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과제 ‘비잔티움 제국’ 조사4세기말 황제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대제국 로마는 동과 서로 나뉘어졌다. 이때 콘스탄티누스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현재 이스탄불) 중심으로 세운 ‘동로마‘를 옛 수도 이름을 따서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한다. 게르만족에 의해 일찍 멸망의 길로 들어선 서로마와 달리 오랫동안 번영을 누렸던 비잔티움 제국은 중앙집권적이며 정치적 권한과 종교적 권한을 동시에 가진 황제교황주의였으며 로마 가톨릭인 서로마와 달리 그리스정교이고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쓴다. ‘동로마‘라는 용어는 ’서로마‘와 구별을 하기 위해서 쓰인 용어이며 동로마, 서로마는 전쟁으로 분열된 것이 아니라 활발한 팽창정책으로 거대해진 로마 제국을 복수의 황제가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행정적 분할이기 때문에 동로마 즉,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의 전통을 계승해 발전시켜나갔고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길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여러 언어와 문화를 가진 주변국들과 다양한 무역교류를 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유럽뿐만 아니라 동방문화와도 융합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들여온 비단 견직물과 귀금속 공예품, 유리 공예품. 도자기 등을 교역하는 주요한 장소였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세계의 부의 3분의 2가 모이는 곳이라고 불리면서 비잔티움제국에 큰 부를 제공해 주었다. 비잔티움 제국이 고대 로마를 계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고대 로마 때부터 조각상이나 동전에 주로 새겨졌던 제국의 상징표시인 아퀼라(조류)는 동로마 제국에 와서도 계속 사용되었는데 고대와 다르게 용도는 점차 변화해서 군사 상징이 아닌 집정관 직분과 황제를 나타내는 요소로 쓰였다. 그리고 고대 로마시절 박해받던 크리스트교가 비잔티움 제국에 와서 콘스탄티누스1세의 ’밀라노 칙령‘으로 크리스트교가 정식으로 인정되었으며 4세기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그로인해 사회는 점점 더 크리스트교화 되면서 비잔티움의 문화도 고대 로마문화에서 점점 더 크리스트교적 성격이 강해졌다. 그 중에서도 미술 분야는 거의 대다수의 작품에 종교적인 표현을 포함하였고 기독교적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헬레니즘 문화도 나타났다. 미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영향을 많이 받은 분야 중 하나는 비잔티움 건축양식인데 이 건축양식의 특징은 내부 모자이크 장식과 원형 아치, 반구형 돔 등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성 소피아 성당이 있다. 비잔티움 돔은 둥근 돔모양 지붕을 교대로 받쳐주는 방식이 특징인데 이는 로마 말기의 건축양식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것 이다. 로마는 아치형과 돔 기법으로 지어진 경기장이나 수도교, 공중목욕탕 같은 실용적인 건축물을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비잔티움제국의 건축양식은 정복전쟁을 통하여 여러 식민지로 전파되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고 러시아(슬라브족)의 네오비잔틴 양식으로도 계승되어 동유럽 문화권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에서도 비잔티움 건축양식을 받아들여 오늘날 터키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이 되었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의 문학 작품의 주제 및 구성 요소는 크게 그리스도교 문학, 그리스 문학, 로마 문학, 동양 문학 이렇게 총 4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이것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와 로마, 헬레니즘문화와 융합해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잔티움 제국 문화의 의의는 정교회 (고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 크리스트교파의 일종) 를 기반으로 해서 동유럽 문화의 기틀을 다졌다는 것에 있다. 그 예로는 제국의 선교사들이 만든 ’키릴 문자‘는 불가리아 제국을 거쳐 동유럽에 위치한 키예프 루스로 전해져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세계사의 이해 레포트1.농업의 발달(신석기혁명): 기원전 1만년~4000년 사이 인류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예로 최초의 농경(신석기혁명)이 일어났고 이주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변화, 그리고 도시의 등장이 있다. 최초의 곡물재배는 야생밀과 보리를 재배한 서남아시아에서 시작되었고 농업생산에 기반을 둔 최초의 경제체제도 서남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기원전 6000년에서 5000년 무렵 강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관개기술이 개발됨으로써 농경지가 메소포타미아 평원까지 확대되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 바로 ‘신석기 혁명’이다. 왜냐하면 신석기형명으로 저장 기간이 비교적 긴 주곡의 생산량이 매우 증대되면서 한 곳에 인류가 1년 내내 머물면서 먹고살 수가 있었다. 또 농경을 하면서 농부는 본인의 경작지 옆에 살아야했으므로 이로써 떠도는 이주생활을 그만두고 정착농경지가 확대되면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그 곳에서 공동체사회가 형성되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이 수렵과 채집에서 농업으로 이주생활에서 정착생활이 된 것이다. 또한 신석기형명으로 인해 기원전 8000~4000년 사이에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협동노동을 필요로 하는 농업은 특히 관개농업이라는 것이 도입된 후 처음에는 부락의 형태였는데 정착민들은 토기, 도구, 장신구 등 생활용이나 의식 및 오락용으로 많은 물건들은 만들고 쌓아두고 이것이 점차 마을과 도시의 형태로 커지면서 정착사회를 형성하였다. 농업의 발달로 인류는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농촌부락사회는 더욱 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조직, 즉 권력을 가진 세력도 나타났으며 결론적으로는 최초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그 후 문자가 발달하고 정치조직이 생겨나면서 조건이 충족된 곳마다 문명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되었다. 4대문명이란 것은 인더스강의 인더스문명,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메소포타미아문명, 중국 황허강의 황허문명, 나일강의 축복이라고 불리는 나일강의 이집트문명을 가리킨다. 이 4개의 문명들의 공통점은 4대강 유역의 충적평야에서 일어났으며 도시의 발달, 문자의 사용, 대규모 공공건물, 국가라는 정치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충적평야 지대는 농업 이외에는 대부분 천연자원이 부족하였는데 그러므로 충적평야에서 농경을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과 교역활동을 통해 도시에서 생산된 옷감과 기타 수공업 제품을 다른 지역의 원료, 사치품들과 교환을 하였으며. 이로써 지중해 동부~인더스강 유역과 중국에 이르는 지역에 교역 중심지가 발달하였다. 따라서 충적평야의 도시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좁은 땅덩이 지역 이외에 다른 주변 지역까지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석기형명으로 인해 생산된 엄청난 잉여 농산물은 몇몇 도시에서 수공업이나 상업 같은 농업 이외의 분업화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는 세금의 징수와 노동력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한 지배계급의 출현으로도 이어졌다.2.오스만투르크의 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함락(=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콘스탄티노플은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고 주변의 마르바르해, 서쪽의 에게해, 북쪽의 흑해, 남쪽의 지중해로 에워싸인 길목이었기에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주변국들과 쉽게 문화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지정학적, 지리적 요충지인 콘스탄티노플의 위치는 발칸반도를 비롯한 유럽대륙은 물론이고 지중해나 에게해를 통한 여러 나라들의 침략 통로였으며 항상 여러 나라들의 세력 다툼의 중심지이었다. 그러므로 다른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오스만투루크족도 비잔티움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동로마였던 비잔티움제국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 열강들의 지속적인 침략으로 점점 쇠퇴해가는 비잔티움제국은 국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결국 1453년 5월 29일 오스만제국의 7대 술탄인 메흐메드 2세의 여러 번의 침략에 의해 굳건했던 콘스탄티노플의 벽은 결국 무너지게 되었고 그 후 비잔티움제국은 차례대로 다른 지역도 함락되었고 이로써 비잔티움 대제국은 로마 건국 이후 2200년이라는 긴 세월의 역사를 남기고 오스만투루크에게 멸망하게 되었다. 비잔티움 대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은 과거부터 끊임없는 전쟁사에서 근대 전까지 유럽인이 이곳을 침략하는 것의 종지부를 찍은 새로운 전환점이었으며 세계사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이 곳은 과거 발칸반도 중심의 유럽문화의 역사를 계속 쭉 이어오던 곳이었고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처음으로 유목민 튀르크족의 새로운 문화가 정착하게 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 지역은 오랜 기간 동안 기독교 제국의 전통을 이어왔었지만 그 후 오스만투르크의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인들은 서유럽으로 강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유럽으로 가지고온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문화를 발달시키며 꽃을 피웠고 이는 르네상스시대를 여는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또 이 사건은 중세가 막을 내리고 근세가 시작되는 시작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3.콜럼버스의 신대륙(아메리카대륙)발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을 잇는 육상과 해상 교통의 교차지에 위치해 국제 무역 노선의 교차지점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차지한 오스만투르크는 그 후 중계무역을 독점하였다. 십자군 전쟁이후 유럽인들의 동방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단, 가죽, 보석, 도자기 등등 동양의 주요 물품들이 여럿 주요교역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중 인도양을 통해 들여온 향료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를 거쳐서 유럽 대륙으로 들어왔는데 여기서 오스만제국이 향료독과점을 형성하면서 동방의 향신료가 유럽으로 들어오는 교역로가 끊겨버렸다. 그로인해 유렵에서는 향료의 수입이 원치 않게 줄어들자 유럽 내에서 향료의 가격이 폭등하였고 막대한 이익들은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에 전부 몰렸다. 이에 불만을 느낀 포르투갈인들은 오스만제국을 거치지 않고 인도양으로 가 향료를 싸고 쉽게 수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신항로를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기 위한 첫 출항을 실시했고 마침내 1492년 10월 12일 과나아니섬에 도착함으로써 신대륙(아메리카)을 발견하였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본인이 발견한 신대륙을 인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가 발견한 신대륙은 인도가 아니라 아메리카였다. 아메리카의 발견은 유럽인들의 대항해시대를 열었으며 미국이 탄생하는 근본적 토대가 되었다. 또 이 사건으로 동방무역의 유일한 통로였던 이스탄불(지중해)에서 무역의 중심지가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오스만투르크의 독점중계무역이 무너지고 그동안 오스만투르크로 인해 세력을 펼칠 수 없었던 유럽인들이 세력을 팽창하기 시작했다. 무역구조의 확대로 생활권도 확대되었고 운송수단과 교통이 발달하였으며 여러 나라가 서로서로 쉽게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대륙에서 수확된 신작물이 유럽에 유입되었고 신대륙에서 발견된 많은 금과 은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화폐의 가치가 하락하였다. 또 신대륙을 정복한 뒤 유럽인들은 그 땅의 주인인 원주민들을 노예화하면서 유럽사회의 무역에서 비인권적인 노예무역도 생겨나게 되었다.4.대종교의 등장과 확산: 기원전 1000년 전의 일반적인 종교의 형태는 유라시아 대륙을 통틀어서 개별공동체들이 각자 본인들의 신을 섬기는 다신교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원전 6세기경 고대 세계에 제국이란 형태의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각자가 섬기며 모셨던 지역 신을 뛰어넘는 보편적 신앙이 필요해졌고 그러므로 보편성과 단일한 교리를 가진 거대한 대종교가 나타나게 되었다. 대종교란 불교, 힌두교,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와 같은 종교를 뜻한다. 참고로 대부분의 대종교는 아시아 지역에서 출연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대종교는 강력한 정부가 나타나고 그 나라가 정치적 안정과 평화를 이루었을 때 크게 번성한다. 이것으로 보았을 때 중앙집권화 된 대제국의 등장은 이들이 형성한 종교의 형태와 서로 병행해 발전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새로운 대종교는 대제국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다신교에서 대종교로의 변화는 그 나라의 여러 부족, 민족을 통합시켜주었다. 또 세계 종교는 대부분 무역로를 따라 그 주변으로 점차 퍼져 나갔는데 이러한 대종교의 확산은 주변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불교와 크리스트교의 확산은 서로 다른 지역이 연결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대종교가 확산되고 발달되고 전통으로 이어지면서 세계 각국에는 종교와 관련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여러 문화유산들도 많이 생겨났지만 문화 상대주의와 반대로 자문화 중심주와 같이 대종교로 인해 발생한 종교와 관련된 대립과 다툼은 과거에 큰 전쟁으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십자군전쟁이 있음) 물론 현재에도 중동지역에는 종교로 인한 대립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