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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와 신학교육'을 읽고
    한국교회와 신학교육을 읽고...Ⅰ. 서 론기독교교육이 모든 학문의 ‘꽃’이었던 때가 있었다. 모든 교육의 위에 있었고, 교육체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영방식까지 교회와 신학교가 관장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상의 변화에 휩쓸린 채 갈피를 잡지못해 길을 잃어버렸고, 한 때는 사회를 주도하던 교회와 기독교교육이 이제는 사회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시험기간이 되면, 교회학교 학생들의 선택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학교가 학교교육 그리고 학원교육보다 못하다.시스템화 되어진 신학교육 그리고 신학교에도 밀려들어오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요인들. 이것들이 합쳐져 괴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큰 목회·큰 교회.. 스타목사가 되고 싶어 우선순위가 바뀐 괴물들을 길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를 길러내는 것의 출발선은 신학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신학교육의 현실이 지금의 한국교회를 만들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로 물러나야 될 때이다. 계속 이러한 현실 가운데에서 그 문제점을 짚어보지도 못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면 한국교회에 미래는 없다. 신학교에서도 더 이상 우리학교의 교육목적인 전인적 지도자, 기독교적 지도자가 나오기 힘들 것이다.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어디에서부터 현실을 짚어보아야 하는가? 오늘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한국교회와 신학교육’이라는 책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다. 본고에서는 ‘한국교회와 신학교육’이라는 책이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으며 또한 현재의 한국교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으며,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도 함께 전개해나가고자 한다.Ⅱ. 본 론본 책은 3가지의 작은 단락으로 총 4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다. 단락별로 나누어 책의 내용을 챕터별로 간단하게 요약해보고자 한다.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OECD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저출산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세대를 출산하지 않으니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교회학 이에 필요한 목회자들의 수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시대적으로 신학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하게 발달되어 왔다. 체계화되지 못한 초기부터 신학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중세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아오는 과정에서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여, 순수성이 빠진 변질된 교육의 장이 되어 버렸다.신학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와 교회가 문제점을 일으키는 이유라고 할 수 있는데, 신학교 안에서 이를 찾아본다면 선명하지 못한 교육목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인적 기독교 지도자양성이라는 교육목적이 교과과정 가운데 제대로 녹여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교양부분에서 이러한 간극이 현저하게 드러나는데, 외국에 비하여 교양의 비중이나 또한 다양성이 턱없이 부족한 것을 물론이고, 이를 신학대학교에 국한시킨다면 성서를 폭넓게 이해하고 건강한 품성을 개발해야 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하는데 그저 세심한 계획없이 단순히 전공을 이수하기 위한 단계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딛고 올바른 신학교육이 되려면, 사회와 교회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함과 동시에 교수를 받는 학생들의 요구도 파악하여 진정한 프락시스 교육을 이룰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대한민국은 빠른 정보화와 함께 고도의 지식사회로 나아갔고,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과거에 행해졌던 신학교육의 형식이 다양해진 직무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이와 함께 급격한 도시화는 지방교회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들은 우리에게 신학의 분야에서도 향상된 전문성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교인들의 지식 수준이 향상되고, 교인들의 주변과 사회가 변화되면서 신학도 더욱 더 업그레이드 되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지방신학교는 지방교회의 요청에 맞고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여 함께 나아가는 특색을 갖추어야 하는데, 전문 및 특수대학원의 설치가 좋은 답안이 될 것게 공유점으로 다가가기가 더 수월하다. 전문인이 사역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에는 성서적 근거, 교회사적 근거, 신학적 근거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바꾸어버릴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복음사역은 교회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에만 크게 인정하고, 밖의 일들은 의도처럼 이해해온 경향이 있지만, 이제는 개혁교회 전통 속에서 사역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평신도들이 함께하는 사역에 대해 개신교적 이해가 필요하고, 전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신학적 기반도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교육도 신학교 안에서 그러한 사회의 필요에 발 맞추어 진행되어야 하겠고, 이것이 전문 및 특수대학원의 설치의 필요성에 응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많은 신학생들을 받지만, 제대로 훈련되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신학대학교가 대하고 있는 현실이다. 주지주의 경향이 짙기 때문에, 머리만 커지는 교육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기능주의로 빠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이다. 언제부터 강의실과 채플이 서로 구분되는 영역이었는가? 채플시간도 주님 앞에 드려지는 공동예배도 예배이고, 강의실에서 교수님과 호흡하는 수업도 엄연히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지식교육과 영성교육이 균형잡혀 교육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주지주의와 기능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학교는 좀 더 체계적인 영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사회는 갈수록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이기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문제는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이기주의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 신학교육은 공동체성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의 본질도 공동체성이 포함되어 있다.현재 우리나라의 기독교교육의 어떨까? 현재 기독교교육학회의 연구는 활발한 편이고, 전국에 퍼져있는 신학대학교에는 관련학과(기독교교육과)가 설치되어 있다. 시스템적으로는 충분히 교육이 될 수 있는 환경이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이를 현장과 연결하지 못하는 비전문성 활동성을 다시 숨쉬게 해야 할 것이다.본고를 쓰는 필자는 사역현장에서 다음세대를 섬기고 있지만, 현재 배우는 신학교육과 현장의 연관성이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신학교와 교회가 서로의 영역을 주장하며, 협력하지 않으려고 하고, 서로가 서로를 경시하는 모습도 많이 보고, 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신학교가 교회를 볼 때에는 제대로 된 올바른 기반없이 마구잡이로 사역을 하고 있는 케어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고, 교회가 신학교를 볼 때에는 현장성이 결여된 무능력한 사역자들을 길러내는 양성소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개발 할 필요는 있지만, 그 목적이 하나라면 책에서 논하고 있는대로 서로의 상호교류와 협동작전을 통하여 목적을 더욱 더 극대화시켜야시킬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데, 님비 현상처럼 자신의 영역만 붙들고 협력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구시대적인 생각이고, 가장 빨리 버려야 할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자존심을 버리고 서로 협력하고 교류해야지만, 교회는 교회가 원하는 사역자를 맞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신학교 역시 목표대로 전인적인 기독교 지도자를 제대로 양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저자는 책에서 사회의 변화나 발전이 100이라고 했을 때, 신학교는 10정도 밖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 이는 서론에서 이야기했던 모습이 섬기고 있는 그리고 섬겼던 교회들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상황으로 검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생의 전문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때라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 요즘 한 가지 일만 하는 사역자가 있는가? 그런 사역자는 잘 없다. 교회의 청빙공고를 보게 되면, 대부분 다중역할을 요구한다. 본인만 해도, 부서 일만 하지 않고 청년부의 일까지 함께 보고 있다. 이전 교회에서는 차량 운전, 교회 관리, 행정, 부서, 찬양 인도, 설교의 사역까지 겸해서 했었다. 시대가 이러한 다중역할을 수행하는 사역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학대학교에는 이러한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이미특수대학원을 설치하여 전문성과 함께 현장사역과의 연계성을 위하여 노력함으로 지방교회의 요구에 잘 응답해주고 있다고 보지만, 아직 학교 안에서의 치열함과 적극성은 보이지 않는다. 책에 말대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설치한 일반 및 특수대학원도 돈만 주면 올 수 있는 프리미엄 학원으로 전락된 것 같다. 대한민국의 대학 시스템은 일단 입학만 하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졸업장이 쉽게 따라온다. 이러한 제도는 교수와 학생 간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고, 이는 곧 현장능력의 저하를 가지고 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머리만 더 커진 사람을 길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배움에 나이가 어디있는가? 학생으로 들어왔으면 그에 맞게 본분을 다하고, 이를 또한 현장에 녹여낼 수 있는 치열한 부딪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학교의 목표에 학생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따라올 수 있도록 충분히 지도해주되 유급시키는 외국대학들의 제도를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한국교회와 신학대학교의 역사도 각각 100년이 넘었고, 그 기간동안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어느 정도 시스템이 정립되고 체계적인 부분은 완성이 되었지만 이제는 내실을 다져나갈 때라고 본다. 책에서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내실이 다져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는 교육법의 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대학을 들어가기 전 각각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게 된다. 그리고 그 성적에 따라 받은 등급으로 대학을 가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신학대학교가 가지는 위치는 매우 낮다. 높게는 3등급에서 낮게는 5등급도 신학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물론, 성적으로 사람을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이는 학생의 학습능력과 학습에 대한 열정을 판가름하는 척도는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에 더하여 등록금만 내면 졸업은 어렵지 않은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가 교육목적과 동떨어진 현장사역자들을 길러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외국대학에서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신학을 한다. 학생들이 신학과 학문에 접근하는 자세가 다를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0.03.16| 5페이지| 1,000원| 조회(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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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스토리우스
    네스토리우스Ⅰ. 들어가면서A. 문제 제기일반적으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로만 카톨릭과 개신교의 역사를 포함해서 약 200년 정도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연구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시작의 역사를 우리에게 ‘경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로 보는 견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교는 635년경 알로펜에 의해서 중국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중국을 통해서 한국 전역에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전해졌다는 견해가 역사적으로 타당한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최소한 당대 동북아시아의 교회사에 있어서 네스토리우스파의 영향은 상당하다는 것을 유추 할 수 있다.그렇다면 당나라에서는 경교로, 징기스칸으로 유명한 원나라 시대에는 야리가온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져 있었던 네스토리우스파는 과연 어떠한 집단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현재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431년에 진행된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네스토리우스파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기에 이단으로 정죄된 것인가? 과연 이단으로 평가받을 만큼 위험한 사상이었는가?B. 연구 범위와 방법본 발제에서 논자는 앞에서 말한 논지를 가지고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 연구 범위에 있어서는 첫째로 네스토리우스파 파문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 네스토리우스가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자 한다. 그리고 정통교리의 확정 과정을 살펴보고, 네스토리우스 사상에 대한 평가를 내려 보면서 본 연구를 결론짓고자 한다.본 연구를 위해서 논자는 우선적으로 교리 역사를 다룬 국내 서적 및 번역 서적들을 참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네스토리우스 교회 즉, 경교에 대한 최근의 연구 논문들을 참고하고자 한다.Ⅱ. 본론1. 네스토리우스파 파문 배경고대 기독교의 역사는 밖으로는 순교의 상황이었고, 안으로는 기독론적인 논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반포된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대외적인 순교의 상황은 마무리 되었지만, 내부의 문제였던 기독론적인 논쟁은 열렬히 일어나게 된다. 그 가운데서 325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와 제2차 세계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가 진행되었다. 이를 통해서 삼위일체의 교리가 확정되었고, 그리스도가 vere deus vere homo(참 하나님 참 인간)라는 명제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리스도의 양성에 대한 논쟁은 키릴로스와 네스토리우스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 논쟁은 하나님의 어머니(θε?τοκο?)라는 명칭에 대한 네스토리우스의 반박에서 비롯되었다.네스토리우스는 본래 안디옥 근방의 한 수도원의 수도사였다. 그러나 그의 학식과 능한 설교는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마침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직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네스토리우스는 428년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가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양성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의 논쟁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2. 네스토리우스의 사상앞서 언급한 대로 네스토리우스는 안디옥 학파에 속해 있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심적인 사건은 ‘하나님을 낳은 자’(또는 하나님의 어머니, Theo-tokos)라는 명칭을 반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자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혼동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람을 낳은 자’(anthropotokos)를 함께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리스도를 낳은 자’(Christo tokos)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가 신을 낳은 것이 아니라 다만 ‘신의 도구인 인간’을 낳았을 뿐이라고 본다. 그는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라고 기록된 요한복음 3:6절을 그 근거로 삼았다. 그는 성육신 이전의 로고스와 성육한 후의 로고스는 신성 면에서 동일하나, 인간성에서 동일하지 않다고 보았다.그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 중 인간성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나치게 인간성에 강조점을 둔 것을 의식해서 ‘그리스도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동시에 신이자 인간’이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성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신성과 더불어 경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고난에 관해서 그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의식하면서 고난의 주체가 신이 아닌 인간임을 말했다. ‘신’이 십자가에 달린 ‘육신’과 연합되었지만, 그 고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3. 정통교리의 확정 과정네스토리우스의 사상은 그리스도의 양성에 대한 정통 교리가 확정 되는 과정 속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의해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키릴로스로 볼 수 있다. 키릴로스는 ‘성서는 로고스가 인간의 인격과 연합했다고 말하지 않고 로고스가 육화했다.’고 말한다. 그는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이 말씀의 참된 인간화를 부정한다고 보았다. 말씀의 참된 인간화가 없다면 이것은 또한 참된 구원이 없다는 결론을 내포한다.네스토리우스와 키릴로스 간의 논쟁 속에서 정통 교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 필요성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431년에 있었던 에베소 공의회와, 451년에 진행된 칼케돈 공의회로 볼 수 있다. 먼저 431년에 있었던 에베소 공의회를 살펴보면 430년 11월에 데오도시우스 2세가 431년 성령강림절에 맞추어 에베소를 회의 장소를 삼는 회의를 소집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431년 부활절 직후 에베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에베소에는 키릴로스와 키릴로스에게 매수당한 자들의 정죄로 인해 그에게 적대적이었다. 이후 네스토리우스의 친구들이 에베소에 도착해서 항의 했지만 때는 늦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해 9월 네스토리우스는 대주교직에서 물러났고, 후에 이집트로 추방되었다.네스토리우스의 추방 이후, 안디옥 학파와 알렌산드리아 학파 사이에는 화해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433년 초 안디옥의 요한은 키릴로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알렉산드리아 측의 입장을 대체로 수용하되, 알렉산드리아 측이 신성과 인간성을 혼합 내지 혼동하여 아폴리나리우스적 단성론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과정에서 ‘두 본성 - 한 위격’의 공식이 예비 되었고 이후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서 네스토리우스는 최종적으로 이단시 되었다.그렇다면 네스토리우스가 결정적으로 이단시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론적인 부분에서 나타난 취약점에 있다. 네스토리우스 사상은 내주라는 형식으로 신성과 인성이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인성과 신성이라는 각 속성에 대한 강조는 할 수 있다.
    인문/어학| 2019.11.25| 5페이지| 1,000원| 조회(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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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서평 평가B괜찮아요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읽고Ⅰ. 서론현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설교의 약화라고 할 수 있다. 시대는 빠르게 흘러가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윤리적 각성을 촉구하는 설교가 약화되면서 기독교가 타락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이러한 설교의 위기 앞에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김운용 박사의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3판 2007)이 출간 되었다. 본서의 저자인 김운용 박사는 미국 Union Theological Seminary & PSCE에서 예배설교학 Ph.D 학위를 받고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설교학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논자는 김운용 박사의 저서 『설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설교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역 현장 가운데 살아있는 설교를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감을 가지고 본서를 요약하고, 소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Ⅱ. 본론저자는 1장에서 변화하는 오늘의 설교 현장을 불타는 갑판에 비유를 한다. 불타는 갑판은 그대로 남아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바다로 뛰어들면 불확실하지만 살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의 사역자들의 환경 또한 문화 사회적 변화와 다원화의 상황에서 변화를 요구받는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현시대 설교자에게 먼저 해석자의 역할을 필요로 한다. 말씀은 물론이고, 청중들과 문화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저자는 해석을 통해 얻게 된 텍스트와 컨테스트에 대한 이해를 전하는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를 놓고 ‘변화하는 시대의 중간에 서 있는 해석자들’이라 정의한다. 레슬리 뉴비긴은 교회 사역의 구조를 사회 - 복음 - 교회의 삼각구조로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설교자들에게 복음에 대한 이해와 사회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그렇다면 설교자가 이해해야 할 현대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온다. 이에 대한 영향으로 다원화가 생겨나고, 점차적으로 오락과 감각사회가 되어가는 것이다.이러한 변화와 도전에 대해서 저자는 3가지 교회의 자기 인식 메타포를 소개한다. 바로 레슬리 뉴비긴과 스탠리 하워스, 월러 부르그만의 메타포이다. 그리고 설교자의 복음 이해, 설교 이해, 자기 이해, 복음 전달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며 1장의 서술을 마무리한다.2장에서는 설교의 패러다임 이해에 대해서 서술을 하는데, 먼저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토머스 쿤에서 시작해서 한스큉 더 나아가 데이비드 보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패러다임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하게 된다.그렇다면 설교학에서는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는가? 규정화된 이론과 이해를 위한 포괄적인 모델의 관점으로 보는 패러다임의 패턴을 설교학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설교가 발전되어왔다.저자는 전통적 설교 패러다임과 새로운 설교 패러다임 속에서 좋고 나쁨의 구조나 이분법적인 규정을 하는 것을 지양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유진 라우리나 루시 로오즈의 설교 패러다임이해를 소개함으로써 시대에 맞는 적용을 할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한국의 경우 설교의 영광의 시대가 지속되는가? 아니면 암흑의 시대가 올 것인가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의 급격한 변화 앞에 옛 껍질을 벗어내, 새로운 틀을 입어야하는 당위성 앞에 서있다고 이야기 한다.3장에서는 현대 설교학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0세기 중반 성서신학 운동의 영향으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이 펼쳐지면서 기존의 설교와는 다른 특성들이 설교 내에 전개되어 가게 된다. 먼저 연역적 전개에서 귀납적인 전개 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효과적인 복음 증거를 위해 설교의 이야기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적 언어의 회복으로 성경 속 다양한 메시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라는 청중의 역할에 대한 재해석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설교의 형태가 탄생하게 되었다.4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보다 좋은 설교의 관심에서 비롯된 설교 형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5장에서는 귀납적 설교, 6장은 이야기식 설교, 7장에서는 현상학적 설교를 소개하고 있다.5장에서 다루고 있는 귀납적 설교는 기존 설교의 연역적 방법이 아닌 헬라의 또 다른 수사학 기법인 귀납법을 설교에 적용한 형태이다. 이를 신학화한 사람은 에모리 대학의 설교학 교수였던 프레디 크래독이다.귀납적 설교가 기존의 연역적 설교와 다른 것은 기본적인 골격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연역적 설교에서는 보편적인 진리가 먼저 제시되고 이를 증명하는 방식을 통해 상황에 적용을 한다. 그러나 귀납적 설교는 회중의 상황에서 시작되어 보편적 진리라는 결론에 도달한다.이러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크래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본문을 연구한다. 첫째 사전이나 주석서를 보기 전에 본문 그 자체와 직면하여 서는 자세를 가져라. 둘째로 설교자는 본문에 대한 질문을 통한 활발한 참여가 있어야 한다. 셋째로 본문이 말씀하는 바를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 넷째는 본문을 청취를 들 수 있다. 다섯 번째로 설교자가 본문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중들과 연결되어 있는 목회생활 전부를 설교 준비의 시간으로 삼는 것이다.랄프 루이스에 따르면 귀납적 설교의 방법론에는 크게 6가지로 이야기 한다. 먼저 나열식 방법은 가장 단순한 귀납적 방법으로 여러 종류의 실례, 일화, 사례, 성서적 사건, 그리고 경험들을 나열해가면서, 제시하려는 설교의 결론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탐색의 방법이다. 이것은 나열식 방법 보다는 복잡한 전개를 가지는데, 그 열거하는 내용들에 있어서 보다 광범위하고 정교한 나열을 요구하는 형식이다. 세 번째는 성경에 나오는 어느 특정 인물의 전기 형태를 따라 전개되는 방법이다. 이것은 그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생애의 어느 특정 시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설교의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방법이다. 또한 일반적인 사례나 성경 밖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리를 섞어가면서도 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문제 제시와 해결, 혹은 질문과 대답의 구조를 통해 전개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는 귀납법과 연역법을 혼용한 방법이다.이러한 귀납적 방법론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설교에 대한 청중들의 기대와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귀납적 설교의 이러한 특성은 설교 구성의 한 방법으로 응용되어 사용할 수 있는 설교의 틀을 제공한다.6장은 이야기식 설교를 다루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인 설교가 어떻게 들려지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설교에 있어서 핵심주제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기독교 설교의 본질적인 구조라고 정의할 수 있다.그렇다면 이야기 설교는 어떻게 구성하고 배열할 수 있는가? 라우리는 4가지 기법을 소개한다. 첫째는 본문의 이야기를 따라 설교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야기 속의 사건을 따라 진행해 가는 방식이다. 둘째로 본문의 내용이나 스토리 언급을 보류하는 형식이다. 이는 현실적 관심사나 이슈 등을 다루거나 다른 스토리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시작해서, 해결책으로 성경 본문으로 들어가는 방식이다.다음으로 본문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을 중단시키는 형식이다. 이는 이야기식 설교 기법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이다. 마지막 유형으로는 본문의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면서 부분별로 다른 스토리나 소재들을 함께 엮어가면서 진행하는 방식이 있다. 이를 본문의 이야기를 다른 자료들과 엮어가는 방식이라고 정의한다.이러한 설교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유의할 사항이 존재한다. 본문을 선정하고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어떠한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구성할 것이고 청중들을 이해시킬 것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다음 장에서 저자는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설교자들의 시대적 사명은 삶의 상황에 대한 해석학적 작업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교학적 사명을 추구하는 학자들 가운데 데이비드 버트릭은 현상학적 전개식 설교를 전개하게 된다.그의 설교 해 위임된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의 연속’과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설교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그는 설교가 구원받은 공동체와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서서 감당하는 중재 사역을 담당한다고 한다.그렇다면 설교의 목적과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 하는 것이며 세상 속에서 그들을 새로운 삶을 향해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버트릭은 2가지로 정의 한다. 첫째는 성경에서의 설교를 그것의 복음적인 목표에 의해서 정해진다. 교회 안에서의 설교가 성도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설교라고 한다면, 교회 밖에서의 설교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설교이다. 둘째로는 설교는 ‘중간 자리’에서 행해진다는 특성을 가진다.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혹은 세상과의 사이에 서 있는 존재인 것이다.그렇다면 버트릭은 어떻게 설교 방법론을 전개하는가? 먼저 ‘무엇이 일어나게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버트릭은 ‘설교를 통해 청중들의 마음의 건반을 누를 때 “무엇이 일어나는가”에 주안점을 두고 행해진다.’는 것을 기대한다.다음으로 움직임을 구성하는 것이다. 버트릭은 설교를 ‘움직임 혹은 장면’이라고 칭하는 일련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일종의 플롯이라 이야기 한다. 이런 움직임을 구성하기 위해서 그는 결합의 원리, 다양성과 통일성, 전개, 마무리의 단계를 거친다고 이야기 한다.버트릭은 이런 ‘움직임’의 플롯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세 가지의 유형을 제시한다. 먼저 즉시성의 방식을 말한다. 이것은 성경 본문 및 비유 속으로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다음은 숙고적 방식이다. 여기에서는 설교자의 숙고와 그것의 전개를 따라 설교가 구성된다. 마지막은 ‘실천적 방식’이다. 설교자는 성경 본문이 아니라 설교의 주제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8장에서는 새로운 설교 패러다임에서의 설교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 다.
    인문/어학| 2019.10.05| 5페이지| 1,000원| 조회(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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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적 설교의 원리와 실제' 서평 평가A+최고예요
    『성경적 설교의 원리와 실제』를 읽고1. 서론100년이 넘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서 교회의 성장기에는 시대의 명설교가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현제의 시기를 살펴보면 성경의 가치관과는 다른 설교,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중들과는 무관한 설교로 인해 영적 기아 상태에 있는 교회가 상당수 존재한다.이러한 설교의 위기 앞에 성경적 설교의 원리를 분석하고 실제에 도입한 『성경적 설교의 원리와 실제』(6판 2016년)이 출간되었다.본서의 저자인 주승종 박사는 미국 Boston 대학 신학부에서 Ph.D 학위를 받았다. 장로회 신학대학교 예배 설교학 전임교수로 재직하다, 현재 인천주안장로교회에 위임목사로 시무 중에 있다.논자는 주승종 박사의 저서 『성경적 설교의 원리와 실제』을 통해 성경적인 설교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역 현장 가운데 살아있는 설교를 할 수 있길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감을 가지고 본서를 요약하고, 소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2. 본론1부에서는 성경적 설교의 기본 이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먼저 설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루는 데 여기에는 다양한 정의가 나올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존 스토트는 설교를 다리 놓기로 이야기 하고 있다. 본문의 세계와 오늘의 세계, 목회하고 있는 특별한 세계와 설교자 자신의 세계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이 중심에는 바로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해야 한다.그렇다면 성경적 설교란 어떤 것인가? 저자는 주제 설교, 본문 설교, 강해 설교라는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하면서 강해 설교가 성경적 설교에 가깝다고 이야기 한다. 이는 성경 본문이 설교를 지배하고, 성경 속에서 나온 하나의 중심 개념을 전달하고, 이를 설교자 자신과 청중들에게 적용하는 특성 때문이다.그렇다면 설교는 어떤 목적을 가지는가? 그것은 설교를 행한 결과로서 듣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디 데이비스는 설교의 일반적 목적을 복음 선포, 가르침, 치유로 나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목적을 정할 것인가? 본문 석의에서. 저자는 크게 4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먼저 설교할 본문 정하기에서는 본문을 선택하고, 시작과 끝을 검토하고 신뢰할 만한 번역본을 정하는 것을 서술한다. 다음으로 본문 이해하기에는 본문을 읽고, context 안에서 살펴보는 것이다.세 번째로 본문과 깊이 대화하기에는 9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의역해보기, 다양한 관점에서 체험하기, 이상하거나 부적절해 보이는 내용 검토하기, 본문의 무게 중심 찾기, 본문 내외의 상충하는 부분을 찾기, 본문 전후 내용 살피기, 본문을 많은 눈을 통해 보기, 본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기, 본문이 하고 있는 바를 물어보기 입니다.다섯 번 째는 본문에서 발견한 것 점검하기에서 역사적 연구와 문학적 연구, 신학적 연구, 주석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데, 설교의 중심 사상, 설교의 목적을 진술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설교의 개요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 것인가? 먼저 설교의 중심 사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의 보다 큰 과제를 작은 요소로 세분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목적을 위해 가장 순서를 결정하는 것이다.2부에는 설교의 다양한 형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다양한 설교의 형식이 이야기 되어 지고 있다. 이는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할 것인가, 어떻게 전하고 의미를 만들 수 있는가를 결정짓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을 가진 설교의 형식 중에서 저자는 대지 설교, 분석 설교, 귀납법적 설교, 4페이지 설교, 유진 로리의 설화체 설교, 4C 설화체 설교, 이야기 설교, 일인칭 설교, 전개식 설교를 소개하고 있다.먼저 대지 설교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이 활용해 온 설교의 형태이다. 논리적인 전개로 쉽게 진리를 전달할 수 있지만, 충분한 성경적 이해 없이 설교할 경우 부족한 설교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분석 설교에는 윌리엄 에반스의 전개 방법과 정장복 교수의 전개 방법을 소개한다. 여기서 가장 큰 틀은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 )로 나타난다.다음으로 귀납법적 설교를 소개한다. 이는 새로운 설교학 운동으로 인해 기존의 연역법적 설교가 아니라 귀납법적 설교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귀납법적 설교는 어떻게 구성하는가? 그것은 회중의 경험에서 시작해서 본문으로, 그리고 주제를 결론에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4페이지 설교이다. 이는 본문의 문제 발견, 세상 속의 갈등, 본문 속 하나님의 역사,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으로 구성한다.4페이지 설교 이후에 서술하는 설교 형태는 유진 로리의 설화체 설교와 4C 설화체 설교이다. 유진 로리의 경우 모순되는 문제 제기, 모순되는 점과 불일치 분석을 통한 모호함 심화,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 제시, 복음을 경험하는 단계, 결과를 기대하는 단계로 구성한다. 이와 다르게 4C 설화체 설교의 구성은 모순(문제점 제기), 갈등(갈등 심화), 전환(발전과 해결), 확인(복음의 확인)이다.설화체 설교와 많이 비교하는 이야기식 설교는 하나님의 이야기, 설교자의 이야기, 회중의 이야기를 연결한다. 이 가운데 언어의 사용, 배경 설정, 주제, 상상력이 섬세하게 요구된다. 설화체 설교와 이야기식 설교를 포함한 서사 설교는 메시지의 교훈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세상의 이야기가 많이 나열되고, 본문을 왜곡시키거나 설교의 생명력을 해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다음으로 서술하는 설교는 다니엘 버트리의 이론을 기반으로 한 1인칭 설교이다. 이는 설교자의 자기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툴린의 1인칭 설교와는 달리 성경 인물을 선정해서 그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이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연구 조사, 상상하기, 그림에 색칠하기, 설교 원고 작성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설교의 구조는 서론, 전재, 절정, 결론의 과정을 가진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전개식 설교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는 데이빗 버트릭이 이야기한 설교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설교의 기술을 통해 움직임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움직임은시작부, 중간부. 종결 및 흥미를 유발하고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이를 위해 간결하고, 적절하고, 본문 이상의 약속을 하지 않는 겸허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 속에 다양한 형식과 방법론을 통해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변명으로 시작하거나 지나치게 흥미 위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교자는 확신에 찬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이고, 회중을 바라보면서 서론을 시작해야 한다.저자는 결론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회중들이 설교의 절정의 경험하는 것과 설교의 목적이 성취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결론이 잘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고 적절한 연결이 되어야 하고, 개인적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의 절정을 이뤄야하고, 간결하고 요점을 찔러야 한다.그렇다면 본문은 어떻게 서술되어지는가? 설교의 각 부분 당 자연스럽게 넘어가기 위해서 설교의 전이가 필요하다. 이는 설교의 이정표 역할을 하여, 설교를 통일성 있게 진행하게 도와준다. 이러한 전이의 유형에는 관계적 유형, 낱말과 구의 연결 유형, 질문 유형이 있다.다음으로 저자는 설교의 제목을 다루고 있다. 설교의 제목은 전도적인 목적을 포함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설교의 주제를 소개하는데 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제목은 관심을 유발하고 간결하면서도 현대적이어야 한다. 과도한 진술이나 선정적인 제목, 모호하거나 진부한 것은 설교 제목의 순기능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21장에서는 예화와 인용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먼저 예화의 경우 존 스토트의 견해에 따르면 성경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다리 놓는 작업이 설교라고 정의하는데, 이를 돕는 것이 예화인 것이다. 예화가 제 기능을 할 때 관심을 끌고, 진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진리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한다. 그러나 역기능을 할 때는 설교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 다음으로 설교의 요점을 뒷받침해주는 인용구는 보통 설교에 강한 인상과 권위를 주기 위해서 사용된다.4부에는 설교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제목으로 서술하고 있다. 설교는 본질적으로 말씀의 커뮤니케이. 그러나 설교 현장은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에 설교의 커뮤니케이션적인 관점을 회복해야할 것이다.그렇다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설교자는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인가? 저자는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3가지 특징을 가진 어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는 명확한 어체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어체, 생생한 어체이다.그렇다면 비언어적인 방법은 어떠한가?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비언어적인 방법으로도 의사소통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비언어적 방법 또한 중요한 방법론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설교 가운데 고려해야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는 설교자의 모습, 제스처, 회중과의 시선 교환, 음성, 환경 등이 있다.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멀티미디어의 영향 속에 살아간다. 그렇기에 설교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그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청중들은 영상 매체의 영향으로 메시지를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에 의해 받아들인다. 그리고 영상 매체의 특징상 오락성을 중요시한다.저자는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청중들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서 7가지 방법에 대해서 소개 한다. 상상력을 동원한 이미지를 활용하고, 그림 언어를 사용하라고 한다. 그리고 비유적 언어를 창조하고, 설교문을 영화 대본처럼 쓰라고 말한다. 플래시백 기법을 이용하고, 보이는 말씀인 성례전을 새롭게 하라고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설교를 소개하고 있다.5부에는 1970년대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설교학 운동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권위가 도전받는 시대의 흐름의 영향으로 전개된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무엇일 다루고 있는가?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기존의 연역법적 설교 대신 귀납법적 설교를 강조한다. 다음으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설화 또는 이야기를 중시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설교학 운동은 복음의 경험을 강조한다.그렇다면 오늘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새로운 설교학 운동의 정신을 가지고 설교할 수 있는가? 새로운 설
    인문/어학| 2019.10.05| 5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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