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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파올로 우첼로 <산로마노 기마전투(Battaglia di San Romano)>(1436-1439)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에게 승리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s Victory over Maxentius)>(1452-66) 비교를 통한 르네상스 전쟁 회화 분석
    파올로 우첼로 <산로마노 기마전투(Battaglia di San Romano)>(1436-1439)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밀비우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에게 승리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s Victory over Maxentius)>(1452-66) 비교를 통한 르네상스 전쟁 회화 분석
    파올로 우첼로 (1436-1439)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c. 1455)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꿈에 천사가 등장해 고개를 들라했고, 그의 말을 따르자 빛나는 십자가 안에 “이 표식 안에서 너는 승리를 이루리라!”라고 쓰여있었다. 그림에 등장한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은 꿈의 내용을 따른 것이고 실제로 로마 제국을 통치하는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피에로는 주문자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직접 이론서를 썼다. 그중 한 권은 회화의 원근법에 관하여 (1474-1482)로 몬텔펠트로의 페데리코 공작을 위해 제작되었다. 책의 서문에서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세 부분을 드로잉, 구도, 색채라고 언급했다. 이 요소는 화가가 세계를 인식하는 관점이자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에서 밝은 빛과 색채 회화 기술, 그리고 기하학적인 구도를 활용한 원근 투시도법이 적용되어있기 때문이다. 색은 대상과 구조에 현장감을 부여하는 요소이다. 푸른 하늘과 밝은 빛, 깃발, 각기 다른 색의 옷들, 배경에 등장하는 건물, 강, 나무, 산 등의 색이 모두 다르다. 갑옷에 비친 빛 반사나 땅 위 말발굽의 그림자 등을 통해서도 색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연의 실상을 정확하게 재현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원근 투시도법은 배경에서 잘 드러난다. 대상의 기하학적인 구조와 현실의 구조가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고, 구조에 대한 표현이 현실의 건축적인 구조를 재현하고 있다. 이외에 인간이 가진 다양한 표정들이 드러나 감상자가 쉽게 공감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 통해 피에로는 보편적인 대상의 기하학 구조가 회화에서 실제감을 불러일으키며, 원근법은 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바사리는 이 그림에 대해서 “여기에 표현된 전투 장면과 다양한 인물은 동시대 귀족과 궁정인들을 정교하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한 것으로 인물들의 표정과 의상, 완벽한 원근법에 따라 처리된 건축물과 자연 풍경 등은 당대 회화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했다.3. 비교(1) 주제 및 제작 배경의 경우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 그림을 그렸서 민족적인 자긍심을 드러낸다. 피렌체 시의 입장에서도 이 전투는 큰 자랑거리였기 때문이다. 저택에 방문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주문자의 위상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면서 정치적으로 과시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의 경우 중세시대에 쓰인 책으로 허구와 실재를 오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공간도 성당이었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방문객들도 종교적인 경건함과 신실함을 가지고 그림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두 작품 모두 의뢰를 받아 그려졌다는 점, 미학적 기능 외에 정치적, 종교적인 추가적인 기능을 하며 선전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는다.(2) 화면의 특징두 작품은 오늘날의 작품들만큼 극적이거나 충격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 인문주의 시대의 르네상스 화가들은 통제된 표정이나 제스처, 움직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원근법의 효과를 연구하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나치게 활기차거나 적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들은 피하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렸다. 전투 장면은 이를 잘 나타내는 예시이다. 두 작품 모두 당시 화가와 주문자가 수용 가능한 최대한의 묘사를 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파올로 우첼로의 작품은 귀족의 토너먼트 같은 느낌을 준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은 우첼로의 작품에 비해서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성은 비슷하다. 구역을 나누지 않았고 싸움에 참가하는 병사와 기사를 전경에 가득 배치시켰다. 다만 적국과 아군의 대비가 우첼로만큼 크지 않다는 점, 강렬한 빛으로 그림을 환히 비춰서 투시도법적인 공간에 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또 말의 다리 부분에서 공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중세 시대의 배경 묘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말들이 단축법으로 표현되어 덩어리가 아닌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우첼로가 그림에서 기하학과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실험하느라 약간의 어색함이 보였다면, 피에로는 조화를 이뤄내는 것에도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우아하게 인식된다.(3) 정리조르조 바사리는 그의 저서에서 파올로 우첼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만약 원근법을 위하여 애쓴 시간만큼 인물과 동물 연구에 시간을 바쳤다면 그는 조토 이래로 가장 매혹적이며 영감이 풍부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중략) 인물보다 원근법에 주의력을 더 기울이는 예술가들은 사물을 너무 세부적으로 검토하려고 고심하다 건조하고 딱딱한 스타일만 몸에 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고독과 괴상한 생각과 우울증 그리고 정신적 빈곤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바로 파올로 우첼로가 이런 경우다.” 실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작품은 인물들과 상황을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원근법, 기하학에 대한 끈질긴 선행 연구는 이후의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바사리가 그토록 찬사를 보낸 피에로의 그림이 나올 수 있었다. 바사리는 피에로에 대해 “그는 이렇게 하여 같은 시대를 사는 미술가들이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었으며 예술이 오늘과 같은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 초석을 만들었다.”고 선행된 연구와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초석의 역할을 하고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배경과 주제가 다르다고 해도 르네상스라는 인문주의 시대 속에서 일종의 흐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화가들은 그 흐름 속에서 선행 연구와 화가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며 작업 활동을 지속해나갔다.4. 결론(1) 르네상스 전쟁 회화의 특징두 작품 모두 전쟁의 모습을 그렸다. 전쟁 회화는 당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점 기능을 했다. 오늘날의 미디어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의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쟁은 승리를 위한 노력이며, 대의를 위한 희생이었고,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람객은 전쟁의 참혹함이나 잔인함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파올로 우첼로의 의 경우, 당시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투 장면을 시간 순서로 그렸다. 이 그림은 피렌체의 힘과 패권을 관객이 인정하도록 시각적으로 설득시키는 기능을 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중 도 마찬가지로 310년에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와 막센티우스가 밀비우스 다리에서 일어난 전투에서 승리한 모습을 그렸다. 이 전설은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해석되어 책으로도 쓰였다. 그는 전해져 오는 역사 속 전쟁 이야기를 그렸고, 이 역시 관람객의 기독교 전설에 대한 신앙심과 우월감, 애국심을 키우는 기능을 하였다. 이렇게 승리를 강조하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잔인한 전쟁의 장면을 사실대로 그리지 않았다. 그래서 관객은 두 그림이 연극적이고 인물들의 배치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감동과 충성심을 느껴 결속된다.실제 전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폭력이 자행된다. 그 때문에 잔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전쟁 회화는 폭력성과 잔인함을 알리지 않고, 적군의 인권, 혹은 아군에서 힘없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전쟁을 예찬하고 승리를 이끈 대표적인 영웅을 기념해야 했기 때문에 가공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을 제공해야 했다. 전쟁의 끔찍한 현실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전쟁 회화는 한계를 갖는다. 그리고 이 한계는 와 두 작품 모두에서 드러난다.
    예체능| 2024.01.18| 6페이지| 2,000원| 조회(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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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문화예술 거버넌스란 무엇인가
    문화예술 거버넌스란 무엇인가
    문화예술 거버넌스문화예술 거버넌스는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이 갖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 주도가 아닌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협치를 의미한다.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에 관련 이해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적 조정 장치이다.이 중 시민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로 구성된다. 문화 분야에서 보자면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 전문가, 시민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이할 수 있다. 거버넌스의 관건은 정책의 형성과 집행, 평가라는 전반적인 과정에 시민의 개방적인 참여가 얼마나 보장되는가에 달려있다. 성공적인 민관협치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 수렴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서 시민이 직접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책을 집행해 나가도록 발전시켜야 한다.다양한 시민참여의 방식이 전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위원 구성이 전문가, 공무원 중심으로 구성되어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표하기에 불충분한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시민 의견 수렴을 위한 자리에서 민관 혹은 민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민관협치가 효율성도 효과성도 낮고 고비용과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한계를 낳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구조를 유고하고, 협의를 통해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문화예술 분야에 거버넌스 개념이 들어온 이유는, 1980년대 이후 정부 실패와 시장 실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호성과 신뢰성에 근거한 네트워크 관리가 중요시되는 뉴거버넌스가 등장했다. 뉴거버넌스는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다수의 행위자, 집단이 개입하고 수평적인 협력을 추구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정부의 하향식 조종이 아니라 정부가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문화예술은 공공 영역의 거버넌스인데, 이런 경우에는 시민사회와 정부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고려해야 할 점이 더 많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참여해서 중요한 사항을 의사 결정해야 하고, 다수의 민주적 결정과 협력적 해결을 지향하는 행위자 간의 연대도 강조된다. 따라서 문화예술 거버넌스는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이 갖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 주도가 아니라 문화예술계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협치,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새로운 사회적 조정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구성원들 사이의 적극적인 참여, 협력, 문제 해결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문화예술 거버넌스가 갖는 특징은 정책 이해관계의 복잡성, 민간 영역에 대한 관심이 더 강조된다는 점, 네트워크 구조의 다양성, 인접 분야의 거버넌스와의 관계가 있다. 문화예술이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더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 공공이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을 고려하는 경우, 민간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 안을 구성하는 네트워크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고, 비슷한 분야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인접 분야의 거버넌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지역문화 거버넌스는 양현미(2015)의 연구자에 따르면 크게 세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의 지역 문화정책 거버넌스,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 거버넌스, 특정 문화권역의 문화정책 거버넌스로 나뉜다. 이 중 지역문화 거버넌스의 경우 시도나 시군구가 관할 행정구역 내에서 지역 간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 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예체능| 2024.01.18| 2페이지| 1,000원| 조회(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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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르네상스 미술 정리
    르네상스 미술 정리
    르네상스 미술 정리르네상스는 조르조 바사리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프랑스어로 재생, 부활이다. 학문적으로 그리스, 로마를 모방한다는 의미를, 근본적으로 인간의 내면을 예술 안에 녹인다는 의미를 갖는다.르네상스 미술은 크게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시기는 14세기 페트라르카기, 15세기 초, 중엽 시민적 휴머니즘기, 15세기 말 신플라톤주의기로 나눌 수 있다.피렌체를 중심으로 미술이 발전된 이유는 상인들이 경제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재산을 수도회에 많이 기부했다. 교회는 기부를 통해 내, 외부를 화려하게 꾸몄고, 조토 디 본도네와 같은 유명한 화가들이 등장했다.15세기의 피렌체 르네상스 건축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나타났다. 특징은 주범 양식을 통해 비례, 질서, 조화를 추구했고, ‘고대성’이라는 근본원칙으로 회귀했다. 또 평면과 입면은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규범과 법칙에 의해 설계되고 시공되었고 재료도 다양해졌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건축의 선구자 역할을 했고 원근법을 시연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회화론 을 쓰고 건축물을 만들었다.르네상스 조각의 대표적인 예술가는 도나텔로로, 그는 르네상스 조각 양식의 창시자로 부조에서 소실점과 중첩되는 공간을 구현해 회화적 공간의 깊이감을 보여줬다. 조각상의 경우 고전 작품의 이교적 이미지를 기독교적 맥락에 맞게 바꾸어 표현했다. 정치적으로 작용하기도 했다.15세기 피렌체의 회화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고 주제는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 규모로 바뀌었다. 원근법과 역사화, 모방과 정확성을 추구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마사초는 피렌체 회화의 선구자이다. 공간감을 만들려는 노력을 했고 인체에 대한 실재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렸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에는 평면화된 요소, 근대적인 건축 모티프와 원근법이 활용되었다. 전반기를 마무리하는 화가로 파울로 우첼로가 있다. 그는 동물 그림을 많이 그렸고 동시대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배경으로 쓰는 변화를 쓰는 등 변화를 만들었다.15세기 전반에는 공간, 인체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다. 3차원 공간을 만들기 좋았던 주제는 성스러운 대화였고 피렌체를 대표하는 주제가 되었다. 도메니코 베네치아노는 유화 기법을 활용해 섬세하고 화려한 그림을 그렸다.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는 실제와 같은 느낌이 들도록 그림을 그렸다.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서 해부학적 지식과 정확한 인체묘사에 대한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빛과 색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작품들을 기하학적, 과학적 원근법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주제랑 연관시킨다. 프라 필리포 리피의 그림은 공간이 번식하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15세기 후반기가 되면 원근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화가의 상상력이 중요하게 부각 되기 시작한 것을 보여준다. 매너리즘 회화가 예견되는 작품도 있다. 보티첼리는 당시 메디치 가문의 철학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이 몰두한 신플라톤주의를 작품에 반영했다. 15세기 후반에는 예술가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이상적 아름다움을 끌어 내려는 노력을 했고 예술가의 독창성과 상상력이 장려되었다.이런 르네상스의 흐름에 있어서는 메디치가의 영향력이 아주 컸다.16세기가 되면 자신의 예술을 하나의 선정 도구로 이용한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라는 사실주의 화가를 중심으로 피렌체 회화가 전개되었다. 그는 밋밋하고 건조하고 산문적인 풍조가 깔린 작품을 만들었다. 주문자들은 대부분 메디치가를 지지했던 가문들에서 나왔다. 피렌체라는 도시 국가는 메디치 가문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고, 정치적, 문화적으로 점령 당했다. 기를란다이오는 초상화가로도 유명했고 인간의 모습과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두 번째 도시 국가는 베네치아로 당시 동방과 경제적 밀접한 연계를 가졌던 도시이다.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질적이고 화려한 것들이 회화의 근간을 이뤘다. 벨리니 가문은 르네상스 미술을 본격 발전시켰다. 15, 16세기의 베네치아 미술에서 후원자가 작게 표현된 것은 중세적 요소이다. 비토레 카르파초가 베네치아 회화의 대표화가였다. 거대한 규모의 서술적 회화에 적합한 양식으로 작업을 했다. 조반니 밸리니는 베네치아 화풍 성립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엄격성에서 벗어나 현실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장엄함의 성격과 자신의 종교적 감성을 융합시켜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나갔고, 유화를 사용해 뛰어난 화법을 보여줬다.조르조네는 신플라톤주의 사람으로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다. 그의 작품들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명확하게 인물을 제시하기 보다는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했다. 조르조네 작품은 그림 속 분위기, 그것이 형성하고 있는 색채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피렌체는 인물 중심적이고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면 베네치아 회화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15, 16세기 베네치아 건축은 동방과의 인접성에서 온 장식성이나 이국적 특징이 두드러진다. 토스카나의 표준형을 받아들여 건축을 이룩해나갔다. 마우로 코두사, 야코포 산소비노,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대표적인 건축가였다.티치아노는 선, 색채, 도상학 등 여러 분야에 담론을 형성해냈다. 벨리니와 조르조네의 영향을 초기에 받았고 고유한 화풍 속에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초상화를 그릴 때는 회화의 우월함을 표현하기도 했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개념을 초상화를 통해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예체능| 2024.01.18| 3페이지| 1,500원| 조회(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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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진화에 따른 기업 박물관의 마케팅 변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진화에 따른 기업 박물관의 마케팅 변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진화에 따른기업 박물관의 마케팅 변화학번기말 소논문제출일 :목차Ⅰ. 서론: 기업 박물관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1.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정의2. 디지털 3.0 시대 이전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3. 디지털 3.0 시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Ⅲ. 디지털 3.0 시대의 기업 박물관 마케팅 커뮤니케이션1. 디지털 3.0 시대 이전1) 디지털 3.0 시대 이전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상황 및 한계2. 디지털 3.0시대1) 디지털 3.0시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상황 및 한계점Ⅳ. 결론 및 제언Ⅰ. 서론 : 기업 박물관1) 기업 박물관21세기에 이르러 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사회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풍요로워졌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마케팅 환경도 함께 변화하였다. 소비자들은 물질적 풍요보다 정신적인 풍요를 갈망하게 되었다. 과거처럼 상품과 서비스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성과 문화적인 무형적 요인을 원하고 소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성과 문화적 가치는 문화의 생산, 소비, 향유 과정을 거친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나오기 때문에, 기업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는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되었다. 소비자의 소득 증가와 근무 환경, 생활 환경이 질적으로 나아지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인지도와 선호도가 증가했다. 또 기업이 거대화되면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고, 공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추어 기업은 사회적인 요구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기업의 제품과 이미지를 홍보하고 이윤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기업 박물관이다.기업 박물관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기술의 발달 과정을 전시하고 보존하고 연구하고 홍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 커지면서 사회공헌 활동으로 기업 박물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에게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 예술계의 발전에 도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된 배경은 국·공립 박물관이 설립된 배경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국·공립 박물관의 경우 나라의 개국 주년이나 시 승격 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설립된다. 기업 박물관도 대부분 비슷한 맥락에서 설립되었다. 다만 두 박물관 사이에 차이점이 있는데, 국·공립 박물관은 설립되기 전까지 소장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기업박물관의 경우, 박물관이 설립되는 배경에는 소장품이 존재하고, 이 소장품이 기업 박물관의 이미지나 발전 방향, 운영 방향에 중심적인 요소가 되었다.Ⅱ. 마케팅 커뮤니케이션1.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정의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란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결합시킨 용어로,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목표로 하는 소비자들을 직간접적으로 유도하고 설득하는 의사소통 과정을 통칭한다. (김대겸, 2007) 정보를 전달하고 수신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 일어나는데, 이때 수단 사용 방법에 따라 소비자들이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달라지고, 결국 인식이 달리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송신자, 메시지, 채널, 수신자는 필수적이고, 각각의 존재들이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수신자가 메시지를 제대로 수용했는지 확인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며, 채널의 잡음에 의해 커뮤니케이션의 방해를 받기도 한다. 채널의 구체적인 예시로는 방송, 인쇄, 이벤트, PR, 퍼블리시티, 브랜드 저널리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2. 디지털 3.0 시대 이전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의 변화는 기술의 혁명과 함께 일어났다.(1) 아날로그 시대1세대로 불리는 아날로그 시대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기계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자극-반응 패러다임이 중심이 되었다. 핵심 기술은 전파 방송으로 단일 미디어를 사용했으며 일방향의 소통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매체로는 전통적인 4대 매체인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가 있다.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주입했기 때문에 대량 마케팅이 가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제 2차 세계서 노출 시키려는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마케팅이 등장하기도 하였다.(3) 디지털 2.0 시대3세대인 디지털 2.0 시대에는 관계 패러다임이 중심이다. 이 시대에는 소셜 네트워킹 기술이 핵심 기술이며, 사회적 소통이라는 커뮤니케이션 특징을 갖는다. 누구든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유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공유, 개입, 참여라는 네트워크적 특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웹과 모바일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다중 채널 네트워크를 효율적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다중 채널 네트워크란 개인 창작자가 작가, 연기자, 프로듀서, 마케팅 기획자 같은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창작 과정을 지원하며, 손수 창작물의 체계화와 상업화를 지향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하나의 미디어만 이용하지 않고, 다양한 미디어를 동시에 혹은 시차를 두고 이용하면서 복합적인 이용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때부터는 정보를 담당했던 미디어 플랫폼들의 역할이 축소되고 소셜미디어라고 불리는 개인 미디어(personal media)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3. 디지털 3.0 시대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1) 디지털 3.0 시대4세대에 속하는 디지털 3.0 시대는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초연결 지능을 구현할 수 있게 된 시대이다.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같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사물의 지능화를 실현하며 초연결 네트워크의 가치를 추구하는 시대이다. 대표적인 기술로는 사용자의 방문기록과 검색기록,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기술 등이 있다. 이와 같은 기술을 바탕으로 소비자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박진한,2013) 일방향적인 홍보보다는 소비자들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공유할 때 더 많은 반향을 일으키는 시대가 온 것이다. 수많은 플랫폼과 멀티 스크린의 보편화는 초연결 네트워크 환경을 자연스럽게 구축했는데, 이는 다중 채널 네트워트 활용다. 하지만 당대의 광고 역사를 훑어 봤을 때 그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TV의 경우 가장 대중적인 매체였고, 불특정 다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소비자의 주목을 끌고 친근감과 호감을 부여하는 힘을 가졌기에 박물관과 전시에 관한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금방 친숙함을 느꼈을 것이다. 효과적인 마케팅 홍보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단기간에 넓은 지역, 많은 소비자층에서 통일된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최근 설립된 않은 기업 박물관들이 소비자의 인식 속에 확실하게 자리매김 했을 것이다.라디오는 TV의 등장 이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TV가 등장하면서 그 영향력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박물관인 한독약품의 한독의약박물관은 1964년에 설립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라디오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져있었다. 따라서 TV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미미했을 것이다. 대신 라디오는 다른 일을 하면서 청취 가능하기에 거부감이 낮고 수용도가 높다는 특징을 갖는다. 또 프로그램이나 시간대, 채널에 따라서 소비자 세분화가 가능하기 하기 때문에 라디오를 많이 듣던 여성들에게 기업 박물관에 대해 인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라디오는 TV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고, 타겟층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물관 관람 타켓층을 설득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신문의 경우, 오랜 기간 사회에서 공신력, 신뢰도가 높은 매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또 당대에는 신문 보급률이 굉장히 높았기에 파급력이 컸다. 따라서 기업 박물관이 설립 소식과 전시 소식, 각종 행사 소식을 신문에 실었다면, 비록 이곳에 방문하지 못하더라도, 기업 박물관의 취지와 여러 소식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넓은 독자층이 이 사실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잡지는 수용자 세분화가 가능하고 신뢰성이 있으며 생명력이 높고, 회독률도 높다. 만약 잡지에 기업 박물관에 대한 글이 기고되었다면, 목표한 계층의 인식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성에 있다. 우선 세분화의 경우, 전통 매체에 비해서 특정화된 타켓층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고, 이들을 중심으로 홍보 및 PR 등 다양한 광고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기업 홈페이지에 가입한 회원정보를 바탕으로 메일 서비스를 진행해, 기업 박물관에 대한 홍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또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카페 등에서 홍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기업 박물관의 서비스에 관심이 없는 소비자가 아닌, 관심이 있는 잠재 고객들을 찾아오는 고객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 기사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증가함에 따라 퍼블리시티를 이용한 효율적인 홍보도 가능했을 것이다. 인터넷 배너 등을 이용해서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박물관에 대해서 인식 시킬 수 있었다. 기존 전통매체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에 비해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홍보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기업 박물관이 정치적인 이유로도 폭발적으로 설립되었는데, 풀무원 김치 박물관, 농업 박물관, LG 사이언스홀, 롯데월드민속박물관, 아트선재미술관 등이 건립되었다. 전시 주제도 단순 홍보에서 벗어나 대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고, 복합문화공간도 만들어졌다.디지털 1.0 시대에 1:1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긴 했지만, 여전히 발신자와 수신자 간의 경계가 명확했고,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디지털 3.0 시대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정교하게 세분화가 이루어졌다.(3) 디지털 2.0 시대디지털 2.0 시대에는 SNS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SNS를 이용한 입소문 마케팅이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면서 수신자와 발신자 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여론지도자의 역할이 대두된다. 인플루언서는 다른 수용자에 비해서 정보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받아들인 정보를 미디어와 접촉이 상대적으로 적은 일반 수용자에게 전달하면서 좀 더 많은 이들에게까지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기업 박물관 외에 많은 문0시대
    예체능| 2024.01.18| 10페이지| 2,5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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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데보드 신전의 구조를 통한 이집트 신전의 구성 요소 탐구
    데보드 신전의 구조를 통한 이집트 신전의 구성 요소 탐구
    데보드 신전의 구조를 통한 이집트 신전의 구성 요소 탐구도판 1 데보드 신전, 마드리드, 기원전 200년경, 석재, 32000 meters, pixabay.데보드 신전은 기원전 200년경의 메로에의 왕 아디잘라마니 (Adijalamani)의 명령으로 상이집트의 아스완의 남쪽 15km 지점에 세워졌다. 이 신전은 아문 신과 이시스 여신에게 받치는 예배당이었다. 초창기에는 작은 예배실만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주변으로 방을 추가적으로 건축하면서 신전이 확장 되었다. 이집트가 로마 제국으로 합병된 이후,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티베리우스 황제,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신전 증축과 장식 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항구에서부터 돌로 만들어진 벽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3개의 필론과 신전이 있었다. 프로나오스에 콤포지트 양식의 기둥머리를 한 주도가 4개 있었는데 1868년에 붕괴된 이후 소실되었다. 기원 후 6세기에 누비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데보드 신전은 봉쇄 되고 버려졌다. 이후 20세기에 아스완 댐의 건설 때문에 수몰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을 이전하는데 스페인 정부가 큰 도움을 주었고 이집트 정부는 스페인 정부에게 이 신전을 기부했다. 데보드 신전은 옮겨지고 그 장소에 있던 석재로 재건축 되었다. 현재는 마드리드에 있는 공원인 파르케 델 오에스테(Parque del Oeste)에 위치해 있다. 신전을 옮기고 재건축 과정을 거친 후, 대중에게는 1972년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재건축 과정에서 관문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집트 외부에 있는 유일한 이집트 신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파악할 수 있다.진흙과 갈대, 파피루스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는 초기 이집트 건축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햇볕에 말린 진흙벽돌도 많이 사용했다. 종교적인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축물에는 석재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집트 신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분묘 신전으로 신격화된 파라오를 위해 종교적 의식을 행하고자 만들어 진 것이고, 두 번째는 고대의 신을 모시는 일반인의 제사 의식을 위해 건축된 신전이다. 데보드 신전과 앞으로 살펴볼 신전들은 모두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대 신들의 신전은 고대의 신들을 기념하고 찬양하기 위해서 세운 거대한 건축물이다. 카르나크(Karnak)나 룩소르(Luxor), 혹은 데보드 신전처럼 파라오들이 대를 이어 신전을 증축하고 장식하면서 규모가 점점 거대해지기도 한다. 신왕국 시대의 신전은 ‘홀-열주마당-조상실-내성소-창고’라는 고왕국 시대에 나타난 다섯 가지 요소를 그대로 계승하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정하게 변화하였다. 이 시기 신전의 표준형은 아문 대신전으로 ‘탑문-열주마당-열주-홀-전실-부속실-성소’의 구조를 띤다. 이 구조와 데보드 신전의 구조를 통해 이집트 신전의 표준적인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집트 신전은 스핑크스의 길(행렬로), 오벨리스크, 필론(탑문), 중앙뜰(중앙중정), 열주전, 제실(신전) 순으로 구성되어있다. 신왕국 시대에 축조된 중요한 신전들 주변에는 대부분 호수가 있었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집트 종교에서는 태양이 태고의 물에서 솟아날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신전 주변에 인공 호수를 만들거나 강이나 자연호수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호수들은 ‘성스러운 호수’(divine lake 혹은 sacred lake)이라고 일컬어졌다.그림 2 전형적인 탑문식 신전의 평면 구조, 심우갑, 조희철 옮김(비난트 클라센), 서양 건축사 , (서울 : 대우출판사, 1998), 23쪽.1. 스핑크스의 길(행렬로)신전으로 들어서는 출입구 홀은 하나의 영역으로 선착장, 키오스크, 바깥 출입문, 행렬로 등으로 구성되었다. 선착장에서부터 바깥 출입문 사이에는 일정한 길이의 길(processional way)이 나 있었다. 이 길과 행렬로에는 스핑크스와 같은 수호신을 표현한 상들이 놓여있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룩소르 신전의 바깥 출입문 앞에 있는 스핑크스의 길과 카르나크 대 신전에 있는 스핑크스의 길이 있다. 카르나크 대 신전의 경우 신전으로 이어지는 길 양 옆에 스핑크스를 닮은 조각상이 나란히 존재해 ‘스핑크스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실제로 이 조각들은 아문 신의 상징인 숫양이다. 출입구 영역을 지나면 신전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온다. 행렬로는 제식행사 때 장묘용 방주와 신상이 지나가는 길의 역할을 했고, 정박하는 장소 역할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방주와 신상이 놓이는 제단만을 제외하고 행렬로는 비어있다.2. 오벨리스크오벨리스크(obelisk)는 그리스어이며 고대 이집트에서 테켄(Tekhen)이라고 불렸다. 오벨리스크는 태양을 상징하는 구조물이면서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기도 했다. 제 5왕조(BC 2560~2420년 경) 시기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초창기에는 피라미드의 앞쪽에 건립되었다가 신왕국 시대인 BC 16세기경부터 신전의 필론 앞에 2개의 쌍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오벨리스크는 신전 입구의 양편에 서 있는데 두 개가 한 쌍의 역할을 해 좌우대칭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룩소르 신전의 경우에 신전 앞 양쪽에 각각 높이가 낮은 오벨리스크를 설치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신전의 높이가 더 높아 보일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거대한 돌 하나로 조각되었다. 사각추처럼 생겼지만 위로 갈수록 점점 가늘어져서 끝이 뾰족한 사각뿔 모양이다. 기둥 4면에는 상형문자가 새겨져있고 중앙부분에는 배흘림(entasis) 기법이 이용되었다. 오벨리스크를 만들 때 주로 이용된 돌은 붉은색 화강암으로 아스완의 채석장에서 나온 것이다.3. 필론(탑문)그림 3 호루스 신전의 첫 번째 필론, 이집트 아스완 주, 기원전 237년부터 기원전 57년까지 건설, 석재, 36m, flickr필론이란 문(gate)을 뜻한다. 출입문이 바깥과 안으로 구분되면서 안 출입문은 탑문이 되었다. 탑문은 가운데에 문이 뚫리고 양 옆으로 탑을 갖는 출입문 형식을 말한다. 신전의 입구를 사이에 두고 2개의 탑과 같은 높은 벽이 있는 곳을 흔히 필론이라 지칭한다. 이집트 건축의 벽은 벽을 안쪽으로 기울여서 쌓는 방식을 이용했고, 음각 모양의 몰딩을 사용했다. 탑은 마름모꼴 형태를 했으며 높이가 30미터 안팎이었다. 필론은 고대 이집트의 표준적인 신전 정면에 세워지는데, 신전의 방어기능을 했다. 또한 상징적인 역할도 했다. 탑문의 벽면에 4~10여개에 이르는 깃발들이 꽂아져있었다. 가장 큰 깃발은 높이가 60미터에 이르렀고 무게도 5톤이나 나갔다. 탑문 앞에는 파라오상, 군인상, 수호신상과 같은 거석상이 놓여있기도 했다. 이들은 20여 미터의 높이를 자랑했다. 일반적으로 필론은 하나의 신전에 1기가 세워지는데, 카르나크의 아몬 신천처럼 후에 추가되어 다수가 된 예도 있다.4. 중앙뜰(중정)중앙뜰은 중정이라고도 하며 탑문을 지나서 열주전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거쳐 지나가야하는 방이었다.5. 열주전열주전에는 기둥들이 빼곡하게 들어서있다. 그 이유는 이집트에 하늘이 기둥에 의해 받쳐 진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열주전에 들어선 기둥들이 하늘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둥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식물문양이 있는데 이는 자연신을 모시는 이집트 종교관과도 상관관계가 깊다. 자연신이 하늘과 땅 사이에 만들어낸 만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자연주의적 장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파라오의 업적이 새겨진 경우도 있는데 기둥마다 새겨진 그림과 글자가 모두 다르다. 카르나크 신전의 경우 열주전에 134개의 기둥이 들어서 있으며 기둥들의 높이는 24미터이다.6. 제실(신전)제실은 성역이라고도 부르는데 봉헌실과 내성소의 순서로 구성되어있다. 주변이 부속실로 둘러싸여있고, 지붕이 덮여있는 구조였다. 이곳에는 파라오와 성직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건물 자체가 높고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봉헌실에는 제물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제단과 제식을 진행하는 파라오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에게 제실은 직접 들어가서 기도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신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파라오의 조각 앞에서 기도를 하지는 않았다. 봉헌실을 지나면 가장 안쪽에 내성소라는 신전의 중심적인 공간이 있었다. 내성소는 이집트 신전에서 신이 머무는 거처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내성소는 보통 비어있었는데, 신을 찬양하는 내용의 제문이 벽과 기둥에 새겨져 있고, 신의 조각상만이 안에 있었다. 그 옆에는 방주 신전이 있었다. 신이 이승과 저승을 오갈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방주를 놓기 위함이었다.그림 4 데보드 신전의 내부, 마드리드, 기원전 200년경, 석재, 32000 meters, egyptian holiday.데보드 신전은 통로 하나에 두 개의 작은 입구가 신전의 앞 쪽에 위치하는 구조이다. 이 양식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전에 나타난 후기 이집트 건축에서 나타났고, 당대의 신전들은 보통 이러한 구조로 구성되었다. 다만 통로 양 옆에 나열되어 있는 스핑크스는 보이지 않는다. 와 비교를 했을 때 데보드 신전에는 파라오의 거대한 조상이나 오벨리스크, 엎드린 동물상은 없지만 이들의 역할을 대신하는 두 개의 입구가 있다. 즉 B, C, D의 역할을 2개의 관문들이 해낸 것이다. 내부의 구조를 보면 전형적인 탑문식 신전의 내부이다. 중정, 열주전, 지성소, 부속실 등이 내부에 존재한다. 다만 가장 큰 차이점은 신전에 지붕이 있다는 것이다. 신전에 지붕이 있는 것은 후기 이집트 신전의 새로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왕국 시대에 건축된 고대 신들의 신전은 신과 용도, 그리고 시기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표준적인 형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체능| 2024.01.18| 7페이지| 1,500원| 조회(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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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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