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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부전 속 나타난 배금주의와 현대사회의 배금주의
    과 현대의 놀부들1. 배금주의1-1. 배금주의의 정의와 등장 배경1-2. 한국의 배금주의2. 속 나타나는 배금주의의 경향2-1. 놀부2-2. 매품팔이3. 과 현대의 놀부들1. 배금주의1-1. 배금주의의 정의와 등장 배경지난 해 6월, 산을 오르던 50대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결국 돈을 노린 범행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12월, 서울 강남에서는 부모님의 유산 상속에 불만을 품은 동생이 친형을 납치하려다 구속됐다. 안면이 없는 이를 향한 우발적인 살해사건도, 피를 나눈 친형제를 향한 계획적인 납치사건도 모두 ‘돈’을 노린 범행이었다. 이처럼 ‘돈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며 관념적, 정신적인 가치들을 간과하는 경향이나 태도를 ‘배금주의(拜金主義)’ 라고 한다. 숭배할 배, 돈 금이라는 한자어의 뜻 그대로 배금주의는 돈을 숭배하며 가치판단과 행동양식을 결정하는데 ‘돈’, ‘부’를 우위에 둔다. 이러한 배금주의는 18c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생산방식이 수공업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뀌게 된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발달한 ‘자본주의’에 의해 널리 퍼졌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산 방식이 수공업에서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뀌면서, 우리 사회는 점차 산업화 되었고 과학기술은 발달했다. 산업 생산물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고,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지나치게 물질에 의존하는 삶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질적인 가치들이 중요시 되고 정신적인 가치들은 간과되면서, 세계를 ‘부’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폐해, 배금주의가 나타난 것이다.자본주의의 이면 중 하나인 배금주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첫째로 사회 공동체는 더 이상 힘을 가지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토지로 묶인 중세적인 의미의 공동체 뿐 아니라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실현하는 공동체 모두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 의해 붕괴되었다. 중세시대의 공동체는 바로 ‘토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토지의 주인인 영주, 지주의 밑에 농사를 짓는 소작농들이 하나의 토지 공동체를 이루요해진다는 의미이다. 개인이 이윤 획득을 목적으로 일하고, 그 결과인 ‘돈’을 가장 중요시 하게 되면서 사회에는 점차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눔’ 혹은 ‘배려’와 같은 가치들은 사라지고 개인의 편리와 이익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이는 곧 도덕성의 상실로 이어지는데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개인’만의 이득을 추구하게 되면서, 이러한 이기주의는 곧 타인에 대한 배려 혹은 공감의 상실로 이어졌다. ‘돈’이라는 가치 앞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 혹은 도덕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아진 것이다. 사회 정의는 사라지고 윤리 의식은 마비 되면서 세계는 점차 인간을 경시하게 되고, 부의 가치를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 역시 파괴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배금주의를 시작으로 모든 문제가 톱니 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가치가 흔들리는 배금주의의 폐해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는 인터넷 1인 미디어 플랫폼인 ‘아프리카 TV’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초기엔 다양한 컨텐츠, 쉽게 만들 수 있는 컨텐츠를 지향하는 획기적인 플랫폼으로 큰 인기를 끈 아프리카 TV는 더욱 더 자극적인 내용을 내세우는 경쟁으로 변질되면서, 더 자극적인 내용을 위해 인간의 도덕이나 윤리를 무시하는 컨텐츠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큰 개가 작은 길 고양이를 물어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방송하거나, 머리에 불을 붙이는 등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윤리의식이 마비된 채 더욱 더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돈으로 환산 할 수 있는 ‘별풍선’을 받기 위해서다. 다른 모든 가치들보다 ‘돈’의 가치가 우위에 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영화 속에서도 재현된다. 영화 속 재벌가의 아들 조태오는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 이야기하는 여자를 아무런 죄의식이 없이 죽인다. 자신의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트럭 운전 기사의 죽음 역시, 조태오에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주지 못한다. 조태오는 도덕성은 돈 앞에서는 빛이 바랜 가치일 뿐이다.1-2. 한국의 배금주의세계를 휩쓴 배금주의는 1930년, 일제 강점기의 한국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단기간에 신식문물들과 유럽의 산업혁명을 받아들이고, 자본주의적 세계관 앞에 전근대적인 전통적 도덕관이 붕괴되면서 1930년의 조선은 개인의 이익 추구를 위한 물질적인 사고관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초기 자본주의 사회 속, 1930년의 조선에서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황금광시대’가 열렸다. 狂. 글자 그대로 일확천금의 이상 앞에 윤리의식이 마비된 미친 사람들 천지였던 것이다. 김유정의 속 영식이처럼, 가난한 농민들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남녀노소, 신분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모두 다 금광에 투기를 시작했다. 황금무용론이라는 글을 통해 “돈, 돈. 황금! 얼마나 위력이 있는 괴물이냐. 돈이 없으면 소위 황금부족증이라 하여 얼굴이 새하얐고, 돈이 있으면 얼굴이 누린누린 하여진다” 라며 금광열을 비웃던 채만식마저도 결국 금광에 투자하게 할 만큼 1930년대의 황금狂 시대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의 이면엔 기존의 삶의 가치, 방향성을 잃고 물질만을 쫓게 된 이들과 그러한 사회 속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게 된 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김동인의 속 돈에 매수된 남편과 의사에 의해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공동묘지에 묻힌 복녀처럼, 계용묵의 속 지전과 함께 물에 빠져 사라진 백치 아다다처럼 더 이상 사회정의와 윤리 도덕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 경시 풍조와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사회가 된 것이다.2. 속 나타나는 배금주의의 경향2-1. 놀부조선 후기의 현실을 담은 우리의 판소리계 소설 . 못된 형 놀부와 착한 아우 흥부, 결국 동생을 쫓아낸 못된 놀부는 벌을 받고 착하게 산 흥부는 복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내용을 담고 있는 흥부전의 이면에도, 배금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 있다. 먼저 흥부전의 배금주의를 이해하려면 흥부전의 배경이 되는 조선 후기의 사회부터 알아야 한다. 흥부전는 인물이 바로 ‘놀부’이다. 놀부는 베풀기만 하며, 남의 일을 돕느라 자기 입에서는 풀칠도 못할 만큼 착한 동생 흥부를 늘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리고 결국 ‘좋은 일만 하느라고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흥부가 미워서’ 흥부네 부부를 내쫓고 만다. 놀부에게 ‘나눔’ 혹은 ‘베품’, 더 나아가 ‘우애’ 같은 도덕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놀부에게 중요한 건 바로 자신이 손에 쥘 수 있는 ‘재물’이다. 이러한 놀부의 배금주의적 가치관은 제사를 지내는 모습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흥부가 내쫓긴 후, 가난에 못 이겨 놀부를 찾아갔을 때 맞이한 늙은 종은 놀부가 ‘제사 때마다 음식은 차리지도 않고 음식 대신 접시 위에 엽전을 담아 놓았다가 도로 쏟아 내오는데’ 라고 이야기한다. 조선시대의 제사는 관혼상제의 하나인 ‘제’에 속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 중 하나였다. 왕가에서도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큰 행사로 삼았을 정도로 중요했던 조선시대의 의례인 제사이지만, 놀부 앞에서는 그저 형식상의 의례일 뿐이다. 놀부는 그저 형식상으로만 제사를 지내고, 그마저도 제대로 지내지 않고 ‘돈’을 통해 지내려 한다. 또한 제사 중 몇 푼이 사라지자 엽전을 꿰어내어 올린다. 조선시대의 전통적 가치관이 ‘돈’이라는 물질 앞에서 무너져가는 것이다. 놀부의 배금주의가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인 밥을 빌어먹으러 찾아온 흥부를 쫓아내는 장면은, 놀부의 못된 심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놀부는 가난에 못 이겨 찾아온 동생 흥부를 보며 ‘빌어먹기에 도가 터서 달래서는 안 갈 테고, 주면 또 올 텐데, 죽어도 그냥 굶어 죽지 맞아 죽을 생각은 없다 하고 다시는 찾아올 엄두가 나지 않게 혼쭐을 내 줘야겠다’ 생각해, 흥부의 볼기짝을 힘껏 내리친다. 조선시대에서 장유의 관계의 기본이 되는 형제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돈’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즉, 놀부는 ‘우애’라는 인간의 도덕 혹은 부모자식간의 사랑처럼 가장 가까운 감정보다, ‘돈’의 가치를 더욱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곡동생 흥부가 등장한다. 이 흥부의 모습에서도, 역시 배금주의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놀부에게서 쫓겨난 흥부는 그 뒤 품을 팔러 다니다 가난에 못 이겨 관청에 곡식을 꾸러 간다. 그러나 호방은 곡식을 꿔주는 대신 다른 제안을 해온다. 바로 곤장 열 대를 맞고 한 대에 석 냥씩, 서른 냥을 받으라는 제안이다. 이러한 제안은 속에 있는 것만이 아닌 실제 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매품’팔이라는 행위였다. 당시 매품팔이는 불법이었으나,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공공연히 행해졌다. 조선 정조 5년, 성대중의 잡록집 속 먹고 살기 힘들어 매품을 팔아 살아갔던 백성들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삯을 받고 매(곤장)를 대신 맞는 매품은 실제로 존재했던 행위였다. 흥부는 ‘여러 날 굶은 몸에 감영 곤장을 맞게 되면 몇 대 안 맞아서 죽을 것이오’라며 간청하는 아내를 두고도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매품을 팔러 간다. 즉, 병약한 몸에 곤장을 맞으면 목숨이 위험하거나 몸에 큰 무리가 갈 것을 알면서도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매품을 팔러 간 것이다. 이렇게 흥부가 자신의 몸을 담보로 ‘돈’을 위해 매품을 파는 장면은, 돈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흥부는 단순히 돈을 벌고자 나간 것이 아니라, 당장 가족의 생계가 위태로워 먹고 살 길이 없어 매품을 팔았기에, 배금주의적 태도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 혹은 목숨’이 돈과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자체가 돈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다는 배금주의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3. 과 현대의 놀부들 속의 놀부는, 우리의 현실과 멀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하루에도 몇 건씩, 돈을 노린 강도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부모님의 영정 앞에서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일어난다. 어이가 없네, 라는 유명한 명대사를 남긴 영화 속, 돈으로 사람의 죽음을 없던 일로 무마시키는 일은 영화 속만의 일이 아니다. 현대의 사회는 돈 앞에서, 아니 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앞에서 병들고 무너T 1
    인문/어학| 2021.02.15| 5페이지| 1,000원| 조회(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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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뤼미에르 피플> <큐티클> <표백>과 함께한 현 사회의 구조적 문제
    소설 과 함께한 현 사회의 구조적 문제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이다. 살만한 나라들이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율, 노인 빈곤율은 하늘을 뚫고ㅡ 평균 수면시간이나 아동 삶 만족도와 같이 삶의 만족도는 바닥을 찍는다. 누구 말처럼 ‘안 좋은건 다 해먹는’ 한국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와 같이 타고난 부와 권력으로 만들어진 가시화 되지 않는 계급에 대한 토론이 거세다. 공개 채용된 인원 중 반은 낙하산이라던 인터넷 상의 괴소문은 사실이 되어 뉴스 헤드라인에 떠올랐다. 집 값이 이렇게 비싼데 어떻게 결혼을 해요? 애 낳으면 제 직장은요? 그래도 나라가 굴러가려면 애는 낳아야하고, 외벌이로는 힘드니 직장도 나가야한다. 회사에서는 지켜야 할 가정이 있기 때문에 오래 ‘버티는’, 그러니까 잃을게 많기에 잘 엇나가지 않는 기혼 남성을 선호한다. 아이를 데리고 밖을 나가면 이른바 ‘맘충’으로 불린다. 애는 받질 않는다는 노키즈존에, 애를 데리고 나왔다는 수군거림에 외출도 차가 없으면 힘들다. 시선을 돌리면 새벽 4시부터 공무원 시험 현장 강의를 위해 컵밥을 들고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문과는 뽑질 않으니까요. 그 돈 받고 그렇게 일할거라면 조금 적게 벌어도 안정적이고 복지 좋은 공무원이 낫죠. 시험의 응시자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도전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겐 문제가 있다며 손가락질이 돌아온다. 사람들은 이를 ‘헬조선’ 이라고 칭한다. 지옥 같은 조선이라는 뜻이다. 한강의 기적, 근대화의 기적이라 불리던 한국은 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으로 회귀했을까? 희망의 도시였던 서울은 왜 갑갑한 삶의 지옥이 됐을까?헬조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2014-2015년 즈음이다. 처음엔 전근대 조선을 비하하려 쓰였던 용어가 한국의 현실도 그것과 다를 바 없다라는 흐름 속에서 ‘지옥과도 같은 한국’이 된 것이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나 사회의 모순점을 탓하는 헬조선은 2, 30대 속에 빠르게 자리잡았다. 즉, 이에 공감하는 사람의 수가 그만큼 노력하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러니까 그들에게 한국은 지옥이 아니다. 한국을 지옥으로 느끼는 청년들의 말은 노력하기 귀찮은 투정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다 괜찮아 질 것을.정말로 한국 청년들의 의지부족일까. 헬조선이라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단어를, 개인의 노력 문제로 치환 할 수 있을까.헬조선의 문제는, 현실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구조의 문제와 사회의 모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1960년대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30층짜리 고층 빌딩이 올라온 경제의 성장과는 무관하다. 경제의 성장, 의식주의 보장,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사회의 발전과 동시에 움튼 새로운 구조의 문제와 모순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사회의 문제이다. 이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사회, 변화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사회, 인간을 소모품처럼 갈아내는 사회. 헬조선은 사회의 규격화된 형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노력의 부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그들을 불량품으로 취급한다. 사회는 반문을 던지는 이들의 질문을 차단한다. 기준을 제시해놓고, 뛰게 만든다. 그들에게 반문 혹은 질문 반성은 필요치 않다. 인간은 점점 사회가 덧그려놓은 쳇바퀴를 뛰면서 생각 할 수 없는, 저항 할 수 없는 동물화 되어간다. 그것이 헬조선의 현실인 것이다.소설 ‘뤼미에르 피플’ 과 ‘큐티클’ 은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모두 화려하고 현대적인 도시 그 속의 사람들,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작품은 사회 혹은 개인의 노력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독자들은 사회가 강요하는 삶의 모습과 그 속에 지친 사람들, 구조의 모순들을 듣게 된다.뤼미에르 빌딩은 신촌에 위치한 빌딩이다. 시끄러운 신촌, 현대성의 중심인 도시의 한복판에 우뚝 선 빌딩의 8층에는 현대 사회의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형상들이 존재한다. 가출한 소년, 어린 임산부, 워커홀릭과 룸살롱 호스티스, 나이트클럽 웨이터 커플과 청각장애인, 취급하며 정해져 있는 원 밖으로, 절벽 아래로 낙오시킨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이들은 모두 사회가 원하는 정해진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정해진 삶의 순서대로 목차대로 삶을 진행시키지 못하고 어긋난 사람들에게, 도시는 더 이상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그들을 반인반수, 괴물, 즉 비인간으로 표현한다. 사회는 일방적으로 구조의 모순에 끼인 이들을 도태시키고 사회가 표준화한 인간상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그들의 책임으로 돌린다. 또한 이들은 다양한 계층에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현대 한국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보호망 속에 들어가지 있지 못한 소년과 소녀, 사람을 성과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일을 인생의 목표로 잡게 만드는 사회 속의 워커홀릭 등 이들은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존재한다.큐티클 속 주인공은 손톱을 다듬는다. 예쁘게 다듬어지는 손톱과 그에 맞는 지적인 부위기의 푸른 색 블라우스, 너무 값싸 보이지 않는 적당한 클러치백과 하이힐. 남들의 눈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보수적인 사회에서 타자화 되지 않을 안도할만한 취향. 주인공은 도시가 원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도시가 원하는 인간형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고 생전 해본 적 없는 손톱관리를 받는다. 주인공을 규격화 된 인물로 찍어내는 것은 바로 도시로 표현되는 현대 한국의 사회이다. 예쁘고 둥근 손톱을 가지지 않은, 괜찮은 정장 치마에 블라우스를 갖추어 입지 않은, 키에 맞는 굽 높은 하이힐을 신지 않는 20대의 여성을 사회는 두고 보지 않는다. 끊임없이 그 기준에 맞추라 강요하고 맞추지 않으면 잘못 생산된 불량품으로 정의한다. 주인공은 그러한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에게 초조함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원래 자신이 가진 취향과 그러한 취향을 가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고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회가 달리라는 대로 달리다가, 지쳐 낙오된 주인공은 한국의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자신의 기준을 강요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사회의 이면을 비춤으로써, 독자들은 사회가 개인의 노력을 탓해왔던 문제가 사실은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회는 자신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개인을 탓하고, 사회가 숨기고 있는 구덩이에 빠진 이들을 비정상적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맨 얼굴을 마주하면서, 독자들은 헬조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 구조적 모순이나 사회 문제 기저에 깔려있는 진짜 문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고쳐나가려는 것이 아닌, 그 문제를 숨기고 그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내는 정체된 부동의 사회를 말이다.이러한 작품 속에서 우리는 헬조선의 현실과 함께 그것이 우리의 탓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성실하면과 같은 구호는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어렵고, 그것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국민과 국가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무언의 약속, 노력하면 성공 할 수 있다는 표어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사회인 것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즉, 우리가 사회를 지옥과도 같다고 인식하는 것은 단순히 생활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노력해도 보답 받을 수 없는 사회, 희망이 없는 사회, 미래가 없는 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치워나가며 계층 간의 갈등과 차이를 심화시키는 사회의 구조 문제는 숨겨두고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개인을 탓한다. 문제는 개인이 아닌,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사회 구조의 문제와 화려한 성장 이면의 음울함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죽기 직전까지 개인에게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사회는, 문제가 있는 사회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며, 우리는 언제나 사회의 기준에 따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그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일 수 도 있다. 사회는 더 많은 개인이 더 잘 살기 위해 만든 체제 중 하나이다. 그것은 어질 수 없는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사회는 그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더욱 더 사회의 변화가 어렵다. 일제강점기, 6.25 등 여러 풍파를 겪으면서 국민들에게 강조된 것은 개인보다는 민족이나 나라로 표상되는 집단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권 등 여러 근대 사상이 유입되면서, 사람들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분화되어져 나왔지만 여러 역사적 사건 속에서 한국은 여전히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해왔다. 자연스레 사회의 시스템은 개인의 다양성보다는 집단의 합일성에 맞추어 경직되어져 갔고 석화되어져 갔다. 국가, 민족의 집단적 정체성을 강조하다 보니 이에 반하는 이들을 흑백논리로 구분하고 타자화 시키며 사회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사회시스템에 질문을 던지고 변화를 이끌어 나가려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특히나 이후 독재정권을 지나고, 국가 주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이는 더 심화되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헬조선이 아닌 한국 사회를 위해,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이 사회 시스템에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사회의 속도에 발 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왜 따라가지 못하냐고 비난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못하도록 속도를 내는 사회 시스템이 유효한가, 옳은가에 대해서 논의해봐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절대적이지 않다. 국가와 사회는 모두 개인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것이다. 개인은 사회 시스템의 모순에 대해 바꾸어 나가려 행동 할 권리가 있고, 국가의 의무와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 개인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국가의 모델이 필요한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봐야 한다.장강명 작가는 작품 에서 사회가 우리에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강요하고 있던 표백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삶에서 온갖 종류의 불편함과 부당함을 겪어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개인이나 작은 이익 집단 단위를 넘어서지 못하게 되며, 세계는 사상적으로 완전 무결한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한다.
    인문/어학| 2021.02.15| 6페이지| 1,000원| 조회(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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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 여성 자아의 출현 <인형의 집과 세이토, 경희를 중심으로>
    -인형의 집과 세이토, 경희를 중심으로-Ⅰ. 서론1. 주제 설정 배경1910년, 조선을 침략한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 뿐 만이 아니었다. 조금씩 흘러들어오던 서구 문명, 개화의 물결은 이미 근대화를 마친 일본의 지배와 동시에 조선을 뒤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신문물의 전파로 인한 생활 모습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고, 조선 사회를 이루고 있던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러한 의식의 변화 속에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신여성’으로 일컬어지는 근대 여성 자아의 출현이다. 근대화 이전의 조선사회는 철저히 유교의 이념에 따라 돌아갔던 사회로, 가부장제와 종법제도를 중심으로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타자화하는 사회였다. 그러나 근대 사상이 조선에 상륙하고, 평등한 자아와 개인의 존재를 일깨우면서 여성은 남성의 지배 아래 속하는 종속적인 위치가 아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 개별적인 자아라는 의식이 등장한 것이다. 즉,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되던 여성은 근대 사상 속 자아의 형상에 따라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성별 이전, 사람으로서 근대적 자아를 가진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는 문학 작품, 특히 1910-20년대 등장했던 김일엽, 김명순, 나혜석 등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되어졌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형상화 된 여성의 모습은 근대 이전, 고전 속 여성과는 완전히 다른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른바 새로운 여성 인물의 형상이 문학 작품 속에 ‘출현’ 하게 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20세기 초, 조선의 문학 속에 출현한 새로운 여성 인물의 형상, 즉 근대적 자아를 지닌 여성이 번역의 맥락에서 어떻게 전파되었고 형상화 되었는지를 나혜석의 와 일본 최초의 여성문예 잡지 , 그리고 헨리 입센의 희곡 을 중심으로 다루었다.Ⅱ. 본론1. 와 속에 나타난 근대 여성 자아의 형상 속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은 바로 주인공 경희이다. 경희는 이른바 ‘여학생’으로 불리는 일본 유학생지 않은데다 혼인을 거꾸로 하는 집이 어딨냐는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혼인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경희는 이러한 아버지의 강요 앞에서 밟기 쉬운 황토길 묘사되는 혼인과, 채이면 발에 피가 나는 돌부리 길로 묘사되는 혼인 거부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이 갈등 속에서, 새로운 근대적 자아로서의 여성의 형상이 나타난다.고전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혼인을 거부하는 여성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설사 혼인을 거부하더라도 초점은 여성의 의지가 아닌 ‘사랑’에 빠진 여성의 모습에 맞춰져 있다. 잘 알려진 고전 작품인 속 등장하는 여성인물 중 한명인 진채봉은 양소유를 보고 마음에 들어 하며 먼저 서신을 보내지만, 그 이전에“여자는 남편을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자의 평생 영욕과 백년고락이 모두 남편에게 달려 있다. 그렇기에 탁문군은 과부였지만 스스로 사마상여를 따르기로 정하고 실행했다”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이처럼 고전 속에서 여성이 자기 의지로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결국 여성에게 강조된 아내, 어머니라는 이름과 그 도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표현된다.그러나 경희는 이러한 고전 작품 속 여성의 형상과는 다르다. 긴 갈등 끝에 경희가 결혼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다음과 뱉는 말은 이렇다.“경희도 사람이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럼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경희가 결혼을 거부하는 이유는 도덕 혹은 인습을 따르거나, 사랑의 감정 등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경희가 그렇게 하고싶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경희 자신의 욕망과 의지이다. 경희는 혼인을 거부함으로써 조선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해왔던 전통적인 여성의 삶,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으로 자식을 잘 키워내며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이른바 주어진 것을 먹고만 살다 죽는 금수와 같은 삶을 거부한다. 그리고 어머니, 아내라는 이름과 의무 앞에서 인간, 한 개인으로서의 욕망과 의지를 표현하고 실현하지 못하게 했던 사회의 기저에 깔린 억압을 떨쳐낸다. 또한 조선 가 근대 여성 자아의 모습은 일본 최초의 여성문예잡지 가 주장하는 여성해방운동과 그 속의 자유로운 여성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의 창간호에 실린 히라쓰카 라이초의 글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 속에서 라이초는 여성이 본래 ‘태양’이었으나 지금은 ‘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본래 여성은 자신이 정한 궤도를 따라 돌며 궤적을 쌓아나가는 태양과도 같은 주체이나, 현재의 여성은 자신의 의지나 욕망이 아닌 사회가 강요하는 의무와 억압을 따라 도는 달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이토가 전하는, 본래 태양과도 같은 주체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여성의 형상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귀 기울이며, 자신이 그 삶의 주인이 되려는 경희의 모습과도 같다. 즉, 세이토가 이야기 하는 태양과도 같은 여성의 형상은 달처럼 조선 사회의 인습을 따라 돌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부하고 원하지 않는 혼인은 거부하는 경희로 나타나는 것이다. 와 는 시대 속에서 개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부녀자 혹은 남성이 아닌 타자로 존재하던 여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여성은 기존 사회가 말하던 의무로서의, 관계 속의 제한적이고 수동적인 정체성도, 남성과 구분되는 성도 아니다. 와 에게 남성과 여성은 모두 자유로운 개인일뿐이다. 속 경희는 혼인의 말이 오간 후 나같은 것이 무얼 하나- 라며 탄식한다. 여자는 웬만한 학문, 여간한 천재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고 중얼거린다. 스타엘 부인, 잔 다르크 같은 남다른 천재성과 실력, 희생이 있어야 사람 노릇을 하고 산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경희는 곧 세상을 바라보며 깨닫는다.그러면 내 명칭은 무엇인가? 사람이지! 꼭 사람이다.사람은 금수와는 다르다. 금수가 능치 못하는 생각을 하고 창조를 해내는 것이 사람이다. 경희는 혼인 앞에서 자신이 천재와 같이 뛰어남이 없음에도 사회의 인습과는 다르게 살아 갈 수 있는지 고민하지만 결국 그러한 것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이유 하나만으로 경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이 모두 숨은 천재이며 천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천재의 가능성은 모두에게 존재하며 여성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2. , 와 이처럼 와 는 모두 이는 가족이란 이름 속에 파묻혀 있던 여성의 모습이 개인으로 분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여성 이전 개인의 존재를 일깨운다. 이는 헨리 입센의 희곡 속 노라의 형상과도 연결된다. 노라 역시, 남편 헬메르가 주장하는 여성의 어머니, 그리고 아내로서의 의무 앞에서 나에 대한 의무, 즉 여성 이전 사람으로서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따를 의무를 주장한다. 속 노라와 잡지 , 그리고 나혜석의 경희는 각각 새장속의 새, 달, 금수로 표현되는, 여성이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회의 억압을 떨쳐내고 여성 이전,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다.이러한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 20세기 초, 조선의 문학 속에 출현한,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귀 기울이는 주체적인 근대 자아로서의 여성 인물은 이처럼 속 노라이즘에서 속의 태양을 지나 나혜석의 속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3. 와 의 차이점이처럼 와 그리고 에 이르기까지, 세 작품은 개인으로서의 근대 여성의 형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작품 속 형상화 과정에서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속 경희는 개인으로 거듭나는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교육’ 그리고 ‘배움’이라 생각한다. 먹고 입고만 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알아야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언뜻 보면 개화 지식인들이 강조한 여성 교육의 필요성과 그 뜻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개화 지식인들은 여성을 위한 교육이 아닌, 국가 운명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여성 교육을 통해 국력을 회복하기를 주장했다. 즉, 그들의 교육은 여성 자신의 개발보다는 자식, 가정, 국가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경희가 이야기하는 교육과 배움은 더 많이 알고 깨우쳐, 기존 사회가 여성에게 지웠던 부조리함을 깨닫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올움대로 옷장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가정일 속에서도 발견 할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 원래 여성은 태양이었다 속에서 라이초는 가정일에 대해서 ‘오랫동안 가사에 종사해야만 했던 여성은 정신저인 집중력이 완전히 둔해져 버렸다. 가사는 주의의 분배와 요령부득에 의해 생긴다. 주의 집중과 숨어 있는 천재를 발현함에 있어 부적당하므로 모든 가사의 번쇄를 나는 싫어한다’ 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라이초에게 가사는 경희처럼 배운 것을 토대로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새롭게 보는 일 중 하나가 아닌, 번거롭고 자질구레한 생활이었던 것이다. 또한 라이초에게 고등교육을 받고, 참정권을 가지고 독립된 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해방이 아니다. 라이초에게 그러한 것들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며, 라이초는 오히려 남성을 부러워하고 흉내내며 그들이 걸어온 길과 같은 길을 조금 늦게 걸어가려고 하는 여성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라이초에게 진정한 여성해방, 개인으로서의 여성 자각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천재를 깨우는 것이다. 즉,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Ⅲ. 결론1. 번역의 맥락 속 조선 근대 여성 자아의 출현, 그 한계와 의의이러한 새로운 여성 인물의 출현을 단순히 1:1의 인과관계로 단정짓는 관점은 위험하다. 그러나 실제 나혜석이 유학 시절 의 창간멤버인 히라쓰카 라이초의 여성 해방 운동에 굉장히 빠져들었고, ‘노라’ 라는 시를 쓰고 그 자신을 노라로 삼을 정도로 을 대단히 즐겨 읽었던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일들이 나혜석에게 새로운 여성의 형상을 심어주고, 그러한 여성 인물 창작의 뿌리가 되어주는 등의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사실은 부정 할 수 없다. 이러한 새로운 여성 인물의 출현이 어느 날 갑자기 서구 혹은 일본을 거쳐 수입 혹은 이식되었다는 관점 역시 분명히 위험하다. 고전 소설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은 그 수가 많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이러한 것들이 전승되어져 새로운 여성인물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다.
    인문/어학| 2021.02.15| 7페이지| 1,000원| 조회(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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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민담 속 동물의 신성성과 형상화
    한국 민담 속 동물의 신성성과 형상화-호랑이와 여우를 중심으로-Ⅰ. 서론1. 연구 목적과 범위 및 연구 방법아주 옛날부터 동물은 인간에게, 인간이 아닌 존재 중 가장 가깝고 친숙한 존재로 여기어져 왔다. 인간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온 동물의 존재는, 전 세계적으로 민담과 설화 속에서 동물담의 형태로 전승되어져 왔다. 동물담 속 동물들은 인간의 관점에서 정의되고, 인간의 이야기 속에서 형상화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동물적 특징뿐 만이 아닌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며, 더 나아가 신성성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화자의 구연담 속 호랑이와 여우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간이 동물담 속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형상화 되고 신성성을 지니는지, 동물에 따른 신성성의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신성성의 과정과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본고에서는, 다양한 동물담 중에서도 화자의 구연담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여우를 중심으로 신성성의 긍정적 형상과 부정적 형상으로 나누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호랑이와 여우가 동물담 속에서 가지고 있는 다양한 형상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신의 대리자’ 형상과 ‘요물’ 의 형상을 전제로 이야기하고자 한다.Ⅱ. 민담 속에 나타나는 동물의 형상1. 동물담의 정의 Hyperlink l "FOOTNOTE1" 1)동물담은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설화를 말하며, 동물우화․동물서사시․동물유래담으로 구분되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위와 같은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특히나 동물 우화와 동물유래담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동물담을 단순히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설화가 아닌 '동물의 생태나 실제 습성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닌, 동물이 의인화되어 나타나거나 사람의 형상을 흉내내는 이야기' 로 정의하고자 한다.2. 호랑이 Hyperlink l "FOOTNOTE2" 2)“난 남한테 얘길 들은 중에 제일로 그런게 그 호랑이가 그 아줌마 업어다가 아하, 두끝에다 놨다는게 나는 그거 제일 신기해 어떻게 그렇게 신기허지? 그 호랑이, 호랑이가 그 재주가 있어 그니까 산신령이 시켰지 그 어뜩하라구. ...(중략) 호랑이는 산신령 저거야 그, 그 저거 그 부하지 그러니까. 제일루 높은 부하 노릇을 허는게 호랭이래. 산신령이한테. 그니까 산신령이 시키는대루 해야지 누구 못잡아먹게 하면 못잡아먹어야돼.”한국의 민담 속에서 호랑이는 크게 신적인 존재, 인격의 존재, 짐승의 존재로 나뉘어 제시된다. 본고에서 다룰 것은 구연담에서 화자가 구연한 ‘신의 대리자’로 형상화 된 호랑이이다. 한국의 민담 속에서 호랑이는 신의 대리자, 즉 산신령의 부하 혹은 산신 그 자체로 형상화 된다. 즉, 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성성을 지닌 숭배의 존재로 신격화 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여타의 동물들이 요사스러운 신력을 가진 존재로 형상화 되는것에 그치는 것과 달리, 호랑이는 어떻게 신성성을 부여받았을까?첫 번째로, 이는 토템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숭배담으로 해석 할 수 있다. 한국의 신화 중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최초의 신화, 단군신화 속에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는 곰과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것은 고대 우리 민족 사이에 호랑이를 숭배하는 사상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호랑이 숭배담은 호랑이의 용맹함을 숭배하면서도 두려워했던 원시신앙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볼 수 있다. Hyperlink l "FOOTNOTE3" 3)이러한 토템 종교 형태 속의 호랑이는 산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한국의 산신 혹은 산신의 부하 형태로 나타나며 민간 신앙 속에 흡수 되어진다. 실제로 무당의 산신도 속에서는 호랑이만을 그려 모시는 형태의 산신도가 다수 전해지고 있으며, 여러 무당이 산신은 호랑이라고 답하였다는 보고 역시 전해지고 있다.원시신앙 속 호랑이가 신적인 존재로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호랑이의 용맹함과 그 위력에서 오는 인간에 대한 위협이다. 원시 시대의 사람들에게 호랑이의 힘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이길 수 없는 대상이었다. Hyperlink l "FOOTNOTE4" 4)이러한 무서움의 극복을 위해 사람들은 숭배를 통해 호환을 예방하고, 그 용맹함에 신성성을 부여해 마을의 평안을 빌었다. 즉, 원시신앙 속 호랑이에 대해 우리 민족은 두려움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우러러 보는 외경의 감정을 지녔던 것이다.두 번째로, 유교 사상과의 결합으로 인한 신성성의 강화로 해석 할 수 있다. 민간 신앙으로 전승되어 오던 호랑이 숭배담은 조선 시대, 유교 사상과의 결합으로 효행담 등의 형태로 변해서 전해지게 된다. 효행담의 주체는 사람이지만, 동물담의 시각에서 호랑이에 주목할 때 효행담은 호랑이의 신격을 드러내는 숭배담으로 볼 수 있다. Hyperlink l "FOOTNOTE5" 5)효행담 속 호랑이는 짐승의 모습이 아닌, 조력자와 보호자, 수호자의 역할을 하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나타난다. 즉, 유교사상이 주장하는 도덕사상을 가지고, 화복을 주고 선을 상하고 악을 벌하는 능력이 있는 동물로 등장함으로써 재신격화, 신과의 동일시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효행담 속에서 호랑이는 단순한 영물이 아닌 산신의 위상으로까지 신격화 되어져 유교적 도덕이념인 효를 전파하고 효행을 강조하는, 효를 완성하는 보조적 존재로 등장하게 된다.3. 여우 Hyperlink l "FOOTNOTE6" 6)“그 전에는 여우가 그렇게 색시 가마 쫓아가지구 그렇게 색시 저기 잡아먹구 뭐 어떠구 그랬잖아. ...(중략) 이제 옷도 벗겨보면 알지 뭐야 그렇게 해가지구 이게 사람같이 그러더래 한 대 여우가 어떻게 그르는지 몰라 그래가지구 그냥 그집에서 아주 때려죽였대”한국의 민담 속 여우는 유난히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되어진다. 민담 속 여우는 사람을 홀려 간을 빼먹거나, 사람의 흉내를 내어 사람을 해치는 등의 사람을 홀리거나 해치는 해악의 존재이다. 그러나 화자가 얘기했듯, 여우는 사람을 해칠 만큼 큰 동물이 아니며, 사람에게 끼치는 피해 역시 현저히 적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민담 속 여우는 유달리 부정적인 해악의 존재로 형상화 되었을까?본래 여우는 우리 민족의 토템 종교 속에서 다산을 상징하는 길한 동물이자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신성성을 지닌 존재였다. 그러나 전승되어 오면서 그 신성성은 마성으로 변질되고, 여우는 요기를 지닌 요물로 형상화 되면서 현재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 여우의 신성성이 마성으로 변질되어, 사악한 요물로 나타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중국에서 전해진 신화집인 Hyperlink l "FOOTNOTE7" 7)이다. 산해경은 아주 이른 시기에 한국에 유입된 중국의 신화집으로, 산해경 속 여우의 이미지는 사람을 공격하는 위험한 동물이자 흉한 징조로 형상화 된다. 또한 Hyperlink l "FOOTNOTE8" 8)산해경 속에는 현재 한국의 여우 이미지 중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인 ‘구미호’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러한 산해경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되고, 그 중 사람을 홀려 잡아먹는 식인의 성질을 가진 구미호의 형상이 민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여우의 신성성은 마성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호랑이 숭배담이 유교의 사상과 결합해 유교사회의 가치관을 전파하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신성성 강화를 이루었다면, 여우의 경우는 이와 반대였다. 마성으로 변질된 여우의 이미지는 주로 ‘요물’로서, 또한 ‘여인’으로서 형상화되었다. 이는 낮에 숨고 밤에 행동하며, 무덤가에 주로 나타나는 여우의 생태적 습성과도 관련이 있으며 다른 동물들에 비해 비교적 아름답고 묘한 여우의 외형적 모습과도 관련이 있다. Hyperlink l "FOOTNOTE9" 9)이처럼 여인으로 형상화 된 여우의 이야기는, 유교 사회의 가부장제, 종법제도 등으로 인한 여성홀대와 연결되어 더욱 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게 된 것이다.Ⅲ. 결론본고에서는 호랑이와 여우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의 민담에서 동물들이 어떻게 신성성을 부여받는지, 그 신성성은 어떠한 방식과 이미지로 형상화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본고에서 제시한 내용들은 호랑이와 여우가 민담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 되는지에 관한 기존 연구들에 기반 하였으며, 보다 다양한 형상이 아닌 제한된 형상을 전제로 연구되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민담 속에 나타난 전승집단, 즉 우리 민족의 가치관과 사고방식, 생각과 관념 더 나아가 당시의 생활과 역사를 기반 하여 ‘신성성’이라는 색다른 영역을 조사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동물담, 동물 설화의 생성구조에 대해서도 더 깊은 논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Ⅳ. 참고문헌Filippova Anna, 2002, 『한러 동물담 비교연구』황정화, 1990, 『한국의 호랑이 민담 연구』한예민, 2013, 『십이지 동물의 설화화 양상과 의미』송교, 2015, 『한중 고전문학에 전승된 여우 이야기 연구』1) Filippova Anna, 2002, 『한러 동물담 비교연구』, 배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참고2) 김순이(여, 90세): 파주 금릉동 (2018.4.15)3) 황정화, 1990, 『한국의 호랑이 민담 연구』, p.18, 전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참고4) 위의 논문, p.3, p.335) 한예민, 2013, 『십이지 동물의 설화화 양상과 의미』, p.71, 숭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참고6) 김순이(여, 90세): 파주 금릉동 (2018.4.15)7) 송교, 2015, 『한중 고전문학에 전승된 여우 이야기 연구』, p.194~1998) 위의 논문 참고, p. 194~1999) 송교, 2015, 『한중 고전문학에 전승된 여우 이야기 연구』, p.8
    인문/어학| 2021.02.15| 6페이지| 1,000원| 조회(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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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속의 시간과 크로노토프
    소설 속의 시간과 크로노토프고대소설의 두 번째 유형인 일상생활의 모험소설을 알기 위해서는 그 전에 크로노토프의 개념에 대해서 정의해야 한다. 크로노토프란 문학작품 속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 사이의 내적 연관. 즉 시공간을 뜻한다. 이러한 크로노토프는 고대의 세가지 유형의 소설이 발생함에 따라 이 또한 세가지 유형이 존재하게 된다.그 중 두 번째 유형인 일상생활의 모험소설은 모험적 시간과 일상적 시간의 혼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오로지 페트로니우스의 과 아풀레이우스의 만이 이 범주에 속하지만 이외에도 풍자문학, 헬레니즘 시대의 욕설문학, 성인의 삶을 다룬 기독교 초기 문학의 몇몇 작품들에도 이와 같은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또한 일상생활의 모험소설은 모험적 시간과 일상적 시간이 이러한 소설에 의해 창조되는 새로운 크로노토프라는 조건 속에서 자신의 형태를 변화시키기 때문에 기존 그리스 로맨스에서 나타났던 모험적 시간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모험적 시간, 즉 특별한 종류의 일상적 시간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범주에 속하는 는 앞서 말한 모험적 시간과 일상적 시간의 혼합을 보여주고 있다.주인공이 당나귀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여러 모험을 겪는 이야기가 담긴 의 플롯은 주인공인 루시우스의 인생행로를 구성하는 주요한 순간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인생묘사의 선행조건은 첫째, 루시우스의 인생행로는 '변신'으로 가장되어 독자에게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 그의 인생행로가 실제 여행경로, 즉 루시우스가 당나귀의 모습으로 세계를 방황하는 경로와 어느 정도 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행조건은 소설 속의 ‘시간’의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이는 삶의 실제적 흐름 속의 인접한 두 순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외적 간격이 아니기 때문이다.소설의 플롯 첫 번째 선행조건에서 언급된 '변신'이라는 개념은 고대에 복잡하게 발전되었고, 크게 네 가지 지류로 나뉘어지는데, 네 개의 형식이 고립되어 발전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다룰 것은 4번째 지류이다.변신, 변형은 발전의 개념에 대한 신화적 외피로서 이는 헤시오도스 [노동과 나날]과 [신통기]에서 보여진다. 이러한 헤시오도스의 작품 속에서는 변신의 개념을 신화적 원천으로 사용한 독특한 유형의 시간 연쇄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연쇄들은 신의 족보와 같은 몇 가지 항목이 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그 연쇄의 구성단위들은 매우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여기서 헤시오도스가 말하는 '변신'이란 광범위한 의미를 뜻하는 것이며 A에서 B로 기적적으로 변화하는 극적인 변신이 아니다.이러한 변신은 로마-헬레니즘 시대 뒤에 나타나는데, 오비디우스의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로, 변신의 개념은 이때 고립된 개인의 변신이라는 개념으로 변화하게 된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변신은 내적 통일성이 없으며 중요하고 본질적인 각각의 시간연쇄들을 통일시켜줄 변신의 신화적 외피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고대의 시간연쇄가 지닌 신화적 통일성은 해체된 것이며 앞선 헤시오도스의 변신과는 달리 좁은 의미에서의 ‘변신’을 뜻한다. 이러한 ‘변신’의 개념의 변화는 와 에서 찾아볼 수 있다.아풀레이우스에 이르러서의 '변신'은 한층 개인적이고, 고립된 마술적 성격을 띈 것이 된다. 변신은 우주적, 역사적 전체의 개념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운명을 개념화하는 도구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변신의 개념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민속적 전통의 영향 덕분에 변신은 여전히 한 개인의 전 생애를 좌우할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이렇게 변화된 변신은 개인의 가장 중요한 위기의 순간들을 중심으로 그려내기 위한, 즉 개인이 어떻게 그 이전의 자신과 다르게 변화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적 기초로 사용된다. 이 점이 아풀레이우스적인 플롯과 그리스 로맨스의 플롯을 구별하게 해주는 기본적인 차이가 된다. 아풀레이우스적 플롯은 전기적 시간에 따라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애에서 예외적이며 색다른 순간만이 묘사된다. 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나귀 변형 이전 루시우스 – 당나귀가 된 루시우스 – 정화된 루시우스) 이러한 순간들은 전기에 비하면 한 두 순간일 뿐이지만 이는 주인공의 일생을 결정하고 전 인생을 규정할 만큼 영향력이 크다. 이처럼 아풀레이우스가 묘사하는 사건들은 온전한 형태의 전기적 인생이 아니며 아풀레이우스는 그저 한 개인의 두 세가지 다른 형상을 제공하며 이 형상들은 개인의 위기와 재생을 통해 분해되고 재결합 된다.이처럼 이 유형의 소설들은 그리스 로맨스와는 다르게 인간의 인생과 그 인간 자체에 지울 수 없는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아풀레이우스적 플롯 역시 모험적 시간으로 이는 예외적이고 색다른 사건들과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우연한 만남과 못 만남, 즉 시간적 접합과 분리로 나타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형들의 힘은 제한되어 있다. 물론 완전히 능동적이지는 않지만, 일차적 주도권은 주인공 자신과 그의 됨됨이에 있는 것이다. 이는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루시우스가 마법에 걸린 이유는 우연이 아닌 그의 방탕함과 경솔함, 음탕함 때문이다. 즉, 우연의 힘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러한 우연의 힘 역시 주인공이 불러들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모험적 연쇄의 최초의 고리가 우연의 의해서가 아니듯 마지막 고리, 즉 모험의 연쇄 전체의 결론도 마찬가지로 우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리스 로맨스에서의 신이 행운의 동의어로서의 역할을 한 것과 달리 여기서의 신은 정화의 방향을 알려주는 후원자로서의 역할의 신으로 등장해 루시우스가 인간의 형태를 되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준다. 꿈과 환상 역시 그리스 로맨스에서는 신과 우연의 뜻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만, 아풀레이우스에겐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가르쳐주는, 즉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처벌→구원→축복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연쇄는 개인의 책임에 근거하게 되는 것이다.이제 여기서 나타나는 시간은 더 이상 단순히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뒤집거나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추상성이 대표적인 특징이었던 그리스적 모험의 시간과 다르게, 역전이 불가능한 통합적인 전체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새로운 시간의 연쇄는 매우 구체적인 표현을 요구한다.그럼에도 여전히 한계를 지니는데, 그리스 로맨스와 마찬가지로 개인은 여전히 사적이고 고립되어 있으며 개인의 잠재력은 오로지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실현되는 것이 그 한계이다. 또한 개인과 세계는 개별적, 외면적인 것에 불과하며 역사적 시간으로 구체화 되지 못한다.
    인문/어학| 2021.02.15| 3페이지| 1,000원| 조회(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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