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중화민족에 대한 위구르족과 조선족의 대응 차이를 중심으로1. 서론2. 중화민족의 개념과 목적3. 위구르족의 역사와 문화3.1 중화민족에 대한 위구르족의 인식, 태도3.2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4.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4.1 중화민족에 대한 조선족의 인식, 태도4.2 조선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5. 결론6. 참고 문헌1. 서론중국은 인구 데이터상 90%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한족과 그 외 10%가량의 비율에 해당하는 55개의 소수민족 구성으로 알려진 나라이다. 이러한 인구적 비율에서의 차이는 비(非)한족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한족 위주의 나라인 '중국인'에 속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고, 이에 통치 안정성을 꾀하던 중국 지도부는 '한족', '장족', '위구르족', '조선족' 등과 같은 기존의 명칭 대신, '중화민족'이라는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가상적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이에 모든 한족을 포함한 중국 경내의 민족들은 '중화민족'이라는 이름 하에 하나이며, 개별 민족의 고유 문화가 모두 '중국과 중화민족의 문화'라고 선포한다. 이는 한족의 지배적인 문화 체제 대신 '모든 문화가 동등하게 존중된다'고 보여질 수 있고, 또 문서상으로는 그러한 '민족평등'을 표방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비(非) 한족의 문화를 한족의 문화로 왜곡시키는 일종의 '한족화'를 꾀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최근 중국은 이러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과 소수민족의 문화와 관련하여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른바 동북공정의 사례는 그 폐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 하에 통일성을 꾀하려던 중국 정부의 정책에 일부 소수민족의 경우 저항하며, 또 다른 일부 소수민족의 경우 중화민족의 개념을 기꺼이 수용하기도 한다. 본 보고서에서는 그러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소수민족'들의 태도 차이를 '조선족'과 '위구르족'을 통해 짚어보며, 그러한 태도가 도출된 원인을 문화〮역사적으민족으로 하여금 독립의지를 버리게 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즉, 같은 정신적 유대감을 통해 중국은 통일된 나라이며, 통합을 상징한다는 것이 중국(한족)이 바라는 지향점이자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중화민족'개념을 앞세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포섭 시도는 일부 민족의 경우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나,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했다. 본 보고서에서는 위구르족과 조선족을 각각의 사례로 들어 그 원인에 대하여 분석해 보고자 한다. .3. 위구르족의 역사와 문화서구적인 이목구비, 위구르 언어를 사용하며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족이 사는 지역, 중국 북서부에 위치한 신장웨이우얼자치구(新疆维吾尔自治区)는 삼장법사로 알려진 당나라 승려 현장이 인도로 불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거쳐 간 '서역'의 일부이자,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곳이다. (정숙영, 2019)신장 위구르 지역이 본격적으로 중국의 역사로 들어오게 된 건 1759년 청나라 건륭제에 의해 정복당하였을 때다. 이전까지는 현재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를 포함한 해당 지역 일대에 튀르크족이 분포해 있었으며, 744년부터 843년에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몽골 지역 일대에서 위구르 제국을 건설하여 전성기 때에는 당나라의 내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대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후 키르기스족에 멸망당한 후 위구르인들은 주변 지역에 간쑤 왕국, 이디쿠트 왕국, 카라카니드 왕국 등을 세웠으나 13세기무렵 몽골에 복속되었다. 1757년 청에 의해 준가르가 멸망하자 몽골인의 지배가 무너진 것을 확인한 당시의 "호자"들은 독자적 정권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이미 자신의 영토로 선포한 청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30만 명 정도의 인구와 내부분열로 인해 청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그렇게 청의 지배가 시작되었는데, 청은 제국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킨다. 그러나 이에 들어가는 유지비용 문제로 인해 새로운 개간지를 확보하거나 농업개발을 시도하였고, 세수증액, 광얼마 못 가 중국에 강제 병합되었다. 반면 중국의 경우 튀르크인의 지배를 받던 위구르족이 지배층의 언어인 튀르크어를 빌려 썼을 뿐, 그들의 조상은 북방 유목 부족 중 하나인 위홀족이며, 위구르 제국이 멸망한 후 훗날 다른 한족과 섞이게 된다고 중국은 주장하고 있다.3.1 중화민족에 대한 위구르족의 인식, 태도신장웨우얼지역의 경우 해당 지역에서 언론인의 활동이 금지되고, 또 중국 본토에서도 높은 강도의 언론 검열이 시행된다. 이러한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중화민족'에 대해서 어떻게 위구르족이 인식하고 있는지,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으며, 이 부분은 현재까지 언론이나 해외 서적에 기록된 일부를 토대로 추론해보고자 한다.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세뇌당하지 않은 위구르인'의 대다수 경우 '중화민족'개념을 비롯하여 '중국'에도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비단 대한민국 언론뿐 아니라 BBC, CNN 등을 비롯한 해외 유력 언론 매체의 방송 보도자료와 관련 기사들에서 위구르족의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위 자료는 2018년 12월 13일부터 2021년 12월 13일까지 3개년간 대한민국 언론에서 '위구르' 관련 4,545개 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를 나타낸 워드클라우드이며, 언급도 순으로 20위까지 정렬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정렬 결과를 두고 볼 때, '위구르'와 연관되어 기사에서 언급된 키워드 중에서는 ('중국'과 같은 일반적인 키워드를 제외하면) '수용소', '인권 탄압', 인권 침해', '인권법', 강제노동', '이슬람 소수민족',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탄압 논란' 등이 있다. 수많은 국내외 언론매체 기사에서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을 문제삼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을 볼 때, 위구르족은 역사적 맥락으로 보나, 그들에게 이미 존재해 왔던 독자적인 민족 개념으로 보나, 인권 탄압 논란으로 보나 중화민족에 대한 동질감이나 중국에 대한 소속감은 거의 없을 것atch?v=WmId2ZP3h0c)에서는 부자연스럽게 굳은 얼굴로 춤을 추고 공산당 찬양 노래를 부르는 위구르족을 인터뷰한다.4. 조선족의 역사와 문화조선족의 조상은 넓게 보면 고조선 시대로 올라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부터, 이후 고구려와 발해 유민, 고려 말에 요동에 올라가 살던 사람들, 병자호란 때 끌려가 중국에 정착해 산 사람까지 볼 수 있지만, 본 보고서에서 언급하는 조선족은 주로 19세기부터 한반도에서 이주한 이들로 규정한다.오늘날의 중국 내 조선족은 서기 19세기 중엽부터 2차대전 종전 시까지 경제적 어려움 및 정치적 이유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다수의 한반도 주민들이 한만(韓滿) 경계를 넘어 동북 지역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즉 19세기 중엽 이전부터 조선왕조의 가난한 변경주민들이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당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국경선인 압록강 및 두만강을 건너 당시 만주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1865년 청 왕조의 만주일대에 대한 봉금령(封禁令) 해제에 이어 1869년부터 몇 년간 지속된 한반도 북부의 대규모 자연재해에 의한 대흉작 등의 영향으로 당시 한반도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는 조선인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연변 지역을 중심으로 하나의 민족 공동체를 형성하였다.1910년 한반도 지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 정부는 이민계획을 세워 다수의 조선 주민을 중국 동북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한편, 일제의 압제를 피하려는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다수의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한반도에서 동북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였다. 동북 지역의 조선족은 1920년대 이후 치열한 항일투쟁을 하였으며 1945년부터 1949년까지의 국공내전 기간 중 공산당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가 해방이 되자 많은 한인(韓人)들이 다시 한반도로 돌아갔지만 중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대다수가 중국 국적을 부여 받고 중국 국민이자 중국 르족과 조선족 각각의 역사와 오늘날 '중화민족의 역사'와의 접점, 또 각각을 살펴 보며 오늘날 중화민족 및 중국에 대한 소수민족의 인식과 그러한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이 역사적 맥락에 의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구르족의 경우 중국 본토의 역사와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역사와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었고, 청, 오늘날의 중국과 같은 '중화민족 국가'와 거듭 충돌하며 정책적으로 탄압 받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였고, 한편 조선족의 경우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며 비슷한 정체성의 형성으로 중국 내 소수민족 중에서도 정책적인 이점을 많이 취했다는 점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이러한 중국의 정책적 행보가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 입장에서는 이미 '민족'을 기초로 하는 또 다른 차별이며,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통해 타민족의 문화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나 문화로 편입하고자 자행하고 있는 일부 안타까운 현실을 통해 그 한계점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6. 참고 문헌費孝通(1989). 中華民族的多元壹體格局, 北京大學學報, 1989(4), 1-19.중국이 싫어하는 말, 정숙영(2019)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하버드대학 중국연구소(2018)Matthew Hill, David Campanale and Joel Gunter, 2021-2-2, 'Their goal is to destroy everyone': Uighur camp detainees allege systematic rape, BBC, https://www.bbc.com/news/world-asia-china-55794071Joel Gunter, 2021-12-10, China committed genocide against Uyghurs, independent tribunal rules, BBC, https://www.bbc.com/news/world-asia-china-59595952Man Sum Lai, 2021-12-11, US Olympic boycott: Uyghurs and Ho는 중국
나의 '나', 너의 '나''나'는 나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 나는 이것이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배우에게 비춰지는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와 같은 관계로 느껴졌다. 우리 각 개인은 무대 위의 배우이고,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우리의 앞면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우리의 외면이자, 그림자가 진 뒷면은 타인들이 앉아있는 객석에서는 비춰지지 않는 마치 우리의 내면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외면과 그렇지 않은 내면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고 생각한다.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들은 그 어떤 존재보다도 정직하게 자신의 기분이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아기들의 표정을 보면, 한 치의 거짓 없이 조금의 예민한 감정 변화마저 느낄 수 있다. 반면 우리는 이러한 내면적인 투명함을 진작에 잃은 듯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살아가기 마냥 쉽지만은 않은 사회에서, 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얽히고 설켜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서 자신의 외면과 내면 사이의 간극을 점차 벌려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내면이 투명하게, 투영된 듯이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어린 아이의 눈망울과는 달리, 어느덧 성인이 되어버린 우리의 눈에서는 때로는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즉, 우리는 이제 일반적으로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하거나 판단할 때도,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생김새, 말 등의 겉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외적 측면에 의지하여서 판단하게 된다. 자기 자신이 아닌 타자가 자신을 평가하게 되는 경우에, 평가당하는 자기 자신이 자신의 내면 상태에 대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은 그 사람의 (순간순간의 심리적 변화까지 포함하는)내적 측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오직 외적 측면에 의지하여서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베스트 프렌드', 혹은 '소울메이트'와 같은 절친한 친구의 경우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내면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반면 자기 스스로 자신을 평가, 또는 정의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외적 측면으로 드러난 단적인 부분들을 넘어 상대방이 모르는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도 고려를 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나'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나의 내면 상태와 외면 상태가 일치되는 경우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상당 부분 공통될 것이라고 본다.영화 에는 다음과 같은 독백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3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사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가족이나 친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모두 '완벽한 타인'으로 볼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사람의 외면성과 내면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누구든 나와 다른 타인이 될 것이며, 내가 인식하는 나와 그 타인이 인식하는 나 사이에는 차이점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 현황과 이념 그리고 문제점*목차 1. 들어가는 말2. 오늘날 일대일로 정책의 이념3. '해양강국' 건설 목표와 분쟁지역에서의 충돌 문제4. 일대일로 협력국의 부채 증가 문제5. 자국 문화상품 수출에 중점을 둔 문화 교류 구조 문제6. 맺는말* 1. 들어가는 말고난했던 20세기 초중반의 풍파를 버텨내고, 21세기에 들어 중국은 다시금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국가로 거듭났다.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브대학의 강연에서 처음 제시한 '일대일로'의 계획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2021년 1월 기준으로, 약 140여개의 국가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대일로 정책의 기본적 개념은 다음과 같다."일대일로는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였던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실크로드를 일대(一带)로, 중국-동남아-서남아-유럽-아프리카를 일로(一路)로 잇는 거대 인프라 구출을 핵심으로 한다.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였던 실크로드 개념을 확장시켜 2049년까지 현대판 실크로드를 구축한다."(최재덕, 2018: 25)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중국은 대외 인프라 건설을 비롯하여 우호적인 외교관계 조성, 외교적 영향력 신장을 바랐고, 참여국은 경제적, 실리적 이익을 바랐다. 일대일로 사업이 그러한 경제적 측면에서 실제로 성과를 얻은 부분은 무시할 수 없으나,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 발생하는 마찰음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개요와 현황, 그리고 실제 일대일로 사업 진행 과정에서 일대일로 사업이 맞닥뜨린 문제점을 다뤄보고자 한다.* 2. 오늘날 일대일로 정책의 이념과 현황한나라의 장건이 두 번에 걸쳐 중앙아시아로 가면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각국 간 교류의 장을 열었고, 동서를 관통하여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개척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 실크로드에서 여러 민족들이 상호경제이익을 창출하고 우호적인 교류관계를 맺게 중국 내의 여러 불안요인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입장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주변국 경제협력 관계를 지속,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건설할 계획을 제안하게 되었다. (이신규, 허운교, 2018: 361)2013년 9월 7일 카자흐스탄에서 '내륙 실크로드경제벨트'의 구축을 제안한 것을 시작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협력국을 점차 늘려 오면서 중국몽 실현의 발판이기도 한 일대일로 정책을 키워왔다. 오늘날 일대일로 정책은 공상(共商; 같이 상의, 협상하는 것)과 공건(共建; 같이 건설하는 것), 공향(共享;같이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5가지 핵심분야인 '5통'을 일대일로 사업의 이념으로 한다. 첫째는 정책구통(政策沟通)으로, 일대일로 사업 연선국가 간의 상이한 국가체제 보완을 위해 다방면적인 정책적 교류가 필요함을 뜻한다. 둘째는 시설련통(设施联通)으로, 일대일로 사업에 있어서 그 교역 과정에서 필요한 인프라 시설에 대한 정비가 필요함을 뜻한다. 셋째로는 무역창통(贸易畅通)이다. 연선국가 간에 자유무역구의 건설과 검역 인증 단계 완화 등을 통하여 원활환 교류를 위해 제도적인 연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넷째로는 자금융통(资金融通)이다. 일대일로 사업의 자금 조달을 위한 금융 체계가 마련되어야함을 뜻하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과 브릭스 국가 신개발 은행 등의 설립이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는 민심상통(民心相通)으로, 일대일로 사업은 연선국가 국민들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신뢰와 참여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5개의 핵심이념은 다시 세 개의 플랫폼으로 구성된다.첫째는 공간 네트워크 플랫폼, 다른 말로, 연계성이다. 둘째는 금융, 융자 플랫폼(자금융통)이고, 셋째는 정책소통 플랫폼(정책구통, 민심상통)이다. 일대일로를 하나의 생명체로 비유한다면 공간 네트워크 플랫폼은 일대일로의 뼈대이자 혈맥, 금융, 융자 플랫폼은 일대일로의 심장, 정책소통 플om/international/article/201812263470i)일대일로 정책은 '일대'와 '일로', 즉 육상실크로드와 해상실크로드로 구분할 수 있다. 육상실크로드 노선은 3개로 구분되며, 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페르시아만-지중해, 중국-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 중국-동남아시아-남아시아-인도양으로 구성되었다. 해상실크로드의 경우 2개의 노선으로 구분되며, 중국연해-남중국해-인도양-유럽, 중국-남중국해-남태평양으로 구성된다.그리고 일대일로의 현황, 즉, 성과에 대해서는, 2017년 기준으로, 중국 기업은 일대일로 관련 건설을 61개국 8157건 수주하였고, 20여 개국에 56개의 경제협력구를 개발하고 18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37개 국가와 하운(河运) 협정을 체결하고, 31개 항구와 물류 정보 공개 협정을 체결하였다. 일대일로 연선국 12개 국가 34개 구간의 육해상 광케이블을 설치했다. 일대일로 연선국가에 대한 중국의 수출이 20.1% 증가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중국과 일대일로 연선국 무역규모가 3조 달러를 초과하였고 중국의 연선국 투자 누계는 50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했다. (최재덕, 2018: 33)하지만, '해양강국' 국가 목표과 일대일로 유관 지역에서의 충돌 문제, 일대일로 참여국의 부채 증가 문제가 대두되며 일대일로 사업에 난항을 겪게 되었다.* 3. '해양강국' 건설 목표와 분쟁지역에서의 충돌 문제(출처:Forbes, https://www.forbes.com/sites/outofasia/2017/08/22/making-sense-of-the-south -china-sea-dispute/?sh=5050127a1c3b)중국은 1974년 UN 특별위원회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 언급한 이후에도, 수많은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 공언하여 왔다. 하지만 2012년 시진핑의 '해양강국 건설'이라는 목표 하에 해양 군사력을 증강시켜온 중국이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 중 핵심 이념과 같이 상의하고, 같이 건설하며 같이 나눈다는 세 가지 가치에 모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영토분쟁은 해양실크로드의 건설에 있어서, 단순한 차질의 수준을 넘어 중국의 '해양강국'이라는 목표와 겹쳐지면서, 일대일로 사업의 목적인 결국은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일대일로 사업의 이상적인 장점들을 가리고, 원활한 사업 진행에 있어서도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4. 일대일로 협력국의 부채 증가 문제다음으로는 협력국의 부채 증가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도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으나, 과도한 공사 진행으로 인한 국가 부채 증가와 사업 이익 독과점 문제 등을 낳고 있다.실제로 2018년 9월 기준, 대부분의 일대일로 협력국가들은 일대일로 참여 후 평균적으로 부채 비율이 35%에서 126%로 급증하여,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기대하며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저개발국가들은 금융 취약국으로 전락하고 있다.(출처: 아시아경제, https://cm.asiae.co.kr/article/*************531100)또한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경우, 해당 인프라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함반토타항의 경우 사업을 위해 들여온 중국 자본 11억 2000만 달러를 차관으로 들여왔으나, 스리랑카는 최근 몇 년간 국가 재정이 위태로운 상태에 처해 있었고, 도입한 차관을 갚을 여력이 사실상 없어서, 2017년부터 99년동안 중국이 운영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항구의 안전 유지를 목적으로 해군 군함과 잠수함도 기항이 가능하게 되었다. 파키스탄 과다르항의 경우도 역시 43년동안 중국이 운영권을 가져간 사례이다. 한편 이러한 행보는 일대일로 연선국에 대한 경제적 주권 침해, 국가 핵심이익에 대한 침해이자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중국의 '패권주의'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5. 자들과의 예술공예품, 디지털콘텐츠, 출판물, 시각예술, 디자인 설계 등을 비롯한 문화상품 수출입 구조를 나타내는 표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국가들에게 수출한 문화상품이 136억 달러였는데 반해, 이들 국가로부터 수입한 문화 상품은 10.52억 달러에 불과했다. 민심상통이라는 이념을 위한 문화교류의 활성화가 사실상 중국 문화의 수출 위주의 형태로 갖춰지게 되고, 때로는 강요된 형태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민심상통'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문화 교류의 형태는 문제적일 수 있다.* 6. 맺는말중국에게 있어 일대일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역사적으로는 '실크로드'와 맞닿아 있으면서,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강대국의 지위,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그 중요성이 크다. 이번 보고서 작성을 통해 일대일로 정책의 이념과 현황, 그리고 현재 제시되고 있는 문제점을 다뤄 보면서 일대일로 사업이 이상적으로 보았을 때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아직은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오늘날 코로나와 동북공정을 비롯해 중국의 대한 대중의 감정은 좋지 않고, 또 실제로 피해 사례도 있는 만큼 신중히 고려해야 할 문제이나, 언급된 일대일로의 사업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논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이창주, Forbes, https://www.forbes.com/sites/outofasia/2017/08/22/making-sense-of-the-south-china-sea-dispute/?sh=5050127a1c3b아시아경제, https://cm.asiae.co.kr/article/*************531100세계은행, https://data.worldbank.org/이신규, 허윤교, 중국의 '일대일로' 추진 현황과 발전방안최재덕, 일대일로의 이론과 실제: 중국의 지역패권주의 강화와 일대일로 사업추진에서 발생된 한계점김태식, 일대일로(一带一路) 프로젝트 추진 배경 및 주요 난제에 관한 연구곽재석,展研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