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의 그리스·로마 신화 변용(變容)에 대한 분석? 엘렉트라 신화를 중심으로건국대학교 신화와 철학 과제######목차1. 머리말 ·································································································· 12. 그리스 신화와 비극 ················································································ 23. 트로이아 전쟁 ························································································ 44. 비극1) 아가멤논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 52) 엘렉트라아이스킬로스의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 8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 10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 115. 맺음말 ·································································································· 136. 참고 문헌 ····························································································· 141. 머리말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화는 현실에서 괴리된 먼 옛날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신화 이야기를 답습하고 해석하며 살아간다. 이미 만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많은 문화 달성의 모태였다.그리스 비극은 영웅이 등장하여 사회적 사명으로 인해 충돌하다가, 대개 비극적 운명을 맞고 끝나는 모습을 담은 연극이었다. 출현에 대해서 각기 다른 설명이 있지만, 디오니소스 제례 때 야외의 극장에서 열렸던 가면극이라는 추정이 유력하다. 이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그리스 비극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발생하여 약 100여 년간 전성기를 누리고 폴리스의 쇠퇴와 함께 차츰 사라졌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작품이 각광 받은 이유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오뒤세이아』와 같은 영웅 서사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영웅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비탄하며 비극 속 인간의 삶과 운명을 공동체적 시각에서 재조명했다.그리스 비극은 대단한 사회적 영향력을 토대로 그리스 시민들에게 대중문화로써 흥미성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했다. 그리스 비극은 작가에 따라 다른 행위의 양상과 가치관을 보여주며 일방향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여지를 부여했다. 관객은 ‘옳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극을 자신의 삶에 비추어 보며 사고했다. 이를 통해 비극은 교육의 도구로써 사용되기도 하였다. 시민의 사고를 자극하고 변화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비극은 정치적 역할을 충실히 행할 수 있었다. 비극의 내용은 시민의 사고와 담론화를 통해서 공공적 현실에 적용되었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신화의 끊임없는 재해석과 비극의 재탄생은 시민들에게 영웅의 삶을 통해 발전한 삶을 도모하도록 하는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기능까지도 하게 되었다.그리스 3대 비극 작가(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각각 뚜렷한 문학적 특징을 갖고 있다. 각자가 그리스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과 인본주의적인 해결방법은 비극의 내용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인간의 투쟁을 소재로 싸움을 겪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의의 성취를 토대로 사회의 ‘ 하지만,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이 사건으로 인해 원한을 품게 된다.4. 비극1) 아가멤논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아가멤논』은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을 시작하는 비극이다. 3부작은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세 작품은 아가멤논이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후 전쟁에서 돌아와 아내로 인해 죽고,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자식들에게 심판을 받은 후, 자식인 오레스테스가 재판을 받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가멤논』은 그중에서 아가멤논이 트로이아로부터 돌아와 클뤼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죽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아가멤논』은 파수병이 봉화를 통해서 그리스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함을 알게 되어 기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코러스거룩한 아르테미스님은 아버지 신의 날개를 단 개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으니 / 가엾은 토끼를 그 뱃속에 든 새끼째 / 출산 전에 잡아먹은 까닭에 / 역시 독수리들의 향연을 증오한다. / 가없어라, 하지만 행운이 이길 수 있도록 해 주소서 (그리스 비극, 56p)일반적인 문헌에서는 아르테미스의 분노가 사냥대회에서 사슴을 잡고 “아르테미스 여신도 이러한 사슴은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아가멤논의 탓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문헌에서는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숲에서 사냥을 해서 분노를 샀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는 코러스를 통해 아르테미스의 분노가 가엾은 토끼를 새끼째 출산 전에 잡아먹은 독수리의 향연 때문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이스킬로스는 아가멤논이 신에게 행한 잘못을 없애는 방식으로 그의 비극적 결말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코러스바로 그 무렵 / 무서운 폭풍을 피하는 방법을 / 아르테미스 신을 증인으로 점술가가 / 선언한 것이었다. (중략) 어쨌든 국왕은 아내의 원수를 갚으려는 / 싸움을 도우며, 또한 배를 나아가게 하기 위한 / 첫 희생물로 자기 딸을 죽이는 자가 되려고 / 하셨다. (그리스 비극, 59-60p)코러스는린 목소리로) 어머나, 이 무슨 일을.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가...무슨 이런 참혹한 짓을 / 엄청난 재난을 이 궁중에서 꾸미고 있는가.혈육 사이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다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짓을. 구원은 훨씬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그리스 비극, 89p)또한, 카산드라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꾸미고 있는 살인 음모를 예언한다. ‘이 궁중’에서 꾸미고 있는 ‘엄청난 재난’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복수가 죽음으로 끝날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군중들은 예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폴론의 저주가 그녀의 설득력을 앗아갔기 때문이었다.카산드라는 이후 자신도 죽을 것임을 이미 알고 궁 안으로 들어간다.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아가멤논』에 나오지 않는다. 치명타를 입었다는 대사 후, 죽은 아가멤논과 카산드라가 나타난다.클리타임네스트라 : 이분과 나와의 사이에서 자란 어린아이 아무리 슬퍼해도 시원치 않은 이피게네이아에게 그런 짓을 했으니, 그 당연한 보답을 받았다고 해서 결코 황천길에 내려가 큰소리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그리스 비극, 104p)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피게네이아를 앗아간 것에 대한 원한으로 아가멤논을 죽였음을 말한다. 『아가멤논』은 응징과 복수의 서사이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반복적으로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이름을 거론하며 아가멤논에 대한 자신의 응징이 정당했음을 설명한다. 이후 등장한 아이기스토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정부이다. 아이기스토스는 아가멤논의 사촌으로, 아가멤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품고 있었으며 대사를 통해 아가멤논 가문의 잔혹성에 대해 이야기한다.아이기스토스 : 우리에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지. 마침내 조상들이 저지른 음모의 보상을 할 처지가 되었으니. (중략) 하지만 신을 두려워 않는 이 사나이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는, 아버지에게 아주 친절한 접대를 하여 희생물을 잡고 고기를 바치는 축제를 지극히 성대하게 베풀면서 자식들의 살점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권했다. (중략) 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그 재난은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를 부릅니다. (그리스 비극,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19p)에리니에스는 3자매로 이루어진 복수의 여신이며, 살인자나 패륜을 저지른 사람을 고문을 통해 벌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모두 오레스테스가 에리니에스로부터 고문당할 것을 우려하는 대사를 포함한다.『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함께 궁전 문을 두드려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자신들이 오레스테스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나그네라고 속인다. 정체를 숨기고 궁 안에 들어간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는 궁 안에서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뒤이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려고 한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은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오레스테스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유방을 들이대며 동정을 유발하는 모습을 처절하게 담아냈다. 나는 너를 길렀다. 함께 살며 늙어가고 싶구나. 하며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노력에도 오레스테스는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고 예언대로 아폴론의 신궁으로 향하려 한다.오레스테스 : 그리고 이런 행위를 하게 만든 원인, 촉진제가 되었던 것은 델포이의 예언이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소, 그 말씀에는, 내가 비록 복수를 해치울지라도 심한 벌은 받게 되지 않으리라는 분부였소. (그리스 비극,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48p)올리브 나뭇가지 관을 쓰고 아폴론의 신궁으로 향하는 오레스테스는 그 과정에서 복수의 여신들의 환상을 보기도 하였다. 이후 이어지는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에서 오레스테스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진다는 면에서 문제 상황을 대할 때, 사회 정의적 관념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과 달리 오레스테스의 늙은 종이 등장한다. 늙은 종, 필라데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 묘에 제주를 붓는 장면을 통해 등장한다. 이들이 무대에서 나가고 엘렉트라가 다음으로 등장하여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엘렉트라 : 지금의 내 마음에 어울리는 것은난다.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교과목: 윤리학입문###※제목 : 플라톤의 관점에서 본 비도덕주의의 해법과 정의의 함의 - 플라톤의 속 아테네 민중의 통념을 중심으로1. 플라톤의 와 비도덕주의의 정의서양 철학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플라톤은 답으로써 를 제시했다. 현대인에게 정의의 의미는 무엇인가? 현대인들에게 정의란 상투적인 관념일지도 모른다. 에 등장하는 아테네 민중들이 반도덕과 타협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현대인이 견지하고 살아야 할 정의를 재정립하기 위해, 속 인물들의 ‘비도덕주의’에 대해 알아보고 그에 대한 플라톤(혹은 소크라테스)의 답을 통해서 비도덕주의의 답으로서의 ‘정의’에 대해서 탐구해보고자 한다.‘비도덕주의’란 전통 윤리에 대해 반도덕적인 입장으로, 도덕에 대한 회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속 아테네 민중들의 큰 특징이 바로 비도덕주의적 성향이다. 이들은 도덕이 인습에 불과하며 절대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소피스트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띈다. 이는 우민 선동과 중우정치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플라톤은 이를 아테네의 몰락이라고 칭했다.)2. 속 아테네인의 비도덕주의와 플라톤의 해법 속 비도덕주의를 띄는 인물 중 세 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는 폴레마르코스이다. 폴레마르코스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적에게 해악을 주고, 친구에게는 잘해주는 일이 옳음을 주장한다. 이 주장은 잘못을 시정하고 정당하게 분배하는 일을 옳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통념을 보여주지만, 남에게 해악을 주는 일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갖는다. 소크라테스는 판단 오류의 가능성을 지적하고,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에서 소크라테스가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것도 앙갚음으로 올바르지 못한 짓을 하는 것도 해를 입힘으로써 방어하는 것도 결코 옳지 못하다.”라고 말했던 것과 같다.두 번째, 트라쉬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입장을 펼쳤다. 지배계층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제정하고 이탈 시 처벌을 한다는 논거였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에 반박한다. 치자가 실수를 할 경우 치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으며 치자는 통치에 있어서 피치자의 최선의 상태를 고려하기 때문이다.세 번째, 플라톤의 형인 글라우콘은 불의를 행함으로 생기는 이익보다 불의를 당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시민들은 자기보호책으로써 법을 제정하게 된다는 주장을 한다. 글라우콘은 법을 약자 타협의 산물이라고 본 반면, 트라쉬마코스는 강자의 이익 실현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의견이 갈린다.이들은 강자의 행동(악행)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과정보다는 결과 중심적인 관점으로 불의의 이득에 대해 논하는데, 불의는 늘 이득을 불러오는가?
신화와 철학(1539) 기말고사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 현대사회에의 시사점과 의의###*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와 그리스 신화가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시오.고대 그리스인에게 신화는 세상을 설명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었다. 그리스 신화는 신과 그들의 신성을 통해서 세상이 운영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고자 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신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들은 크게 다섯 가지로 범주화된다.첫 번째는 자연 현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과학 지식의 부재로 그들을 둘러싼 자연 현상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없었다. 신화는 이들에게 자연 현상에 대한 근거로서 작용했다. 하데스에게 납치된 후 그와 혼인하여 지하세계에 살게 된 페르세포네와, 자신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볼 수 있는 1년의 반 동안만 농작물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농업과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의 이야기는 농작물의 결실이 일정 기간에만 맺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아름다운 청년 아도니스에 매료되어 그를 두고 다퉜다는 페르세포네와 아프로디테의 이야기는 땅속에 있던 씨앗이 봄이 되어 땅 위로 자라 나와 열매를 맺는 식물 생장의 신비를 설명한다. 또, 디오뉘소스를 통해 손에 닿는 모든 것이 금으로 바뀌는 능력을 갖게 된 미다스가 팍톨로스 강에 손을 씻고 능력을 떨쳐낸 것을 통해 사금이 생성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신에 대한 일화와 신성으로 일어난 인간 사이의 일을 통해서 납득하기 어려운 자연 현상에 대해 이해하려고 한 것이다.두 번째,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통해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세대교체’ 대목은 제우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이 정권을 잡기까지 티탄 신들, 거인족, 튀폰과의 대결을 보여준다. 이는 북방의 집단이 남하하면서 행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설명이었다. 또한, 헤라클레스가 게뤼오네우스의 소 떼를 몰고 오는 시험에서 리비아 연안을 따라 서쪽으로 갔던 것은 자신들의 서방 원정을 정당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헤라클레스가 오이노에에 사는 사슴을 잡기 위해 1년을 뒤쫓아 북쪽으로 이스트로스 강을 건너 히페르보레이오이 족이 사는 곳까지 간 내용은 북방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였다고 해석된다. 그리스인들은 신화에서 영웅과 신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들이 행한 정복의 과정을 설명하고 미화했다.세 번째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그들의 기술 발전과 교류의 역사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과 지혜를 훔친 형벌로 낮 동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고, 밤 동안에는 간이 재생되는 벌을 받았다는 내용은 당시 그리스인들이 간의 재생력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음을 설명한다. 또, 헤라클레스가 강의 신 아켈로오스와 데이아네이라를 두고 혼인을 위해 싸웠다는 이야기와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치우는 시험에서 강을 끌어와 청소했다는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사회가 어느 정도의 치수 사업을 할 수 있었음을 설명했다. 이처럼 신화의 내용은 고대 그리스인의 기술 발전의 정도를 보여준다. 또한, 신화에서는 그리스인의 교류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디오뉘소스의 신화 중, 디오뉘소스가 헤라를 피해 뉘사 산에서 키워졌다는 것은 그리스와 인도의 교역을 설명하고, 디오뉘소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아시아, 인도의 이야기는 이웃 나라와 문화 교류를 시작한 당시 그리스를 보여준다.네 번째는 그리스의 영웅상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영웅들을 통해서 인간 정신의 탁월함과 위대함을 드러냈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들은 강인한 신체와 비범한 지성을 통해 문제들을 용감하게 해결한다. 또한, 영웅들은 인간적 자의식의 표출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에게 비등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거나, 인간의 도움이 있어야만 승리한다고 전제된 신들의 세대교체 기간은 영웅을 통해 인간의 자의식이 고양된 상태임을 보여주기도 했다.마지막으로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윤리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에 대한 도전이나 기만을 통해 참혹한 결말을 맞는 인물들이 있다. 아폴론을 거짓말로 기만한 카산드라나 본인이 아테나보다 실을 잣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한 아라크네, 아르테미스 여신도 이런 큰 사슴은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망언을 한 아가멤논 등은 전부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은 세계이고 자연이다. 앞선 예시들은 자연을 능가하려 하며 거만한 태도를 보인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겸손과 선의 미덕을 갖춰야 함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다.
2020 1학기 기말고사 성윤리와 철학(1779)장애인 성 도우미를 통한 성 서비스에 대한 윤리적 고찰- 장애인 성 도우미를 통한 성 서비스(성 자원봉사)는 윤리적으로 옳은가?###목차Ⅰ 서론Ⅱ 본론1. 장애와 섹슈얼리티 ··················································· 장애인 섹슈얼리티에 대한 법적 보장과 실제2. 외국의 장애인 성 서비스 사례 ·································· 성 도우미의 정의 / 네덜란드와 독일의 예시3. 장애인 성 도우미에 대한 윤리적 평가 ························ 성적 욕구 / 성의 수단화 / 성적 자율성 / 사회 해악성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성(性)이란 무엇인가? 성은 보통 하나의 정의로 규명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출산을 위한 욕구, 누군가는 신체적 쾌락, 누군가는 접촉을 통한 만족으로 성을 개념화한다.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성은 어떤 의미일까? 성은 공평한 개념이 아니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성적 향유에 대해 선택할 권리를 사회적 편견에 의해 박탈당하고 있다. 성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 본능적이고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사회 복지적 접근에서는 장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결혼과 출산권에 대한 법률적 보장을 통해 권리적 결핍을 해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성의 향유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또한, 장애인 성 문제를 사생활의 문제로 전가하고 방임한다. 장애인은 통념상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겨진다. 또한, 장애인의 신체적·정신적 제약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장애인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규정화하고 일상과 더불어 그 안의 성적 향유에 대해서도 만연한 차별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성에 대해 타자화되고 비주체화되었다.외국에서는 장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 실현을 위해 복지 차원에서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성매매가 합법화인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 외국의 장애인 성 향유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들을 짚어보고, 이를 기반으로 윤리적 논의를 확장할 것이다.Ⅱ 본론1. 장애와 섹슈얼리티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있어서 성 문제는 해결이 시급하지만, 담론화하기에 어려운 문제이다. 장애인의 경우 성적으로 과잉될 것이라는 선입견이나 욕구를 상실했을 것이라는 편견은 장애인을 성적 권리로부터 동떨어진 존재로 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많은 성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서 성에 대한 경험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사회가 장애인들의 성적 권리 보장에 대해 회피해 온 결과일 것이다.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장애인에게 있어서 교제와 결혼 또한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들은 친밀한 관계를 통한 성적 표현과 욕구 충족에 난항을 겪는다. 자위행위마저 어려운 중증 장애인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괴로움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하고 있다.성적 결정권은 천부적 인권으로서 보장되는 권리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경우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민국 법률 제9705호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의 제7조 자기결정과 선택권, 제29조 性에서의 차별금지 등 조항에는 장애인이 성적 권리를 존중받고 성을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성적 결정권을 보장할 실질적인 대책은 논의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장애인들은 성적 문제에 대한 지원의 부재로 야기되는 문제들을 사회의 도움 없이 홀몸으로 맞서고 있다.2. 장애인 성 도우미장애인 성 도우미란 일반적으로 스스로 성욕을 해결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을 돕는 행위를 뜻한다. 신체적 장애로 인해 제대로 된 성관계를 가질 수 없거나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돕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성 도우미는 봉사자가 직접 성관계를 맺거나, 장애인 부부의 성관계를 돕는 등 다양한 형태로 성행위를 보조한다. 또한, 운영에 따라 금 취지에서 설립되었으며 대부분이 남성 이용자들이다. 장애인 가정방문 서비스에 관여했던 사람이 성 서비스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별도 사업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독일에서는 매춘을 중계·알선해주는 섹시빌리티즈 베를린(Sexybilities Berlin)라는 비정부기구(NGO)가 성 서비스를 운영한다. 섹시빌리티즈는 장애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연결해주고, 장애 인식개선을 위한 행사나 워크샵도 진행한다. 이런 별도 기구 외에도 독일의 성매매 여성 연합회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홍보도 한다고 한다.장애인 성 도우미는 장애인의 적극적 성적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자 만들어진 개념이다. 적극적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성적으로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를 뜻하는 소극적 성적 결정권보다 나아간 차원으로, 성적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할 자유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 형태에 대해서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3. 장애인 성 도우미에 대한 윤리적 평가장애인 성 도우미를 통한 성 서비스는 단면적인 윤리적 층위에서 논의하기 어렵다. 관련된 가치들이 끊임없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성 가치의 교환은 일반적인 성 윤리 담론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장애인의 적극적 성적 결정권을 보장하고자 등장한 개념이지만, 여성주의적 측면에서(도우미가 주로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 도우미의 성적 결정권은 보장되었는지에 대해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서비스가 제공하는 바, 그리고 장애인이 서비스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에서 인격의 내밀한 부분인 ‘성(性)’의 교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입장의 차이를 가진다.본 리포트에서는 장애인 성 도우미 활동에 대한 찬성 입장에서, 반대 입장의 논거에 대한 타당성을 윤리적 근거를 토대로 검토하고 반박할 것이다.1) 성적 욕구의 충족 필요성장애인 성 서비스의 윤리성에 대한 철학적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성적 욕구의 충족 필요성’에 대해 먼저 논의해야 한다. 성매매와 관련된 윤리적 논의에서 ‘성적 욕구가 기본적 욕구이며 충족해야 경우 성적 권리를 행사할 방법이 없다. 성적 향유는 기본권이며 인권으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신체적 어려움으로 이 권리를 아예 향유하지 못하는 계층이 있다는 것은 보조적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포할 수 있다.2) 성의 수단화 문제성 도우미를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측은 성 서비스를 제공하고 보조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물상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이는 칸트주의를 토대로, 신성한 인격의 표현인 성을 도구화하고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또한,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성 도우미가 여성의 성을 통제하고 수단화, 착취하며 성적 쾌락의 수단으로 전락시킨다고 본다. 성 도우미가 성행위를 보조하거나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신체를 수단화하는 것인가? 이러한 입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성 도우미가 성행위에 직접 참여하거나 보조하는 과정에서 성 도우미의 신체는 성행위를 위해 이용되거나 도움을 위한 용도로 쓰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성 도우미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판단을 도출하기에는 부족하다.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몸이 도구화되는 것은 빈번하다. 자유주의적 논점에 따르면, 성적 서비스와 일반 서비스 노동은 다를 바가 없다. 청소부는 청소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수단화하고, 사무직은 업무를 위해 자신의 뇌를 물상화한다. 여성주의의 주장이 윤리적 함의를 얻기 위해서는 성 도우미의 성이 성을 보조하는 과정에서 자율성을 잃는다는 입증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다음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3) 성적 자율성의 문제장애인 성 서비스가 성 도우미의 성적 자율성을 훼손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성에 대한 담론에서 참여자들의 자율성에 대한 담론은 중요하다. 성은 대상들이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든, 주고받는 행위라는 점은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그 행위에서 사회 체제적인 강제나 착취가 개입하며 이로 인해 불평등에 기여한다면, 윤리적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여성주의자들은 장애인 성 서비스를 통적으로 성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선택하고 충분한 동의에 기반했다고 하더라도 그 근간에 있는 사회적 강압과 성적 착취에서 분리할 수 없다.하지만, 이런 여성주의의 입장은 여성을 과도하게 타율적인 존재로 본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 장애인 복지 차원의 성 서비스는 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 장애인 성 서비스는 자본의 개입이 없거나 현저히 적다. 금전적 보상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매우 적은 양이다. 또한, 금전적, 생존적 이유에 의해서 내몰리듯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4) 사회 해악성의 문제장애인 성 서비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성(性)’의 영역이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제공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은 민감하고 개인적인 문제이며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성적 차원을 봉사로 제공하는 것은 성적 만연과 문란을 조장하며 보수적 법제 체제인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봉사로서 성을 제공한다는 것은 분명 낯선 개념이다. 자원봉사활동 기본법에 따르면, ‘자원봉사활동’이란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ㆍ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봉사활동을 통한 노동으로서 ‘성’이 제공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으냐에 대한 것이다.나는 이에 대한 근거로서 마이클 왈쩌(Michael Walzer)가 자신의 정의론에서 펼친 ‘복합평등론’의 개념을 빌리고자 한다. 왈쩌는 구체적이고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에서의 정의를 구상하며 각 영역에 타당한 원칙들로 분배의 원리를 적용한다. 또한, 이것의 원리로서 ‘복합평등성’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 ‘자유 교환’, ‘응분의 몫’, ‘필요’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 이론에 비추어보면 성적 자원을 자원봉사로써 제공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왈쩌의 정의론에서 사회적 재화는 사회적 관계의 매개체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재화의 의미를 어떻게 공유하는지에 따라서 분배의 기준과 방식이 정해진다. 이 이론것이다.
2020년 1학기 중간고사 성윤리와 철학(1779)성이론과 성윤리에 대한 고찰- 주디스 버틀러의 언어적 수행성과 성적 자율성 논의를 중심으로###1. 성에 관한 진화심리학 혹은 사회구성주의 중 어떤 입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되는가?성이란 무엇인가? 성이론에 대한 내용을 전개하기 전에 성의 의미를 규정해보자. 성이란 성적 활동, 성욕, 성적 관심, 성적 의도를 통칭하는 개념 용어로서 쓰인다. 이에 대한 많은 논의들은 두 가지 학술적 관점-진화심리학과 사회구성주의-으로 나뉘는데, 이들에 대해 논하고 내가 지지하는 주장(사회구성주의, 버틀러)을 관철하는 것이 리포트의 목적이다.먼저, 진화심리학(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본 성에 대한 설명이다. 진화심리학은 진화론적 메커니즘에 따라 궁극적(ultimate)으로 ‘왜’ 우리가 성적 활동을 선택하는지, 성적 특성을 띠게 되는지 밝힌다. 인간은 유기체적 특성에 의해 번식 상의 이득을 좇고, 종의 생존가능성을 증대하기 위해 성적 행동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는 점이 이 입장의 설명이다.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성 선택은 성 선호나 성내 경쟁 또한 성 선택 과정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여성의 경우 크고 활동성이 적은 번식 세포를 가지며, 출산의 부담이 있기에 그 과정에서 대신 자원을 확보(몸집, 힘 등 조건)하고 양육(헌신, 지원 등) 조건을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는 남성을 찾게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에 의한 성 이론은 한계를 가진다. 첫 번째로, 목적론적 어법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과학적 질서에 따른 결과론적 논점이 진화심리학적 논점의 장점이었는데 반해, 진화심리학은 목적론적 어법을 설명에 사용하며 암묵적으로 저의 방식이 옳다는 윤리적 입장을 내재하게 된다. 두 번째, 진화론이라는 관점 자체가 지닌 물질적 증빙 부족이다. 실험으로 입증이 어렵기에 통계를 주로 이용하지만, 유의미한 메타 분석을 실현하지 못하고 성차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마지막은 진화심리학이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와 같은 소수의 성 정체성과 성인지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안 러프가든이 에서 다윈의 성 선택론을 수정하며 동물과의 유비추론과 호르몬 해석으로 다양한 지향성의 형성 과정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형성 이후의 성 선택에 대해서는 그저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함을 주장할 뿐이라 찝찝함을 남긴다.사회구성주의는 반대로 사회적 구조, 작용을 기반으로 하여 성을 설명한다. 사회구성주의 하의 여성주의적 관점은 섹스에 부여된 성 역할, 성향 등이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었다는 관점으로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찬양에 대한 종식을 요구하며 성적 편향을 비판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은 섹스의 자연성을 전제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섹스는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성적 실재를 무엇을 통해 규명되는가? 버틀러는 ‘언어적 수행성’이라는 개념을 들어 사회 지배적인 언어 담론에 의해 성이 구조화되고 행위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며 이를 설명한다. 생물학적 성의 경계를 부숴 다양성을 포용하고 인터섹스나 트랜스젠더 등 특정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여성주의 담론에서 진행해온 사회 구조의 억압을 무화시키고 대상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젠더 문제와 관련한 억압의 대상인 여성은 어떤 범주인가? 이들이 말하는 여성 집단은 사실상 사회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말한다면 젠더 관계를 규제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대안책으로 ‘여성 없는 페미니즘’을 주장할 수 있다. 여성이라는 범위를 규정하지 않고도 페미니즘은 가능하다는 것이다.버틀러의 사회구성주의는 여태까지의 성 담론 자체를 허구화시키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서 배제되고 사회 속 비존재로서 존재했던 다양한 성을 포용하고 이들의 성을 윤리적 담론으로까지 이끌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니기에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2. 성도덕에 관한 보수주의, 자유주의, 여성주의 입장 중 어떤 입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되는가?성은 필연적으로 윤리를 수반한다. 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려되는 문제들은 대개 상호성(일대다, 다대다 등)을 가지기 때문이다. 성윤리란 특정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성행위를 칭한다. 학자별로 입장 차가 크게 있지만, 수업에서 다룬 3가지의 범주(보수주의, 자유주의, 여성주의)의 정의와 한계를 논하고, 가장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자율성 중심의 성윤리에 대한 입장을 공고히 할 것이다.먼저, 보수주의는 섹슈얼리티가 출산의 수단이라는 고전 목적론의 입장에서 주장을 전개한다. 보수주의에 대해 자주 거론되는 아퀴나스는 자연법칙론에 입각하여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혼외정사, 사정, 자위행위 등을 전부 반자연적이라고 칭한 바 있다. 하지만, 성기의 목적, 성행위의 목적을 묻는 것은 본질로부터 당위를 끌어내는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또,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등의 보수주의는 쾌락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는 것이 현대사회에 적용되기에는 독단적 입장으로 읽힌다. 칸트의 경우, 섹슈얼리티가 인격을 수단화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섹슈얼리티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이는 섹스 자체가 지닌 호혜성으로 극복되는데, 이를 부부 관계로 한정했지만 부부간 섹스와 혼외 섹스의 도덕적 차이 규명이 분명치 않다는 게 난점이다. 스크루턴은 칸트와 달리 사랑과 헌신이 있는 섹스는 옳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섹스는 인격을 파편화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다시 칸트의 주장을 일부 빌려 논박할 수 있다. 성관계는 인격의 양도라기보다 통제권을 유지한 상태에서의 교환이기 때문에 호혜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옳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다.다른 견해로서, 여성주의를 들 수 있다. 여성주의에서는 입장에 따라 성애에 대해 극명히 다른 입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일견 여성에 대한 억압을 타파하는 목적을 갖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급진적-자유의지론적 입장에 따르면 신체 구조로 인해 이어지는 억압에 대하여 생물학적 발전(인공 태반 등)을 통해 여성을 해방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여성의 신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오히려 여성을 신체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급진적-문화적 여성주의에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 통제력을 돌려받는 방법으로써 섹스 거부와 정치적 레즈비어니즘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오히려 부드럽고 친밀감 있는 행위로 고립시키고 섹스 행위를 재서열화하는 방식으로서, 가부장 사회를 떼어내는 행위라기보다 도망치는 것으로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여성주의는 여성해방을 위한 성적 대안을 찾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한계 짓고, 되려 억압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자유주의에 입각한다면, 여성주의의 문제점을 일부 타파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성적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고, 기만과 강제가 없는 성을 위해 자발적·숙지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쾌락 중심적 자유주의의 경우, 섹스의 목적이 쾌락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상 모든 섹스의 목적이 쾌락은 아니라는 점이 이 주장의 한계를 보여준다.(예: 출산을 위한 쾌락 없는 섹스) 여기서 자유주의 원리에 입각하여 성적 행위의 목적을 비워내는 시도를 통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데 이를 자율성 중심의 자유주의 성윤리라고 한다. 현대사회와 같이 피임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서 섹스는 개인이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수행된다는 것이다. 해악 금지의 원칙과 자율적 합의의 원칙이라는 전제하에 인간은 자신의 섹스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위해 성행위를 하게 된다. 물론, 이 전제들에 대하여 자의적 해석의 우려가 있지만 롤즈의 최소수혜자 원칙을 도입하여 일견 해결할 수 있다. 성권력을 계급화했을 때에 최소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을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에 있어서 분배 정의 개념을 갖고 오는 것이나, 약자 계층에게 있어서 자의적 선택이 암묵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고, 성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생기는 윤리적 판단의 모호성에 대해 한계가 여전히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다양성과 존중의 논리가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성을 일정한 규범에 귀속하지 않고 다양한 논의의 장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자율성 중심의 성윤리 해석은 성의 가치에 대해 다시 성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