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성이 퇴색된 사회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성법치주의 국가에서 우리의 정의는 올바른 방향성을 가져가고 있는가? 다큐멘터리 영화 ‘아만다 녹스’의 결말을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의문이었다. 수사적 오류를 범하는 검찰, 자유라는 이름의 탈을 쓴 추악한 언론 그사이 놀아나는 대중 등 영화에서 투영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필자와 사회가 말하는 공정은 어떤 가치와 기준에 따라 판단되었던 것인지 또한, 판단 기준에 충분한 비판적 사고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오늘날 언론의 범죄 보도는 과히 파격적이다. 사회적 물의를 빚는 범죄 사건은 여론의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다. 언론은 속보 특종에 대한 광적인 집착으로 온갖 자극적인 표제 기사를 내세워 대중들을 혼란 시키고 이득을 취한다. 내용의 사실관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잘 팔리는 기사 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인 보도에 대중은 줏대 없이 휘둘리고 진실을 외면한다. 필자 역시 인과관계를 간과하고 기사만으로 범인을 내정하는 과실을 범하고는 한다. 때로는 법을 이행하는 검찰마저 언론에 지배당하는 면모를 보인다. 언론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가설만으로 무리하게 범인을 색출하거나 직접 여론몰이에 참여하여 수사망을 편향되게 만드는 등 형사소송의 정체성을 혼동시키는 오류를 행한다. 법의 중립성을 배제한 이 행위들은 범인으로 몰린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설사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사회적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은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처벌받게 하기보다 열 명의 죄인이 도망가는 것이 낫다”라고 말한다. 형법이 함의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벗어나 무고한 피해자를 배출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피의자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판결문이 나온 후에도 늦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대중과 언론이 무죄 추정 원칙의 헌법적 의의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증 되지 않은 정보에 마녀사냥을 할 것이 아니라 윤리적 가치를 재고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죄를 심판하는 검찰과 수사기관의 공정하고 중립적인 역할도 중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지만 검찰권의 강력한 권한과 광범위한 수사권 속에 가려진 사항이기도 하다. 법치 민주주의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보장을 근간하여 범죄혐의를 규명하여야 한다.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든 것을 구성하는 전부가 아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여론에 의해 사회적 죽음을 맞이했을지 모를 일이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중요성이 확대되는 시대이다. 시대에 발맞춰 여론과 대중, 검찰의 성숙한 성장이 필요하다. 이로써 대중들은 정의라는 감각을 느끼고 다양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법과 질서가 사회에서 살아 숨 쉬고 모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