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序중학교를 졸업한 지도 몇 년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남녀공학이지만, 남녀가 구분돼서 생활하는 학교를 다녔다. 당시, 남학생에게 전할 말이 있어서 여학생 반에서 남학생 반쪽으로 건너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보신 학교 선생님이 “너네 풍기 문란이야.”라고 말씀하시며 벌점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남녀 학생이 하나의 반에서 생활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학교도 있는데, 남학생과 그저 대화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점을 받은 것이 황당했었다. 그때부터 사춘기의 남녀를 강제로 나누어 생활하게 하고, 기본적인 남녀 간의 교류를 차단하는 학교의 제도, 특히 ‘남녀 분반’이라는 제도가 옳은 것인지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남녀 분반 학교’을 성 철학적 관점으로 고찰할 것이다. 특히, 남녀 분반을 지지하는 논거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내·외재적 반론을 펼쳐보려 한다.2. ‘남녀 분반’에 대한 용어 정리오늘날 중·고등학교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여자 고등학교, 남자 고등학교와 같은 단성학교가 있고, 성별을 분리하지 않고 학생을 모집하여 남녀학생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학교인 남녀공학이 있다. 남녀공학 중에서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혼성학급이 있고, 동성끼리만 반을 구성하는 비혼성학급이 있다. 이제부터 남녀공학 중 비혼성학급을 운영하는 학교 형태를 ‘남녀 분반 학교’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남녀 분반 학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율적으로 남녀 분반 학교를 희망하여 선택한 경우는 제외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 남녀 분반 학교에 배정된 경우, 즉 자율적이지 못한 선택으로 남녀 분반 학교에 다니게 된 경우를 논의하려 한다.3. 현재 남녀 분반 학교의 동향남녀공학은 학교장과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학급을 혼성학급으로 구성할 것인지, 비혼성학급으로 구성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현재 남녀공학 학교와 단성학교의 비율은 파악할 수 있지만, 남녀공학 중 남녀 분반 학교의 비율을 정확히 알 수 있는 통계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이 아니라, 각자의 발달 과정에 맞추어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라 본다.2) 학구적 풍토 조성남녀 분반 학교 형태가 학구적 풍토 조성에 더 유리하다는 논거이다. 남녀 분반 학교를 지지하는 입장의 주요한 논거로 사용된다. 남녀 분반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이성에 민감한 사춘기 학생이 혼성학급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엉뚱한 이성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학업 집중력과 성적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남녀공학이 단성학교에 비해 수능점수가 저조하다는 연구결과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남녀공학도 학업 성적이 저조한데, 남녀공학의 혼성학급은 더더욱 반학구적 풍토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앞서 남녀 분반 학교의 동향에서 언급했던, 혼성학급을 남녀 분반으로 전환하자는 주장 또한 학업성취도와 관련하고 있음과 일맥상통하다고 보여진다.3) 유교적 가치관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유교 국가이다. 최근 들어 유교적 색채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사람들의 머릿속에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남녀관계에 있어 보수적인 층들이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유교적 관념을 상기하며, 남녀 학생이 한 자리에서 어울리며 공부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거가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어떤 논리적 구조 없이, 그저 관념을 내세운 성차별적 주장이라 생각해, 이후 논의에서 제외한다.5. 찬성 논거에 대한 내재적 반론1) ‘성차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 제공’에 대한 반론남녀 분반이 성차에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는지에 대한 사실 여부를 살펴보기 전에, ‘여성과 남성이 교육 제공에서의 차이를 둘만큼, 큰 성차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남녀 분반을 논하는 데에 필요한 성차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학습과 관련한 성차이고, 두 번째는 학습과는 관련이 없는, 평소 생활할 때의 남녀 성향과 관련한 성차이다.우선, 학습적 측면이다. 흔히 여자는 언어적으로 뛰어나고 남성은 수리적으로 뛰어나므로, 이를 감안하여 서로에게 알맞은 교육 합쳐진다면 성별에 따른 학습적 차이를 가뿐히 전복시킬 수 있다. 오히려 성별이 아닌, 개인의 학습 역량에 따른 분반이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된다.두 번째로, 생활할 때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차이이다. 우리는 ‘여성은 여성적이고, 남성은 남성적이다.’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성적이다’, ‘남성적이다’라고 하는 남녀 간의 상이한 특성이, 예민한 사춘기 학생들이 같이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을 줄 수 있고, 성적 차이에 따른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거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 ‘전형적인 여성’과 ‘전형적인 남성’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33%가 전형적인 남성 또는 여성으로 나타났으며, 30%는 양성적인 사람으로, 나머지 30% 정도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별다른 특징이 없거나, 성이 전도된 사람으로 판단되었다. 즉, 여성과 남성 대다수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는 성적 특성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남녀 분반을 구상할 때 오직 33%의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만을 고려한 것이라 지적할 수 있다. 또한, 남녀 분반으로 학급을 구성한다 하더라도 동성 안에서 다양한 성적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를 남녀 분반의 지지 논거로 삼기에는 불충분해 보인다.그렇다면 ‘남녀 성차에 적합한 맞춤형 교육 제공’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교육 제공에 있어 구분을 할 만큼의 큰 성차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따른 맞춤형 교육도 있을 수 없다고 반론할 수 있다.2) ‘학구적 풍토 조성’에 대한 반론‘학구적 풍토 조성’에 대한 반론을 하기 전에, 이들의 논리 구조를 먼저 살펴보려 한다.ⅰ) 중·고등학생은 사춘기 시기이므로, 이성에 관심이 많을 시기이다.ⅱ) 혼성학급으로 구성한다면, 이성에게 관심이 더 많아질 것이다.ⅲ) 이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 이는 학습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ⅱ, ⅲ번 주장을 뒤집어보면, 남녀 분반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적을 것이고, 학업에 더욱 집.“과연 완전한 이성애자가 다수이고,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가 소수라는 것이 확실한가?”이에 대해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들은 양성애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모두가 양성애자가 아닌 이유는, 발달 과정에서 여러 요인에 의해 양성애적인 성향은 잠재적인 것으로 남게 되고, 자신을 단일성애적인 성향으로 키운다는 것이다.실제로 킨제이 스케일(Kinsey scale)을 사용해 진행한 연구가 있다. 성적 느낌(sexual feelings), 성적 행동(sexual behavior), 로맨틱한 느낌(romantic feelings) 중 하나라도 느끼면 양성애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후, 자신이 양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에 대한 연구가 있다. 연구 결과는 성적 느낌(sexual feelings)을 기준으로 한다면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말한 남성 67.8% 중에 동성애의 성적 느낌을 받은 남성이 32.2%가 있었고, 이성애자라고 말한 여성 52% 중에 47%가 같은 여성에 대해 성적 느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이트의 주장과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통해, 이성애자가 다수라는 것에 대해 반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남녀 분반이 학구적 풍토 조성에 유리하다는 논거는 옳지 않아 보인다.ⅲ의 주장도 살펴 보아야한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 학습 능력이 저하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선, 이 논리 자체가 옳은지 살펴보기 전에, ‘이성 교제보다 학습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전제부터 살펴보자. 이와 같은 논리는 심신이원론의 논리와 유사하다. 심신이원론은 심(mind)은 고차적이고, 신(body)은 보다 저차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이에 심의 고양을 위해서 육체적인 행위를 절제하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심과 신 중 무엇이 우위에 있는지를 가릴 수 없다고 반박한다. 교제와 학업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부모 또는 선생님들은 ‘학업 수행’이라는 학생으로서의 보다 고차적인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교제’라는 부수적대한 외재적 반론1) 자율성의 문제우리나라는 현재 고등학교의 평준화를 지향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를 무조건 갈 수 없다. 평준화 고등학교를 지원할 경우, 자신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를 지원하는데, 그 선택지가 매우 한정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1순위로 지망한 학교에 떨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된다면 원치 않게 ‘이미 남녀 분반으로 운영 중인 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다. 즉, 남녀 분반을 선택할 것인지, 혼성학급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학생들의 자율성이 매우 떨어진다. 중·고등학교를 혼성학급으로 구성할 것인가 또는 남녀 분반으로 구성할 것인가는 개인의 학창시절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혼성학급과 비혼성학급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며, 이러한 학급 분위기와 다양한 친구들과의 교류는 학교 생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요인이다.이에 파인버그의 자율성(자발성) 이론을 소개하려 한다. 파인버그는 행위의 중요도에 따라 자율성의 기준을 가변적으로 설정하라고 한다. 즉, (1) 행위가 심각한 위험을 감수할수록, (2) 감수된 위험이 회복하기 어려울수록 자율성의 기준을 높이라고 한다. 이를 남녀 분반 제도에 적용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남녀 분반과 혼성학급에 따라 자신의 학창시절과 그로 인한 자아개념이 매우 상이해 질 수 있기에,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남녀 분반을 학생들이 직접 결정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3년이라는 학창시절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남녀 분반 결정에 대한 학생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학급의 형태를 학생의 의견 반영 없이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2) 남녀 간의 이해 부족또한 남녀 분반으로 생활한 학생들이 이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이성에 대한 이상한 로망 또는 편견을 형성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 사람은 편견이 적다. 예를 들어, 미국의 다양한 부류의 인종이 다니는 통합 학교의 학생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