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속 사군자- 사군자 중 대나무를 중심으로 -과목명고전문학의 이해교수명제출일학 과학 번이 름Ⅰ. 서론 1Ⅱ. 고전문학 속에 등장하는 대나무의 사례와 상징성 11. 이숭인의 속 대나무12. 혜심의 속 대나무 23. 원척석의 속 대나무34. 윤선도의 속 대나무4Ⅳ. 결론 5참고문헌 6Ⅰ. 서론먼저, 사군자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네 가지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피는 꽃이며, 난초는 깊은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뜨린다. 국화는 늦은 가을 몰려오는 첫 추위를 이겨내며 피고,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며 자란다. 이러한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른다.지금은 대게 ‘사군자’라고 하면 그림인 사군자화를 떠올리지만 사실 사군자는 중국에서 그림의 소재가 되기 훨씬 전에 시문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사군자 가운데 대나무가 《시경》에 나타난 것을 비롯하여 그림의 소재로도 제일 먼저 기록되었다.대나무는 아름다움과 강인성 그리고 높은 실용성 때문에 중국인들에게는 일찍이 그들의 생활과 예술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였다. 《시경》의 에는 주(周)나라 무공(武公)의 높은 덕과 학문, 그리고 인품을 대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에 비유하여 칭송한 시가 있다. 이것이 대나무가 군자로 지칭된 최초의 기록이다.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이자, 소나무, 매화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을 잘 견디는 세 친구)이다. 사군자나 세한삼우는 어려움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를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다.사군자에 대해 알아보며 ‘대나무’가 사군자 중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대나무’ 라는 소재에 관심이 생겼고 이와 더불어 매 · 난 · 국 · 죽의 순서는 춘하추동의 순서에 맞추어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재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겨울을 담당하는 대나 절개를 겸비한 선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대게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꿋꿋하게 자라나며 일자로 쭉 뻗어 자라기 때문에 강인함과 지조, 절개를 상징하는 소재로 자주 쓰인다. 그럼 여려 사례를 통해 고전 문학에 등장한 대나무와 그 상징성에 대해 알아보자.1. 이숭인, 대나무는 한낱 식물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서리와 찬이슬을 만나면 급격히 변하여 꺾어지고 부러지고 떨어져서 다시는 생기가 없어진다. 그런데 대는 가지의 모습을 고치거나 바꾸는 일 없이 의젓이 홀로 빼어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옛날의 운치 있는 사람과 절개 높은 선비들은 거의 다 대를 사랑하였다.이숭인의 는 자신의 초당에 기문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상인의 요구에 응한 것을 계기로 하여 대나무의 절의를 표현한 글이다. 대나무가 서리와 찬 이슬을 만나도 변하거나 꺾어지지 않는 모습을 예찬하며, 상인이 자신의 초당을 ‘상죽’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두고 대나무와 상인이 비슷한 기운을 가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대나무는 ‘절개’를 상징하고 있다. 대나무가 서리와 찬 이슬을 만나도 가지의 모습을 고치거나 바꾸는 일 없이 의젓이 홀로 빼어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신념,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는 꿋꿋한 태도인 ‘절개’에 비유했다.2. 혜심, 은 고려 중기에 혜심이 지은 가전체 소설로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선사들의 선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자는 당시에 선종(禪宗)인 조계종의 제2세로 이름 높은 선사였다. 대나무의 고결한 성격을 사랑하여 작품을 선사들의 선(禪) 문답으로 구성하고 있다.은 언제 창작되었는지 그 시기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작품의 끝 부분을 살펴보면 찬시(讚詩)를 덧붙이면서 ‘기축년 겨울’에 찬시를 짓는다고 하였으므로 기축년인 1229년에 쓴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혜심은 임춘(林椿)이나 이규보(李奎報)와 같은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임춘의 「국순전(麴醇傳)」·「공방전(孔方傳)」과 이규보의 「국선생전(麴先生傳), 대나무를 예찬하고 있는데 10가지 정도의 이유를 들고 있다. ① 나자마자 우뚝 자란다. ② 늙을수록 굳세다. ③ 조리(條理)가 곧다. ④ 성품이 맑고 싸늘하다. ⑤ 소리가 사랑스럽다. ⑥ 외모가 볼만하다. ⑦ 마음이 비어 사물에 잘 대응한다. ⑧ 절개를 지켜 추위를 참는다. ⑨ 맛이 좋아 사람의 입맛을 기른다. ⑩ 재질이 많아 세상에 이로움이 된다. 상기의 이유를 들어 대나무를 칭찬하며 이러한 대의 속성과 선의 이치를 대비하면서 선문답으로 서술하고 있다.내가 죽존자를 아끼는 것은 (我愛竹尊者) (아애죽존자)추위와 더위를 물리치고, (不容寒暑侵) (불용한서침)해가 갈수록 절개 굳세며, (年多彌勵節) (연다미려절)날이 지날수록 마음 비우고, (日久益虛心) (일구익허심)달빛 아래 맑은 그림자 만들어내며, (月下弄淸影) (월하롱청영)부처님의 말씀 바람에 전하고, (風前送梵音) (풍전송범음)백설을 머리 위에 휘날리며, (晧然頭戴雪) (호연두대설)숲속에 빼어난 자태 드러내기 때문이라. (標致生叢林) (표치생총림)위는 의 끝 부분에 실린 찬시이다. 혜심이 왜 대나무를 이토록 좋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서 살펴 본 와 비슷하게 여기서도 대나무는 굳센 절개를 상징하며 속이 텅 빈 속성을 통해 욕심이 없고 마음을 비우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대나무를 통해 불교의 섭리를 깨달으려는 선사의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섭리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3. 원천석, 은 원천석의 평시조이다. 한겨울에 눈을 맞아 휘어지긴 했지만 꺾이지 않고 푸르른 대나무를 보며 시련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곧은 절개를 노래하고 있다.눈 마? 휘여진 ?를 뉘라셔 굽다턴고구블 節(절)이면 눈 속에 프를소냐아마도 歲寒孤節(세한고절)은 너?인가 ?노라눈 맞아 휘어진 대나무를 누가 굽었다고 하였던가굽힐 절개라면 눈 속에서 푸르겠는가아마도 한겨울의 추위에도 홀로 절개를 지키는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이 시조에서도 대나무는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하고 있다. 원천석의 생애와 당시 시대 상황속에서 푸르겠는가’ 라며 반문하고 있다. 이는 압박을 받긴 했지만 푸른 속성은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만약 조선 왕조에 협력할 생각이었다면 왜 지금까지 어려움을 견뎐겠냐는 것이다. 결국은 고려에 대한 절개를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종장에서 한겨울의 추위(시련)에도 홀로 절개를 지키는 것(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는 것)은 너(대나무)뿐이라고 말하며 대나무를 예찬하고 있는 것이다.결론적으로 이 시에서 대나무는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는 고려 왕조에 대한 굳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고 있다.4. 윤선도, 는 조선시대에 윤선도가 해남에 은거하던 시기에 지은 연시조이다. 《산중신곡(山中新曲)》에 들어 있는 시조로서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면서 사물에 대한 짙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들이 지닌 속성을 인간의 덕으로 환원해서 예찬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윤선도의 대표작이다.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東山(동산)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두어라 이 다섯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구룸빗치 조타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조코도 그츨 뉘 업기는 믈뿐인가 하노라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플은 어이 하야 프르는 듯 누르나니아마도 변티 아닐손 바회뿐인가 하노라더우면 곳 픠고 치우면 닙 디거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를 모르는다九泉(구천)의 불희 고는 줄을 글로 하야 아노라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뎌러코 四時(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밤듕의 光明(공명)이 너만니 또 잇느냐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여기서 대나무에 대한 내용은 제 5수에 등장한다. 다섯째 수에서는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것시/ 곳기ㄴㆍㄴ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ㄴㆍㄴ다/ 뎌러코 ㅅㆍ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ㅎㆍ노라.”라 하여 속이 빈 자연물들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예찬했을까. 그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만 치열한 당쟁으로 인해 전 생애 중 20년을 귀양살이로, 10년을 은거하며 보냈다. 이렇게 고독한 그에게 현실 속에서 겪는 좌절감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자연이었다. 따라서 작가는 이상적 인격체로 관념화된 자연을 벗 삼으려는 노력을 하며 자연을 곧 자기 수양의 본보기로 삼고자 하였다.Ⅲ. 결론‘사군자’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네 가지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이 네 가지 식물이 가진 특징과 장점을 들어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사군자라고 부른다. 대게 ‘사군자’라고 하면 그림을 떠올리지만 사실 사군자는 중국에서 그림의 소재가 되기 훨씬 전에 시문의 소재로 등장하였다. 또한 우리의 고전문학 속에서도 ‘사군자’는 자주 등장하는데 어려움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그 중 ‘대나무’는 특히 한 겨울의 눈보라 속에서도 푸른 잎을 유지하며 꿋꿋하게 자라기 때문에 많은 작품에서 신념, 신의 따위를 굽히지 아니하고 굳게 지키는 꿋꿋한 태도인 ‘절개’를 상징한다.구체적으로 이숭인의 에서는 대나무가 서리와 찬 이슬을 만나도 변하거나 꺾어지지 않는 모습을 예찬하며 절개 높은 선비에 비유하고 있으며, 혜심의 에서는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있으며 ① 나자마자 우뚝 자란다. ② 늙을수록 굳세다. ③ 조리(條理)가 곧다. ④ 성품이 맑고 싸늘하다. ⑤ 소리가 사랑스럽다. ⑥ 외모가 볼만하다. ⑦ 마음이 비어 사물에 잘 대응한다. ⑧ 절개를 지켜 추위를 참는다. ⑨ 맛이 좋아 사람의 입맛을 기른다. ⑩ 재질이 많아 세상에 이로움이 된다. 는 열 가지의 이유를 들며 대나무를 예찬하고 이러한 대의 속성과 선의 이치를 대비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의 찬시에서 대나무는 굳센 절개를 상징하며 속이 텅 빈 속성을 통해 욕심이 없고 마음을 비우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원천석의 에서는 대나무를 조선의 왕조에 협력하지 않고 끝다.
1. 고등학교 재학기간 중 학업에 기울인 노력과 학습 경험에 대해 배우고 느낀 점을 중심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저는 수업 중 다양한 발표 활동에 참여해왔습니다. 저에게 있어 발표는 그저 준비해 온 자료를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자들은 제 발표에 집중하지 못했고 저 또한 남는 것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여러 번의 발표를 거듭하며 점차 단순한 정보 전달만이 아닌 청자와 소통하는 발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때마침 국어 시간에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발표가 있어 참여하게 되었고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작품을 맡았습니다.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소설의 제목에는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문을 찾아 읽어보니 소설이 창작된 시대 배경을 아는 것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1960년대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또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소설에서 의미 없이 이어지는 김과 안의 대화, 서로에게 무관심한 주인공들, 자살을 한 아저씨를 두고 도망치는 김과 안의 행동 등을 보며 인간 소외와 단절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이에 주변에 무관심한 한 현대의 청년을 가상의 인물로 설정하여 라디오 사연의 형식으로 구성해 발표를 하였고 청자들로부터 제 발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뉴미디어와 사회 1차 과제1. 기사 본문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23. 10:48 수정 2020.09.23. 10:48 조지민 기자https://www.fnnews.com/news/*************85828"콘텐츠 소비, 유튜브 줄고 OTT·웹툰 사용 늘었다"코로나19 확산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독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웹툰 사용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대홍기획은 코로나19로 인해 급변하는 국내 콘텐츠 플랫폼 시장을 분석한 리포트를 23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대홍기획이 자체 소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인 디빅스2.0으로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놀다' 연관어 언급량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영화(893,604→559,199) △여행(127,409→60,086) △공연(123,487→39,895) 등의 버즈량이 감소했다. 반면 △영상(645,505→718,070) △트윗(226,592→448,019) △댓글(107,382→140,532) 등의 버즈량(언급량)은 증가했다.또 전년 동기대비 검색량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208%, 웹툰 웹소설 플랫폼 116%, 사진 플랫폼에서 113% 증가했다. 코로나 19 이후 여가활동이 여행이나 공연관람 등의 외부 활동에서 영상 감상, 댓글 소통 등의 언택트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특히, 콘텐츠 플랫폼 유형에 따라 차별적인 변화 양상이 나타났다. 동영상, 웹툰 등을 감상하는 '소비형 콘텐츠 플랫폼'의 활성화 비중은 지난해 5월 30.6%에서 올해 동시기 54.7%로 24.1%포인트 성장한 반면,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편집하는 '참여형 콘텐츠 플랫폼'은 지난해 대비 3.6%포인트 하락했다. 외부활동이 줄면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기보다는 자택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을 찾는 현상이 뚜렷해진 것으로 분석된다.대표적인 소비형 콘텐츠 플랫폼인 동영상 앱 다운로드 건수는 올해 1~7월 전년 동기대비 약 112% 증가했다. 특히, 국내에서 구독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활성화 되면서 넷플릭스, 시즌, 웨이브, 왓챠 등 다양한 플랫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6개 앱의 설치 비율을 살펴보면 전년 동기대비 유튜브는 7%포인트 줄어든 반면, 구독형 OTT의 비중은 소폭 상승했다. 동영상 플랫폼의 최대 활성화 시간대는 저녁 시간(18~22시)으로 변함없지만, 코로나 19 이후 낮 시간(11~13시)대 활성사용자가 크게 증가한 것이 눈에 띈다.웹툰 및 웹소설 콘텐츠 또한 전성기를 맞았다. 기존 웹툰·웹소설 시장을 양분했던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 외에 네이버 시리즈, 다음 웹툰, 리디북스 등도 월간활성사용자(MAU)가 늘면서 스낵컬쳐 소비가 다양화되는 모습을 보였다.활성사용자의 58% 이상이 10~30대인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경우 최대 활성화 시간이 23~00시로 나타나 심야시간대 콘텐츠 소비를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대홍기획 빅데이터마케팅센터 김지은CEM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문화여가 생활을 위한 서비스 거점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소비자들도 언택트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 것으로 관측된다"며 "국내외 콘텐츠 산업은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증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K-콘텐츠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웹툰 웹소설,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 등을 필두로 새로운 기회를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2. 뉴스 요약·정리 및 분석2020년 예상치 못한 전염병 ‘코로나 19’(이하 코로나)의 확산으로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직장인들은 회사가 아닌 집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을 시작했다. 여가 시간에도 밖으로 돌아다니기 보단 집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산업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코로나의 영향으로 오히려 성장한 산업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독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웹툰·웹소설이다.2020년 9월, 대홍기획은 국내 플랫폼 시장을 분석한 리포트를 발간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놀다' 연관어 언급량을 분석했는데, 분석 결과 영화, 여행, 공연 등의 버즈량은 감소한 반면 영상, 트윗, 댓글 등의 버즈량(언급량)은 증가했다. 또한 전년 동기대비 검색량은 동영상 플랫폼에서 208%, 웹툰·웹소설 플랫폼 116%, 사진 플랫폼에서 113% 증가했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과 여가활동 등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를 대신하여 집에서 동영상과 웹툰 등을 즐기는 방식으로 변화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트윗과 댓글 등의 버즈량 증가로 볼 때 sns이용이 증가했으며, TV를 시청하며 댓글이나 트윗으로 서로 소통하는 ‘사회적 시청’이 이루어졌음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플랫폼 별로 보자면 사진과 동영상 등을 촬영·편집하는 ‘참여형 콘텐츠 플랫폼’의 이용은 지난해 대비 줄었지만, ‘소비형 콘텐츠 플랫폼’인 구독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시즌, 웨이브, 왓챠 등의 다운로드가 전년대비 소폭 상승했으며, 웹툰과 웹소설도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페이지 외에 네이버 시리즈, 다음 웹툰, 리디북스 등도 월간활성사용자가 늘어났다. 소비 시간대는 동영상 콘텐츠와 웹툰·웹소설 모두 저녁에서 밤 시간대가 콘텐츠 소비의 주요 시간대였지만 코로나 19 이후 낮 시간(11~13시)대 활성사용자가 크게 증가했다. 일례로 앞서 언급한 카카오 페이지의 경우 지난 3~4월을 분석한 결과 2019년의 경우 이른 아침에 사용자 수가 많고 낮 시간대에는 감소했으나, 2020년은 오히려 낮 시간대 이용이 증가했다.해당 기사를 읽으며 미디어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일으키고 또 사회의 변화가 다시 미디어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기기와 모바일 기기들이 사회 전반으로 보급되고, 언제 어디서든 와이파이를 쉽게 찾아 쓸 수 있으며, 대용량과 초고속이 특징인 5G가 확산됨에 따라 점차 TV를 통한 영상 시청보다는 OTT를 통해 동영상을 시청하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여 다시보기, 몰아보기를 하는 방식으로 동영상 시청 문화가 변해갔다. 또한 최근에는 코로나와 같은 사회 변화로 인해 전체적인 미디어 이용량이 증가하고, OTT 스트리밍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여러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였던 OTT의 대표 격인 넷플릭스의 글로벌 가입자는 2020년 1/4분기에만 1,577만명이 늘었다.(Netfilx,2020) 더불어 국내에서도 사용자에게 월정액을 받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플랫폼인 티빙은 2019년 1/4분기 대비 2020년 1/4분기에 79%가량 성장했으며, 웨이브의 경우에도 유료 가입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웹툰 시장 또한 성장세를 보였다. 코로나 19 이후 포털 이용객이 늘었고, 특히 네이버의 경우 웹툰 사업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한다.반대로 공연과 영화 등의 미디어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타격을 입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년 5월 조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영화관란, 공연, 콘서트 이용을 취소하거나 포기한적 있는 사람은 697명 중 70.9%에 달했고, 올해 3월 영화 관객 수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공연 산업 또한 취소·연기 등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이처럼 뉴미디어가 등장하고, 관련 기술이 발전 또는 쇠퇴하고, 사회가 변모하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나 개념으로 단정 짓기가 어려우며, 미디어 기술과 사회는 서로서로 영향을 주는 상호 의존적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정 기간에서는 기술의 발전이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또 다른 관점으로 보면 코로나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OTT 스트리밍 시장의 성장과 같은 미디어 산업의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소비자의 미디어 플랫폼 유형 선택과 이용 시간에 대한 변화도 주목할 만 했다. 해당 기사에서 ‘참여형 콘텐츠 플랫폼’ 이용은 지난 해 대비 줄었지만 ‘소비형 콘텐츠 플랫폼’의 이용은 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미디어와 콘텐츠가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보다 잘 충족시킬 수 있는 소비형 콘텐츠 플랫폼을 ‘선택’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이용시간에서의 변화도 있었다. 동영상 플랫폼의 최대 활성화 시간대는 저녁 시간(18~22시),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경우 심야시간(23~00시)으로 이전과 변함은 없지만, 코로나 이후 낮 시간대 이용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낮 시간동안 등교·출근하여 학습활동과 근무 등을 하고, 하교·퇴근 이후인 저녁~밤 시간대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수업 등이 늘어나고 비교적 학습과 근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되면서 낮 시간대 미디어 콘텐츠 이용이 증가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 인터넷 실명제의 개념과 배경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이 되어야, 즉 이용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쓰는 것이 가능한 제도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기 위해 가입을 할 때 본인 인증을 하고, 글을 쓰거나 댓글을 남길 때에도 실명을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와, 가입을 할 때에는 본인 인증을 하지만 글을 쓰거나 댓글을 남길 때에는 반드시 실명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인터넷 실명제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 말에서 2003년 초로 볼 수 있다. 당시 제 16대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면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고 2003년 22~3월에 한나라당과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들며 관련법의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정보 통신부는 인터넷 실명제를 공공기관부터 시작해 민관 기관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시행하는 단계적 시행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앞서 말했듯 인터넷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등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북한 대남공작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기도 했다.인터넷 실명제는 2004년 3월 12일, 제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익명성을 이용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불법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처음 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이 거세지고 제도적으로도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2004년 4월 총선 때부터 적용하려던 인터넷 실명제는 유보되었다. 이후 2007년부터 하루 방문자가 약 20~30만명이 넘는 사이트에 한하여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실시되었으나 헌법재판소가 2012년 8월 23일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 제한의 우려를 이유로 인터넷 실명제에 대고 인권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청와대 국민청원2) “(사이버 폭력 이제 그만) ①‘얼굴 없는 살인자’, 실명제로 막자 vs 포털 정화기능에 맡겨야” (기사 요약)악성 댓글의 대상은 대체로 연예인·정치인·기업인 등 공인인 경우가 많지만, 일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례로 기사에서는 ‘김포 어린이집 여교사 사건’을 언급했다. 해당 사건은 당시 인천·김포 지역 맘카페에 한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뒷정리에만 집중했고, 아이를 밀치기까지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온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카페에는 그 여교사를 비난하는 악성 댓글이 쇄도했고 교사의 실명과 사진 등 신상을 포함한 글도 개제되었다. 결국 여교사는 글이 올라 온지 이틀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이러한 악성 댓글의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익명성’이 꼽힌다. 댓글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악성 댓글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었지만 표현의 자유 침해, 인권 침해 등의 이유로 2012년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사라지게 되었다.악성 댓글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그 처벌이 가볍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현행법을 살펴보면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이 공공연하게 드러날 경우 3년 이하 징역, 3000 만원 이하 벌금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비교적 가볍다는 주장이다.악성 댓글을 근절해야한다는 공통된 사회적 목소리는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인터넷 실명제’와 같이 법으로 강력하게 규제해야한다는 쪽과 플랫폼 사업자나 누리꾼들이 자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쪽이 있다.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 장제원 의원은 지난 2017년 12월에 소위 ‘인터넷 실명제 법’이라고 일컫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게시판 이용자의 댓글에 대해서 본인확인조치를 하도록 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댓글 작성 시 아이디 전체와 IP주소를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또한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13명은 누구라도 악성 댓글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악성 댓글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 뿐 아니라 그 댓글을 본 누구라고 정보통신 제공자에게 댓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을 허용해야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그러나 역시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인터넷 실명제의 부활에 반대 의사를 표했는데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외국 기반 서비스에는 법 적용이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고, 표현 자유 제한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입법된다고 해도 다시 위헌판결을 받을 소지가 크다고 전했다. 이처럼 인터넷 실명제, 그리고 준실명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했다.3.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찬·반 의견기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인터넷 실명제 논의가 처음 시작된 2002~3년부터 지금까지도 인터넷 실명제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하는 쪽은 어떤 근거로 찬성하고, 반대하는 쪽은 또 어떤 근거로 반대하는지 그 의견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1) 인터넷 실명제 찬성①익명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역기능을 막을 수 있다.인터넷 실명제를 찬성하는 쪽의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바로 ‘익명성’을 없애 인터넷의 역기능을 막자는 것이다. 익명성이 가져오는 인터넷의 역기능으로는 불법적인 음란물의 유포, 가짜 뉴스의 생산과 확산, 악성 댓글들이 있다. 이는 명예 훼손, 모욕 등과 같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현대 사회에서는 인터넷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터넷의 역기능은 쉽게 확산되고 따라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찬성 측은 익명성으로 인해 쉽게 가짜 뉴스, 악성댓글 책임감을 기르고,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은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2) 인터넷 실명제 반대①인터넷 실명제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반대 측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인터넷 실명제가 익명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익명 표현의 자유란 자신이 누구인지, 그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익명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외부에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표현의 자유가 진정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익명이든 실명이든 상관없이 자유롭게 개인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그들이 가지는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되거나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한다.②개인 정보 유출 및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이 있다.지금도 인터넷 쇼핑몰이나 은행과 같은 곳에서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다면 개인 정보 유출 및 그에 따른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다면 포털 사업자 등은 모든 이용자들의 주민번호를 포함한 개인 정보를 수집하게 될 것이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더욱 많은 곳에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또한 개인 정보를 팔아넘긴다거나 해킹을 당하는 등 악용될 소지도 크다.더불어 모든 글을 실명으로 쓰게 될 경우 이러한 글들을 수집하여 개인을 특정하기 쉬워지고, 소위 말하는 ‘신상 털기’가 가능해져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도 존재한다.③건전한 인터넷 문화는 다른 방법으로도 만들 수 있다.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는 측은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과 같은 법적인 방법이 아니라 누리꾼, 혹은 포털 사업자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인터넷 실명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억압적인 방법보다는 올바른 인터넷 이용 교육을 통하여 누리꾼들이 스스로 건전한 인터넷 문여기서 말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란 발표의 자유와 전달의 자유를 뜻한다.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은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국민의 기본 권리라면 익명으로 표현할 것인지, 실명으로 표현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 또한 의사 표현자의 자유로 두어야 한다. 국가가 이를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인터넷에서 실명으로만 의사 표현이 가능하게 된다면 성 소수나 등 사회적 약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제한 될 가능성이 크고, 본인 확인이 불가능한 외국인의 경우도 인터넷 사용이 제한 될 수 있다.두 번째로 인터넷 실명제를 반대하게 된 이유는 개인 정보의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의 가능성, 나아가 감시사회의 도래 우려 때문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개인 정보가 남용·악용되고 이로 인해 사생활이 침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개인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개인 정보는 여러 곳에서 유출되거나 사용된다.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개인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기사를 우리는 꽤 흔하게 접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 실명제’가 법으로 정해질 경우 인터넷 사업자들은 의무적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2019년 기준 인터넷 이용률이 91.8%에 달하는 만큼 수많은 개인정보가 수집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 이를 악용하여 개인 정보를 팔아넘기거나 또는 해킹을 당해 개인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더불어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도 커진다. 모든 글을 실명을 사용해서 쓰게 될 경우, 마음만 먹는다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글들을 수집하여 개인을 특정하게 될 수 있고, ‘프로파일링’ 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신상 털기’가 쉬워질 것이고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되거나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혹은 기업이나 국가에서 특정한 개인을 감시하는 사회가 도래할 수도 있다.그렇다면 인터넷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건전한 인것이다.
조선시대 3당 시인 분석- ‘손곡 이달’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중심으로 -과목명고전문학의 이해교수명제출일학 과학 번이 름Ⅰ. 서론 1Ⅱ. 작가의 생애21. 손곡 이달의 생애 22. 문학적 영향2Ⅲ. 손곡 이달의 작품분석31. 양양곡 32. 습수요 43. 예맥요4Ⅳ. 결론 5참고문헌 6Ⅰ. 서론-손곡 이달 선정 이유-고전문학 기말대체 과제로 ‘조선 시대 삼당시인 중 한 명의 생애와 작품을 분석하라.’라는 주제를 받게 되었을 때, 조선 시대 삼당시인에 누가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먼저 기본적인 조사를 시작했다.삼당시인이란 조선 중기에 당풍시를 읊은 시인 세 사람을 말하며, 당풍을 배워 시단에 이름을 알린, 최경창, 백광훈, 이달을 삼당시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중국 송나라의 시풍을 따르지 않고, 두보, 이태백 등의 당나라 시풍을 따랐기 때문에 삼당시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간단하게 이들에 대해 알아보자면 먼저 최경창은 사랑의 정감과 하층민의 생활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남녀관계에 대한 시를 많이 남겼다. 백광훈은 진사가 된 이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산수를 즐기면서 시 짓기에 전념했다. 그는 오로지 시를 짓는 것을 자기의 업으로 삼은 전문시인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달은 어릴 때부터 영특했으며 책을 많이 읽고 문장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글씨로도 저명했으며 시 또한 청명하고 아름다운 시들을 많이 썼다.이렇게 삼당시인에 대하여 알아본 후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시인은 ‘이달’이었다. 이전 과제로 조선의 여성 시인인 ‘허초희(허난설헌)’에 대해서 탐구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허초희와 그의 오빠인 허균에게 스승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가 바로 손곡 이달이었다. 손곡 이달이 이들에게 시를 가르쳤던 것이다. 허초히와 허균 모두 글을 매우 잘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들을 가르친 스승이라면 얼마나 글을 잘 썼을지 궁금했다. 따라서 손곡 이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어져서 그를 이번 과제의 주제로 선택하였다. 또한 손곡 이달의 생애를 잠깐 살펴보았을 때 서자로 태,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이며, 동리(東里)·서담(西潭)이라고도 한다. 원주 손곡에 묻혀살았기 때문에 그의 호가 ‘손곡’이 되었다고 한다. 제자 허균이 이달의 전기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에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밝혀 신평 이씨(新平李氏)인 것이 확인되었지만, 서얼이어서인지 그의 출생이나 성장에 대ㅅ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다.그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안 읽어본 책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이백(李白)과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의 작품들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그는 서자였기 때문에 일찍이 문과를 보아 관직에 나가는 것을 단념하였는데 그렇다고 다른 서얼들처럼 잡과에 응시하여 기술직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자유분방한 성격을 바탕으로 온 나라를 다니면서 시를 지었다고 한다. 남의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으로부터 소외되기도 하였다. 그는 뛰어난 글 실력을 바탕으로 한리학관에 기용되었으나 뜻에 맞지 않아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신분적 한계로 한리학관에 그쳤다. 그가 시작에 몰두하게 되었던 이유도 미천한 신분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시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자로 태어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2. 문학적 영향그도 처음에는 당시의 유행에 따라 송의 시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정시룡으로부터 두보의 시를 배웠고, 박순에게도 시를 배운다. 박순은 이달에게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로써 으뜸을 삼아야 한다. 소식(蘇軾)이 비록 호방하기는 하지만, 벌써 이류로 떨어진 것이다."라고 충고하면서, 이백(李白)의 악부(樂府) · 가(歌) · 음(吟)과 왕유(王維) · 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보여주었다. 이때부터 이달은 당시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렇게 5년간 스스로 당시를 배우고 익히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를 쓰게 되었다.그는 삼당시인 중의 풍을 따른 시들이다. 신분제한에서 생기는 한과 애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그의 시에는 따뜻한 정서가 묻어있다. 근체시 가운데서도 특히 절구에서 뛰어남을 보였다.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시로 승화시켜 초월의 경지를 보여주는 《산사(山寺)》 《강행(江行)》과 같은 시들을 썼다. 당시 서민들의 누추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습수요(拾穗謠)》 등의 정감 있는 시를 지어 오늘날에도 공감을 얻고 있다.말년에 그는 의 작가로 유명한 ‘허균’과 그의 누이인 ‘허초희(허난설헌)’의 스승이 되어 그들을 가르쳤다. 방탕한 생활을 하며 여기저기를 떠돌던 이달을 받아준 곳이 허균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는 특히 허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곡 이달의 시편과 생애가 후세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제자인 허균이 이달의 작품 300편을 모아 을 퍼냈으며, 스승의 삶을 그린 한문소설 「손곡산인전」을 지어 후세에 전했기 때문이다.Ⅲ. 작품 분석1. 양양곡(襄陽曲)平湖日落大堤西(평호일락대제서) 평호 긴 뚝 서편으로 해가 기울고花下遊人醉欲迷(화하유인취욕미) 꽃 아래 노니던 이들 취해 비틀거리네.更出敎坊南畔路(갱출교방남반로) 다시금 교방 남쪽 길로 나서려니家家門巷白銅?(가가문항백동제) 집집 골목마다 백동제 가락일세.양양곡은 손곡 이달이 조선 중기에 지은 한시로, 한가한 봄날의 정서를 양양 지역의 풍물들을 담아 노래한 시다. 양양곡은 칠언절구이며, 『손곡집(蓀谷集)』과 『국조시산(國朝詩刪)』 권3 등에 수록되어 있다.내용을 살펴보면 1구와 2구에서는 크고 긴 뚝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는데, 꽃 아래에서 놀던 자신은 취하여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말하고 있다. 3구와 4구에서는 교방의 남쪽 길로 가려고 하니 집집마다 백동제 노래를 한다고 말한다. 전반부는 경관이 뛰어난?양양에서 작자가 풍류적인 생활을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후반부에서는 이와 같은 낭만적 시정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태평하다고 읊고 있다.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양 빛난다.”고 평한 바와 같이, 풍류의 계절에 한 시대의 태평한 기운을 낭만적인 시상으로 간명하게 노래한 작품이다.‘평호’는 중국 남방에 있는 넓은 호수이고, ‘교방’은 기생집, ‘문항’은 대문과 거리로, 가문과 가항, 마을, 시가(市街)다. 여기서는 '거리마다'로 해석함. ‘백동제’는 양양의 둑이름이기도 하고, 남조 양나라의 가요 명칭이기도하다. 이 가요는 육조 때 양양에서 유행하던 노래로 주로 송별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양나라 무제(武帝)가 웅진(양양)의 지방관으로 있을 때 거리에 널리 퍼졌던 동요다.2. 습수요(拾穗謠): 이삭 줍는 노래田間拾穗村童語(전간습수촌동어)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아이의 말이盡日東西不滿筐(진일동서불만광) 하루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今歲刈禾人亦巧(금세예화인역교)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盡收遺穗上官倉(진수유수상관창)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하네칠언절구의 한시로, 1618년경 간행된 이달의 문집 《손곡시집(蓀谷詩集)》에 수록되어 있다. 탐관오리들이 농촌을 수탈하는 것을 고발하여 현실고발적인 성격을 띤다. 당쟁과 임진왜란 등의 전란으로 피폐해진 조선 중기의 농촌생활상을 사실적으로 노래하였다. 특히 조선 선조 때의 농촌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여,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을 통해, 수탈당하는 당시의 농촌실정을 객관적으로 제시하였다. 하루 종일 이삭을 주워도 바구니가 차지 않을 만큼 형편이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관가의 수탈이 갈수록 심해져 농민들의 따스한 인정까지도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농민과 관리의 중간자 입장에서 그들의 입장을 전하고 있으며, 앞서 말했듯 인용법을 통해 보다 적나라하게 당시의 시대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 시를 통해 이달이 당시의 힘겨운 서민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3. 예맥요(刈麥謠): 보리 베는 노래田家少婦無夜食(전가소부무야식) 시골집 젊은 아낙 저녁거리가 없어서雨中刈麥林中歸(우중예맥림중귀) 빗속에 보리 베어잘 전해지며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비와 습기에 젖은 땔나무 등의 소재들은 그 당시 백성들의 처량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이달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비참하게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고 그 정황을 곡진하게 그린 시를 여러 수 남겼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이다.Ⅳ. 결론-과제 수행에 대한 소감-어디선가 ‘삼당시인’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삼당시인이 누구인지, 왜 삼당시인이라고 불리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이번 과제를 통해 이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손곡 이달’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시작을 탐구해보며, 한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과제 수행을 하며 알아본 시 ‘양양곡’과 ‘습수요’ 모두 칠언절구 시였는데 한자의 수를 7자로 맞추어서 그 안에 본인이 전하고 싶은 말을 문학적으로 잘 담았다는 점이 신기했다. 또한 그의 제자인 허균은 에서 “그의 시는 맑고도 새로웠고, 아담하고도 고왔다(淸新雅麗). 그 가운데에 높이 이른 시는 왕유·맹호연·고적(高適)·잠삼(岑參) 등의 경지에 드나들면서, 유우석·전기(錢起)의 풍운을 잃지 않았다. 신라·고려 때부터 당나라의 시를 배운 이들이 모두 그를 따르지 못하였다.”고 평하였다고 하는데, 이달에 대해 탐구하면서 왜 이달이 당시에 삼당시인 중 한명으로 이름을 날렸는지 이해가 되었다.본인은 특히 이달의 생애가 인상 깊었다. 손곡 이달은 비렁뱅이 혹은 방랑 시인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방랑의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세상이 그를 방랑자로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체 높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는 기생이었기 때문에 그의 신분을 ‘서자’가 되었고 따라서 양반이 되지 못했다. 이달은 신분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고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그가 요즘의 말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시작(시를 짓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시를 짓기 시작했고 좋은 시를 여러 편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