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공예사 Report 1.붓 끝으로 기억된 철종(哲宗) 그리고 강화도령 이원범.2011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초상화의 비밀’ 展‘철종어진(哲宗御眞)’ (보물 제 1492호)20111200712학기목 차Ⅰ. 들어가며Ⅱ. 붓 끝으로 기억된강화도령 이원범Ⅲ. 나가며박인애Ⅰ. 들어가며어진 (御眞)이란 왕의 초상화로 이외에도 진용 (眞容)·진 (眞)·수용 (?容)·성용 (聖容)·영자 (影子)·영정 (影幀)·어용 (御用)·왕상 (王像)·어영 (御影) 등 다양하다. 1713년 (숙종 39) 숙종 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 (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 (李?命)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의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영자는 왕이 지칭하는 것이므로 신하로서는 감히 칭할 수 없고, 영정은 그 뜻이 회화를 열어 펼친다는 뜻이니 족자 (簇子)로 꾸며진 것이 아니면 칭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수용이란 단순히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니 부를 바가 못 되며, 어용 역시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전신 (傳神)이란 사진 (寫眞)으로 불려왔으며, 또한 왕의 초상화를 봉안하는 처소를 진전 (眞殿)이라 하므로 왕의 화상 역시 어진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어진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어용 역시 조선 말기까지 빈번히 병용되어 왔다.Ⅱ. 붓 끝으로 기억된 강화도령 이원범우리나라에는 현재 어진 제작 과정이나 진전 봉안 체제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기록은 전존하고 있으나, 작품으로는 전주 경기전 (慶基殿)의 태조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의 영조 어진·철종 어진, 익종 어진,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 (延?君) 때의 도사본(圖寫本)만이 현존하고 있다.이 작품은 조선조 25대 임금이며 1850년부터 1863년까지 재위하였던 철종 임금의 31세 당시 초상이다. 규격은 세로 202㎝ , 가로 93㎝이며 한국 전쟁 때 부산의 창고 화재로 오른쪽 1/3이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왼쪽 상단에 “予三十一歲 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 (나의 31세 때의 초상. 철종희륜정극수덕순성문현무성헌인영효대왕)”이라고 적혀 있어 이 어진이 철종 12년 (1861)에 도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규장각에서 펴낸 『어진도사사실 (御眞圖寫事實)』에 의하면, 이한철(李漢喆)과 조중묵 (趙重?)이 주관 화사를 맡았고, 김하종 (金夏鍾), 박기준 (朴基駿), 이형록 (李亨祿), 백영배 (白英培), 백은배(白殷培), 유숙(劉淑) 등이 도왔다고 한다. 당시 1개월여에 걸쳐 강사포본 (絳紗袍本)과 군복본(軍服本)을 모사했으나 현재 군복본만 현전(現傳)한다.Ⅲ. 나가며은 임금이 구군복 (具軍服)을 입고 있는 초상화로는 유일한 자료이다. 군복의 화려한 채색, 세련된 선염, 무늬의 정세한 표현 등에서 참여한 화원 화가들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점 등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군복을 입은 어진은 이를 즐겨 입었던 사도세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정조대 이후에 그려지기 시작하여 익종, 헌종, 철종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군복의 어깨와 배 부분에는 용무늬로 장식된 커다란 보가 부착되어 있으며, 가슴 아래로는 아름다운 오색의 수가 놓여진 광대를 두르고 그 위에 다시 청색 전대를 매어 고름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화면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청색 전대는 걷어부친 소매에서 드러나는 선홍색 안감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전대를 두른 옆구리 사이로 교의 위에 깐 표피가 언뜻 드러나 있고, 머리에 쓴 흑색 죽전립 (竹戰笠)에는 용무늬의 옥판과 옥로, 공작깃털로 장식되어 화려함의 지극함을 보여주는데, 바닥에 깐 청홍색 용무늬 화문석에서는 그 도가 지나쳐 다소 산만하기도 하다. 전통적인 공수자세에서 벗어나 팔걸이를 잡고 있는 새로운 자세나 어용의 이목구비에서 벗어나 화면 전반에 걸친 화려한 세부에 대한 관심은 채용신이 그린 고종 초상에 선행하는 새로운 장식적 취향으로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