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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편소설 감상문-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2', 이장욱의 '고백의 제왕', 한유주의 '장면의 단면'을 읽고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2’를 읽고박성원의 문체는 간략하면서도 발랄한 상상력을 토대로, 현실 풍자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자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암울한 내용임에도, 동화적인 어투와 상상력으로 심각성을 한 꺼풀 벗기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여자애, 매미, 청년, 이렇게 세 명의 시점으로 변화를 준다. 자연스러운 시점 변화, 이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애는 아버지를 찾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애의 앞에 아버지를 찾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매미’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매미는 여자애를 사무실로 데려가 도와줄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여자애에게 이제부터는 많은 ‘아빠’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아빠’들이 네가 친자식인지 확인하기 위해 여기저기를 만지게 될 것이라 말한다. 때마침 사라진 누이를 찾기 위해 매미를 찾아간 청년은 얼결에 매미에게 고용되어 여자애가 ‘아빠’의 집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매미에게 고용된 청년은 매일 여자애를 ‘아빠’라는 사람들의 집에 데려다 준다. ‘아빠’들의 집에 다녀온 후로 여자애는 이상한 글을 쓰고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매미를 의심하게 되고 자신이 아동 성추행이라는 범죄의 중간자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견딜 수 없던 그는 결국 여자애를 데리고 매미의 눈을 피해 도시로부터 달아난다.‘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제목과 이 소설의 내용을 연관시켜 볼 때, 내 생각에 도시는 가해자와 가해자에 의해 상처를 입는 당하는 피해자, 그 모습을 외면하는 방관자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도시를 이루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의 모습을 각각 그려내고 있다. 매미는 삭막한 도시에 이미 깊게 뿌리박혀 인간보다는 도시 문명 속에 자신을 맞추며 악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유형을, 계속해서 상상을 멈추지 않는 여자애의 모습은 바보 같지만 아직 도시의 악에 물들지 않고 꿈을 꾸고자 하는 순수한 인간의 유형을 나타낸 것 같다. 하지만 아빠를 만나고자 했던 여자애의 꿈은 매미에 의해 이용당해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여자애의 순수했던 꿈과 상상력은 점차 암울하고 비 희망적인 형태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청년의 모습은 그 사이에 있는 중간자, 혹은 방관자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청년은 왜 여자애가 여러 명의 아빠를 만나러 가는 것에 처음부터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청년은 누나를 찾고자 했던 자신의 일에 얽매여 눈에 뻔히 보이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청년과 여자애는 도시에서 달아남으로써 어두운 현실을 피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매미와 1대 1로 싸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어떻게 보면 청년의 대처방법은 수동적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도망침은 가장 적극적인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마지막에서 도시를 벗어나는 그들의 모습은 뭔가 통쾌하면서도 아련한 모습으로 남았다.이 소설에서는 유독 재미있는 표현들이 많았다. 곤충 매미의 ‘변태’와 성추행자의 변태적 모습을 표현한 ‘변태’는 전혀 다른 뜻의 단어지만, 서로 연관성을 두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특히 매미가 곤충 매미의 변태를 말하면서 “변태는 나쁜 말이 아니란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마치 성추행범의 변태적 행위를 나쁘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 같아서 아이러니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그리고 묘사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표현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쳐놓은 부분이 많아 지면에 다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선풍기 바람이 닿자 전단과 사진들은 총소리에 놀란 새들처럼 날아올랐지만 이내 머리통이 잡혀 제자리로 돌아왔다. 벽지는 시든 채소처럼 메말랐고 건조했다. 입을 앙다문 책상과 뼈를 드러낸 채 서 있는 기둥이 있을 뿐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도시는 그에게 사막일 수 없는 사막이었다. 어쩐 일인지 그는 도시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황량하고 모래알만 날리는 사막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버지 때문인지 아닌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혈관을 타고 떠다니는 혈구처럼 그의 몸속 어딘가에 사막의 모래가 항상 웅크리고 있었다. 사막의 거친 모래는 그의 머릿속에 숨어 있기도 했고 가끔씩은 옆구리나 심장 뒤쪽,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기도 했다. 어쩌다가 한 번씩은 성기 끝에 머물러 있었는지 힘없는 정액이 되어 그의 눈앞에 툭툭 내던져지기도 했다. 천만이 넘는 인구, 폭우, 범람, 어지러울 정도로 밝음, 도저히 사막일 수 없는데도 도시가 사실은 사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룻밤에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가 새로운 모래 언덕이 생겼다 사라지는 사막처럼, 도시는 자고 나면 새 간판이 들어서 있었고, 아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이사를 갔으며, 거리는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은 사막에 사는 벌레나 동물처럼 활동 시간에 맞춰 출근했고, 사막의 곤충이나 동물들이 모래 안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사람들은 집 안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 어디에도 족적은 남아 있지 않았고, 있는 것은 모래알처럼 손에 쥐면 빠져나가는 허망함과 풍화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제 갈 길을 아는 개들이 부러웠다.이장욱의 「고백의 제왕」을 읽고처음 이장욱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글의 상황과 묘사, 대화내용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탄탄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그의 문체는 글의 전개에 설득력을 더 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백의 제왕’처럼 나의 상황을 고백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타인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행여나 고백을 한다 하여도 이 글에 등장하는 ‘고백의 제왕’처럼 모든 것을 다 고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고백의 제왕’은 나이 든 여자와의 첫 경험을 했던 중학교 3학년 때의 이야기, 두 집 살림을 하며 번번이 엄마를 때리곤 했던 아버지를 죽이려고 칼로 찔렀던 일, ‘너는 왜 사니?’라고 노골적인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던 누이에게 자살하라고 말했던 것과 그 후 실제로 자살한 누이의 이야기, 우연히 여자동기생인 J와의 성관계로 인해 그녀가 임신을 했고 낙태를 했던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부끄러움 없이 말한다. 이러한 ‘고백의 제왕’을 모두가 꺼려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을 경청한다. 더욱이 아이러니한 것은 겉으로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멀리했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그를 만나면서 자신들의 은밀하고 추악한 고백을 하는 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송년회에 나온 화자와 친구들은 따분한 술자리에서 ‘고백의 제왕’을 떠올리고 그를 부르기로 한다.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고백의 제왕’에게 친구들은 오늘은 무슨 고백을 할 거냐며 비아냥대지만, 고백의 제왕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술을 마실 뿐이다. 잠시 후, 입을 다물고 있는 그와 달리 여태껏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만 하던 다른 친구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민 간 친구에 대한 험담, 친구의 마누라와 놀아났었다는 자랑 등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그들의 고백과 ‘고백의 제왕’이 했던 고백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말하기 때문에 덩달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그들과는 달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통과 아픔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자 먼저 이야기를 꺼낸 ‘고백의 제왕’은 엄연히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현시대는 남에게 자신을 꺼내기 보다는 꽁꽁 감추며 살아가는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며 소외감을 안고 살아간다. 고독과 소외감은 개개인의 정신에 피폐함을 낳고 사람들과의 대화 단절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의 단절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죽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부끄러운 부분을 자세히 말하는 것, 그것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고백의 제왕’의 모습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나 자신도 ‘고백의 제왕’처럼 솔직해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20.03.08| 4페이지| 1,000원| 조회(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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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상호 시인의 멸치의 표정 김싱 및 분석
    일상의 소재로 노래한 삶과 죽음-길상호의 을 중심으로-시를 쓴다는 것에 있어서 소재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이다. 왜 시의 소재는 독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어떤 소재로 쓰는 것이 더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겪은 것들을 모두 시어로 살리고자 노력한다. 어렵고 특별한 소재만이 시의 소재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 시의 대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삶의 언어를 좀 더 운율감 있고 매끄럽게 다듬은 매력적인 언어이다. 시는 곧 우리의 삶과 밀접한 위치에 놓여 있다. 우리의 삶은 뭐든지 시가 될 수 있고 모든 시 속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 희로애락 등이 담겨져 있다. 시를 쓰기 위해 무엇을 쓸까 고민하기에 앞서 ‘나의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시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조명한 시가 있다. 그 시는 길상호의 이라는 시이다.냉동실을 여는 순간봉인된 채 몸이 굳은 한 무리의 시체들,내가 보아온 사람들의 어떤죽음보다더 아픈 얼굴로 무장한 멸치들,염이라도 해줘야 풀릴 것 같은표정을 하나씩 손바닥에 올려놓는다눈두덩보다 튀어나온 눈들이 모두 하얗다시력을 잃고서야 비로소 어둠이 걷힌 눈,저 눈이 바라보는 건과거일까 미래일까펄펄 끓는 가마솥을 마지막으로저승으로 헤엄쳐 도망갔으니 너의 생은뜨거웠을까 차가웠을까몸 속 가시마다 훑어내 대답을 찾아보아도너의 침묵은 죽음보다 뻣뻣하다다시 물로 끓여내야몸에 숨겨둔 말 우려낼 것인가늘 죽음이 궁금한 나는멸치의 표정 하나씩 떼어신문지 위에 한 무더기 무덤을 쌓는다이 시는 평범한 소재로 인간으로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 즉 삶과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 일상적이라 여겨왔던 시어가 인간의 인생을 얼마나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고 있는지를, 이 시의 내면을 파고들어 살펴 볼 작정이다.시를 읽을 때 산문시는 운율보다는 상황묘사와 이미지의 나열에 주력을 다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길상호의 시도 산문시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시들이 많다. 이 시도 행과 행, 연과 연의 구분이 없다면 산문시처럼 보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행과 연의 구분에 따라 의미를 생각하며 끊어서 읽다보면 나름대로의 운율이 형성된다는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을 의미론적으로 분절해보면 다음과 같다.냉동실을|여는 순간봉인된 채|몸 굳은| 한 무리의 시체들,내가 보아온| 사람들의| 어떤죽음보다더 아픈 얼굴로|무장한|멸치들,염이라도|해줘야|풀릴 것 같은표정을 하나씩|손바닥에|올려놓는다눈두덩보다|튀어나온 눈들이|모두 하얗다시력을 잃고서야|비로소|어둠이 걷힌 눈,저 눈이|바라보는 건과거일까|미래일까펄펄 끓는|가마솥을|마지막으로저승으로|헤엄쳐|도망갔으니|너의 생은뜨거웠을까|차가웠을까몸 속 가시마다|훑어내|대답을 찾아보아도너의 침묵은|죽음보다|뻣뻣하다다시|물로|끓여내야몸에|숨겨둔 말|우려낼 것인가늘|죽음이|궁금한|나는멸치의 표정|하나씩 떼어신문지 위에|한 무더기|무덤을 쌓는다의미론적으로 분절해보면, 이 시는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저승으로|헤엄쳐|도망갔으니|너의 생은’과 ‘늘|죽음이|궁금한|나는’을 제외하고는 두 박자와 세 박자로 번갈아가며 분절되고 있다. 음악적 분절을 살펴보면 2박자와 3박자를 중심으로 분절되어 의미론적 분절과 음악적 분절이 서로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냉동실을|여는 순간|봉인된 채|몸 굳은| 한 무리의|시체들’처럼 4음절-4음절, 혹은 3음절-4음절로 나뉘어 운율을 형성하며, 시 속에서 운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더 살펴보자면 시 행의 끝부분에 오는 ‘~을까’ 혹은 ‘~보다’ 등이 있다.앞에서 이 시가 산문시와 유사하다고 언급했던 이유는 틀에 박힌 운율을 찾아보기 힘들면서도, 시 속에 일정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의 간단한 스토리를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① ‘나’는 냉동실을 연 순간 딱딱하게 굳은 멸치를 본다.② 염이라도 해줘야 풀릴 것 같은 아파보이는 얼굴의 멸치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③ ‘나’는 손바닥 위에 놓인 멸치의 눈을 바라본다.④ 그리고는 멸치의 최후와 멸치의 생에 대해 생각한다.⑤ 멸치의 생에 대한 답을 찾고 싶지만 멸치는 침묵한다.⑥ 다시 살아날 수 없는 멸치의 답을 듣기 위해 멸치를 물에 끓이기로 한다.⑦ ‘나’는 신문지 위에 멸치의 머리(표정)를 떼어 놓는다.이처럼 일곱 가지로 나눠진 이야기는 한마디로 냉동실에서 멸치를 꺼내어 그 머리를 따내고 뜨거운 물에 끓였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 시의 중심 내용인 냉동실에서 꺼낸 멸치의 머리를 다듬고 물에 끓여 국물을 우려내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모습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멸치를 소재로, 과연 시인은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시의 발단은 “냉동실을 여는 순간”에 있다. 냉장고를 열었고 그 곳에 “봉인된 채 몸이 굳은 한 무리의 시체들”을 보는 화자가 있다. 여기서 “봉인된 채”라는 말은 한 때 푸른 바다를 헤엄치며 삶의 자유를 누렸을 멸치들의, 이제는 죽음 앞에 꼼짝없이 굳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체들”에서는 단순히 식용으로 사용되는 멸치로서의 모습이 아닌 하나의 생명을 지녔던 ‘삶의 존재’로서 멸치를 바라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 뒤에 이어지는 3행에서 “내가 보아온 사람들의 어떤죽음보다 더 아픈 얼굴로 무장한 멸치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넓은 바다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오던 멸치들이 인간의 무력에 의해 잡혀 어두운 최후를 맞이했기에, “내가 보아온 사람들의 어떤죽음보다 더 아픈 얼굴”은 아니었을까 싶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가 바라보는 굳은 멸치의 눈은 하얗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시력을 잃고서야 비로소 어둠이 걷힌 눈”은 인간의 모습과도 견주어 볼 만하다. 시력을 잃었다는 말은 곧 죽음으로 인해 눈을 감았다는 의미이며, “시력을 잃고서야 비로소 어둠이 걷힌 눈”은 우리가 눈뜨고 살아가는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어둠을 걷히게 하려면 시력을 잃는 것, 즉 죽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어둠으로 휩싸인 눈을 지닌) 삶을 부정적으로 보고, (어둠이 걷힌 눈을 지닌) 죽음을 직시했다는 것이다.‘나’는 죽은 멸치에게 생에 대한 질문을 하지만 멸치의 “죽음보다 뻣뻣”한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다. 죽음이 궁금한 ‘나’는 “다시 물로 끓여내야|몸에 숨겨둔 말 우려낼 것인가”라는 말을 하며 멸치의 머리를 떼어 신문지 위에 놓는다. “멸치의 표정 하나씩 떼어|신문지 위에 한 무더기 무덤을 쌓는다”에서 무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앞서 나온 “염이라도 해줘야 풀릴 것 같은 표정”들을 하나씩 떼어 무덤을 만드는 행위는 말 그대로 멸치를 위한 ‘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서 화자가 궁금해 했던 죽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더불어,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다가올 죽음에 대해 담담한 모습을 나타내려고 한 것은 아닌가 싶다. 멸치의 죽음 앞에 자꾸 말을 걸어오는 ‘나’의 모습에서 죽음은 결코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다. 죽음은 호기심이며 알고 싶은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0.03.04| 4페이지| 2,000원| 조회(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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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림 시인론
    전통의 계승과 민중의 삶-신경림론-1. 전통의 계승과 민중의 삶의 모습신경림은 1955년 『문학예술』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한국 시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시인들 중 하나이다. 그는 주로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하며, 전통 민요 ? 굿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였다. 또한 그는 이러한 전통성의 수용과 더불어 민중들의 삶과 애환에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시인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또한, 민중의 삶을 소재로 역사의식과 민중의식을 시로 형상화한 신경림은 1960년대의 김수영, 신동엽의 뒤를 이은 1970년대의 대표적 참여시인, 민중 시인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신경림은 난해하고 관념적이며 탐미적인 세계를 형상화하는 다른 참여 시인들과는 달리,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의 모순과 억압받는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하였다. 이를 토대로 하여, 이 글에서는 신경림이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민중의 삶과 애환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그와 더불어 전통 민요를 계승하고 있는 시편을 선정하여 분석해본다.2. 향토적 소재와 민중의 삶신경림의 시는 향토적인 소재를 통해 농민들의 생활 감정을 노래하며 민중에 가까이 다가간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의 궁핍한 삶, 황폐해진 광산, 떠돌이 노동자들, 도시 변두리의 뿌리 없는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갈대」전문위의 시는 신경림의 공인된 처녀작으로, 1956년 『문학예술』지에 추천된 「갈대」이다. 여기서 ‘갈대’는 소외당하고 있는 민중들을 말하며, ‘울음’은 민중의 삶 자체를 말한다. 민중들은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가며 흔들리고 상처받는다. 그들은 삶의 상처를 속으로 여미며 울고 있기에, 민중의 삶을 흔들리는 ‘갈대’에 비유한다. 삶이 흔들리는 것을 외부현실인 바람이식에 젖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흔들리는 것이 다름 아닌 본인의 울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절망과 패배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여기에서 ‘울음’은 가난한 민중들의 울분으로 구체화된다. ‘울음’은 민중의 삶이며, 삶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는 구체적 방법이라고 본다. ‘갈대’의 이미지에서 민중은 흔들리는 약한 존재이지만 세찬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힘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중략…)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고개 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농무」부분「농무」는 농민들의 답답하면서도 원통한 한의 정서를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소외된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그들의 한과 울분을 서사적 구성을 통해 담아냈다. ‘농무’는 농경사회에서 풍년이 되기를 비는 제사의식의 하나인데, 농민들의 허망한 마음을 호소하고 고달픈 삶을 해소하는 농무에는 그들의 즐거움과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이 시의 배경이 되는 것은 학교 운동장의 텅 빈 가설무대이다. 이는 농무가 진행되고 있는 무대가 아니라 농무를 끝낸 공간이며, 농민의 소외감과 허탈감을 부각시킨다. 신경림은 이 시에서 농민을 겉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의 삶의 이면을 주시하였다. ‘텅 빈 운동장’은 소외된 농민들의 삶이며 현실이다. 그들은 구경꾼이 모두 다 가고 난 뒤의 허망함을 느끼며 다시 시장거리로 나선다. 쪼무래기들과 철없는 처녀들만 바라보는 농무이지만, 그래도 추는 이들은 제 흥에 겨워 거리로 나선다. 꽹과리를 치고 날라리를 불며 가난으로 얼룩진 그들의 삶의 애환을 표출하는 것이다.고갯짓을 하고 어깨춤을 추는 동안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도, 발버둥 치며 살아 없는 농민은 농무를 추며 서러움을 체념하는 것이다. 이 체념의 상태에서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라는 역설적 표현은 ‘체념’과 ‘신명’이 함께 응축되면서 시적 긴장감을 준다. ‘농무’는 농민들, 집단의 정서를 표출하는 ‘마당’이다. 현대사회에서 그 의미가 약화되어가고 있는 토속적 소재, ‘농무’를 통하여 농민들의 애환을 표출하였다.흙 묻은 속옷 바람으로 누워아내는 몸을 떨며 기침을 했다.온종일 방고래가 들먹이고메주 뜨는 냄새가 역한 정미소 뒷방.십촉 전등 아래 광산 젊은 패들은밤 이슥토록 철 늦은 섰다판을 벌여아내 대신 묵을 치고 술을 나르고풀무를 돌려 방에 군불을 때고,볏섬을 싣고 온 마차꾼까지 끼여판이 어우러지면 어느새 닭이 울어버력을 지러 나갈 아내를 위해 나는개평을 뜯어 해장국을 시키러 갔다.경칩이 와도 그냥 추운 촌 장터.전쟁통에 맞아죽은 육발이의 처는아무한테나 헤픈 눈웃음을 치며우거지가 많이 든 해장국을 말고.「경칩」전문경칩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는 때이다. 즉 길고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때이니 겨우내 움츠리고 살았던 사람들의 삶도 기지개를 펴며 봄날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시 속의 사람들은 하잘것없는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이러한 절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 이슥토록 노름과 술판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그들에게 있어 “경칩이 와도 그냥 추운 겨울의 촌 장터”는 어둡고 추운 긴 겨울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짙은 음영으로 어른거리는 ‘열린 공간’은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태산같은 걱정이 난무하는 공간이며 이 걱정을 잊거나 극복하기 위해 술판과 노름판을 벌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올해에는 닭이라도 쳐볼거나.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하얗구나. 눈이여 쌓여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오종대 뒤에 치것은 우리뿐.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볼거나.「겨울밤」부분위의 시에는 눈 오는 밤 방앗간 뒷방에 모여 있는 젊은이들의 동태나 화제가 눈에 선하게 제시되어 있다. 더불어 겨울밤에 펑펑 쏟아지는 눈과 농민들의 울적한 심사를 대조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눈 오는 밤은 단순한 배경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라고 적을 때, 그것은 실제 겨울밤 정경의 서술이지만 풍요와 평등의 해방적 이미지 구실을 하고 있기도 하다. 색채의 상징성으로 볼 때는 무구함과 순결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흰 눈은 서설(瑞雪)로 표현되는 풍요와 풍년의 예고이며, 온 세상을 평준화하는 평화와 평등의 이미지이다. 세상의 온갖 것들은 새하얀 눈에 덮여서 제 모습을 감춘 채 편안하게 휴식하거나 모든 갈등이나 번민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온갖 근심걱정으로 들끓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눈이 그 깨끗한 빛깔로써 어떤 평화의 경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인간 이외의 사물들에 대해서일 뿐이지 결코 인간의 비애를 덮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자신들의 삶 자체를 그 눈이 파묻어주기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3. 민요의 계승70년대 중반 신경림은 목적의식적인 민중문학의 형식, 즉 민요의 가락에 관심을 돌린다. 이 관심은 그 후 10여년 정도 지속되는데, 이 기간 중에 나온 시집이 『새재』(1979) 『달넘세』(1985)와 장편서사시 『남한강』(1987) 이다.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중략…)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목계장터」부분이 시는 신경림의 두 번째 시집 『새재』에 나오는 「목계장터」의 일부분으로 민요의 정서와 가락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목계장터시는 기본적으로 3? 4조 내지는 4? 4조의 리듬을 바탕으로, ‘하늘은 날더러~/땅은 날더러~’라는 구절이 조금씩 변형되어 반복되면서 시 전체의 규칙적인 리듬을 이끌고 가는 서술 형태를 취하고 있다.또한, 민요는 일정하게 호응하는 조사와 어미를 활용을 통한 관용적 표현의 독특한 문장 구조가 있는데 이 시에서는 ‘~은(는), ~이, ~네’ 등의 조사와 어미를 교체 반복하는 관용적 표현을 활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은(는) ~이 되라 하고~’, ‘~은(는)~이 되라하네’ 의 관용적 어구, 시행의 병열과 교체 반복으로 일정한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두 행에서는 1ㆍ2행에 변주와 반복을 사용하여 구조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잡으라네 갈가리 찢긴 이 손으로피묻은 저 손 따뜻이 잡으라네햇빛 밝게 빛나고 새들 지저귀는바람 다스운 새 날 찾아왔으니잡으라네 찢긴 이 손으로 잡으라네.꺾인 목 잘린 팔다리로는 나는 못 가,피멍든 두 눈 고이는 못 감아,못 잡아, 이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피묻은 저 손을 나는 못 잡아.되돌아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꺾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씻김굿」부분이 시는 율격이 3음보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한 음보 안의 음절수에 있어서나 한 행을 구성하는 음보들의 단위에 있어서는 매우 유연하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리듬의 기계적 반복성과 단조로움을 확연하게 벗어나고 있다. “밤도 낮도 없는/저승길/천리만리”, “꺾인 목/잘린 팔다리로는/나는 못 가”, “못 잡아,/이 찢긴 손으로는/못 잡아”에서처럼 한 음보가 6,7음절로 늘어나는가 하면, “햇빛 밝게 빛나고 새들 지저귀는”, “되돌아 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 “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처럼 3음보의 흐름에 거역하는 4음보적 변격(變格)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시의 이런 독특한 율격적 질서는 서정적 화자가 죽은 혼령이 굿판에서 행하는 독백적 사설의 내용에
    인문/어학| 2020.03.04| 7페이지| 2,000원| 조회(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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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감상] 자연에게 내미는 화해와 공존의 손길-원령공주를 보고
    자연에게 내미는 화해와 공존의 손길-‘원령공주(もののけ姬, Mononoke Hime)’를 중심으로-1. 머리말산업화로 인해 인간의 삶은 보다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산업 발달의 이면에 자리한 자연 파괴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만 갔다. 특히 자연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간들의 사고방식은 자연을 황폐화시키기에 충분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자연의 죽음은 곧 인간의 죽음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각종 매체에서는 자연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산업화에 열을 올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차츰 자연으로 돌려진 것이다.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환경파괴의 심각성과 자연의 소중함을 드러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 자연과 인간의 대립 및 화해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원령공주’ 또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숲을 파괴하려는 인간과 이를 지키려는 자연과의 대립구도를 그린 작품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본문에서는 ‘원령공주’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며 작품 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들을 파악해보고자 한다.2. 자연과 인간의 대립구도‘원령공주’에는 자연과 인간의 외적 대립이 중심적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등장인물의 설정에서부터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자연을 지키려는 들개와 ‘원령공주’라 불리는 산, 그리고 자연을 파괴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인간을 대변하는 에보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둘의 대립 속에 중립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아시타카이다. 마을을 습격한 재앙신을 물리치고 오른팔에 저주를 받은 아시타카는 산과 에보시의 사이를 중재하는 인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아시타카가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부터, 산과 에보시의 갈등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총을 들고 산을 죽이려는 에보시와 아무런 무기도 없이 맞대응하려는 산의 싸움을 보고 아시타카는 저주의 힘으로 둘을 기절시킨다. 이것은 에보시의 자연정복에 대한 욕망과 자연을 지키기 위해 불리한 상황에서 싸우려고 덤비는 산의 처절한 복수를 가운데에서 막아준 것이라 생각된다. 이 밖에도 자연을 의미하는 시시신, 재앙신 등과 인간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상징하는 에보시와 지코의 모습이 대립된 형태로 등장한다.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① 아시타카 : 마을을 습격한 재앙신을 물리치다 팔에 저주를 받았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갈등에 중간자적인 역할을 한다.② 산 : 들개에게 길러진 소녀로, ‘원령공주(모노노케히메)’라고 불린다.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자신을 들개라고 칭하지만, 자연도 인간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 있다. 아마도 이러한 특성 때문에 ‘원령’이라 불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들개들과 함께 자연을 상징하는 인물이다.③ 들개 : 산을 자신의 가족처럼 키워왔으며, 산과 함께 인간을 대적하며 싸운다.④ 시시신/데다라신 : 생명과 죽음을 다스리는 신적인 존재이다. 자연의 생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낮에는 사슴과 흡사한 시시신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밤에는 데다라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⑤ 에보시 :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문명 발전을 이루어나가려는 여성 지도자로, 산과 대립하는 인물이다.⑥ 지코스 : 시시신의 목을 훔치는 인물로, 욕심이 많고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기회주의자이다.또한 배경을 통해서도 자연과 현대문명의 대립구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고요하며 꽃과 풀이 무성한 푸르른 숲 속의 풍경, 끊이지 않는 소음과 황폐한 마을의 모습을 함께 나타내면서 자연과 문명의 대조적인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숲의 평온함이 인간에 의해 깨지는 장면을 통해 문명 속에서 자연이 받는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3. 작품 속 숨겨진 의미‘원령공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도 등장인물과 장면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는 작품의 주제를 더욱 부각시켜 준다. 먼저 작품의 가장 첫 부분에, 쓰러지는 나무들과 구더기로 뒤덮인 재앙신이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파괴된 자연과 분노한 자연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수없이 많은 구더기가 뿜어져 나오는 재앙신의 괴기스러운 모습은 감독이 작품을 만들 때 의도한 바가 아닐까 싶다. 검붉은 구더기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모습과 들끓는 구더기 사이에서 번뜩이는 재앙신의 눈이 보는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들개나 멧돼지의 크기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인간보다 더 큰 이유는 자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의 모습을 무섭고도 크게 그려냄으로써 인간들에게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숲 속에 있던 코다마들도 나름대로 갖고 있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다마들의 벌거벗은 모습은 태초의 인간을 연상케 한다. “가만두면 해치지 않아요. 숲이 풍요롭다는 증거죠.”라는 아시타카의 말과 시시신이 총에 맞아 죽는 순간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던 코다마들의 모습으로 보아, 코다마는 자연 그 자체의 순수한 모습인 동시에 시시신의 분신임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숲이 평온할 때는 밝게 뛰어놀다가 시시신이 죽는 순간 생기를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코다마는 자연의 전부이자 일부가 아닐까 싶었다.그리고 나무를 심는 성성이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복구하고자 하는 자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자연이 스스로 회복을 하는 것보다 인간들이 훼손을 하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연의 회복 속도가 인간의 훼손 속도를 따라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나무를 심지 않겠다.”는 성성이들의 분노어린 말은 자연의 회복력만을 믿고, 자연을 돌보지 않은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깨닫게 한다. 에보시가 시시신의 머리를 얻으려고 하는 이유도 시시신의 피가 환자들을 치료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두 가지 에피소드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갖고 있는 맹목적인 기대와 요구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은 자연을 함부로 대하고 파괴하면서 자연에게 무조건적인 희생과 도움을 강요하는 것이다. 자연에 회복력이 잠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이 갖고 있는 무한한 욕심으로 인해 그 회복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연의 회복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연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또한 에보시의 모습에서 선과 악의 양면성이 공존함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환경을 파괴하며 인간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모습과 여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병자들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주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보시는 자연에게 있어서는 악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여자들, 문둥병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이끌어주는 지도자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현대사회가 자연 파괴라는 단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남녀평등, 장애인 고용 등의 장점을 지니기도 하므로 비판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원령공주’는 악역에게도 좋은 면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 인물의 캐릭터가 한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아준다.4. 자연과 인간의 화해와 공존‘원령공주’는 봄의 미토스를 사용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갈등으로 시작됐던 이야기가 자연과 인간의 화해로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산을 깎아 그 위에 건물을 세우고, 숲의 생명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인다. 그것도 부족해서 숲의 절대적 존재인 시시신의 목을 잘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쓰고자 한다. ‘원령공주’에서 시시신은 자연 전체를 포괄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시시신이 땅을 밟는 장면에서, 생명의 탄생과 소멸이 한 번에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시시신이 생명과 죽음의 영역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자연의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한다고 본다. 시시신을 죽이려고 에보시가 총을 든 순간 에보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시시신의 모습과 총에 자란 꽃과 풀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언제나 인간을 향해 너그러움과 생명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이 바라던 공존을 외면한 채 에보시는 결국 시시신에게 총을 쏘게 되지만 말이다. 인간에게 머리를 빼앗긴 시시신은 분노하여 밤의 모습이 되고, 인간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앗아가 버린다. 이 장면은 참고 참았던 자연의 분노가 한 번에 터져 나오는 부분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예고하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20.03.04| 5페이지| 2,0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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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를 읽고
    현대적 삶의 불모성-은희경의 「아내의 상자」를 중심으로-1. 은희경의 작품세계은희경은 인간의 본성을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신랄하고 가차 없으며 냉정하게까지 보인다. 그녀가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점은 유머를 통해 섬세하게 심리묘사를 하는 데에 있다. 그것은 이야기꾼으로서 재능과 서정적 감수성이 잘 섞여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은희경은 풍부한 상상력과 능숙한 구성력, 인간을 꿰뚫어보는 신선하고 유머러스한 시선, 감각적 문체 구사에 뛰어난 작가라 할 수 있다.본문에서는 은희경의 1998년 이상 문학상 수상작인 「아내의 상자」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아내의 상자」는 일상의 삶 속에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존재의식을 세련된 감각과 간결한 언어로 깊이 있게 다룬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을 통해, ‘아내의 상자’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며, 일상 속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을 재조명해본다. 더불어 현대적 삶이 안겨주는 불모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2. 일상성과 존재의 소멸「아내의 상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의 일상적인 모습과 존재의 소멸을 중심적으로 담고 있다. 이 글은 화자인 ‘나’의 시각에서 아내를 보고 쓴 관찰자 시점으로 되어있다. ‘나’의 눈에 비친 아내는 상자를 쌓아가고 외출하기를 싫어하며, 잠을 깊이 자는 등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의 표현과는 달리 아내는 신도시의 틀에 얽매인 평범한 삶에 외로워하며 지루해하는 면모를 지닌 여자이다. 이러한 면을 지닌 아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안락의자 옆에 차곡차곡 쌓아둔 상자에 모두 담아 놓을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옆집에 이사 온 여자와 함께 바깥을 돌아다니게 되고, 어느 날 밤 돌아오지 않는다. 아내를 찾아 나선 ‘나’는 모텔에서 알몸으로 누워있는 그녀를 보고 분노에 휩싸인다. 후에 ‘나’는 아내를 정신병원 혹은 요양원 같은 곳으로 격리시키게 되고, 그녀는 사회적으로 소멸되고 만다.평상시에 화자는 그녀에 대해서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아내의 삶에 있어 하나의 단면조차 되지 못했다. 화자가 알고 있는 것들은 ‘미술 대학을 지망했지만 실패하고 전문대학 비서학과를 나와 조그만 오퍼상에 있었다, 적은 월급으로 적금을 붓는 평범한 생활을 했다, 두 명의 친구가 있다, 집안 정돈을 썩 잘한다.’는 사실들이 전부였다.어느 날 아침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우리 집에서는 모든 게 말라 버려요!”그녀의 손에 든 그릇 속에는 모래처럼 뻣뻣하게 마른 밥이 들어있었다. 간장 접시 좀 보세요. 과연 간장은 죄다 증발해 버리고 검게 물든 소금 알갱이뿐이었다. 사과도 하룻밤만 지나면 쪼글쪼글해져요. 시멘트 벽이 수분을 다 빨아들이나 봐요. 이러다가 나도 말라비틀어질 거예요. 자고 나면 내 몸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 몸이 삐거덕거리는 것 같다구요.신도시의 아파트에서 바싹 말라가는 꽃처럼, 서서히 증발되어 가는듯한 아내는 박제된 인형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부당함을 고발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애당초 어떠한 욕망도 없이 삶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진 기계처럼 행동한다. 남편에게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듯 보이던 가정이 아내에게 있어서는 삶을 모두 파헤쳐 황폐화시키는 공간이나 다름없었다. 즉, 아내에게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이 아내의 끊임없는 잠과 갑자기 줄어든 말수, 그리고 읽지 않고 상자 속에 넣어버린 책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것들을 뒷받침 해준다.미술 대학을 포기하고 전문대 비서학과를 나온 아내에게는 애초부터 자신의 정체성이나 꿈을 찾을 공간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내에게는 다만, 이 땅의 숱한 평범한 여인들이 그러하듯, 가정을 꾸리고 살림을 해야 하는 일 밖에는 남지 않았다. 매일 같은 반복, 되풀이해서 말하기도 신물 나는 집안일과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독, 삶에 대한 무감동이 아내를 벽에 걸린 포푸리 화환처럼 바싹바싹 마르게 하는 것이다. 소설 속의 아내에게 있어서 일상이란, 서서히 생의 의욕을 증발시키며 목을 조여 오는 낯설고 고독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3.「아내의 상자」에 내재된 상징적 의미소설 속에서 아내는 상자를 많이 갖고 있으며, 그 안에는 십자수를 놓은 탁자 보, 누렇게 바랜 편지, 삼 개월 만에 유산됐던 아이의 하얀 배냇저고리 등이 담겨 있다. 아내의 상자에는 지난 시간 동안 그녀를 스쳐 지나간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상자는 아내의 추억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상자 속에 든 사물들이 환기시키는 것은 화자가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의 조각들뿐이며, 황폐화된 아내의 내면을 추적해 볼만한 단서는 없다. 이로 볼 때, 상자는 자의식과 무의식, 내면의 흔적과 상처가 담긴 공간이지만 뚜껑을 덮음으로써 아내의 내면이 감추어지고 가려지는 공간인 것이다.하늘도 언제 봐도 대충 그런 색의 지루한 안정의 빛이고 고익의 냄새마저도 도식적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신도시에는 길이 없어요. 덩치가 큰 건물에 다 가로막혀 있어요. 신발을 신고 산책이나 하려고 나갔다가도 길이 다 끊어져 있어서 그냥 돌아와 버려요. 찻길밖에 없어요.신도시는 소설 전체의 공간적 배경이자 상징으로, 서울이 비단 서울에서 끝난 것이 아닌 신도시로 확장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변화와 서울의 삭막하지 않은 생활에의 기대감을 가진 곳이었으나 역설적으로 신도시는 강남에 있었던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규칙성과 인간이 배제된 획일성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더 큰 상처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그녀가 옆집여자를 따라 바깥 세계로의 탈출을 시도해보나 그것이 오히려 더 크게 그녀의 존재를 잠식한다는 점과 맞물려있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옆집 여자가 아내에게 선물로 준 포푸리는 내면과 일상적 삶의 엄청난 괴리를 느끼며, 박제화 되어 하나의 사물이 되어버린 아내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내의 방은 육체의 독립성과 의식의 절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방은 닫힌 상자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로 인해 아내의 내면의 흔적 또한 잘 드러나지 않고 갇혀져 있다.옆집 개 말예요. 그 더러운 개새끼는 곧 굶어죽을 거예요. 죽는 날까지 토실토실한 개한테 가까이 달라붙겠죠. 뻔뻔스럽게도 그 개가 크는 것까지 가로막으면서 말이죠. 빨리 죽어 주면 좀 좋아. 개들은 왜 자살 같은 걸 안 하나 몰라.작품의 중간에 등장하는 비쩍 마른 강아지 또한 의미하는 바가 있다. 본래적 자기존재로서 ‘개’는 사람이나 외부 세계에 대해 배타적일 수도 있고 우호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길러져야 하는 애완견은 그들의 기호에 맞게 꼬리를 흔들고 유순해야 한다. 사람에게 길러져야 한다는 현실적 강요에 의해 토실토실한 개는 우성으로 비쩍 마른 개는 열성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내는 열성인 비쩍 마른 개를 자신으로 여기면서 자신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을 그 개에게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아내가 그녀의 안락의자에 파묻혀 잠든 것을 보면 이따금 그때 생각이 났다. 뚜껑이 닫힌 상자들 곁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 그것은 자신을 상처 입힌 세상을 향해 빗장을 지르고 잠들어 버린 그때의 모습과 비슷했다.그리고 작품의 초반부터 아내를 놓아주지 않는 것은 바로 잠이다. 잠을 자는 동안 현실에서 행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무의식 속에서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적으로 본다면, 무엇보다 자기 결함이나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잠이 많다고 한다. 이 글에서 아내 역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잠을 자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을 폭파해도 잠을 자고 있을 만큼 그녀의 현실로부터의 도피, 현실과의 괴리감은 깊다. 아내가 외도를 한 후에 모텔의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은, 아내의 현실과의 괴리감이 더욱 더 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ㅡ지난 발렌타인 데이에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실에서는 수컷 초파리와 암컷 초파리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짝짓기를 하려고 날갯짓을 하며 암컷에게 달려드는 수컷을 암컷이 계속해서 머리로 들이받았습니다. 나중에는 다리로 수컷의 머리를 걷어차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암컷은 수컷이 정액을 뿌려도 알을 낳지 않았다고 합니다.아내가 좋아했을 얘기였다. 나는 물끄러미 화면을 쳐다보았다.ㅡ그 이유는 돌연변이 유전자 때문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팀은 이 실험으로 돌연변이 유전자가 신경 계통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유전자에는 ‘불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불만’이라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영향으로 암컷 초파리는 수컷 초파리를 거부하여 알을 낳지 않았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불만을 가진 암컷 초파리의 자발적 불임을 의미한다. 아내는 자신이 열성적 존재여서 선택 이론에서 도태되어 거세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부분을 통해서는 그 불임이 어쩌면 아내의 자발적인 불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아내에게 자신과 세계의 틀을 요구하는 남편에 대해 그 사랑은 진실이 아님을 깨닫고, 아이를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구나 상품으로 여기는 세상과 남편에 대해 불만을 가진 아내가 자발적 불임을 선택했다는 저항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0.03.04| 5페이지| 2,000원| 조회(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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