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보고: 그리스의 제노포비아 문제영화는 에로스 신화와 사랑에 관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리스에 사는 세 커플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첫 번째 커플은 파리스와 다프네다. 다프네는 정치학을 공부하는 그리스 학생이고, 파리스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그리스로 온 난민이다. 그리스 남성들로부터 성폭력을 당할 뻔한 다프네를 파리스가 구해주면서 그들의 인연이 시작된다. 한편 강도를 일삼는 이민자들 때문에 자신이 일군 모든 것을 잃은 다프네의 아버지는 이민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단체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 단체가 폐공항에서 지내는 이민자들을 습격하던 날 결국 이민자인 파리스와 함께 도망치던 다프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같은 단체 회원이 쏜 총에 다프네가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다. 두 번째는 지오르고와 엘리제 커플이다. 지오르고는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하던 차에 엘리제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엘리제는 지오르고의 회사의 재정상태 개선을 위해 파견된 간부로, 그녀가 온 이후로 회사 내에서는 직원감축과 부서 통폐합이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지오르고는 절친한 친구가 해고를 당해 자살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고, 자신 또한 해고 대상이 된다. 엘리제는 차마 지오르고를 해고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임무를 포기한 채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세번째는 세바스찬과 마리아 커플이다. 노년에 접어든 가정주부 마리아와, 그리스에 반해 아예 그리스로 이주해 온 미국인 세바스찬은 마트에서 처음 만나 각자의 언어로, 또 영어로 조금씩 소통하며 가까워진다. 영화 후반부에 가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던 세 커플의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는데, 마리아의 딸이 다프네, 아들이 지오르고였다는 반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이 영화는 세 커플의 사랑 이야기 속에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들을 녹여내고 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문제, 제노포비아, 정리해고, 정부의 재정파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 중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문제는 제노포비아와 관련한 것이었다. 제노포비아는다프네가 파리스에게 마음을 열고 나서 바닷가에서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나눌 때, 다프네가 그리스도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얘기하자 파리스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래도 너희는 나은 편이야. 같은 사람들끼리, 가족들끼리 죽이지는 않잖아'. 하지만 과연 현실은 그러한가? 영화 속에서 그리스의 제노포비아는 같은 그리스인들,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를 준다. 다프네 아버지의 이민자에 대한 분노의 화살은 그의 가족을 향해,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온다. 다프네의 아버지를 비롯한 반이민자 단체의 행동들을 그의 아내 마리아는 '부끄럽고 비겁한 행동,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라며 비난한다. 그리고 다프네의 죽음 이후 그가 자신의 행동을 바꿀 두 번째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음을 영화는 암시한다.그렇다면 실제로 그리스에서는 난민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떤 양상을 보였던 것일까.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유독 그리스에 난민이 많이 몰렸는데, 육로를 통한 피난이 배를 타고 지중해로 건너가는 방식보다 안전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17년 1월까지 그리스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만 해도 약 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과 분쟁으로 몸살을 앓는 지역으로부터 난민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인종차별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계속되는 이민자(난민을 포함한)에 대한 차별 및 폭력 사태에 따라 그리스 정부는 2012년부터 새로운 인종차별주의 법을 발효하고, 해당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경찰 부서를 창설하는 등의 노력을 보였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또한 영화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이방인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분노와 차별주의는 비단 시리아 난민들뿐 아니라 유대인 및 무슬림들에게도 뻗쳤으며, 성소수자들에게까지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난민들의 경우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에 강도와 보복과 같은 범죄를 마음먹기 쉬운 편이다. 유럽연합과 터키의 난민 송환협정 이후 난민들의 발칸 루트가 막히며 키오스 섬 난민촌에는 수용 인원의 3배를 웃도는 사람들이 한데 거주하고 있으며, 난민자격 심사가 지연되면서 이들의 불만은 점점 커졌다. 이에 따라 2016년 11월 이곳 난민들은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침입 및 폭약을 약탈하고 현지 주택에 폭탄을 터뜨려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약 30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이 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난민들에 습격을 가한 바 있다.난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범죄는 계속해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인종차별범죄기록네트워크(RVRN)의 연례보고에 의하면 2014년 인종차별적 폭력사건 총 81건 중 46건이, 그리고 2015년 273건 중 75건이 이민자 혹은 난민을 타겟으로 한 사건이었다. 또한 이 보고는 이들이 마주하는 가장 주된 폭력의 형태는 언어적인 폭력임을 밝히고 있다. 대부분의 난민 및 이민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수단과 권리에 대해 무지하며,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데다 재정적으로 결핍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러한 폭력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리스의 경찰들은 신나치주의 정당인 '황금새벽당(Golden Dawn)'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으며, 인종주의 성향을 보인다고 밝혀져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비단 폭력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일례로 난민 아동 교육문제를 들 수 있다. 지난해 9월 그리스 정부에서는 난민 자녀들의 공립학교 등교를 허가했으나 그리스 학부모들은 난민 자녀들이 전염병 전파 가능성과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그들의 학교 입학을 거부한 바 있다. 그리스 오라이오카스트로도 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이 난민 자녀들의 입학이 허가되면 학교 운동장을 점거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도 있었다.출처: RVRN 2016 연례보고서그리스 정부와 NGO, 국제 인권 관련 단체들의 노력에도 난민 혹은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과 그들을 타겟으로 한 혐오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인종차별범죄 기록 네트워크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피해 경험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속에서 반난민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했던 다프네의 아버지가 표출했던 혐오와 분노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왔던 것처럼, 그리스 내부에서 현지인과 난민의 대결구도는 결과적으로 그리스의 내부적인 소모만을 가져올 뿐이다.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에로스의 신화처럼, 사랑의 힘으로 화합과 포용의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참고자료Xenophobia, Violence Against Migrants on Rise in Greece, Sputnik news, 2015.02.24, Hyperlink "https://goo.gl/t0f5Po" https://goo.gl/t0f5PoJudith Sunderland. Hugh Wiliamson, Xenophobia in Greece, Human Rights Watch 2013.05.13, Hyperlink "https://goo.gl/tmwfeG" https://goo.gl/tmwfeG현윤경, 그리스 키오스 섬 난민캠프 화염병 공격 받아…수 백명 피신, 연합뉴스, 2016.11.19, Hyperlink "https://goo.gl/qEr34T" https://goo.gl/qEr34TVasiliki Mitsiniotou, Racist attacks against refugees in Greece show rise, Anadolu Agency, 2016.04.27, Hyperlink "https://goo.gl/orqsY5" https://goo.gl/orqsY5조기원, 그리스 일부 학부모들 “난민 자녀 학교 입학 안돼”, 한겨례, 2016.09.26, Hyperlink "https://goo.gl/YC44hU" https://goo.gl/YC44hUEliza Gkritsi, This infographic analyses all recorded incidents of racist violence in Greece in 2016, Athens Live, 2017.05.02, Hyperlink "https://goo.gl/V2bK39" https://goo.gl/V2bK39
을 중심으로 살펴본 체홉 희곡의 특징13학번 김다솜“기이한 무언가”, “새로운 희곡” 그리고 “코미디”. 모두 체홉이 자신의 희곡을 규정하는 단어들이다. 그의 희곡은 비평가들로부터 “난해하다”는 평을 곧잘 듣곤 한다. 체홉의 희곡들은 여러 측면에서 아이러니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희곡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일상을 주제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체홉은 희곡이 갖는 극성을 해체하고 일상과 객관주의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작가관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작품의 장르는 분명 ‘희곡’임에도 막상 작품을 열어보면 그곳에는 비극이 가득하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이는 체홉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난다. 이 글에서는 희곡과 연극 간 비교분석을 통하여 체홉의 작품으로서 갖는 의미와 특징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 작품을 중심으로 체홉이 자신의 희곡을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라 강조했던 이유를 들여다 보도록 하겠다.에서는 체홉의 문학세계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두드러진다. 그 첫 번째로는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순을 들 수 있다. 두냐샤는 하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귀족과 같은 머리와 옷차림을 하는 데다, 자꾸만 쓰러질 것 같다고 하며 연약한 귀족 아가씨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아샤 또한 하인의 신분임에도 자신이 귀족인 것 마냥 비싼 음식을 시키고 자신을 교양 있는 사람으로 여기며, 주위 사람들을 무례하게 대하고 다닌다. 반면 삐시치끄는 지주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남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에서 위신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대학생 뜨로피모프는 진리에 대해 역설하고 사람들에게 충고하지만, 사실 50 가까운 나이에도 졸업을 하지 못한 만년 대학생 신분이다. 희곡이 무대에 올려지면서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모순적 면모는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연극에서는 각 등장인물의 옷차림과 행동, 말투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본 공연에서는 이 모두가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막빌리는 비굴한 모습이 제대로 표현되었다. 서성이는 류보비를 졸졸 쫓아다니며 사정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뜨로피모프는 또한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어딘가 엉성하고 바보 같은 모습을 보이며 원작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두 번째는 희곡이라는 장르에서 대화가 통상적으로 갖는 기능이 상실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통 문학작품에서 대화는 둘 이상의 등장인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그 인물들의 캐릭터를 보여주거나 사건을 암시하고,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등, 일종의 장치로서의 역할을 지닌다. 하지만 에서는 대화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본질을 잃은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류보비와 바랴가 어린이 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가예프는 기차 얘기를, 샤를로따는 갑자기 자신의 개는 호도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돈 이야기를 하던 중에 류보비가 갑자기 자야겠다고 하고, 피르스는 가예프가 다른 바지를 입었다며 타박하고, 가예프는 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이는 연극에서도 다르지 않게 재현되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인물들이 공통된 대화 주제를 벗어나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내거나, 혼자 횡설수설하는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세 번째는 시대상이 깊숙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주의를 표방했던 체홉 작품의 특징으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대에서 보여지는 객관화된 일상은 시대상의 반영으로 더욱 밀도를 지니게 되었다. 이 갖고 있는 시대상은 전환기 시대이다. 등장인물들 중 지주계급인 류보비 부인과 가예프, 농노계급인 삐르스는 구시대를, 상인 로빠힌과 여지주의 딸 아냐와 바랴, 대학생 뜨로피모프와 젊은 하인 아샤와 두냐사는 신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벚꽃 동산이 벌목되고 개발될 처지에 놓이고, 지주 계급은 그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서사는 바로 이 시대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시대적 인물인 피르스는 과거를 떠올리며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의 상황에 개탄한다. 구시대 번영의 상징과도 같은 벚꽃동산과 함께, 닫고 그것을 사들이는 신흥 상인세력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네 번째는 서사에서 그렇다 할 만한 극적인 전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서사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과정을 따르기 마련이나, 에서는 ‘발단-전개 및 위기-결말’의 순을 따르는 것처럼 여겨진다. 여기서 등장하는 ‘위기’는 벚꽃동산이 경매에 넘어간 상황을 가리키며, ‘결말’에는 경매 낙찰자가 로빠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류보비를 비롯한 지주계급들이 동산을 떠나는 사건이 해당된다. 보통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구조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극 전반적으로 ‘어떤 사건이 갈등으로 치닫은 뒤 결말을 맺는다’ 가 아니라 ‘어떤 사건을 두고 인물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가 극 전반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지고 이를 관객들이 ‘조망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한편, 원작과 비교하여 연극에서 돋보였던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인물의 대사뿐만 아니라, 개 짖는 소리나 새 우는 소리와 같은 주변 장치까지도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는 방식으로 연극이 이루어졌지만, 이 작품은 공간 구성에 있어서는 아주 뚜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창 밖의 벚꽃동산을 흰 색의 천으로 대체한 데다, 의자와 책장과 같은 최소한의 가구만이 무대에 올려졌고, 무대가 어떤 공간인지를 암시하는 그 어떤 장식이나 다른 소품은 사용되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고 막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커튼이 무대 내에서도 공간을 분할하는 용도로 쓰인 점도 돋보인다. 이는 모두 관객들과 무대 배경에 대한 암묵적 합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극 중 류보비가 아름다운 고향에 대해 독백할 때, 정말로 하얀 천이 벚꽃 동산의 풍경인 마냥 천을 어루만지고 아련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이러한 설정이 체홉이 표방했던 사실주의를 해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인물들의 표정과 말, 그리고 행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물론 벚꽃동. 즉, 결과적으로 이 모든 무대장치들은 사실주의라는 체홉의 작가관을 더욱 충실하게 재현해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에 비추어 보았을 때 체홉이 자신의 희곡이 비극이 아닌 ‘코미디’라고 굳이 꼬집어 강조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체홉의 희곡작품에 대한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체홉의 코미디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이것이 작품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체홉의 작품에서 인물들은 사회적 붕괴가 개인적 붕괴로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인간적 비극성을 상징한다고 본다. 따라서 ‘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과 대비되면서 그 비극적인 속성이 더욱 부각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작품의 결말 이후에 기대되는 긍정적인 미래와 희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해피엔딩이 희극성으로 이어진다는 입장인 것이다. 마지막은 체홉의 희극을 희극과 비극이 혼합된 새로운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다. 작가의 의견은 수용하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비극성도 함께 인정하는, 비교적 타협적인 견해이다.그러나 필자는 세 가지 해석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체홉의 작품 중 만을 놓고 본다면, 작가 자신이 말했던 희극성은 작품 자체에 온전히 스며들어 있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바로 극 전반이 아이러니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는 작품에서 모순을 갖고 있는 등장인물 캐릭터들, 대화의 구실을 못하는 대화, 그리고 비극이 되지 못하는 비극으로 드러나고 있다.등장인물과 대화의 기능에 관해서는 앞서 의 특징을 다루며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체홉 작품의 희극성은 주로 ‘아이러니’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자신의 신분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순된 모습을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은 우스꽝스러움을 연출하며 작품에 희극성을 더해주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발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피르스는 안 그래도 횡설수설하는 편인데, 웅얼거리며 말하는 탓에 자주 아무도 그의 말의 문맥이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곤 한다. 또,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인물들의 대소는 한 지주 집안이 가꿔온 아름다운 벚꽃동산이 경매에 팔리고,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던 곳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등장인물들에게 그다지 비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벚꽃동산이 팔렸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에 류보비 부인이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류보비 일가가 벚꽃 동산을 떠날 때를 보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긴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류보비 안드레예브나: …(중략)… 좋으니? 그렇게 좋으니?아냐: 정말 좋아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거에요, 엄마!가예프: (유쾌하게) 사실, 이제야 모든 게 다 잘됐어. …(중략)…일반적으로는 비극으로 여겨지는 일이 이 작품의 인물들에게는 비극으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벚꽃동산 매각 사건은 인물들의 생활이 무너지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때 비로소 비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으나 해당 작품에서는 인물들에게 희망과 안심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에 되려 희극성을 갖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체홉의 코미디에 대한 기존 해석 중 두 번째와 그 논리를 같이한다.결국 ‘코미디’라는 체홉 작품의 장르적 특성은 ‘사실주의’라는 그의 작가관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체홉은 자신의 작품에서 ‘우리네 삶’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때문에 무대 위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우리 현실 속 대화처럼 의미 없는 발화를 포함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시대만 다를 뿐, 에서 그가 보여주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그는 겉에서 보기엔 비극 같아 보여도 곧잘 그것을 털어내고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의 기둥과 같던 벚꽃동산이 팔려나가게 되었지만 류보비 부인 일가는 유쾌한 모습으로 정든 곳과 이별하고 떠나간다. 이는 어떠한 시련이 닥쳤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 있는 듯 하다. 즉, 체홉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코미디’라는 장르는 우리의 삶이 지니는 모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참고문헌『벚꽃동산』, 안톤 체호프, 오2
푸틴과 에르도안의 정상회담을 통해 본러시아-터키 관계의 배경과 전망이슈현황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017년 3월 10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 및 고위급 협력위원회 회의를 개최함2014년 이래 처음으로 러시아-터키 고위급 협력위원회 회의가 개최됨.양국은 2010년 고위급 협의회를 설립한 이후 총 다섯 번의 회의를 소집하였으며, 2014년 12월 1일 열린 5차 회의 이후 더 이상 회의가 진행되지 않았음.2014년 이후 고위급 회의가 중단된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11월 24일 터키의 전투기가 시리아 국경 부근에서 비행 중이던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사건임.이 사건 이후로 터키의 아쿠유 원전 설립 프로젝트와 터키스트림 사업이 중단되었으며 터키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 제재가 행해지는 등 양국관계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음.양국 정상회담 또한 2015년 이후 중단된 뒤 2016년 8월 6일에 재개됨.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가 '파트너십 관계'로 회복되었다고 평가함.에르도안 대통령은 양국이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과 관련한 문제를 극복하였으며 양국 관계가 정상화의 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함.회담에서는 양국관계 회복 및 국제적 사안에 대한 협력 강화 방안이 모색되었음.푸틴 대통령은 국제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위해 양국의 정보기관 간 협력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며,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밝힘.이번 회의는 3월 7일 열렸던 러시아와 미국, 터키 군사령관들의 3자회담의 연장선상에서 무장단체 IS에 대적하는 협력을 위한 것이었음.푸틴 대통령은 터키 노동자 고용 금지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밝힘.에르도안 대통령은 방위산업 및 에너지 분야가 협력의 주요과제임을 강조함.이번 회의에서는 터키의 아쿠유 원전 건설 프로젝트 및 터키스트림 프로젝트에 관한 논의도 진행됨.아쿠유 원전 건설 프로젝트는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터키정부 노력의 일환으로, 터키 남부 아쿠유 지역에 1,200 MW.터키 기업들의 러시아 건설 프로젝트 실행 금지(면제된 대상은 제외)터키 국적인들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 제한 및 러시아의 터키고용인들에 대한 제재 발효러시아에서 일하는 터키 노동자는 약 9만 명으로 추산됨.아쿠유 원전 사업 및 터키스트림 가스관 사업 동결터키 관광상품 판매금지 및 양국 간 전세항공편 금지2014년 러시아 인기 해외관광지 2위는 터키로, 2014년에만 러시아인 약 330만 명이 터키를 방문함2015년 10월 가장 인기 있는 해외 관광지였던 이집트 발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여객기 추락사고가 일어나 안전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터키는 러시아와 무비자 협정이 맺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터키의 관광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제재로 인해 러시아 관광객은 전년 동기간 대비 87% 줄어들어 터키는 2016년 상반기에만 8억 4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음2016년 1월 1일부터 터키와의 비자 면제 중지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됨에 따라 식품, 관광, 에너지 등 양국이 협력하던 다양한 분야에 타격이 발생함.터키는 러시아의 철강 반제품, 천연가스 및 석유 주요 수입국가이기도 함.결과적으로 2016년 1~5월 양국의 교역 규모는 전년 대비 43% 감소함군사적 측면에서도 터키에 대한 보복성 행보를 보임.터키 국경에서 불과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리아 라타키아 기지에 최신형 지대공 미사일 S-400포대를 설치하여 최대 400km 떨어진 터키 제트기를 격추시킬 수 있도록 함.러시아의 S-400 배치로 인해 터키를 포함한 어떠한 나토 회원국도 러시아군의 허가 신호를 받지 않으면 시리아 영공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면서 사실상 터키의 시리아 상공 접근을 차단시킴지중해의 터키 해역 바로 바깥에 가장 큰 방공함 중 하나를 배치함으로써 터키와의 모든 군대 간 통신 차단러시아 전투기가 격추된 시리아 지역 부근의 반란군 지역에 폭격을 가함.전투기 격추사건에 대한 터키의 거듭된 사과 및 터키 쿠데타 사태 당시 푸틴 대통령의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를 계기로 양국략적 화해를 의미함.러시아는 나토를 통한 터키와 서방의 연결고리를 약화시키고, 유라시아 경제연합의 내부 결속력 및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터키에서의 에너지 사업을 통해 터키를 포함한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터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함.터키는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통해 에르도안의 권력형 정부의 정당성을 부여 받고, 군사 및 경제적 이득을 보장받고자 함.러시아는 터키에게 있어 포기할 수 없는 거대한 파트너로, 경제분야에서는 특히 관광 및 에너지 산업에서의 의존도가 높으며, 시리아 내전을 포함한 중동 관련 문제에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릴 경우 받을 수 있는 군사적 위험이 큼.전망과 시사점러시아와 터키의 관계는 양국이 처한 상황 속 이해관계에 철저히 기반한 전략적인 파트너쉽으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한 당분간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음. 그러나 시리아 내전에서 쿠르드계 문제와 관련해 충돌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되었음. 그런데 최근 미국이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에 대한 직접적인 무기 지원을 강행하는 한편 에르도안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터키-미국-러시아의 관계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으로 보여짐.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임이 2029년까지 가능해지면서 터키의 대외정책 노선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됨.올해 4월 17일 터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5년 임기의 대통령이 1회에 한해 중임 가능하며 의원내각제가 폐지되고 대통령이 모든 부처의 장관 및 부통령 임명권을 지니는 개헌안이 유효표 4천 893만 604표 가운데 51.41%의 찬성을 얻으며 통과됨.장기집권을 현실화 한 에르도안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러시아의 손을 터키는 쉽게 뿌리치지는 못할 것임.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 집권체제가 이어지면서 러시아는 터키를 서방 세력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목적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됨.러시아와 터키가 화해했다는 분석이 많으나, 러시아와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서 각각 정부군과 반군을 지지하면서 협할 대상으로 파악함.터키는 시리아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쿠르드족이 터키 내 쿠르드족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 터키 내에서도 분리독립 움직임이 활발해 질 것을 두려워함.터키는 이미 IS 처단을 빌미로 쿠르드족에 대한 공습을 여러 차례 강행한 바 있음.시리아의 쿠르드족이 터키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러시아군을 끌어들이면서 터키 입장에서는 불편한 상황이 연출됨.이에 터키는 러시아에 적극적인 반발 의사를 표출하지는 않았으나, 쿠르드계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경우 양국의 충돌은 예상 가능한 것이었음.그런데 지난 5월 미국이 시리아 쿠르드계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에 무장지원을 승인하는 한편 미국이 에르도안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터키-미국-러시아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됨.인민수비대는 IS를 상대로 락까 탈환전에 참전하고 있음.트럼프 대통령은 IS격퇴를 이유로 쿠르드 민병대에 대한 지원을 승인했으며, 지난 5월 15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무기와 장비를 실은 트럭을 전달함.시리아의 쿠르드계는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터키까지 세력을 뻗칠 위험이 있으며, 이들의 무기가 터키 내 쿠르드 분리주의 무장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에 전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터키 입장에서는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음.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YPG 지원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지원 중단 결정을 촉구한 바 있음.표면적으로는 미국이 IS를 격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나, 날로 가까워지는 러시아와 터키의 관계를 경계한 경고성 보복으로도 보여짐.한편 지난 5월 16일 열린 미국-터키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에르도안 정부의 개헌 정당성을 인정하였으며, 쿠르드계 지원 문제에 있어서 YPG와의 협력은 중단할 수 없으나 이라크 신자르의 PKK 세력에 대한 터키의 공격은 용인하겠다고 밝힘.결과적으로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있던 터키에 당근과 채찍을 함께 제시한 셈.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러시아 쪽으로 약간 기울어졌던Dewan, Frederik Pleitgen and Faith Karimi, Presidents of Turkey, Russia huddle against backdrop of Syrian war, CNN, 2017.03.10, 2017.04.28 검색, Hyperlink "https://goo.gl/Wxho4G" https://goo.gl/Wxho4GDrop in Russian Tourists Costs Turkey $840M, The Moscow Times, 2016.08.02, 2017.04.28 검색, Hyperlink "https://goo.gl/MQNf5I" https://goo.gl/MQNf5IEmre Ersen, The Turkish-Russian Reconciliation Process: The Implications For The Middle East,Expert Brief, ALSHARQ Forum, 2016.08.23Holly Ellyatt, Russia turns on Turkey in retaliation for downed jet, CNBC, 2015.11.25, 2017.04.28 검색, Hyperlink "https://goo.gl/s2mo4d" https://goo.gl/s2mo4dLin Jenkins, Vladimir Putin announces Russian sanctions against Turkey, The Guardian, 2015.11.28, 2017.04.28 검색, Hyperlink "https://goo.gl/ACuIqN" https://goo.gl/ACuIqNPaul J. Saunders, Russia, Turkey Inch Toward Improved Relations, US news, 2014.11.17, 2017.04.28 검색, Hyperlink "https://goo.gl/1v1Opp" https://goo.gl/1v1OppPolina Devitt, Denis Pinchuk, Svetlana Burmi
연극 감상문러시아 연수 시절, 처음으로 보았던 연극이 바로 고골의 이었다. 원래 연극은 즐겨 보는 편이 아닌데, 원어로 보는 첫 희곡이 3시간짜리 공연이었기에 감상이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원작을 제대로 읽고 이를 바탕으로 연극을 비교하며 읽다 보니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먼저, 이 작품의 시대상을 다룬 뒤, 원작의 희곡이 연극으로 연출되며 어떠한 특징들이 나타나는 지를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1. 에 드러나는 시대상19세기 전반 러시아는 비밀경찰과 검열제도, 그리고 농노제를 통해 차르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부적인 모순이 점점 짙어져 가고만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관료주의와 부정부패였다. 고골은 이러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작품 속에 담아 희화하였다. 첫째로는 군수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의 허술한 일 처리, 두 번째는 감찰관에게 앞다투어 뇌물을 전하는 모습, 세번 째로는 군수에 대한 상인들의 읍소를 통해 미루어볼 수 있는 군수의 횡포,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분상승의 수단으로 결혼을 하는 모습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연극의 첫 장면에서 군수 및 주변 인물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을 보면, 회의를 기록하는 서기 하나 없이 어수선한 방 안에서 회의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군수와 주변인물들은 보브친스키와 도브친스키의 감찰관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보았다는 말만을 철썩같이 믿고서 흘레스타코프를 극진히 대접한다. 극 후반부에는 그가 장군 급의 신분임을 확신하면서, 군수는 자신의 딸과의 약혼을 성사시키기까지 한다. 이 때까지 흘레스타코프의 신분에 대한 어떠한 객관적인 정보도 없었음에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부분에서 빈틈이 많고 허술한 시골마을에서의 업무 진행방식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흘레스타코프를 감찰관으로 오해하기 시작하면서 다들 흔쾌히 그에게 돈을 주고, 편의를 제공해줌으로써 흠 잡히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은 당시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뇌물 비리를 잘 보여준다. 또한 상인들의 증언으로 알려지는 군수의 각종 횡포와 부조리한 만행은 당대 권력층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자신의 딸과 흘레스타코프를 결혼시킴으로써 중앙정권으로의 출세를 기대하는 군수의 모습은 당시 결혼이 사회적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작용했음을 알려주고 있다.2. 원작이 희곡화 되며 나타나는 특징들먼저, 연극에서 원작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 짚어보도록 하겠다. 연극의 인물 대부분은 원작에서 지침하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군수는 진중한 목소리에 사람들을 부리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 안나와 딸 마리야는 문학작품을 좋아하고 허영심이 있으나, 정작 흘레스타코프가 유명 작품들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소개할 때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만큼 학식이나 교양이 있는 인물들은 아니다. 그리고 원작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이 모녀가 검찰관을 맞기 위해 드레스를 고르면서 화려한 색깔의 큰 깃털을 골라 머리에 꽂고 설레어 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허영심이 잘 희화화되어 나타난다. 흘레스타코프 또한 페테르부르크 출신이라는 설정답게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세련된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연출되었고, 밀린 숙식비에 감옥에 갈까 벌벌 떠는 모습, 사람들이 자신을 감찰관으로 오해하고 있음을 깨닫고서는 뻔뻔하게 감찰관 행세를 하며 온갖 편의를 누리는 모습 등이 원작에 가깝게 형상화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원작과는 다른 부분 또한 존재하는데, 바로 흐리스티안 이바노비치(이하 ‘흐리스티안’)라는 인물의 형상화이다. 원작 상에서 흐리스티안의 분량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는 극 초반, 군수의 방에서 회의가 이루어질 때 ‘이’같기도 하고 ‘예’ 같기도 한 아주 짧은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 정도가 다인 큰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흐리스티안의 비중이 조금 늘어나, 중간중간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긴 상영시간 때문에 작품이 늘어지고 지루함이 느껴지는 것을 경계하여 의도적으로 각색한 것이 아닐까 싶다.다음으로 이 연극에서 보이는 연출의 독창성이라면 리얼리즘을 연극 무대에도 끌어들였다는 점과 회전식의 무대장치, 그리고 극의 마지막 장면을 꼽을 수 있겠다. 군수의 방에서 사람들이 감찰관이 온다는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방 밖으로는 참새와 암탉의 울음소리, 그리고 말발굽 소리 등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흘레스타코프가 지내던 여관 방에서는 방문이 열릴 때마다 바깥에서 들리는 다른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 누군가 걸어 다니는 소리 등이 들린다. 이는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장소가 ‘무대’라는 인식을 흐려지게 하고 정말 군수의 방을, 흘레스타코프의 방을 엿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원작에서는 이런 배경 연출에 대한 지침이나 지시어는 없었다.또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 특징으로는 무대 세트 장치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무대 배경이 전환될 때 암전이 잠깐 일어나는 사이 뒷 배경만 바뀌거나 간단히 세트만 바뀌는 식의 연출이 아니라, 세트가 돌아가면서 새로운 배경으로 전환된다. 물론 이러한 무대 연출이 3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 시간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극을 감상하는 데 있어 이 무대는 특별한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물이 군수의 방에서 집 밖으로 나가는 등 공간 이동을 할 때, 무대의 회전으로 공간이 전환되면서 두 장면이 단절되지 않는다. 인물의 이동을 따라 자연스럽게 서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무대장치를 통해 무대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관객석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일치하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무대 공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삽입과 마찬가지로 극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더불어 이 무대장치는 관객들이 특정 인물에 집중하도록 돕거나 그의 감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쓰이기도 한다. 흘레스타코프가 감찰관이 아니었음이 알려진 뒤 군수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방백을 하는 장면에서, 군수는 무대 앞으로 나와 단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군수 뒤의 다른 인물들은 붉은 빛의 어두운 조명을 받으며 정지한 채 무대가 회전한다. 이는 한 번의 실수로 모두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 자신의 모습에 한탄하고 있는 군수의 모습을 강조한다. 한편, 군수의 뒤에서 회전하는 무대에 서서 정지한 채 돌아가는 인물들은 모두 군수의 딸의 약혼 소식에 축하 하러 모인 측근들이지만, 군수가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를 가장 먼저 비웃을 사람들임을 상기시켜주는 듯 하다. 군수 뒤의 붉은 조명과 어두운 배경음악은 그가 느끼고 있는 절망적인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마지막으로,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작의 연출 지침에서는 특히나 마지막 장면의 연출에 관한 당부가 나와 있을 만큼 마지막 장면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원작에서는 헌병이 와서 진짜 감찰관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모든 여성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름으로써 관객들로부터 충격을 불러일으키도록 지시하고 있지만, 본 연극에서는 다른 연출법을 시도하고 있다. 일단, 감찰관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은 어떠한 인물이 아닌, 침묵 속의 종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의 음성이다. 이러한 연출은 꼭 군수와 그 주변 인물들이 심판을 받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비명소리 대신 울리는 벼락 소리와 무너지는 구조물들은 이 인물들의 허영과 부조리도 이제 다 끝이 났음을 시각화하는 듯 하다. 회전하는 무대 장치 덕분에 골고루 보이는 인물들의 충격 받은 모습, 놀란 표정 등은 이 작품에 희극적 요소를 더해 준다.3. 개인적인 감상현지에서 원작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로 작품을 감상했을 때 인상 깊었던 것중 하나는 그 큰 극장에서 마이크 없이 인물들의 대사가 먼 곳까지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감상한 영상 또한 말르이 극장에서 촬영된 것으로, 이 극장의 규모도 우리나라의 연극 공연장에 비교해보면 꽤나 큰 규모이다. 세 시간이나 되는 연극을 그래도 그렇게까지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배우들의 능력 덕분에 극에 대한 몰입이 굉장히 잘 되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실 현지에서 봤던 연극은 이 작품보다도 더욱 ‘재현’에 가까운 연출 방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말르이 극장 버전 보다는 좀 더 지루했고, 작품 자체에 대한 인상이 깊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원작을 읽고 영상을 다시 보니 감회가 달랐다. 희곡은 작품을 읽으며 대사 및 지시어를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한 인물이 대사를 하거나 행동을 하는 와중에는 무대 위의 다른 인물들이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지는 동시에 상상이 잘 되지 않는 편이다. 특정 인물에 할애된 지면을 읽는 동안에는 온전히 그 인물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희곡은 연극화 되면서 그 빛을 발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희곡의 연극화는 말 그대로 등장인물과 배경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인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에는 극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장치들을 이용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숨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원작의 의도와 기본 골격을 살리면서 연출적 특징이 돋보이도록 영리하게 각색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연출 기법을 시도한 작품들도 접해보고 싶어졌다.
소비에트부터 현대까지: 러시아 영화가 흘러온 길일반인들도 한번쯤 들어본 적 있는 몽타주 이론,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사랑 받는 러시아 거장들의 영화. 영화계에 남겨진 러시아의 발자취는 꽤나 선명하다. 러시아 영화는 1917년 혁명 이후 모스크바 영화학교가 건립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즉, 소비에트 시기로 접어들면서 러시아 영화가 조금씩 꽃피기 시작한 것인데, 소비에트 시기는 레닌 시기와 스탈린 시기,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두 시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한다면, 레닌 시기에는 스탈린 시기에 비해 다양한 색채의 영화들이 만들어졌으며, 스탈린 시기에는 레닌 시기에 비해 더욱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영화들이 제작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20년대 러시아에는 레닌이 정권을 잡으며 사회주의의 물살을 타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혁명적인’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실험적인 영화와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이 나타나고, 구성주의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20년대였다. 모스크바 영화학교가 설립되고 영화이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흐름을 받쳐주는 튼튼한 기반이 형성되기도 하였다.레닌 시기 영화 감독들은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혁명’을 영화에 끌어들였다. 꼭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의 혁명이라기보다는, 표현 기법에서의 혁명을 시도한 것이다. 그 예로 먼저 베르토프 감독의 를 들 수 있겠다. 베르토프는 보통 우리가 영화의 필수 요소라고 꼽는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 없이 영화를 제작하고자 했다. 대신 편집, 즉 몽타주 기법을 통해 모스크바 시민들의 일상, 산업 사회의 모습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키노-아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에 부합하는,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렌즈에 담으려는 실험을 했던 것이다. 반면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려 시적인 영화를 만들어 낸 도브젠코의 영화 또한 동시대에 제작되었다. 도브젠코의 영화는 이데올로기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신화적인 연출을 해냈다는 점이 가장 특징적이다. 명 이후의 집단농장화 추진 세력과 부농의 대립을 묘사하면서도 우크라이나적인 색채를 영상미에 반영하거나 여성의 죽음을 대지의 죽음으로 형상화하는 등의 기법을 썼다. 서사와 관련이 없는 ‘회화적 장면’이 삽입되면서 영상이 극대화되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1920년대에 러시아 영화는 러시아 사회의 ‘혁명’ 그리고 ‘급진’ 적인 성향을 주로 반영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영화가 제작되기는 하였으나, 스탈린 시기에 비해 다양한 영화적 실험이 가능했고, 이를 토대로 러시아 영화의 이론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융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그러나 이후 스탈린 시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영화는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더욱 집중하고 이를 반영하게 된다. 1920년대 레닌 시기 영화들이 대중에게 난해한, 소위 ‘부르주아적’인 작품들이 다수였다면 30년대에는 영화가 대중에 대한 이데올로기 교육과 오락을 담당하는 매체로서 자리를 잡는다. 이에 따라 할리우드의 코미디를 소비에트의 방식대로 소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한 예로 알렉산드로프 감독의 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스탈린을 국가 자체로, 그리고 그를 민중의 어머니로 신성시하면서 애국심을 고양하는 동시에 음악적 요소를 가미하여 오락성을 더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감독이 제작한 역시 슬랩스틱 코미디와 국가에 충실한 이데올로기를 함께 담고 있다. 플롯 면에서는 뻔하다는 느낌이 들고, 당시 열악했던 러시아 농부들의 삶을 떠올렸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 짓고 국가의 영광을 노래하는 모습이 과연 당시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든다. 그러나 스탈린이 의도한 대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매스컴의 역할은 훌륭히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레닌 시기에는 이데올로기 노선이 영화계에 주어졌음에도 영화들이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그 노선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면, 스탈린 시기에는 영화들을 그 노선으로 더욱 강력하게 끌어들였다고 할 수 있다.스탈린 시기부터 주목 받기 시작한 코미디영화는 흐루시쵸프 및 브레 계보가 이어진다. 특히 브레즈네프 시기 활동한 가이다이 감독의 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소련의 의식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통해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가이다이의 대표작인 과 를 통해 당시 러시아의 서구문화 수용방식, 중앙아시아에 대해 러시아가 지니고 있던 오리엔탈리즘적 인식을 크게 파악할 수 있다. 을 보면, 주인공 게냐가 크루즈 여행을 한다는 설정에서부터 서구(자본주의)의 문물이 등장한다. 고가의 이국적인 요리를 판매하는 레스토랑,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미국의 인기 팝송, 비밀스레 이뤄지는 수입품 거래 등은 당시 이미 소련에 서구의 문화와 문물이 많이 침투되어 있었음을 반영한다. 실제로 브레즈네프 시기 청년들은 소련의 마지막 세대라고도 불리는 ‘브레즈네프의 아이들’로 일컬어지며 당시 미국 인기 록밴드들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해빙기에 문화적 유행을 주도했던 세력이었다.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장면으로는 에서 게냐가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뒤 그의 집으로 부녀회장 바르바라가 찾아온 장면을 꼽을 수 있다. 00:28:59게냐가 이스탄불을 다녀온 것에 대해 강연을 해주길 부탁하면서 바르바라는 게냐의 집 거실 장식장에 놓여있는 물건들을 건드린다. 하나같이 이국적이고, 소련과는 이질적인 느낌의 물건들이다. 동양적인 느낌의 도자기 제품, 미국과 관련된 기념품인 것 같은 밀짚모자와 미니 세무 조끼, 에펠탑이 그려진 티셔츠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소련 사회에 서구 국가로의 여행이 어느 정도 가능했고, 서구 문물들이 러시아인들의 삶에 침투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아닐까 싶다. 즉, 국가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서구는 악으로 치부되지만, 서구의 문물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바르바라라는 인물을 통해서 더욱 잘 드러나는데, 그녀는 부녀회장이라는 자신의 소임 및 국가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여성이다. 그럼에도 게냐의 집에 있는 이국적인 물건들에 호기심을 보이고, 게냐가 이스탄불에서 가고 하니 화색을 띠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게냐가 서구로 여행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러시아 영화계에서도 소련시기 다른 문화 분야와 마찬가지로 고르바쵸프 해빙기 시기를 겪고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로 진입하면서 큰 변화의 흐름을 맞는다.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과거의 사건을 다시 돌아보는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특히 박탈감과 잔인함을 필두로 한 반스탈린 영화들이 선보여지기 시작했다. 또한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를 위한 장엄한 희생이자, 국가의 영광을 위해 불가피한 것처럼 묘사되어왔던 전쟁을 해빙기 이후 현실적으로 직시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참상을 끔찍할 만큼 사실적으로 드러낸 다큐멘터리 필름들이 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영화로는 본다르추크 감독의 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전쟁을 주제로 소련 국민들의 ‘우리네 이야기’를 들려준다. 명확하지도 않은 명분 하에 무고한 젊은이들이 죽음의 위협 속에 매일같이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숭고하게 포장되어 왔던 전쟁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관객들은 그렇게 나의 아들이, 나의 친구가, 나의 연인이 희생되었음을 영화를 통해 다시 목격하고 공감했다.하지만 한편으로 소련의 해체는 다시 영화계에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부르주아적이라 매도되었던 형식주의적 영화들, 그리고 사적인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영화들이 다시 제작되기 시작했으며,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품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대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감독 중 한 명으로는 소쿠로프를 꼽을 수 있다. 그는 타르콥스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타르콥스키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그는 영화는 그림이 그 자체로 삽입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영화와 회화예술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영상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20년대 도브젠코의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영화는 본래 사실 자체를 전달하기보다 감독의 의도를 장면에 담고, 관객이 이에서 그 사실의 변주가 일어나는 장르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회화가 그대로 등장한다는 것은 이에 반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회화를 영화 내에서 감독의 의도를 반영하고 관객의 상상을 자극하는 기능의 수단으로 본다면 이해가 된다. 타르콥스키의 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성인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곧바로 어머니, 혹은 아내의 이미지와 이어지며 연결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성인이 갖는 속성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00:53:28위 장면은 이그나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화집을 넘겨보는 장면이다. 수 많은 성인들의 초상화를 들여다본 후 이그나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어머니이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꿋꿋이 아들을 길러내고 중심을 지키는 어머니의 이미지에 성인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렇게 회화 그 자체는 영화에서 독립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감독의 의도가 덧입혀지고 영화 속 이미지들과 결합하며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또한 이러한 회화의 속성은 타르콥스키의 영화가 주로 다루고 있는 기억의 문제에서도 큰 역할을 발휘한다. 그림, 그리고 사진은 타르콥스키의 영화에서 기억의 체현과 체험을 선사한다. 사진을 예로 들면, 우리는 사진을 볼 때 사진에 포착된 사건이나 인물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찍혔던 당시의 상황, 그 때의 느낌 등을 모두 상기하게 된다. 즉, 사진이 사실 전달의 기능뿐 아니라 기억을 자극하고, 그 때의 경험을 다시 머릿속에 재현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타르콥스키의 영화 을 들여다보면 이와 같이 기억을 자극하고 현재 화자와 과거를 이어주는 매개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다빈치의 회화, 과거 전시 상황을 보여주는 낡은 영상, 흑백 사진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 내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 속 화자의 기억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기억까지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더 나아가 감독과 관객간의 기억으로 인한 경험 공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