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와의 노력과 관계성: 지속 가능한 IP의 가치와 유지, 생존차례들어가며1. IP와 우리1) IP란? – IP에 대해2) 사랑을 먹고 자라는 IP -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한 사랑3) 질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 시간을 넘어 사랑받는 IP2.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가?1) IP의 대체 불가능한 속성 – 웹툰 IP를 이용한 콘텐츠 상품의 장점과 한계성2) 도플갱어는 존재 할 수 없다 - 따라하기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매력을 지닌 IP3) 각자 다른 IP 임을 인지해야 한다- 고유한 IP속성이 왜 중요한가3. IP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1) 패션에 민감해지기 - 시대에 상황에 따른 IP의 변화2) 확장해 나가기 – 평면적인 세계가 아닌 다차원적 세계로0. 들어가며우리 인간의 생존은 삶의 수준이 발전하며 산업혁명을 거듭할 수록, 더 이상 물질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고유 아이디어 즉, 지적 가치에 의존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생애에 있어서 이를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삶을 살기란 불가피하게 되었다. 향상하는 삶의 질로 우리의 여유, 여가 적인 시간은 더욱 늘어났고, 그러한 여가시간을 우리는 콘텐츠의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을 느낀다. 인간의 생존적 욕구가 해결 됨에 따라 우리는 지적 재산을 이용한 무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갈망하게 되었고, 이는 더욱 우리를 즐겁게 해줄 지적 재산의 양성을 촉진하게 된다. 21세기 개인이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6인치의 세계의 혁명과 인터넷의 발달로 콘텐츠의 소비는 급진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으며, 우리의 세상은 지적이며 정신적인 즐거움을 중요시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를 만들기 위한 source인 지적 재산권(IP)이 하나의 유기적 재산으로써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정신적인 재미와, 현대사회의 생존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는 IP에 의존하게 되며, IP의 개발은 결국 사람이 하기에 우리에게로 의존 되는 하나의 쌍방향적 의존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와 IP의 관계, 서로 상호 의존적 관계로 자리잡은 이 순간품, 그리고 파생 IP또한 제작이 가능하다. 이러한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지속 가능하도록 노력 해야 됨과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함이 서로의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 감정인 ‘사랑’과 유사하기에 ‘우리는 IP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한 IP의 지적 재산권을 창작자가 지속적으로 시용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투자해야 한다. IP는 대중들에게 한 번 노출 되었다고 끝이 아니며,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화제 되어야 비로소 경제적인 가치를 얻기 때문이다. 또한 변화한 시대상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수정과 보안으로 자주 관심을 가지고 어루만져 주어야 하며, 이는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IP에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자주 케어 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마치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혹은 친구처럼, 세월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보증된 관계이기에 막 대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듯, IP또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고 하여서 이를 보증 된 수표로 여기고 관리 없이 타인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소비를 넘기게 되면, IP는 원작자를 떠나게 되고, 자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는 타회사, 대행사, 혹은 소비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게 된다.3) 질리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 시간을 넘어 사랑받는 IP앞서 말한 것과 같이, 창작자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지 못한 IP에 대해 창작자를 떠나게 되고, 결국 IP의 시장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를 인식하고 세간의 흐름에 맞춰 자신의 작품들을 수리하고, 혹은 세계관을 공유 한 채 고유의 IP로 재탄생 시키는 대표적인 회사가 있다. 전 세계 가장 거대하며 영향력 있는 미디어 회사,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디즈니는 고유 간판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비롯하여, 디즈니 프린세스 브랜드, 라이온 킹 등의 신화적 캐릭터 브랜드 등의 자사 IP에 대한 고찰과 피드백을 바탕으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수정과 리메이크를 하고 있다. 특히, 현대에 들어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사람들이 인지하고 이를 민감하리메이크 작 미와 요시유키의 ‘신과 함께 리메이크’,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셋 모두 같은 세계관과 스토리 라인을 공유하고 있지만, 원작으로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과 영화로 스토리를 소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점 때문에 영상 화한 웹툰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고, 원작 만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웹툰 ‘신과 함께’,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 포스터)이 같은 이유 때문에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들의 경우 흥행성적이 저조하거나 원작의 그늘에 가려 원작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낮은 성공확률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의 제작 시도가 계속 이루어지는 이유가 있다. 이미 웹툰시장에서 큰 인기를 몰았던 작품의 경우, 대중들에게 선보이며 그 IP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 수 있어 기본적인 흥행 보증은 기저로 장착하고 간다. 게다가 제작 자체 만으로 이슈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케팅적으로 이미 의의가 있는 행위이다. 게다가 웹툰의 경우 이미 스토리보드를 처음부터 창조할 필요 없이 웹툰을 보며 시각화를 구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자 입장에서도 카메라 샷 구현에 있어서 자신감이 붙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오히려 앞에 이야기하였던 웹툰 원작 영화의 실패 요인으로도 작용하게 된다. 영화적 문법과 웹툰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둘다 보는 원작 팬의 입장으로는 ‘각색을 잘 못하여 원작을 실추시켰다’는 혹평을 하기도 한다. 웹툰에서는 자연스러웠던 연출이 영화 내에서는 다분히 만화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어색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윤태호 작가의 원작 ‘미생’과 드라마 ‘미생’을 본 시청자들은(웹툰의 장편 지상 파 드라마 화가 우리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을 무렵이었다) 드라마의 연출이 만화적인 요소가 많아 일본적인 느낌이 난다는 평을 주기도 하였다. 이처럼 같은 IP를 공유하고 있어도, 각 콘텐츠의 내에서는 형식에 맞춘 변이가 일어났 값을 가져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이 암호 화폐, 비트코인과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디지털화 된 IP는 누구도 복제가 가능하지만, 그 IP에 대한 NFT가 생성이 되면 그 디지털 상품에 대한 고유 인증서가 만들어지는 것과 같기에 고유의 값을 가진 디지털 자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 유동적이며 역동적인 자본의 이동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며 이는 곧 사람들의 디지털 자산에 대한 투자의 관심도를 높였다.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암호 화폐의 경우 어느 것이든 현금처럼 대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격의 변동성이 심할 수 밖에 없고, 이에 고유의 값을 가지며 시장가치와 함께 대체 불가능 하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는 NFT에 집중 할 수 밖에 없고, 안전함을 찾고 싶은 인간에게 이에 대한 관심은 더더욱 커져만 갈 것이라 본다.NFT는 원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MEME(밈, 유행하는 재미있는 사진, 패러디) 사진이나 동영상 등의 파일에 재미로 적용되었다고 하며, 실제로도 일론 머스크의 도지 코인의 경우, ‘도지’ 인터넷 밈의 NFT를 발행하여 밈 최고가인 45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또한 꼬리에 무지개를 다는 식빵 고양이 ‘냥 캣(Nyan Cat)’ 움짤은 2020년 2월 300이더러움 (약 7억원)에 거래되었다고 하며, 이는 현대 대부분의 IP를 디지털로 작업하는 창작자들에게 희소식으로 들려왔다. NFT를 부여하게 된다면 디지털 복제와 도용을 막고 이를 통해 작가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NFT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유 가치와 잠재력으로, 사람들의 디지털 자산 화의 욕구에 발맞춰 가상의 가시적인 형태의 대상을 자신의 자산으로 가질 수 있다는 원초적인 매력과 더불어 잠재력을 가진 IP일수록 자산을 이용하여 부수적인 수익을 벌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은 원작자가 가지고, 구매자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반식이 일방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라이선스를 이용하여 구매자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해 2016 서비스를 시작한 ‘데스티니 차일드’라는 게임은 여성 상품화 적인 캐릭터 묘사로 이 일간에서 한 때 화두가 되기도 하였다. 2017년 데스티니 차일드는 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을 열어 수상작 108건을 선정하였는데 여기에서 특별상을 받은 캐릭터가 문제가 된다.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모티프로 하여 필리핀 빈민가 성범죄 피해자인 코피노 캐릭터를 성 상품화 하였는데, 신체 상당부분을 노출하고 인신매매 범죄 집단에게 희생당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이 캐릭터 제작에 대한 대중의 비난을 받게 되었고, 게임업체는 특별상을 취소하며 캐릭터 게시물 또한 삭제 조치를 하였다. 위의 쉬라 예시와는 다르게 탄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IP임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설정으로 인해 사람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보면, IP는 오래 되었든 신생이든 간에 대중들의 시선을 잘 따라가며 발맞춰 성장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관계에 대해 주변사람들에게 자주 상담을 하듯, 대중들에게 귀를 기울여가며 그들의 조언을 잘 듣고 반영하는 것처럼 말이다.2) 확장해 나가기 – 평면적인 세계가 아닌 다차원적 세계로IP에 있어서 콘텐츠가 한 작품으로만 끝난다면 이것은 IP에 대한 낭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세계관은 2인 이상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한 다차원적으로 뻗어갈 수 있으며 이는, 고전 동화, 소설에서조차 해당할 수 있다. 앞서 말했던 ‘말레피센트’와 ‘크루엘라’ 실사 화 영화들의 경우 영화 초반부 디즈니 성 심볼을 보여주는 오프닝에서 디즈니 성을 중심으로 카메라가 90도로 회전하여 측면의 성을 보여주며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이 때, 성의 측면을 보여주는 행위는 이 영화가 디즈니 고전 동화 애니메이션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의미를 담고있으며, 주로 다른 인물(특히 악당의 입장에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고 서사적 구조를 변형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디즈니의 ‘동화 뒤틀어 보기’로 인해 사람들은 기존 고전에 대한 관심을 제
디지털 혁신과 한 손의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양성과 스마트폰, 그리고 언텍트 시대차례0. 들어가며1. 디지털 노마드1) 디지털 노마드란? – 용어 설명과 간단한 예시2) 한 손의 세계 – 스마트 폰으로 보급된 우리의 세계,장소를 구애 받지 않는 스마트 유목민들의 증가3)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언택트 증가 현상 – 온라인을 넘어선 가상공간의 현실화2. 언텍트 문화와 노마드1) 코로나 ‘집콕’시대의 자유 추구 – 레이어드 홈, 집을 새롭게2)언택트, 편의성, 자유로움 – 우리의 소비 트렌드 변화3. 디지털 노마드 유입1) ‘5060 엄지 족’ – 베이비 붐 세대의 온라인 유입2) 한 손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만능 리테일러 플랫폼4.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커뮤니케이션1) [사람의 관심 = 돈]의 성립2) 사람을 모으는 콘텐츠 - 참여 형 콘텐츠들어가며삶에서 추구하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우리는 비판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줏대를 이용하여 독자적인 삶의 방향을 구축하여야 한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시대의 개방, 디지털 시대의 바람을 맞아 손 안에 쥐게 된 우리의 작은 세계, 모바일 시장, 그리고 터치 미디어에 대한, 간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유목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기존의 관습적인 시선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자유의 시대라는 거대한 돌풍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번 리포트를 쓰며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디지털 노마드디지털 노마드란? – 용어 설명과 간단한 예시‘디지털’과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의 합성어. 新유목민의 등장으로 21세기는 다시금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반 문화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보헤미안, 히피, 보보, 힙스터 계통을 잇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신 유목민 ‘디지털 노마드’, 그들은 인터넷 보급이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던 21세기 트렌드를 이끄는 거대한 반 문화 집털 생산 업체에서도 시장에 출시하였고, 2010년대에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대중적인 보급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디지털 공간은 1~2kg의 무거운 상자에서 500g도 채 안 되는 터치 탭으로 넘어가며 더욱 손쉬운 접근이 되었고, 이는 결국 디지털 세상과 리얼리티의 융합이 도래 되는 시대가 되었다.스마트 폰의 대중화와 보급은 이후 우리 삶의 많은 변화를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인터넷 세상에 접속하기 위해 더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공간적인 제약이 사라지고 많은 사람들은 손 안 3, 4인치의 화면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너머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스마트폰 배터리와 데이터가 부족하지 않는 한)우리는 서로와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게 되며, 나아가 연락망(인터넷, 전화) 뿐만 아니라 쇼핑, 금융, 교통, 여가 생활도 스마트폰과 함께 할 수 있으며 흔히 ‘제 2의 분신’이라 할 만큼 스마트 기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에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다르게 말하면 이 기기가 없으면 우리의 사회생활은 어려움이 많아질 것이라는 말로 스마트폰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언택트 증가 현상 – 온라인을 넘어선 가상공간의 현실화2019년 12월 말부터 제한된 우리의 공간적인 제약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삶을 뒤 바꿔 놓았다. 1년 이상 지속되어온 비대면 화상강의, 화상 회의와 더불어 재택근무와 인간 대 인간, 대면 산업은 크게 주춤하였고, 자영업자, 번화가의 식당과 카페는 월세를 못 내 몇몇은 파산하기도 하였다. 기존에 추구하던 집단주의의 회사 경영은 마비가 되었고, 소수의 회사와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하는 등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렇게 대면으로 진행하는 산업은 마비가 되었고, 주택 근무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스마트 디바이스에 의존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집에서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지금, 어느 때 보다매력까지 결합하여 새로운 룩을 만들어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레이어드 홈 또한 집의 주거기능에서 덧대어 사무실, 취미 공간 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집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게 되는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된 주거 생활에 있어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한다. 집 본래의 기능인 숙식을 떠나, 주거 시간이 많아지면서 휴식, 치유의 공간으로, 또한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표출도구로써 사용되기도 한다. 인테리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떠한 성향인지를 나타내며, 그들만의 치유의 공간, 표현의 공간으로 자리잡아 하나의 예술로서 승화되고 있다. 얼마 전 인기를 끌게 된 인테리어 콘텐츠 영상물, 일명 ‘방 꾸미기’ 영상, 조회수 200만부터 5000만까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3평짜리 원룸, 1평짜리 방 등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심미적인지,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지 이다. 사람들은 쾌적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남의 방을 영상을 통해 보고, 자신의 공간 또한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 하면서 ‘집 꾸미기’ 문화를 향유해 나간다. 휴식, 치유의 공간뿐 아닌, 자신의 업무,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으로도 변신시킨다. 단순히 ‘주거’역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커스텀 하는 만능 공간으로써 집을 진화시킨 것이다.언택트, 편의성, 자유로움 – 우리의 소비 트렌드 변화업무, 공급의 비 대면이라는 흐름에 따라 수요, 소비도 언택트, 비 대면 플랫폼을 통해 소비하며 더 이상 오프라인 소비에 대한 관심은 줄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 대 인간의 접촉을 피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고, 따라서 쇼핑, 외식, 영화관 등의 물리적으로 직접 가서 시간과 공간을 소비해야 하는 대면 콘텐츠의 소비는 줄고, 스마트폰, 태블릿 PC와 같은 스마트 디바이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구매하고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트렌드가 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이들은 우리 삶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우리는 온라인 비 하자’라는 사회 풍조에 따라 이를 적극적으로 이끄는 인원도 점차 중 장년 층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또한 기성세대의 높아진 온라인 접근성이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온라인 상에서 장보기, 럭셔리 브랜드 구입, 불필요한 거동이 없다는 점에서 그들은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욱 빠르게 디지털 노마드 족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 젊은 계층이 다수인 노마드 집단에서 세대의 폭을 넓혀 주어 노마드 내에서도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그 세대 만의 독자적인 집단을 구성하여 그들이 느끼는 연대감, 공동체 소속감을 만족시켜주며 사회생활에 대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건강한 중 장년 층을 이끌어나가는 핵심 무리로 그들만의 유행을 선도해 나간다.한 손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만능 리테일러 플랫폼위에서 이야기한 이들의 손 쉬운 접근의 일등공신, 바로 만능 리테일러 플랫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retail: 소매, 퍼트리다’라는 뜻의 영 단어로 ‘유통’이라는 뜻으로도 종종 쓰이며, 리테일 미디어는 이를 e-commerce (혹은 소셜 커머스)에 대입시킨 것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많은 리테일 미디어들은 아마존, 이베이, 쿠팡, 지 마켓 등 기존 우리가 이용하던 인터넷 마켓과 크게 다를 점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카카오가 선보인 카카오 쇼핑에서 알 수 있듯이, 소셜미디어를 통한 기존 리테일러와 타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 지는 것, 그리고 바로 넘어갈 수 있는 간편한 서비스에 중독되었고, 이 간편하면서 매력적인 구조에 빠져버렸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 톡은 메신저 기능을 넘어서 지갑, 신분증, 웹툰, 게임, 포탈 그리고 쇼핑까지 발을 뻗치고 있고, 카카오 톡을 사용하면서 간편하게 추가적인 절차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이러한 서비스는 메신저 앱에 불과 했던 카카오 톡을 생활 필수 플랫폼으로 바꿔 주기까지 하였다. 한국의 비 대면 시대에 맞추어 우리에게 필요한 메신저 기능뿐만 아닌, 생일 선물, 검색, 쇼핑 등 대면 플랫폼을 대신할 비자의 입장으로선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많은 콘텐츠가 양산이 되고 또, 이를 패스트푸드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정보의 흐름과 유행의 흐름에 뒤쳐지는 사람들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사람을 모으는 콘텐츠 - 참여 형 콘텐츠온라인 환경에 노출된 디지털 노마드 세대는 송신자 –> 수신자의 구조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 또한 이를 전시하고 게시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송신자가 보낸 정보에 대해 새롭게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적극적인 미디어와 콘텐츠를 갈망한다. 또한 송신자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표출하며 보다 적극적인 수신자의 역할을 하고, 또한 수신자가 송신자가 되기도 하여 역할의 이분법적 분리가 필요 없어지게 된 것이다. 대신 콘텐츠는 대화의 창으로 수신자는 송신자가 어떤 의도로 콘텐츠를 만들었는지 파악하며 송신자는 수신자의 의도와 피드백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디지털 콘텐츠는 참여형 콘텐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과 콘텐츠의 연성의 양상은 커뮤니케이션 콘텐츠에 있어 그 콘텐츠 자체만으로도 소비하는 변화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작되는 콘텐츠와 시청자 간의 소통으로 재구성 된 활용적인 변화도 보이고 있다. 패스트푸드 적인 콘텐츠 소비의 양상은 결국 콘텐츠가 커뮤니케이션의 한 도구로 쓰여진다는 점에서, 카카오톡 메시지처럼 인스턴트로 소비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서 콘텐츠 제작사로서 무엇보다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해야 될 것은 그들의 패스트 콘텐츠 문화에 기성세대적인 잣대로 슬로우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임만이 정 방향이라는 생각을 떨치고 패스트푸드처럼 소비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한다. 무엇보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소비트랜드를 이해하며 수신자와 송신자 간의 대화의 창구로 이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상대의 심리를 예측해 가듯, 대중들의 원하는 콘텐츠를 발 빠르게 맞추어 가면서 그들과 대화하듯 생산과 소비를 이어나가야 한다.다행인 점은, 디지털 노마드 집T1
[르네 지라르 ‘희생양’]내용요약“희생양 메커니즘은 하나의 희생양으로써 모든 가능한 희생양들을 대신하는 것으로, 동물로써 인간을 대신하는 경제적 기능뿐 아니라 좋은 폭력으로 나쁜 폭력을 막는 종교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르네 지라르, 희생양, p347)이 책의 저자 르네 지라르는 모든 역사와 신화, 문화 전반에서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작동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자신이 폭력을 당하기를 나서는 개념으로, 이것을 통해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해 실행된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불사 지르는 희생양에서 폭력과 성스러움이 엮여서 표현됐는데, 이는 폭력과 종교적 성스러움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폭력의 내면에는 욕망이 있고, 이를 성스러움으로 치부하는 과정도 사실 다들 욕망은 내제되어 있지만, 그 자신의 욕망을 투영할 다른 개체를 통해 이를 해소하기 때문에 그는 폭력과 성스러움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현대까지 내려오는 대부분의 신화에는 이러한 욕망을 다른 개체로 치환해버리는 ‘집단적 폭력’이 존재하였고, 그것이 그가 말하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 한다. 이러한 신화에서의 희생양 제의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여기에서 우리는 희생물이 되는 그 박해자가 희생물이 되는 이유, 징후를 많이 가질수록 희생물이 된다는 화살의 촉을 맞을 확률이 더 크다는 것으로, 이 신화들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이유가 이 박해자에게 있어서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위기로 인한 막장성은 그들을 마비시키고 정체되게 하고, 이는 사람들의 행동을 획일화 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되며 개인이었던 사람들을 군중으로 만들고 이 군중은 이러한 어려움의 근본적 원인을 다른 대상에게 돌리려 한다. 신화에서 희생물의 과오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잘못되었다 여기며, 그들의 무고함과는 다르게 집단이 그의 존재를 새롭게 만들어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반대로 성스러운 희생양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존재론적 본질을 집단이 새로이 만들고, 이들의 희생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죽음에 초월적인, 신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신화에서는 이들이 자의적으로 자기 자신을 희생했다 주장하며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집단 학살에 있어 타당성을 부인하고 있다. 아즈텍 문화의 자기 희생 신화를 빌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는 ‘희생물이 없다는 것은 곧 세상이 어둠과 혼돈에 휩싸이게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로키 신화에서는 집단적 폭력을 변형하여, 로키라는 희생자를 만들기 위해 그 희생자를 제외한 나머지 신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그들의 신에 대한 부정을 막기 위해 로키를 사기꾼이라 묘사하며, 이 희생양을 살해한 집단 살해에 가담한 것에 대해 가담한 자 모두가 똑 같은 죄질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집단 살해에 대해 의미를 지우는 것은 이 집단 살해의 이전 표현을 나타내려는 보수주의와도 함께 보여지고 있다. 신화는 대개 이러한 식으로 집단의 이익에 따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끈임없이 변형하기 때문에 구조주의적 분석으로는 신화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의미와 의도를 알 수 없다고 한다이러한 신화에서 집단적 폭력이 변형되어 개인적 폭력으로 바뀐 후에는 이러한 개인적 폭력도 용납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플라톤의 공화국에서 그는 신의 이중적 면모를 인정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의 이로운면과 반대되는 면 또한 가지고 있다는 호머의 입장에 반대하였다. 이 신의 잘못 또한 용서하려면 잘못 또한 손쉽게 지워지면 안 되었으므로, 이는 희생양 효과가 되기도 한다. 이는 처음부터 죄가 없는 신으로 그 신을 바꾸게 되면, 그 근방의 다른 곳의 경우 이러한 희생양 효과가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더 오래된 신화의 경우 집단적 폭력과 더불어 살해를 드러내고 있지만, 여기에서 문화의 진보가 더 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은폐하게 된다. 이는 지금의 시대에도 계속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인간 문명의 은폐의 힘만을 본다면 이 문명의 발전에 대해 사람들은 큰 오해를 할 수 있으며, 이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이 박해자들의 꾸며낸 환상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환상에 대항하기 위해선 환상을 억누르는 진실을 나타내는 표현물을 내세워야 한다. 성서에서는 이 희생물에 대한 입장으로 예수라는 희생양에 대한 사람들의 박해와 그가 겪었던 수난을 있는 대로 묘사함으로써 희생물의 복권 또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복권으로 인해 희생물 주위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고 다른 집단의 압력에도 굽히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예수의 수난 묘사의 중요성은 기존의 박해자에 대한 기록들의 의도를 이어가지 않았고, 그 반대의 예시를 보여줌으로서 집단 폭력의 좌절의 본보기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이 음지에 있던 희생양 문화가 밝은 빛 아래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희생물은 반드시 유죄라는 틀을 깨뜨리고 박해자들은 그들이 하는 바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 또한 용서해야 된다는 것으로 폭력적이었던 희생양 메커니즘의 판도를 바꿔놓는 배경이 되었다.성서는 신화와 다른 것을 이야기 하기도 하는데, 세례 요한의 살해사건의 경우, 요한은 왕에게 모방 욕망에 대해 이의 해로운 결과를 경계하라고 한다. 여기에서 헤로데 왕 형제들의 중재 가능성은 없다는 것과, 살로메 어머니의 욕망은 살로메의 모방 욕망이 되어 더욱 강렬한 욕망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흰 천이 다른 색으로 물들기 제일 쉬운 만큼, 순수한 어린아이인 살로메는 보다 어머니의 모방적 폭력으로 더욱 진하게 물들기 쉽다는 것이다. 모방 또한 순수한 욕망이 될 수 있으며,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고, 이 타인을 라이벌로 여긴다는 것, 그리고 욕망의 모방적 현상을 막기 위해 사람들에게 그것을 무조건 희생물 쪽으로 회유하여, 더 큰 폭력을 줄여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희생물 매커니즘은 단순히 희생물 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있어 중첩되는 모방으로 커진 욕망으로 인한 폭력 또한 죽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의 참수처럼 그 군중의 결정으로 인해 결과는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모든 신화에 있어서 감춰져 왔던 희생양 매커니즘은 신화의 성스러운 폭력으로 인해 계속 그 나라의 유지를 위한 연장의 도구로써 사용되어 왔다. 모방 위기가 악화될수록 욕망은 비현실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박해로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양의 역할을 찾아내어 성서에 기초하여 이 신화를 진정으로 이해하여 성서 또한 신화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인사이트 노트사회에 있어 사람들은 집단적 소속감을 느끼길 원하며, 그것은 힘든 때 일수록 더욱 그러한 현상이 심해지기에 남들과 같이 생활하고 튀지 않으려는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러한 현상이 심한 편에 속하는데, 물론 인구가 좁은 영토에 밀집 되어 있다는 요소도 한 몫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에서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져 남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 일수록 배타적으로 배척하며 살아간다는 특성이 두드러지게 보여지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우리는 모방을 통해 소극적으로 우리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의 욕망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면 많은 이에게 질타를 받거나 무리에서 홀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모방함으로써 보다 공동체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된 욕망을 가질 수 있고, 이는 공동체의 욕망으로도 직결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욕망으로 인해 인간사회의 발전된 문명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망과 행복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욕망은 상대적이라 할 수 있는데, 가령 자연에 사는 자연인들의 경우 그 날의 달콤한 나무 열매를 찾아내는 것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섭취함으로서 그 충족을 이루어 낼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 나무열매의 충족만으로는 우리의 행복과 쾌락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주위의 복권 당첨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일확천금의 꿈이라는 서로의 욕망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경쟁적으로 모방하게 되며, 서로를 경쟁적인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상대적인 욕망의 모방이 지속됨에 따라 우리는 욕망을 성취하기도 하지만, 이는 결국 다른 이들과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게 되고, 이는 극단적인 경쟁으로 몰게 되며 극단적인 경쟁으로 인한 집단의 스트레스는 쌓여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점점 이러한 학업적 모방 욕구로 인해 학업적 경쟁 또한 치열해지게 되었고, 이는 실제로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라는 집단의 스트레스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는 점점 팽배해지는 집단 스트레스의 해소라는 욕구 또한 가지게 됨에 따라 그것의 해소를 할 수 있는 희생양을 찾게 되고, 그들에게 집단의 스트레스를 야기시킨 위기에 대한 책임이라는 명목 하에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풀게 됩니다. 집단의 스트레스가 응축 될 수 록 희생양이 받는 피해는 커져만 가고,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은 하지 못한 채 집단적 폭력으로 인한 애꿎은 피해자만 생기게 되는 것이다.점점 심해지고 있는 학교 폭력, 따돌림, 혐오와 갈등의 현상 또한 이러한 것과 관련 있을 수 있으며, 이는 모방 폭력으로 인한 그 집단의 하나의 욕망 표출구가 하나의 대상으로 지목된다는 점에서 희생양 메커니즘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그 사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집단의 욕구와 스트레스가 집단의 특성과는 다르며 그 집단이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대상에게 나타나는 것이며, 그 사람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 대타자의 욕망과 폭력으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단체보단 개인, 강한 자 보단 약한 자를 지목하면서 그저 쟤 때문이라는 자기 기만에 절여져 살게 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사회를 병들게 할 요소가 아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해나가는 도구로서 희생을 최소화 시키고, 이러한 음지의 희생이 아닌 양지의 희생을 통해 평화를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 내용 요약현재 미국은 자본주의의 부유한 국가로 세계의 경제를 움켜쥐고 있다. 자본주의 강국인 미국을 만든 이 자본주의의 발전의 이면에는 어떤 요소가 있었을까. 흔히 자본주의는 산업혁명과 같은 기술발전이나 기존에 부유했던 나라들에게서 발생된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막스 베버의 경우, 기술 자체보다는 종교나 문화적 토대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탄생을 프로테스탄티즘과 연관지어 자본주의의 발전 양상과 의의를 당시대의 서구사회의 시대상과 연결지어 분석하고 있다.프로테스탄티즘이란 개신교로, 기존의 가톨릭에서 ‘항의하다’라는 뜻을 지녀 루터와 칼뱅등의 종교개혁을 통해 분리되어 나온 분파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는 금욕과 청빈을 미덕으로 삼았지만,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미덕이란 부의 축적과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직업이라는 소명에 충실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명의식과 이윤추구는 칼뱅주의에서 이에 대한 동기를 찾을 수 있는데, 네덜란드의 칼뱅주의에서 그들은 이미 신이 구원받을 자를 미리 정해두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이 그 구원받는 자라는 것을 확신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자신이 은총상태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최대한 금욕하고,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며, 탐욕적으로 재산을 저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세속적인 직업의 성공과 막대하게 불려놓은 자신의 재산은 신의 은총의 크기로 여겨졌다. 개신교도들은 향락을 멀리하고 금욕적이며 신의 소명인 직업에 충실하는 삶과 절약하여 돈을 모으는 삶을 가까이 하였고, 이러한 금욕적이고 거룩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는 자본주의의 탄생과 만나 서구 자본주의의 특유의 경건하고 정직한 직업윤리로 전승되었다. 현대 자본주의의 시대 속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강국인 서구사회의 자본주의 혁명의 기반을 볼 수 있고, 종교와 직업윤리의 공존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성장과 경제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근대의 사회 구성원들 중, 경제적으로 부유한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고, 또한, 다른 계층들 중에서도 그저 세대가 변해도 한 계급으로 계층 간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가톨릭에 비해, 프로테스탄트 개종자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일반 장인에서 대기업으로 옮겨 그 기업의 상층부가 되어 관리직이 되기도 하는 등의 계층 간 상향이동이 많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경제적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입장을 가져 부르주아 계층의 유지 또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기도 했다.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근대의 자본주의와 만나며 자본주의적 생활 방식의 발전에 기여하여 보다 기존의 부르주아들이 자본주의의 세계의 생존에 기여를 했다. 기존의 청렴만을 위한 봉건적 생활 방식에 대한 반감으로 삶의 형식을 새로운 형식으로 대체함으로써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티즘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상승하는 중산계급은 프로테스탄티즘을 받아들임으로써 보다 발전하게 되었는데, 단순히 재산을 불린 졸부로서 귀족층에 흡수되는 것이 아닌, 시대상에 휩쓸리지 않는 그들 고유의 계층을 유지하여 그들의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자본주의적 재산 투자의 가능성을 유지하여 그들 자체로 귀족을 넘어서 유지하게 되었다. 억제된 자기통제와 관습적인 윤리행위라는 생활 방식을 개신교적 윤리관, 인생관의 확대로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기존의 고리타분한 행위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경제적인 생활의 지속적인 발전에 유리하도록 그들 스스로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그 이면에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관이 기반이 되며, 이 금욕적이고 경제적인 종교 윤리는 근대적 부르주아를 성장시킨 원동력이라 한다.2.인사이트 노트많은 기업가 인들이나 성공한 유명인들의 강연을 들어 보면 어디에선가 종교적 색체가 묻어나오기도 한다. 또한, 개신교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성장한 미국이 어떻게 세계의 워너비가 되고, 자본주의 세계에서 리더가 되어 세계 경제를 이끌어간다는 점은 평소 종교에 관심이 없던 나에게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전통적인 종교는 부의 축적을 금기하고, 종교의 신념에 가까워지기 위해, 혹은 은총이나 구원, 자신의 회개와 윤회를 위해 금욕을 하며 남에게 퍼다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개신교도, 즉 프로테스탄트는 신이 내려준 소명인 직업에 최선을 다하여 부의 축적을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삼는다는 것에 대해 종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신념에 대한 나의 생각 정리를 할 수 있었다.단지 내세적 구원만을 바라며 종말만을 바라보는 기존의 종교에 현세의 생활 양상에 대한 기준과 질문을 던지면서, 무엇보다 종교인들 또한 자본주의적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막스 베버의 제시는 종교와 경제가 공존 가능하며, 이 둘이 지속 발전 가능한 경제상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서 종교적 윤리에 따른 건강한 경제활동의 장려를 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금욕주의적 개신교 윤리에 따라, 향락과 자신의 부를 위한 재산의 축적은 탐욕으로 간주되며 부의 유혹에 떨치지 못한 자는 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점도 있지만, 향락과 사치품 소비 또한 금기하여 재산의 지나친 소비를 억제하고 자본의 건강한 축적과 건강한 소비를 장려한다는 점은, 과거에 금기시 되었던 부와 향락의 추구를 재산의 축적과 향락으로 인한 의미 없는 소비로 나누어 기존의 청렴만을 위한 봉건적 윤리의 한계를 타파하고 사회를 위한 영리추구를 해방하여 세계적으로 현대 자본주의가 존재하게 한 근대적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재산의 저축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이는 자신의 사회계급의 상향에 영향을 끼치며 전체적 국민의 사회계급의 상승은 곧 나라의 경제력의 상승이 된다. 개인뿐만 아닌 기업 면에서도 자산의 저축은 사회 전체에도 이익이 되고 자본주의의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 자본가가 투자를 가능하게 하여 보다 기업의 발전과 생산성을 높이고 또한 투자로 인한 일자리 창출 또한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이익은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며 이는 원활한 자본주의 체제의 순환을 야기하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있어 재산의 저축은 자본의 저축이 되고 이는 사회 경제력의 축적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자본가가 절제되지 않고 의미 없는 소비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게 되어,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불가해지고, 결국 기업의 붕괴는 그 국가의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베버의 저축의 강조와 장려는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들어가며인간이 창조해내고 발명한 도구 중 가장 혁신을 불러 온 건 언어가 아닐 까 생각한다. 언어 없이는 우리는 이 사회 체제를 유지할 수도 없고 우리의 표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우리를 물질적 풍요로 이끌게 하고 지구 상 지배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해준 과학, 논리적인 생각의 정리와 더불어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탐구해주는 학문, 우리의 내제된 자아의 표현과 우리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예술 등,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아주 짧지만 이 것들의 조화로 풍요의 시대를 맞게 되는 21세기에선 거의 모든 것은 언어가 필수 불가결이다. 하지만,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도구 임에도 불구하고, 이는 통합되어지지 않은 채, 여러 갈래로 나뉘며 각 공동체 다 형태가 달라지고, 그 때문에 전 지구적 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다른 문화권들 사이에는 통역이 필요하다. 언어가 무엇에 따라 달라지는지, 나라 혹은 문화에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무엇보다 우리는 언어에 대해 아직 이 것이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알지 못한 채, 쓰고는 있지만 쓰임새는 대강 유추하여 쓸 뿐이다.“LANGUAGE THE CULTURAL TOOL” 의 저자 Daniel Everett(다니엘 에버렛)은 이러한 문제를 고찰하며 그의 방식대로 언어가 어디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그 만의 언어적 개념을 자신이 브라질 아마존 원주민 부족인 피라하 부족에서 연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저술한다. 그는 환경적, 문화적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언어에 대한 기원을 찾고자 한다. 현대의 다양한 언어와는 동떨어진 피라하 족의 언어를 연구하며, 영어와 그 밖의 세계 여러 언어들에 대해 비교 점을 찾고 이를 그 만의 문화와 언어간 관련성으로 풀어내었다.언어의 의미언어의 습득 – 언어는 인간이 어떠한 경위로 습득하는지우리는 먼저 이것에 대해 언어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습득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 되어 이미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가로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가령 하기 위해 입을 쓰고, 타자 치기 위해 키보드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인간의 언어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이를 기호로 나타내어 생각을 나열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말로 풀어내어 상대방을 이해시키려는 데 노력한다.이 생각과 논리를 말로 풀어낸다는 것에서 우리는 단순 머리 속에 생각 하는 것 보다 말로 풀어 쓰거나 말하는 것이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언어가 위의 우리의 의사소통 욕구를 해결해주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정신적인 체계 망으로써 쓰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저자는 언어가 문화적으로 개발되고 공유되며 언어는 일반적인 인간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고 이에 따라 인간의 문명의 발전이 이룩하게 된 것도 언어 덕분이라 말한다. 뇌 속의 추상적인 개념들은 언어를 배우지 않은 대상이라도 이 것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동물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의도성을 가지고 표현을 한다. 가령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나 강아지, 이들은 특정 행동을 하면 자신에게 어떤 좋은 결과를 인간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애교를 부린다. 특히 일부 길 고양이들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는데 이 때 운이 안 좋아 나쁜 사람에게 걸리면 해코지 당하고 학대 당하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을 피하고자 몇몇 개체들은 성인 남성을 피하고 여성이나 아이들에게만 다가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체계화 시킬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며 이 특성은 언어에게서 기원 된다. 따라서 언어를 통해 생각을 체계화하고 서로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이 것이 인간이 지구 상에서 지배적인 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저자 또한 인간 언어가 도구라는 것을 강조하며 의미와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발생하는 문화적 도구라 칭한다. 서론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 바벨탑에 대한 히브리 신화가 나온다. 이를 저자가 인용 한 것은 아마 불의 발견처럼 언어의 발명이 인간사에간에게 있어서 이 본능이 제일 강력해야만이 자연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본능과 욕구는 우리 유전자에 내제되어 있다고 하지만, 공동체적 동물의 특성인 reflex(반사) 행동과 같이 있어야 결과적으로 인간의 성공적인 언어 학습이 되었다고 본다. 사회적 동물의 경우 구성원 내에 한 개체를 따라하고 공동체와 같이 움직여야지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독단적으로 나가 생활 할 경우 그의 힘은 극도로 약해져 약해진 개체는 천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mimic(따라하기)의 경우 공동체를 이루는 동물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며, 이를 더욱 구체화한 반사 행동의 경우 특정 외부 자극의 제시에 따라 유도되는 행동 반응으로 이러한 행동을 유도함으로 공동체 내의 공유된 아이디어를 배우기 위한 수단으로 인간은 먼저 언어를 배우게 된다.인간 영아의 경우 걸음마를 떼는 데 생후 1년이 될 무렵 겨우 걷기 시작하며, 이 마저도 달리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든다. 반면 동물의 경우 길게는 1~2개월 정도 걸리며 기린, 송아지, 사슴 등의 초식동물의 경우 태어나자마자 바로 네 다리로 서기도 한다. 인간 유아는 다른 포유류보다 연약하며, 스스로 생활 할 수 없기에 어머니, 혹은 다른 보호자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성숙하여도 공동체 안 타인에게 서로 의존하며 상부상조하는 경향으로 객체의 생존이 아닌 공동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며 그만큼 타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대부분 인간들은 타인에게 평생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붙게 되었다. 공동체의 거대 화에 따라 이제는 공동체의 생존이 아닌 인간 종의 생존을 목표로 하나의 지구 아래 서로 공동체 의식을 가지며 이 거대한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더욱 집중하고 다른 부분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고, 이것은 인간이 상호작용을 숨쉬듯 하며, 광범위한 서로의 상호작용을 하게 만드는지 제스쳐를 이용하는 수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언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에게 구현된다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으로 이러한 인간의 신체적 플랫폼이 아닌 그들만의 다른 신체적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대뇌 플랫폼이는 뇌 자체의 해부학적, 기능적 조직을 플랫폼으로 두고 있으며, 이는 단어를 배열하여 문법적으로 문장을 완성하는 브로카 영역과 단어의 뜻을 파악하는 영역인 베르니케 영역이 이러한 플랫폼의 예시라 들 수 있다. 브로카 실어증은 뇌의 영역 중 브로카 영역이 손상 되어 생기는 질병으로 상대방이 하는 말과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나, 자신의 생각에 맞게 문법적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 된 베르니케 실어증은 겉으로는 말을 유창하게 하지만, 상대방의 질문의 의도와 자신이 하는 말의 뜻을 파악을 못하고 말을 뱉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앞서 말했던 ‘님’과 같은 침팬지의 뇌와 인간의 뇌를 비교하였을 때 인간의 베르니케 영역이 약 7배 더 넓고 그 때문에, 침팬지 ‘님’은 단어를 연속적으로 배열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이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한 마구잡이 외침에 불구하였고, 이런 차이 때문에 ‘프로젝트 님’은 실패로 예상 될 수 밖에 없었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인지 플랫폼앞서 말한 신체와 뇌의 플랫폼도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지만, 인지 능력은 언어의 기초가 되며, 이 능력으로 인해 인간을 다른 종과 구별 할 수 있다. 특히 아래의 5가지 일련의 중요한 능력은 언어의 기초를 형성한다.의도성우리의 생각, 신념, 욕망, 및 기타 속성과 자질을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지시하고 표현하는 방향성을 의도성 이라고 한다. 발신자가 언어 기호 시스템으로 구성하여 수신자가 이 기호의 형태를 인식 할 때 그 의미나 기능, 외부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의도성은 청취자를 이해시키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기호를 통해 상대방을 그 의미에 맞춰 인도하고 의도성을 가질장과 대조되게 ‘a’는 부정관사로 앞에 나온 대상이 아닌 다른 제 3의 다른 대상, 혹은 1개의 다른 대상을 지칭할 때 쓰이는데, 이를 통해서 ‘a…’라고 화자가 문장의 운을 떼면 청자는 화자가 앞에서 이야기 했던 내용이 아닌 다른 대상을 주체로 하여 이야기 할 것이라고 예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사로 시작되는 에피소드 문장을 사용 할 경우 청취자의 입장에선 다음에 말할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문화앞에서도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였지만, 마찬가지로, 문화는 언어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언어의 형성과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문화는 타인과 공유된 지식과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어 공동체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언어를 구성하기 때문에 문화는 언어의 생산자일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인지적 플랫폼인 관찰, 모방, 우연 등의 비 언어적 학습 등의 방법으로 공유 배경을 습득하여 언어를 창조, 개발해내고,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에서 나오는 언어이기 때문에 의도성, 대상 구별, 배경, 우연성 등의 요소가 달라질수록 언어 또한 달라지게 된다.3.언어와 문화이 중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요소는 문화로 문화를 구성하는 공유된 가치와 아이디어가 언어 구조를 다르게 결정짓는다고 한다. 파라하 언어에는 영어의 ‘orange’ 와 대치되는 해당 색 단어가 없고, 영어의 ‘kick the bucket’과 같은 영어 관용적 표현은 피라하 어로 직역 할 경우 뜻이 전달이 잘 안 되며, 뜻만 번역 할 경우 말이 주는 정확한 느낌과 의미를 느낄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자권 동아시아계인 한국어와 게르만어 파 영어의 문법적 구조와 단어 구성에 있어 많은 차이를 느끼는데, 한자어 중심인 한국어는 명사를 중앙에 두는 문법 구조 ‘SOV’(그는 사과를 먹는다)를 취하게 되는 반면,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영어의 경우 ‘SVO’(He eats 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