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산 답사 보고서바이오산업융합학부2497574 한승헌1.답사 일자 : 2019년 9월 15일2.답사 장소 : 율곡선생유적지(자운서원)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3.답사 장소 소개 : 율곡선생 유적지(자운서원)(사진 율곡선생 유적지 입구)자운서원은 율곡 이이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으로 1615년(광해군 7)에 김장생 등의 주도로 호명산 아래에 창건 후 자운산 아래로 이건하였고, 1650년(효종 1)에 사액되었습니다. 이후 영조 · 정조 · 순조 등 역대 임금이 자운서원에 치제하게 할 정도로 보살핌을 받았으나,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습니다. 서원 철폐 후에는 서원 터에 제단을 세워 제사를 이어 왔으나 한국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그 뒤 자운서원은 1970년대 문화 유적과 선현 유적에 대한 보수 · 정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복원 되었으며 그것이 지금의 자운서원 입니다. 1973년 7월 10일에 경기도 기념물 제 45호로 지정 되었으나, 2013년 2월 21일 사적 제 525호 파주 이이 유적으로 포함·승격 되면서 경기도 기념물은 지정 해제되었습니다.4.답사 장소 선정 이유제가 자운서원을 답사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이 곳에서 추모되고 있는 율곡 이이가 제가 살던 파주의 파주 3현으로 불리우는 위인이라 어린 시절 부터 알고 있었고, 그런 율곡 이이를 6살에 파주 본가로 데려 온 후, 13살에 진사 초시에 합격할 수 있기까지 교육하고 키운 신사임당에 관한 유물이 이 곳에 있는 율곡 기념관에 꽤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등 가족 묘소가 이곳에 있기 때문 이였습니다. 지금까지 파주에 살면서도 이름은 익숙히 알고 있었지만 그분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선정하게 되었습니다.5.관련 자료 조사5-1.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이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입니다. 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입니다. 그가 살던 마을 이름을 따 호를 삼은 율곡(栗谷) 이이는 강릉 외가에서 탄생, 여섯 살 때 파주 율곡리의 본집에 돌아와 열세 살에 진사 초시에 합격했습다. 그러나 그는 출세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었으므로 더욱 학문에만 정진하였습니다. 16세 되던 여름 아버지 이원수를 따라 관서 지방에 갔다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사임당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걸음을 재촉했으나, 결국 임종을 지켜 보지 못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네 살 때 중국의 역사책 『사략』(史略)을 배웠으며, 여덟 살에 시를 지었다는 율곡의 어린 시절 공부는 특히 어머니 사임당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의 사상이 담긴 책으로는 군왕의 도를 상술한 『성학집요』(聖學輯要)나 어린이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 등이 대표적이고, 음양과 기의 작용으로 천지조화를 설명한 「천도책」(天道策)이라는 글은 율곡이 별시 과거 시험에 낸 답안으로, 자신의 독특한 성리학적 입장, 곧 이기론(理氣論)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죽기 1년 전에는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며, 「시무육조」(時務六條)를 임금께 올려 국력을 키울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천재로 태어나 인품과 덕성을 갖추었으며, 대학자이며 정치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은 율곡은 49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금은 그의 업적을 기려 문성(文成)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5-2.신사임당(1504~1551)신사임당은 1504년(연산군 10년) 외가인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서울 사람인 아버지 신명화와 강릉 사람인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에서 다섯 딸 중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임당은 당호이며, 사임당 외에도 시임당·임사제라고도 하였습니다. 사임당이라고 지은 것은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로 뛰어난 부덕을 갖추었다는 태임(太任)을 본받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임당은 7세 때부터 스승 없이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산수화를 보면서 모방해 그렸고 특히 풀벌레와 포도를 그리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습니다. 사임당은 어머니 이씨와 할머니 최씨와 더불어 오죽헌에 살면서 시와 그림, 글씨 등을 외가를 통해 전수받았습니다. 사임당이 결혼한 것은 1522년인 19세 때로, 2년 뒤인 21세 때 맏아들 선, 26세 때 맏딸 매창, 33세에 셋째 아들 율곡 이이를 낳는 등 모두 4남 3녀를 낳아 길렀습니다. 38세 되던 해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수진방에서 살다가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같은 해 남편이 수운판관에 임명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로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임당은 뒤에 아들 이이 덕분에 정경부인에 증직되었습니다.6.답사6-1.자운서원(자운서원 전경,사진에 보이는 문은 외삼문)자운서원은 광해군 7년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를 기리기 위해서 지방 유림들에 의해 지어진 서원으로써 효종 원년에 ‘자운’ 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존재하는 자운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 문성사와 내삼문을 복구하고 1996년 강당과 동, 서재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자운서원은 크게 문성사, 내삼문, 강인당, 수양재(동재), 입지재(서재),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6-1-1.문성사문성사는 율곡 이이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율곡 이이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인 김장생, 박세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전형적인 사당 형태를 하고 있었고, 설명에 따르면 전학휴묘에 따라 자운서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70년에 복원되었다.(사진 문성사 속 이이 위패)6-1-2.강인당과 수양재, 입지재제향공간인 문성사가 있다면 자운서원의 강학공간인 강인당과 수양재, 입지재이다. 말 그대로 공부를 하는 곳이며 강인당은 강당 역할을 하였다고 하며, 수양재, 입지재는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1996년에 복원되었다.(사진 강인당 앞에서 찍은 사진)6-1-3. 자운서원 묘정비문성사 출입문인 내삼문 옆에 있으며 서원의 역사를 담은 비석이라고 한다. 비문은 송시열이 작성하였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