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단. 비효율과 불편함. 하지만 매력적인.낯설다. 책 표지의 계단을 보며 생각했다. 고층 건물의 삶이 익숙한 현대인에게 계단은 가깝지만 먼 존재다. 간혹, 엘리베이터가 수리 중이거나 급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니면 계단을 이용할 일은 없다. 계단은 힘들고, 느리니까. 비효율적이고, 불편하니까.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자신이 겪어온 경험, 성장의 과정에서 맞닥뜨린 11개의 주제를 계단에 비유했다. 힘들고,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불편한 계단에. 왜? 계단은 차근차근 밟아 올라야 한다. 튼튼한 두 다리가 필요하다. 힘껏 발을 내딛어야 한다. 누구도 대신 계단을 걸어줄 수 없다. 내가 걸어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와 다르다.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많은 책들이 빠르고, 편한 길을 얘기한다. ‘자, 여기에 올라 타.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야.’ 반면, ‘열한 계단’은 친절하지 않다. 오히려 도발적이다. ‘첩경은 없어. 난 이렇게 힘들게 올라왔어. 올라와 볼래? 다만, 거기 그대로 앉아 있는 것보단 불편할거야.’ 심지어 겁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중반을 넘어 후반에 다다를수록 점차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 하지만 피해가선 안 된다. 당신이 이 책을 읽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부터 불편함을 권하고, 어렵겠지만 피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책.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심호흡 한번 하고 책장을 넘긴다.● 저자의 열한 계단. 치열한 고민, 내면의 성장.저자는 인생의 첫 번째 책인 《죄와 벌》을 통해 계단을 오르는 여정을 시작한다. 열여덟. 이전까지 어떤 책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고백과 함께 저자는 삶의 계단을 향한 첫 발을 내딛는다. 로쟈와 소냐의 삶. 로쟈의 강력한 의지와 실천에 끌린 열여덟 소년과 소냐의 인내와 구원에 더 마음이 가는 어른이 된 소년의 이야기. 하나의 텍스트를 놓고 막 계단을 오른 ‘나’와 더 계단을 오른 ‘나’의 이해와 감상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저자의 솜씨. 저자는 어디까지 올라가 있는 것인가.학교를 졸업하고, 저자는 치열한, 만만치 않은 삶을 산다. 대입 실패. 재수생활. 학과 부적응. 학사장교 부적응. 사회 부적응. 자동차 사고. 우울증 치료까지. 삶의 귀결이 극단적 선택이 아닌 것이 오히려 이상해보일 정도의 삶.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 차라리 몸부림으로 보일 정도로 치열한 삶.이 과정에서 저자는 구원을 찾아 성서를 찾고, 붓다를 보며 구원에 이르는 두 가지 길을 통합한다. 이후, 니체를 통해 삶의 시선을 ‘신’이 아닌 ‘인간’의 세계로 돌린다. 멈추지 않고 ‘우주’를 생각한다. 이상주의자로 성장한 저자는 군대에서 고초를 겪고, 사회로 던져지며 현실을 받아들인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며 ‘소사’의 위로를 받고 사고로 죽음을 경험하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결국 자아로 귀결되고, 마지막으로 그것의 초월에 대해 생각한다. 자아의 경계에 선다.인상적인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끝까지 밀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면 질끈 눈 감고 도망치거나 눌러 앉아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삶이 질곡으로 다가와도 멈춰 서지 않고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모습. 순례자의 모습이라 하면 지나친 헌사일까.● 내 앞에 펼쳐진 계단. 표류가 아닌 항해의 삶.저자가 앞서 밟은 각각의 계단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내게 위로가 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통해 지금 내가 영위하는 삶의 모습이 당연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다른 대안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에르난데스 게바라를 통해 역사 속의 성인이나 현자가 아니더라도 용기 내어 이상을 좇는 삶이 가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때때로 그 이상이 부담스럽고, 힘에 부칠 때, 잠깐 멈춰 서서 현재의 사소함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도 있음을, 그리 해도 괜찮은 것임을 메르세데스 소사는 속삭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