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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박민규)을 읽고
    현대소설의 이해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을 읽고제목만 읽고서는 도저히 어떤 내용의 책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삼미슈퍼스타즈’가 무엇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첫 장은 넘기면서 과거에 프로야구의 초창기 시절 존재했던 팀 이름인 것은 알게되었지만, 도무지 ‘야구’이야기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야구가 뭐 어쨋다는 것일까. ‘나는 야구를 잘 알지도 못하는데..’하며 무심히 책장을 넘기던 나는,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저자 ‘박민규’의 문체에 빠져들면서 그의 ‘야구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의 문체는 마치 허풍을 섞어 말하길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같기도 하고 혹은 술자리를 띄우는 담당인 웃긴 친구같기도 하다. 사실 좋은(어려운) 메시지는 쉬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작정하고 정색하고 말하는 지식인의 고루한 말씀보다, 가벼운 듯 껄렁껄렁하게 툭툭 던지는 동네 아저씨 혹은 선배의 말 속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동반한 감동을 받게 된다는 것을. 박민규의 이 소설이 그러했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다. 쉽게 읽히지만 쉽게 넘겨버릴 이야기들이 아니다.어쨌든 박민규의 문체에 빠져든 내 마음 한켠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은, 과연, 이 소설에서 야구는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어릴적 어린이 야구 응원단으로 활동했던 수기적 체험을 나열한 글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야구는 하나의 인생과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는 선수의 입장에서 늘 해온 말이다. 스포츠를 다룬 이야기들은 모두 선수의 입장에서 겪은 치열한 경쟁과 그 속에서 느끼는 삶의 의미를 대변하고 있다. ‘슬램덩크’, ‘공포의 외인구단’ 등과 같은 스포츠 만화에서도 선수들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이며 응원하는 사람들은 부수적 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응원하는 팬클럽을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다. 팬클럽은 무엇인가. 무언가에 강렬하게 열광하는 집단이다.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크게 열광해 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부러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무엇’에 그렇게 열광하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 ‘열광’이라는 단어 자체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들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들이 그러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역설적이게도 ‘지나치게 열광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까. 중학생 삼미슈퍼스타즈팬클럽은 기세좋게 경기를 리드하는 경쟁팀 OB응원단 앞에서 그들은 큰소리내어 응원해보지도 못한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어깨한번 펴지못하고 쓸쓸하게 돌아온다. 어릴 적 그때에는 ‘못하는’것이었지만, 주인공이 이혼과 실직을 겪고 다시 결성된 삼미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은 더 이상 우승, 승리에 열광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말이다.열정이라는 단어는 참 매혹적이다. 그런데 우리 삶은 열광, 열정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열광, 열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라는 말은 폭력적이다. 끊임없이 에너지를 소비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저 무언가를 그렇게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이기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턴가 열광과 열정을 강요당한다.그래서일까. 소설 속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와 같은 대사는 마음 한켠을 불편하게 만든다(소설 속에서도 부정적인 문장으로 등장한다). 야망을 갖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 사람은 패배자다.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는 3할대 정도의 승률로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거야’따위의 대사를 읊을 수 있지만 1할 2푼의 승률로 꿈과 낭만을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정을 직업으로 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집단이 ‘프로’다. 세상에 전도된 이른바 프로의 복음(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프로의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 아닙니까? 등)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오늘날 열정은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의해 착취당한다.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고 끊임없이 스펙을 쌓아 프로의 경지에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 어느 대학보다 좋은 일류대에 들어갔다. 이는 ‘별 볼일 없는 인생’을 피하고자 노력한 발버둥이었다. 평범하고 평범한 가문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평범하고 평범한 가문의 아버지가 될 확률이 높은 인생. 그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 즉 그는 삼미슈퍼스타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서운 프로의 세계에서 삼미슈퍼스타즈는 심지어 평범의 축에도 낄 수 없다. 3위와 4위가 그럭저럭 평범한 삶처럼 보일 뿐 6위는 최하위의 삶처럼 보인다. 리포트를 내라면 내고, 출석을 부르면 대답하고, 시험을 치라면 치는 삶을 거쳐 직장을 얻은 그가 결국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 실직과 이혼이었다.인생의 청춘기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청춘은 고장난 탱크와 같다”는 문장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이 조성훈의 집에서 만든 조립 탱크는 어쩐 일인지 전진만이 가능했다. 후방으로도, 360도 좌우로도 움직이질 않았던 것이다. 전진만이 가능한 고장난 탱크.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돌격! 할 수 있는 강렬한 생동감을 떠올리는 동시에,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무모함 혹은 불안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우리는 “내일의 문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돌진해서 살아온 인생. 그렇게 온 대륙을 돌았지만 지구의 70%는 바다가 차지하고 있듯 우리는 여전히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 “평생을 살더라도, 결국 인생의 70%는 바다인 셈”이다. 다 알지도 못하는데 심지어 아는 것 중에서 잘 하지도 못한다. “결코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이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가 몇 가지의 간단한 항목으로 요약되고 정리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대사는 그래서 참 슬픈 말이다.고장난 탱크처럼 전진해 온 주인공을 만난 조성훈이 “어쩌다 프로 따위가 된 거지?”라고 말했을 땐 화도 났다. 조성훈에게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프로가 되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였다.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는 도태되고 무시당하고 조롱받고 멸시당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그저 살아나가려면 프로의 룰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로가 되고자 했던 주인공은 그제서야 잊고있던 삼미슈퍼스타즈를 떠올린다. 이제 삼미슈퍼스타즈는 패배자가 아니다. ‘프로가 되어라’고 외치는 사회에 호도당하지 않고 아마추어로 남은 그들은 이 사회의 원래 주인이었다. 착취는 교묘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고통스럽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서서히 이뤄졌다. 착취를 단행하는 자본주의의 ‘프랜차이즈’가 되지 않고 원래 모습을 지킨 그들은, 변해버린 사회 앞에서 돌연변이로 포장되었을 뿐, 사실은 그들이 원래 자연스러운 본 모습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완벽한 프랜차이즈가 될수록 불완전한 삶을 영위할 뿐이다. 프랜차이즈는 무엇인가. 대기업에 기술과 이름을 빌리는 대가로 자본과 자유를 착취당하는 것이다.착취당하는 영혼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 ‘심리정치’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는 개인이 욕망하는 것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주입된 것으로,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하는 통치술이라 말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욕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본에 의해 조종된 것이다. 승리와 성공을 욕망하는 삶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제목도, 이야기도 참으로 지질해 보였던 이 책이 새삼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독후감/창작| 2020.05.28| 3페이지| 1,500원| 조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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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스물' 감상평 후기
    공공수행인문학의 이론과 실제현실의 해결 불가능성이 낳은 어떤 대중문화의 사례 분석_ 영화 ‘스물’“지금과 같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우리에겐 잘못 접어든 길에서도 다시 돌아갈 시간이 충분하다” 영화 ‘스물’에 등장하는 대사다. 이 영화는 스물 그 자체에 담긴 찬란한 청춘을 그렸다. 찬란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성공한 삶만이 찬란한 것은 아니다. 스무 살이 찬란하다는 것은 성공적인 삶으로 꼭 귀결되지 않았더라도, 지질함과 실패로 가득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는 뜻이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조차 20대의 특권이다. 그런데 영화 속 20대의 모습은 현재 20대의 모습이라기보단, 되찾고 싶은 20대의 모습인지도 모른다.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막상 우리 자신에게 닥친 20대는 가혹하기만 하다. 영화 속 20대 주인공 세 명은 모두 재기발랄하고 꿋꿋하지만 현실의 20대는 그렇지 못하다. 정녕 ‘잘못 접어든 길에서 다시 돌아갈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크린에서는 이런 세상의 가혹함을 잊고, 정말 찬란하다고 일컬어지는 20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본인도 20대인 ‘주제에’, 벌써 세상을 다 알아버린듯 무심하게 “힘들다고 울어 버릇하지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라고 내뱉는 치호. 이것이 진정한 달관세대인걸까.88만원 세대라는 명명이 불편해서였는지 ‘달관세대’라는 명명이 등장했다. ‘달관세대’전에는 ‘20대 개XX론’이 나오기도 했다. ‘달관세대’와 ‘20대 개XX론’에서 짚고 있는 청년들의 공통점은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 동우는 “세상에 뭐 김연아, 박태환 같은 애들만 있냐? 그렇게 되려다가 포기한 애들은 다 욕 먹어야 되는 거야? 포기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라며 분노하기라도 하지만, 지금 20대는 분노할 시간조차 없다. 기업이 원하는 비슷한 스펙을 쌓아가며 호모 맥도날드가 되어갈 뿐이다. 오늘날 20대를 부르는 여러가지 말들이 있지만 어째 ‘살기 힘들다’, ‘취직하기 힘들다’는 것 외에 잡히는 이미지가 없다. 20대가 ‘달관세대’인데다 ‘호모 맥도날드’라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집에서 혼자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것에 만족하며 그저 돈이 안드는 도서관을 왔다갔다하며 스펙쌓기에 열중하는 인간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이런 삶에서 ‘스물’에서 그리는 아름답고 찬란한 좌충우돌기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연애, 결혼, 출산마저 포기한다는 삼포세대인데 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영화 ‘스물’은 20대의 대리만족이다.그나마 힘든 20대를 대변하고 있는 인물인 동우는 집안이 부도가 나서 가장역할을 하며 수능을 준비하다, 결국 수능을 포기하고 큰아버지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현실의 20대는 갑자기 나타나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큰아버지도 없을 뿐더러 대학을 안나와도 그림을 할 수 있다며 자위하기가 쉽지 않다. 동우처럼 꿈이 만화가도 아닌, 일반 사기업에 취직해야 하는 고졸은 사회에서 많은 불평등을 겪는다. 이는 취직 전이나 후나 꼬리표처럼 달라붙는다.누구에게나 두려운 실패가 유독 지금 20대에게 마냥 ‘경험’으로 미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실패가 미래의 양분이 된다는 믿음을 갖기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패는 실패 그 자체로 남겨두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한 번의 실패로 나락에 떨어지는 나라, 절벽사회다. 젊은 날 고생은 사서도 한다던 말은 옛말이 됐다.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지만, 한번 절벽으로 떨어지면 끝이다. 대학교 4학년때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하면 늦다. 1학년부터 토익을 공부하고 각종 대외활동으로 많은 유용한 ‘경험’들을 쌓아야 한다. 1년이라도 허투루 보냈다간 뒤쳐진다는 압박감에 끊임없이 내달려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위해 의도된 경험들은 스물에서 미화된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경험이다. 연애에 실패하고, 기울어진 가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은 자소서가 원하는 종류의 실패가 아니다.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해내고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똑 같은 실패라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실패는 따로 있는 것이다.청년들도 아름다운 좌절을 하고 싶다. 취직에 도움이 돼서도 아니고, 내 능력을 성장시켜서도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실패 말이다. 현실에서는 쉬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영화 ‘스물’을 통해 아름다운 청춘을 예찬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아닐까.
    독후감/창작| 2020.05.28| 2페이지| 1,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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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이란 무엇인가' 기말 레포트. 책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읽고
    소크라테스의 생애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 알로페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소프로니스코스였고 어머니 산파인 파에나레테였다. 소크라테스는 찬란한 페리클레스 시대에 성장기를 보내면서 아테네 제국의 탄생을 목격했고 중장비 보병으로 펠로폰네소스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그는 또한 기원전 411년에 일어난 최초의 과두혁명에서부터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포위당했다가 패배한 후인 기원전 404년의 마지막 과두혁명에 이르기까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내전을 통해 민주주의가 회복된 후인 기원전 403년에도 소크라테스는 오래 전부터 계속해오던 철학적 활동을 하며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영혼을 소중히 여기라고 촉구했다. 아고라를 비롯한 여러 공공장소에서 지혜롭다고 알려진 많은 유력인사들의 도덕적 자기만족에 도전하며 철학을 실천하려고 했다.그러나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인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너그럽다는 평판을 얻었던 아테네인들이 더 이상 관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소크라테스의 재판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재판을 받았다. 그의 죄목은 국가가 믿는 신들을 불신한 것, 새로운 신들을 소개한 것,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것이었다. 전통적인 종교나 젊은이의 교육과 관련된 이슈, 모든 아테네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이 이 재판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플라톤에 의해 씌여진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이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한 연설을 기록하고 있다.첫번째 연설은 소크라테스가 ‘과거의 비판자들’을 언급한 후 자신의 주요 혐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변론이고, 두번째 연설은 소크라테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처벌의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며, 마지막 연설은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 소크라테스가 배심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내용이다.소크라테스의 연설에 앞서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원고 측의 발언이 있었다.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이 차례로 올라가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소크라테스는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또한 스스로 지혜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소피스트들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진짜 범인이라는 점을 아테네인들에게 일깨워주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와 소피스트간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했다.따라서 소크라테스가 과거의 비판자와 새로운 비판자들에게 맞서 성공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려면,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자연철학자들뿐만 아니라 회의주의와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소피스트들과도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배심원들에게 심어주어야 했다.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어릴 적 친구인 카에레폰이 델포이로 가서 듣고 왔다는 신탁 얘기를 꺼내었다. 신탁의 내용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신탁의 뜻을 알아내기 위해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찾아간 사람은 정치가, 시인, 기술자였는데 그들은 모두 자기들이 모르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소크라테스의 재판은 철학에 대한 재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서로 정반대의 원칙에 헌신하고 있는 자신과 아테네 사이의 비극적인 갈등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소크라테스 그 자신도 철학과 정치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곧 전통적인 가치관 아래서의 ‘선한 사람’과 ‘훌륭한 시민’ 사이의 선택을 강요한 것이다.시대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의 주장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비록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시민들을 억압하곤 했다. 이것이 현대의 민주주의와 다른 점이다. 빅토르 에렌베르크가 말한 것과 같이 “국가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일반적인 사실이었고, 국가로부터의 자유는 예외였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이루어 졌을 때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궤멸되다시피 한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끝난 후였다. 스파르타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후 아테네는 더 이상 페리클레스 시대의 찬란한 그 아테면 질서가 무너져 혼란이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정치인들을 비롯한 다수의 시민들이 유연한 사고를 하기 힘든 시기에 그러한 주장들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위험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도발적이고 비판적인 주장은 시민들의 두려움을 강화시켰다. 전쟁직후 안정을 추구하고 있던 시기에 예리한 비판을 하는 소크라테스를 참아주기 어려웠을 것이다.이처럼 민주주의가 생겨나게 된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에서도 소크라테스 개인의 양심에 따른 행동에 관대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 가치인 자유로운 사고에 대해 너그럽다는 평판을 받았었던 아테네인들 조차 소크라테스에게 사형판결을 내린 것 이다. 이로 보았을 때 철학과 정치가 양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사상의 자유가 더 발전했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 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당시 시대상황이 어떠한가에 달린 것이다.국가에 반대하는 개인들은 흔히 국가보다 우선하는 도덕적 법칙에 대한 믿음과 양심을 자기 행동의 근거로 내세운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권력에 양심적인 제한을 가한다. 이는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양심적 이유로 징집 등 병역의무를 거부하거나 전쟁 또는 무장충돌에의 직간접적 참여를 거부하는 것을 ‘양심적 집총거부’라고 하는데, 특히 의무징병제가 실시되고 있는 국가에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것을 ‘양심적 병역거부’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현재 많은 국가에서 허용하고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만약 국가 간의 긴장 상태가 극에 치닫는다 하면 이러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국가기관에 개인에게 스스로의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하더라도 유사시에는 상황에 달라질 거라는 것이다. 이처럼 도덕적, 종교적 위기가 아테네를 움켜쥐고, 안팎의 적이 위협하는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은 모든 가치관과 신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철학자에게 더 이상 관용을 베풀 수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당시 아테네의 법정은 일종의 객관적인 진실의 존재를 부정하며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설교했지만,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인 이성을 기반으로 흔들리지 않는 도덕적 기반을 제공해줄 미덕의 정의를 찾아 헤매며 회의주의와 싸우는 데 평생을 바쳤다. 마지막으로 소피스트들은 교육 지침서를 작성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소크라테스는 글을 전혀 쓰지 않았으며 가르침을 펼 때 책을 이용하는 것을 거부했다.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이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진짜 범인이라는 점을 아테네인 들에게 일깨워 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도리어 자신이 소피스트의 범주 안에 드는 사람으로 오인 받고 말았다.철학적 사명을 주장한 소크라테스오래 전부터 아테네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정치과 철학 사이의 비극적인 대결은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사건을 계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소크라테스는 전통적인 권위와 관습적인 가치관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도출된 도덕적 신념을 기초로 도덕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의 의인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 소크라테스는 개인의 양심, 표현의 자유, 신에게 복종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복종해야 할 의무보다 우선이라는 도덕적 주장을 상징한다. 그에 반해 아테네는 체제에 저항하며 전통적인 공동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철학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국가를 상징한다. 이는 곧 ‘정치’의 목적이기도 하다.소크라테스는 국가보다 우선하는 신의 도덕적 법칙을 버리느니 차라리 국가에 불복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신에게서 사명을 부여 받았으며 그 누구보다도 신에게 복종하겠다고 약속했다는 주장을 통해 국가의 권위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는 확실한 기반을 마련한 셈이었다. 앞서 아테네의 상황을 설명했듯이 당시 상황에서는 양심을 따를 의무와 국가에 충성할 의무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소크라테스는 양심을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법정은 소크라테스와 아테네, 즉 철학자와 정치 사이의 경연이 펼쳐지는 극장이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아테네의 갈등은 곧. 타협을 거부하는 자세로 스스로를 변론했기 때문에 개방적인 태도의 사람들이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시대 상황으로 봤을 때는 아테네의 입장도 결코 이해하기 어렵지만은 않았을 텐데도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했다는 점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잘못이 있다. 상대방 주장의 장점은 보지 않고 자기 의견만을 피력하는 독선적인 태도는 대화에 있어서 절대 금물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정치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서 신중하게 정치적 방법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덜 도발적인 태도로 변론을 했다면 자신의 원칙을 굽히지 않더라도 무죄판결을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도발적이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주장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진실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평범한 권위에 복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신념을 형성해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위기에 처한 국가’는 관대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함께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시민이란 곧 정치를 회피하는 사람이었다. 민주주의에서 이런 태도는 지양되어야 하는 태도이다. 물론 정치가들은 세속적인 물질, 명예, 권력을 자치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추한 꼴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자체를 철학과 대립되는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무지하다는 고백을 통해서 배심원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무지’라는 말 아래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숨겨져 있다고 느끼게 된 배심원들이 더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연설을 통해 배심원들이 더 그러한 생각을 확고히 굳히도록 만든 것이다. 신탁 이야기에서도 아테네인 들이 느끼기에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신의 뜻으로 간접 전달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소크라테스가 정말 철학을 국
    독후감/창작| 2020.05.13| 10페이지| 2,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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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소피의 세계' 후기 및 독후감
    ‘소피의 세계’를 감상한 후이 영화는 ‘소피’라는 소녀가 자신에게 날아든 의문의 편지를 읽어나가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그 편지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점점 탐구하도록 만든다. 나에게 만약 그 편지가 날아들었다면 나는 무척 행복했을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한번쯤 누구나 고민해보지만 그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끝까지 해보지 않는다.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과연 건설적인 것인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쉽게 그 과정에서 포기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편지가 온다면 정말 진지하게 그에 대해서 고민해 볼 계기를 가지는 것이다.‘나는 누구인가’하는 것은 곧 ‘인간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로 귀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그리고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답할 수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 누구의 말도 다 답이 될 수 있는 것이다.이 질문을 확장시켜 ‘세계는, 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 ’라는 질문은 어떤가. 평소 이 문제에 대해서 잠깐 잠깐 고민해 본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늘 결론없이 끝나곤 했었다. 답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정확한 하나의 답을 찾는 사고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끝없이 나아가는 물음의 뒤를 쫓는 끈기가 부족하다. 나 또한 그랬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그동안 짧게나마 해봤던 고민을 좀 더 깊게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물음이다. 정말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그들로부터 세계가 만들어지고 우리가 생겨난 것일까? 철학적으로 사고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신학적인 개념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칸트가 말했듯 우리는 신이라는 초월적인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에까지밖에 인식할 수 없다. 그럼 그 나머지 부분은 우리의 생각으로 채워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0.05.11| 1페이지| 1,000원| 조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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