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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루쉰 복을 비는 제사 - 봉건 질서 속의 약자의 고난과 지식인의 길 찾기의 고난
    루쉰 복을 비는 제사 - 봉건 질서 속의 약자의 고난과 지식인의 길 찾기의 고난
    주제어 : 계몽주제문 : 봉건 질서 속의 약자의 고난과 지식인의 길 찾기의 고난개요1.화자가 루전 고향 세계와 단절된 이유2.근대 계몽 지식인과 전통 사회 사이의 대립3.미신 앞에 닥친 지식인의 한계4.미신의 대한 희망이 사라짐5.봉건체제 권력자와 봉건체제 약자의 대립루쉰 작가의 라는 소설은 고향을 떠났던 화자가 설을 앞둔 섣달 그믐께에 고향을 다시 찾는 것으로 전개가 시작된다. 화자인 ‘나’는 이미 고향을 떠난 사람이고, 고향에는 집도 없다. 그리고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임시로 친척집에 생활하게 되는데 숙부 관계가 되는 넷째 루 나리에게 비판의 말을 듣는다. 넷째 루 나리는 신해 혁명에 가담하거나 동조하는 일파를 지칭하는 신당에게 온갖 욕을 퍼부으며 비판할 뿐만 아니라 캉유웨이같은 신해혁명을 반대한 군주제 개혁론자까지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인물이다. 신당과 캉유웨이를 향한 그의 욕은 실은 ‘나’를 향한 것이다. ‘나’는 넷째 루나리와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혼자 서재에 남겨진다.1.이렇게 화자가 루전 고향 세계와 단절된 이유는 무엇일까? 화자가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 더 자세한 이유를 살펴 보자면, 고향 세계가 여전히 전통 세계 속에서 변하지 않은 채로 있기 때문이다. 고향 세계는 캉유웨이의 입헌군주 개혁이든 쑨원의 공화제 혁명이든 그 어떤 변화와도 상관없는 정체된 세계이다. 오랜만에 만난 ‘나’의 고향 친구들이 그저 조금 늙었을 뿐 크게 변한 게 없는 것처럼, 고향은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소설에서 변화가 없는 정체된 세계인 고향을 상징하는 것들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고향의 전통적 민간 종교 행사의 ‘복을 비는 제사’이고, 다른 하나는 넷째 루 나리이다. 고향은 전통 시대에 늘 그래온 것처럼 여전히 ‘복을 비는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있었고 외부의 변화와 무관한 채 단절되어 있다.2.이런 정체된 루전 고향세계와 달리 ‘나’는 외부 변화 속에 있다. ‘나’는 고향을 이미 떠난 인물이고, 넷째 루 나리가 그를 신해혁명을 지지하는 신당에 동조하는 인물로 간주하고 비난하는 부분이라던지, 샹린이 “글을 아는 분이고, 출세까지 한 분이며 아는 게 많은 분”이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근대 지식을 접한 지식인이다. 즉, 나는 고향의 질서 밖에서 유일하게 근대 사상을 갖춘 인물인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소설 시작에서부터 볼 수 있는 사이의 대립은 근대 계몽 지식인과 전통 사회 사이의 대립을 상징한다. 이것은 근대 계몽 소설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대립 구도이다.그런데 소설 를 지식인과 전통 사회의 대립 구도뿐만 아니라 샹린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소설은 이 지점에서 계몽적 차원을 넘어서 미신과 종교의 내용까지 포함하게 된다.소설에서 동네 길을 가던 화자인 ‘나’를 본 샹린이 화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면서부터 시작한다. 그 세 가지의 질문은 사람이 죽어도 혼은 남는 것인지, 지옥이 있는지, 지옥이 있다면 죽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세 가지 질문을 받고 ‘나’는 자신이 내가 완전히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세 가지 질문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나’는 그저 잘 모르겠다고 답할 뿐이다.3.샹린이 던진 세 가지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은 어디서 오는가? 그는 왜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가? 일반적으로 볼 때, 근대 계몽 지식이라면 샹린의 질문을 우스운 것으로 취급하거나 한낱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복을 비는 제사에서 ‘나’는 다르다. 근대 계몽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무능하다고 자인한다. 화자가 샹린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지식인의 한계, 중국 계몽주의의 한계, 그리고 루쉰 계몽주의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의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복을 비는 제사에서 샹린의 불행은 첫 남편이 죽고 난 뒤 과부가 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진정한 불행의 시작은 시어머니가 자신을 돈에 팔아서 자신이 원하지 않은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면서다. 홀몸이 되어 전통 윤리에 따라 수절을 하는 삶도 샹린에게는 큰 비극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시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소설에서와 같이 생을 비참하게 마감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뜻하지 않게 이리에 아이를 잃으면서 불행이 겹치게 되었다. 이 불행의 최대 피해자는 자기 자신인데, 정작 샹린은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한다. 샹린은 자신의 고통을 루전 사람들에게 강박적으로 호소하지만 루전의 누구도 그녀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고, 그저 구경할 뿐이다. 샹린은 수절을 하지 않고 다시 결혼한 죄, 그리고 자신이 어리석어서 아이를 죽게 한 죄로 괴로워한다. 그 죄의식은 이제 저승에 가면 두 남자가 자기 때문에 싸울 것이고, 염라 대왕이 몸을 둘로 나누어 두 남자에게 주는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린다. 저승에서 남편과 아이를 만날까봐 공포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런 샹린을 구해 준 묘책은 토지묘에 문지방을 바치는 것으로 액땜하라는 제안이었다.
    인문/어학| 2026.03.21| 3페이지| 2,500원| 조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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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식민시대가 끝난 후 라틴아메리카에 지속되고 있는 스페인 식민 통치의 유산
    식민시대가 끝난 후 라틴아메리카에 지속되고 있는 스페인 식민 통치의 유산
    라틴 아메리카의 맥락에서 볼 때, 라틴 아메리카의 식민통치 역사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은 역사적인 의미보다 오히려 그것이 진행되어지고 있는 ‘현재성’ 때문에 강조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흔히들 ‘식민통치의 유산’이라 부르는 당시의 내용과 구조들이 아직도 라틴 아메리카 사회 곳곳에 만연하게 남아있으며 그것들의 대부분이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으로써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경제 발전, 민주화, 사회적 평등화 등의 가능성은 바로 식민지 유산의 경험 정도와 역비례한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식민 시대의 유산이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인 측면과 경제적인 측면에 영향을 주는 조건중의 하나라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라틴 아메리카 연구에서 식민통치 역사 연구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우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식민통치의 역사를 부왕제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부왕제도 역시 다른 식민제도와 마찬가지로 그 원형은 스페인에서 이식된 것이었다. 스페인의 발렌시아, 카탈루냐, 마요르카, 세르데냐, 시실리아 나폴리는 부왕이 대신 통치하였고,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경우 왕이 부재중에 있을 때 부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부왕제는 콜럼버스와 왕실간의 협약에서 비롯된 것인데, 1493년 5월 28일 아메리카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콜럼버스는 바르셀로나에서 왕명에 따라 발견된 지역의 총독이자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콜럼버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최초 부왕인 것이다. 그러나 당시 부왕직은 실질적인 권한이 그다지 크지 않은 단순 명예직에 가까웠고 더군다나 콜럼버스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왕으로서 큰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에 종신 부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왕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리고 카를로스 5세가 라틴 아메리카 식민 통치의 최고 높은 상위 직책으로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을 임명한 것이 라틴 아메리카 부왕제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이후 순차적으로 부왕령이 세워지면서 그것에 따른 경계도 순서대로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부왕령의 영역은 식민 통치의 순서에 따라 정해진 것이다. 가장 먼저 세워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은 중미 전역을 포함하였고 북쪽으로는 오늘 날의 미국 남서부까지 관할하였다. 서쪽으로는 1564년 필리핀을 정복하고 부왕령으로 포함시켰다. 페루 부왕령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로 포토시를 중심으로 광업 생산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1500년대 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1600년대에 들어와서 광업 수입이 감소하였고, 18세기 누에바 그라나다와 리오 델 라 플라타가 각각 부왕령으로 분리되면서 그 위세가 감소되었다. 페루 부왕령이 설립되고 거기서 분리되어지고 확장됨에 따라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과 리오 델 라 플라타 부왕령이 설립되는 이 과정은 스페인이 식민 지배를 하는 과정에서 공간적으로 확산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부왕제를 이해할 수 있다.이후 스페인 왕실은 리오델 라 플라타, 파라과이, 투쿠만, 알토페루를 관할하는 리오델 라 플라타 부왕령을 설립했는데, 그 중 리오 델 라 플라타 부왕청이 세워진 이유는 남아메리카에서 리마와 부에노스아이레스간의 경쟁이 왕국 전체의 이익에 손해가 되는 것을 막고 포르투갈령 식민지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더불어 파타고니아와 말비나스에 영국과 프랑스의 진출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에 대비하려한 것도 부왕령 설립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이처럼, 라틴 아메리카의 부왕은 왕을 대신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통치를 담당한 식민지 상위 직책이었다. 식민과 정복이 가장 먼저 시작되었던 누에바 에스파냐에 처음 부왕이 임명되었고 그 이후 식민이 확대되고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으로 부왕제가 공고화되었다. 이로서 부왕제는 식민지 기간 동안 라틴 아메리카 지배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두 번째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식민시기 누에바 에스파냐와 페루에서 스페인으로 유출된 은, 금은 스페인의 경제와 식민지를 유지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은광업은 스페인 식민지에 광범위하고도 매우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은광의 발달은 부유한 광산 도시 발달의 원인이 되었고 은의 수송과 관련된 항구 및 항로는 스페인 식민지의 군사 및 무역 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은광업 및 그로 인한 스페인과 식민지인 라틴 아메리카에 미친 영향은 스페인 식민 역사에선 중요할지 모르지만 스페인의 실질적인 부를 축적하는 부분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귀족계급의 사치와 토지 구입 그리고 전쟁비용으로 사용되고 말았기 때문이다.스페인이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상품을 식민지에서는 생산을 막는 중상주의 정책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부가 식민지에서 산업 발전을 위해 투자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으며 그로 인해 라틴 아메리카 경제는 농장과 광산에서 나는 원자재를 유럽에 수출하고 유럽이 생산하는 공구나 섬유 등의 공산품을 수입하는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라틴 아메리카 식민지에서의 산업은 유럽과 무역이 감소할 때 일시적으로는 증가했다가 다시 무역이 활발해지면 황폐해지는 그런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17세기 초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대서양의 무역을 감소시켰을 때 식민지에서는 원주민을 상대로 거친 천 등을 생산하는 가내수공업이 일시적으로 크게 발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18세기 유럽의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무역이 점차 증가하게 되면서 곧 소멸되고 말았다. 스페인은 중상주의를 더욱 강화시켜서 식민지 자체에서 산업 발전하는 가능성을 철저하게 막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상품을 유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높은 세금를 부가하면서 스페인 본국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갔으며 식민지에서는 각 지역 간의 내부적인 무역을 중단시킴으로써 식민지에서의 스스로 자발적인 산업 발전을 금지했다. 그나마 조금씩 발전해나가고 있었던 식민지 산업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며 이로 인해 식민지의 경제는 본국 생산물의 소비시장을 위한 단순한 농산물과 광물의 생산지로 완전히 전락해버리고 말았다.이러한 식민지 경제느 독립 이후에도 극복되지 못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경제의 종속성이나 일차 상품의 의존도는 높다고 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경제의 이러한 종속성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자본주의 발전에 큰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 2026.03.21| 4페이지| 2,500원|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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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독후감/서평] 지배 이데올로기로 바라본 '82년생 김지영'
    [독후감/서평] 지배 이데올로기로 바라본 '82년생 김지영'
    대중문화 속에 담긴 콘텐츠들은 각 시대의 사회적인 문제를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소설이라는 콘텐츠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그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키워드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현재 한국 사회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키워드는 페미니즘이라 할 수 있다. 라틴어(femina)에서 파생 되어나온 페미니즘은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인한 여성들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 해방 이데올로기’를 뜻한다. 즉, 여성 이라고 칭해지는 인류가 남성 이라고 칭해지는 인류와는 다른 지위와 대우를 받아온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의 지난 역사들과 지금 당면한 현실에 대해 분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교육이자 사상이자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이란 온전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불순한 사상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누군가가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거나 페미니스트로 간주 될 수 있는 사소한 행동을 하나라도 한다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렇게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해 왜곡 당하고 있는 실정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분명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거나 대립을 조장 시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향하게 되면 비난과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것은 현재의 한국 사회가 남성중심적의 이데올로기에서 아직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한다.문학 분야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만연했다. 한국 근대 문학이 성립한 이래로, 여성주의 혹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문학들은 그 문학적 진가를 온전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저평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최근 한 여자 아이돌이 페미니즘 소설로 인식되는 이라는 소설을 읽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만으로도 대중들의 공격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다양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우리의 사회적 상황을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아직도 남성 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모습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문학이라는 콘텐츠와 연결해서 설명해보자면, 1990년대는 페미니즘 문학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면서 여성 문학이 호황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이 시기 여성 문학은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기존의 존재하던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여성들의 의식을 새로운 언어로 문학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 여세가 주춤해졌는데 그 이유는, IMF와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치자 가족 부양 능력을 위축시키는 대량 실업이 나타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가정인 남자들의 권위 상실에 대한 우려로 인한 남성 위기론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때문에 각종 드라마와 신문, 잡지, 광고,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컨텐츠에 ‘남편과 남자친구의 기 살리기 캠페인’이 벌어졌고 여성에게는 ‘어머니’의 이름과 역할을 강요하며 ‘강한 어머니’의 프레임을 뒤집어 씌웠다. 한동안 커리어우먼의 성공담이 놓여 져있던 베스트셀러 진열대는 다시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지혜롭고 강한 어머니가 쓴 에세이들로 덮여지게 되었다.그렇지만 2000년대 들어서 여성의 교육이 확대됨으로 인해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함께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더 이상 어머니라는 이미지에 끼어 맞춰져서 가족들을 위해 희생만 하는 존재가 아닌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같은 세대의 남성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남녀 간의 이런 경쟁이 이전보다 더 가열된 현재 사회는 페미니즘이라는 논제로 시끄럽다. 이와 관련된 단어들이 지금 현재에도 언론과 매체를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실시간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과 매체를 포함한 다양한 콘텐츠는 여성과 남성을 대립적이고 경쟁적인 구도를 가진 관계로 만들었고 이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가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을 남성적 우월주의 이데올로기를 뒤집으려고 하는 불순한 사상으로 인식되어 페미니즘 자체를 혐오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여성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이 시점에서 문학이라는 콘텐츠에서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내가 선택한 소설은 페미니즘을 선도하고 있는 조남주 작가의 이다. 이 책은 현대 페미니즘에 큰 파급력을 일으켜 많은 사람이 다시금 여성 문제에 주목할 수 있도록 만든 소설이다. 조남주 작가는 여성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느끼고 당해야만 했던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을 드러내는 동시에 남성주의식의 사고를 하는 이데올로기를 타파시키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 바 있다.특히 이 소설을 읽고 문학 평론가들을 포함해 많은 독자들은 소설로 쓴 여성학 교과서, 대한민국 30대 여성들에 대한 기록 문학,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 계몽적인 작품 등의 감상평을 쏟아냈다. 으로부터 많은 독자들은 실제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한 듯 공감성을 드러낸다. 왜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에 열광하고 공감하는 것일까? 이 소설이 말하고 싶어하는 남성주의적의 이데올로기의 탈피는 무엇일까?여성 화자가 소설 속에서 일인칭 고백체의 화법으로 말을 하는 것은 남성 중심의 권위적인 이데올로기의 언어에 저항하는 화법이자 자기 진술을 통해 여성적 자아 재현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여성 화자가 일인칭으로 고백하는 어투를 사용해 말하는 화법은 이 이후에도 많은 여성적 글쓰기의 전형으로 자리 잡아왔다.그러나 은 이전 시대의 여성적 글쓰기의 범주에선 벗어나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여성 화자의 일인칭 고백체의 서술형식이 아닌 정신과 의사인 남성 화자의 관찰 보고서를 토대로 소설이 전개된다. 소설 속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나 학생시절과 회사원을 거쳐 경력단절이 된 34살 전업주부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온 한 여성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간간이 등장하긴 하지만 김지영은 서사의 주체가 아니다.이런 보고서 형식의 서술은 기존에 있던 여성주의 소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낯선 형식이다. 따라서 은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자 하는 르포문학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였다고 할 수 있다. 르포문학이란 원래 사회 현상이나 사건을 충실히 기록하거나 서술하는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을 말하는 것인데 작가는 이런 르포문학의 서술 형식을 채택함으로써 일반적인 문학 작품들에 비해 예술적인 부분이나 심적 가치의 측면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성주의 소설에서 사용한 글쓰기의 형태와는 매우 다른 방식을 채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작가가 기존의 여성적 글쓰기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형태가 들어간 여성적 글쓰기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 소설을 서술해가는 남자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부인과 김지영을 비교함으로써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아가고 있는 김지영의 삶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이상 증상을 겪고 있는 김지영을 이해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몇몇 안되는 남성임을 자처한다. 자신과 같은 의사이자 대학 시절에는 자신보다 더 똑똑했던 자신의 아내가 아이의 엄마가 되고 한 남편의 부인이 된 이후에는 직업을 포기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모습이 안타깝다는 마음을 가지며 더 재미있고 좋아서 잘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서술자인 남자 의사는 머리로는 여성의 삶을 이해했을지 몰라도 행동으로는 옮길 수 없는 대한민국 대다수 남성이 가진 이데올로기적 의식을 스스로 말로써 증명한다.깨어있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김지영을 위로하는 남자 정신과 의사는 마지막에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하니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라는 말을 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태도와는 완전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이 부분으로써 이것이 보고서가 아니라 소설 이었구나 라고 느껴지게 할 만큼 반전과 충격을 안겨준다. 그는 분명 스스로 그녀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고 그녀들에게 미래를 응원까지 건넸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에서는 남성 서술자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이데올로기적인 생각을 엿보게 되는 대목이다. 즉 다시 말해 그는 그녀들의 삶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더러 그는 그녀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막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권력자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소설의 서술자인 정신과 의사의 말과 태도는 서로 모순적이다. 그가 무심코 택하는 방법이 여성들에게 또 다른 제약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증명해보인 꼴이다.
    독후감/창작| 2026.03.21| 5페이지| 2,500원| 조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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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 왔는가?
    과목명회계는 어떻게 역사를지배해 왔는가?학과학년성명학번 라는 책을 통해, 700여 년에 걸친 회계와 관련된 역사적사건들과 그 사건을 통한 회계의 책임성을 알게 되었다. 국가의 기초에는 언제나 회계가 존재해왔고, 효과적인 회계는 정치적 책임성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등 회계는 등한시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올바른 회계를 통해 안정적인 정부를 유지해나가는 한편, 부실한 회계를 통해 재정과 사회가 혼란되는 등의 여러 가지 사례가 책 속에 등장하는데 그런사례를 통해 평소에 경제적인 분야나 회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지했던 부분에 대해서 알 수있는 그런 시간이었다.이 책을 읽기 전에는 ‘회계’라는 것은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등장한 시스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로 재고 조사나 잉여 곡물을 계산하는 목적으로 이용되었을지라도 회계라는 개념은 고대에서부터 중요한 위치에 자리잡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국가가 회계와감사에 개입하기 시작했는데, 고대 아테네인들이 회계를 정치적 책임성을 가지고 연결된 것이라여겼음을 알 수 있었고 민주주의 사회답게 아테네에서의 회계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정치 철학 하에 대상이라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을 보고 회계의 투명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하지만 아테네와 반대로 로마의 국가 회계는 일관성이 없었고 기만행위가 만연하였는데 한 일화로 이야기해보자면, 키케로라는 자가 재무 처리로 악명 높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부실한 회계장부를 기록했고 많은 돈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회계장부와 서명까지 날조했다고 주장하고 비판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것을 들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키케로를 붙잡아 그의 머리와 그 글을 쓴쓴 손을 잘라 광장에 전시하였다.과목명회계는 어떻게 역사를지배해 왔는가?학과학년성명학번이러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부패성과 잔인성은 아테나나 지금 현실에서나 시공을 초월해언제나 적용되는 부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모든 시대의 권력자들은 장부공개를 꺼려하며 투명하게 장부공개를 요구하는 자들에겐 호의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해 볼 수 있었다.이렇게 이 책은 회계와 관련된 주요인물과 역사적사건을 통해 전개되어지고 있는데 르네상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프랑스의 전제군주제에서 네달란드와 영국, 미국의 상업사회까지 재무 책임성을이루기 위해 수백 년간 노력했는데도 아직까지도 기업과 정부를 효과적으로 감사하고 책임을 묻는회계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회계가 자리를 잡아나갈수록 곧바로 회피방법을 강구하는 역사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걸 보면,사실 회계는 인간의 본능의 반하는 분야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우리 사회에 있어서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회계와 복식부기 개념이 탄생한 이탈리아 이야기, 거상 다티니, 메디치가의 코시모, 회계 아버지라 불리우는 루카 파치올리의 각각의 이야기와 스페인의 전제군주 펠리페와 스페인의 몰락에 대해알아 본 뒤, 막대한 부를 축척하였으나 프랑스의 무력에 굴복하게 된 네덜란드의 이야기와 프랑스전제군주 루이 14세와 회계사 콜베르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리고 영국으로 이어지며, 월폴의구제금융과 부패 문제, 웨지우드의 사업 성공과 원가계산에 대한 회계 개혁, 그리고 네케르 왕실장부 공개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살펴보고 미국으로 넘어가 공공부채 대처를 위한 모리스의 네케르식 개혁, 철도의 발달로 인한 회계 복잡성 증가와 회계법인의 등장, 찰스 디킨스가 말하는 회계의 이중성과 테일러주의, 대공황과 리먼브라더스 사태까지 회계 역사하면 빠질 수 없는 모든 것을
    독후감/창작| 2026.03.21| 3페이지| 2,500원| 조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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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루쉰 계몽 -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중국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루쉰이 택한 문학적 노력
    루쉰 계몽 -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중국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루쉰이 택한 문학적 노력
    ▶주제어: 계몽▶주제문: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중국인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루쉰이 택한 문학적 노력▶개요1)어리석고 나약한 중국민족과 조국을 계몽시킬 방법은 문학뿐2)루쉰의 소설로 드러나는 중국의 뿌리 깊은 문제들3)루쉰의 ?쿵이지?라는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봉건예교의 풍자성4) 루쉰의 또다른 소설인 ?아Q정전?에서 드러나는 중국의 문제5)루쉰의 주된 풍자 대상은 결국 중국 당시의 봉건체제를 겨냥한 것1920년대의 중국은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로서 아주 혼란스러운 상태였는데 중국에서 여러 군벌의 세력이 강해지는 동시에 외국 세력의 침략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1920년대의 중국 문단에서는 한국처럼 일본의 엄격한 검열을 받지는 않았지만 문학을 창작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제한을 받게 되었다. 그러한 시대에 생활했던 작가들이 문학을 창작하며 사회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그러한 배경 속에서 등장한 작가는 ‘루쉰’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22세에 정부지원 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간 그는 일본의 새로운 학문과 의학을 접한다. 의학이 일본의 유신에 큰 힘이 되었음을 알게 된 그는 아편과 질병의 늪에 빠진 중국 민중들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지만, 26세가 되던 해 환등기로 진행되면 세균학 강의를 듣던 루쉰은 러일전쟁 중 중국에 진주한 일본군이 러시아 간첩이란 죄목으로 중국인을 총살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환호하는 일본 학생들과 희생자를 바라보는 동포들의 얼굴에 나타난 ‘무기력’과 ‘무관심’을 접하고 그는 심한 절망과 분노 속에 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해 버린다. 그런 사건이 있었던 이후, 1918년 5월 신청년에 단편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루쉰은 소설가로서 새롭게 중국 문단에 등장한다.루쉰은 계몽을 위한 것이었든 혁명을 위한 것이었든지 간에 자신의 내부의 중심에 늘 자리 잡고 있었던 믿음은 ‘문학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리라’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루쉰이 가장 안타까워했던 문제는 어리석고 나약한 바보가 되어버린 자신의 민족과 이들로 이루어진 자신의 조국이었던 것인데 루쉰은 자신들의 동포가 처형당하는 것을 무감각하고 멍청하게 구경하고 있는 중국인에게서 그가 늘 고민했던 중국민족의 근원적 문제점과 그 문제점을 가져다준 병의 근원에 대한 폐해를 뼈 속 깊이 각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은 의학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으므로 중국인의 인간다운 생존 그 자체를 위해 그의 삶의 방향이 '문학'으로 향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루쉰이 문예를 통해서만이 변화 가능하리라 믿었던 중국의 뿌리 깊은 문제는 그의 소설에서 주로 인물들을 통해 표현되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민중과 지식인으로 구분되며, 이들은 때로는 동정과 연민을 때로는 냉정하고 엄격한 비판과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루쉰이 공격하고자 했던 실체는 이들 인물들 자체라기보다 이들이 보여주는 관계 양상들 속에서 감춰져 있는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였다.그런 중국 문제가 잘 드러나는 루쉰의 한 가지 작품으로 예로 들어 보자면, 루쉰의 ?쿵이지?라는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쿵이지?의 중심인물인 쿵이지는 한마디로 몰락한 구지식인이다. 주점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고객은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하는 자들로서 선술을 마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쿵이지만은 장삼을 입은 모습으로 선술을 마시는 인물이다.이는 쿵이지가 지식인이던 평민이던 두 계급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인물임을 나타내 주는데, 즉 쿵이지라는 인물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봉건도덕의 관습 아래 옛 지식인의 독서하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봉건계급의 도덕적 자긍심으로 고상한 우월감에 빠져있지만 실제의 생활은 과거에 여러 번 실패하고 게다가 게으른 탓에 책을 훔치면서 겨우 겨우 삶을 연명해 나가는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탓에 주변의 인물 즉, 주점의 손님 및 그곳의 어린 아이까지 이러한 쿵이지를 조소하고 비웃으며 그를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이를 재미있어 한다. 쿵이지는 글줄이나 읽을 줄 아는 지식인이지만 실제로는 역시 하층민 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러한 쿵이지를 괴롭히는 주변의 인물들은 결코 악인은 아니다. 다만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노예적 습성에 사로잡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무감각’하고 ‘냉담’할 뿐이다.즉 루쉰은 봉건예교의 쓸데없는 자긍심에 사로잡혀 있는 쿵이지를 풍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인들 모두를 풍자하고 있다. 이는 쿵이지에게 가한 학대가 민중들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자해의 양상을 띠는 인간관계를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인간관계는 루쉰의 또다른 소설인 ?아Q정전?에서 아Q가 혁명당의 손에 총살을 당하고 그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즐기는 민중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아Q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비굴한 모습으로 당하기만 하지만 반대로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자에게는 강자의 모습이 되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 형상이다. 아Q는 2000여 년간의 오랜 봉건제도 하에서 전통의 질곡에 얽매여 자신의 결점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기만이나 공상적인 방법으로 합리화시키려는 '정신승리법'으로 무장된 인물이며, 아Q의 이러한 '정신승리법'은 끊임없는 지배계층의 억압과 수탈, 봉건예교의 보이지 않는 구속 하에서 중국의 하층 민중들이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방식이다. 또 상황에 따라 보이는 비굴함과 교활함을 봉건제도 하에서 민중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길들어져버린 노예성인 것이다. 루쉰은 중국 하층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인물인 아Q를 통하여 중국인의 민족성을 공격 비판하는 동시에 아Q의 처형
    인문/어학| 2026.03.21| 3페이지| 2,500원| 조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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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5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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