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뷰티풀 마인드 >1. 조현병을 엿보다.영화의 초반부 존 내쉬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으로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수업은 사고를 둔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잠재적인 창의력을 파괴시킨다는 이유로 수업에도 빠지기 일쑤였는데 그러면서도 혼자서 이론의 단서를 발견해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모습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방탕한 룸메이트 찰스가 나타나고 찰스는 불안해하는 존 내쉬의 옆에서 응원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는 그러한 부분들에서 찰스라는 캐릭터가 정말 좋았고 믿음직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존 내쉬의 환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존 내쉬가 그들을 쉽게 떨쳐낼 수 없던 것이 크게 와닿는 순간이었다. 마치 내가 존 내쉬가 된 것처럼 정말 그 사람이 자신이 만들어 낸 환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존 내쉬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정신분열증임이 밝혀졌음에도 꽤나 내용이 진행될 동안 사실은 존 내쉬가 맞는 게 아닐까? 다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찰스가 만들어진 상상 속 캐릭터 일 수가 있지? 하는 의문들이 지속적으로 들었고 믿기지 않았다. 내가 만약 존 내쉬였다면? 항상 나를 의지하고 지지해 주던 친구가 사실은 환각 속의 인물이었다면 나는 그를 상황을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들었고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갑작스레 자신이 정신분열증이라는 사실을 접하게 된 사람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던 것 같다.2. 찰스라는 캐릭터에 대해영화는 대부분 주인공 중심으로 심리가 묘사되면서 흘러가기 때문에 나는 주인공에게 깊게 몰입하는 편이다. 2파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는 영화 초반 찰스라는 캐릭터에 굉장한 애정을 쏟았다. 내가 존 내쉬였다면 찰스가 환각이라는 것을 자각하고도 그를 놓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찰스는 비록 존 내쉬의 환각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이지만 내성적이고 방어적인 성격의 존 내쉬에게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존 내쉬가 대학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때에도 위로해 주고 그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 또한 주인공에 몰입해 찰스에게 위로받고 있어서 찰스가 환각의 인물임을 깨달았을 때 더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영화의 초반 존 내쉬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주변 관계들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슨이라는 인물과 바둑대결을 한 것이었다. 나는 주인공 버프로 당연히 존 내쉬가 바둑대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바둑대결은 한슨이 쉽게 승리하고 존 내쉬는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하다며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온다. 이 부분을 통해서 존 내쉬라는 캐릭터가 자존심이 세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존 내쉬가 논문 작성을 위해 교수를 찾아갔을 때 퇴짜를 맞고 그 교수가 보여준 만년필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부분들은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존 내쉬의 욕망과 외로움이 드러났다. 그래서 찰스라는 환각의 인물을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찰스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친구들이 존 내쉬를 재수 없고 무능한 인간으로 볼 때 유일하게 그를 인정하고 지지한 인물이다. 영화의 중간중간 나오는 찰스의 대사들에서 존 내쉬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갈망들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화가 절정에 다 다랐을 때 나는 존 내쉬가 찰스에게 한 대사가 감상문을 쓰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넌 내 최고의 친구였어.” 이 대사 이후로 존 내쉬는 다시는 그들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고 무시하지만 찰스는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 최고의 친구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3. 영화의 후반부존 내쉬는 영화의 후반부 자신의 환각을 인정하고 그들을 수용하면서 살아간다. 다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이겨냈다. 그리고 존 내쉬의 이론을 연구 중인 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고 그 이후로도 학생들이 몰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비춰주었을 때 정말 벅차올랐다. 사교성이 부족하고 직설적이었던 존 내쉬가 학생들이나 다른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답잖은 농담들을 툭툭 던지며 웃게 해주는 장면들을 보고 그가 정말 많이 노력했음이 와닿았다. 그리고 노벨상 후보에 올라 그가 항상 갈망했었던 자신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 부분도 감동적이었다. 카페에서 주위 교수들에게 만년필을 받는 존 내쉬의 모습이 영화의 초반 그가 갈망하고 부러운 눈으로 보았던 만년필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결국 그가 이루고 싶었던 것에 다다랐구나 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현병으로 인해 망가져가는 함 사람과 그 사람의 주위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 한 켠이 불편했는데 결국에는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낸 것 같아 다행이고 대견하다.4.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들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인물을 꼽으라면 존 내쉬의 아내 엘리샤라고 생각한다. 엘리샤는 존 내쉬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도왔다. 항상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했고 조현병을 앓는 존 내쉬의 모습에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존 내쉬를 떠올리며 그를 사랑하려고 애썼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엘리샤의 심리 변화가 세세하게 묘사되어 더욱더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녀의 존 내쉬를 향한 애정과 죄책감, 분노들이 공감되기도 하고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화의 한 장면 중 엘리샤가 약을 매일매일 챙겨줬지만 존 내쉬는 그 약을 먹는 척할 뿐 먹지 않고 서랍에 모아두었고 그로 인해 또다시 조현병이 심해져 환각을 보기 시작하고 결국엔 자신의 아이까지 위험에 빠트리는 모습들을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정말 절망적이었다. 계속해서 악화되고 반복되는 모습들에 자신과 자신의 아이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존 내쉬를 놓지 않으려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존경스러웠다. 나는 존 내쉬에게도 몰입이 되는 한 편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엘리샤에게도 안타까움의 감정이 들면서 몰입이 되었다. 내가 만약 조현병이라면, 혹은 나의 가족이나, 주변인물이 조현병을 앓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얼마나 힘들까? 엘리샤는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하는 많은 감정들이 오갔다.
< 함께있어 좋은사람 사회복지사 >1. 함께있어 좋은사람 사회복지사함께있어 좋은사람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사와 실천현장에 관심이 많은 사회복지학자 박미은 작가가 저술한 책이다. 이 책에는 작가가 그동안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 현장에서 알게 된 것, 몸소 터득한 것, 보고 들은 것,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들이 담겨져있다.사회복지사이면서 교수로 살아온 작가의 경험과 평소 생각들이 자세하게 들어나있고, 총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사회복지사로 산다는 것에서’ , 2부 ‘클라이언트와 함께하다’ , 3부 ‘우리는 어떤 관계일까?’ , 4부 ‘사회복지사의 복지를 고뇌하다’. 1부 에선 사회복지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 사회복지사다운 모습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무거울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거운 느낌없이 작가의 에피소드를 살려담겨져있다. 2부에서는 복지현장에서 만나는 클라이언트는 누구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이다. 3부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가 만드는 좋은 관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솔직한 작가의 생각, 4부에서는 클라이언트와 사회복지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담아냈다.2.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의 생각은 같을거야함께있어 좋은사람 사회복지사를 읽고 사회복지사라는 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 것 같다.마냥 사람을 좋아하고 돕고자하는 마음만 가지고 시작하기에는 사회복지사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직업이었고 해서는 안되는 주의사항들도 많이 있었다. 내가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 이렇게 하면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 모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나 혼자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가장 큰 실수중 하나는 바로 ‘자기고백’이다. 클라이언트가 겪었던 상처들 중 나와 비슷한 상처가 있을 수 있다. 그 상황에 나는 같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며 클라이언트와의 상담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공감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책을 읽고 나서 알게되었다.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클라이언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겪는일을 가지고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은 상처받은 클라이언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행위였고, 나도 모르게 클라이언트를 억압하고 있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책을읽고 사회복지사란 정말 어렵고 힘든직업이었구나,내가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사고방식부터 버려야겠다. 라고 생각했다.또, 내가 과연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혹여 또 다른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하지만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함께있어 좋은사람 사회복지사라는 책을 통해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만의 생각을 강요하고 클라이언트를 억압하는 사회복지사가 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이것을 깨달았고, 나는 충분히 고쳐나갈 준비가 되어있다.3. 승-승토론에 관하여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꼽으라면 나는 이 부분을 이야기 할 것이다. 바로 승-승토론이다. 나는 사실 토론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토론은 대부분 어떤 주제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하기 마련이다. 명확하게 답이 내려지는 토론의 주제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토론은 그것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토론은 결국 하나의 답을 찾기위해서 갈등하고 때로는 다투며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기 위해 다른 의견을 반박하고 깎아내린다. 특히 상대방의 말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감정적으로 대립하며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현학적인 지식과 언변으로 본질을 흐리는 행위들이 토론을 할 때에 종종 발생한곤 한다. 나 또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토론에 감정이입해서 참여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저런 잘못된 행위를 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모른 토론이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지금까지 접해온 토론은 이런식으로 진행되어왔다. 나는 그런 토론의 방식을 선호하지않았다. 그래서 토론을 별로 좋아하지않게 되었다.그런데 이 책에서는 승-승토론에 관해서 다루어서 굉장히 인상깊었다. 승-승토론은 첫째, 주제에 대해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둘째, 관련 주제의 핵심적인 쟁점과 관심사항을 꺼내놓고 공유한다. 셋째, 어떤 결과가 모두에게 수용 가능한 해결방안이 되는지 결정하고 넷째, 그러한 결과를 얻도록 해주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다. 이것이 승-승토론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배려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갈등이나 다툼도 자연스럽게 없게된다. 복지현장에서 사회복지사들은 늘 클라이언트를 위해, 더 좋은 복지를 위해 매일매일 생각하고, 의논하고, 토론해야하는 상황과 마주할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이 혼자인것보다는 두명이, 두명보다는 세명이 더더욱 좋은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것을 위해서는 승-승토론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복지현장의 사회복지사는 토론을 통해서 성장하고 그 성장의 결과는 고스란히 클라이언트에게 돌아간다고 하였다. 토론을 선호하지않는 나였지만, 승-승토론이라면 얼마든지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같아 기대가 된다.4.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사회복지를 공부한지는 얼마되지않았지만,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간의 관계였다. 나는 클라이언트와 관계가 깊을수록, 친밀할수록 좋은 관계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와 맺는 관계는 도움을 주고받는 인격적 관계라고 정의하며 조급함보다는 기다림이, 강요보다는 선택이 둘사이의 관계를 물 같이 흐르게 한다며 흐르는 물과 같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을 바랐다.책을 읽고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물흐르는듯한 자연스러운 관계가 정말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간의 관계인 것 같다. 클라이언트가 사회복지사에게 기대하는 것은 대체로 가족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 더 나은 일자리를 얻는 것,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것, 아이들이 잘 크는 것 등 장기적인 것들을 기대한다. 그래서 더더욱 사회복지사는 그 관계에 대해 길게 내다보아야하는 것 같다.클라이언트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나서 생각해보게 됐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와 늘 마주보며 상담하는데 그때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깨달은 놀라웠던 사실은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에게 친밀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을 주는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클라이언트와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의 관계임을 깨달았다. 이제라도 이 책을 접하고 고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클라이언트를 대할땐 정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같다. 현장에는 각기 다른 클라이언트가 있을 것이다. 클라이언트의 얼굴, 배경, 성격이 모두 다르듯이 나도 그 클라이언트에 맞는 상담방식을 진행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일은 정말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데 하물며 사회복지사와 클라이언트의 관계맺음은 어떨지 정말 궁금해졌다.5. 풍선을 터트리자이 책의 두 번째 챕터에는 풍선과 감정다루기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람의 감정, 클라이언트의 감정을 풍선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이다. 터질 것 같은 풍선과 공기가 빠져버린 풍선. 이 두가지 종류의 풍선을 다루는 법을 이야기 했다. 작가는 풍선의 공기를 조금씩 빼내듯 , 감정도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감정을 안전하게 다룰 준비가 되었을 때 그 풍선을 터트리라고 하였다. 그 터짐이 클라이언트가 마음을 씻는 카타르시스가 되도록 말이다. 나는 이부분이 정말 충격적이게 다가왔다. 나는 처음 작가가 풍선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조심스럽게 풍선을 다루어서 그 풍선을 터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에만 치중했다. 절대로 풍선을 터트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터트리지않는 방법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나의 그런 고정관념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완전히 깨어졌다.
가버나움 영화 감상평이번 과제를 위해서 전부터 볼까 말까 고민했었던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를 볼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는 아동학대를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영화를 볼 때면 항상 마음 한켠이 불편하고 눈물이 나서 보기 꺼려지곤 한다. 하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 보고싶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영화는 레바논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난민과 불법체류자 그리고 빈민촌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 자인의 동네. 그곳에는 생계를 위해 학업조차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각종 허드렛일을 도맡아 생활전선에 반강제로 뛰어든 자인도 그중 하나였다. 자인의 부모는 부양의 책임은 물론이고 부모로서의 도리조차 갖추지 못했다. 딸린 자식들은 셀 수 없이 많고 부모가 챙겨야 할 딸의 초경도 오빠인 자인의 몫이었다. 항상 동생들을 돌봐왔던 자인은 많은 동생들 중 가장 아끼는 동생이었던 사하라가 슈퍼 주인인 성인 남성 아사드에게 11살의 나이로 팔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인은 결혼을 막아보려 하지만 어린 자인은 부모를 막지 못했고 그 뒤로 집을 뛰쳐나와 놀이공원에서 노숙을 하던 도중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놀이공원 청소 일을 하던 라힐을 만난다. 라일은 자인처럼 출생신고조차하지 못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자인에게 잘 곳을 제공한다. 자인은 라힐이 일하러 간 사이 아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지만 라힐은 도중에 당국에 체포되고 만다. 라힐의 아들 요나스와 둘만 남은 자인은 아이를 사고파는 것이 흔하게 이루어져 아이를 팔라는 어른들의 꾐에도 흔들리지 않고 집에서 배웠던 불법 주스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마저도 모두 잃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려 한다. 하지만 출생증명서가 필요해 찾기 위해서몇 달 만에 집에 잠깐 들르지만 그 와중에 사하라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자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칼을 들고 아사드에게 향한다. 그리고 소년원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면회를 와서도 임신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름은 죽은 딸인 사하라로 짓겠다고 하는데 이일을 계기로 마음을 굳힌 자인은 라디오방송에 부모를 고소한다. 사건은 마무리되고 요나스도 라힐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신분증 사진을 찍는 자인의 미소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영화 속 어른들은 아동을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출생신고조차하지 않은 아이들은 비밀리에 팔려나가고 10살도 채 안 된 아이들이 물건을 팔고 훔치며 살이 간다. 자인의 부모 또한 무작정 아이를 낳고 팔았으며 11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성인 남성과 결혼 시키는 등 자인에게 부양의 의무를 모두 맡기고 자신이 낳은 자식들에게 최소한의 보호나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 이는 아동방임에 해당하며 엄연한 아동학대이다. 아동방임은 우리사회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다지 생명에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 아동방임은 실상 가장 위험한 아동학대이다.레바논에는 난민과 불법체류자 그리고 빈민촌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그 동네에는 자신의 생계유지를 먼저 생각하고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만약 내가 아동복지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라면 그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을 우선시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상태에서의 가르침은 오히려 거부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천천히 자신이 하고있는 행동이 아동학대임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동은 절대로 성인의 축소판이나 소유물이 아니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리고 아동학대를 당해온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책이나 서비스를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 최대한의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이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영화를 소개해주는 영상에서였다. ‘부모를 고소한 아이‘ 라는 제목은 나에게 어쩌다 저 어린아이가 부모를 고소하기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고 나를 이영화로 이끌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부모와 레바논 빈민가의 어른들에게 화가났고 그 곳에서 무덤덤하게 동생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자인을 돕고싶었다. 두시간이 넘는 영화속에서 자인은 두 번 미소를 짓는다. 첫 번째는 라힐이 손님이 먹다 남긴 케이크를 몰래 가져와 요나스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주는 장면 함께 노래를 부르고 초를 끈 뒤 미소를 지어주는데 이것이 영화속에서 볼 수 있는 자인의 첫 번째 미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표정이거나 화난 상태의 자인만을 보았고 자인의 미소는 볼 생각 조차 하지 못했는데, 자인의 첫 번째 미소를 보았을 때 너무 예뻐서 저 미소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스토리는 위기와 절정을 맞아 더욱더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갔고 자인의 미소는 볼 수 없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 쯤 마지막 장면에서 두 번 째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신분증 사진을 만들면서 미소짓는 자인은 정말 예뻤고 기억에 남았다. 가버나움은 예수의 기적이 많이 행해진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도시 이름이다. 은혜가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자 머지않아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되고 6세기에 이르러 퇴락의 길을 걷는다. 최근에는 혼돈과 기적을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가버나움‘의 명확한 뜻을 알고나니 영화에서 전하고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더욱더 깊게 다가왔다. 혼돈이 가득한 레바논의 땅에 기적을 바란다. 레바논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가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 해당하는 말이다. 가버나움은 아동학대가 폭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돌보지않는 무능력함 역시 학대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재판에 선 부모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며 아이들 때문에 자신들도 죽을만큼 힘든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그상황을 모면하려는 말일 뿐이다. 자인은 재판장에서 부모에게 바라는 점이 있느냐 물었을 때 처벌이나 구금이아닌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해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책임한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아동학대인 방임에 대해서 다시한번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은 많이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싶다는 생각을 영화를 통해 다시한번 굳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