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주 교재를 보면 프롬이 사랑의 능력을 중요하게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롬은 인류 존재의 황폐성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사랑이며 모든 인간은 사랑에 굶주려 하지만 사랑받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또 사랑은 기능이자 능력이기 때문에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롬의 성격유형을 공부하면서 프롬이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주 교재에서 언급한 사랑의 요소와 사랑의 유형 이외에 것을 중점으로 하여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을 읽고 독서 보고서를 작성하였다.2.본론프롬은 책의 두서에서 사랑이 기술이라면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며 이러한 사람들은 세 가지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한다. 세 가지 전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하며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 사랑을 ‘하게 되는’ 최초의 경험과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즉 사랑 받는 문제, 대상의 문제, 사랑에 머물러 있는 상태의 혼돈이다. 이러한 사랑보다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반대의 경우에 대한 압도적인 증거에도 사랑에 대한 일반적 관념으로서 지속되고 있다.사랑은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만다. 다른 활동이라면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개선 법을 찾아내거나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포기가 불가능하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는 것이다. 그 최초의 조치는 사랑도 기술 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기술을 습득 하는 과정은 이론의 습득 후 실천의 습득이다. 더불어 이론과 실천의 습득 외에도 기술의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책은 사랑의 이론과 실천을 검토하고 있다.프롬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어떤 종류의 합일에 대해 말하는지 알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분리는 불안을 일으키며 인간은 이러한 분리 상태를 극복해 고독을 벗어나려는 욕구를 가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합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실존의 문제에 대한 신중한 해답으로써 사랑을 말하고 있는지, ‘공서적 합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의 미숙한 형태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중 전자의 의미로 사랑을 쓴다고 이야기 한다. 공서적 합일이란 생물학적으로는 임신한 어머니와 태아의 관계에서 유형을 볼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는 두 신체가 독립적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동일한 애착이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공서적 합일의 수동적 형태로는 복종, 피학대 음란증을, 능동적 형태로는 지배, 가학성 음란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공서적 합일과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이것은 인간을 동료에게서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 버리는 힘이며 인간을 타인과 결합하는 힘이다. 결국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며 사랑의 능동적인 성격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사랑의 형태에는 공통된 보호, 책임, 존경, 지식 같은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에 보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자식에 대한 모성애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나며 이러한 보호와 관심에는 사랑의 또 다른 하나의 측면인 책임이 포함되어 있다. 책임의 참된 의미는 전적으로 자발된 행동으로써 다른 인간 존재의 요구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책임을 진다’ 는 것은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책임은 세 번째 요소인 ‘존경’이 없다면 쉽게 지배와 소유로 타락할 것이라고 프롬은 말한다. 존경은 두려움이나 외경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이며 또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남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 않아도 될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며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할 수 있다. 이러한 존경을 하려면 그 사람을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며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지식에는 여러 층이 있으며 사랑의 한 측면은 지식은 주변에 머물지 않고 핵심으로 파고든다. 또 지식은 사랑의 문제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또 하나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비밀’을 알려는 욕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는 분리라는 감옥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융합하려는 기본적인 욕구이자 인간적인 욕망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존재의 깊이에 도달하려고 하면 할수록 인식의 목표는 더욱 멀어지며 우리는 인간의 영혼의 비밀, ‘인간’의 내면적인 핵심에 침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비밀을 아는 방법은 괴롭히고 고문하여 고통 속에서 자신의 비밀을 누설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사랑이 있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침투하는 것이고 이러한 침투를 통해 알려고 하는 욕망은 합일에 의해 만족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지식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다.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랑의 ‘행위’에 있는 것이다.이렇듯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은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성숙한 인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일련의 태도이다. 여기서 성숙한 인간이란 자신의 힘을 생산적으로 발휘하고 스스로 일한 결과만을 차지하려고 하고 전지전능한 자아도취적 꿈을 포기하고 오직 순수한 생산적 활동에 의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내적 힘에 바탕을 둔 겸손을 터득한 사람이다.프롬은 인간의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 사랑, 합일에의 열망을 실현하는 사랑 이외에 합일에 대한 보편적이고 실존적은 욕구를 바탕으로 특수하고 생물학적인 욕구, 남성과 여성이라는 극 사이에서 합일에 대한 욕구가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남녀 양극성의 문제는 사랑과 성에 대해 더 많은 검토를 요구한다고 하면서 프로이트가 사랑에서 성적 본능의 표현만을 보려고 한 것을 크게 지적하고 있다.사랑의 기술을 배우기에 앞서 기술을 배우는 일반적인 조건은 훈련, 정신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 보충하자면 간접적인 배움이다. 기술의 명장이 되려면 삶의 모든 국면을 통해 훈련, 정신 집중, 인내를 ‘실행’하는 것으로 시작해야한다. 사랑은 자아도취의 상대적 결여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하며 겸손과 객관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모든 상황에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객관성을 잃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또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어떤 사람과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상과, 흥미, 욕구, 공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나의 현실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사랑의 기술을 실천 하려면 활동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활동은 사랑의 실천에 대해 기초적인 것이며 프롬은 활동을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 이 아닌 내면적 활동, 곧 자신의 힘의 생산적 이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3. 결론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이 책의 의도라고 저자는 머리말에서 말한다. 또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이 어려움을 알아보고 사랑에 도달하는 조건들을 알아보는 일조차 삼가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