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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중일 의복비교
    한·중·일 의복 비교1. 중국의 전통 의복가. 중국 의복 문화의 시대별 흐름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직물이 6000D년 전에 이미 등장하고 있음이 이미 확인되고 있다. 중국 최초의 고대 직물(織物)은 마(麻)와 갈(葛)의 섬유를 재료로 만들어졌다. 고대 중국의 마 종류 중 의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대마(大麻)와 저마(紵麻)이다. 대마는 흔히 한마(漢麻)라 하고 저마는 중국초(中國草)로 불린다. 은상대의 복식문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은나라를 지칭하는 문자로 의를 사용하고 있으며, 은민족의 족제(族祭)를 의로 표기하고 있음은 은상민족의 복식 문화가 다른 이민족과 크게 구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복식 문화는 주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하게 발전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문화적 배경은 제사 의례였다. 제사 의복인 제복은 길제(吉祭)와 흉제(凶祭)에 따라 달랐다. 주대 황제는 면복(冕服)을 입었는데, 의는 검은색으로 상은 담홍색을 입었으며, 옷에는 열두가지의 문양, 즉 십이복장(十二服裝)을 사용했다. 12복장은 다시 의에 사용하는 6장과 상에 사용하는 6장으로 나뉘는데, 의에 사용하는 것은 일, 월, 성, 산, 용, 화충이며, 상에 사용하는 것은 종이, 조, 분미, 보, 불 등이다. 이들 중 일, 월, 성 등은 밝은 광명을 뜻하고, 산은 은연자중함을, 용은 임기응변으, 화충은 아름다음을, 조는 정결함을 분미는 풍성함을 도끼인 보와 불은 결단과 용맹을 나타낸다.나. 중국 복식 금기중국인들은 의복의 색상, 재료, 형태, 제작 등에 관한 많은 금기들이 있으며,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색상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색상은 황색, 자색, 향색 등의 이른바 귀색(貴色)이다. 이들 색상은 대부분 황색이나 귀족을 대표하던 색상들로 특히 황색은 천자를 상징하였으므로 민간에서 황색 옷을 입으면 반역의 오해를 받았다. 자색의 경우는 송대 귀족들의 색상으로 변해 역시 민간에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고, 향색은 간의 복식의 경우는 특별한 금기가 없으나 수의를 만드는 경우 먼저 단(비단의 종류)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단(緞)의 음이 '단자절손(자손을 단절시킴)'의 음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 양포(농가에서 자가 생산한 포)를 쓰지 않았던 것은 양포의 양(洋)이 음양의 양(陽)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구의는 죽은 사람을 음지로 보내는 것인데, 양자가 들어간 양포를 쓰게 되면 양지로 떠돌게 된다는 미신 때문이다.2. 일본의 전통 의복가. 기모노(着物)'기모노(着物)'라는 말은 좁은 의미로는 일본의 전통 의상을 의미하고, 넓은 의미로는 모든 의복, 또는 서양 의복에 대한 일본 고유의 옷을 의미한다. 기모노는 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정장 속옷이 점차 변화한 것으로 에도 시대에 이르러 정장과 같은 복장이 되었고, 현재는 일본 전통 의상의 대명사로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기모노는 서양 의복(양복)에 대한 일본의 전통 의상이라는 의미에서 '와후쿠(和服)'라고도 불린다. 기모노를 입는 날은 주로 정월(正月), 시치고산(七五三), 성인식, 졸업식, 결혼식 등과 같은 행사나 의식 혹은 전통 예술에 참가하는 때다. 이처럼 기모노는 정장으로서, 실내복으로서 현재도 일본인들이 애용하고 있다. 하지만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든 기모노는 가격이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기모노를 잘 가지고 있다가 가족들에게 물려주고 받는다.1) 기모노의 원형, 고소데(小袖)기모노의 원형은 고소데(小袖)라는 의복이다. 고소데는 나라 시대부터 속옷으로 사용되어 16세기 중반부터는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윗옷이 되었으며, 기모노처럼 된 것은 18세기 이후라고 한다. '고소데'라는 명칭은 소매가 좁은 특징에서 나온 이름이고, 반대로 소매 폭이 크면서 소매 길이까지 열려있는 모양을 '오오소데(大袖, おおそで)'라고 부른다.2) 여성과 남성의 기모노가) 여성 기모노여성들이 입는 와후쿠(和服)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모노의 형태이다. 여성 기모노는 미혼이냐, 기혼이냐에 따라 모양과 색깔, 소매 길이 등으로 서로 구분되며 때 주로 입기만 한다. 이때 남성들의 기모노 요소들은 모두 무난한 색깔로 여성과 다르게 기혼, 미혼의 구별이 없다. 남성 기모노 중 가장 편한 실내 복장으로는 면으로 된 유카타(浴衣)가 있다. 유카타는 시원하고 세탁도 간편하기에 더운 여름철에 입기에 굉장히 좋다고 한다. 원래 유카타(浴衣)는 한자 뜻 그대로 목욕탕에 들어갈 때 입고 들어가던 것으로 당시 욕탕은 한증탕이었기 때문에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갔으나, 오늘날의 유카타는 목욕을 끝내고 저녁 바람을 쐴 때나 여름 축제 때에 여성들이 입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나. 오비(?)오비(?)는 기모노와 함께 착용하는 긴 장식 천이다. 기모노의 아주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현대 오비의 길이는 4m에 너비 30cm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오비는 본래의 묶는 기능보다는 미(美)를 강조하는 장식적인 기능이 강조되어, 격식과 변화에 따라 선택되기에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오비는 기모노보다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며, 좋은 것은 가격이 기모노의 몇 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다. 다비(足袋)다비(足袋)는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가 나누어져 있는 일본식 버선으로, 둘째 발가락 사이가 벌어져 있기에 게다를 신기에 적합하다. 다비의 재질로는 비단이나 면이 쓰이며, 남자는 검은색이나 감청색을, 여성들은 정장 입을 때는 흰색, 일상복을 입을 때는 색이 있는 걸 신는다.라. 게다(下?)?게다는 기모노와 함께 착용하는 전통적인 일본 신발이다. 보통 목재로 만들어지며, 신발 바닥에 '하(?)' 라고 하는 돌출된 두 개의 부분이 있어서 신발이 땅에 닿지 않게 보호한다. 또한,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 사이에 V자형의 고정 끈이 붙어 있다. 반면 남성용은 목재를 거의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고 오동나무 재질을 최고로 여긴다. 또한, 보통은 검은 고정 끈을 사용한다. 여성용의 경우는 단순히 나무로 만들기도, 칠을 입히기도 하며, 고정 끈도 아름다운 실크나 벨벳을 사용한다.3. 한국의 전통 의복한복의 상의는 저고리라 부르한복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외부의 영향을 받으며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바지, 저고리와 치마저고리의 기본적인 구조는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복은 기능적인 면이 돋보이는 옷이다. 인체에 맞춰 곡선으로 바느질해 활동하기에 편안하다. 풍성한 여자 치마와 남자의 바지는 몸을 구속하지 않아 일상생활이 자유롭다. 여러 겹의 속옷을 겹쳐 입어도 겉옷의 실루엣에는 변함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또한 한복의 여유와 넉넉함은 신체적인 결함도 감춰준다.한복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옷이다. 계절과 성별에 따라 다양한 옷감을 사용함에 따라 나름의 독특한 멋을 풍겼다. 여름에는 모시나 베를 사용했고, 봄가을에는 얇은 비단인 사 종류를, 겨울에는 양단, 공단, 모본단 등 단 종류를 사용했다. 모시나 베는 빳빳하면서도 힘 있는 실루엣을 만들었고 비단 종류의 옷감은 부드러우면서도 기품 있는 멋을 자아냈다. 또 같은 옷감이라도 손질하기에 따라 그 느낌이 달랐다.한복에 생기와 멋을 불어넣는 것은 선의 아름다움이다. 여인의 하얀 목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해주는 저고리의 안깃과 겉깃이 이루는 V자형의 선이나, 자연스럽게 둥글린 배래의 곡선은 온화한 미를 돋보이게 한다. 한편 저고리에서 치마까지 수직으로 떨어지는 고름의 선은 단아하면서도 정숙한 멋을 풍긴다. 치마허리부터 아래쪽으로 퍼져 내려가 은은한 라인을 보여주는 치마의 잔주름도 우아한 멋을 강조한다. 선의 아름다움은 남자 한복도 마찬가지다. 대님으로 묶은 남자 바짓부리의 선은 힘 있는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준다.한편 두루마기의 경우엔 겨드랑이 아래부터 끝단까지 삼각형의 루를 달아 아래로 갈수록 펴지는 A라인이 매력적이다. 걸음걸이와 입는 이의 맵시에 따라 한복의 선의 아름다움은 더욱 강조된다. 이밖에도 한복은 배색과 무늬, 장식 등이 감각적이다. 두 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한 배색은 단순한 색의 배합의 의미를 넘어서 음양오행사상의 이치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색으로 예의를 차리고 성별을 구별하고 귀천, 입는 이의 상황을 나타냈다. 흰색의 동정을 단다. 다홍색 바탕에 연꽃, 모란꽃, 불로초, 동자(童子)등이 수 놓여 있다. 길의 양쪽에는 이성지합(二姓之合).만복지원(萬福之源).수여산(壽如山).부여해(富如海)등의 글자가 수 놓여 있다. 한삼에도 수가 놓여 화려하고 아름답다.나) 홍룡포(紅龍袍)왕의 시무복으로 세종 26년(1444)에 익선관(翊善冠)과 함께 중국에서 사여받아 착용하기 시작하여 조선말기까지 사용한 포이다. 영조때 홍룡포에 관한 의 기록을 살펴보면, 세종대의 기록처럼 보(補)에 있어 직금이 아니고 수를 놓아 부착하였다는 점, 왕세자의 포, 대 등을 흑색으로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규정은 광무원년(1897)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여 제정한 복제에서 “황제의 포는 황색으로, 대는 옥을 쓰고, 황태자의 상복에서도 관은 오사절각향상건이고, 포는 적색으로 깃이 둥글며 소매의 폭이 좁은데 앞뒤와 양어깨에 각각 금으로 짠 반룡이 하나씩 있으며, 대는 옥을 쓰고 화는 가죽으로 한다.”고 새롭게 제정하였다.다) 홍원삼(紅圓杉)조선 국말 왕비가 ‘황후’가 되면서 황원삼을 착용하기 전까지 조선 중엽 이후부터 왕비가 예복으로 착용하던 겉옷이다. 겉은 홍색 단(緞)이나 사(紗)로 하고, 남색 단을 두른 미색 안을 넣었다. 겨드랑이가 트였고, 뒷자락보다 앞자락이 짧다. 원삼의 양어깨와 소매의 하단, 앞뒤 길에 운봉문(雲鳳紋)을 직금하고 소매 끝에는 황색, 남색의 색동과 한삼을 달았다. 가슴, 등, 양어깨에 사조룡보(四爪龍補)를 달고 남색 대대(大帶)를 띠고 큰머리에는 선봉잠과 떨잠을 장식하였다.2) 평상복가) 저고리저고리(조선시대 남자)는 삼국시대의 긴 저고리가 짧아짐에 따라 선이 가슴 여밈에서 잘린 모양처럼 되었던 것이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목판깃으로 바뀌고 안섶, 겉섶, 무가 넓어지고 품도 넓어졌다. 조선 중기에는 목판깃이 당코 깃으로 변하고 무도 없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계속되어 후기에는 당코 깃이 동그래 깃으로 변하여 현재 남자 저고리로 정착되었다. 여자 저고리도 남자 저고리처럼 삼국시대의.
    인문/어학| 2021.06.23| 6페이지| 1,000원| 조회(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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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렬지 서평
    작렬지 서평? 현대 중국의 심리적 갈등에 대한 이해현대 중국의 이미지현대 중국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중국의 두 가지 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작품에서 보이는 두 사건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바로 그것이다. 1949년 공산주의를 표방하며 설립된 신중국은 그 사상의 끝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 과잉의 시기를 겪었고,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시작된 개혁개방의 끝에서 경제 과잉의 시기를 겪고 있다. 그렇다면 각기 달라 보이는 두시기를 다른 시선으로 보아야 하는가?위화는 그렇지 않았다. 위화는 중국사회의 갈등 심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을 우려하였다. 그는 크게 불균형적 경제 성장과 이에 반한 소프트 파워의 부재를 심리적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열 개의 단어는 문화대혁명의 시기와 개혁개방 이후를 이어주는 단어들이며 격변하는 정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중국 인민들의 미시적 모습을 보여주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위화가 비추고 있는 현대 중국의 사회적 갈등을 나의 입장에서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열개의 단어 속 인민들의 삶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1960년생인 위화는 유년기에 문혁의 초·중반기를 보냈으며 사춘기로 접어드는 중학생 때 문혁의 후반기를 겪었다. 위화의 어린 시절은 문혁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위화는 책에서 자신의 홍위병 경험을 밝히고 있다. 위화의 생생한 경험담으로 소개되는 열 개의 단어는, 위화의 생각뿐만 아니라 위화와 동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중국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은 모든 것이 인민의 형태로 통합되어 있었다. 인민이란 나라의 주인이었고 영수인 마오와 상통한 것이었다. 초기의 마오는 영수로서 인민의 지지를 중요시하였고 특히 농민들의 심리구조를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개혁개방으로 이후 인민의 개념은 퇴색되어버리고 인민의 요구를 수렴하던 영수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인민의 지위는 혁명의 주체에서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고 말았다.'인민'이라는 단어는 시대마다 그 의미가 서로 다르다. 1989년의 천안문 사건이 기존 문화혁명 시기의 '인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통째로 바꾸어 놓았으며, ‘인민’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엮을 수 없을 정도로 흩어져 유대감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위화는 1989년의 봄에 말했던 인민을 진정한 인민이라 본 것이다.에서 위화는 가난한 민초들의 사례를 들며 가난한 사람들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존재하는데, 차이가 가리키는 범주가 넓어졌다 하더라도 이들의 저항을 묵살시키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은 여전하다고 꼬집고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실제적인 상황은 과거든 현재든 개선된 바가 미미하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사태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1958년의 대약진운동,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그리고 덩샤오핑 이후 진행된 개혁개방까지 정부의 기조 아래 민초들은 동원되고 희생되었다. 정부의 기조는 대의를 표방하고 그것을 혁명이라 포장하지만 그 끝에서 혜택은 소수의 인민들에게만 돌아가거나 혹은 아무도 이익을 보지 못한 채 피해만 낳기도 한다.탐욕의 무대 자례촌(炸裂村)작품은 자례촌(炸裂村)이라는 농촌 마을이 개혁개방 이후 차례로 진, 현, 시가 되고 초대형 도시가 되었다가 소멸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자례’는 마을 이름이지만 개혁개방 이후 농촌의 도시화를 빗댄 작가의 표현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작품의 구성형식이다. 작품은 자례마을의 형성과 변화 발전에 대한 연대기적 서술, 곧 지방 역사지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작품에서 자례 출신의 작가 옌롄커는 자례시의 시장으로부터 자례의 역사를 서술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자례촌의 성장과정은 정치가 도시의 외부를 지탱하고 부자가 되고픈 욕망이 그 내부를 채워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쿵밍량의 ‘지도력’은 자례 마을 전체를 ‘만위안호’로 만들고 주변 마을을 통합하면서 점차 도시로서의 몸피를 부풀리게 했지만, 그에 합당한 도시의 내용들을 채우지 못했다. 「작렬지」는 농촌마을이 도시가 되는 방법을 위법과 사적욕망으로 채워 넣으며 개혁개방 전체에 대한 비판적 의미를 표현하였다. 자례촌이 도시가 되어가는 과정은 가치의 충돌이 아니라 욕망의 충돌로 집약된다. 자례촌의 도시화가 빨라질수록 척박해지는 인심과 버려지는 윤리, 붕괴 되는 도덕이 심각해진다. 작품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매춘과 권력은 소재와 표현의 수위를 높이며,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버린 주객전도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엔 ‘무엇’과 ‘왜’를 결여한 ‘어떻게’의 공허함이 있다.불균형적 도시발전의 폐해중국 사회의 심리갈등은 인민과 영수의 부재의 영향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 식 불균형적 경제발전에 의해 심화되었다. 개혁개방은 정치가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중국이 문혁의 폐해를 극복하고 ‘4개 현대화’라는 명제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이를 위해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에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여 시장경제 원리에 의한 자원배분 및 외자도입, 점진적인 대외 개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을 하되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경제를 발전시켜 생산력을 증대하며 인민 삶의 제고를 추구하는 이른바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시작되면서 중국은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룩한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 국한된 단편적 성장은 제도, 문화 등의 다른 분야의 성장을 제한하여 두 문화가 이율배반적으로 공존하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어냈다.이 과정에서 “농업인구가 비농업인구로 전이되고, 이들을 수용하는 공간구조도 상응하게 바뀌는 도시화”가 나타났다. 급속한 경제성장은 도시로의 인구유입을 발생시켰다. 경제특구 내 개발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안과 밖의 개발격차를 야기했고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도시는 공간적 확장을 추구하게 된다. 곧 주변 농촌 지역을 행정적 차원에서 도시 지역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당시 정책은 인구의 증가와 개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수용’의 측면만 강조되었고 급조된 제도 개혁은 도시의 기능과 가치를 면밀히 헤아리지 못했다. 도시에 밀집된 자본과 일자리는 권력이 되었고, 농촌보다 도시의 권위가 더 높고 같은 도시라도 인구 규모가 더 큰 도시일수록 일자리의 권위는 더 커졌다. 「작렬지」에서 담아놓은 개혁개방 이후 농촌의 도시화 과정 역시 이러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쿵(孔)씨와 주(朱)씨가 대부분인 집성촌의 성격을 뗬던 자례촌은 중화민국 성립 이후 토호척결과 토지분배 과정을 겪었고 인민공사 시기 자례 대대 소재지가 되어 공화국의 상황과 그대로 연결되었다.도시 가치와 기능의 재해석「작렬지」 속 개혁개방의 모습은 도시를 이루는 요소와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작품 속에서 자례의 도시화는 자본의 축적 과정에 따른 도시공간의 재편으로 진행되었다. 기존의 환경과 공적 경관은 새로운 건설과 공간 조성을 위한 창조적 파괴로 사라졌고, 새로운 도시 경관은 자본과 권력의 상징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으로 변모하였다. 개혁개방으로 인해 민간자본이 들어오고 이를 통해 자본의 확대 재생산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공적 공간은 파괴되고 공유 재들은 사유화되었다. 작가는 자례가 도시화되는 과정을 쿵밍량과 주잉의 은원관계로 축소시킨다. 공적 공간인 도시를 사적으로 전유하면서 도시를 자신과 동일시했던 쿵밍량과 주잉은 개혁개방을 조망하는 작가의 시선과도 겹친다. 곧 반성도 없고 속도도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의 질주가 끝나면 무엇이 남는가라는 질문이다.
    독후감/창작| 2021.06.23| 4페이지| 1,000원| 조회(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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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영화 제작 시 유의할점
    역사를 영화로 제작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대중들에게 역사를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유년 시절 역사교육의 흔적과 이후 대중매체의 기록에 의존할 확률이 높다. 오늘날의 대중들은 이미 영화, 드라마 등 미디어 컨텐츠에 익숙하며, 이를 통해 역사적 배경 지식을 습득한다. 이렇게 대중매체가 대중에게 제공한 이미지들은 개인의 주관적 필터링을 거쳐 역사의 객관적 정보로 기억되고 다시 집단적 기억이 될 수 있다.중요한 것은 하나의 역사를 두고 각각의 매체가 해당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은 ‘현재’ 시점의 정치·사회·문화적인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다양한 영상물들은 한 ‘시대’와 ‘사회’를 해석할 수 있는 자료로서 역사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현대사회의 역사를 연구한다면 영상물은 역사 자료자 역사 서술의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역사영화는 글로 기록된 공적 역사가 연결하지 못했던 유의미한 고리를 영상 재현 장치를 통해 새롭게 접목함으로써 공적 역사를 보완할 수 있다.역사가들은 역사영화가 단순히 역사를 시각화할 뿐만 아니라, 문자와 언어로 이루지 못하는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글로 쓴 역사와 마찬가지로 영상으로 접하는 역사의 근간은 해석이다. 따라서 새로운 의미의 역사영화를 탐구하는 역사가들은 역사를 배우는 데 있어 새로운 인식을 내놓았다.“누가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떤 규칙을 따라, 그리고 어떤 독자를 위해 과거를 이야기하는가?”동시에 이러한 종류의 역사영화들이 문자로 된 역사에 도전하는 지점들을 주목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한다. 즉 우리가 과거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하는 방식, 그리고 전통적인 형식의 역사가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과거를 표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고 과거란 무엇인가에 관한 우리의 인식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서서 역사영화를 바라보는 역사가들은 역사 서술에 있어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고 시각 매체로 전달되는 역사를 이해하고자 영상역사의 실천과 정확한 이해를 위해 힘쓰고 있다.역사극은 역사와 극양식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해내느냐에 따라 정통, 팩션, 퓨젼극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발생시킨다. 작가가 현실이라 정의하고 범주화한 환경 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상상으로서의 허구성과 사실 인과관계의 조화는 역사극의 태생적 특징이다.요즘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는 팩션(Faction)이다. 팩션이란, 팩트와 픽션을 합성한 신조어로, 실화이자 허구라는 모순된 표현이다. 팩션은 이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새로운 시나리오를 재창조하는 하나의 문화 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다. 팩션은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진실이 주는 울림을 담고 있으며 대중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허구적 요소는 대중들을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해방해 위안과 즐거움을 준다. 이로 인해 대중들은 그것이 이미 '사실과 다름을 알고 있음에도' 팩션 영화에 열광한다.그러나 팩션의 인기가 상승함에 따라 역사적 배경을 소재로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흐려져 시간의 한계점을 뛰어넘는 보편적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역사적 틀을 빌려 왔을 뿐 현재에 치우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또한, 현실과 환상, 팩트와 픽션이 뒤섞이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 사회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허구적 상상력을 더한다는 것이 기초적인 고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나아가 역사를 왜곡해도 상관없다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팩션 혹은 퓨전적 성격을 지닌 극의 역사 왜곡 문제는 종종 공론장의 화두가 된다.역사극은 기본적으로 진실한 사건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역사극이 상업적 이익과 정치적 외력에 휘둘릴 경우, 그야말로 ‘위험한 상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를 보는 대중들은 혼선이 생길 수 있다.최근 SBS에서 제작한 판타지 사극 가 시청자들의 항의로 2회 만에 조기에 종영했다. 16부작으로 기획돼 제작비 32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던 대작 드라마가 80%나 촬영을 마친 상태에서 전격 폐지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특히 논란이 된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어 역사물을 기획할 때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점이 많다.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이 깃든 좀비 형태의 ‘생시’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주요 시놉시스였다. 하지만 첫 회부터 태종이 악령에 홀려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하고, 훗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이 구마를 위해 바티칸 사제를 불러오는 설정 등이 지나친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사에 조선 역사를 폄훼하는 부분이 다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여기에 배경으로 나온 중국풍 기생집과 음식 소품, 의상 등이 중국 ‘동북공정’의 연장선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이번 사태는 단순한 고증의 오류 혹은 대중들의 과도한 비난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오늘날 대중들은 팩션이나 판타지 장르에 이미 익숙하며, 컨텐츠 자체를 즐기고, 이야기 속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다. 이는 가 작품성과 역사성, 대중성의 측면 모두에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이준익 감독의 는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도세자와 영조를 재조명했다. 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캐릭터를 부각하며 임오화변을 전개했고, 그 원인을 사료를 바탕으로 전개했다. 는 임오화변의 이유, 결과 등 역사적 사실로 남겨져 있는 사건의 정황과 연대기들은 왜곡하지 않으며 스토리를 전개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살아있는 인물로 재현한 가?정통 사극의 특성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 단순히 역사를 시각화할 뿐만 아니라, 문자와 언어로 이루지 못한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 등 심리상태와 감정 같은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는 부분은 픽션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는 이처럼 역사영화가 영상 재현 장치를 통해 글로 기록된 공적 역사가 연결하지 못했던 유의미한 고리를 새롭게 접목함으로써 성공적으로 공적 역사를 보완한 성공적 사례이다.
    인문/어학| 2021.06.23| 3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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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과장미 서평
    영화 「빵과 장미」나는 영화를 볼 때 여러 가지 요소들을 분석하고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줄거리 소개 내용 및 감독과 그가 중시하는 메시지를 먼저 살펴보곤 한다. 특히 영화 「빵과 장미」는 제목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빵과 장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영화는 멕시코의 여성이 미국으로 밀입국해 대형빌딩에 청소부로 일하며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다룬다. 주인공 마야는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암울한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니가 살고 있는 꿈의 나라 미국으로 밀입국을 결심한다. 하지만 새로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불법체류 신세로 합법적인 신분을 가질 수 없던 그녀로서는 사치이다. 언니의 도움으로 어렵게 빌딩 청소부 자리에 취직하지만, 의료보험이나 휴가 등 최소한의 근로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바듯한 노동자들은 현재 그들이 지닌 ‘빵’마저도 빼앗길까 두려워 폭압적인 관리 감독의 행태에도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착취적인 구조 속에서 그녀는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일하는 샘을 만나게 된다. 마야를 포함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익을 찾기 위해 전진하고, 그에 따른 충돌과 희생이 뒤따른다. 이러한 몸부림 속에 내부고발을 유도하는 관리인의 회유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17년간을 일해 온 직원이 해고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야는 샘에게 되묻는다.“우리는 이 일로 생활을 빼앗길 수 있다. 당신은 무엇을 잃게 되는가?”한 발짝 물러나 조언을 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그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싸우기란 절대 쉽지 않다. 생사의 경계선에 내몰려 더는 잃을 것조차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생명을 잃을지라도 정의를 위해 투쟁하여 목적을 쟁취하자."라는 말을 하기는 쉬울지언정 그들과 같이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란 단연코 쉽지 않은 선택이며, 그들로부터 동지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것은 대단한 희생과 고통을 동반할 것이다. 하지만 늦은 밤 마야와 대화를 통해 샘은 마야와 같이 소외된 이들의 동지라는 것을 보여주며 그녀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그렇게 노동자의 투쟁이 절정에 이르게 되면서 대규모 거리시위를 단행한다. 관리자들 또한 노동자들을 회유, 협박하며 철저히 대립하였고, 일부 동료들은 배신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앞에는 ‘빵과 장미’라는 현수막이 있었다. 샘은 서로 간의 믿음을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장미를 쟁취하자는 큰소리와 함께 노동자들의 감정은 하늘 끝까지 차오르게 되었다.‘빵과 장미’는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 1만 5천여 명이 뉴욕의 루트 카스 광장에서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고 외친 운동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다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기리며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여기서 빵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양식을 장미는 존엄한 권리를 의미한다. 그렇게 그녀들이 원한 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빵과 존엄한 권리를 상징한 한 송이 장미였다. 이전부터 사회의 약자에 대한 차별은 끊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약자의 처지에 있었던 흑인, 여성, 동성애자 등은 영화 속 마야와 이민자들처럼 비난과 냉소적 태도, 차별 등이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교육 수준이 올라갔고, 이전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나 노동환경이 현시대에 들어 비교적 잘 갖춰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앞선 세대들의 잘못과 희생을 발판삼아 우리 사회는 장미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차별과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자본주의 부작용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이 곧 권력, 힘의 중심이 되었다. 자본이 거대한 힘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이전의 갑과 을의 관계가 변형된 것이다. 이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비교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표적인 소수자 집단으로서 이주노동자들이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적이 다르거나 가난한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쉽게 무시당하고 아직도 차별과 편견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임금문제, 산업재해의 과노출, 현 제도의 문제점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우리가 그들을 수용하기 위한 과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우리는 모두 빵이 필요하지만, 장미도 역시 필요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 마땅하며 기본적인 인권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빵' 한 조각의 의식주와 장미 한 송이의 권리를 인간이 최소한으로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국가적인 차원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와 다문화사회 실현을 위해 더욱더 현실성 있고 탄탄한 제도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현 사회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력을 순수하게 인정하기에는 매우 커다란 장벽이 존재한다. 그럼에 이주노동자들을 이해하고 인정하여 수용하고 민족, 인종, 국경 등의 차별적 요소들을 없애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한국이 이주노동자와의 결합을 통해 국경을 넘어 세계로 나가는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길 간절히 바란다.흔히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삶에 치여 지친 현대인들은 시나 음악, 영화, 연극, 철학, 문학처럼 생산적인 것들과 동떨어져 있는 행위를 경시한다. 특히 철학과 문학과 같은 인문과학이 그리고 이와 맞닿은 삶의 가치와 의미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왜 배워야 하는지 공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빵은 중요한 요소이다. 빵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빵이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생존, 바로그것뿐이다. 삶의 의미를 단지 하루하루를 연명해 생존하는 것에서 찾는다면, 그런 삶이란 동물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빵의 필요성 못지않은 무엇, 곧 스스로가 사람됨에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생의 ‘장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두 번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은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린다. 소외당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 시선을 둔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얻은 값진 명칭이다. 그의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이유는 거대 담론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구체적인 현실과 민중을 통해 말하는 데 있다. 그는 현실이 이러함에 더더욱 세상에는 ‘장미’의 소중함을 알리고 이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또한 이들을 돕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독후감/창작| 2021.06.23| 5페이지| 1,000원| 조회(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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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한국외대 신화와종교 기말대체 리포트
    ‘아버지 죽이기의 역사’-그리스신화에 나타난 그리스인들의 역사관과 세계관Ⅰ. 아버지 죽이기'아버지 죽이기'란 아버지를 살해 또는 아버지와의 대립에서 승리하며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력과 재산 등을 전적으로 상속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속을 받는 자와 상속하는 자의 대립은 피할 수 없었다. 윗세대로부터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아랫세대의 탐욕과 자신이 소유한 것을 빼앗기지 않고자 하는 윗세대의 갈등은 현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상속의 갈등이 부계사회에서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아버지 죽이기’이다. 남성이 대부분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부계사회에서 자신에게 올 권리를 쟁탈하는 ‘아버지 죽이기’는 상징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행해지며, 인류 문명의 거대한 뿌리 중 하나인 그리스 문명의 신화 속에도 존재한다.Ⅱ. 아버지를 죽이는 신화 이야기'아버지 죽이기'는 그리스신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우라노스의 아들인 크로노스가 어머니인 가이아와 결탁하여 거대한 낫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잘라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티타노마키아 전쟁에서 제우스가 구토약으로 자신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삼킨 자식들을 토해내게 함으로써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아버지의 권력과 자리를 차지한 이야기, 그리고 테베의 왕인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결혼을 하는 이야기 모두가 '아버지 죽이기'이다.그리스신화에서 ‘아버지 죽이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자식이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이양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유형이다. 크로노스와 제우스가 각각의 아버지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를 죽이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이 이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두 번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운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형태이다.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그 예언에 따르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저항하지만 끝내는 예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된 오이디푸스의 이야기가 이러한 형태를 보여준다.Ⅲ. 고대 가부장제 모습그리스신화 속 '아버지 죽이기'는 당시의 가부장제에 의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가부장제 사회로, 어머니는 단지 아이를 품는 역할만을 할 뿐 실제로 자식을 낳는 존재는 아버지라고 여겼다. 즉 그리스인은 아버지를 중요시하였고 가족의 중심이자 절대 권력자를 뜻하였다. 당시 그리스에는 장자 상속 제도가 존재했으며, 신화 속 ‘아버지 죽이기’를 행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이 제도는 가부장이던 아버지가 장자에게 재산을 상속을 해주는 제도이다.고대 그리스는 농경사회였고, 산이 많고 평지는 적으며, 지중해성 기후로 인하여 물이 부족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상속 없이 독립적으로 새로운 가족 단위를 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환경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아들로서는 가부장으로부터 유산을 상속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며, 빠른 재산 상속을 원하는 아들과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려는 아버지의 견해 차이 속 그들의 갈등이 더욱 치달았다. 가부장적 제도하에서 아버지란 아들에게 있어서 모든 것을 물려줄 사람임과 동시에 경쟁자이자 반드시 넘어야 하는 이중적인 존재였다.이렇듯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우라노스에서 제우스까지 3대에 걸친 '아버지 죽이기'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가부장제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아들이 가정의 절대 권력자인 아버지를 이겨내고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권력과 재산을 차지하는 상속이 일어나는 것이다.Ⅳ. 비도덕적 존속 살해 현장고대 그리스 문명은 다른 문명권에 비해 농업 생산력이 빈약한 지역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거대국가 체제를 확립한 다른 문명권과 달리 끝까지 소규모 도시국가들의 연합 체제로 남아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배경을 바탕으로 '아버지 죽이기' 현상을 이해하자면, 한정된 자원으로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다른 지역을 침략하여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이러한 침탈과정 속 비도덕적 면모가 고스란히 신화에 반영되었다.이렇듯 '아버지 죽이기' 신화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특이한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합리화되어 있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그를 뛰어넘음으로써 영웅이 된다. 위의 관계가 형성된 이유는 살해당하는 아버지들이 난폭하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다.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그리고 라이오스 모두 난폭하고 야만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조적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자식들은 지혜롭고 현명하게 묘사된다.
    인문/어학| 2021.06.23| 2페이지| 1,000원| 조회(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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