고, 작중 화자의 마음을 느끼기도 하고, 그 마음 속에서 ‘나’가 보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문학은 사회다사회란 무엇인가? 사회란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조직화된 집단이나 세계’이다. 따라서 이 사회는 공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것들의 조직화된 집합체로서 의미를 지닌다. 집단은 공통점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고, 세계라 함은 조금 더 확장된 의미로 사람 뿐 아니라 그들의 생활 방식, 구성원의 주류가 가지는 가치나 옳음에 대한 방향의 존재까지 포함하는 개념일 것이다.‘문학은 사회다’라는 표현은 문학 자체가 하나의 사회라는 의미와, 문학이 사회를 반영한다는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사회를 집단 또는 세계 두가지로 볼 때 두가지의 교집합은 사람일 것이다. 공동의 무언가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는 필수적이다.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난 문학의 시작이 저자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의미는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예술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 이라는 말이 있듯, 작품은 예술가의 내면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저자는 수익을 위하거나, 자신 안에서 생겨난 영감을 풀어내거나, 호소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 등 다양한 의도를 가지고 하나의 글을 써내려 간다. 그 속에서 저자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다. 저자가 사회의 어떤 면을 꼬집으려 한다거나, 그려내려 하지 않아도 글을 쓰는 순간 사회적 문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곧 하나의 작품이 되어 문학으로서 독자에게 소비된다. 저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어떤 것을 담아내든 그것을 소비한 후에 해석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독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현재 원하는 바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작품을 읽고, 영감을 받는다. 따라서 문학의 끝은 독자이다. 저자와 독자의 사이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지만, 저자와 독자가 없이는 문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둘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지만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공통된 요소들을 나눈다.사회에는 구성원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때로 그것은 이념이 될 수도 있고, 가장 기본적인 화폐, 시간, 언어, 환경 등 구성원을 둘러싼 모든 것이 사회이다. 윤동주의 작품들을 엮은 이 「정본 윤동주 전집」에서 그는 광복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침을, 오후를, 밤을, 하루를 노래하기도 하고, 동물들을 노래하기도 하고, 과일을 노래하기도 한다. 별 헤는 밤, 어머니를 불러 보고, 무리들에게 내일은 없다고 울부짖기도 한다. 그는 그의 사회를 자신의 글에 녹여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의 문학이 그의 사회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가 만들어낸 자신만의 사회 속을 독자는 들여다보고, 그의 시간과 그의 공간을 나누고, 그가 보았던 마당과, 들판과, 그가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엿본다.앞서 말했듯 사회는 그 사회가 옳다고 믿는 하나의 방향을 가진다. 물론 이념이나 정의는 모두가 통일된 것이 아닌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는 정도이나, 당시대에 정의라고 일컫는 것들은 통일되기 마련이다.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더라도. 사회 속 구성원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다. 평등을 논하는 자는 평등이 정의라고 믿고, 그것을 위해 싸운다. 그 변화의 과정을 함께 걷고 지켜보지만 끝을 알 수는 없다. 끝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이 책 속에서도 저자인 윤동주는 아침을 그리며 하루의 울분을 씻어내지 못하고 마음속 소리로 흘려보내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아침을 그려낸다. 그의 사회 속에서 그는 새벽이 올 때까지 글을 쓰고, 가족의 얼굴을 마음에 그려낼 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가 가족의 얼굴을 언제 보게 될지, 아침이 없는 오늘만 계속되지 않을지 그조차 모를 일이다. 한 방향으로 올곧게 나아가지만, 그 끝을 볼 수 없던 그의 삶 또한 6개월의 광복을 앞둔 채로 끝나고 만다.
전혀 다른 종족남자와 여자, XX염색체와 XY염색체, 단순한 생물학적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걷다보면 전쟁과도 같은 과정을 겪고 있는 남녀 한 쌍이 보이고, 서점에 가면 ‘이성을 이해하는 법’에 대한 책들이 쏟아지고, tv를 틀면 ‘사랑과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의 프로그램이 나온다. 남자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여자는 남자의 답답함에 또 답답해한다. 게다가 ‘여자들의 언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여자들만의 미묘한 언어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얼마나 차이가 크고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으면 주변 사람들부터 tv, 영화와 전문가들 모두 연애와 이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걸까.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은 많은 이들로부터 이런 남녀 심리 차이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와 같은 존재라고 소개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남녀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다는 것이 기저가 된다. 전혀 다른 곳에서 태어나 사고방식과 행동 양상, 언어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남자와 여자가 지구라는 곳에서 만나는 것이 기본적인 가정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생활하며 본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어 서로 다른 종족이라는 것 또한 잊게 된다. 이것이 남녀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다. 두 종족은 서로가 같은 뿌리에서 왔다는 생각에 상대가 왜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며 또 행동하는지에 의문을 가진다. 한마디로 ‘왜 저래?’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같다는 생각은 보이는 것보다 치명적이다. 나와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을 너도 원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너도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 시작이다. 이런 단순한 생각은 점점 가지를 쳐서 내가 말하는 방식을 너도 이해할것이고 내가 숨기고 있는 감정을 너도 알 것이라는 위험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연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짝사랑을 하는 사람이나, 짝사랑에 실패한 사람,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 등 이성과의 접촉이 전혀 없이 살아온 사람이 아닌 이상 ‘왜 남자는’ 혹은 ‘왜 여자는’ 이라는 고민을 매일같이 하며 머리를 싸맨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 차이를 각 성별에 따라 근본적으로 말해준다.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00페이지 남짓 되는 한권의 책에서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차이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차이를 다루는 재미있는 실례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마치 ‘너희들은 본래가 이렇게나 다르다. 그러니 그냥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 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스갯소리로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데 이런 작은 다름에도 차이가 생겨나는 것을 우린 왜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성이 동성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이성간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많은 오해들이 생긴다.
영리한 바보행복, 인간의 정서 중 궁극적인 가치가 되는 것으로서 많은 책들이 이 ‘행복’에 대해 저술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고를 때의 나는 이 행복이라는 것이 꽤나 결핍되어 있었다. 해서 행복을 찾아 방황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 생각하고 이 책을 선택했다. 책에서나마 행복을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제목에 걸려 비틀거리는 꼴이 되었다. 이때 나에게 가장 적합한 말은 속되지만 낚였다는 표현일 것이다. 제목에 낚여 대롱대롱 걸려서 비틀거리게 되었다. 내 생각과는 정 반대로 이 책은 행복을 찾는 법을 지도해주는 책이 아닌 그러한 책들이 왜, 얼마나, 어떻게 쓸모가 없는지 알려주는 텍스트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선택 의도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보지 못한 흥미로운 주제기도 했고, 비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의 주된 내용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서점에서 눈만 돌려도 열댓 개씩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와는 달랐다. 그런 책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그런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것을 100프로 내 삶에 반영한다든가, 깊은 깨달음을 얻고 삶의 방식을 고찰해본다든가 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저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고 덮은 후에 이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일상을 살아가곤 했다. 그래서 더 이 책이 끌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그런 안일한 태도를 합리화 해주는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에 말이다. 이유가 뭐든 많은 면에서 개성 있고, 희소성 있는 책이었다.흔히들 사람의 걱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그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는 한다. 하지만 막상 예상했던 그 걱정거리는 아예 오지 않거나 혹은 훨씬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리를 찾아온다. 말 그대로 사서 걱정인 것이다. 나 또한 ‘이러면 어떡하지 저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빠져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경우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걱정 자체가 실수인 것이다. 걱정의 시작도, 그 과정도, 결국 걱정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결과도 전부 실수의 연속이다.어떻게 보면 매번 틀리는 이런 걱정을 끊을 수 없는 이유 또한 행복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조금 변태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는 이 걱정을 즐기는 것도 같다. 걱정을 하면서 불안함이 늘어나지만, 역설적으로 걱정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한 상태로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다음을 생각하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기쁘게 하고 마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현실은 그와 전혀 다른데 말이다. 이 책은 나의 치부를 하나하나 드러내서 ‘바보, 그것도 모르냐?’라고 놀리는 것 같다. ‘네가 전에 했던 행동들은 다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도 말하는 것 같다.반대로 이 책을 놀려보려고 한다. 저자는 모든 이는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 전체는 이러한 생각을 기저에 두고 쓰인다. 하지만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사는 걸까?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며, 인간이 바라는 가장 상위의 것이 행복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모든 이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행복한 삶을 바라는 것과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미묘한 차이이지만 ‘행복과 함께’와 ‘행복을 위해’는 분명히 다르다. 행복을 위해 산다면 모든 이는 쾌락주의자로서 길러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물론 미래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절제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리석다는 저자의 말은 반대로 나의 주장의 근거가 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행복과 함께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에 어리석은 것이다. 미래 또한 현재의 선상인 것을 착각한 채로 현재의 행복은 소소하고 작은 것이지만 미래의 행복은 근사하고 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말했듯 그 근사한 미래는 또 하나의 현재가 된다. 사람들은 모두 많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큰돈을 버는 것이나, 그럴싸한 직장을 갖는 것, 모두가 존경하는 유명인사가 되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그것은 모두 행복을 위해서라는 말로 수렴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향하는 것일 수 있다.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의 기회비용이 어느 정도의 행복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목적을 선택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주장에 대한 나의 반례이다.반면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다른 책들과는 다른 결론이었다. 완벽하게 동감하는 바이다. 다른 책들을 읽은 후에는 어떻게 보면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앞에서 말했듯, 완벽한 사람이 쓴 완벽한 책을 읽고 그저 감명만 받은 후 다르지 않은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날 보면서 ‘이래서 내가 안되나 보다.’라는 생각도 했을 만큼 많은 책들은 독자로 하여금 ‘이렇게 이렇게 해!’ 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결론은 마음이 편하다 못해 통쾌했다. 각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모두 다른 크기이고, 다른 모양이다. 또 그 행복을 찾는 것과 즐기는 방법 또한 가지각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진정한, 참된 행복이고 그를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을 하고, 꾸준히 무엇을 하면 된다는 단순한 결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내 행복을 상상하고 계획해 나갈 수 있는 존재로서 인정받은 것이다.작가의 말처럼 행복을 발견하게 해주는 간단한 공식은 없다. 그렇게 간단하고 손쉬운 것이라면 왜 사람들이 그 행복을 갈구하고, 더 얻지 못해 아등바등할까 행복을 발견하게 해주는 간단한 공식도, 미래에 대한 확실에 찬 발걸음도 우리는 없다. 그저 걸어갈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어리석은 과정이 실수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은 후에도 그 실수를 행해나갈 것을 알려준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나는 걱정을 하면서도 그것이 실수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 또한 행복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느낌이랄까. 적어도 이 책을 읽었기에 전보다는 덜 어리석을 것이리라. 전보다는 착각 속에 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습게도 행복한 착각 속에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상에는 바보 같은 걱정도, 스트레스도, 실수도 있겠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없애려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 더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제 마음 편히 책을 덮으려고 한다. 어떻게 행동해야한다는 부담감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서 얻는 죄책감도 없이 나는 어리석은 영리한 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