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넬리우스 반틸의 조직신학 서론 요약1장. 조직신학의 개념과 가치1) 개념조직신학은 하나님에 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대한 질서 있는 진술을 제공하려고 애쓰는 학문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한다면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은 성경이 계시하는 대로의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전체적으로(as a whole), 통일된 체계로(as a unified system) 제공해 보려고 노력하는 학문이라고 정리 할 수 있다.주해(exegesis)는 성경의 각 부분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이며 성경 신학(biblical theology)은 주해의 결과를 취하고 그것들을 조직화해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역사적 발전에 따라 추적해 나가는 학문이다. 성경 신학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의 각 부분의 신학을 드러낸다. 조직신학은 주해와 성경 신학의 열매를 하나의 연결된 체계로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변증학(Apologetics)은 이 성경적 진리의 체계를 잘못된 철학과 과학에 대응하여 옹호하려고 하며 실천 신학은 이 성경적 진리의 체계를 어떻게 선포하고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 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모든 학문분과는 하나님을 전제해야 하는것이고 동시에 전제(presupposition)는 최선의 증명이 되는 것이다.결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단들을 대항하여 교회의 교리들을 더 정확하게 진술하고 성경적 진리를 더 온전히 진술하는 것이다.2) 가치우리가 조직신학, 또는 다른 어떤 신학분과의 가치를 말할 때, 우리는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의 문제가 아닌 진리와 의무의 문제가 더 기본적이고 선결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가 계시의 내용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정신’을 가지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사유하며 작업을 해야 한다.인간으로써 우리는 자연적으로 어느 한편에 치우치려는 성향이 강한데 조직신학 연구는 우리의 영적인 균형을 유지하고 개발 시키는데 도움나님의 계시가 아니라고 한다면 인간 지식의 전 분야는 다 무너져 내릴 것이다.신학과 다른 학문의 차이는 단지 하나님이 지식의 상황에 도입되는 직접성의 정도에 있다. 다른 학문을 할 때보다는 신학을 할 때에 더 직접적으로 성경에 관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학문을 할 때에 우리가 성경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이다. 사실들이란 그것들이 하나님의 본성에 따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생성되었기 때문에 바로 지금의 모습과 양태를 갖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경우 사실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조직신학의 과제는 유비적인 체계로서 가능한 한 하나님의 계시를 질서 있게 정돈해 내는 것이다.제3장 기독교 인식론신학에 있어 이성의 기능에 관한 문제에 대해 정통파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성” “이성”을 너무나도 두려워해서 “이성”에게 그 어떤 위치도 허락하지 않는 이들과 신학이 그 자체를 학문으로 여길 온전한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성향 모두 기독교적인 이성의 사용(a Christian use of reason)과 비기독교적인 사용(a non-Christian use of reason)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인식론에 대해 우리는 지식의 대상에 대한 문제와 지식의 주체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적 입장이 다른 입장들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에 주목해 보아야만 한다.1) 지식의 대상하나님께서 무로부터 우주를 창조하셨고 우주는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원천에서 그 존재를 얻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독자적인 존재가 우주의 파생적 존재를 규정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자신에 대한 절대적 의미는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사실의 의미가 마땅히 하나님과 연관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성경은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그 전체의 의미를 가진다고 끊임없이 말한다.인간은 인간 정신이 어떤 사실을 참으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존재와 우주에인 지성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적인 지성과 인간 지성의 차이는 어느 정도 철저히 알 수 있느냐의 차이로만 표현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연스레 타락을 거부하게 된다. 그렇게 창조주-피조물 관계를 실제적으로 항상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비기독교적인 근거에 기초한 ‘지성의 우위 개념’은 결국 초월적인 신론, 창조론, 타락에 대한 가르침,그리고 구속 사역에 함의된 다양한 교리들의 부인을 가져오게 된다.2) 판단자인 이성 (Reason as the Judicium Contradictionis)핫지는 지성의 도구적 기능(the usus instrumentalis)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이성이 판단자(the judicium contradictionis)역할을 할 수 있다고, 즉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변별하는 대권을 가질 수 있음”을 주장한다.유신론은 모든 서술이 자의식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한다고 주장하지만 반유신론은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고서도 서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가능성 문제에 대해서도 유신론자에게는 가능성이 하나님께 그 기원을 가지는 것이지만 반 유신론자들에게는 개연성 있는 것이 하나님과는 독립적인 것이다.핫지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을 하나님이 행하시고, 옳다 인정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유신론자들은 상대적 도덕성 이론을 가졌고 유신론자들은 절대적 도덕성 이론을 가졌으므로 마치 일반적 도덕의식이 있는 것처럼 여기고 이에 의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3) 계시의 증거들에 대한 판단자인 이성핫지는 이성의 세번째 기능을 이성이 그에게 오는 모든 계시를 판단해야만 하는 기능이라 말 한다. 그는 신앙은 “적절한 근거에 기초하여 진리를 지적으로 수납하는 것”이라고 하며, 성경은 결코 “적절한 증거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신앙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는 핫지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오직 유신론에서라야 한다.불신자들의 일원론적인 가정에 의하면 성자이신 예수의 부활을 믿는) 헤프 자신의 입장헤프는 우주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생각의 온전한 계시는 성령의 외적인 증언사역이며 계시의 진리에 대한 확신은 성령의 내적 증언 사역이라고 한다. 절대적 확실성은 대상 자체와 상관없이 성령께서 계시를 믿도록 하실 때만 얻어지는데 그것은 내적인 일반적 증언을 받을 때에 일어난다. 그는 하나님, 인간, 우주에 관한 일반 계시와 성령의 일반적 증언이 결합해서 신앙이 태어나는데 이러한 일반적 신앙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일반적 신앙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성령의 일반적 증언은 죄에 의해 손상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3) 헤프의 입장에 대한 평가헤프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중립적 논리가 있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서로 동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는 증거란 그 자체로는 내용을 주지 않고,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 증거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헤프는 유신 논증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어느 정도는 적어도 일반계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제 6장 기독교 유신론적 계시1) 계시의 전제들우리의 계시 개념에 분명한 의미를 주는 것은 절대적이며 절대적으로 자의식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의 개념이다. 계시의 또 다른 주된 전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지식의 이상이 하나님을 온전히 다 파악하는 것일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지식이 참되다는 것을 함의한다. 이로인해 우리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관한 것이든지 아니면 피조된 우주 자체 내의 대상들에 관한 것이든지 그 어떤 유한한 피조물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지식은 결국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해야만 한다.2)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전 우주(1) 범신론에 반(反)하여그리스도인들은 우주전체를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지만 범신론자는 그 계시를 것이다.2) 사람에게서 온 사람에 대한 계시:심리학 자체(Psychology Proper)칼빈은 『기독교강요』 제1장에서 사람이 자신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원형으로, 그리고 자신을 파생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제3장에서 타락 이 후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무지를 핑계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그의 신성에 대한 개념을 부여하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지도 않고 자신들을 그에게 드려 살지 않을 때 양심에 가책을 받도록 하셨다고 했다. 이어 4장에서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에 의해서 뿌려진 종교의 씨앗에 대해 말하며 5장에서는 사람 안에 뿌려진 종교의 씨앗을 자연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연관시키고 하나님의 본질은 불가해적이고 인간의 모든 생각을 완전히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의 사역 각 부분에 그의 영광은 밝고 명확해서 그 누구도 아무리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자라도 몰라서 섬기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 없다고 했다. 칼빈은 사람이 신의식을 가지며, 사람 자신의 구성 안에 종교의 씨앗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사람은 어떤 자의식적인 결론에 이르기 전에 사람이 그 자신 안에 진리에 대한 직관적 지식(an intuition of the truth)을 가진다고 주장한다.3)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에 대한 계시:신학적 심리학(Theologico-Psychology)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자신에 관해서 얻을 수 있는 계시에 관해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로 낙원에서 사람에게 그런 정보가 있었고 그것이 그에게 중요한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준비하신 발전의 최고 극치에 관한 것이다. 둘째로, 이 계시는 원래 자연과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주신 계시를 보충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된 우주 자체에 대한 성찰만으로는 사람이 자신에 관한, 특히 자신의 미래에 관한 경륜 전체를 다 배울 수 없다. 자연 안에 있는 계시란 한계 개념일 뿐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빛에서 자신을 연구하.
히어로 영화가 말하는 이웃의 정의와 악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을 보고-히어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플롯(plot)은 대부분 일정하다. 히어로의 탄생과 빌런의 등장, 그리고 그로 인한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면서 더욱 성장하는 히어로의 모습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히어로 영화의 플롯, 진행 방식이다. 그런 의미로 은 이 전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비슷한 히어로 영화의 전개 속에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고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의 고충과 고민을 잘 보여줌으로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악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영화는 주인공 피터 파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시작된다. 전편의 빌런인 미스테리오로 인해 악의적인 이미지가 씌워지고 사람들에게 사생활 노출과 함께 숱한 소문들이 생겨난다. 이로 인해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까지 피해를 보게 되자 그는 동료 히어로인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찾아가 과거를 바꾸려 한다. 이 과정에서 다중우주라 불리는 멀티버스를 통해 이전에 만들어진 스파이더맨의 영화 속 빌런들이 등장하게 되고 피터는 자신을 돌봐준 메이 숙모(영화에서는 큰엄마라고 번역했으나 이전에 모든 곳에서 숙모라 했으므로 숙모라 번역하겠다)를 고블린이라는 빌런에게 잃는다. 자신의 선택으로 메이 숙모를 잃게 된 피터 파커는 큰 절망에 빠지지만 빌런만이 아닌 다른 우주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더맨 또한 이 세계로 넘어와 피터 파커를 도움으로 다시 한번 힘을 얻고 빌런들을 물리치게 된다.영화는 피터 파커의 성장을 잘 그려냈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안에서 아이언맨이 다음을 맡긴 히어로지만 실제 그의 모습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고등학교 3학년일 뿐이다. 자신으로 인해 자신과 친구들의 대학 진학이 어렵게 되자 무작정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기억을 지워 해결해달라고 조르는 그의 모습에서 아직 어리숙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생긴 빌런의 등장과 메이 숙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그의 성장은 이제 어엿한 히어로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자신과 관계있는 모든 사람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의 희생은 영화 초반에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며 이로 인해 피터 파커라는 인물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또 영화에서 잘 표현하고 있는 점은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이다. 영화나 코믹스에서 스파이더맨의 이름 앞에는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이라는 별명이 따라온다. 스파이더맨은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한 이웃이다. 비록 자신은 외롭고 때로는 오해를 받아 사람들에게 비난받더라도 이웃에게는 언제나 친절한 그래서 더욱 애처로우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톰 홀랜드 외에도 2002년 작의 스파이더맨인 토비 맥과이어와 2012년도의 스파이더맨인 앤드류 가필드까지 총 3명의 스파이더맨이 출연했으나 각각의 영화에서 나오는 스파이더맨 모두는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한 이웃이다. 그 말은 이웃이 어떤 모습과 상태여도 그들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도 영화에서는 빌런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는데 자신들의 실수로 다른 세계의 빌런(이전 영화들의 악당)들이 등장하자 붙잡아서 그대로 다시 돌려보내려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이대로 보내면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에게 그대로 죽임을 당할 것을 알기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돌려보내고자 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대립하고 있다. 닥터는 그들이 빌런이 되고 죽음을 겪는 것은 운명이자 그들의 선택이라며 지금 세계에 손해가 올까 봐 그대로 돌려보내려 하고 스파이더맨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돌려보내면 그들의 세상에도 다툼이 없는 평화가 찾아올 수 있는데 해결하지 않는 것을 마음에 담아두며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범위를 어디까지로 생각하고 있는지 또 악인이나 악인이 될 가능성이 큰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악한길로 빠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들만을 이웃으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얻을 때 그들을 이웃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이 영화 속에서 스파이더맨은 “큰 힘에는 큰 책임 따른다”라는 메이 숙모의 말처럼 그 힘으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모든 사람 즉 악인과 선인을 구분을 짓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을 베푼다. 어느 것을 더 좋다고 구분을 짓기는 힘들 수 있으나 점차 개인주의적이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