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인 영화, 핵소 고지201814036 박수빈실화를 각색한 영화 핵소 고지,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부터가 각색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그 경계선을 찾는 일이 그렇게 모호하진 않다. 나는 감독과 영화 제작자들이 이 영화를 제작한 이유와 주인공에게 담긴 애정,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초점을 두고 관람했다. “데스먼드 잠깐만 기다려”라는 영화의 첫 대사를 시작으로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데스먼드와 그의 동생 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할은 “데스먼드, 기다려, 있어 봐”라는 말을 한다. 처음엔 그저 넘긴 이 대사가 복선이다. 어릴 적 데스먼드에게 요구하는 ‘기다림’과 전장 속 전우가 요구하는 ‘기다림’은 그리고, 영화 중간중간 데스먼드가 부상자들을 바라보며 뱉는 밭은 숨 같은 ‘기다려’라는 말의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경계심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데스먼드 도스가 동생과의 몸싸움에서 우발적으로 동생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친 일이다. 도스는 충격으로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그런 도스와 배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영화는 크게 전쟁과 종교로 구성된다. 중세시대는 서로마제국 멸망부터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봉건적인 사회 속에서 교회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였고, 종교적인 접근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던 시기였는데 데스먼드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종교이다 싶을 정도로 중세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가 중세시대에 태어났다면 오랜 십자군 전쟁으로 부상자를 간호하기 위해 구성된 군인 남성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6계명, ‘살인하지 말라’ 도스의 눈에 들어온 문장으로부터 그는 종교 그 자체의 삶을 살아간다. 슬로우모션으로 주변상황과 대사가 느리게 오버랩되며 오직 데스먼드의 표정에만 주목하게 된다. 마치 시공간이 멈춘듯한 이 장면은 첫 번째로 데스먼드가 비폭력 주의자가 되는 계기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십계명에 전쟁은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은 무교이지만 조물주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빚었으리라 믿거늘 전쟁이 웬 말인가 싶다. 그저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본인을 신으로 숭배하고, 찾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나온 모순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종교적인 문제이므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힌다.병원에서 만난 데스먼드의 미래 배우자인 간호사 도로시는 꼭 간호사여야 했다. 그저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치부하기에는 당찬 여성이지만 교회에서 일하던 데스먼드의 ‘의사’라는 꿈을 다시금 꾸게 하는 전환점이면서도 둘의 서툰 연애는 보는 이의 없던 연애감정도 생기게 한다. 한 번쯤은 이런 가슴 뛰는, 거짓 없는 진솔한 사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후에 도스는 결혼식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도로시는 그가 군부대 독방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음에도 그를 믿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도로시는 그의 또 다른 신앙을 의미했다. 데스먼드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절대적인 믿음과 같은 맥락이다. 신이 그를 사랑했음을 깨닫는다.간호학 개론을 공부하면서 나이팅게일이 간호사 자격증을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를 핵소 고지를 통해 깨달았다. 간호는 단순히 직업정신만으로 임할 수 없으며,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데 참전 용사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 청년들이 간호사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웹툰 쿠베라는 어떠한 세계관에서 일어나는 판타지적인 전쟁 이야기로 이러한 문장이 나온다. “악인은 없지만 패자는 있는 싸움”, 전쟁은 폐허와 고통이라는 전제하에 승자와 패자를 가릴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정복욕과 흔히 말하는 윗선의 정치질로 인해 온 국민이 상처받는 비극일 뿐이다. 이러한 전쟁에서 살인을 금하는 하나님의 독실한 신자이자 도로시를 고향에 두고 의무병으로 자원입대한 데스먼드를 이해해보려 한다. 나는 그를 영웅이라 칭하겠다.데스먼드의 아버지는 참전 용사이다. 친구들은 전부 전쟁에서 숨진 채 그런 친구들의 묘지에서 술을 마시며 슬퍼하는 게 전부, 그의 독백은 단호하고 비통했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반대에도 군대에 자원입대하지만 두 아들도, 부모님의 입장도 모두 이해가 돼서 더욱 애통한 마음이 들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보면 라이언이라는 아들 다섯 명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섯 명 모두 전쟁에 참전하는데 네 명이 모두 전사하고 마지막 살아남은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일명 에이스팀을 꾸려 찾아가는 내용인데, 이 또한 유명한 영화이다. 네 명의 형이 모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군인의 의무를 다하는 라이언, 심청이에 버금가는 논제이다. 심청이는 효녀일까? 라이언은 효자일까?서브 주인공이 누구냐 묻는다면 나는 ‘스미티’라고 말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도스와 스미티의 반복되는 눈 맞춤 사이에서 그들의 관계의 변화를 찾는 일이 썩 유쾌하다. 첫 번째는 의무병이 아닌 소총병으로 잘못 오게 된 도스와의 달리기 시합에서 맞수 의식을 가지고 견제하는 시선이다. 두 번째는 도스의 행동으로 인해 단체 외출 금지라는 피해를 보았을 때 몰매를 맞게 되는데 이를 구해준 스미티의 ‘왜 그렇게까지 하냐’라는 듯한 시선이다. 세 번째는 전장에서 스미티를 구해주고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전우애를 느끼게 되고, 마지막은 전장에서 죽어가는 스미티를 끝까지 챙기려는 그의 모습과 죽었다며 그를 두고 가라는 또 다른 전우 그리고 죽은 스미티와 눈 맞춤이다.총을 잡지 않는 도스를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 칭하고 돌려보내려 하지만 본인을 양심적 협력자라고 칭한다. 그저 살인만 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스의 주장은 간단명료하지만, 배경은 ‘전쟁’이며 군대에서 그를 용납하기란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처음 정신질환 제대를 시키려 하지만 실패, 취사 동 배제하며 궂은일을 시키고 괴롭히지만, 실패, 소총을 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훈련자격 미달이라며 독방에 가둬 결혼식에 불참시키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상사 직접명령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군사재판까지 이르게 된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싸우는가,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총, 칼을 들고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거늘 흑백논리만을 주장하는 상사의 말은 옳지 않다. 처단해야 할 적이 싸우는 이유도 일맥상통하는 일임에도 말이다.그에게 결국 무기 없이 의무병으로 참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아버지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두 시간 상영시간에서 거의 한 시간을 기점으로 전자는 도스의 생애와 배경, 후자는 전쟁 이야기를 다루는데 끝으로 다가갈수록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진다. 전쟁영화 특유의 이질감이다. 낯선 느낌. 제대로 말하자면 미래에 도래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불안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 영화의 뛰어난 연출력의 배경에는 4년의 준비가 있었지만 촬영은 57일 만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약간의 허구는 있겠지만 폭력과 무기 없이 혼자서 구해낸 약 100여 명의 병사와 그의 신념만은 내 정의감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핵소라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접전, 여러 번을 봐도 적응 안 되는 현실적인 전투장면의 연출력에 감탄한다. 내가 좋아하는 전쟁영화 중에서 아메리칸 스나이퍼나 웰컴 투 동막골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