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00000000 000 000목차1. 서론2.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3. 칸트윤리학의 부정적인 평가1) 딜레마2) 자유와 법칙에 대한 복종과 도덕 법칙의 구속력4. 결론5. 참고자료1. 서론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인간은 이성을 이용한 스스로의 사유작용을 통해 여러 행위가 가능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고 행복의 목표인 자아실현은 오직 사회적 맥락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사회와 개인은 인간의 몸과 장기와 같이 유기적 관계를 형성해왔다. 그리고 그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우리 몸에서 한 부분의 장기가 과도하게 활동을 하거나 다른 장기의 활동을 방해하고 우리 몸의 각 부분들이 자기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신변에 위협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은 삶의 순간마다 스스로의 윤리적 규칙을 준수하고 그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만약 공동체적 질서에서 벗어나 오직 자기에 의한 독자적인 삶을 구축하면 윤리는 불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공동체라는 유기체 안에 하나의 세포로서 역할을 하는 이상,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든, 아니면 내면의 도덕적 요구에서 오는 의무감 때문이든, 그것도 아니면 처벌과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이든 간에 윤리적 판단을 피할 수 없다.철학자들은 윤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질문, 이를테면 ‘어떤 행위를 옳거나 그르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을 오랫동안 논의해왔다. 이런 질문은 도덕철학으로 나타났다. 도덕철학은 도덕적 문제를 다룰 때 예리한 통찰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즉 그것은 도덕성에 관한 추상적인 일반적 신념들의 함축을 명료하게 하였고 어떻게 이 신념들이 일관되게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었다. 만약 도덕성이 단지 편견의 문제이고을 지도 모른다. 칸트는 그의 도덕형이상학으로 확실한 기준을 정립했으며 그 법칙적이고 불변적인 토대 위에 윤리학을 구축하려고 하였다.2.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칸트의 저서인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는 ‘세상 안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밖에서조차도 제한 없이 선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한 의지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이것은 칸트의 윤리학적 출발점이 이전의 윤리학적 화두였던 선한 것과 좋은 것에 대한 물음보다는 순수한 의미의 도덕성에 대한 물음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칸트가 말하는 순수한 도덕성이란 우리의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당위와 강제의식이다. 칸트는 처음으로 도덕적 강제의 본질적 의미를 윤리학에서 제기했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던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치에 섰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전까지의 윤리학이 선한 것과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선에 대한 동경이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면 도덕의 가치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칸트는 도덕과 행복을 동질로서 보지 않았다. 도덕의 가치는 행복에 의존하지 않고 도덕은 그 자체로 정당하며 그 자체로서 숭고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면 도덕법칙은 그 성격상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다.칸트는 우선 도덕성에 관한 우리의 일상적 생각에서 출발해 그것들을 분석함으로써 배후에 있는 원칙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일상적 이성 인식이 도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 중 하나는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는 특별한 종류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며 오직 선한 의지만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선한 의지는 오직 ‘선해지려고 한다’는 것에 의해서만 다른 어떠한 것과도 관련되지 않고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유용성이라는 결과적 측면은 선한 의지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러면 도덕법칙이 어떻게 도덕법칙으로 가능한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이 곧 정언적 명령법이다. 정언적 명령법은 우리의 행위가 도덕적 행위의 형식에 맞아야 한다는 명령인 것이다. 즉 정언적 명령법이 있다는 것과 우리에게 도덕이라는 것과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확정하겠다는 것이다.3. 칸트윤리학의 부정적인 평가1) 딜레마플라톤의 “대화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어떤 이가 친구에게 무기를 빌리며 그가 필요로 하면 언제든 돌려주기로 약속을 했으나, 어느 날 친구가 부정한 아내를 죽이겠다고 무기를 돌려달라고 그에게 요구를 할 때 그것을 돌려주는 약속은 분명한 그의 의무이긴 하지만, 무기를 친구에게 돌려주었을 때 초래될 결과는 친구 아내의 죽음인 것이 예상되어 결국 무기를 돌려줄 수 없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와 ‘살인은 나쁘다’라는 두 도덕률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칸트의 도덕률을 적용한다면 약속을 지키는 것도 의무이고 살인은 나쁜 것이므로 막아야 하는 것도 의무이다. 그러면 두 가지 의무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칸트가 내세운 보편타당한 격률 ‘그 준칙을 통해서 네가 그것을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으로 삼으려고 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 하라’에 어긋남이 없어서 우리의 절대적으로 선한 의지는 두 가지를 모두 의무실행에 옮겨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딜레마에 처해진다. 또 다른 격률 ‘네 인격안의 인간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격 안의 인간성 까지 결코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언제나 수단과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라’에 의하면 친구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도 친구 아내의 목숨을 구하는 것도 모두 옳으며 이행해야할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둘 중에 무얼 하라고 답을 주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도덕 규칙이 모두 정당하기 때문이다.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면 기형아를 임신한 산모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칸트의 의무론적 입장에서는 기형아라도 생명체인 이상 낙태는 원칙적으로 살 기형을 타고난 아이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을 것이며 부모 또한 괴로울 것이다. 칸트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도덕적 가치와 행복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고통이 뻔히 예상됨에도 단지 의무이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가혹한 형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에서 칸트는 불행한 사람이 죽고 싶지만 그럼에도 자기 삶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경향성이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에’ 살아간다고 할 때 그의 준칙은 도덕적 내용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면 자신의 내적 경향성과는 상관없는 삶을 엄격한 도덕법칙의 강압에 의해 사는 것이 과연 주체적인 삶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언제나 규칙만을 주장하는 의무론적 입장은 선험적 도덕 원칙이 경험주의적이고 실용적인 도덕 원칙보다 훨씬 보편적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따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엄격한 원칙이 현실적인 원칙보다 보편적이지 않은 예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가치가 지배하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정직이 최고다’라는 도덕 원칙은 통용 되지 않는 것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영국의 윤리학자 로스는 의무론적 윤리학의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조건부 의무론”을 들고 나온다. 로스는 행위에 대한 정당한 예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무론자들은 모든 도덕규칙을 무조건적인 규칙으로 생각한다는 점과 의무론자들 관점은 윤리적 입장이 서로 상충될 때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점을 비판하였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의무와 상대적이고 상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무 사이를 구별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른 말을 해야 할 절대적 의무나 약속을 지켜야 할 절대적 의무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바른 말을 하거나 약속을 지켜야 할 조건부 의무를 가진다. 즉 이보다 더 중요한 의무가 없다는 조건 아래 바른 말을 하고 약속을 지켜야만 하며 그런 한도에서만이 이것들은 절대적 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2)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주장에 의하면 보편성을 가지는 명령법이야말로 모든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에 따라 이러한 법칙을 스스로 입법하였으며 동시에 우리가 따라야하는 법칙이다. 그래서 칸트는 이러한 주장에서 수반될 문제들을 제시하였다. 우선 첫 번째로 ‘어떻게 자유와 법칙에 대한 복종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도덕 법칙이 어떻게 구속력을 얻는가?’이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인식론에서 찾을 수 있다.지성이 아무리 긴장해서 주의하고 명료하게 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저 현상들에 관한 인식만을 얻을 뿐, 결코 사물 그 자체(Ding an sich selbst)에 관한 인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구별을 (결국 우리가 수동적이기 때문에 어떤 다른 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표상들과, 우리가 우리의 활동성을 증명하면서 순전히 우리 자신에게서 만들어내는 표상들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는 것이다.) 하자마자 그 현상들 뒤에 여전히 현상이 아닌 어떤 다른 것, 즉 사물 자체가 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이 저절로 나온다. … 이렇게 해서 거칠기는 하지만 감성계가 지성계와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감성계는 세계를 관찰하는 다양한 사람에 따라 감각적인 것이 다르다는 점에서 매우 다를 수 있지만, 감성계의 근거가 되는 지성계는 언제나 동일한 채로 있다.…그래서 단순한 지각과, 감각의 수용성에 관해서는 자신을 감성계에 포함시켜야 하지만, 자기 안에 있는 순수한 활동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감관의 촉발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의식에 도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자신을 지성계에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동일한 사물을 관찰해도 사람마다 다르게 관찰을 하는데 동일한 사물이게끔 해주는 요소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물자체가 있어서 이러한 인식론적 단서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점인 감성계와 지성계를 제시한다. 그리고 외부 사.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00000000 00과 홍길동목차1. 서론2.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1장3.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2장4.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3장5. 결과1. 서론칸트는 도덕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에서 출발하여 그 생각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려 한다. 또한 칸트는 인간의 행위를 도덕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며 그 근거가 어떻게 인간을 도덕적인 행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지를 탐구하고, 인간이 매일 경험하는 평범한 도덕 의식에서 시작하여 그것의 확실한 기초를 확인함으로써 다시는 섣부른 회의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하고 있다.2.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1장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를 서술하자면 제 1장의 제목은 ‘도덕에 대한 평범한 이성 인식에서 철학적 이성 인식으로 넘어감’이라고 되어있다. 1장을 보면 칸트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일상적인 생각 속에 녹아 있는 도덕성에서 출발하여, 이를 분석함으로써 그 배후에 있는 원칙을 발견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장인 ‘도덕에 대한 평범한 이성 인식에서 철학적 이성 인식으로 넘어감’을 크게 나눠서 살펴보면 사람들이 도덕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을 분석하여 그것의 전제를 발견하는 것과 행위의 3가지 동기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칸트는 동기가 결심과 행위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 결심과 행위에 대한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행위에 대한 자기만의 원칙과 준칙으로 삼은 것 그리고 이러한 의도에서 ‘평범한 이성 인식’이 도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먼저 가장 기본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는 중요한 종류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칸트는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것은 오직 선한 의지뿐이라고 말한다. 선한 의지란 그것이 가져올 결과나 이익에 전혀 상관없이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에 이런 절대적 가치를 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종류의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판단하고 칸트는 이 동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게 된다면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도덕 법칙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칸트는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그 동기를 ‘의무’에서 찾아내려 한다. 그렇다면 과연 선한 의지를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이 ‘의무’라는 개념은 과연 무엇일까?칸트는 의무란 행위자 자신이 갖는 어떤 장애와 한계를 넘어서려는 선한 의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를 바탕으로 칸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가 의무에 맞는 경우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언급하는데, ‘우연히 의무에 맞는 행위’와 ‘의무이기 때문에 행한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칸트가 더욱 가치를 부가하는 행위는 후자라고 말하며, 선한 의지는 의무를 동기로 하는 의지, 즉 ‘의무이기 때문에’하려고 하는 의지라고 말하며, ‘의무이기 때문에’라는 행위는 그 행위를 통해 달성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 행위를 결심할 때 준수하는 준칙에서 자신의 도덕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결론을 내린다.3.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2장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2장의 제목은 대중적인 도덕 철학에서 도덕 형이상학으로 넘어감이라 되어있다. 이 부분은 앞의 1장에서 언급한 내용의 연속으로 칸트의 정언적 명령법이라는 개념을 분석하고 이 속에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정언적 명령법의 개념을 다시 한번 정리하면, 우리 인간의 준칙이 따라야 하는 하나의 법칙으로 어떤 조건이나 더 상위의 어떤 법칙을 가지지 않는 무조건적인 것이어야 한다.이것은 ‘그 준칙을 통해서 네가 그것을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으로 삼으려고 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 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칸트는 2장에서 여러 가지 예들을 통해서 우리의 행위가 도덕적인지의 여부를 정언적 명령법이 어떻게 확정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후 목적으로서의 인간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자신과 타인을 목적 그 자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인 목적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칸트의 도덕법은 ‘그 준칙을 통해서 네가 그것을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으로 삼으려고 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 하라.’에서 ‘마치 네 행위의 준칙이 네 의지에 의해 보편적인 자연 법칙이 되어야 할 것처럼 그렇게 행위 하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의지가 자기의 준칙에 의해 스스로를 동시에 보편적으로 법칙을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행위 하라.’라는 세 번째 표현양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도덕법의 표현 양식에 나타난 원칙에 따라 칸트는 ‘다양한 이성적인 존재들이 공동의 법칙을 통해 체계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나라’인 ‘목적의 나라’에 대한 논의를 끝마친다.4.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 놓기 3장칸트의 분석적 논의를 통해서 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생각을 분석해서 도덕 법칙이란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 행위 하라.’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 법칙에 복종할 수 있으려면 의지의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제 3장의 제목은 도덕 형이상학에서 순수 실천이성 비판으로 넘어감인데 여기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이성적인 존재가 도덕 법칙에 복종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율성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을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와 도덕성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마지막으로 ‘자유의 준칙에 따라 마치 그 준칙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신중하게 행동한다면 그 목적들이 보편적인 나라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마무리를 하면서 동시에 모든 실천 철학의 한계에 대해서 제시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인 3장이 끝난다.5. 결과칸트의 윤리학의 기초와 출발점이 되는 것은 당위의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칸트는 오직 경험적인 것과, 또 이런 것으로서 인간학에 속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히 정화된, 그런 순수한 도덕철학을 부여하고 싶어 했다. 또한 여기서 언급한 이 당위와 똑같이 칸트에게 있어서는 윤리적인 선택의 자유로서의 자유도 실천이성의 한 가지 사실이다. 자유와 당위의 무조건적인 법칙은 서로 모순되므로 자유는 법칙 자체와 꼭 마찬가지로 사실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가의 정치철학1. 법가의 성격법가(法家)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가장 늦게 성립했기에 기존의 여러 사상을 종합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법가의 유래를 관자(管子) 에서 찾는 설도 있는데, 관자 역시 제나라 직하학파의 온갖 잡설이 섞여 있기에 기존 백가(百家)의 설에서 고루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본류는 전국시대에 와서 상앙(商?)의 법(法), 신불해(申不害)의 술(術), 신도(愼到)의 세(勢) 등의 사상에 있고, 이것을 한비(韓非)가 집대성한 것이다. 따라서 한비의 사상을 중심으로 법가의 정치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상앙의 법(法)은 이른바 변법(變法)이라 한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모든 문화나 제도도 또한 바뀌는 법이며 고정불변한 신법(神法)이란 있을 수 없다. 법고(法古)?고례(古禮)에 치우친 상고주의(尙古主義)에 대한 비판에서 등장한 것이다. 술(術)이란 군주가 신하를 다루는 기술을 말한다. 한편 법과 술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군주의 권세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이 세(勢)다.2. 한비자의 생애한비자(韓非子, 기원전 약 280∼233)는 성이 한(韓)이요, 이름은 비(非)이다. 그는 기원전 3세기 초에 한왕(韓王) 안(安)의 서공자(庶公子)로 태어났다. 한비는 선천적으로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예리하여 오직 문장에 의해서만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였다고 한다.전국7웅 중에서도 작고 약한 나라였던 한(韓)은 특히 강국 진(秦)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기에 국방의 염려가 끊이질 않았다. 이런 염려를 늘 개탄하던 한비는 부국강병을 위해서 ‘국가는 반드시 형벌을 엄중하게 하여 법으로써 다스리고 쓸모없는 무리를 제거하여야 한다’고 간언하였으나 한왕(韓王)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간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 한비자 의 ?고분(孤憤)?과 ?오두(五?)?편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 글을 보고 감동한 것은 진왕(秦王) 정(政)이었다. 진왕은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하면서 곧다. 그의 주장은 진시황이 강력한 전제군주(專制君主) 체제를 확립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문장을 모은 것이 한비자(韓非子) 55편이다.※ 한비자(韓非子)현존하는 한비자 55편은 전체가 한비 자신의 저작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 중에서 믿을 만한 내용은 ?오두(五?)?편과 ?현학(懸學)?편이다. 오두는 나라를 좀먹는 다섯 해충을 말하는데, 옛것을 앞세워 현재를 비난하는 자, 언변가, 군주의 측근, 유협(건달)의 무리, 상공업자이다. ?현학?편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유가와 묵가가 같은 뿌리임을 비판하고 있다.한편 한비자 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설화를 응용했다는 점이다. 과대선전을 서슴지 않는 상인처럼 유가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모순(矛盾)의 고사를 들고, 또 언제까지나 과거지사에 얽매어있는 유가를 비웃기 위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를 들고 있다. 역린(逆鱗)의 고사도 있다.3. 한비의 사상한비는 이전 국가통치의 최고원리인 예(禮)를 분명하게 법(法)으로 대체시켜 제자백가 중 법가를 종합한 전국시대 마지막 학자이다. 그가 주장한 법치(法治) 사상은 한마디로 법(法)과 술(術)로 요약된다.(1) 도덕에 대한 法의 우위* 한비가 배움을 받은 순자는 예(禮)에 중심을 두었다고 하지만, 그 역시 유가의 사람이었기에 도덕을 부정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런데 한비에 이르러 여러 가지 각도에서 법(法)의 도덕에 대한 절대적 우월성이 강조된다. 이것은, 정치의 유일한 방법은 법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위 법률만능의 정치사상이다.→ 주대(周代) 초기의 봉건사회는 예의[禮]와 형벌[刑]이라는 두 가지 규범에 의해 질서를 유지했다. 禮記 ?曲禮?에 “禮는 서인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刑은 대부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예의는 귀족에게 적용하는 행위규범이고, 형벌은 서민들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진(秦)나라의 똑똑한 군주는 상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착함을 믿는 백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 그러므로 술수(術數)를 가지고 있는 군주는 때마침 그렇게 된 선(善)을 따르지 않고, 반드시 그렇게 되는 도(道)를 행한다.(?顯學?편)모든 것은 본래적 상태에서 개조(改造)를 통해 적절한 것이 되고 가치를 가진다. 비록 때마침 그렇게 된 선(善)이 있다하더라도 따르지 않는 것은 군주의 통제권 밖에 있기 때문이다. → 개조는 순자가 말한 ‘위(僞=人爲?文化)’에 해당한다.☞ 소위 법 없이도 잘 사는 사람들만 있다면, 즉 인민을 개조할 필요가 없다면 굳이 군주가 통치할 이유도 없어진다. 따라서 군주가 무위도식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군주의 입장에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원치 않는다는 역설(逆說)에 빠지고 만다.※ 순자의 성악설“인간의 천성은 악(惡)이다. 선한 것은 인위(人爲)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천성이란 타고 날 때부터 욕구[利]를 좋아한다. 이에 쟁탈이 벌어져 (서로)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성악편)→ 성악설에 있어서 고려할 것은, 선한 행동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이다.순자는 인간의 마음작용을 성(性)?정(情)?려(慮)?위(僞)로 구분한다. 성(性)은 생리적인 본성이고, 정(情)은 외부와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감정적인 작용이다. 그리고 려(慮)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것을 판단?사고하는 작용이고, 위(僞)는 사고한 후에 실행하는 실천적인 의지(意志)이다.이 네 가지 마음의 작용 중에 인간이 본성과 달리 선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네 번째의 마음 작용인 실천적 의지 때문이다. 자기가 먹고 싶은데도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자기가 앉고 싶은데도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자기의 본래 마음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위(僞)이다.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해서 본성대로 살자는 것이 아니라 수양과 자기 노력에 의해 욕구를 극복하여 본성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 화성기위(化性起僞).다시 한비자 로 돌아가자.또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상반된다. 이렇게 서로 각자가 노리고 추구하는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특히 임금과 신하는 본래부터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이루어진 남과 남의 관계이며, 임금과 백성은 지배와 피지배자 사이의 힘에 의한 관계이다. 그러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충성심만을 기대하는 정치란 성립할 수 없으며, 그러한 신하와 백성들을 인의(仁義)니 도덕이니 인정(人情)이니 은애(恩愛)니 하는 것으로써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니 그들을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은 법(法)뿐이다.* 법을 바르게 세우고 그것을 잘 운용한다면 천하의 臣民들은 법의 궤도 안에 매이게 되어 나라의 질서는 저절로 정연하게 될 것이다. 법이 잘 지켜지게 하기 위해서는 형벌(刑罰)을 엄(嚴)하고 중(重)하게 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평균과 표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은자(隱者) 허유(許由)는 천하를 타인에게 양보했다. 도척(盜?)은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적질을 했다. 상으로 격려하고 달랠 수 없는 인물, 벌로써도 다스릴 수 없는 인물은 모두 위험하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부리는 방법에 있어서 이 두 종류의 인물형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치는 보통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며, 도덕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리적으로 볼 때, 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고, 법치는 더 이상 법이 필요하지 않는 상태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오히려 법치를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는 꼴이다.* 군주 역시 뛰어날 필요가 없다. 자의적(恣意的)이지 않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법이 저절로 기능해 주기 때문이다. 법을 잘 운용한다는 말은, 법을 그야말로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하여 어떤 경우에도 사사로움[私]을 두어선 안 되고, 조금의 관용이나 온정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미자하(彌子瑕)라는 남첩(男妾)이 주군의 총애를 앞세워 법을 무시하고 군주의 마차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군주의이익을 위하여 움직여 주도록 신하들을 잘 부려야 한다. 그렇다면 신하를 어떻게 컨트롤[術] 하는가.우선 군주에게는 세(勢)가 있어야 한다. 세(勢)는 운명적인 기세(氣勢)를 등에 업은 군주가 상(賞)과 벌(罰)을 슬기롭게 운용함으로써 신하를 컨트롤 한다는 것이다.상은 신민(臣民)이 기뻐하고 벌은 신민이 꺼려합니다. 군주께서는 오로지 상만 내리시기 바랍니다. 벌은 모두 내가 내리겠습니다.(?이병(二柄)?편)군주는 상과 벌, 두 가지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구체적으로 운용하는 데는 술(術)이 필요하다. 술(術)의 첫째는 형명참동(刑名參同)이다. 형(形=刑)은 구체적인 실질, 명(名)은 드러난 명의(名義)라는 의미이므로, 명(名)과 실(實)이 일치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형명참동이다. 예컨대 어떤 직명(職名)을 가진 관리가 그 직명에 따라서 실적을 거두고 있는가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다. 그 직명에 미치지 못하는 실적을 거둔 경우에는 물론 벌하지만, 그 직명을 벗어난 실적을 거둔 경우에도 벌해야 한다.한(韓)의 소후(昭侯)가 술에 취해 선잠이 들었다. 주군이 혹시라도 감기에 걸릴까 걱정한 관계(冠係, 관을 맡은 관리)가 옷을 입혀 주었다. 눈을 뜬 소후는 옷을 담당한 관리와 관을 맡은 관리를 다 같이 벌했다. 옷을 맡은 관리는 직무태만으로, 관을 맡은 관리는 월권을 했다는 것이 벌을 내린 이유였다.이와 같이 직명을 넘은 실적이 있는 자를 벌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스운 것 같지만 사실은 법의 일률적 적용이라고 하는 점에서는 근대법의 정신에 합치된다. 봉건시대의 법의 운용은 재판관의 인정(人情)에 의한 것이 모범인데, 거기에는 재판관의 개성이라 하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강해지고 법 적용의 공평성(公平性)이라는 점이 두드러지게 손상된다. 근대법은 이와 같은 결함을 제거하기 위해, 인정이라고 하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法文을 기계적?형식적?합리적으로 해석해서 적용하고자 한다.[가령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이런 점에서 보면, 한비의 형명참.
묵가의 정치철학1. 묵자(墨子)라는 인물묵자(墨子, 기원전 479?∼381?) : 성은 묵(墨)이며, 이름은 적(翟)이다. 전국시대 초기의 노(魯) 혹은 송(宋)나라 사람으로 추정한다. ‘하늘 아래 만민(萬民)과 만물(萬物)은 모두 평등하다’는 근본사상에 바탕을 둔 민중의 철학자다. 사마천의 사기 에는 묵자에 대한 전기를 따로 전하지 않고 ?맹자순경열전?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생각컨대 묵적은 송나라의 대부로 방전수성(防戰守城)의 기술에 뛰어나고 경비를 절약한다고 주장했다. 공자와 동시대인이라고도 하고 공자보다는 후대인이라고도 한다.”이처럼 묵자는 중국철학사 상에서 대체로 등한시 되었기에 그 자세한 내용은 후대의 고증에 의한 교주본(校注本)을 참고하는 것이 보통이다.그는 처음에는 유학(儒學)을 배웠지만, 이윽고 유가(儒家)의 예악지상주의(禮樂至上主義)에 혐오감을 느껴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세웠다. 그의 사상은 겸애주의(兼愛主義)로 요약할 수 있다. 유가가 주장하는 인(仁)은 먼저 자신의 부모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면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인데, 그는 이것을 별애(別愛, 차별애)라고 하여 배척하고, 평등하면서도 무차별적인 사랑(겸애)을 주장했다. 인류의 행동을 감시하고 상벌과 화복을 주는 천제(天帝)와 귀신의 존재를 믿으며 천지(天志, 하늘의 뜻)를 받드는 일종의 종교적 계급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혈통에 의한 공족?귀족의 정치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빈부귀천에 관계없이 도덕적이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사회의 지배적인 지위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익을 중시해 인류 전체의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모두 유해하다고 했으며, 근로와 절약을 강조하고, 호화로운 장례식이나 화려한 음악을 부정했다.이에 대해 유가에서는 ‘묵자는 실용성을 중시한 나머지 장식성을 망각했다’느니 ‘겸애설은 아버지를 무시하는 금수와도 같은 사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귀족의 부패 정치나 세습제에 대한늘의 뜻을 좇으려고 노력한다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3. 묵자의 정치철학?비공편 上?과 ?겸애편 上? 및 ?상현편 上? 만이 묵가 초기의 사상이므로 묵자 사상의 기본은 평화에서 겸애로 나아간다. ?비공편 上?과 ?겸애편 上?은 평화에 목적을 두고 의(義)와 인(仁=相愛)을 주장하는 한편 이(利)를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공리(功利)를 묵자 사상의 근본으로 보는 입장은 옳지 않다.3-1. 반전평화사상* 묵자 ?비공편(非攻篇) 上?의 내용은 반전(反戰)평화사상이다. 비공(非攻)이란 전쟁을 위한 공격을 반대한다는 뜻이다. 전쟁을 수행하여 누군가가 승리를 한다하더라도 수없이 전쟁을 되풀이하게 되면, 최후에는 모두가 전쟁의 화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전쟁은 의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롭지도 않다.→ 묵자는 뜨거운 인간애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였다. 개인의 이기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며 남의 재물을 훔친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공격한다.* 묵자는 전쟁을 반대하면서 전쟁이 의롭지 못함[不義]과 이로움이 없음[無利]을 들어 반전과 평화를 주장하였다.“어떤 사람이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와 오얏을 훔쳤다. 이 사실을 여러 사람이 들으면 그를 비난한다. 위로는 爲政者가 (이 사람을) 붙잡으면, 그를 처벌한다. 이것은 왜 그런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자기를 이롭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의 개, 돼지, 닭 등을 훔친 자는 그 不義가 복숭아와 오얏을 훔친 자보다 더 심하다.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남에게 해를 끼친 것이 더욱더 많고, 그의 不仁이 더욱 심하기 때문에 죄는 더 무겁다. 마찬가지로 남의 말과 소를 훔친 자는 그 仁義롭지 못함이 더욱 심하다. 심지어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 옷을 빼앗으며, 그 칼을 취한 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진실로 남을 해침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不仁은 더욱 심한 것이고, 죄는 더욱 더 무거워진다. 이때에 천하의 군자는 모두 다 그것을 비난할 줄 알고, 그 차별적인 사랑을 낳게 되며, 차별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 자기 집안, 자기 나라만을 생각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묵자는 이기심에 근거한 침략 전쟁을 반대하고, 무차별적 사랑에 기초한 반전론(反戰論)을 주장하였다. 묵자의 반전론은 겸애(兼愛)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묵자가 전쟁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이며, 개인의 사욕(私慾)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묵자는 전쟁을 벌이는 집단을 도둑에 비유하였다. 남의 집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은 처벌하면서 남의 나라 땅을 빼앗는 큰 도둑은 오히려 권장된다고 묵자는 비난하였다. 묵자는 침략 전쟁을 막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였다. 묵자는 전쟁을 감행하고자 했던 제후들을 설득하였다. 그는 제(齊)나라의 임금을 설득하여 노(魯)나라에 대한 침략을 막았고, 초(楚)나라 임금을 설득하여 송(宋)나라에 대한 침략을 막았다.3-2. 정치원리로서의 겸애묵자 의 ?겸애편 상?은 반전(反戰)의 윤리적 원리로서 겸애(兼愛) 사상을 주장한 내용이다. 겸애는 박애(博愛)나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와 비슷하다. 박애는 뭇사람을 차별없이 두루 사랑한다는 뜻이다. 사해동포주의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여 인종?국가?종교?계층 등의 차이를 초월하여 널리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묵자는 공자의 인(仁)을 별애(別愛)라고 비판하면서 겸애를 주장하였다. 묵자는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를 아울러[兼] 사랑하기만[愛] 하면 당시의 전쟁은 곧 종식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천하가 서로 사랑하여 내 몸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한다면 불행과 부자비(不慈悲)도 사라질 것이다.”이렇게 본다면 겸애와 박애는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겸애의 겸(兼)은 ‘둘을 모아 하나로 만들다’, ‘합하다’는 의미이다.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전쟁을 통해 식민지로 지배하는 일을 겸병(兼倂)이라고 한다. 또 한 사람이 여러 직무를 한꺼번에 맡아 수행하는 일을 겸직(兼職)이라고 한다. 겸애의 애(愛)는 파멸로 이끄는 인은 결국 사랑이 없음이요, 자리의 발호다. 이 사랑은 나와 남을 평화롭게 하고,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평화롭게 하는 원리며,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다.※ 겸애란 ‘내 몸을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한다’는 것인데, 그것의 근거는 ?겸애편 上?에서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 근거를 추론해 보면 대략 세 가지 정도가 나온다.① 맹자의 성선설처럼 그 근거는 인간에 내재해 있다.② 自利라는 표현을 주목해 볼 때, 이(利)의 교환, 즉 서로 이롭게 하는 형태로 사람과 사람의 연관이 이어진다. 이 경우에 사랑은 곧 이(利)를 뜻하게 된다.③ 사람을 초월한 곳에서 근거를 찾는다.이 중에서 그 근거가 ①과 같다면 겸애는 박애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묵가는 성(性)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람이 타고난 본질 또는 바탕으로서의 ‘성(性)’ 개념은 유가에서 중시될 뿐이다. 묵자 에는 ‘성’이라는 말이 없고, 인간의 내면을 문제로 삼는 것 자체를 묵가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겸애의 근거를 인간 내면에서 찾거나 ‘겸애=박애’로 보는 견해는 성립되기 어렵다.한편 ?겸애편 中?에는 아울러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익을 나눈다는 ‘겸상애(兼相愛) 교상리(交相利)’를 통해 새롭게 ‘교상리’를 주장하고 있다.“원래 한 사람을 사랑하면 반드시 그 보답으로써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되며, 한 사람에게 이익을 제공하면 반드시 그 보답으로써 그 사람으로부터 이익을 얻게 된다. 한 사람을 미워하면 반드시 그 보답으로써 그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며, 한 사람을 해치면 반드시 그 보답으로써 그 사람으로부터 해침을 당한다.”서로 이익을 교환함으로써 이익을 가져다 준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상호응수(相互應酬)의 도리 하에 사랑과 이익의 개념이 아주 비슷하게 쓰이고 있다. 이 경우, 겸애의 근거는 앞의 ②에 있다 할 것이다. ?겸애편 下?에서는 사랑과 이익을 묶어서 ‘애리(愛利)’라는 한 단어로 상호응수를 설명하고 있다.☞ ‘서로 사랑한다’다. 하늘은 그 의지에 부합하는가[=義]에 따라 상도 주고 벌도 준다. 천의(天意)라는 종교적 감정에 의지하여 의(義)를 권위화한 것이다.4. 중기 이후 묵가 사상* 초기 묵가에서 강하게 배격되었던 이익, 즉 거리(拒利)가 중기?후기 묵가에 와서는 오히려 교리(交利)를 주장하여 실리주의로 흐르게 되었다.“묵자가 말하기를, 모두 함께 서로 사랑하고 모두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는 방법으로서 그것에 대신한다.(以兼相愛, 交相利之法, 易之)”(겸애편 中)묵가는 교상리(交相利)로서 혼란을 막고자 하였다. 후기 묵가에 이르러 이러한 실리주의가 더욱 구체적으로 강조되어 ‘겸애는 聖王의 道요, 萬民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초기 묵가의 이익 거부는 중기와 후기 묵가에 이르러 실리(實利)로 전환되었다고 하겠다.* 묵자 의 ?절용편?, ?절장편?, ?비악편? 등을 일관하는 사상은 실리주의(實利主義)이다. 묵가는 모든 사물의 가치 기준이 이익과 관련되어 있고, 이익은 노동 및 생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묵가 사상의 독특한 점이다. 묵가는 인간의 특성이 노동(勞動)에 있다고 보아서 노동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였다. 노동은 이익과 직결된다. 따라서 “천하에 이익을 만들고, 천하에 해악을 없애는 것”(비악편 上)이라면 묵가는 백성을 위해서 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성인이 한 나라를 다스리게 되면 그 나라의 부(富)를 배로 늘일 수 있다. 그것을 확대하여 (성인이) 천하의 정치를 맡으면 천하의 부를 배로 늘일 수 있다. 그가 배로 늘이는 것은 밖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사정에 따라 쓸데없는 비용을 없애서 (부를) 두 배로 늘이는 것이다.”(절용편 上)이와 같이 절용주의(節用主義) 원칙에 따라서 ‘밖으로부터 남의 영토를 빼앗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국가의 사정에 따라 쓸데없는 비용을 없애서 (부를) 두 배로 늘인다’고 한 것은 공자의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 사상과 통하는 주장이며, 묵자의 다.
도가의 정치철학● 무위의 정치* 도가(道家)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자(老子)는 만물의 근원을 도(道)에서 찾는다. 도(道)는 ‘저절로 그러하다(自然)’는 의미로서 세계를 창조하거나 주재(主宰)하는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따라서 도는 하느님보다도 먼저고, 만물에 대해 인자하지도 않다. 이러한 도에서 만물이 나왔으니 만물 역시 도의 품성을 그대로 이어 받는다. 그 품성이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세상의 혼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목적을 가지고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의도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인위적(人爲的)인 것이 혼란의 주범이다.☞ 법가의 정치사상에서, 군주가 법을 잘 운영하기만 하면 모든 질서가 저절로 잡힐 것이라 했다. 이것은 도식적으로만 보면 도가의 정치구조와 매우 유사하다.군주의 의도 … 인위(人爲) …… 법(法) → ‘저절로’의 작용 → 질서 유지자연(自然) …… 도(道) → ‘저절로’의 작용 → 질서 유지그러나 도가의 입장에서는 법이 인위적인 것인 이상, 법 또한 혼란의 원인이 된다. 법은 상법(常法)이 될 수 없으며, 비상법(非常法)=변법(變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道可道, 非常道. → 도는 본래 상도이다. 상(常)을 그르치는 주범이 인위적인 것들이다.* 인간 사회의 혼란도 역시 인위적인 데에 있다고 본다면 그 혼란을 바로잡는 정치의 도(道)는 무위(無爲)여야 한다. 따라서 노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무위’에 있다고 하겠다. 도(道)가 만물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두고, 억지로 인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정치는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조장하고 간섭하는 것이 아니다.순박함을 보이고 질박함을 품어서, 사사로움과 욕심을 적게 하라.(見素抱樸, 少私寡欲. 제19장)무위의 정치원리는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는 ‘거피취차(去彼取此)’에 있다. 피(彼)는 유위(有爲=人爲)의 계열에 있는 것들로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세계의 것들을 말한다. 이에 반하여 차(此)는 무위의 박한 실제적인 것들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인위적인 것들이 아니다.● 노자의 ‘소국과민’론노자 에서 직접적으로 또 전적으로 정치에 관한 내용을 언급한 곳은 찾기 힘들다. 군데군데에서 그 단편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제80장의 내용은 이른바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 해서 노자가 생각한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토로한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하라. 백성들로 하여금 수십 수백의 기물이 있어도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또 생명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러면)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타는 일이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그것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다시 새끼를 엮어서 사용하게 하라. (그러면) 자신의 음식을 달게 먹고, 자신의 옷을 아름답게 여기고, 자신의 거처를 편안하게 여기고, 자기네 풍속을 즐기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이웃나라가 바로 앞에 있어 닭과 개 소리가 서로 들리는 곳에 있을지라도 백성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노자 제80장)국가는 마을 정도의 규모이고, 이웃나라와 왕래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자급자족의 공동체이다. 그리고 문명의 이기는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새끼를 엮어서 사용한다는 것은 결승문자(結繩文字)의 시대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면 애초에 문명의 이기는 왜 필요할까? 주어진 문장상의 내용으로는 어설픈 데가 많다. 따라서 차라리 국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주장으로 들린다. 이런 사회라면 충분히 무위의 정치가 실행될 만하다.→ 노자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장자에게 답을 청해 본다.* 장자 ?마제(馬蹄)?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은 마치 말을 다루는 것과 같아서, 다스린다는 것이 곧 해치는 일이 되기 쉽다. 백락(伯樂)은 말을 잘 다룬다고 하여 털을 태우고, 말굽을 깎고, 굴레를 씌우지만 그것이 말의 본성은 아니었다. 도공과 목수도 진흙과 나무거니와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다. 천하를 잘 다스린다고 함은 별 것이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제 떳떳한 본성을 스스로 얻게 함이다. 그래서 두루 덕을 갖추는 것, 또한 아무런 구속도 없이 자유스러운 것을 일러 지극한 덕을 이루었다고 한다.→ 말을 다룬다는 것은 말을 사람들의 쓰임에 맞게 개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본성을 제약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인이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도 백성들의 본성을 억제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가령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대를 생각해보면, 그 속에는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성과 자유가 억압되어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스림은 왜 필요한가? 이것이 노자의 생각은 아닐까.* 노자의 관심은 국가의 규모, 제도, 규범, 문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국가의 구체적 정치현실 속에 존재하는 개인과 그의 삶에 있다. 인간은 한 집단의 일원으로 태어나지만, 집단·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존재하며 개인으로 살아갈 뿐이다. 정치적 집단주의의 산물인 국가 또는 국가권력은 규범과 제도의 제정과 운영의 원리인 보편적 규범주의와 도구적 합리성을 강화하는 성향을 그 본성으로 가지며, 이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에게 일정한 규제와 제한을 가하는 억압구조를 필연적으로 산출하게 된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노자는 국가와 개인 사이의 억압구조가 약화되어 해소될 때 개인의 자유가 증대하게 되어 마침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한 장치가 ‘소국과민’의 논리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현실의 정치가 아닌 정치의 이상에 대한 견해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스림’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정치의 대상으로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시선은 독립적으로 자재하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국과민’은 이러한 노자의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제시된 하나 일에 간섭해서도 안 된다. 공무 담당자와 개인의 관계도 그렇다. 지나치게 틀을 만드는 것보다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곧 중앙권력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정책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미 틀(규제)에 속박되어 있는 것을 자유로운 상태라고 착각한다. 전혀 구속이 없는 자유란 부담스러울 뿐이다. - 사르트르* 노자는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爲無爲則無不治, 제3장)”고 하였고, 또 “도를 실행하면 날마다 할 일이 줄어든다. 줄고 또 줄어서 무위에 이르게 된다.(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제48장)”고 하였다.→ 노자가 강력하게 주장한 ‘줄이고 또 줄인다’는 말은 무위를 실천하는 제1의 원칙이다. 유위(有爲)에서 ‘줄이고 또 줄이고’ ‘덜고 또 덜면’ 결국은 무위에 이르게 된다. 노자는 이 원칙이 정치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원칙이 정부의 공용(功用)을 감소시키고 정사의 범위를 축소시켜서 그것들을 최소한도, 최저한도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하도록 해주면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해지고, 각자는 그 소임을 얻게 된다. 그러나 억지로 간섭하고 많은 일을 크게 벌이면, 그 결과는 정사에 혼란만 가중시켜 백성들을 더욱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 된다.한대(漢代) 유학 - 유교의 국교화 문제● 한무제(기원전 141∼87 재위) 때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에 의해 유교가 국교화 되었다.→ 무제(武帝)는 천하에 조서를 내려 현량(賢良)?문학의 선비를 천거하고 ‘大道의 要, 至論의 極’에 대하여 하문했는데 이것이 대한 응답이 이른바 동중서의 ‘현량대책(賢良對策)’이다.( 漢書 ?董仲舒傳?)* 동중서는 ‘제자백가의 주장과 사상이 각각 달라 군주가 하나로 통괄할 수 없으니 오로지 공자의 학술에 있지 않는 것은 그 도를 단절시켜야 한다’고 해서 사상적 통일을 시도함.→ 그가 유교를 채택한 이유는 명분과 권력의 경제성에 있었다.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이른바 춘추학자(春秋學者)였다. 동중서는 이들 춘추학파의 수장격이었다. 춘추(春秋) 는 원래 노(魯)나라의 역사책에 불과한 것이었고 공자(孔子)와도 관계가 없었으나 ‘사(事, 구체적인 사건)를 빌려 의(義, 도리)를 펴는’ 춘추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성인(聖人)을 필요로 했고, 이 때문에 춘추에는 공자의 사회상의 이상이 서술되어 있다고 하는 경학적(經學的) 해석이 붙으면서 그 권위를 강화해 갔다.여기서 나온 것이 춘추의 ‘한대(漢代) 예정설’이다. 이것은 ‘주(周)를 계승하여 난(亂)을 평정할 임무를 띠고 출현할 한(漢) 왕조를 위하여 공자가 춘추를 제작하여 새로운 왕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춘추공양전(애공 14년)에 “春秋의 義를 제작하여 이로써 後聖을 기다린다.”고 하는 구절에서 문장의 주어를 공자로, 후성을 유방(劉邦)으로 해석한 것에 따른다.* 천인감응과 재이설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은 ‘사람은 하늘에 근본하고, 하늘은 사람을 주재(主宰)한다’는 것으로 동중서 사상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왕권은 천명(天命)에 의한 것임을 천명(闡明)하고, 왕권을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왕권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한 사상도 보인다. 재이설(災異說)이 그것이다. 자연계에는 홍수?가뭄?혹서?혹한?지진 등 다양한 이상(異狀)현상이 있는데, 이 중에 이상 정도가 적은 것을 재(災, 재해)라 하고 정도가 큰 것을 이(異, 기이)라 한다. 정치가 횡포하거나 왕권이 방자하게 되면 하늘은 재(災)를 내려 경고한다. 만약 왕이 여전히 비위를 고치지 않는다면 이(異)를 통해 놀라게 한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하늘은 그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이설(災異說)에서 기존의 왕권신수설과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이설은 순자의 천인분(天人分) 사상에 역행함.* 삼강오상설삼강(三綱)이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는데, 삼강(三綱)의 선구는 한비자 에 있다.→ 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