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연인]을 읽고...많은 고전 문학이 있지만, 조금은 알려지지 않았을 법한 책을 읽고 싶었다. [아들과 연인]은 제목이 흔한듯 흔하지 않은 듯 왠지 어떤 표준적인 기준 이상의 내용을 상상하며 선뜻 접하게 된 책이다. 아마도 이 작가의 유명한 작품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영향을 받아 그랬나 싶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많은 독자에게 영향을 준 유명한 작품이었고, 또한 나의 협소한 기준으로 본 제목은 숭고한 관계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영국 소설가인 데이비스 허버트 로렌스의 가정환경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그의 자전 소설이라고도 불린다.이 책을 읽는 동안 긴 호흡이 필요했지만, 그들의 환경과 삶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생하게 그려져 매우 현실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옆집에 사는 이웃처럼 그들을 상상하며 읽어 갈 수 있었다.19세기 중반에 탄광 개발이 확대되어 탄광촌에 터를 잡게 된 광부인 모렐과 기사의 딸로 교양있게 자란 거트루드(모렐부인)의 결혼생활은 각자의 자라온 삶과 성격 등의 차이로 부부는 잦은 다툼을 되풀이한다. 그들 사이에 큰아들, 둘째 딸, 셋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녀의 관심과 사랑은 폭력적이고 저속한 남편을 대신해 큰아들 윌리엄에게로 향한다. 그러나 큰아들인 똑똑한 윌리엄은 런던으로 가서 높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던 중 약혼녀를 데리고 집으로 와서 소개하기까지 하나 모렐 부인은 윌리엄을 힘들게 하는 약혼녀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윌리엄 또한 어머니와 약혼녀와의 사랑 사이에 갈등을 겪으나, 결국엔 얼마 뒤 폐렴으로 죽게 된다. 그 후 모렐 부인의 애착은 둘째 아들 폴에게로 옮겨지고 폴 또한 어머니를 존중하며 의존한다. 그러나 연인과 같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강했기 때문에 심약한 폴은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폴은 너무나 종교적인 미리엄과의 정신적 교제를 하였으나 모렐 부인은 미리엄을 무시하고 꺼렸다. 폴은 동시에 자극적이고 육감적인 클라라 부인과의 육체적 사랑을 하였으나 그는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것과 같은 사랑을 모두에게서 얻지 못했다. 이렇게 독립적인 성인으로 사랑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인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폴은 계속 방황하며 자기중심을 잡지 못한다. 다음 모렐 부인과 폴의 대화에서 볼 수 있다.“그런데 어머니, 난 좀 어떻게 된 것 같습니다. 난 지금 클라라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아니 그 누구와도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아직 진실로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왜 그런지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은 절대로 그런 여성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요.”“두고 보자꾸나, 얘야.”결국, 폴은 모렐 부인의 죽음 뒤에야 혼자가 된다.예나 지금이나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은 변치 않는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다 자녀 자신을 위한 것이라 치부하고 있지만, 한 독립체로써 인정하지 않는 관심과 사랑은 자녀에 대한 집착으로 여겨지며, 자녀는 현대시기에서 말하는 영원한 마마보이로 남겨지기 쉽다.모렐 부인은 남편에 대한 기대를 아들에게 전가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아들들 또한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게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큰 울타리는 평온하고 안정적이지만, 길들여진 그들은 사회에서는 불안정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지금 현실적 시각에서 본다면 아마 다 이 정도는 부모의 관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히려 더 자식을 위해 학업 진로며, 성장, 취업, 결혼까지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는 게 드물다. 너의 부모이고, 더 인생을 겪어봤다는 권위적 베이스로 부모는 자녀에게 책임보다 강요를 더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길들여진 강요로 인해 우리는 보호받고 관심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어느새 이 작품의 제목처럼 아들과 연인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자신의 못다 한 행복과 꿈을 자식에게만은 꼭 이뤄주고 싶다는 부모들의 욕망이 자녀들에게 투영되어 그들을 성숙시키는 게 아니라 이기적 사랑으로 한 인격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많은 여운이 남는다. 부모로서의 역할과 관심의 영역 그리고 자식으로 해야 할 역할과 자기 기준의 확립이 있어야 한쪽만이 아닌 서로의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