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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소나기밥 공주> 서평 (독후감)
    소나기밥 공주 서평는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어린이가 읽는 소설, 어린이가 읽는 동화에는 어떤 어린이들이 등장할까? 즐거운 아이, 슬픈 아이, 행복한 아이, 불행한 아이, 비범한 아이, 평범한 아이, 보잘 것 없는 아이, 새로운 만남이 있는 아이, 이별을 경험한 아이..,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 작가는 그런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서도 소외계층 아동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주인공 ‘공주’는 결식아동이자 한부모 가정의 아이이며, 책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는 마치 소년가장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는 소외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라는 점에서 을 생각나게 하지만 공주는 주변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이들 없이, 공주의 사정을 제대로 아는 어른도 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희망을 본다.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여러 인물들의 성격이 상당히 개연성 있고도 개성 있게,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이다. 주인공 공주는 아빠가 재활원에 들어간 사이 홀로 살아가려 애쓴다. 어린 아이임에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음식도 수없이 많고 비상금을 계획에 맞게 아껴 쓰며 눈치도 빠르고 똑똑하다.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게 대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음식을 보고 마음이 동해 여러 가지를 재 본 다음 훔칠 만큼 대담하기도 하다. 공주는 ‘캔디’처럼 마냥 밝고 순수한 성격도 아니지만 훔친 음식에 대해 심하게 가책을 느끼고 그것을 고백라고 나중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열흘이라는 시간동안 아르바이트를 성실히 할 정도로 양심적이고 정직하다.다른 인물들도 입체적이다. 어른들을 마냥 나쁘기만 한 존재로 그리지도, 마냥 착하기만 한 존재로 그리지도 않았다. 집주인으로서 가난한 공주를 외면하고 없어진 물건을 찾겠다고 설치며 형사를 흉내 내는 김씨 아저씨, 마트에 가서 없어진 물건을 보상해내라며 화를 내며 소란을 피우지만 나중에 정작 범인이 공주라는 것을 알게 되자 공주가 훔친 물건을 아르바이트로 보상할 수 있게 도와주고 공주에게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주고 본인 집에서 보호해주다시피 하는 팽 여사, 공주를 사랑하지만 책임감은 없는 아빠, 딸의 친구로서 공주를 잘 대접하지만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은 현미 엄마, 보증금은 밀리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공주를 도와주려 하는 104호 총각...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서로 다른 개성으로 얽히고 설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웃음을 자아내게도 한다.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김씨 아저씨의 형사 흉내를 비중 있게 다룬 점이다. 물론 그것이 중심사건에 포함되는 스토리도 아니고, 그 정도의 비중을 줄 만큼 중요하게 시사점을 줄 수 있을만한 주변 사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 공주에게 어떤 깨달음 주는 것도, 어떤 자극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독자를 긴장하게 하며 독자에게 유머를 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비록 김씨 아저씨는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어버렸지만 책을 읽는 내내 혹여 공주가 잡히지는 않을까 긴장하고 때때로 김씨 아저씨의 우스꽝스러운 탐정 놀이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이런 재미를 주기 위해 작가가 노력한 것이 보였다.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분위기도 장점이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과 저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싶은 인물들을 무겁지 않은 문체로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어두침침하고 우울하기만 하지 않고 희망찬 분위기이다. 그러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수업시간에 친구와 주고받는 쪽지는 사실적이어서 공주와 현미는 실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 같은 느낌이다. 공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공주네 반 친구들과, 공주에게 별일 없냐고 대충 질문 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학교 선생님 또한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학교에서 볼 수 있었던 몇몇 선생님을 마주한 것 같다. 그렇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통해 결식아동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를 비판한다. 또한 책을 읽는 어린이 독자들의 입장이라면 결식아동에 대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공주의 태도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립심이나 올바른 정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공주’라는 이름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다. 공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왕의 딸 공주의 상황과 반대라 아이러니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거기에 성인 ‘안’을 붙여 ‘안공주’라는 이름은 공주가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묘사한 것만 같다.주인공이 여자아이라는 점도 장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면서도 그것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보통 여자가 주인공인 책은 많이 없다. 최근에는 많이 등장했다지만 여전히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책의 비율은 낮다. 어른용 소설도, 어린이용 소설도, 동화, 그림책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가끔 여자가 주인공인 책이어도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힘들고, 여자“도” 똑같이 공을 던질 수 있고,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여자라는 힘든 점을 극복하고 업적을 이루었다’ 라는 식으로 사건을 진행시키고 인물을 묘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오히려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것에 목적을 가지고 지나치게 그것을 강조하고 의식하는 경우이다. 그런 식의 책은 오히려 여자가 주인공임에도 아이들에게 읽히기 꺼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의 단점만을 부각하고 너희도 힘들 것이라는 암시를 줄 필요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는 여자아이가 소설인 다른 소설과는 다르게 주인공만 여자아이일 뿐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다른 소설과 다름없이 묘사되고 전개된다. 특별히 여자라는 점이 강조되지 않는다.사건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단점으로 꼽을 수도 있다. 인물에 대한 개연성은 신경 썼는데 사건에 대한 개연성까지 살리지는 못했다. 공주의 아빠가 재활원에 들어가게 되는 것만 해도 그렇다. 모든 일의 발단과 마찬가지인 사건인데 재활원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나 정확한 상황이 제시되지 않고 그저 ‘아빠가 재활원에 아무 소식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어가게 되었단다’ 수준에 불과한 편지로 그 설명을 대신한다. 재활원에 본인의 의지로 들어갔다고는 하는데 본인의 의지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마치 끌려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전체에서 ‘술만 마시지 않으면 좋은 아빠, 공주의 이름을 지어주고 사랑해 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 아빠’라는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런 것과 전혀 맞지 않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좋은 보호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아빠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이 개연성이 너무 없다. 아빠가 갑자기 사라졌어야 공주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전개했겠지만 좀 더 개연성 있게 사건을 구성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서술의 초점이 상당부분 공주에게 맞춰져 있어서 소설 전체적으로 좋은 아빠인 것처럼 나온 것 일수도 있다. 공주가 아빠를 좋은 사람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좋은 아빠처럼 묘사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무책임하고 인격적으로도 미성숙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점도 가 어린이용 소설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단점은 아닐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돌봐주던 보호자가 사라졌다는 명제 하나만으로도 독자들은 충분히 상황을 납득하고 공감할 것이니 말이다.
    독후감/창작| 2020.05.29| 3페이지| 1,000원| 조회(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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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함마드와 이슬람교의 탄생
    무함마드와 이슬람교의 탄생1. 서론이슬람은 기독교와 함께 세계 종교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종교이다. 중동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부터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 그리고 남미에 이르기까지 약 16억명 이상에 달하는 인구가 믿는 종교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이슬람 인구의 분포도인데 전 대륙에 걸쳐 무슬림이 분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 아랍권은 18%에 불과하다. 따라서 무슬림의 인종분포 또한 다양하며 그 문화도 다양하다. 또한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거주 무슬림 인구는 13만명으로 그 중 한국인 무슬림도 3만 5000명으로 추산될 정도이며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무슬림 인구는 ‘이슬람’이라는 종교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믿는 이슬람의 탄생과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무함마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면 세계 인구의 1/5이 넘는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좀 더 쉽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까지도 실제로 여러 가지 사건의 이슈가 되고 있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과제에서는 이슬람이 어떤 종교인지, 그 탄생 배경은 어떠했는지, 무함마드는 누구인지, 그리고 이슬람의 초기 시대(탄생과 정통 칼리프시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2. 이슬람에 대하여이슬람이란 7세기 초에 무함마드가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아 창시한 종교로, ‘유일신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는 것이 신조이다. 이슬람의 경전으로 무함마드가 받은 알라의 계시를 모은 것을 이라고 한다. 은 무함마드가 말한 내용으로서, 무함마드 사후 신도들이 그 내용을 수집하고 정리한 것으로 650년 경 3대 칼리프인 오스만의 명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이슬람의 여섯 가지 기본 믿음은 (1)알라에 대한 믿음, (2)천사에 대한 믿음, (3)성서들에 대한 믿음, (4)예언자들에 대한 믿음, (5)심판의 날에 대한 믿음, (6)알라의 정명(定命)에 대한 믿음이다. 이슬람 신앙과 실천의 다섯 가지 기둥은 무슬림들의 종교적 삶의 뼈대인데 이는 (1)신앙의 증언(샤하-다), (2)예배(쌀라), (3)희사(자카), (4)라마단 달의 단식(씨얌), (5)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메카로의 성지순례(핫즈)이다. 또한 가르침에 따라 형재애와 사랑과 자비, 박애 정신을 강조하며 관용, 정직, 성실함 등을 강조하고 있다.3. 이슬람 탄생 시기의 중동 사회이슬람이 탄생하던 시기 직전의 600년 무렵의 중동-아라비아 반도-은 두 강대국인 비잔틴제국(그리스, 로마)과 이란의 사산 왕조 사이에 끼어 있었다. 다음 지도는 당시의 중동 세계를 보여준다. 이때 비잔틴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숭상하던 나라였고, 사산왕조는 대부분의 조로아스터교인과 약간의 그리스도교, 마니교, 불교인이 있었다. 이라크에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우세했었다. 이 당시 서이시아는 건조하여 농경지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유목생활을 하여 다른 나라들처럼 복잡한 사회, 정치 조직을 형성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기원전 500여년부터 여러 왕국이 있었지만 6세기 무렵에 거의 사라졌다. 여러 소왕국도 있었지만 이슬람이 탄생할 무렵 중동지역의 사람들은 국적 없이 떠돌았다. 따라서 국가 대신 여러 부족(部族)이 형성되어 있었고, 나라가 아니라 부족과 혈족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었다. 이 부족들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며 피부양자를 보호하고 말이나 낙타를 타고 다른 부족이나 가문을 약탈하고 싸웠다. 그러나 이렇게 호전적이고 기동력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수가 너무 적어 훈족이나 투르크족, 아바르족처럼 큰 영토를 지배하기에는 부족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 반도는 개방적인 영토로 인해, 그리고 양 옆에 있는 비잔틴 제국과 사산왕조의 전쟁으로 인해 무역로가 자리잡았으며 다양한 종교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당시 중동은 여러 가지 우상숭배뿐만 아니라 다른나라에서 유입되는 유대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등이 뒤섞여 있었고. 그것을 보며 종교적인 열망이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교가 탄생했고, 아랍인들은 630년대에 들어가며 사산왕조와 비잔틴 제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고 나아가 사산왕조를 멸망시켰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무함마드라는 예언자와 이슬람의 탄생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4. 무함마드가 예언자로서 자각하기까지무함마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로서, 예언자이자 새로운 종교운동의 지도자이고, 정치인이며, 군인이기도 하다.무함마드는 570년쯤 서부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고, 6살에 고아가 되어 할아버지와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25살에는 본인이 일하던 무역상의 주인인 카디자와 결혼을 했다. 그런데 무함마드가 마흔 살이 되었을 무렵, 610년 라마단 달의 어느 날 밤 히라 동굴에서 잘 때 천사 가브리엘이 등장했다. 다음은 가브리엘과 무함마드가 마주했을 때의 상황이다.“읽어라!”무함마드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무엇을 읽으라는 말입니까?”그러자 남자가 세 차례에 걸쳐 무함마드의 목을 졸랐다.“읽어라!”“무엇을 읽으라는 말입니까?”그러자 남자가 다시 무함마드를 강하게 목 졸랐다가 스스로 암송했다.“읽어라! 그 분은 피로써 인간을 만들어 내셨다. 너의 주님께서는 가장 관대하시며 글로써 가르치시며 인간이 알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시노라!”이 말은 의 제 96장의 최초의 5행으로 정리되어 있다. ‘코란’이란 이 ‘읽어라’라는 뜻으로 신이 무함마드에게 주었다고 믿는 계시가 담긴 책이다. 이 최초의 계시가 있은 후 무함마드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가브리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무함마드는 처음에는 불안해 하다가 곧 예언자로서의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가족과 친구, 친척들에게 이 내용을 설교했고 나아가 614년경부터는 대중 앞에서도 설교를 했다. 그렇게 개종하겠다는 사람들을 끌어 모았는데, 유일신을 믿으라는 메시지 때문에 당시에는 대부분 우상숭배를 하고 다신교도였던 메카의 사람들에게 반발을 샀다.그런데 619년 무함마드를 보호해주던 삼촌 하심과 부인 카디자가 세상을 떠나고 종교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622년 7월 16일, 무함마드는 메카를 떠나 메디나(야스리브)로 향하게 되고, 이를 ‘히즈라’라 부르게 되었으며, 622년은 이슬람력(회력)의 시작 즉 원년이 된다.5. 히즈라와 메카 점령, 그리고 무함마드의 사망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향한 ‘히즈라’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슬람교를 믿던 무슬림들에게 드디어 종교적 집회이자 국가의 의무를 가진 공동체 조직을 갖게 해 주었고 이것이 곧 국가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무함마드 또한 조그마한 종교 지도자에서 벗어나 정치군사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커다란 종교의 지도자이자 일종의 군주가 될 수 있었다.메디나에 공동체가 생기고 나서 몇 년간은 내,외부로 전투를 벌였다. 그곳에서 무함마드는 그 유명한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든 전투를 벌이며 이슬람을 전도했다. 외부적으로도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지만 바드르 전투와 우후드 전투 두 전투를 통해 메카에 있던 유대교를 추방시켰고, 630년 드디어 메카를 정복하고 메카 주민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켰다. 무함마드는 632년 메카를 순례하고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후 무슬림은 약 8세기까지 아라비아반도를 차차 정복해나갔고 통일하기에 이른다.6. 정통 칼리프(칼리파) 시대무함마드의 사망은 이슬람 세계가 겪은 최초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무함마드는 공동체를 이끌어 갈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사망했기 때문이다. 혈연으로 자리를 물려받을만한 아들도 없었고 관련된 계시도 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무슬림들은 가장 먼저 무슬림이 되었고 모두가 존경하던 인물인 ‘아부 바르크’를 선택하여 ‘칼리프(칼리파,khalifa)’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그를 추대했다. 칼리프는 아랍어로 후계자와 대표자라는 뜻을 동시에 지니는 단어이다. 즉 이런 칼리프 제도는 응급처방으로 나타난 제도이자 그럼으로써 왕정이 아닌 보편적인 합의에 의해 선출되는 신권적 군주제를 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 칼리프는 632년부터 661년까지의 선거로 선출된 4명으로, 1대 칼리프인 ‘아부 바르크’, 2대 칼리프인 ‘우마르 이븐 알 카다브’, 3대는 ‘우스만 이븐 아판’, 4대는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가 있다.그런데 3대 칼리프인 우스만이 내란과 음모로 살해당해고, 4대 칼리프 알리가 칼리프로 선출되자 사람들이 알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파벌 간 충돌을 야기 시켰다. 이후 몇몇 전투와 반란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알리를 향한 지지가 약화되었고, 659년 조정자들이 우스만의 암살은 정당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렸고 새로운 칼리프를 선출하고자 했다. 물론 알리는 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론은 점점 우스만의 사촌이자 우스만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알리에게 충성하기 거부한 ‘무아위야’가 칼리프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알리는 암살당했고, 무아위야는 자칭 칼리프를 선언하였고 이것이 정통 칼리프시대를 뒤이은 ‘우마이야(옴미아드) 왕조(661~750)’의 시작이다. 그 후로 아바스 왕조(750~1258), 후옴미아드 왕조(756~1031), 파티마 왕조(909~1171), 그리고 투르크 이슬람시대 라는 몇 개의 국면을 거치게 된다.7. 정통 칼리프 시대의 이슬람 사회다음 지도는 무함마드 시기부터의 초기 이슬람의 정복지를 보여준다. 보다시피 중동 전역과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일부까지 정복했다. 그러나 정통 칼리프시대를 비롯하여 그 이후 무슬림의 대제국을 건설했을 때에도 비이슬람 세계와 우호적인 관계로 공존했다. 우선 코란 자체는 전쟁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호적 방어적 전쟁이라는 개념을 반전시키긴 했지만, 침략과 살육은 금지했고, 모든 사람들을 ‘경전의 백성’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이슬람으로 개종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또 비아랍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보호하고자 했고, 자신들의 이슬람 제국 내에 있는 비무슬림들을 공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또 비무슬림은 군사적 보호를 받는 대신 인두세를 지불하고 자신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따라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비잔틴 제국보다는 이슬람제국의 통치를 훨씬 더 선호하고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과학| 2020.05.29| 5페이지| 1,0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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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고려인 학생의 정체성 문제에 관하여 -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초등학교 교과서 내 고려인 언급의 필요성에 대한 레포트
    국내 고려인 학생의 정체성 문제에 관하여목차1. 고려인은 누구인가2. 국내 고려인 현황3. 고려인 학생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와 실제 사례4. 고려인에 대한 새로운 지도 방안의 필요성5. 고려인에 대한 학교 교육 내에서의 지도 제안1. 고려인은 누구인가고려인은 조선 말 즈음 연해주 근방에서 살던 한인들을 이른다. 을사늑약과 경술국치 이후 한인의 이민이 급증하여 1914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6만 3천명의 교민으로 신한촌이 건설되었다. 그 이후로도 그 수가 늘어나 1923년 공식적으로는 10여만 명, 실지 25만 명 이상 거주하였고, 1932년에는 연해주에 있는 한인 학교가 380개 정도가 생길 정도였다.그런데 일본의 간첩행위가 극동지방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다는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1937년 연해주의 한인 전원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과정에서 이산가족도 수없이 발생하였으며 1950년대 후반까지 자유와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제도적인 차별을 받아왔다. 이렇게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러시아를 비롯하여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널리 퍼져 살고 있다.2. 국내 고려인 현황국내에 있는 고려인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고 있지만 대략 7만 명 이상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특히 F-4비자와 F-1비자를 받고 입국한 러시아 및 주요 CIS지역 출신의 재외동포 수로 고려인의 수를 어림해볼 수 있는데, 2018년의 고려인 수는 72,243명이며, 국내 재외동포 수의 8.2%를 차지하고 있다.(중국동포 82.9% 다음의 비율) 또한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모든 CIS지역에서 온 재외동포 수를 전부 합치면 그 수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01620172018우즈베키스탄14,38517,63720,65326,48531,08134,355러시아5,0515,5248,59015,55521,26425,302카자흐스탄1,4941,8692,5045,2369,22312,586계20,93025,03031,74747,27661,56872,243고려인 학생의 수 또한 정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부모의 국적이 러시아 및 CIS지역인 학생들을 고려인으로 가정한다면 2019년 현재 약 8,509명(초등학교 5,944명, 중학교 1,831명, 고등학교714명, 기타학교 20명)의 고려인 학생들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체 고려인수와 마찬가지로 학생 수 역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182019초등학교*************,0413,8454,9075,944중학교2546871722551,0551,4251,831고등학교*************9500714각종학교00311151420계1832944967881,4145,2346,8468,5093. 고려인 학생들이 겪는 정체성 문제와 실제 사례최근 다문화 학생들이 급증하면서 다문화 학생이 겪는 어려움이나 이에 대한 교육 방안들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고려인 학생들에 대한 교육은 문화적 배경이나 학생들의 정체성이 다른 만큼 한국인과 외국인 부부간의 자녀나 고려인이 아닌 이주 노동자의 자녀나 중도입국학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물론 다른 다문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고려인 학생들도 언어 문제나 가정간의 문제, 교실 내에서의 한국 학생간의 차별이나 따돌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등이 똑같이 존재한다. 다만 고려인 학생만 따로 집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고려인 학생들만의 단독적인 객관적인 지표는 없다. 하지만 고려인 학생들은 고려인으로서의 독특한 정체성의 갈등 문제가 있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특히 더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교육 현장에서 고려인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한 사례 두 개를 소개해본다.? 러시아의 고려인 3세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A는 러시아의 학교에서는 늘 ‘너는 한국인이야’ 소리를 들었고,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이며 우리는 한국인’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덕에 본인 스스로도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에 중학교를 다니던 A는 15살에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거주지 근처의 중학교에서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A를 받아주지 않았고, 결국 ㅇㅇ초등학교에 5학년으로 들어가게 된다. A는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한국인이니까 한국어와 한국사를 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해 6개월 만에 다른 한국인 아이들처럼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여름방학동안 한국사를 문제집을 3권 이상 풀며 공부하여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한국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A에게 ‘너는 러시아 사람이다. 고려인은 고려시대 사람이다’라고 놀려댔다. A는 그 놀려대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놀리지만 않을 뿐 자신을 한국인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에 괴로웠다. 게다가 고려인 4세 신분이었던 A는 부모님과 다르게 해외동포 신분이 인정이 되지 않아 2년에 한 번씩 러시아에 가서 비자를 재발급 받게 되었다. 최근 홀로 러시아를 다녀온 A는 ‘과연 나는 어느나라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부쩍 잦아졌고 국적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학교에 있는 고려인 친구들이 당당히 ‘나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것을 보니 더 혼란스러워졌다. 평생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막상 한국에서는 나를 한국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학생인 B는 러시아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러시아어권 학생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 B의 할아버지는 B의 담임선생님께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이라고 차별받았던 일과 함께 한국에서도 자신들을 한국인 대접해주지 않고 우즈베키스탄인이라고 말하며 한국에서조차 돌아가라고 차별받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러시아에서 온 다른 학생인 C의 아버지는 ‘까레이스키(러시아어로 고려인을 말함)’인 B에게 나쁜 영향을 받는다고 B와 C를 같은 반에 배정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러시아 내에서의 까레이스키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고려인의 모국에서 고려인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 덕인지 C의 아버지가 당당하게 차별하는 현실에 선생님은 화도 나고 슬퍼졌다.이처럼 고려인, 그중에서도 특히 학생들은 스스로도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나며 한국인들의 ‘고려인’에 대한 무지함과 함께 한국 내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는 것에 괴로워한다. 교사로서 고려인 학생이 자신의 정체성을 ‘한국인’이라고 내리든, ‘고려인’이라고 내리든, ‘러시아인’이라고 내리든 교사는 학생이 정체성을 충분히 탐구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게 학급 내에서도 고려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4. 고려인에 대한 새로운 지도 방안의 필요성우선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사회, 도덕 교과서에서 ‘고려인’을 다루고 있는 부분은 없다. 사회, 도덕등의 과목에서 다문화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문화나 외국에 관해서 많이 다루고 있지만 고려인이나 재외동포에 대해서는 한 차시도 다루지 않는다.고려인의 민족사를 생각해 볼 때, 또한 한국에 점점 고려인 학생들이 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교과서에 고려인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은 필요하다고 본다. 고려인 학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국적이나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위의 사례에서 제시하였듯,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려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 고려인을 완벽한 외국인으로서 대하고 있다. 그러나 2015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의 목표에 따라, 학급 내 고려인 학생의 증가 속에서 학생들은 고려인에 대해 배우고 관심을 가지고 한국의 역사를 좀 더 깊게 배우고 세계 속의 한국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 고려인 학생들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5. 고려인에 대한 학교 교육 내에서의 지도 제안따라서 나는 초등학교 교과 과정 내에 고려인에 대한 차시를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는데, 5학년 2학기나 6학년 2학기 사회 교육과정 중에 넣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우선 5학년 2학기 2단원,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의 9~16차시의 ‘일제의 침략과 광복을 위한 노력’ 부분에 고려인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15차시 부분에는 대표적인 고려인인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을 다루고 있어서 고려인에 대해 서술하기 좋은 부분일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승리했다는 언급은 있지만 홍범도 장군의 그 이후의 삶, 즉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해 1943년 외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던 고려인이라는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부분에 대해 교육한다면 학생들이 고려인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며 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제의 수탈로 인해 해외로 떠난 국민들이나, 독립 운동가들의 해외 활동을 다룬 13차시의 ‘한국인들이 고국을 떠난 까닭을 알아봅시다.’ 부분이나 해외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다룬 15차시의 ‘나라를 되찾으려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노력을 알아봅시다.’ 부분에는 고려인에 대한 언급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는 단원이 마무리 된 후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을 다루기 전,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독립운동가에 대해 반성과 과제를 제시하는 단원을 만들도 좋을 것이라 본다.
    교육학| 2020.05.29| 4페이지| 1,500원| 조회(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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