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의 ‘확실한’ 평화를 위한 확실한 도약Ⅰ. 서론한반도는 광복과 함께 분단을 맞았다. 1950년에는 분단된 국가 사이에서 6.25 전쟁이 발발했으며, 이후 정전협정을 체결했지만, 영구적으로 전쟁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분단부터 전쟁과 휴전, 그리고 오늘까지 7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북갈등이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정전 상태에서도 북한의 군사 도발에 연일 한반도는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북핵 문제를 비롯한 대북 문제는 한국의 각종 정치적 논쟁에서 언제든 빠지지 않는 주제다. 그런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직접 분단과 전쟁을 겪은 세대가 차츰 사라지고, 남북의 갈등이 반복될수록 한국 내에서 통일을 위한 논의는 줄어들고 있다.통일을 위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통일을 사회?정치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오늘날 주로 북핵 문제 해결을 골자로 한 대북 논의와는 다르다. 통일의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 혹은 장애물은 차치하고, 통일 자체의 필요성과 실현 방법을 골자로 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통일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이다. 남북은 통일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이 ‘통일 논의’에 포함된 중요한 질문들이다. 따라서 본 보고서에서는 통일의 필요성을 시작으로 그 근거,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답할 것이다.Ⅱ.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한 통일한국의 기초교육에서 통일의 필요성은 ▲이산가족 아픔의 해소 ▲경제?군사적 강국이 될 통일 한반도 ▲통일비용보다 큰 분단비용 지출 감소 등을 주로 설명됐다. 그러나 현재 위 세 가지 논거만으로는 통일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애석하게도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직접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가족 해체의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 나날이 줄어드는 지금,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북한의 천연자원과 인구, 군사력을 얻어 통일 한반도가 지금보다 강국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오히려 통일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지출과 위험 등을 해결하는 데 그쳐 이전보다 퇴보할 가능성도 크다. 우리보다 앞서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다른 국가, 예컨대 동서독 통일 사례를 보더라도 통일 이후에는 예측한 것보다 큰 비용이 필요했으며, 통일로 불거진 각종 갈등을 봉합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즉, 군비 지출 등으로 대표되는 분단비용보다 오히려 통일비용이 커지는 ‘마이너스 섬(minus sum)’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통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통일을 통한 사회적 갈등의 봉합을 위함이다. 현재 한국은 어느 때보다, 또한 전세계에서도 갈등이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정치?경제?사회 분야에서의 갈등 지수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갈등 지수는 OECD 국가 중 3위였으며, 정부의 갈등관리 지수도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렇듯 한국에서 대부분 국민은 성별, 지역, 세대 등 각축에서 대립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종교, 인종, 언어 등 원초적 균열이 없음에도 이처럼 서로 간에 불신과 대립이 강한 이유는 정당의 발전 과정으로 살펴볼 수 있다. 립셋과 로칸은 정당체계가 사회균열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역으로 정당이 세력 유지 및 강화를 위해 사회균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사례다. 정치지도자들은 사회적 균열을 정치화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세력 유지 등을 목적으로 사회균열을 조장하려고 했다. 그 일환에서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지역주의’가 등장했으며, 이는 현재 한국의 좌?우파 갈등의 축인 ‘친북 대 반북’ 구도 형성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처럼 ‘만들어진’ 균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긍정적인 계기가 필요하다. 이때 통일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족’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더욱이 한반도 분단 체제는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 세계의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통일로 말미암은 거시적 평화에의 기여는 국민에 자부심을 심어줄 것이며, 통일과 같은 거대한 화합의 경험은 그 자체로 갈등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두 번째 이유는 한반도의 영구적이고 확실한 평화를 위해서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한국이 ‘불안정한 정전체제’ 즉 불완전한 평화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21년 76차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언급한 이후, 북한의 김여정 당 부부장도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철회한다는 의미에서 한 종전선언은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전했다. 이는 다시 말해 종전선언 혹은 완전한 종전이 있기 전까지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적대시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를 종합할 때, 현재 한반도는 상호 간의 불신 속 위태로운 위기를 겪고 있음은 자명하다. 궁극적으로 남북이 신뢰를 회복하고, 적대를 멈출 충분한 방법은 통일이다. ‘반북’의 입장에서 북한에의 공세적 접근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에서도 남북 간 신뢰와 궁극적인 평화가 보장된다면 통일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이처럼 남북한 통일의 필요성은 한국,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통일로부터 예상되는 난관도 존재한다. 오히려 통일 이후 평화가 해쳐지는 상황, 예컨대 정치?경제?사회적 영역에서 남북갈등이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줄이고, 가능한 효과적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미리 통일을 위한 준비 기반을 닦아 놓을 필요가 있다.Ⅲ.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초석통일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국내 정치적 합의다. 이때 ‘합의’란, 통일을 향한 일관된 입장을 고정한다는 의미가 아닌, 적어도 ‘통일’만을 위한 논의가 진행돼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끊임없이 정치권에서 다뤄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서는 대북정책에서 나아가 통일에의 논의는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 등, 남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시시각각 달라지니 만큼 뚜렷하고 일관적인 해법을 준비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의 동독과 서독에서도 통일 직전 일반 국민과 정당 사이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었다. 이처럼 논의에의 공감대 형성을 시작으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일반 시민들도 통일의 주체로서 준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통일의 주역으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일반 시민이다. 그 근거는 남북통일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 양측의 이질성이라는 데 있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 시민은 대부분 북한을 통일 논의를 함께할 대상보다도 안보를 위협하는 상대방으로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북한을 ‘가난하고 억압적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나쁜 이웃 또는 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 중, 고등학생은 북한과의 통일에 대해서는 통일비용에의 우려와 통일 이후 평화 등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이른바 ‘모순적인’ 상태를 보였다. 이처럼 모순된 상태는 통일을 위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학생 시기에 원활히 준비돼있지 않음을 뜻하며, 우리에게 통일을 위한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아가 통일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국민이 통일 정착 과정에 자발적으로 강력하게 참여한다면, 통일은 더욱 원활히 완성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에서도 통일 당시 통일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한 주체는 동서독 양 주민이었다. 실제로 통일 이후 사회 통합에 기여한 것도 주로 종교 단체 등 민간단체였으며, 서독 민간단체는 “현지 주민과의 접촉과 파트너 개념”을 도입해 동독 이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서독의) 체제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는 통일 체제의 원만한 정착을 위해서도 국민이 통일에 앞서 미리 통일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상호호혜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Ⅳ. 결론시간이 흐르면 통일보다는 분단이 편안하고 안정적인 체제이며,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체제라는 인식이 팽배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남북 사이 이질성이 강해질수록 통일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통일 논의 자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다. 이 같은 시류에 맞게 건전한 논의를 거쳐 통일론을 완전히 폐기하고 작금의 분단 상태를 영구화하는 것에 합의할 수는 있지만, 어떤 사회적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통일에 관한 논의가 흐지부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일에 관한 진지한 논의다.
장애인 이동권, 법적 해결과 사회적 협의 사이에서Ⅰ. 서론법은 권리의 문제다. 권리란 잘 알려진바 개인이 법에 근거해 이익을 누리기 위한 힘이다. 개인이 ‘어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부터 한 국가에서 특정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는 개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 권리를 둘러싼 수많은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법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최근 불거진 권리문제 중 하나는 ‘장애인 이동권’이다. 장애인 이동권은 문자 그대로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권리’로, 구체적인 수단으로는 지하철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행환경 및 공공시설 접근성 개선 등이 꼽힌다. 이동권 문제가 가시화된 것은 2001년 1월이었다. 당시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가 추락해 이를 이용하던 장애인 부부 중 한 명은 큰 부상을 입고, 한 명은 숨졌다. 비극적 사고 이후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갈 길은 멀다. 2021년 12월부터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지하철 출근 시위를 벌이면서 다시금 이동권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가장 최근,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권리문제이며 법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소재기에 이 문제를 연구 주제로 선정했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단편적 사례의 단면을 넘어, 우리나라 법 문화 전반에서 권리문제를 고찰할 것이다.Ⅱ. 장애인 이동권 담론의 법적 배경오늘날 사회구성원의 기본적 약속으로 여겨지는 가장 기초의 법은 헌법이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근원으로, 국가의 통치원리부터 국민의 기본권까지 정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주권의 주체인 국민에 의해 형성된다고 여겨진다. 즉 모든 국민을 규율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가장 우선적인 법이다. 그렇기에 개별 권리의 문제를 다룰 때도 헌법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헌법에서는 국민의 기본권을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적 기본권으로 분류해 규정하고 있다. 자유권적 기본권은 국민의 결정에 국가의 개입을 금하는 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한편, 사회적 기본권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다. 그렇기에 기타 법률을 통해 구체화가 필요하다. 즉, 헌법에서 규율하는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는 셈이다.장애인 이동권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이동권을 제한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 자유권적 기본권의 성격을, 동시에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법률 제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본권의 성격을 가진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이전까지는 권리로 가시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2001년 오이도역 사고를 기점으로 그동안 묻혀왔던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올랐다. 이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이들도 늘었다. 이 흐름을 타고 2005년 1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이 제정됐다. 해당 법안에서 이동권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공식적 법적 용어로 인정됐다. 다음과 같다.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즉, 장애인 이동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권리임이 명시된 것이다. 이어 2007년에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의 기본 권리를 실효적으로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덕분에 장애인 차별이 도의적으로 지양될 것이 아니라 엄연한 위법으로 처벌될 여지가 생겼다.문제는 장애인 이동권의 사회권적 성격에서 불거졌다. 장애인 이동권은 교통약자법의 정의에 근거할 때 이미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사회권적 권리를 ‘권리’로서 기능하게 하려면, 즉 보장받게 하려면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인 법률 제정 및 예산 편성에는 정부와 지역사회 모두 소극적인 입장이다. 특히 2021년 12월부터 전장연이 지하철 출근 시위에서 요구하는 것도, 이 같은 권리 보장에 필요한 예산 확보가 골자다. 실제로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2021년 말 통과되기도 했지만, 이 개정안에서조차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예산은 의무가 아니다. 그렇기에 개정안이 실현될 가능성을 크게 평할 수 없는 실정이다.이를 종합해 법적 관점에서 장애인 이동권 담론의 현주소를 평가할 수 있다. 2001년 이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은 ‘이동권’을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실질적으로 발휘하기 위한 구체적 법률에의 관심은 미비한 상태다.Ⅲ.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사회적 협의의 중요성법(法)의 주된 목적은 ‘물(?)’이 잘 ‘흘러갈 수(去)’ 있게 돕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기도 하지만, 법의 본 목적 자체가 가치의 창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법은 집행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실제로 가치문제를 단순히 ‘법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는 대체로 전향적 ‘변화’를 주도하기보다는 사법부의 보수적 입장을 청취하는 데 그쳤다. 예컨대 2001년, 헌법재판소를 통해 저상버스 도입 의무 불이행 위헌확인 소송이 제기됐다. 이때 헌법재판소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이 국가의 구체적 의무인지를 중심으로 사안을 평가했다. 그리고 저상버스 설치는 단지 국가가 고려해야 할 사안일 뿐, 장애인에 대한 ‘최우선적인 배려’를 제공할 의무를 강제하지 않기에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포함해 장애인 차별 관련자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는 사법적 판단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대법원 2021. 4. 1. 선고 2018다203418 판결에서는 피고가 버스에 휠체어 전용공간을 확보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고에 대한 구제조치가 필요하다고 판시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시설에의 접근성 등 이동권을 보장받기까지는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이렇듯 사법적 판단은 대체로 상황에 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하기 마련이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비롯한 사회적 정책 문제는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먼저 해결하는, 즉 사회적 협의의 결과물이 드러난 다음에야 사법의 영역에서도 그 효과가 드러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적 결정의 기초에 있는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는 사회 공동체 구성원의 몫이다. 실질적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동권 문제가 적극적으로 보장돼야 하며 뒤처져서는 안 될 당연한 권리임을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그러나 현실은 이와 사뭇 다르다. 실제로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는 나날이 공격받고 있다. 실제로 시위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시민들의 욕설을 들었다. 이외에도 2월 15일에는 전장연 홈페이지가 사이버 공격을 받았고, 장애인 활동가들은 폭언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차치하고 동료 시민들조차 이들에게 냉담한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보장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로 납작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 장애인 이동권는 헌법과 교통약자법 등 기타 법률로 보장의 필요성이 확립됐다. 이 시점에서 시민들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필요성은 당연한 전제로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예컨대 행정부와 입법부를 압박해 좀 더 적극적으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나서게 하는 등이다. 이처럼 구성원들의 합의에 기반해 법률이 제정되고, 이를 기반으로 장애인 이동권의 보장이 당연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적 접근 분석Ⅰ. 서론동북아시아, 그 속 우리나라는 전례 없는 혼란에 봉착했다. 동북아시아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아래 두 강대국이 충돌하는 지역 중 하나기 때문이다. 나날이 정세는 나빠지는 가운데, 역내 협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한?중?일 세 국가는 영토 분쟁, 정치체제 차이 등으로 인해 서로 간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중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양국 국민 사이 적대감도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갈등을 봉합하고 협력에 다다를 길은 요원하게만 보인다.오늘날 세계는 평화와 협력의 질서 아래 묶여 있다. 더욱이 안보적 위험이 도사리는 동북아에서는 역내 국가들이 협력할 필요성이 두드러진다. 한국과 일본 역시 협력하며 앞으로의 발전을 그려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협력과 별개로 청산돼야 할 과거사 문제는 엄존한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 동시에 외교적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중 처음으로 실명을 밝히며 피해를 증언했다. 그 후 30년, ‘위안부’ 문제는 양국 간 첨예한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표류 중이다.끝이 보이지 않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사법부, 민간단체 차원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접근한 바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과 직접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는 정부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밟아온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행보는 어땠을까. 오늘날까지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며,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 지난 한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외교적 접근 방식을 분석하고, 한계를 진단할 수 있다. 나아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적절한 한국 인정과 사죄, 그에 맞는 법적 배상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까지 일본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법적 배상도 거부해왔다.일본이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는 주된 근거는 합일 협정이다. 1965년, 박정희는 일본과의 국교 재개를 골자로 한 한일 협정을 체결했다. 이로부터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청구권과 경제 차관을 지원받았으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본의 식민 지배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일본은 식민 지배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했다는 논리로 ‘위안부’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정부 또한 1965년 한일 협정의 체제 안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시혜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에 그쳤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법적’ 책임은 사라졌다. 실제로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 이상으로 1965년 협정에서 지워진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등 문제의 외교적 쟁점화를 피했다.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청산되지 않았으며, 일본 정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일 협정 이후 외교에서 묻혀 있는 듯 보였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외교적 문제 제기의 발화점인 셈이다. 이후 2011년 한국 헌법재판소 판결이 논의를 가속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의 배상청구권 문제를 둔 일본과의 분쟁 해결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이는 ‘위안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를 근거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일본과 ‘위안부’ 문제 협의에 나서 합의안을 도출하기도 했다. 이 중 2012년 10월 일본 사이토 쓰요시 장관과 나눈 ‘이동관-사이토 안’은 민간이 아닌 일본 ‘국고’로 위로금을 전달할 것을 골자로 한다는 의미에서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일본은 ‘위안부’ 피해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다.한편 201위안부’ 문제 해결에 임했다. 이후 2015년, 일본과 ‘위안부’ 합의를 이뤄냈다. 합의문에는 ‘최종 및 불가역적’ 합의라는 단정적인 단어까지 포함됐기에, 사실상 이상의 ‘위안부’ 관련 논의를 일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합의’라는 말이 무색하게 당시 합의문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무엇보다 중요할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이 빠져 있었다. 일본 정부는 합의문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라는 표현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단지 도의적, 도덕적 영역에 국한했다. 손해배상금이 아닌 10억 엔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지만, 정작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합의’에서 반영되진 않았다는 원성을 샀다. 2017년 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입장문을 통해 ‘(2015년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합의가 무효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올해 1월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위안부 합의는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소극적인 입장을 밝히는 등 일관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위안부’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에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있으니, 사법적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올해 2월에는 이용수 할머니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한?일 ‘위안부’ 논의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일본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낸 것도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 판결이었으며, 이후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의 사법부에 배상청구권을 인정받기 위한 소를 제기해왔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는 외교뿐 아닌 사법적 접근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사법적 논쟁 이면에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Ⅲ. 한국 정부의 외교적 접근의 한계 원인‘위안부’ 피해자들은 일관적으로 피해 사실을 호소하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표적인 ‘합의’로 여서 역사를 ‘청산’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외교적으로 해당 문제들을 소명하고, 합의를 찾아가려는 노력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인다.주된 이유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관계일 것이다. 비록 역사 문제로 인해 양국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가지만, 그런데도 한국은 쉽사리 일본과의 수교를 단절할 수 없다. 2015년 합의 역시 두 나라의 국력 차이, 국제정치적 환경 등을 고려하면 쉽사리 무산시키기 어렵다. 일본과의 외교적 관계 맺음이 한국에게 분명한 실리가 있다는 판단 아래 ‘위안부’ 문제에 접근한 것은 숱하게 찾아볼 수 있다. 박정희는 군부 쿠데타로 집권해 부족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 발전에 매진해야 했다. 그 일환에서 한일 협정을 체결해 경제적 실리를 취하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미?중 갈등에 맞물려 미국과 일본의 공조가 활발해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기의 주장을 일부 번복하면서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 또한 외교적 관계를 염두에 둔 판단일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10월,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통화에서는 ‘피해자들이 납득하면서 외교관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해결책을 모색하자’라며 ‘양국 간 외교적 해법 모색이 바람직하므로 외교당국 간 협의와 소통을 가속화’할 것을 제안했다. 지금도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 중심에 둔 가치 중 하나가 일본과의 외교관계 유지 혹은 발전임은 분명할 것이다.이외에도 주변 국가, 특히 미국이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미?중 패권 경쟁의 일환에서 동아시아 내 중국 견제 세력을 키우기 위해 일본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미?일 동맹을 강화해 중국 견제 및 남중국해,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좀처럼 쉽게 협력의 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과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은 각각 2014년, 2015년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한?일이 미래를 바라봐야 하고, 역사 인식 문제로 소의 판결 이후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에 나서는 데 소극적이었던 일본이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타결한 데에는 이 같은 미국의 압력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이미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이뤄진 시점에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재차 문제를 끄집어내 한?일 갈등을 심화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미국이라는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으니,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 논의 요청을 번번이 외면할 수 있다.국내 정치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외교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는 국내 여론이 강력한,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미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은 언제나 활발하지만, 일반 국민 여론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실제로 2015년 ‘위안부’ 합의 지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분석했을 때, 많은 사람이 대북 위협이 심각할수록 합의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미뤄볼 때, 북핵 문제 등 안보적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민은 한?일 사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식도 달리할 수 있다. 북한의 위협을 포함해 불안정한 정세로 안보 위협이 가속하는 오늘날, 국민이 2015년 ‘위안부’ 합의를 기해 한?일 갈등을 우선 봉합하기를 지지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방관했을지도 모른다. 국제정세와 무관하게, 코로나19와 사드 배치 이후 이어지는 중국의 경제보복 등으로 한국 내 경제 또한 불안정한 지금, 한?일 갈등의 지속으로 어려움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를 2015년 합의로 뭉뚱그려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커질 수도 있다.Ⅳ. 결론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의 발언으로 처음 ‘위안부’ 피해자가 수면 위에 오른 지도 30년이 지났다. 그러나 1965년 한일 협정, 2015년 합의로 인해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가해 사실인정과 그에 맞는 ‘법적’ 배상을 받기는 어려워졌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홀했다.
‘휴지통 없는 화장실’ 정책과 장애인 권리 분석Ⅰ. 서론‘장애인에게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능한 한 정상적이고 원만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모든 기회와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 무려 1998년에 국회에서 채택한 장애인 권리 헌장 2항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주변에서 ‘장애인 이웃’을 본 적이 있는가? 23년 전 헌장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무형의 경계는 굳건하다.경계를 허물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 지워지고 있는 장애인의 권리를 살펴봐야 한다. 장애인이 누려야 마땅하지만, 누리지 못한 권리에 주목해야 한다. 장애인의 ‘권리’로 사람들은 최근 ‘이동권’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노동권’, ‘건강권’ 등 권리에서 장애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해결되지는 못했을지언정 비교적 흔하게 들려온다.그렇다면 그보다 내밀한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화장실’에서는 어떨까. 화장실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필수적인 공간이다. 건강한 성인의 신체 속 신장은 하루에 약 1,500cc 정도의 소변을 생성한다. 이를 4~7회 정도 분할 배출한다. 즉, 성인은 하루에 약 5회가량 화장실에서 소변을 봐야 한다. 집이 아닌 외부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특정 시설에 장애인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도 그 일환에서 명목상으로나마 대부분 공공시설에 개설돼있는 추세다. 그렇다면 공공화장실에서 사각지대는 없을까? 실제로 화장실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크론병 환자의 사례로 살펴봤다.Ⅱ. 공중화장실법과 크론병 환자의 권리행정안전부는 2017년 5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아래 공중화장실법)을 개정했다. ‘화장실 변기 옆 휴지통 없애기’를 골자로 한 공중화장실법 개정안은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휴지통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취, 해충을 막고 청결한 화장실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시행 후 3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 사람이 ‘휴지통 없는 화장실’에 익숙할 것이다.권리의 문제는 남성용 화장실에서 불거진다. 크론병 환자는 남성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불편하다. 크론병은 만성 염증성 장 질환으로, 복통과 설사, 통증을 동반해 환자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며 평생 완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크론병 환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장애가 없어 보이고, 질병 특성상 증상이 없어 ‘보이는’ 관해기와 증상기가 반복되기에 모두 장애 등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장애인 화장실은 겉으로 장애가 드러나는 지체 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됐기에, 크론병 환자와 같이 겉으로는 비장애인인 사람들이 편히 이용하기 어렵다.문제는, 크론병 환자가 보조기구를 착용할 때 발생한다. 여성 화장실, 장애인 화장실과 달리 남성 화장실에는 위생용품 수거함이나 휴지통이 없다. 공중화장실법 제7조에서도 위생용품 수거함과 휴지통은 여성 화장실, 그리고 장애인?노인이 사용하는 화장실 특수한 장소에만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크론병 환자는 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수술을 한다거나, 증상이 심각할 경우 기저귀 등 보조기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휴지통 없는 화장실에서 보조기구를 처리하기는 요원하다. 크론병 환자 이외에도 장루장애인 등 겉으로는 비장애인처럼 보이나 보조기구를 사용하면서 남성 화장실을 이용하기에 난감한 처지에 놓인 이들도 있다.물론, 이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지는 않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을지라도, 휴지통이 마련된 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남성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우물쭈물’하며 느끼는 당혹감, 망설이는 사이 억제한 생리적 욕구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 더욱이 크론병 환자는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복통에 대비해 긴급하게 화장실을 사용해야 할 때가 많다.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순간마다 눈초리를 무릅쓰고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야 할지, 남성 화장실에 휴지통이 있지는 않을지 찾느라 보낸 시간이 그들에게 충분한 고통의 시간일 수 있다. 다른 선택지로서 장애인 화장실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실정이다. 실제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화장실 설치율을 90%까지 끌어올렸다고 했으나,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된 시설은 많지 않았다.이들이 침해당했다고 추정 가능한 권리 중 하나로는 ‘신체의 자유’가 있다. 신체의 자유는 헌법 제12조에서 정의하고 있는 권리로, 힘 있는 누군가 우리의 신체를 통제하고, 폭력을 가할 때 우리를 지켜준다. 크론병 환자들이 ‘국가’가 만들어둔 공중화장실법에 의해 화장실을 이용할 때 망설여야 하며, 편히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견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다고 짐작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 ‘억지로’ 그들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아니기에, 신체의 자유를 침해받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그렇다면 헌법 제34조에서 정의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이른바 사회권을 짚어볼 수 있다. 이는 노인, 청소년, 장애인의 삶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앞서 살펴본 ‘신체의 자유’는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것을 규정하는 방어적인 성격이었다면, 사회권은 더 적극적인 의미다. 단순히 국가나 권력 집단으로부터 간섭과 방해를 받지 않을 권리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경제?문화?사회적 생활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이용은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크론병 환자가 보조도구 처리 문제로 망설이지 않고 편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이어지는 맥락에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그들의 존엄함, 그리고 권리가 아닐까.Ⅲ. 공중화장실법 개선 방안과 법적 근거‘휴지통 없는 화장실’을 골자로 한 공중화장실법은 화장실 청결이라는, 누구라도 애호할 만한 목적을 위해 시행됐다. 그러나 ‘휴지통’ 하나 때문에 화장실 문턱을 쉽사리 넘지 못하는 이들이 엄존한다. 이 시점에서 공중화장실법의 정당성부터 개선 방안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행정안전부가 밝힌바 공중화장실법의 목적은 청결한 화장실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휴지통을 없애는 것이 적절한 접근이었을까? 남성 화장실 위생 문제는 휴지통이 아닌 입식 소변기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일본의 생활용품 회사 라이온에서 2005년 실험한 결과, 서서 소변을 볼 때는 미세한 오줌 방울을 포함해 약 2,300방울이 변기 주변에 튄다고 한다. 적어도 입식 소변기가 설치된 남성 화장실에서는 휴지통이 아닌 입식 소변기 자체가 청결을 해치는 원인이라는 셈이다. 이외에도 ‘휴지통 없는 화장실’ 자체가 쾌적한 화장실을 조성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 대구 등 지자체에서는 최근 다시 공공화장실에 휴지통을 들여놓고 있다. 휴지통이 없어진 탓에, 오히려 화장실이 더러워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로 미뤄볼 때 휴지통 없는 화장실이 진정 실효성 있는 화장실 쾌적화를 위한 대책이었는지 의문이다. 실질적으로 화장실을 깨끗하게 만들 방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정책은 아니었을까. 실효성 있는 대책, 나아가 변기 이외에 휴지통 등 보조기구를 처리할 공간이 필요한 이들을 고려한 정책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무엇보다 휴지통이 필요한 장애인을 고려하는 것은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주장이다. 그 바탕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2007년 제정됐다. 그 목적은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를 사유로 한 다양한 형태의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실효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온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에서는 목적 실현의 구체적인 방안인 ‘정당한 편의’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정당한 편의’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편의시설 등 수단과 조치다. 편의를 제공하기 어려운 크거나 곤란한 사정이 없는데도,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한 엄연한 ‘차별’이다.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이 편안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지만 방치되고 있는 상황은 차별이나 다름없다. 공공화장실에서의 차별이 엄존하는 지금, 공중화장실법도 목적의 실현 수단부터 구체적인 실현방안까지 다시 그려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