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전시회 감상문00학과 000내가 관람한 예술작품전시회는 부산시립미술관 소전시실에서 진행된 ‘활짝 열린 방’이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활짝 열린 방’은 단순히 묘사된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촉각과 청각을 동원하여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다중감각적 경험을 일으키도록 만들어진 공간을 지칭한다고 한다. 기록의 단순한 시각적 체험이 아닌 다중적 감각으로의 ‘작품 보기’를 실천한 것이다. 전시에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중 미술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회화 작품에서부터 복합장르의 사운드·미디어 작품까지 총 17점이 전시되어 있었다.첫 번째와 두 번째 소전시실에서 마주한 것은 일반적인 전시회와 같이 벽에 전시된 커다란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을 설명하는 설명 판은 내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크고 널따란 설명 판에는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매끄러운 돌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의 축소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축소판에는 여러 점과 선, 면으로 촉각적으로 그림을 느낄 수 있는 묘사가 되어 있었다. 또한, 설명 글 위에는 그 설명을 점자로 번역한 것이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그곳에 있는 여러 작품이 모두 그러한 설명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나 또한 눈을 감고 그 설명 판을 만져보았는데, 내가 눈으로 직접 본 그림을 떠올리는 것이 무척 어려워 시각 장애인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회를 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며 큰 감동을 받았다. 그로 인해 여러 장애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 많은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마지막, 세 번째 소전시실에서 만난 것은 소리로 표현한 작품들이었다. 물론 눈으로도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이었지만, 소리가 함께 흘러나와 더욱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깊이 음각된 하얀 건물들이 둘러싼 네모난 액자 형태의 도시를 나타낸 작품이었다. 가운데에는 검은 구멍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스피커여서 이곳에서 도시에서 날 법한 각종 소음이 들려왔다. 차 소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 발소리 등의 다양한 도시의 소리를 들으며 도시를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곳에는 특별히 작품을 만지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작품과 거리를 두고 펜스가 처져 있었는데, 따로 설명 판이 없었기에 그것이 무척 아쉬웠다. 이전의 전시실들과 같이, 시각장애인들이 이를 직접 만지고 어떠한 작품인지 알 수 있게 설명해주는 설명 판이 있었다면 보다 쉽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됐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작품의 축소판을 가까이에서 직접 살피고 만져보며 많은 다른 관람객들, 특히 어린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高3, 뛰어야 산다00학과 000‘高3, 뛰어야 산다’는 한미일 세 나라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스포츠 참여율과 대학 진학률 등을 조사해 비교·대조한 영상이다. 학교 체육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과 대학 입시에서 체육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을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나라의 학생들 모두 고등학교 3학년이라도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스포츠 활동을 통해 체력은 물론 인간성과 강인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어 오히려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런 학생들을 지지하는 부모님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개인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본의 교육에 장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가 동아리 활동과 생활 체육이 무척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3시 반에 정규 수업이 끝나고 그 이후로는 동아리 활동이 이어진다. 일본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학교 체육을 장려하여 중고생 스포츠 대회가 무척 활성화되어 있고, 그 덕에 생활 체육이 강화되어 일본의 올림픽 성적이 빠르게 상향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위해 부실과 정비된 운동장을 제공한다는 것이 무척 감명 깊었고, 교환 학생 제도를 통해 일본 교육에 대해 더욱 알아오고자 마음먹게 되었다.미국의 경우 교육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보다 크게 앞선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었는데, 영상을 보고 학교에서 실시되는 스포츠에 한해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정비된 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이른 시간에 정규 수업을 마치고 2시간 동안 스포츠 활동을 하며, 그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 받는다. 훌륭한 학생 선수는 대회를 지켜본 대학들에게 입학 제의를 받기도 하며 그 경우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는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이와 같이 스포츠가 대입과 직결된다면, 우리나라도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엿보았다.한국의 학교 체육 이야기는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고3이었던 내가 아주 잘 아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운동을 하면 죄책감을 느낀다.’, ‘공부를 안 하고 운동한다며 눈총을 받는다.’ 등의 이야기가 무척 기억에 남았다. 한국의 아이들은 체육을 어릴 적부터 적게 접하고, 그 대신 앉아서 공부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로 인해 자연히 체력이 떨어지고 운동 신경이 나빠진다. 그렇게 체육이 점점 하기 싫어지고, 또다시 체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체력의 저하가 공부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단 하루를 위해 운동을 포기한 아이들’이라는 말이 무척 가슴 아팠다. 최근에 나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체육을 싫어하도록 자라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영상을 보며 그 생각에 확신을 얻었다. 위의 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우리나라 아이들은 자라며 후천적인 요인으로 인해 체육을 싫어하게 된다. 못하는 것을 어느 누가 좋아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을 어느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해온 경험으로 인해 체육적 능력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체육을 싫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나 또한 나 자신이 체육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한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체육 시간이면 화장실을 간다며 친구들과 도망쳤고, 관중석에 앉아 단어를 외웠으며 시험 기간 중 체육 시간에 운동을 나간다고 하면 야유했다. 친구들이 즐기는 피구는 내게 가장 큰 고통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살아온 20년 중 19년가량을 내가 체육을 싫어한다고 굳게 믿으며 자라왔다. 그러나 최근, 농구를 시작으로 배구와 수영, 스케이트 등 다양한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가 체육을 못하기는 하지만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계에 다다라 숨을 헐떡이면서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즐거웠고,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일 때는 짜릿했다. 동시에 그 긴 시간을 체육을 싫어한다고 굳게 믿으며 회피하면서 살아온 것이 무척이나 아쉬워졌다. 내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했다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여러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기초 체력이라도 있는 몸으로 자랐다면? 하는 체육 활동마다 성적이 매겨지는 사회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수영을 배우며 동작을 틀릴 때마다 발바닥을 맞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마 나는 체육을 좋아하는 아주 건강한 여자아이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를 놓쳐버렸기에 나는 빠르지도, 유연하지도 않은 몸으로 뒤늦게 공을 쫓고 허리를 굽히며 뛰고 달린다.
‘시민’을 존중하라- ‘I, Daniel Blake’를 관람하고00학과 000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2016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주목 받고 있는 ‘I, Daniel Blake’를 관람했다. 이 작품은 제69회 로카르노 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제64회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관객상 수상작이기도 하며, 노동자의 편에 서서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한다.목수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일을 계속하게 되면 심장이 견뎌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은퇴를 결정한다. 그는 평생을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왔기에 그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다니엘은 심장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건강해 보인다는 이상한 논리 때문에 질병수당 심사에서 탈락한다. 그 결과에 항의를 해보지만 공무원들은 매뉴얼에 적힌 말만 기계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다니엘은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지지했던 이 세상이 믿기 힘들 정도로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러던 와중 이사를 온 탓에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받기 위한 상담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 케이티와 만나게 되고, 다니엘은 그녀를 위해 항의하다 함께 쫓겨난다. 그는 두 아이를 둔 싱글맘 케이티의 힘든 상황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자신 또한 힘든 상황에 빠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을 수리해주고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그녀를 위해 책장을 만들어주는 등 진심으로 그녀를 돕는다.케이티의 아이들은 가난을 이유로 놀림 받고, 케이티는 돈이 없어 굶다가 생존을 위해 물건을 훔칠 수밖에 없게 된다.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던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린다. 다니엘 역시 지원금을 받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수치스러웠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들에게 '당신이 경쟁에서 실패해서 가난한 것이다. 당신이 능력이 없고 노력하지 않아서 먹고 살기 힘든 것이다'라고 말한다.작 중에서 다니엘은 삶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다고 눈물짓는 케이티에게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먹고 살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버려야하는 현실이 과연 정상이냐고 묻고, 이 모든 불합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며 이것을 더 이상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라고 소리 높인다.복지란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권리이자 혜택이며, 다니엘은 한평생을 시민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나이든 그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정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공무원들은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지원금이 절실한 케이티와 언제 심장마비가 올지 모르는 노인 다니엘에게 원리 원칙만을 강조하며, 그들을 제재하고 관리해야 할 상품쯤으로 취급한다. 다니엘은 그에 분노하여 담당 기관의 외벽에 자신의 이야기를 호소하고, 많은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당당하고 담담하게 경찰차에 올라탄다.
198400학과 000‘톈왕(天網)’이란, 중국 공안 당국이 2000만대의 인공지능 감시카메라를 통해 관리하는 범죄 용의자 추적 시스템으로, 중국 정부는 반부패·반범죄 시스템의 일환으로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2015년부터 톈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그물’이라는 뜻인 톈왕은 길거리에 있는 CCTV에 찍힌 사람, 차량 등을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성별, 연령대, 복장, 차량 종류 등 다양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표시한다. 움직이는 사물과 사람을 추적해 판별하는 인공지능 CCTV에는 위성위치확인 시스템(GPS), 안면인식 장치 등이 탑재되어 있고, 이 CCTV에는 범죄 용의자 데이터베이스가 연결되어 있다.이러한 톈왕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설 1984 속 ‘빅브라더’를 떠올리게 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안 당국은 인공지능 폐쇄회로 카메라(CCTV)와 스마트 안경을 쓴 경찰을 이용해 국민들을 24시간 감시하고 있고, 전 국민의 인터넷 검색 이력과 구매 내역까지 모조리 수집하고 있다. 이 방대한 정보를 토대로 중국은 2020년까지 13억 전 국민에게 ‘사회적 신용등급’을 부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은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회장 장용에 따르면 사회적 신용 점수가 하락한 900만 명이 항공기, 고속철의 탑승을 거부당하는 등, 이미 낮은 등급을 받은 중국인들은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는 우리에게 프롤, 외부당원, 내부당원의 3단계로 등급이 나뉘어 살아가는 소설 1984를 떠올리게 한다. 1984는 전체주의를, 중국은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위에서 언급했듯, 소설 1984는 전체주의(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 즉 민족이나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 및 체제)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안에 놓인 한 개인이 그 억압적인 정치 체제에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진리부 기록국에서 현재와 맞지 않는, 빗나간 예상의 기록을 조작하고 날조하는 일을 하는 윈스턴 스미스이다. 그는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빅 브라더의 얼굴이 모든 건물의 벽에 걸려 사람들을 응시하는 세계, 매분매초 쌍방향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는 세계, 타인은 물론 가족과 자기 자신을 한시도 쉬지 않고 검열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이 소설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절대 권력의 소유자이자 국가의 감시의 상징으로 유명해졌다. 특히 요즘 들어 이 ‘빅 브라더’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누구나 SNS나 카드사용내역, IoT(사물인터넷), CCTV와 블랙박스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시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빅 브라더’는 비단 소설 1984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의 갤럭시노트7이 출시 이전부터 소비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국정 홍보용 앱인 ‘정부 3.0’이 갤럭시노트7의 사전 탑재 앱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소식에 제품 출시 전부터 소비자들이 거센 반발을 보였다. 이용자들이 원하지 않는 서비스를 강요하는 형태라는 반발에, 제조사 측은 ‘최초에 앱 설치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나중에도 언제든 삭제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반발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중에는 정부의 감시, 즉 ‘빅 브라더’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에 살고 있다. 늘 서로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언제든 추적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2011.09.19. SBS 뉴스에 따르면, 수도권 시민은 하루 평균 83차례에 걸쳐서 CCTV에 찍힌다고 한다. 길을 나서면 9초마다 한 번씩 CCTV에 잡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생활 노출 등의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는 사생활 보호를 위한 규제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며, 개인은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그래서 이와 같이 현대에 실존하는 ‘빅 브라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매일 같이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사생활 침해보다 신체의 안전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지만, 지나치게 기술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4를 읽고 내가 경계하게 된 것은 기술의 조작인데, CCTV에 찍힌 모습을 조작하여 제시하면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반박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1984에서는 역사마저 조작하지 않았는가.‘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그리하여 매일 매순간 과거는 현재의 것이 되곤 했다.’두 문장 모두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말이다. 특히 위의 문장은 당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가 진리부 기록국에서 역사를 날조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역사의 실재에 대한 이야기 또한 소설에 여러 번 등장한다. 윈스턴이 근무하는 기록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교체해서 없애버려야 할 서적과 신문, 각종 문서들을 찾아내어 정정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한 기록국에서, 윈스턴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예측했던 것처럼 빅 브라더가 행한 연설을 고치고, 정부가 약속했던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약속했던 내용을 바꾸어 놓는다. 이러한 날조와 ‘이중사고(두 개의 상반된 내용을 모두 받아들이는 사고방식)’로 인해 사람들은 빠르게 역사를 잊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어제 초콜릿의 배급량을 30그램에서 20그램으로 줄인다는 방송을 듣고도 오늘 초콜릿의 배급량을 20그램으로 올려준다는 방송을 듣고 환호한다. 일견 우습고 무서운 장면이다. 사람들은 아둔해서, 지난주 초콜릿 배급량이 30그램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색출하여 증발시켜 버리겠다는 열의에 휩싸여서, 복잡한 이중사고로 인해서 그것을 익었다. 소설은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겨우 하루 만에 그것을 잊어버렸나? 그렇다. 그들 모두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 그렇다면 윈스턴 혼자만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단 말인가?’
「말의 품격」을 읽고000버스는 아르바이트를 마친 내 몸을 싣고 커다란 서점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해가 거의 넘어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점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거나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함께 자연스레 책을 읽어왔던 나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어 서점에 온 목표인 책을 찾았다. 남색의 깔끔한 표지를 한 책, 「말의 품격」이 바로 개강을 하고 나서는 일상에 치여 찾기가 쉽지 않았던 서점을 간만에 찾게 된 이유였다. 책을 들고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 가벼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그렇게 얇은 두께의 책은 아니었지만 작지 않은 글자와 넓은 간격의 문단, 간결한 문장 덕에 오래 걸리지 않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런 요소들 때문인지 책을 읽어가며 느낀 인상은 조곤조곤 말과 그의 품격에 대해 논하는, 참 친절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어렵지 않은 말들로 여러 일화와 사자성어,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내가 오랫동안 알아왔지만 진정 알지는 못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그곳을 흐르는 말들에 있어 당연한 것들과 필요한 것들이 책장 위에 누워 나와 깊이 눈을 맞췄다. 장의 제목으로 쓰인 두 자, 혹은 네 자 밖에 안 되는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이따금 길을 잃고 눈을 깜빡였다. 귓가에는 내가 틀어놓은 잔잔한 노래가 흐르고, 온통 타인들 사이에서 나는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때에도 오롯이 혼자여서 좋았다. 글자를 맛보고 문장을 되새기는 만족스러운 독서 시간이 지나고, 아쉬운 발길로 서점을 나와 조용한 골목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며 생각했다.나는 어릴 적부터 말을 하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그건 내 기억과 가족들의 증언은 물론 내가 받아온 상장들을 모아놓은 파일의 첫 장이 유치원에서 받은 ‘이야기 상’인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아이가 셋인 집에서 태어나 학교가 끝나면 엄마의 품에 안겨 그 날 있었던 일을 동생들과 다퉈가며 가장 먼저, 가장 길게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던 그 어린 날부터, 말하는 것은 내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중의 앞에 서는 것이 떨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코 두렵지는 않았고, 그 앞에서 박수를 받을 때, 그래서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 나는 짜릿함에 가까운 커다란 행복과 만족감을 느꼈다.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의 시선을 받으며 종알종알 입술을 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을 잘 하는 아이로 종종 꼽혔고, 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고, 발표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슴 설렜고, 토론 수업을 가장 좋아했으며, 무슨 장(長)을 뽑는 자리면 곧장 지원해 모두의 앞에 나서곤 했다. 내가 말하고 남들이 그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마땅한 반응을 내놓는 대화의 흐름에 포만감을 느꼈다.물론 순수하게 말을 하는 것이 좋기도 했다. 말을 하고 글을 써서 남들 앞에 나를 드러내는 일이 즐거웠다. 그에 대해 칭찬을 종종 받아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긍정적인 관심에 늘 목이 말라 있었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쓰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남들의 앞에서 내가 아는 것들을 늘어놓고 대화를 주도하는 것이 즐거웠다. 대화 중에 말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내가 그 대화를 이끄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곧 내가 상대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말하는 것만큼 내가 아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게 곧 내 힘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 말에 먹혀 내가 알지 못하는 곳까지 내달렸다. 마땅히 멈춰야 할 곳에서 말이 ‘지나쳐’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구석에서 피어나는 쓸모없는 자존심 때문에 말이 지나쳤다는 사과는 몇 번 입에 올리지 못했다.자라면서 말의 품격과 권위, 사람들의 진심 어린 관심과 호감 등 내가 진정 닿으려 했던 것들이 말의 총량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움직이는 입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깨달음을 얻은 지금도, 나는 불쑥불쑥 상대방의 말허리를 부러트리고 아직 그의 입안에 머물고 있는 단어며 문장을 난폭하게 빼앗아 내 입에 올리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이 쉽지 않다.이 책은 그런 나의 모습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게 내게 말의 품격을 논했다. 나조차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나의 말들이 책장 위에 빼곡히 몸을 누이고 나를 찔러왔다.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를 다소 빠르게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 이 독후감을 구상하며,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인정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깊은 곳들을 들여다보았다. 위에 늘어놓은 나의 ‘나쁜 말’들은 나름의 고뇌를 통해 자존심을 꾹꾹 눌러 밟으며 적어낸 것들이다.이 책은 이청득심;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과언무환;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언위심성;말은 마음의 소리다, 대언담담;큰 말은 힘이 있다 의 총 4가지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청과 존중, 공감 같은 귀에 익은 주제들로 시작해 교황과 대통령의 이야기 등을 논하는 대언(大言)까지, 그 많은 이야기들을 쉬운 말로 눈앞에 풀어내는 것이다.경청과 공감 같은 당연한 이야기들도 저자가 조곤조곤 풀어헤쳐놓은 문자들로 살피니 그렇게 쉬운 말들이 아니었다. 남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당장 내가 한 자라도 더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던 내가 실행하고 있던 것들은 더더욱 아니었다.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장은 과언무환(寡言無患)이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문장 아래에서, 저자는 침묵;때로는 말도 쉼이 필요하다, 간결;말의 분량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긍정;말은 종종 현실과 공명한다, 둔감;천천히 반응해야 속도를 따라잡는다, 시선;관점의 중심을 기울이는 일, 뒷말;내 말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이 장이 가장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내게 가장 필요한 말들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 앞에 나서고 말하는 걸 원체 좋아하는 탓에 입으로 저지른 잘못들이 무수히 많다. 사람들이 내 말에 웃으면 그제야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기에 더욱 그랬다. 몇 백 명의 앞이든 단 한 명의 앞이든 청자가 내 말에 웃으면 내 이야기가 잘 전달된 것 같고, 내가 매끄럽게 말을 잘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점점 성급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남들을 웃음거리로 삼기도 하고 후회할만한 말들을 가볍게 입에 올렸다. 그러고는 밤이면 밤마다 뱉은 말을 머리맡에 풀어헤쳐놓고 가만가만 되짚어가며 고민했다. 이 말은 그르지 않았나, 저 말은 그 애를 상처 주지 않았나 하면서. 그래서 침묵과 간결, 뒷말의 장을 읽으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특별하거나 남다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앞장을 읽으며 나의 말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에 읽게 되니 더 깊은 곳에 짙은 울림으로 닿았다.그러나 이 장에서도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던 부분은 ‘둔감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둔감력을 좌절감을 극복하는 마음의 근력 또는 힘을 의미하는 ‘회복 탄력성’과 겹쳐본다. 타인의 말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가벼운 질책에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고수하는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바로 둔감력이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도 유독 남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겉으로는 웃어넘기는 척 하며 속으로는 몇날 며칠을 그 사람의 스치는 말, 흘려낸 웃음 하나로 고민하는 것이다. 나 혼자만 거기, 그 순간 그 장소에 머물러 몇 번이고 되풀이해 생각한다. 왜 너는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혹자는 뒤끝이라거나 피해망상이라고 부르는 생각들에 갇혀 있는 일은 굉장히 피곤하고 나를 갉아먹는 소모적인 일이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엄마는 종종 내게 바보처럼 사는 게 이기는 거라고, 더 의미 있는 거라고 말씀해주시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지는 건 그냥 지는 거고 손해를 보는 건 그냥 손해를 보는 거라며 고개를 저어왔다. 그랬기에 남들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이렇게 집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민감하게 촉을 세우고 어느 순간에도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구는 것이다. 그런 생활에 지쳐가던 찰나, 이 구절을 만나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은 둔감하게, 무디게 흘려내고 비껴내면서 사는 것이 내게 이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것이다. 그저 작은 마음가짐의 전환일 뿐이지만, 이것이 싹이 되어 내 삶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