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고전서 (四庫全書) >51930898 김 남 진- 목 차 -1. 서론2. 사고전서 개요3. 사고전서 분류4. 사고전서 분류결과5. 결론6. 참고자료1. 서론1772년 겨울, 건륭제(乾隆帝)는 각 성과 현의 관리들에게, 그들이 관장하는 모든 서고에 보관된 희귀본과 귀중본들을 조사하여 보고하고, 아울러 필사하여 그 성과물을 북경으로 보낼 것을 명함으로써,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사업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개인장서가들에게도, 그들이 소장한 귀중본들을 자발적으로 북경으로 보낼 것을 촉구했다. 1773년 3월, 각지에서 보내온 책들을 수납하고 또 그 책의 내용을 평가하기 위한 행정기구가 북경에 창설되었다. 이 기구에는 300여명이 넘는 찬수관(纂修官), 분교관(分校官), 등록관(謄錄官) 이 참여하였고, 모두 주요 인사들이거나 당시 학술계의 명사들이었다. 22년에 걸쳐 완성되고 수정된 최종 결과물은 청 제국에 남아 있던 10,680종의 책을 사부(四部), 즉 사고(四庫 : 경전, 역사서, 철학서, 문학서)로 나누어 그에 대한 해제를 작성한 목록과 그중 3,593종을 36,000여 책(冊)으로 다시 필사한 방대한 총서이다.이 사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많은 좋은 문학들을 집필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1770년대 후반과 1780년대 초반에 조정에서 실시된 검열 운동을 통해 2,400여 종 이상의 책들이 파괴되었고, 400~500여 종의 책은 공식적 명령에 의해 개정되었다. 어떠한 측면에서는 책을 수집하고, 수정하고, 검열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했다. 이러한 과정이 한 시대와 그 시대의 논쟁거리를 보다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고전서』의 편찬 같은 노력의 과정을 통해서 지식인과 통치자들은 함께 중화제국의 권위가 가진 본질을 정의하고 그 권위의 한계를 탐구했다.2. 사고전서 개요『사고전서(四庫全書)』는 중국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재위 1735~1795) 시기에 황제의 명령으로 편찬한 대형 총서다. ‘전서’는 중국 역대의 중요 전적(典籍)을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4부로 분류해 모두 수집 편찬했음을 의미한다. ‘사고’는 당 현종이 장안과 낙양 두 도시에 사고를 각각 건설하고 4부 전적을 수장한 것에 근거해 이름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773년 청 왕조는 『사고전서』를 편찬하기 위해 ‘사고전서관’을 설립했다. 건륭제의 아들인 영용(永?)을 책임자로 하고 내각대학사(內?大?士) 우민중(于敏中)을 총재, 저명한 학자인 기윤(紀?)을 총찬관으로 초빙했다. 이 편찬 작업에 정식으로 참여한 학자가 3600여 명, 원문 필사자가 3800여 명이었다고 한다.우선, 책의 수집에 사용되는 절차는 중국의 학술과 서적 출판의 특성에 따라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진행되었다.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시가에 따라 구매되어야 한다. 일반 가정에 보관된 목판의 인쇄는 정부의 부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관료들은 인쇄된 적 없는 필사본들을 다시 베껴 쓴 다음, 원본을 소장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학자들에게 방해가 되거나 서민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또한, 황제는 먼저 수집한 모든 책 제목을 적은 목록을 만들어 중복이 없도록 비교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이 편찬 사업은 멀리 전한 시대까지 올라가는 중국의 위대한 전통이라고 강조했다.1773년 시작된 『사고전서』는 1781년(건륭 46)에 한 벌이 완성되었다. 『사고전서』는 처음 4부로 계획되었으나 남방 민간 학자들의 열람용 3부를 더해 모두 7부가 제작되었다. 호화장정으로 나온 4부와 민간 열람용 3부는 중국 곳곳에 다음과 같이 보관되었다.호화 장정이 보관된 4개 서고는 궁정에 있는데, 자금성 안의 문연각, 심양 고궁의 문소각, 열하 피서 산장의 문진각, 원명원의 문원각이고, 민간에서 보존한 3개 서고는 항주 성인사의 문란각, 양주 대관당의 문회각, 진강 금산사의 문종각이다.그런데 훗날 『사고전서』는 7부 가운데 3부가 없어졌다. 원명원의 문원각에 보존되었던 『사고전서』는 1860년 영불(英佛) 연합군에 의해 소실되고 양주의 문회각과 진강의 문종각에 있던 것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1853년) 때 소실되었다. 자금성의 문연각에 있던 것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때 고궁 문화재와 함께 대만으로 옮겨졌다. 열하의 문진각에 있던 『사고전서』는 청나라가 멸망한 후 베이징으로 옮겨져 베이징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3. 사고전서 분류1) 경부총서(經部總敍)동아시아 고대도서에 대한 4부 분류 중 첫 번째 분류 항목으로, 유가의 경전인 역(易), 서(書), 시(詩), 예(禮), 악(樂), 춘추(春秋) 외에 사서 및 문자, 음운, 훈고 등의 소학(小學) 관련 전적을 포괄한다. 한나라 유흠의 칠략(七略)에서는 ‘육예략(六藝略)’으로 분류하였고, 남북조시대 왕검의 칠지(七志)에 이르러 ‘경전지(經典志)’로 개칭되면서 사기와 잡전이 추가되기도 하였다. 그 후 진 순욱의 중경신부(中經新簿)에 이르러서는 갑.을.병.정의 4부 중 갑부로 위치하게 되었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이르러 ‘경부’아래에 역, 서, 시, 예, 악, 춘추, 효경, 논어, 위서, 소학의 10류로 분류하면서 경부의 명칭과 골격이 확립되었다.[ 경(經)은 공자가 정리하여 만세에 모범을 전한 것이다. 공자가 경을 산정한 뜻은 중천에 뜬 해처럼 분명하여 다른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2) 사부총서(史部總敍)동아시아 고대도서에 대한 4부 분류 중 두 번째 분류 항목으로, 각종 형식의 사서를 포괄한다. 사서가 독립적인 분류 항목이 된 것은 한서(漢書) 예문지에서 주요 사서를 육예략(六藝略) 의 춘추가(春秋家)에 소속시킨 것과 진나라 순욱의 중경부(中徑簿)에서 병부로 분류한 것이 시초이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 처음 ‘사부(史部)’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정사, 고사, 잡사, 패사, 기거주, 구사, 직관, 의주, 형법, 잡전, 지리, 보계, 부록의 13류로 분류했는데,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송사가 모두 이를 따랐고, 명사는 10류로 분류하였다. 에서는 정사, 편년, 기사본말, 별사, 잡사, 조령주의, 전기, 사초, 재기, 시령, 지리, 직관, 정서, 목록, 사평의 15류로 분류하였다.[ 사서편찬의 방도는 찬술은 간명하게 하고 고증은 상세하게 하는 것인데, 찬술이 간명하기로는 만한 것이 없고, 고증이 상세하기로는 만한 것이 없다. ]3) 자부총서(子部總敍)동아시아 고대도서에 대한 4부 분류 중 세 번째 분류 항목으로, 선진시대 이래의 제자백가, 석가, 도가의 저작 및 현대 학문 분류상 과학기술 분야에 포함되는 각종 서적을 포괄한다. 한서(漢書) 예문지에서는 제자의 서적을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 잡가, 농가, 소설가의 10가(家)로 분류하였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는 자부의 서적을 유가, 도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 잡가, 농가, 소설가, 병가 및 천문, 역수, 오행, 의방 의 14류로 분류하였는데, 에서는 제자 중 유가, 병가, 법가, 농가, 의가, 잡가, 소설가만 남기고 석가와 도가를 추가하였다. 아울러 음양가는 술수에 명가, 묵가, 종횡가는 잡가에 포함시키는 한편 천문산법, 예술, 보록을 신설하여 모두 14류로 분류하였다.[ 육경(六經) 이외에 자신의 학설을 내세운 것은 모두 자부에 속하는 책이다. 자부의 서적이 출현한 처음에는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서로 뒤섞여 있었는데, 에서 구별하여 열거한 이후 명목과 부류가 정해지게 되었다. ]4) 집부총서(集部總敍)동아시아 고대도서에 대한 4부 분류 중 네 번째 분류 항목으로, 역대 문장가의 산문, 운문, 문학평론 등의 저작을 포괄한다.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는 집부를 총집, 문론, 별집의 3개 분야로 분류하였는데, 에서는 시문평과 사곡이 추가되어 초사, 별집, 총집, 시문평, 사곡 등 5류로 분류하였다.[ 집부의 항목에서 초사류가 가장 오래되었고, 별집류가 그 다음이고, 총집류가 그 다음이고, 시문평류는 더 늦게 생겼으며, 사곡류는 여기에 덧보탠 것이다.]4. 사고전서 분류결과사고관의 편찬사업의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총 36,500책으로 구성된 7질의 필사본 『사고전서』. 이 총서는 황실도서관에 포함되기 위 해 사고관에서 선정한 책의 모음집이다.? 이 총서에 수록된 책의 제목과 저자들의 목록집. 『사고전서간명목록(四庫全書簡明目錄』 이 라는 제목의 이 목록집에는 다소 축약된 해제가 포함되어 있다.? 『사고전서』의 축약본. 『사고전서회요(四庫全書?要)』 라는 이 총서는 총 11,170책으로 구 성되어 있으며, 『사고전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작품들만을 수록하고 있다.? 134종의 작품이 수록된 『무영전취진판총서(武英殿聚珍板叢書)』. 이 총서는 『사고전서』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을 활자로 인쇄했다.? 목록해제집인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현대의 영인본으로 총 4,490쪽에 달 한다.5. 결론사고전서 편찬의 목적을 세 가지로 정리하자면, 첫째, 청 왕조의 활기찬 번영의 표시로서 학술 부흥과 문예 진흥을 내세우고자 했다. 건륭제는 정부의 후원을 받아 완성된 모든 학술 작품들의 필사본들을 인쇄해 각 성의 서점에 배포하라고 명령했다. 2년 후, 정부의 찬조 아래 완성된 학술 작품을 개인 출판업자들이 다시 출판해 유통시키는 것을 장려하는 조서를 반포했다. 둘째, 고대 문화의 계승 ·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워 지식인들을 포섭하기 위해서였다. 지식인의 시간과 정력을 오로지 서적 편찬 사업에 바치게 함으로써 반청 활동도 막고 청나라의 문화도 빛내겠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셋째, 대대적으로 서적을 검열하기 위한 것이다. 『사고전서』의 편찬을 계기로 천하에 흩어져 있는 서적을 모아 그 가운데 청나라의 정치를 비난하는 내용이 없는지 조사해 저촉되는 내용은 삭제하거나 고쳐 쓰도록 하고 불가능할 경우에는 불태워 버렸다. 전후 24회에 걸친 검열에서 538종 1만3860부에 달하는 서적이 금서로 지정되어 폐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