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태어난 불행한 사람들에게‘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고‘n포 세대’,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청년들을 이르는 말이다. 사회, 경제적 압박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의 ‘3포 세대’에서 이제는 그 외에 여러 가지를 포기한다는 ‘n포 세대’가 되어버렸다. 이제까지의 내 삶은 이랬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해서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들어왔지만, 현실은 공부하랴, 아르바이트 하랴, 내게 주어진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취업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 뉴스에서는 연일 치솟는 집값에 관해 왈가왈부하지만, 과연 나는 집은 고사하고 밥은 벌어 먹을 수 있을까. 나와 다른 사람을 수시로 저울질하며 때로는 나를 갉아먹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하등 쓸모 없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요즘 세상은 살기가 너무 힘들어. 뭐가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아?” 내가 항상 내리던 결론이다.그랬던 나에게 아산 정주영의 ‘이 땅에 태어나서’는 마치 할아버지의 호통같았다. 그렇게 앉아서 세상에 대한 한탄만 할 때가 아니라고,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외치는 한마디 한마디에 한없이 부끄러워졌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이 땅의 태어나서’는 현대를 세운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정주영 회장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동시대를 살아온 인물도 아닐뿐더러 나에게 대기업 회장이란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운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기업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정경유착과 탐욕스러운 비리의 이미지들이 그려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국인이 존경하는 기업인 중 하나가 정주영 회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존경을 받는 기업인이 되었는지. 과연 나에게도 존경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건방진 냉소를 지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을 주는 것이 분명했다.이 책이 주는 가르침의 첫째는 바로 도전과 그것을 성공으로 이루어내는 최선이다. 정주영 회장은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노동의 강도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은 농사일에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자신을 농부로 키우려고 하는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탈출하고자 했다. 4번의 가출 시도 끝에 그는 농사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 집을 나섰다. 나는 가출이 정주영 회장의 도전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주영 회장은 가출로 집을 나온 뒤 도시에서 농사일보다 더 나은 일거리를 찾기 위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일하던 쌀가게 주인까지 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자동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차린 자동차 수리 공장 ‘아도서비스’는 오늘날 현대 자동차의 모체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말렸던 ‘현대토건사’는 ‘현대건설’이 되었다.정주영 회장의 수많은 도전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현대조선’이었다. 그는 외화벌이와 일자리 창출, 다양한 연관 산업의 가능성을 근거로 조선소 건설의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차에 정부로부터 조선소 건설 권유를 받았다. 조선소 건설의 첫 단계는 차관을 도입하는 것이었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선박 산업에 있어 초보적인 단계였기 때문에 모두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주영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차관만 해결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조선소 건설을 시작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난 뒤 현대조선은 데이비스라는 차관 주선인을 만났다. 정주영 회장은 영국 은행으로부터 차관 승인을 받기 위해 애플도어 회장의 도움을 구하게 되었는데, 그를 설득한 방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우리나라의 잠재력을 증명한 것이다. 그렇게 차관 도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영국 은행에서는 현대조선에서 만든 배를 구매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차관을 승인할 수가 없다며 거절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정주영 회장은 완공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를 돌아봤을 때,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봤을 뿐 나를 위해, 또는 이 세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도전한 경험이 없었다. 도전이 없었기에 노력도 없었다. 도전조차하지 않으면서 주변으로부터 변명 거리만 찾기에 급급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도전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기 위해 정해진 길만 따라왔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었기에, 또 그냥 적당히 잘 살고 싶었기에 나에겐 도전할 의지가 없었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이 ‘현대’를 일궈낸 과정을 통해 도전 의식을 갖게 되었다.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도 없다는 너무 당연한 이치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두번째로 내가 깨달은 가르침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앞서 말한 정주영 회장의 도전 의식은 이러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었다. 어쩌면 과거의 나처럼, 누군가는 정주영 회장의 성공을 시대와 맞물린 운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을 살펴보면 다른 그 누구와도 똑같이 삶의 필연적인 기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현대건설은 승승장구 하던 중에 고령교 복구 공사를 맡게 되었다. 공사 규모가 매우 컸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마땅한 장비가 없어 인력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사는 어려운 일 투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물가 때문에 완공한다고 해도 손해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한 번 시작한 공사를 멈출 수는 없었기에 강행하였지만 결과는 참혹했고 정주영 회장은 막대한 빛을 떠안게 되었다. 고령교 공사는 정주영 회장의 인생에, 그리고 현대건설의 역사에 길이 남은 뼈아픈 실패였다. 하지만 그는 이 실패로 좌절하지 않았고 운의 탓을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실패를 낳은 원인을 자신에게 돌렸다. 뿐만 아니라 실패의 손실을 공부의 대로 공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태국의 공사로도 막대한 손해를 입었지만 정주영 회장은 손해를 손해로만 보지 않고 그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회사를 발전시켜 나갔다.‘태어나는 자리나 환경, 조건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똑같은 것이 있다. 누구의 미래든 당신의 발전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발전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미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건 순전히 자기 자신의 책임이다. 아무리 현재가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생각이 긍정적이면 행복을 느낄 일은 얼마든지 있다.’ 정주영 회장의 긍정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 그의 인생의 실패들과 실패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보며 내가 인생을 살아왔던 태도를 반성할 수 있었다. 나의 마음가짐은 패배주의 그 자체였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고 비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배우려고 하는 태도가 없었다. 나보다 좋은 환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내 한계를 스스로 정한 뒤 그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생기는 모든 일들을 운의 탓으로 돌렸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기 보다는 갖지 못한 것들을 원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혔다. 이제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좀 더 집중하며, 인생의 여러 굴곡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발전하는 내가 되고 싶다.마지막으로 내가 본받고 싶은 모습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본인만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서울올림픽 유치에 대한 그의 태도였다. 그는 정부의 압박으로 올림픽 유치위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경쟁 도시 나고야에 비해 입지가 떨어지고 가망이 없어 보이던 서울을 올림픽 개최 도시로 유치해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지만 당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올림픽 유치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었고 정주영 회장 또한 자발적으로 유치위원장을 맡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국가에 대한 책임감나도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더더욱 대의를 따르기보다는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집중했다. 한낱 대학생에 불과한 내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한 나라를 구성하는 것은 여러 사회이고, 또 그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개개인의 사람들이다. 개인으로서의 나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이제껏 생각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는 유명하지 않은 그냥 한 사람일 뿐이지만 나와 같은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살아간다면 분명 이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세상에 대한 환멸과 삶에 대한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옹졸하게 살아왔는지 정주영 회장의 삶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정주영 회장의 도전의식과 끊임없는 노력은 발전 없이 제자리에만 머물며 안주하는 삶에 대한 위기의식을 주었다. 도전하지 않고는 결과도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알려준다. 그의 수많은 도전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에서 나왔다. 실패를 손해로만 보지 않고 배움의 경험으로 여기는 그의 긍정적인 태도가 또 다른 성공을 이루어낸 핵심이었다. 정주영 회장의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을 찾게 도와주는 것은 바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성취와 성공만을 좇지 않고 국가를 위해, 또 대의를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그의 책임감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깊다.나 자신의 발전에 집중하고 노력하기 보다는 불공평한 사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밤을 지새웠던 많은 날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도전하기 전부터 비관적인 시선으로 포기했던 일들이 많았다. 나의 영향력을 믿지 못하고 나의 의지보다는 이런 저런 외부의 요인들에 란다.
를 통해 알아 본 박지원 그리고 나‘열하일기’를 읽기 전, 많은 고민이 있었다. 우선 이제까지 고전을 읽어본 경험이 입시 공부를 할 때 일부를 읽어본 것 외에는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열하일기는 기행문으로 내가 읽기 좋아하는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행문은 여행 후기를 제외하면 처음 읽어보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을 간략히 적자면,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기에 어려움은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는 재미있었다.책 머리말에 ‘열하일기’의 의의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의 제공, 천하대세에 대한 전망, 지식인의 역할과 처신에 관한 문제 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지만 내가 ‘열하일기’를 읽으며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저자 박지원과 나의 모습이었다.첫 번째로, 여정 내내 박지원은 정말 사소한 것도 깊숙이 탐구하였다. 처음에는 ‘굳이 저렇게 뭐든지 자세히 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박지원에게 딱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일반 가정집을 보고도 기와가 어떻고 벽돌이 어떻다 하면서 조선의 것과 비교하는 박지원의 태도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와 박지원을 비교하게 되었다. 지난겨울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홍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이제까지 나는 여행의 목적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친구들과 즐겁게 여행을 했다. 물론 ‘열하일기’ 속 박지원의 여행과 나의 여행은 목적과 상황맥락 등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만 추구했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열하일기’와 같은 여행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즐겁기만 하고 사진만 남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지에 대한 조사도 하고 공부도 해서 사소한 것에서도 무언가 교훈을 배워 나를 발전시키는 여행을 가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두 번째로 인상적인 박지원의 모습은 바로 개방적인 모습이었다. 역사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사대부’라는 말을 떠올리면 고집상적이었다. 박지원은 북학파 중 한 명으로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는데, 청나라를 다녀온 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전부터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청나라에 방문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든지 시대를 앞서가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웠던 점은 박지원이 청나라에서 배워야 할 점들을 작성한 부분을 보았을 때 사대주의가 드러나기 보다는 객관적인 통찰력이 돋보였다는 점이다. 무조건 청나라의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실정에 맞게 활용하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캉의 구들 만드는 법을 본받아서 조선의 온돌에 적용하려는 모습, 청나라의 실용적이지 않은 초상 제도를 비판하는 모습 등)박지원의 개방적인 모습은 청나라 여정 속에서 각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면들에서 여실히 드러났던 것 같다. 심양에서 박지원은 밤에 숙소를 빠져나와 청나라의 청년들과 밤을 새워가며 대화를 한다. 주제는 매우 다양했는데 각자에 대한 이야기, 골동품에 대한 이야기, 장사치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 등이었다. 솔직히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고, 배경지식도 거의 없어서 그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박지원이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그 곳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즐기기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박지원이 열하에 도착해 배정된 숙소에서 지낼 때 쓴 태학유관록에서도 청나라 사람들과 각자의 나라의 문화와 관습 등에 대해 깊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박지원은 곡정 왕 거인이라는 사람과 청나라와 조선의 과거제도, 혼인제도, 관습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심양에서의 대화와는 조금 다르게 이때는 직접적으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대답하는 문답식의 대화로 이루어졌는데,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에 대한 연암의 호기심이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박지원의 호기심과 개방적인 모습이 어쩌면 나와는 가장 다른 부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방적이기 보다는 폐쇄적이고 내 일이 아닌 것에는 특별한 있는 사람이나 나와는 매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힘들어할 때가 많다. ‘열하일기’가 기행문이니까 같은 여행의 상황에서 본다면, 여행지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이 거의 없고 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주로 일행들과만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청나라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박지원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익숙하고 편안한 사람들과의 대화 뿐 아니라 완전히 색다른,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전에 먼저 내가 현재의 삶과 상태에 안주하기 보다는 호기심과 탐구심을 가지고 항상 나를, 또 내 주변 환경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세 번째로는 박지원의 성실한 모습과 꼼꼼한 모습이었다. 우선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기행문을 썼다는 것 자체가 박지원의 성실함을 증명하는 것 같다. 열하일기를 읽다보면 소제목이 붙은 경우도 많지만 소제목 없이 월과 일만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길이도 각각 천차만별인데, 여행을 하면서 있었던 소소하고 작은 일들조차 상세하게 기록한 것들을 보고 박지원에 대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기행문의 형식, 즉 청나라의 여정을 모두 담고도 그 후에 열하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청나라로부터 받은 문서들까지도 기록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환희기라는 부분에서는 마술을 보고 그 마술을 생생히 기록했는데, 이는 마술을 보지 못한 조선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쓰라고 해도 못 쓰겠다 싶을 정도로 자세히 서술되어 있었고,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쓸 수 있었는지 진지하게 연암이 살아있다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박지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하지만 연암이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했기 때문에 현진다고 생각한다. 심세편은 천하대세에 대한 전망이 담긴 편인데, 내가 주목한 부분은 도입부에 한국인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아마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연암은 심세편의 도입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섯 가지 망령됨을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정말 놀랐는데, 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어느 것 하나 크게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지원이 사절단으로 중국으로 떠난 년도, 즉 ‘열하일기’의 시작이 1780년도인데, 그로부터 200년이나 더 지난 지금, 내가 느낀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과 연암이 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망령됨이 비슷하다는 것이 충격 그 자체였다. 첫 번째는 지위와 문벌을 따지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객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척 하는 것, 세 번째는 공손하고 겸손하기보다는 뻣뻣하게 거들먹거리는 것을 운치로 삼는 것, 네 번째는 부족한 글을 내세우며 중국의 문장을 업신여기는 것, 마지막은 현실을 통탄하며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연암은 중국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태도를 전제로 다섯 가지 망령됨을 제시하였고, 이것들은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점들은 아닐 수 있지만 나는 연암이 말한 이 다섯 가지 망령됨 속에서 나의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우선 첫 번째 망령됨을 보면, 지위와 문벌을 따지는 것이 현재에 와서는 학벌주의로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교육자로서 교육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교육의 목표가 사회분위기 상 한 인간의 성장과 발전이라기보다는 입시라는 외재적인 요인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그리고 입시의 결승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이 너무 서열화 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학벌주의가 죽지 않고 200년 동안 살아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먼저 문제에 대한 자각과 변화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희망적인 것은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점 사찰당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나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나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박지원은 망령됨을 제시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첩자라는 의심을 받지 않고 청나라의 내부 사정들을 알 수 있을지도 말한다. 그러한 부분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와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굳이 정치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실생활에서 충분히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칭찬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보다 낮은 자세(라고 하여 굽신거리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로 마음 놓고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연암에 의하면 겉으로는 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해서 답답함에 이야기를 털어놓도록 해야 한다는데, 정보를 캐내는 상황이 아닌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앞의 단계만 거쳐도 충분히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열하일기’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행히도 예상보다는 재밌는 부분이 많았다. 그 재미있는 부분은 대부분 연암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부분들이었다.첫 번째는 도강록에 수록되었던 부분인데, 박지원과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부 선생의 이야기였다. 박지원은 책을 빌리고자 글방을 열어 마을 어린이들을 가르친다는 부 선생을 찾아간다. 부 선생은 책을 빌려주는 대가로 청심환과 고려부채를 요구해서 박지원은 기분 상해한다. 결국 박지원은 그 값을 주고 책을 빌려왔는데, 실속 없는 책이었다. 내가 재미있게 느낀 부분은 바로 그 이후인데, 박지원은 이 책을 베껴놓고 시대를 통해 부 선생에게 기분 나쁜 말을 전하게 하였다. 솔직히 그 전까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딱히 느끼지 못했는데 이 날의 기록을 읽으면서는 웃음도 났다. 후대까지 이름을 떨치고 비상한 사람이었던 박지원도 결국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조선시대의 선었다.
한문장 소개(30자)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선한 영향을 주고 싶은 예비교사지원동기(400자)저는 객관적으로 좋은 교육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자랐고, 학습 분위기가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 지망하던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저와 다른 교육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랬던 저는 올해 여름 교육 봉사 활동에 참여하여 교육 소외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에 상관없이 사회경제적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시작점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예비교사로서 책임감을 느꼈고, 제 꿈을 향한 동기 부여의 기회도 되었습니다. 드림클래스를 통해 제가 배운 지식들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좀 더 평등한 교육에 기여하고 싶었고, 저에게 있어서도 학생들을 만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지원하였습니다.성장과정(400자)저는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특히 선생님들의 가르침을 통해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다름을 사랑하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저와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성적 스트레스와 다른 친구들과의 비교로 힘들어했던 저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각자의 계단이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에 큰 위로를 얻고 조급해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저도 이렇게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드림클래스에서 학생들과 함께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단계 성장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성격의 장단점(400자)저의 장점은 강한 책임감입니다. 저는 제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해 꾸준히 하는 사람입니다. 고등학생 때 아침 자습시간에 학교 현관을 청소하는 봉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등교하고 청소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임감을 가지고 청소를 하는 날이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일찍 가서 현관을 청소했습니다. 3주간의 캠프 생활에 있어 저의 책임감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단점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너무 신경 쓰는 나머지 해야 하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완곡히 돌려 말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리더십 경험(400자)저는 직책을 맡아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는 아니지만 여러 의견을 내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안내하는 리더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체육대회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전 체육대회 때 준비가 부족하여 응원조차도 열심히 못했던 기억이 있었기에 응원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응원가는 멜로디가 익숙하지 않아 연습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급회의 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ost, 광고노래 등을 개사하여 새로운 응원가를 학급회의시간에 제안하였습니다. 저희가 만든 응원가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저희는 응원상과 3위라는 기쁜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 또한 리더의 자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과외경험(400자)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첫 수업 때 능숙하지 않았던 저는 모든 지식을 저의 언어로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고, 저는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먼저 저는 아이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눈높이에 맞춰 쉬운 말로 수업하였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예문을 사용하였습니다. 이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저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 조금씩 발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좋아지고 성적도 향상하였습니다. 드림클래스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하위문화에 따른 패션 조사 연구Ⅰ. 서론1. 조사 목적 및 필요성패션은 특정 기간에 유행하는 복식이나 두발의 형식이라는 뜻 외에도 개인 또는 집단의 공통적인 의복 양식 및 생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어떠한 생활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은 의복 생활에 있어서도 많은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우리는 ‘하위문화에 따른 패션 조사 연구’라는 제목 아래 크게 두 가지, 히피 문화와 힙합 문화, 그리고 그들의 패션을 조사함으로써 하위문화를 대표하는 패션이 그 문화의 특성을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패션은 단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흐름 또한 나타냄을 알 수 있다.2. 조사 방법인터넷 자료 조사와 관련 도서 등을 참고해서 조사했다.Ⅱ. 본론1. 히피(Hippie)란 무엇인가히피는 19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탈사회적 행동을 하는 문화 풍조 및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1960년대 중후반,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을 계기로 히피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주로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 운동은 불안한 사회 질서와 사회에 팽배한 물질만능주의, 폭력에 반발하여 자유, 평화, 사랑 등의 정신적인 가치와 인간성을 강조하였다. 히피 문화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으며 주로 음악가와 아티스트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따라서 패션과 음악으로 자신들의 가치관을 표현했는데, 유명한 가수인 밥 딜런, 비틀즈, 롤링스톤즈 또한 히피 운동에 동참했다고히피의 상징 알려져 있다.히피 그룹의 상징으로 대표되는 것들은 자유분방한 머리스타일, 의상, 집단생활, 그리고 마약이다. 이 중 마약은 정신적 해방을 위한 것으로, 이 당시 마약을 통한 정신세계 탐험을 뜻하는 ‘trip’이라는 단어가 현재까지도 마약을 경험했다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 꽃, 나무 또한 히피의 상징 중 하나인데, 히피가 추구하는 자연주의를 나타낸다. 오른쪽 그림은 원 안에 평화를 의미하는 비둘기 다리를 형상화한 히피의 대표적인 상징 그림이다. 이 그림은 현재까지도 평화(peace)를 뜻하는 그림으로 널리 사용된다.히피 그룹이 음악, 춤, 마약, 성관계 등 쾌락적인 모습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본질은 폭력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에 있었다. 히피 문화는 다른 문화, 종교, 동서양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며 평화를 추구했다는 점과, 많은 아티스트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어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2. 히피 패션1) 머리스타일히피 머리스타일로 대표되는 것은 긴 곱슬머리이다. 이러한 머리스타일은 자라는 머리를 굳이 자르지 않고 길게 내버려 둔다는 점에서 자연으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히피 문화를 대변한다. 남성들의 긴 머리는 성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하는 면모도 있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남자들은 수염을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기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미국의 인디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인디언 풍의 악세서리 또한 히피 머리스타일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이들은 머리에 자신들의 상징으로 선택한 꽃 장식을 달기도 했는데, 1967년 가수 스콧 맥켄지가 부른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ead)’ 라는 노래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이러한 히피의 머리스타일은 현대에 와서도 재해석 되어 ‘히피펌’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도 하였으며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2) 패션스타일첫 번째로 히피의 대표적인 스타일은 화려한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단 한 가지 패턴이라기보다는 다양한 패턴의 옷을 입었는데, 꽃무늬, 에스닉 패턴, 벡터 패턴 등이 있다. 먼저 꽃무늬는 히피의 자연주의 정신을 나타낸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닉 패턴에서 ‘에스닉’이란 민족적인, 이교도의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주로 아프리카, 중남미, 중앙아시아, 몽골 등의 민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히피족은 에스닉 패턴의 옷을 입음으로써 서양과 다른 문화, 종교 등을 포용하는 자세를 드러냈다. 벡터 패턴은 반복되는 기하학적 요소를 사용한 패턴을 의미하는데, 히피족은 화려한 색감으로 이루어진 백터 패션을 이용하여 환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히피 패턴(벡터 패턴)두 번째로는 프린지 스타일이 있다. 프린지(fringe)는 숄이나 스카프 가장자리에 붙이는 술 장식을 의미한다. 이러한 프린지 스타일은 히피들의 남루해보이는 옷차림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 원주민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이다. 히피는 프린지 스타일의 옷을 통해 서로 다른 인종 간의 화합을 추구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대외적인 이미지인 자유분방함을 드러내었다. 프린지 스타일은 현대에 와서도 히피룩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여겨지며 본래의 의미에서 더욱 확장되어 숄이나 스카프 뿐 아니라 치마, 바지, 자켓의 팔 부분, 가방에 까지 사용되고 있다.프린지 패션(가장 오른쪽)세 번째로는 레이어드 룩이 있다. 이는 집시들의 생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히피들은 본인들의 자유로운 감성을 드러내고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보이기 위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해 보이는 여러 가지 옷들을 겹쳐 입었다. 히피 문화는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와는 매우 다른 반문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레이어드 룩 또한 편리성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당시의 사회적 풍토에 저항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긴팔 티셔츠 위에 반팔티를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 (맨 오른쪽)마지막으로 다양한 악세서리를 히피 스타일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히피 패션에서는 히피의 상징인 평화의 심벌을 사용한 목걸이를 포함하여 자수, 수공예적인 악세서리 등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산업의 발달로 인해 환경오염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자연을 중요시한 히피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자연섬유나 천연 염료를 선호하였다. 따라서 실이나 깃털을 사용한 악세서리 등도 히피를 대표하는 스타일 중 하나이다. 이러한 악세서리는 또한 미국 원주민으로부터의 영향도 받았다.3. 힙합(Hip Hop)이란 무엇인가1980년대 미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다이내믹한 춤과 음악의 총칭. 힙합이란 말은 ‘엉덩이를 흔들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일탈과 저항을 표현하는, 또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문화와 확연히 구별되었던 문화이다. 또한 대중음악의 한 장르와, 문화 전반에 걸친 흐름을 동시에 가리키는 말이다. 1970년대 후반 뉴욕 할렘가에 거주하는 흑인이나 스페인계 청소년들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힙합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빠른 시간에 하위문화에서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장르이다. 불과 25년 전만 해도 국내에 힙합이란 장르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힙합의 모든 구성요소가 일상에 깊게 스며든 것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루어진 일이다. 흑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롭지 못했으며, 이를 자신들의 감정과 생각으로 표현하며, 1980년대 이후 힙합(Hip Hop)이라는 거대한 문화 현상을 만들어냈다. 뒷골목에서 삼삼오오 즐기던 음악에 맞춘 즉흥적 몸동작은 브레이크댄스로, 건물 벽면이나 교각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휘갈긴 낙서들은 그래피티로 발전해 힙합 음악의 미학에 기여했다. 힙합은 단지 음악 장르를 넘어, 흑인들을 대변하는 문화 현상이자, 그들 감각의 확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힙합 음악이 팝 음악계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다른 장르와 연결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흑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종 간 협업, 음악의 조합, 범 장르적 실험 등을 통해 힙합 음악은 다양성을 추구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다른 음악 장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4. 힙합 패션1) 1980년 대 후반 ? 1990년 대 초반흑인 민족주의가 힙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는 힙합 패션이 의식의 표출 수단으로 자리 잡은 시기이다. 흑인 민족주의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백인의 통제로부터 흑인이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사회운동으로, 공산주의 이념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당시에는 주로 너클, 동아줄만한 목걸이, 트랙수트와 갱스터수트, 블라우지 팬츠, 두랙(Do-Rags, 머리 보호를 위한 스카프), 오버사이즈와 조던, 스냅백이 유행했다. 또한 리복, 챔피언,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들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시기가 이 시기이기도 하다.
'‘연을 쫓는 아이’는 한 아프가니스탄 소년 아미르의 이야기로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성장소설이다.이 책의 주인공 아미르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부유한 상인 바바의 아들이다. 아미르에게는 형제와 다름없는 하산이라는 하자라인 하인이 한 명있었다.그 둘은 어렸을 때부터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함께 자랐다. 또한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것도 같아 서로 형제처럼 지내왔다. 그러나 아미르는 종종 핫산에게 질투심같은 감정을 느끼고는 했다.그 이유는 아버지 바바가 아미르보다 핫산을 더 인정하고 사랑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미르를 낳은 뒤 돌아가셨는데 이는 아미르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였고 더욱더 바바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키웠다.하루는 아미르와 하산이 호수에 가서 물수제비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미르는 다섯 번, 하산은 여덟번 성공했는데 이들을 지켜보던 바바가 하산을 격려해주었고 이를 바라보던 아미르는 아버지를 독차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나는 이러한 아미르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어린 나이에 질투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바바는 아들이 만족할한 사랑은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아미르는 아버지 그의 친구인 라힘 칸에게 의사가 그의 아내의 몸에서 아미르를 끄집어내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미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이 장면에서도 나는 아미르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나는 내가, 또는 우리 가족들 중 한 명이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가족들은 서로 질책하고 꾸짖으면서도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또한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미르와 바바를 보며 내가 생각해왔던 가족과는 다른 모습의 가족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와는 다른 가족을 가지고 있는 아미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그 후로도 아미르는 계속해서 아버지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아미르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했지만 과거의 나는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싶어 했다.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채찍질하고 나 자신을 구속했었던 나의 모습이 아미르와 비슷하여 더욱 더 안타까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많은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내적인 모습이 아닌 외적인 모습만을 가꾸며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이러한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외모지상주의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책은 아무래도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아미르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외적인 모습만 신경 쓰는 삶을 살지 말고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적인 모습을 가꾸면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이 소설의 가장 중심이 되는 소재는 연이다. 아미르가 아버지 바바의 조건 없는 사랑과(어쩌면 조건이 충족된 사랑일 것이다) 관심을 잠시나마 받을 수 있게 한 것도 연이었고 아미르와 하산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도, 훗날 아미르와 하산의 아들인 소랍을 연결시켜준 것도 모두 연이다.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연싸움 대회가 오랜 겨울 전통이었고 아침부터 시작한 대회는 승리한 연 하나만이 하늘에서 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자식들을 응원했고 바바도 아미르의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연싸움 대회는 단순히 상대방의 연줄을 끊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연이 잘리는 순간 주변에 떠돌던 아이들은 끊어진 연을 찾기 위해 연을 쫓아갔고 이 아이들이 가장 탐내는 연은 가장 마지막으로 떨어진 연이었다. 하산은 단연 연을 쫓는 아이들 중 최고였고 연이 어디로 떨어질 지 모두 알고 있었다.연싸움 대회가 가까워져오자 바바는 아들에게 이번엔 우승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며 기대를 드러냈다. 이는 아미르로 하여금 무조건 우승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였고 나아가 마지막 연까지 아버지께 가져다주겠다는 결심도 하게 하였다.대회당일 아미르는 파란색 연을 날리던 아이와 최후의 2인이 되었고 결국 연싸움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파란색 연이 공주에서 떨어질 때 아미르는 하산에게 그연을 꼭 잡아오라고 하였다.그러나 연을 잡으러 간 하산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아미르는 하산을 찾아 나섰고 동네 불량배인 아세프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하산을 발견하지만 그를 모르는 척하게 된다. 연싸움 대회 날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