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독자가 되기 위한 자격은 무엇인가?-독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 모색-국어국문학과지금껏 문학이라는 것을 접해왔으나, 내가 참된 독자로서 문학을 향유했느냐고 물어본다면 자신이 없다. 더군다나 소설에 비해 시는 접해본 경험조차 미약하여 부끄러울 따름이다.국문학도이기 때문에 보통의 삶을 영위해가는 이들이 잠깐의 단맛을 위해 문학을 찾는 것과는 구별되는 태도로 문학을 접해야 한다. 수치를 근간으로 치열하게 문학을 접했어야 한다. 진작 완성되었어야 함을 알기에 반성하는 마음으로 시의 독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알아보려고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그런데 사실 시의 독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은 너무 막연해 보인다. 따라서 참고도서를 중점적으로 일반적으로 공인되는 독자의 자질을 밝히고, 나의 입장에서 내게 부족한 자질에 대한 반성하고, 필요한 요소들을 확인하고 또 체득해 나가면서 이상적인 독자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1. 시적 감수성의 고양유종호 선생은 탈무드의 ‘글자 한 자의 빠춤이나 더함이 전세계의 파멸을 의미할 수 있다.’ 는 말을 통해 옛사람들이 갖는 말과 글에 대한 엄격성을 얘기하였다. 현재는 과거의 예민한 잣대가 물러져 맑고 높은 것이 홀대되고, 안이하고 속된 것을 숭상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너무 무뎌진 것이다. 이는 문학의 향유자로서 시적 감수성이 둔감해진 것을 뜻하는 것을 물론 생활의 전반적 태도의 안일함에 대한 지적이기도 할 것이다. 깊이 공감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혼쭐에 콕콕 찔려 모든 이들이 정신수양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예민함을 깨울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문학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태도부터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첨예한 감각을 살려놓았어야 했던 것 같다. 노력은 저만치 버려두고, 무턱대고 시에 달려들었으니 시가 어려웠던 것이다. 시를 읽기 전에 세상에 대한 안목과 감수성을 깨우치는것 그리고 그 예민함을 감상에 적용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또한 이 감수성은 철저히 개인적인 수련을 통해서 터득해 나가야 한다. 시의관심을 두려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의를 통해 한 작품씩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 보는 것으로 시작해 시를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그 이후 흔한 시가 아닌 제목이 마음에 드는 시집을 사서 며칠에 한 작품씩이라도 읽었을 때 미흡한지라 지극히 개인적 경험의 투사에 의한 감상임에도, 그 시를 처음 봤기에 철저하게 내가 이해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그 감상이 해석공동체와 동 떨어지는 것일지라도 진짜 시를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하였다. 이렇게 한 오백 번 정도 하다보면 분명 성숙한 독자가 될 것임을 믿는다.유종호 선생은 시가 사상을 지녀야 한다는 이념 하에 서정시에 과도한 요구를 하면 안 된다고 밝히고 더 나아가 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아우슈비츠를 두고 어떻게 즐거움에 탐닉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나라 안팎, 나와 주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억압, 폭력, 불평등이 빈번히 넘실대는 사회적 분위기가 시에 교훈과 사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소 인정하고, 사회적 문제들을 외면하고 시에서 쾌락만을 찾는 것은 오히려 반역적 용기를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원리 때문에 문학 향유의 근원적 목적인 쾌락원리만을 고집하여 문학의 즐거움만을 탐닉하는 것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문학향유의 개인적 차원일 것이고, 사회 안팎의 문제들과 연관시키는 것은 사회적 차원일 것이다. 문학의 쾌락적 기능은 문학 향유의 기본적이고도 근원적인 것이기에 결코 외부 영향에 의해서 제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또한 개인적 차원에 있어서 쾌락추구 외에 또 하나 중요한 문학의 기능은 ‘감정 정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감정의 순화, 정화도 쾌락의 일종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향유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향유 방식에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7-80년대의 비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시민들로 하여금 ‘공동의 시대적 가치’를 추구하게끔 했다. 그였던가한 시대의 악이한 계급에 집약되어 있던 시절의 투쟁은얼마나 힘겹고 다행인 시대였던가고통의 뿌리가 환히 보여선과 악이 자명하던 시절의 자기결단은얼마나 슬프고 충만한 시대였던가세계의 악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선악의 경계가 증발되어버린 시대더 나쁜 악과 덜 나쁜 악이 경쟁하는 시대합법화된 민주화 시대의 저항은 얼마나 무기력한가구조화된 삶의 고통이 전 지구에 걸쳐정교한 시스템으로 일상에 연결되어 작동되는이 ‘풍요로운 가난’의 시대에는나 하나 지키는 것조차 얼마나 지난한 싸움인가욺음도 거짓도 다수결로 작동되는 시대진리는 누구의 말에서나 반짝이지만그것을 살고 실천할 주체가 증발되어버린 시대혁명의 전위마저 씨가 말라가는이 고독한 저항의 시대는이렇게 사회 문제들은 개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 그 위력을 떨치고 있고, 개인들은 짓눌린 삶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른 채, 누구에게 분노해야 하는지 모른 채 매일 지쳐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학은 개개인의 현실도피처로 쓰일 수 있고, 하루마다 차오르는 분노, 불안, 참담함 등의 감정을 순화해줄 수 있는 정화의 수단될 수 있다. 이런 목적으로 읽는 문학에서 독자들은 문학이 가지는 보편성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인간상을 보고 공감하고 위로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이 가진 문제가 곧 공동의 문제이며 연대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개인적 감상을 통해 사회적 연대의 의지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한편 ‘사상’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시가 단순하고 쉬우며,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시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창한 시대정신, 민중들의 염원, 공정한 가치를 담지 않더라도 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사상’을 담는 것이 주된 기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독자가 시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비록 사회?맥락적 이념성, 사상 등을 담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 시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선 ‘울림’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울림 없는 시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묵념, 5분 27초황지라 그 중 하나의 시를 읽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러한 분류는 학자들의 판단만큼이나 다양하고 완벽한 기준이 아닐뿐더러, 시의 감상에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읽을 때는 깜깜한 곳에서 조용히 오직 ‘시’와 ‘나’만이 촛불을 켜고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마주하는 감상’을 통해서 시 감상 이전에 시가 표명하는 내용, 이론에 휘둘려 시를 편협하게 해석하는 오류를 줄일 수 있다. 시의 감상이 외부적 요인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4번에서 이어서 언급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1940년대 저항시의 두 양상으로 이육사 외에 윤동주를 꼽는데, 윤동주의 시가 민족성에 가려져 언어의 미학이 빛을 발하지 않거나, 시를 지나친 민족주의적으로 과잉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3. 형식에 대한 고민시를 그냥 지나치는 이에 불과했을 적 범했던 과오 중에 하나가 시의 감상에서 내용만 보려했던 점이다. 내용만 보려니 감상에 있어 낯설고 어려운 시의 외형(형식)에 부딪히게 되었고 번번이 나의 시 감상은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다.시는 품격이나 질적 높이를 잴 수 없고 다만 예술로서의 품격과 높이는 형식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에서 시 형식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시인은 시를 쓸 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에도 신경을 쓰고, 심지어는 형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도 한다. 따라서 올바른 독자라면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형식에도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중학교 때 배웠던 김소월의 ‘가는 길’은 형식에 대한 탐구 없이 까마귀와 강물이 화자를 재촉하는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것만 뇌리 속에 박혀있어 읽기만 해도 내 심사가 다 급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시는 여기서 그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시는 김소월이 쓸 1920년대 당시 새로운 시형식의 모색을 위해 큰 공을 들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의 과정 중에서도 배열에 변형을 주어 그 형식을 꾀한 것이다. 이는 비록 자유시운동을 새로운 형식하고, 궁극적으로는 직속 창조자인 시인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시는 독자 읽는 순간 작동해야 한다. 시가 향유되는 동안은 마치 진공상태와 같이 어떠한 외부적 영향도 개입되어선 안 된다. 시와 나만이 만나는 사건만이 감상의 전제가 될 것이다.더불어 독자의 감상도 어느 한 쪽의 사념에 치우치면 안 될 것이기에, 유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시의 감상은 고정될 수 없고 진공에 부유하는 상태로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것이 맞는 일 같다.시인은 시를 쓸 때 자신을 그대로 시에 투영시키지 않고, 탈(퍼소나)을 쓰고 시를 기획하고 써 나간다. 시인은 탈을 쓰는 것을 통해 예술가가 가지는 깊고 복잡한 사유를 보편적 관념으로 끌어낼 수 있다. 김종오 선생이 언급하였듯 시인은 소시민의 탈을 쓰고 가장 소시민 다운 목소리를 통해 세계에 대한 자기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소시민의 탈을 쓰는 것은 시를 독자들에게 다가가게끔 하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은 대게 기쁠 때 보다 슬플 때, 행복할 때 보다 외로울 때 더욱 기대고 싶기 마련이다. 누구나 소시민적 입장에서 우울감을 느끼고, 아무리 완벽한 사람일지라도 우주의 커다란 질서 아래 자신이 보잘것없는 일개 인간이라는 것을 허무함을 느낄 것이다. 이럴 때 찾게 되는 것이 문학이니 시인들은 이에 호응해 주어야 한다. 때문에 고고한 시인의 콧대를 세우는 데에 힘을 들이기보다는 시가 좀 더 아래를 향할 수 있도록, 보편적일 수 있도록, 깊숙이 스며들 수 있도록 시를 썼으면 좋겠다.김준오 선생은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시를 인용하여 시 표면의 유머러스하고 호기있는 어조 속에는 자학적이고 나약한 슬픈 목소리가 숨겨져 있는 이중성을 간파해야 함을 설명하였다. 나약한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우는 소리 내며 드러내는 시보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어조로 표현하는 것이 훨씬 전달력이 크다고 생각된다. 독자들은 화자와 퍼소나 간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시를 읽을 땐 탈을 쓴 상태의 작가의 의도만을 파헤치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한 그 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信號 (황지우)시여, 침을 뱉어라 (김수영)‘고결하고 아름다운 고도의 땀이 응축되어 있는 하나의 완전체’시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지우 시인의 ‘묵념, 5분 27초’ 는 내 안에 구축된 시를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황지우 시인의 시들은 일방적 독자로써 내가 느끼기에 노력의 잉태물이라기 보다, ‘차가운 도시남자’가 툭툭 내뱉는 짧고 강한 칼날과도 같았다. 그리고 여자들이 ‘나쁜 남자’의 무심함에 끌리듯 이 불친절한 시의 매력이 느껴졌다.제목만 덩그러니 놓인 시, 벽에 붙여진 광고글을 그대로 적은 시… ‘이게 시냐?’ 할 정도의 당혹감. 그러나 이 당황스러움은 결코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렬했고, 왠지 모를 ‘위안’ 이었다. ‘위안’을 받는 다는 것은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일지 모른다. 이 위안은 샤갈의 그림을 봤을 때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샤갈 이 그림은 일종의 충격을 안겨준 작품이다.‘미술’ 이라는 영롱한 예술형식에 ‘샤갈’의 영혼이 흩뿌려져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대를 많이 했던 전시회였다. 그런데 포스터에 쓰일 만큼 가장 중심으로 두고 있는 작품 ‘도시 위에서’와의 첫 만남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그런데 이 그림 앞에서 한 동안 떠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저 우중충한 하늘빛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황지우 시인의 시를 접했을 때처럼 고귀하다고만 생각했던 예술의 형식에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요소가 투입된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예술에 대한 높은 장벽은 허물어졌다. 더불어 나에게는 한결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이 여유가 위로로써 다가왔다. ‘다이아몬드 빛만을 발하는 줄 알았던 예술이 이렇게 우중충해도 되는구나. 어쩌면 삶도 잘 다듬은 다이아몬드가 아닌 모난 돌멩이 같아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심지어 왼쪽 한 귀퉁이에 쪼그려서 마치 큰 일을 처리하는 듯한 자세의 남자를 그려 넣은 이 작품은 예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황지우 시인의 시와 유 흐르고 있는 ‘간주관성’ 이 전제가 된다. 나의 주관성의 심층으로부터 나도 미처 지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주관성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이 ‘또 다른 나 자신’의 존재가 전제된다는 것이다.‘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가‘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가리키는 ‘우리’는 ‘의미 공동체’이다. 얼핏 보면 ‘의미 공동체’는 어느 정도 한정된 집단을 명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의미공동체는 시간과 공간의 영속성에 의해서 과거와 미래에 계속 열려있게 되고, 제한적 성격은 희미해지게 된다. 현재 존재하는 ‘우리’는 의미공동체를 이루는 ‘類的(유적)존재’이다.‘문학이란 무엇인가?’황지우는 이 물음을 ‘우리가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로 전환시킨다. 문학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문학’의 함의는 ‘우리’의 의미 공동체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시적 정의와 닿는다. 이는 ‘문학’의 본질적 접근이 아닌, ‘진행 중인’ 정의에 대한 접근이다. 이러한 진행상의 정의를 통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문학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물음에 대한 도전을 체념해야하는 부정적 결과가 아니다. 이 역시 문학의 두드러진 특성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문학’은 고정된 양식이 아닌, 당대 의미 공통체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패러다임’ 같은 것이다.김수영도 역시 이와 비슷한 관점을 갖고 있다. 그는 시에 대한 사유를 확정짓지 않고 모호성에 기대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 모호성이 부끄럽지 않다고 얘기한다. 시 고유의 성질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모호성이라는 무기를 통해서야 비로소 시를 쓰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무한대의 혼돈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의하지 않음이 오히려 컴컴한 시의 세계에 다가가는 일말의 유일한 등불이 되는 것이다.김수영이라는 시인은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자신감의 부족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 다음 시를 못 시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지난 학기에 ‘문학이란 무엇인가’ 수업을 들으면서 한 학기 내내 이 문학이라는 게 대체 뭔지 고민하며 지냈는데 결국 내 나름의 결론은 ‘문학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괴물 같은 것’이었다. 명확하게 나타내려 할수록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잡으려고 할수록 멀리 달아나는 그런 괴상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깨달은 것은 문학 자체가 이상스러운 괴물이라는 것보다 문학을 정의내리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동이라는 것이다.이는 박남수의 ‘새’라는 시에서도 확인된다. 순수는 그 자체 일 때 가장 가치 있다. 순수를 겨냥하여 억지로 손에 넣으려 하면 순수는 더 이상 순수가 아니게 된다. 헛된 욕망의 결과로 손아귀에 넣은 듯 하지만 손을 펴보면 본질이 아닌 찌꺼기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이렇듯 문학을 억지스럽게 정의내리지 않는 것으로써 문학은 ‘새로움’이라는 고고한 도전정신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이라고 믿으려 한다.‘시적인 것’에 대한 추구앞서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계속된 물음이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로 인해 황지우는 문학에 대한 정의를 ‘범주’의 문제로 넘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그 자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닌 ‘범주’의 문제를 건드리게 되면서 문학은 ‘문학적인 것’으로 옮겨가게 된다. 시에 있어서도 ‘시’는 ‘창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것’의 ‘보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그래서 오히려 비시(非詩)에 접근하고, 그것들의 관계를 통해 ‘시적인 것’을 본다. 시적인 것을 ‘보면서 보여 주는 것’이 시라고 한다. 여기서 시인은 바로 ‘시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게 된다.영화 ‘시’에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미자도 역시 ‘시적인 것’을 보기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무기력하게 삶에 찌든 모습으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과는 대조되는 미자는 틈 날 때마다 자연을 바라보고 꽃을 만지고 느끼고 시상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도통 시는 써지지 않는다. 그러나 손자가 한 여학생의 자살을 부른 성. 여기에서 시인의 성립조건이 ‘시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자’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황지우는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누구나 쓸 수 있지만 결코 쉽게 쓸 수는 없는 것이 시인 것 같다. 영화에서도 시쓰기 수업 수강생들 중에 결국 시를 써서 제출하였던 것은 미자 뿐이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시인이 아닌 사람들은) 수면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나가긴 하지만, 깊은 심해를 들여다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해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도 역시 그렇다. 너무 두려운 일이기에 차마 쳐다볼 수 없지만, 이 전혀 시적이지 않아 보이는 심해를 제대로 직시해야만 시를 비로소 쓸 수 있을 것이다.진정한 가치를 지닌 시는 고도의 정제의 과정을 거쳐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쓰는 시가 아니라 시야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확장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그것을 내 안에서 정제하여 내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시의 내용과 형식김수영은 시를 쓴다는 것과 시를 논하는 행위를 나누어 각각 형식과 내용으로 구분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동의어가 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은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하면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한편 시를 논하는 것은 내용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행위이며 ‘세계의 개진(開陣)’이라고 일컫는다.‘개진(開陣)’이 갖는 본래의 의미에서 군사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시에 대한 논의’와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開’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시를 논하는 것은 시 연의 사이사이 비워진 틈을 ‘열어놓고’ 서로 연결해주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김수영은 세계의 개진에 대해 반대되는 말로써 하이데거의 ‘대지의 은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를 논하는 것의 반대적 행위인 시를 쓰는 것이 바로 ‘대지의 은폐’에 해당하지 않을까. 시는 다. 앞서 언급했듯 ‘시적인 것’의 포착을 통해 시를 쓰기로 했으면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포착도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형식이라고 주장하다. 이는 곧 시인이 쓰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그때그때의 형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고,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윤동주의 시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러 이들의 마음속에서 반짝일 수 있는 이유는 내용에 걸맞은 형식, 형식과 어울리는 내용을 갖추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청춘을 살아가면서 겪는 성장통, 숙고의 결과가 간결함이라는 형식으로 더욱 빛나게 되었다.황지우가 독자들에게 의도한 ‘당황스러움’ 역시 ‘당황스럽게 하는 형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그 형식이라는 게 형식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었지만, 파괴도 형식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시의 성립황지우는 시를 쓰는 것은 ‘시적인 것’을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적인 것’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시적인 것’의 개념 자체가 주관과 주관 사이에 열려있는 공통감각을 통하여 가고 있기 때문에 시인이 의도하는 ‘시적인 것’과 독자가 읽는 ‘시적인 것’이 일치할 수 있다. 황지우는 시의 소통기능을 중요시하여 보편적 감정을 유도할 수 있는 시에 대해서 말한다. 어떤 시든 한명이라도 시적인 감정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실패한 시라고 하며 이러한 시는 아예 존재조차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모두 의미공동체 안에 속해있기 때문에 의도가 100% 어긋나게 전달되는 시가 존재하기는 힘들다. 이런 전제 하에 낭만주의 또는 극단적 객관주의의를 비판할 수 있게 된다. 낭만주의는 주관성이 강할수록 독창성 역시 커진다고 주장하였는데 시적인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바탕에 독창성만 존재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독자들에게 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는 독자를 시의 향유 과정에 포함시키지 못한 비완성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한편 극단적 객관주의는 시는 어떤 주다.
혁신 교수·학습 지도안‘어르신 전기문 쓰기’프로젝트 수업창비 고등학교 국어 (하)3. 말과 글로 만난 사람[2] 인간 윤동주1. 국어 교육의 이해1.1. 국어과 교육의 성격국어과 교육은 우선적으로 언어의 속성과 기능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로서 이 언어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소통한다. 한국어도 언어이므로 언어가 지닌 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어의 속성으로는 대개 자의성, 체계성, 사회성, 역사성 등이 거론된다. 자의성은 소리와 의미의 관계가 임의적으로 결정되는 특성을 의미한다. 소리와 의미가 임의적으로 결합되었다고 해도, 언어는 일정한 단위로 분석할 수 있으며, 체계적인 방식으로 서로 결합하여 또 다른 언어 단위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엄연히 남는다(언어의 체계성). 이렇게 체계적인 특성을 지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의적 성격을 가지기도 하는 언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인 속성을 갖는다(언어의 사회성). 개인이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사회적 약속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전제적인 왕조차도 문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언어의 역사성).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언어의 기능이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언어는 사회적인 소통 도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적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사고를 하고 언어가 없으면 사고 또한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힘들다. 다양한 사고의 수단들이 발명되어 있으나, 중요하며 기본적인 소통 수단은 아무래도 언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어 안에서,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 언어는 사고력의 근간인 것이다.1.2. 국어과 교육 과정 개정의 중점언어 환경의 변화에 따른 ‘매체’ 관련 내용의 확대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변화된 언어 사용 환경의 특성을 반영하여 소통성을 높이려고 하였자체의 타당성, 연계성, 위계성을 높이고자 적극적으로 노력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 내용의 구성에서 현장 교사의 검토를 거침으로서 교육 내용의 적정성, 곧 타당성, 연계성, 위계성을 강화하려고 한 것이다..담화의 수용과 생산 중심의 국어 교육국어 교육 내용 자체의 변화로는 담화와 글의 수용, 생산 중심의 국어 교육 지향, 담화와 글의 생산, 수용 활동에 작용하는 맥락의 강조, 실제와 내용요소 간의 관련성, 내용 요소 간의 통합성 강조 등 세 가지 항목 등이 있다.개정 교육 과정 변화의 핵심에 놓이는 것은 종래에 내용 요소를 중심에 두던 틀에서 벗어나 내용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담고 있는 담화(글, 작품) 곧 ‘실제’ 범주를 중심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표현과 이해 부분을 예로 들자면 ‘실제’ 범주인 ‘정보 전달’, ‘설득’, ‘사회적 상호 작용’, ‘정서 표현’ 등이 1차 조직자로, 내용 요소의 범주인 ‘지식’, ‘기능’, ‘맥락’을 2차 조직자로 설정하여 교육 내용을 구성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내용 체계 표에서 나타나는 위치의 이동은 단순히 형식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국어 교육의 중심을 내용 요소에서 담화(글, 작품)로 이동했음을 뜻한다. 특히 이들 텍스트는 언제나 ‘담화(글)의 수준과 범위’로 구체화됨으로써 개정 교육 과정을 장르 중심의 교육 과정이라고 지칭할 만큼, 담화(글, 작품) 장르의 이해에 집중되게 만들었다.담화와 글의 생산, 수용 활동에 작용하는 맥락의 강조개정 교육 과정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맥락’의 범주가 새롭게 설정되었다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맥락 범주의 이러한 설정은 모든 담화(글, 작품)의 의미는 맥락을 통하여 비로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최근의 담화 연구의 실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언어는 고정적이며 객관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고까지 이야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맥락을 제거한다면 의미는 결정 불가능하게 된다는 정도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맥락 범주 익혀 진로를 개척하며 평생학습의 기본 역량과 태도를 갖춘다.- 학습과 생활에서 새로운 이해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비판적·창의적 사고력과 태도를 익힌다.- 우리의 문화를 향유하고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자질과 태도를 갖춘다.- 국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태도를 기른다.2.3. 대단원의 교수·학습 계획단원명차시학습내용단원의 길잡이 및 준비학습1- 학습 목표 및 주요 활동 개관- 면담의 필요성 이해하기- 면담 질문 써보기(1) 한국 최초의 우주인2-4이해- 면담 기사의 특성- 면담자의 질문 의도·전략·태도 및 면담 기사의 글쓰기 전략 알기- 적절한 평가 기준 및 항목에 따라 면담 기사 평가하기활동- 면담자의 질문 의도 파악하기- 적절한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질문 전략 구사하기- 적절한 평가 기준 및 항목에 따라 면담 기사 평가하기(2) 인간 윤동주5-7이해- 주변 인물을 면담한 내용을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 따라 정리하기- 전기문의 일반적 특성 이해하기- 전기문에서 주변 인물을 면담한 자료의 기능알기활동- 면담을 위해 주변인물의 정보 수집하기- 면담한 내용을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 따라 정리하기-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전기문 내용 생성 및 조직하기- 주변 인물의 삶에 공감하는 태도로 전기문 쓰기통합활동8- 면담의 질문 전략 파악하기- 전기문에서 다룰 요소 정리하기단원 정리 및 자기평가9- 단원의 주요 개념 정리하기- 자기 주도적인 평가를 통해 부족한 부분 보충하기2.4. 지도상의 유의점- 수업에 앞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면담이 가능한 학생들 4-5명을 조사하여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5-6여개의 모둠을 편성하도록 한다.- 면담 기사의 특성을 이해하고 면담 기사에 쓰인 글쓰기 전략과 정보의 신뢰성 등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면담으로 수집한 자료를 시간, 공간의 범주에 따라 정리하도록 한다.- 면담한 자료를 활용하여 전기문을 쓸 수 있도록 다양한 예시를 제시한다.- 전기문을 쓰기 전에 유의할 점을 숙지하도록 한다다. 한 인물을 면담하고, 이를 통해 전기문을 쓰는 과정은 무엇보다도 한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그 인물의 삶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더욱 깊은 연대감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 단원은 자신들의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학생들이 직접 정리하여 써봄으로써 그 분들의 삶을 이해하는 삶의 태도를 기를 수 있게 한다.모둠 별로 조원의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면담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원끼리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또한 ‘전기문 쓰기’의 활동이 단순히 전기문을 쓰는 활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면담 약속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바른 태도로 면담을 하고, 이 면담 내용을 토대로 면담 자료를 작성하는 등 여러 가지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모둠끼리 협동하여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역시 기를 수 있다.3.3. 프로젝트 수업 시행 계획① 소단원에 들어가기 이전 미리 반 별로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면담이 가능한 학생들을 조사한다.② 4-5명 정도의 학생들의 협조를 받은 이후에, 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원을 구성하여 5-6개의 모둠이 형성되도록 한다.③ 5차시 수업이 끝난 이후 모둠 별로 미리 협의했던 조원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와 면담 약속을 잡도록 지도한다.④ 6차시 수업에서 면담의 기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면담 시 면담 자료를 적을 학습지를 제공하여 다음시간까지 작성해 오도록 지도한다.⑤ 7차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조원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와의 면담을 통해 적어온 학습지를 바탕으로 전기문을 적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⑥ 7차시에 모둠 별로 작성하고 교사의 피드백을 받은 전기문은 최종 완성하여 수행평가로 제출하도록 지도한다.4. 프로젝트 수업의 설계 및 실제4.1. 소단원명[2] 인간 윤동주4.2. 소단원 학습 목표 설정- 전기문의 일반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주변 인물을 면담한 내용을 시간과 공간의 범주에 따라 정리할 수 있다.- 주변 인물의 삶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로 전기문을 쓸 수 있다.4.3. 시기를 보내셨지만 결혼한 이후에 행복한 가정을 꾸리시고 5남매를 모두 교육자로 키우시는 등 고생 끝에 행복한 삶을 보내고 계시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붙였습니다.15분학습지▶ 모둠별로 작성한 전기문을 발표하도록 한다.- 모두 전기문 작성을 마쳤죠? 1조부터 모둠 대표가 전기문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발표가 끝난 후에 모둠 간에 상호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지도한다.- 모두들 서점에 나와있는 전기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잘 써주었어요. 그러면 우리 각 모둠이 발표한 전기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먼저 1조의 전기문은 어땠나요?▶ 모둠 간 상호평가한 내용 이외에 피드백이 필요한 부분을 보충한다.- 네. 모둠 간의 상호평가 잘 들었습니다. 5조의 경우에는 면담 자료를 전기문에 꼼꼼하게 잘 옮겨쓴 것 같아요. 그런데 전기문은 인물에 대한 글쓴이의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5조의 개인적인 견해 첨가해 준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알겠지요?▶ 모둠별로 돌아가면서 작성한 전기문을 발표한다.- 1조는 장소의 이동에 따라 잘 정리하여 전기문을 써준 것 같습니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상호평가한 내용 이외에 보충이 필요한 부분은 선생님의 피드백을 받는다.- 네 알겠습니다.15분정리활동 내용정리▶ 전기문을 쓴 소감을 묻는다.- 모두들 발표를 잘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면담을 해보고 직접 전기문까지 쓰는 활동을 해보았는데, 느낀점을 발표해보도록 합시다.- 네 우리 학생들이 직접 면담을 해보고 전기문을 써보는 활동을 통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훌륭합니다.▶ 전기문을 쓴 소감을 말한다.- 저는 사실 할아버지를 좀 어려워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 저희 할아버지를 면담하고 직접 전기문까지 써보면서 친밀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할아버지의 인생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할아버지와의 대화거리가 생긴 것도 좋았습니다.- 저는 △△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가 마치 한선정하기
고전문학사기말과제1. 구비문학? 민담 『한국구비문학대계 8-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진주시 수곡면 설화 12 「까치의 보은」1.1 ‘까치의 보은’ 감상문‘까치의 보은’은 어린 시절 전래동화책이나, 전래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은비까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번 접했고, 또 흔히 ‘은혜갚은 까치’라 하여 어른들에게 옛날이야기로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야 ‘까치의 보은’이 그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설화 중에서도 흥미 위주로 전승되는 민담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번기회에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중 하나로 남아있는 ‘까치의 보은’의 원문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데, 원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구비 전승물이다 보니 대강의 줄거리들만 나와 있고, 원문으로 확정된 텍스트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판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설화들이 채록되어 있는데, ‘까치의 보은’을 채록한 것도 수록되어있다는 걸 알아냈다.보존도서여서 대출하는 데도 오래 걸렸던 ‘한국구비문학대계’ 중에서도 진주시의 설화를 채록한 8-3권에는 제보자가 경상도사투리를 사용하는 것까지 채록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된 ‘까치의 보은’이 실려 있었다.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는 ‘그 인자 그런께네 그 사람이 가는 중에 그 색시가 보였거덩. 고기(고게) 그 아까 죽인 뱀이가’, ‘그런데, 그 뱀이들이 우째 그 동안에 안 자아 묵었는데?’와 같은 청중의 반응까지 덧붙여 실려 있었다. 반응하는 내용들이 흥미로울뿐더러 내가 직접 구비문학의 전승 현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비문학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생동감,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기록이어서 뜻 깊었다. 지금까지 구비문학이라 하더라도 매번 확실하게 확정된 텍스트만을 접해보다가, 채록의 현장을 그대로 살려 적은 글을 통해 구비문학의 특성을 간접적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어린 시절 ‘은비까비’에서 보았던 과거보러 가는 주인공은 굉장히 잘생기고 불쌍한 까치들을 도와주는 정의 구렁이와 그 암컷 구렁이가 막아 도망가지를 못하고 있는데, 주인공을 막고 협박하는 시점부터 종소리가 세 번 울리기까지 시간이 꽤 흐른 듯한데, 청자의 말마따나 왜 ‘그 뱀이들이 우째 그 동안에 안 자아 묵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아마 그 종소리가 한을 품은 암컷 구렁이를 구원해줄 수 있는 계기, 신호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암컷구렁이도 분명 죽은 남편 구렁이에 대한 복수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굳이 인간을 해하여 복수를 하기보다 종소리를 통해 구원받아 평온하게 하늘에 올라가 남편구렁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마지막으로, 구렁이가 까치새끼를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섭리이기도 할 것인데, ‘동정심’이라는 인간의 감정이 개입하는 것으로 인해 구렁이가 죽게 되고 결국엔 까치들까지 목숨을 잃어야 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과거 보러 가는 주인공이 잡아먹히는 까치들을 보고 활을 쏘지만 안았어도,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다시 자연의 질서 속에서 평온하게 살아갈 것이었다. 인간이 함부로 자연의 영역에 침범하면 그 질서가 깨지게 된다는 교훈도 새삼 읽어낼 수 있는 것 같다.1.2 ‘까치의 보은’의 현대적 활용간디는 그 나라의 국격은 그 나라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얼마 전 버스차고지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을 조사한 결과, 고양이의 몸에 불을 붙여 그 불이 번지도록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꾸민 범행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고양이에게 불을 붙여 범죄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동물 학대이다.바로 며칠전에도 개를 풀어 자신이 키우는 반려고양이를 학대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연관검색어로는 ‘햄스터 믹서기’가 뜨는데, 찾아보니 햄스터를 믹서기에 넣고 작동시켜버리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게재되어 있었다. 이처럼 요즘 동물을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하기 보다, 그저 하나의 유흥거리, 자극적인 요소로 여기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미래고양이에게 남은 음식을 매일 갖다 주었는데 그 길고양이가 아이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되찾아 준다던지 아이가 길을 잃었을 때 곁에 와서 길을 찾게 도와준다던지 하는 식으로 보은을 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꿀 수 있다. 이를 영상이나 연극, 뮤지컬 등으로 만들어서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여 인권 뿐 아니라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캠페인을 펼칠 수 있다.1.3 덧붙임 ? 구지가의 현대적 활용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당시 우리나라는 유례없는 응원문화를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모두 단합된 마음으로 빨간 ‘Be the Reds’ 티셔츠를 맞춰 입고 ‘대~한민국 짝짝짝짝’과 ‘오! 필승 코리아’를 목소리 높여 응원하였고, 이 때문인지 대한민국이 기적적으로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우리나라의 월드컵 응원은 하나의 지속적인 트렌드가 되어 대규모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서울시청 등 광장에 모이게 하였다.그러나 2002년 월드컵이 있은지도 10년 넘게 지난 지금 축구경기에서 쓰이는 응원가는 여전히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다. 응원을 주관하는 측에서 여러 응원가를 만들어내기는 하였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구지가와 같이 주술성이 돋보이는 구비문학을 차용하여 운동경기 응원가로 활용해보는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구지가는 집단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승리를 얻어내기 위해 여럿이서 응원하는 현장에서 쓰이는 응원가로 제격인 것이다.더구나 구지가는 단순하면서도 흥미성을 갖추고 있으며, 본래 주술적인 의미로 쓰였으니 응원가로 쓰이기에 더욱 적절하다 생각된다. 또한 응원단들이 한 마음으로 승리를 기원하며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주술적인 의미가 더해지리라 생각된다. 더불어 외국과의 국제경기에서 우리의 문학을 차용하여 만든 우리의 응원가를 사용한다는 것은 더욱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민감한 일본과의 한일전의 경우 구지가계 옥설 理屋說」 『동국이상국집 5』 한국학술정보 20062.1 ‘이옥설’ 감상문이옥설은 이규보가 행랑채 세 칸을 수리하면서 느낀 바를 말하고 있는 수필형식의 글이다. 비가 샌지 오래된 채로 방치된 두 칸은 모두 썩어 못쓰게 되어 경비가 많이 들었으나, 비를 한 번밖에 맞지 않은 나머지 한 칸은 재목이 완전하여 경비를 적게 들이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었다는 경험을 통해 사람의 일, 나라의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임을 얘기하고 있다. 아주 일상적인 일을 통하여 이규보는 잘못이 있으면 이를 일찍이 깨닫고 미리 바로 잡아야함을 전달하고자 이옥설을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이옥설의 이러한 내용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진실을 원하면서도,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워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령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되는 경우, 자신에게서 부정적인 모습이 발견되면 그것을 믿지 않으려 하거나 회피해버리려고 한다. 더러는 역정을 내는 것으로 그 문제에서 멀어지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만큼, 자신의 약점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현명하고도 중요한 길인 듯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글이었다.이옥설을 읽어보면 마치 요즘 유행하는 에세이류나 수필집, 블로그에 쓰는 글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분량이 많지 않고, 주제가 무겁지도 않고 가벼운 일상적인 이야기가 위주로 된 것이 주요 공통점이었다. 요즘은 소설마저도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문학보다는, 실용서적이나 에세이, 산문집이 유행하는데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가 이미 조선시대부터 있어 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또한 이를 이규보가 ‘설’장르를 중국에서 들여와 조선에서 처음 쓴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 이규보의 높은 안목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설’이라는 것 자체도 주변에 대한 관심과 깊은 통찰이 없이는 쓸 수 없는 글이기에 이를즘 초등학생들은 워낙 전자화된 기기 속에서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에 직접 글을 쓰는 것에 대해 귀찮아하고 막연해할 수 있다. 때문에 ‘설’쓰기를 하기 위해 교사가 구체적인 글감을 정해서 일기를 쓰도록 지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가령 대청소를 한 날이면 ‘대청소’를 하면서 느낀 바를 써보라고 주제를 던져주고 일기를 쓰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벤트적인 것 외에도 ‘경설(鏡說)’과 같이 특정 사물을 보며, 사용해보며 느끼는 바를 써보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초등학교 때부터 이러한 ‘설’ 쓰기를 통해 학생들이 사물을 대하는 관찰력과 함께 그것이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사고력 역시 높이고, 무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는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3. 국문문학? 채수, 이복규 편저 『설공찬전』 시인사 19973.1 ‘설공찬전’ 감상문‘설공찬전’의 원문을 읽어보니, 저승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단테의 『신곡』과 유사했다. 특히 공통적인 것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죄인들은 각기 저마다 생전의 죄로 인해 끔찍한 벌을 받는 형상을 하는데, 특이한 점은 생전의 죄와 연관된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령 도둑은 그 형상이 뱀과 자주 바뀌게 되는데, 이는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도둑질 당하는 벌을 받게 된 것이다. 또 타인을 분열시킨 자는 그들 스스로가 크게 찢겨 내장을 다 드러낸 채 다니게 되는 는데 이러한 저승의 모습은 ‘인과응보의 원리’가 그대로 재현된다는 것을 구체적인 양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에서도 역시 ‘이승에서 존귀히 다니고 남의 원한살 만한 일을 하지 않고 악덕을 베풀지 않았으면 저승에 가서도 귀하게 다니고, 이승에서 사납게 다니고 각별히 공덕 쌓은 게 없으면, 저승에 가서도 그 자선도 사납게 다니게 된다.’는 구절을 통해 이승에서 덕을 베푼 사람은 저승에서도 복을 받게 되지만, ‘주전충’처럼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의 죄를 저지른 이
교육행정 자체감사제도의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오늘날 단위학교는 자율권이 확대되고 있으며 학교장을 중심으로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교육활동을 통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 이렇게 단위학교에 맡겨진 자율성 및 의사결정의 권한 확대는 책무성의 확보가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러한 책무성 확보의 수단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교육행정 자체감사이다. 이러한 교육행정에 대한 감사는 다른 일반 행정 분야와는 다르게 감사자체가 하나의 교육활동이어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고도로 복잡해진 교육행정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면서 학교단위의 책임경영이 올바르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교육행정 감사의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교육행정 자체감사는 감사기구의 조직상, 인력상, 활동상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문제점첫째, 감사조직의 독립성이 결여되어 있고, 감사의 방향, 계획, 감사결과 처리시 다단계의 결재과정으로 단계별 결재과정에서 처리방향이 상당부분 왜곡될 소지가 있으며 감사요원이 감사와 관련이 없는 감사이외의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인원대비 업무량이 과다하였다.둘째, 감사요원의 전문성이 부족하며, 자체감사인력 충원방식에도 여러 전문분야에 관한 지식을 소유한 인재들을 확보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감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하여 감사 요원중 시설, 전산, 급식에 관한 감사를 행정직이 수행하고 있어 전문분야에 대한 감사업무 수행이 어려운 실정이며, 학사분야에 대한 감사요원은 교육전문직 1명이 담당하고 있어 감사대상기간을 고려할 때 형식적 감사에 그칠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감사요원이 감사하여야 할 감사대상 업무대비 감사요원의 수가 현저히 부족하여 감사자체가 부실화 될우려가 있었다.셋째, 정보화된 사무환경에 맞는 감사보다는 전통적인 감사기법을 고수하고 있다. 단위학교의 사무환경이 급격히 정보화 되어 감에도 불구하고 다량의 수감 자료를 제출받아 감사를 시행하고 있어 일선학교의 업무부담 가중 및 교직원의 시간과 인력 등 불필요한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넷째, 공무원의 징계, 경고 등 신분상 처분은 증가하여 공무원의 창의적?능동적 업무수행이 위축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대안첫째, 지역교육청에 감사담당관을 신설하여 교육장 직속으로 감사기구를 개편하여야 한다. 또한, 감사요원이 소신껏 감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임용시부터 감사업무를 전담할 수 있는 감사 직렬의 신설을 고려하여야 한다.둘째, 감사요원의 전문성 확보를 위하여 감사요원의 정기적 직무연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자체교육연수원의 교육과정에 감사직무 교육과정을 신설하여 현재의 감사요원 직무교육 및 미래 감사요원을 양성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감사요원의 선발에 있어 보다 신중을 기하고 감사요원으로 임용하려는 자에 대하여 다면평가를 실시하거나 인사위원회의 심도 있는 검증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무에 노련한 경력자 중에서 선발하여야 한다. 그리고 감사 전문성 확보를 위하여 전문분야 감사요원을 확보하여야 하며 감사와 관련 없는 업무를 다른 부서로 이관하는 업무 재조정을 통하여 감사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