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297조 개정에 따른강간죄의 행위객체에 대한 검토(배우자, 성전환자 및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목차 -Ⅰ. 서론Ⅱ. 강간죄의 보호법익Ⅲ. 행위객체 포섭 여부ⅰ) 배우자1. 판례2. 학설1) 부정설2) 인정설3. 소결ⅱ) 성전환자1.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2.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ⅲ) 동성애자Ⅳ. 결론 및 제언Ⅰ. 서론2012년 12월 18일 형법 제297조(강간)가 개정되었다. 1953년 9월 18일 형법이 제정된 이후 첫 일부 개정이었다.형법 제297조(강간)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개정됨에 따라 누구든 어떤 성별을 가지는 지와 상관없이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부녀의 정조가 아닌 모든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임에 대해 이견의 여지는 없다.통설 상 부녀는 모든 여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정 이전 형법에 의하면 남자는 강간죄의 객체로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 형법에 따르면 남자도 형법상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즉, 여자 또한 남자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간 시, 강간죄의 직접정범으로서 처벌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전에는 객체에 해당하지 않았던 남성 배우자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자가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되는 지에 대한 법적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강간죄는 남성 성기와 여성 성기의 결합을 의미하는 ‘간음’을 구성요건으로 규정함으로서 객체와 주체의 성별이 반대여야만 성립할 수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가 객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이성에 의한 강간 행위여야하며 동성에 의한 유사성교행위는 동성애자인 피해자의 성적 지향과 정신적 피해 정도와는 관계없이 유사강간죄를 구성할 뿐이다. 따라서 형법 제297조의 개정이 동성애자를 어떻게 객체로서 포섭하는 지 검토하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간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 정도에 차이는 없는 지 살펴볼 것이다.결론적으로 본 소고에서는 개정된 형법 제297조에 의해 여성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한 권리로서 자기운명결정권, 일반적 행동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와도 연관되기 때문에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개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적인 간음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형법에 의해 구체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형법 제297조의 개정은 본 조항이 보장하고자 하는 보호법익이 모든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임을 명백히 드러내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Ⅲ. 행위객체 포섭 여부ⅰ) 배우자1. 판례 부부강간 관련 판례 변화의의판결 선고일(법원)사건 내용판결 요지대법원, 실질적인 부부간 강간죄 적용 부정1970. 3. 10.(대법원)외도중인 남편을 아내가 간통죄로 고소했다가 새 출발하기로 합의한 후 강제로 성관계실질적인 부부 사이라면 정교 승낙을 철회했다고 보기 어렵다.대법원, 혼인 파탄 상태 부부강간 제한적 인정2009. 2. 12.(대법원)이혼 의사로 별거중인 처의 집으로 찾아가 강간하고 카메라로 강제 촬영당사자 사이에 혼인 관계가 파탄 됐을 뿐 아니라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고 이혼의사의 합치가 있어 실질적인 부부 관계가 인정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법률상의 배우자인 처도 강간죄의 객체가 된다.대법원, 부부강간 처벌(기존 판례 변경)2013. 5. 16.(대법원)아내가 밤늦게 귀가하는 것에 불만을 품은 남편이 부엌칼로 위협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성관계남편의 성폭력이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라면, 국가형벌권 행사도 고려해야 한다.대법원은 1970년 판결에서 외도중인 남편을 아내가 간통죄로 고소했다가 새 출발하기로 합의한 후 강제로 성관계한 사안에서 실질적인 부부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 설사 남편이 강제로 처를 간음하였다 하여도 강간죄는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이후 대법원은 2009년 판결에서 이혼 의사로 별거 중인 처의 집으로 찾아가 강간하고 카메라내포하기 때문에 부부사이의 성생활은 법률상 의무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있으므로 강요죄도 성립하지 않으며, 단지 그 수단으로 행해진 폭행이나 협박만을 폭행죄나 협박죄로 처벌할 수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2) 인정설부부의 의무에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인한 강제적인 성교의 의무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니므로 당연히 부부간의 강간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3. 소결생각건대, 형법 조문의 문리적 해석상 부부관계에서의 강간죄 성립을 배제할 근거는 없으며 따라서 여성 혹은 남성 배우자 모두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있다. 부정설의 근거인 부부간의 의무는 민법상의 의무일 뿐, 폭행이나 협박 등에 의해 강제적인 성교를 해야 할 의무를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배우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인간 본질의 기본권인 동시에 형법 제297조가 보호하고자하는 법익으로서 혼인이라는 특수한 관계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기되거나 상실되는 것은 아니므로 배우자를 강간한 자는 형법적 책임을 면제받지 못한다. 따라서 혼인 여부와 실질적인 부부관계는 양형 참작 등 형벌 부과의 부차적인 사안으로 판단할 수 있을 뿐 강간죄의 성립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판례 또한 형법 개정 이전부터 여성 배우자는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하였으며 개정 이후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배우자도 객체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여성 및 남성 배우자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객체로 인정된다.ⅱ) 성전환자형법이 개정되어 강간죄의 객체가 여성에서 사람으로 확장됨에 따라, 피해자가 어떠한 성별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논의의 실익은 감소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자이든,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전환한 자이든지 간에 사람으로서 강간죄의 행위 객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개선되어 음지에 있던 성전환자에 대한 강간죄와 관련한 사건이 점차 수면위로 드러나 실제 기소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바, 성전환자에 더 이상 논의의 실익이 없고, 객체의 성별이 무엇이며 동시에 주체의 성별은 무엇인지가 강간죄의 성립 여부의 핵심이다. 간음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 결합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므로 주체와 객체의 성별이 반대의 성이어야 성립하기 때문이다. 강간죄의 객체로서 성전환자의 성별을 판단할 때에는 성염색체 등의 본래적인 생물학적 특성만이 아닌 외형적인 성적 조건 및 사회적 성별 또한 고려해야 한다.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자가 외과적 수술을 통해 여성의 외부 생식기를 가지게 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 결합이라는 구성요건이 충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적 성별이 남성이라는 이유로(XY 염색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성으로 성전환한 자를 객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간음의 문리적 해석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환자가 어느 성에 속하는지는 ‘성전환 수술을 통해 신체적으로 해당 성의 외형적인 모든 조건을 갖추었는지, 정신적으로도 본인이 해당 성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는지, 사회적으로도 해당 성으로서 생활해왔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이러한 판단 근거에 따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자가 여성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행위 주체가 남성일 경우에 강간죄가 성립하며, 남성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유사강간죄 혹은 강제추행죄가 성립될 여지가 있다.2.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자의 비율은 십만 명 당 한 명 정도로 매우 적다. 형법 제297조 강간죄와 관련된 형사 재판의 판결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한 자의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은 앞서 기술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자와 같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신체적으로 해당 성의 외형적인 모든 조건을 갖추었는지, 정신적으로도 본인이 해당 성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는지, 사회적으로도 해당 성으로서 생활해왔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남성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행위 주체가 여성일 경우에 강간죄가 성립하며, 여성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행위 주체가 남성이어야 강간죄anum)를 포함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행위가 간음과 유사하고 그 침해의 정도가 성기 간 결합 행위만큼 클 시에는 객체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근본적으로 침해됐다고 보아 강간죄로 처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또한 1997년에 형법 개정을 통해 강간죄의 행위태양에 ‘간음(Beischalf)’ 이외에 ‘유사한 성적 행위(ahnliche sexuelle Handlungen)’을 포함 시켰다. ‘유사한 성적 행위’에는 신체 내부(구강·항문)로 성기나 성기구를 삽입하는 것도 포함된다.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서 ‘강간’은 강제적인 간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남성 성기와 여성의 성기가 직접 결합하는 행위에만 한정된다. 이는 임신가능성이 있는 행위만이 다른 행위에 비해 더욱 보호되어야 한다는 관념을 전제한다. 즉, 성기 간의 결합이 없는 행위는 강간이 아닌 유사강간으로 봄으로서 객체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다른 어떠한 행위보다도 강제적인 성기 간 결합 행위에 의해서 가장 크게 침해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강간이 강제에 의한 유사성교행위보다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정도가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남성 동성애자의 경우 여성 보다는 남성이 강제로 유사성교(항문 성교 등)하는 경우가,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이 강제로 유사성교하는 경우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및 정신적 피해의 정도가 크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강간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객체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그러나 강간죄의 행위객체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개정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간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 정도의 차이가 있음은 이전과 다름없다. 따라서 강간죄의 객체를 사람으로 확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강간(강제 간음)’이라는 구성요건을 ‘강제 성교’로 대체하여 모든 사람이 강간죄의 행위객체로서 동등하게 성적자기결정권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Ⅳ. 결론 및 제언50년 만에 성사된 형법 제297조의 개정은 법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
'진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의 부당성과 처벌 조항 폐지의 필요성목차Ⅰ. 서론 - 진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 폐지의 움직임Ⅱ. 본론1.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관한 판례 검토2. 표현의 자유와 명예보호와의 관계, ‘명예’ 개념의 모호성 및 ‘공연성’ 요건 검토 - 명확성의 원칙과 관련하여3.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의 문제점4. 형법 제312조(반의사불벌죄)의 문제점5. 형법의 제한원리 및 사안의 적용1) 비례성의 원칙2)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원칙3) 형벌의 최후수단성6. 다른 나라의 현황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 - 진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 폐지의 움직임다른 나라에 비해 잦은 명예훼손 소송은 한국의 특수현상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의하면, 2013년 기준 검찰에 접수된 명예훼손 사건은 4만 1980건으로, 2004년(1만 4016건)에 비해 10년 새 3배가량 증가했다. 접수된 사건 중 기소가 된 사건은 2004년 2859건에서 2013년 1만 2812건으로 4.5배나 늘었다. 현재 형사상 명예훼손제도에 대한 처벌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158개국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실제로 이 제도가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으로 투옥되는 사례의 28%가 한국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2005년부터 2009년 7월까지 55개월 동안 136명이 명예훼손으로 자유형을 선고받았다.형법 제33장 ‘명예에 관한 죄’에서 명예훼손에 관한 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째, 진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형법 제307조 명예훼손 ①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둘째,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다. 형법 제307조 ②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폐지 및 벌금형 하향조정-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개정함형법 개정안신경민 의원2015-3-4 발의제307조 명예훼손죄제309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명예훼손죄를 적용함에 있어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피해자로 보지 아니한다는 조문 신설형법 개정청원참여연대(소개의원 서기호 의원)2012-9-4 청원제307조 명예훼손죄-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반의사불벌죄 조항 폐지, 친고죄 규정 신설이러한 진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 폐지에 대한 움직임은 해당 조항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래에서부터는 구체적으로 진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조항을 폐지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Ⅱ. 본론1.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관한 판례 검토서론에서 언급한 ‘노인회 간부 폭행 사건에 대한 진실적시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A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하여 2016년 2월 24일, 헌법재판소는 제70조 제1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7명이 합헌 의견을 제시한 반면, 2명은 위헌 의견을 제시하였다. 합헌’을 결정한 재판관들은 정보통신망법 상 진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규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위헌’ 결정을 내린 재판관들은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스로 표현행위를 자제하게 되는 위축효과를 야기한다”고 의견을 제기했다.또한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을지라도 그것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면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형법 제307조 제1항의 처벌규정은 불가피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형법 제310조에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는 위법성을 조각함으로서 공익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인정한다는 점에서 ‘공익을 위하지 않은’ 진실적시에 의’라는 행위를 통해 훼손되는 법익, 즉 다른 말로 진실적시 행위를 처벌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나 법익이 실체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명예’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개념상 모호하여 명예가 훼손되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를 ‘공연히’ 알리는 것이 실제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공연히’라는 요건을 통해, 단순히 사실이나 허위사실의 적시가 아닌, 공공연한 사실의 적시를 처벌하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그 한계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킬 수 있는 사실을 개인 간의 ‘정보전달’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적시했을 때 처벌하고자 한 취지로 보는 견해이다. 위의 예시에서 음식이 맛이 없었다는 사실을 공연히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사안에 따라 음식적 주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사실을 ‘공연히’ 적시한다는 것은 본래 존재하는 사실관계를 사안과는 관련 없는 불특정다수가 그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불특정다수의 의미는 심히 모호하다. 한 예시로 부산에서 한 외식업자가 맛집블로거를 상대로 식당 폐업에 책임이 있다며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사안에서, 당해 맛집블로거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방문자는 하루 최대 수천 명이었다. 이 사안에서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지만 판례에 의하면 한 달에 만 명 이상의 방문자가 방문하는 블로그에 대해서는 공공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예시에서 음식이 맛없다는 사실을 친구와 가족에게만 알리는 것과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어떠한 차이점을 가질까? 한 달에 천 명 이내로 방문하는 개인 인터넷 공간에 진실을 적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가? 다수의 지인에게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보내서 음식이 맛없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공연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이처럼 ‘공연성’이라는 구성요건은 모호하고 상대적이 충분히 제재와 보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허위 사실을 적시하여 사회의 풍속과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해 형벌로 일정부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지만, 진실한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는 여전히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설명하겠다.3. 형법 제310조 위법성 조각 사유(‘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의 문제점둘째, 진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 사유(형법 제310조 위법성의 조각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의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는 요건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앞선 논의에서 진실을 적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학자들이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타인의 명예를 보호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교량적 장치로서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유지의 논거로 주장하기에 반박해 보고자 한다.형법 제310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진실적시 명예훼손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허용함으로서 소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많은 사안에서 진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앞서 진실적시는 단순히 사실관계를 드러내는 행위라고 했지만 논의의 편의상 ‘명예훼손’이라는 용어로 통일하겠다)은 개인, 사회적 약자, 피해자로 대변되는 을(乙)이 국가나 공공기관, 거대기업, 주주, 가해자 등 갑(甲)의 횡포나 범죄행위, 잘잘못 등을 폭로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시한 사실만이 면죄부를 가질 수 있으므로, 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혹여 공공의 이익을 위하지 않은 것으로 비춰지는 것이 두려워 최대한 자제한다. 적지 않은 경우에 시민들이 공익을 위해 진실을 적시할 때마다, 진실의 당사자인 국가나 대기업 등은 호화로운 변호인단을 구성해 그것이 허위사실이거나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님을 입증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법을 잘 아는 국회성의 원칙,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형벌의 최후수단성 원칙에 위배 된다.1) 비례성의 원칙앞서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헌법 제37조 제2항의 비례성 원칙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진실적시 명예훼손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 한다. 헌법 제21조 제4항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조항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헌법은 언론·출판의 표현의 자유를 명예의 보호를 위해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된다. 또한 형벌이라는 수단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행위를 저지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수단의 적합성’ 요건도 충족된다.그러나 ‘필요성(침해의 최소성)’과 ‘균형성’ 원칙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먼저 앞서 언급한 외부효과를 보면 진실적시 명예훼손 처벌이 표현의 자유의 침해를 최소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법조문의 문언적 의미와 형식만을 해석하는 문법적 해석에 의하면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의 자유만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상황에서 법조항이 적용될 때에는 외부효과를 통해 명예를 훼손하지 않을 우려가 있는 표현의 자유도 억압하고 있다. 이는 형법 제310조 위법성조각사유에 의하여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심리와 맞물려 결론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한다. 또한 진실적시로 인해 혹여나 명예가 훼손된다면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방법으로도 법익을 구제할 수 있으므로 형벌외적인 수단을 통해서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진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조항으로 인해 제한당하는 이익(기본권)과 달성할 수 있는 입법목적(보호법익) 사이의 비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개인의 사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진실적시에 의해 훼손되는 것은 명예보다도 평판, 이미지 등에 당하다.
칸트의 윤리학어떤 행위의 도덕성은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오는 행위의 필연성-의무-에서 정해진다. 의무는 ‘선의지’와 관련이 있는데, ‘선의지’는 타고난 건전한 지성 안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서 계몽 되고 계발되어야 한다. 이것은 일상적 도덕의식을 통해 발견되는데, 그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 의무의식이다. 의무개념은 의무의식의 뒤에서 그것을 지배하는 행위의 주관적 원리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해주는 준칙이다. 의무개념은 어떤 주관적인 제한과 방해-이익이나 경향성 등-를 받으면서도 선의지의 개념을 포함한다. 즉, 어떤 행위가 이익이나 경향성에 좌우되는 경우에 처했을 때, 언제든지 이를 물리치고 의무에 따라 행위 하고자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선의지이다. 말하자면 “의무에서 하는 행위”는 곧 “주관적인 제한과 방해를 받고 있는 선의지에서 하는 행위”이다.존재론적으로는 의무에서 하는 행위는 선의지를 전제하기 때문에, 선의지가 언제나 의무의식을 통해 발견된다는 것은 그 의지가 유한한 능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으로 인식론적으로는 의무의식이 선의지에 선행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의무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선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칸트에 의하면 어떤 행위가 의무에서 한 행위라는 사실만으로는 그것이 선의지를 조건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의무가 실제로 선의지를 기초로 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칸트는 이 문제를 선의지의 법칙 혹은 의무의 법칙이라고 하는 도덕법칙(정언명법)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칸트는 의무에서 즉, 순수한 도덕적 동기에서 한 행위만이 도덕적이라고 말했다. 행위의 결과가 의무에 합치하더라도 동기가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같이 의무에서 하는 행위의 도덕성은 준칙의 보편타당성을 통해 규정된다. 준칙이란 행위의 주관적 원리인데,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타당한 객관적 원리를 뜻하는 법칙과 대비된다. 이 준칙-자신에게만 타당한 것-이 법칙-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타당한 것-이 될 수 있을 때 그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즉, 동기의 도덕성과 준칙의 보편화 가능성이라는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어떤 행위가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는 도덕적 문제들 속에서 갈등을 할 때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형식으로까지는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도덕적 의무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칸트는 도덕적 의무의 확실한 근거가 확립되지 않은 채 단순히 통속적인 원칙에 근거해 행동할 경우엔 성향에 쉽게 지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성향이 바로 자연적 변증론이다. 이는 이성의 자연적 본성이 갖는 성향으로서 인간에게는 자신의 경향성의 만족을 위해 이성의 도덕적 요구를 경향성의 요구에 종속시키려는 강한 경향이 있다. 이를 근절시키기 위해 도덕적 기초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선행되어야한다고 칸트는 강조한다.
참된 지(智)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룬 직후,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위해 과외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데 어느 날은 학생이 2월(February)을 영어로 어떻게 쓰고 읽느냐고 물었다. 너무나도 쉬운 영어 단어였지만 실제로 써 본지 오래되어서 철자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보다 한참 어린 학생에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잘 모르겠다고 같이 영어 사전을 찾아보자고 하면 될 것을, 생각나는 대로 대충 써서 이게 맞는 것이라고 우겼다. 남은 수업 시간에 어려운 영어 단어를 알려주면서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만 아는 건 잘 아니깐 그래도 나는 영어를 잘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과외 수업이 끝나고 영어사전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틀린 철자를 맞는 것이라고 잘못 알려주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를 잘 아는 과외 선생이라는 체면을 살리기 위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면서 모르는 것에는 관대할 때가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찬반 토론을 하는 토론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주장을 개진하던 토론자는, 상대토론자가 그가 잘못알고 있는 것이나 모르는 것에 대해 지적하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아는 것만을 강조하면서 말을 되풀이한다. 과외 학생을 가르칠 때의 나나 앞서 예를 들은 토론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 아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이들이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지(智)란, 슬기롭다, 슬기롭게 안다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다시 말해, 사리를 밝게[日] 안다[知]는 뜻으로 그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음을 이루는 지(知)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知)를 인터넷 한자 사전에 검색해 보면, 그 뜻으로 알다, 알게 하다, 지식, 앎 등이 나온다. 즉, 지(知)가 뜻하는 ‘안다’라는 것은, 사물(事物)을 인식(認識)하고 판단(判斷)하는 정신(精神)에 작용(作用)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지(知)는 논어에서 118회나 등장할 정도로 중요시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 한자어가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인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자가 ‘안다’는 것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견해는 논어 『위정편』 17장에 잘 드러나 있다. “子曰, 由아. 誨女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오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공자가 말하길,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 오늘날 전해오는 논어의 구절 중에 가장 유명하다고 꼽을 수 있는 구절 중 하나이다. 즉, 공자는 배움의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히 인정하고 알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사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에 비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른 바, ‘황우석 사건’은 그런 용기가 부족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사건은 2005년 11월, MBC PD수첩에서 서울대학교 교수 황우석의 2004년 사이언스 지 게재 논문에서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여 촉발되었다. PD수첩의 첫 방송 이후, 대중은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세계적인 과학자인 황 교수를 근거 없이 비난하고 오명을 씌웠다며 분노했고, PD수첩 광고주에게 압력을 행사해 PD수첩이 다음 방송에서 광고 없이 방송을 하게 했다. 또한, ‘아이러브 황우석’ 등의 팬까페를 만들어 황 전 교수에게 동정을 표현하고, 연구를 위한 난자기증 운동을 하는 등 황우석을 지지했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는 다르게 연구진 측에서 받은 줄기세포의 DNA검사 결과. 난자 기증자의 체세포로부터 만들어졌다는 배아줄기세포의 DNA가 기증자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이후 12월에는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이 “사이언스 논문에 줄기세포가 없었다.”는 충격적인 발표로 국민을 놀라게 했다. 2005년 12월 29일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기자 간담회를 통해 “2005년 사이언스 논문과 관련된 체세포 복재 배아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고, 30일에 이어서 “2004년 줄기세포 또한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여 황 교수의 연구 조작을 확실시하였다. 결국 2009년 10월 26일, 서울 중앙 지방법원 형사합의26부는 사이언스지에 조작된 줄기세포 연구 논문을 발표한 혐의, 정부 지원금 횡령 혐의와 난자를 불법 매매한 혐의에 유죄를 판결하여, 황 전 교수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한 연구자의 올바르지 못한 연구태도와 과욕에 의해 실험 자료와 논문을 조작한 것이 이번 사건의 진상"이라며 "그 결과 국내 과학계와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켰다."고 말했다.이 사건의 중심에는 공자가 말한 참된 앎의 실천과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있다. 먼저 황우석 전 교수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황 전 교수는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이자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올해의 과학자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촉망받는 과학자였다. 이런 그가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하였을 때 국민이 기대하는 바는 감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 속에서 시작된 작은 거짓말은 점점 크게 불어났고 돌이킬 수 없이 커졌다. 마침내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진실하게 말해야 했을 때가 왔음에도 배아줄기세포의 존재 여부를 입증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에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아는 ‘참 된 앎’이 부재했을 때의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고, 결국 우리나라 과학사의 연구 윤리 측면의 얼룩진 과거를 만들었다. 두 번째는 국민이다. 처음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대중은 국익(國益)이라는 미명 아래 그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PD수첩 방송을 통해 의혹을 알게 되었지만 안다고 하지 않았고 외면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참된 지(智)’의 실천은 분명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속에는 이를 잘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다.사건의 촉발제 역할을 한 제보자 류영준 교수는 황 전 교수가 안전성 검증도 없는 상태에서 임상실험을 하겠다고 장애 아동 부모한테 이야기를 했을 때 제보를 결심했다며, “그가 ‘노벨상’, ‘사회적 파워’ 등 돈이나 명예를 탐하는 건 몰라도 사람 목숨까지 위협하는 경계를 넘실거리는 걸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내부 고발자가 될 시에 겪을 수모나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후 10년여 동안 그는 각종 위협과 심지어는 무단 주거침입까지 당하여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고통은 다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해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까지 제보하지 않았을 때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마음만은 자유를 얻었다고 했다. 류 교수의 제보를 방송한 PD수첩도 국민과 여론의 압박 속에서도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기 위해 끝까지 방송하려고 노력하며 ‘참된 지(智)’를 실천했다. BRIC라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의 젊은 과학자들은 황우석 연구팀의 과학자들과 동료 과학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진실을 함구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황 전 교수의 논문 조작 증거 자료를 계속해서 게시판에 게시하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렇게 ‘참된 지(智)’를 실천한 사람들 덕분에 진실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었고, 이는 곧 참되게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황우석 사건’은 공자가 말한 ‘참된 지(智)’가 분명 실천 가능한 것이며 실천해야만 하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현대사회와 법 과제: 영화 ‘의뢰인’ 감상문 - 법과 정의란 무엇인가?인류의 역사상 안정되고 통일된 법은 항시 존재하였다. 그것이 성문화된 법규의 형태가 아닌 불문법이거나,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법이 아닌 마을 공동체의 약속된 규칙 수준이든지 간에 현대에 ‘법(法)’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것은 어느 때나 있었다. 원시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살던 미개종족(未開種族)은 원시법이라고 하는 그들만의 체계 아래에서 사회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규율의 개념보다는 도덕의 개념이 더 지배적이었고, 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 법규범이 독립 않았다. 본격적으로 국가가 등장하면서 인류의 법체계는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초의 법전인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도 등장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춘추 전국시대에 부국강병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유가의 예치가 아닌 신상필벌의 원칙에 입각한 엄정한 법치를 주장한 법가 사상가들이 진나라의 통일에 기여한 것부터 법의 기원이 시작된다. 동서양에서 법의 기원은 각각 다르지만, 그것들이 발전한 현대의 법은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법과 정의는 어떤 관계인가?영화 ‘의뢰인’에서 피고 한철민은 아내를 살해했다는 살인죄로 검사 안민호에 의해 기소된다. 피고의 변호인 강성희는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며 검사와 맞선다. 양방은 각자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배심원들을 설득하는데, 피고 한철민에게는 아내를 죽였다는 물증은 없고 심증만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형법은 증거재판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에 물증이 입증되어야만 한다. 심증이 확실한데 물증이 없다고 해서 범인을 놓아 줄 순 없다는 것이 검찰 측의 입장이고, 물증이 없기 때문에 무죄라는 것이 피고 측의 입장이다.이 영화에서 법은 외형적인 실체이다. 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법이 외형적인 실체가 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외형적인 실체는 우리 생활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인간 마음 외적인 부분의 것이라고 정의하겠다. 이 경우에 피고 한철민이 살인자인지 아닌지 진실은 내형적인 것이다. 즉,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climax)까지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결말은 한철민이 범인이 맞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법과 정의의 관계는 이상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다. 우리는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정의를 찾아간다. 그러나 법은 외형적인 것이기에 인간의 내면까지 규정하진 못하고, 이로 인해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는 변호인 강성희가 피고의 무죄를 확신한 것을 말한다. 피고 한철민은 사실 아내를 살해한 살인자가 맞았지만, 변호인 강성희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물증이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법은 진실을 파헤치기엔 불완전하기에, 정의를 완벽히 실현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법은 불완전할지라도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 안에서는 정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존재이다. 우리의 ‘법 감정’은 법에 따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불완전함은 ‘법 감정’을 활용한 여러 제도 등으로 보완될 수 있다. 법 감정이란 무엇이 법이고, 무엇이 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감정, 법에 일치하는 것만이 일어나야 된다는 감정을 말한다. 보편적인 법 감정은 개인적 법 감정과는 달리 법공동체 내에서 구성원간의 합의에 이른 지배적, 객관적 법 감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국가적,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 경우 그 해결책은 문제의 부문에 고유한 논리에 의하여 모색되어져야한다. 정치문제는 정치논리로 역사문제는 역사논리로 법률문제는 법 논리에 의해 풀어야한다. 법률문제는 법 논리 태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하는데 법 논리를 좌우하는 사실상의 원동력이 바로 법 감정이다. 법 논리는 사회규범으로서 상식과 건전한 사회 통념을 벗어날 수 없고 이러한 관념들은 법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법 논리에서 무엇보다도 이성적인 분석을 중요시하는 것도 중요하나 법 감정을 토대로 두지 않고 극단적인 컴퓨터 같은 법관의 판결은 용납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영화에서 배심원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판사의 판결에 따라 피고 한철민은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했듯이 진실과는 무관하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그 판결이 정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배심원 제도를 ‘만장일치제’등으로 수정한다면 사회 구성원들의 법감정에 기초하여 법을 보다 정의에 합치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