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하이텍 합격자소서 (이공계)합) 동부하이텍 10/11 17시 1200 byte1.자신이 가진 열정을 발휘하여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을 기술하십시오[동아리 역사를 새로 쓰다]자전거 동아리 회장을 맡던 시절, 주점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던 날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규모가 작은 동아리였는데 점점 인원이 많아지자 한 선배로부터 주점을 열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동아리 역사상 처음인 탓에 선배들에게도 큰 도움을 얻지 못할 것 같아 망설였지만 새로운 역사를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했습니다. 우선 부족한 정보는 학생자치위원회와 동아리연합회를 직접 돌아다니며 얻었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분담하기 위해 모든 동아리원들을 시설, 홍보, 요리팀으로 나누었습니다. 고맙게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테이블이 모자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주점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선후배들이 우리 동아리도 이런 행사를 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주었고 그 이듬해부터 주점은 매년 동아리 내 가장 큰 행사로 자리매김하며 후배들에게 동아리 역사를 새로 쓴 장본인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저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했던 최고의 순간입니다. 만약 실패가 두려워 주점행사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저의 개인적인 성장도, 동아리의 발전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부하이텍에서도 주어진 업무에 항상 열정을 발휘하여 끝내 해내고야 마는 인재가 되겠습니다.2.본인의 지원직무와 관련하여 자신의 강점/약점을 기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기술하십시오[칠전팔기의 인재]전자전기공학 전공자로서 전자회로, ASIC설계 등을 수강하며 BJT, MOSFET 등 기본적인 트랜지스터의 특성을 습득했습니다. 또한 orcad를 이용한 과제를 수차례 수행하면서 회로 설계 툴을 익혔습니다.또한, 저는 칠전팔기의 정신을 가졌습니다. 유년시절, 자전거를 타다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를 겪은 후 트라우마가 생겨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새내기 때 친구를 따라 자전거 동아리에 가입했고 다음해 회장을 맡게 되면서 2인용 자전거의 뒷자리에 타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혼자서도 타겠다는 다짐으로 연습을 시작하며 처음엔 땅에서 발을 떼는 것조차 무서워했고, 넘어짐을 반복해 무릎과 손바닥이 성한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계속되는 연습 끝에 이젠 제가 가장 즐기는 취미생활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칠전팔기 마인드로 극복하는 저의 강점을 동부하이텍에서도 실현하겠습니다.[소극적인 의사표현]낯선 사람들 앞에서의 의사표현이 비교적 소극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토론동아리에 가입해 매주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며 제 생각을 말하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며 자신감을 채우고 있습니다.3.우리 회사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입사 후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지 기술하십시오[동부하이텍의 성장가능성]세계 반도체 산업에서는 시스템반도체가 약 80%를 차지할 만큼 큰 시장이지만 국내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반도체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 자동차 산업의 성장으로 그에 탑재되는 시스템반도체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시스템반도체 부문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동부하이텍은 지난 2001년부터 국내 반도체 기업 중 유일하게 시스템반도체에 주력하고 있는 기업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 기록과 함께 국내에서 최초로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9위로 예상되는 등 뛰어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시장은 전년 대비 2% 하락한 반면에 파운드리 시장은 8%의 높은 성장이 기대되는 만큼 파운드리 사업에 주력하는 동부하이텍의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성장가능성에 큰 가치를 매기는 저는 동부하이텍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기아합격자소서 (이공계)합)여러분은 왜 기아인이 되고 싶으신가요? (2000)기아 또는 자동차 관련 특별한 경험이나 인연, 기아인이 본인에게 주는 의미[첫 만남]기아와의 첫 만남은 ‘리오’였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머니의 출퇴근 용도로 기아의 리오를 중고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가정에 비해 늦게 마련한 첫 자가용이어서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자동차가 생기자 가족끼리 여행도 더 많이 다니게 되었고, 친척 집에도 더 자주 방문할 수 있어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주로 아버지가 운전하시며 등하교를 자주 도와주셨습니다. 덕분에 리오는 간단한 식사나 부족한 잠도 청할 수 있고, 아버지와 더욱 친밀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준 제 2의 집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잔고장 한 번 없이 8년 넘게 우리 가정의 발이 되어준 리오를 보며 누군가의 또 다른 제 2의 집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내 목표 = 기아의 목표]저의 생각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기업을 원합니다. 기업과 구성원이 같은 방향성의 목표를 갖고 있어야 더욱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연스레 업무의 폭과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노력으로 발전할 것이고 구성원과 기업의 동반성장으로 이어집니다. 마침 기아가 자동차 안에서 생활과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Car to life’ 시대를 열겠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서의 자동차를 넘어 집, 사무실, 더 나아가 도시와 연결하는 커넥티드 카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에 걸맞게 지난 6월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자율주행차 쏘울EV를 선보였고, 불과 몇 주 전에는 실제 자율주차기술을 선보이는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습에서 미래 자동차 산업의 핵심이 될 자율주행차에 주력하는 행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목표와 기아의 목표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소통하는 기아인]제가 되고 싶은 기아인의 모습입니다. 특히 구매직무에서는 적재적소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해 협력사는 물론, 생산이나 품질 등 타부서와도 긴밀한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 경험이 있습니다.자전거 동아리 회장을 맡던 시절, 주점행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회장을 맡게 되고 처음으로 진행하는 행사인만큼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친한 몇몇 동기들만 주축이 되어 모든 준비를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동아리 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 큰 내색을 내는 사람은 없었기에 모른 체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한 명 한 명에게 생각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진행 중이던 까닭에 주축이던 동기들은 맡은 일들이 많아져 부담스럽고, 다른 선후배들은 반대로 소외감을 느낀다고 털어놨습니다. 동아리 내 친목과 단합을 위해 추진하던 행사가 오히려 주객전도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진솔한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방안도 모든 동아리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회의를 진행한 끝에 찾아냈습니다. 개인의 특성과 취향에 맞게 시설, 홍보, 요리팀으로 나누어 업무를 분담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각자가 맡은 일의 부담은 덜어지고,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주점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이 경험을 통해 조직 내 의사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문제점에 대한 발 빠른 대처가 가능했고 팀워크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과 토론동아리 활동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길러왔습니다. 지속적으로 그 역량을 발전시켜온 만큼 소통하는 기아인으로서 효율적인 구매활동으로 성과창출에 기여하겠습니다.여러분을 왜 기아인으로 선택해야 하나요? 지원한 직무중심으로 (1000)기아인이 될 수 있는 본인의 강점 또는 차별점기아인으로서 본인이 생각하는 career path[탁월한 분석력을 가진 인재]구매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부품을 조달하는 업무인 만큼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분석력이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첫 유럽여행을 준비하던 당시 저의 탁월한 분석력을 발휘했습니다. 400만원의 한정된 예산으로 많은 도시를 다니기 위해 교통비와 숙박비를 절감해야 했습니다. 열차는 빨리 예약할수록 저렴하고 각 나라마다 예약 가능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이동 동선을 계획한 뒤 모든 열차의 티켓을 예약 가능한 첫 날에 최저가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전역을 다닐 수 있는 패스권보다도 저렴하게 해결한 것입니다. 반면, 숙소는 무조건 저렴한 곳으로만 고르지 않았습니다. 주요 관광지를 걸어 다닐 수 있는 위치와 조식 제공 여부, 기타 서비스를 따져가며 합리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약 160만원으로 한 달 동안의 숙박과 교통편을 해결했고, 나머지 경비로 여행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빠듯한 예산으로 최적의 여행 계획을 짤 수 있었던 이유는 저의 탁월한 분석력 덕분이었습니다.구매업무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품질, 납기, 원가 등 여러 측면에서 자료를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침체된 경제상황에서 원가절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만큼 최적의 포인트를 찾아낼 줄 아는 저의 분석력은 기아의 성과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SK하이닉스 합격자소서 (이공계)합) 하이닉스 9/23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초등학생 시절, 자전거를 타다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가 났었습니다.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지만 어린 나이의 저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학 입학 후 친구를 따라 가입하게 된 동아리가 자전거 동아리였습니다. 정기적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갈 때면 2인용 자전거로 누군가의 뒷자리에 앉아서 페달을 밟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회장을 맡게 되면서부터 그런 제 모습이 스스로 부끄러워졌고, 꼭 자전거를 혼자서 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처음엔 땅에서 발을 떼는 것조차 두려웠고 아니나 다를까 얼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넘어져 무릎과 손바닥이 성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넘어지기를 반복하다보니 몸의 무게중심이나 핸들을 어떻게 조절했을 때 넘어지는지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넘어졌을 때와 반대로 무게중심을 잡고 핸들을 조작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넘어지는 법을 알게 되자 반대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그렇게 약 한 달간의 연습 끝에 넓고 장애물이 없는 공원에서부터 좁고 구불구불한 길도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자신감을 얻어 군산 선유도라는 섬을 자전거로 일주하기도 하고, 이젠 제가 가장 즐기는 취미생활이 되었습니다.반복해서 넘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 전진하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실패 속에서도 배울 점이 있고, 피드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또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도 칠전팔기 마인드로 도전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가치관이 생긴 계기가 되었습니다.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동아리 역사를 새로 쓰다]새내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자전거 동아리는 저의 대학생활 8할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중 회장을 맡던 당시, 주점행사를 열기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규모가 작은 동아리였는데 점점 인원이 많아지면서 한 선배가 주점을 열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신입생 때 겪은 캠퍼스 주점문화가 재밌던 기억으로 남아있긴 했지만 망설여졌습니다. 동아리 역사상 처음으로 준비해보는 탓에 선배들에게도 큰 도움을 얻지 못해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아리의 새로운 역사를 써보고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우선 부족한 정보나 노하우는 학생자치위원회와 동아리연합회를 직접 돌아다니며 얻었습니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동아리원들을 개인의 특성과 취향에 맞게 시설, 홍보, 요리팀으로 나누어 업무를 분담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기대와는 달리 참여도가 적극적이지 않았고, 그 모습에 의욕이 상실되고 관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교외 밖으로 나가야만 할 수 있어 모두 꺼려하는 업무인 시설대여와 재래시장 상인들과의 거래를 제가 직접 발로 뛰며 성사시켰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며 무관심이던 동아리원들에게서도 관심을 유도했고, 결국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일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테이블이 모자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주점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듬해부터 주점은 매년 동아리 내 가장 큰 행사로 자리매김하며 후배들에게 동아리 역사를 새로 쓴 장본인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위해 헌신하며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일원이 되겠습니다3.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2학년 때, 4학년 선배들과 전공과목 스터디를 했었습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선배들은 과목을 듣고 있던 수강생이 아니라 대학원 면접 준비를 위해 만든 스터디 모임에 제가 참여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면접 스터디인 만큼 매주 정해진 분량을 한명씩 팀원들에게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는데, 이는 2학년인 저에겐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후배인 저를 배려해 굳이 앞에 나가 설명하지 않고 듣기만 하면서 궁금한 점은 질문을 통해 배워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후배라는 이유로 배려를 받기보다는 같은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로 결정했습니다.남들 앞에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가 먼저 아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도록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강의를 들은 날이면 꼭 당일 안에 복습했고, 이는 강의 중에 놓치거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상의 인물에게 강의하는 상황극을 수시로 연습했습니다. 벽에 대고 말하기도 하고, 전공이 다른 기숙사 룸메이트나 친구들에게도 설명하며 최대한 명확하고 쉽게 말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부분을 막힘없이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면 그 지식이 비로소 제 것이 되었고, 이러한 저만의 방식으로 매주 스터디에 열정적으로 임한 결과 A+의 성적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으며, 기대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4.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LG전자합격자소서(이공계)합) LG전자 3/20 16시 ? vc본인이 지원한 직무관련 지원동기와 역량에 대하여 (1000자)해당 직무의 지원동기를 포함하여, 직무관련 본인이 보유한 강점과 보완점을 사례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부품업계 1위의 VC사업본부로]자율주행이 미래를 선도할 차세대 핵심 분야로 떠오르면서 부품 업계에서도 그에 적용되는 혁신적인 기술개발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LG전자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자동차 전장사업을 위해 빠르게 공들여왔고, 전기차 부문에서도 선진업체와 수주를 체결하는 등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과 함께 머지않아 LG전자의 큰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VC사업본부에서 최고의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더 나은 결과를 추구하는 자세]종합설계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졸업작품으로 EMG(근전도 신호)를 이용한 로봇의수를 제작했습니다. 팔에 전극을 부착해 주먹을 쥐고 펼 때마다 달라지는 미세한 전류를 측정한 후, 이를 이용해 같이 손을 쥐었다 펴는 로봇을 제작하고자 했습니다. 실제 물건을 쥐고 놓는 실험까지 수행하기도 했지만, 때때로 반응이 느리거나 버벅거리면서 물건을 놓치기도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지도교수님을 찾아가 여쭈어보니 이정도로는 졸업작품을 심사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의외의 답변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더 개선시키고 싶다면 측정한 전류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값을 더욱 세분화해볼 것을 조언 받아 실행했습니다. 또한, 전극의 부착 위치를 달리하면서 실험한 후, 가장 노이즈가 적게 측정되는 위치를 찾아내어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속도와 정확도가 보다 높아져 A+은 물론, 교내 학술제에도 출품하여 우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반면, 완벽에 대한 욕구가 강해 일의 진행이 늦어지고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리 정한 목표치를 달성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량을 통해 VC사업본부의 H/W개발업무에서도 항상 더 나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겠습니다.본인이 지원한 직무관련 향후 계획에 대하여 (500자)본인이 지원한 직무와 관련된 본인의 향후 미래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시기 바랍니다.
LG전자합격자소서(이공계)합) LG디스플레이 3/20 ? 구매해당회사 및 직무에 지원하는 동기에 대해 기술해 주십시오. 1000자-성격(장단점), 직무에 관련된 경험 및 역량, 관심사항, 개인의 목표 및 비전 등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기술하시기 바랍니다.LG디스플레이는 OLED시장에서 세계 최초, 최고라는 타이틀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LCD보다 저렴한 OLED생산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용 OLED는 올해 안에 LCD의 생산원가보다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형 OLED와 LCD의 차이는 아직 2배가 넘습니다. 저는 이러한 목표에 동참하여 기술력뿐만 아니라 가격경쟁력도 더욱 상승시켜 7년 연속 점유율 1위를 넘어 10년, 20년 이상 1위의 LG디스플레이로 만들고 싶습니다.LG디스플레이의 구매업무를 위한 다양한 경험과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첫째, 학교 축제 기간 동안 친한 선배와 레몬에이드를 만들어 판매해 보았습니다. 좋은 품질의 레몬을 얻고자 다양한 레몬을 샘플로 구매해 제조하고, 주변으로부터 선호도 조사를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를 이용해 선정한 브랜드의 레몬을 판매업체와의 협의를 통해 표기가격보다 저렴하게 구매했습니다. 그 결과 한 잔당 재료비를 1200원에서 1000원대로 낮췄고, 이 과정에서 원가절감과 적절한 구매계획의 필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둘째, 자료 분석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려는 습관으로 여행경비를 크게 절감한 경험이 있습니다. 유럽여행을 계획하면서 열차마다 다른 예약시기와, 같은 열차라도 빨리 예약할수록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동선을 짠 뒤 예약 첫 날, 최저가로 구입해 유럽 전역을 다니는 패스권보다도 저렴하게 해결했습니다. 반면 숙소는 무조건 저렴한 곳이 아니라, 위치와 조식 제공 여부, 기타 서비스의 유무를 엑셀로 정리해 총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곳으로 선택하여 여행경비를 절감했습니다.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원가절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구매계획을 세우고 품질, 원가, 기술 등 여러 측면에서의 분석과 최적의 포인트를 찾아내는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위와 같은 경험과 역량, 또한 전자전기공학 전공자로서 더욱 빠른 이해와 적응력으로 LG디스플레이의 성장에 기여하겠습니다.도전적인 목표를 정하고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십시오. 1000자-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어려웠던 점과 그 결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기술해 주시기 바랍니다.[소통을 통한 위기상황 극복]자전거 동아리 회장을 맡던 시절, 주점행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조직의 리더 역할도 처음이었고, 동아리 창립 이래 첫 주점이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동아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했고, 저와 친한 몇몇 동기들이 주축이 되어 모든 준비를 해나가기로 했습니다. 타 동아리에 비해 부족한 정보와 노하우는 지인들의 도움을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력하는 정도에 비해 준비는 제자리걸음이었고, 동아리 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는 주점준비는 물론이고 동아리 내 단합도 유지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한 명 한 명에게 솔직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같이 준비하던 동기들은 맡은 일들이 많아져 부담스럽고, 다른 선후배들은 반대로 소외감을 느낀다며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털어놨습니다. 회장이라는 압박감에 혼자서도 해내야 한다는 저의 짧은 생각이 불러온 결과였습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모든 동아리원들을 모아 회의를 진행하여 해결방안을 찾아냈습니다. 개인의 특성과 취향에 맞게 시설, 홍보, 요리팀으로 나누어 업무를 분담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각자의 부담은 줄어들고, 모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며 주점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모두의 박수를 받았을 뿐 아니라, 이듬해부터 매년 주점은 동아리 내 가장 큰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