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는 데 언론이 큰 역할을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러한 경우를 겪었다-촛불혁명.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세상을 사는 우리는, 법 위에 군림하고자 했던 시대착오적인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이 역사적 사건을 촉발시킨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알린 언론이였다. 역사는 반복되듯이, 할리우드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는 50여 년 전 미국에서 벌어졌던 비슷한 사건을 다룸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언론의 눈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려준다.Ⅱ.더 포스트1)줄거리1966년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댄은 베트남 전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날아간다.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국방부 장관과 베트남 전쟁이 이기기 어려운 전쟁이라는 의견을 나누는데,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국방부 장관의 태도가 돌변한다. 기자들에게 베트남에서 미국이 이기고 있으니 승리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때부터 댄은 정부가 수상하다고 생각하며, 전쟁 관련 문서들을 복사해서 빼돌리기 위해 모으기 시작한다. 미국은 1964년부터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었는데, 영화 더 포스트는 이 기록을 둘러싼 1971년의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5년 뒤, 미국의 유명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지는 원래 사장이었던 캐서린이 사장직을 남편에게 맡겼다가 다시 캐서린이 사장에 오른다. 그녀는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 상장을 노리지만 그녀 아래에는 편집장 벤 일을 너무 열성적으로 하는 나머지 사고를 치곤 하는 등, 골치 아픈 상황에 몰려있다.어느날 캐서린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국방부 장관은 곧 안 좋은 기사가 나올 것 같다고 걱정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캐서린은 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라 지시를 한다. 벤 또한 그동안 경쟁회사인 뉴욕타임스가 조용했던 것이 신경쓰였는데, 닐이라는 능력 있는 기자가 있지만 그가 한 줄의 기사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벤은 인턴사원에게 닐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아보라 시키는데, 다음 날 뭔가 큰 건이 하나 터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이것이 바로 영화 더 포스트의 실화인 ‘펜타곤 페이퍼’이다. 펜타곤 리포트는 그동안 미국 정부가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베트남 전쟁을 계속해왔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법무부는 국익을 해치는 기사라며 재판을 걸어 더 이상 신문 기사로 싣지 못하게 만들었다. 벤은 뉴욕타임스의 기사화가 금지되었지만, 그 정보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여 추적을 시작하는데, 최초의 정보원이 댄이란 사람이며 그가 문서를 유출한 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벤과 댄이 연락한 후, 댄은 무려 40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들고 온다. 보고서에는 미국 정부의 공작이 드러나있었고, 벤이 이 사실을 캐서린에게 보고하자 캐서린은 회사의 상장 문제로 위기에 처해있음을 알지만 기사의 투고를 허락한다. 벤은 이것을 기사화했을 때의 문제를 염려했으나, 결국 신문은 인쇄에 들어갔고, 워싱턴포스트의 용기에 감동을 받은 다른 언론사들도 모두 1면에 펜타곤 페이퍼를 실으며 동참하였다.결국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의 사장들과 편집장들은 법정에 서야 했다. 그러나 진실을 깨달은 국민들은 정부의 거짓말에 반대하였고, 그 여론이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결국 판사는 “언론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그 후, 닉슨 대통령은 기자들의 출입을 막아버렸으나, 영화 결말에서 1년 후 ‘워터게이트’가 터질 것을 암시하며 통쾌하게 끝난다.2)스필버그의 페미니즘그동안 여성 감독들은 페미니즘을 많이 다뤄왔지만, 거장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주제를 다룰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놀라웠다. 사실 여성 발행인이 주인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아마 강인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여성이겠거니 생각을 했는데 이는 완전한 편견과 착각임을 깨달았다. 캐서린은 그 반대의 캐릭터였다. 소심하고,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사는 전형적인 여성의 캐릭터였다. 주인공인 캐서린에 대한 묘사와 성장 과정을 본다면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잣집에 태어나 보수적인 교육을 받으며 여자는 살림만 잘하면 된다는말에 길들여져 있던 여성이 갑자기 일을 하게 되고, 능력이 있음에도 무시당하고, 자신감도 상실하게 되는 일련의 환경 설정은 현재의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여성 기업인으로서 캐서린이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가 드러나는데, 펜타곤 페이퍼 기사 게재에 반대하며 가족과 회사를 생각하라는 이사들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회사이고 자신의 결단이니 따르라고 소리치는 모습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변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신념과 원칙으로 펜타곤 페이터를 보도하는 것을 승인했다. 그동안 불안과 두려움에 잠들어있던 그가 깨어난 것이고, 여성이라는 편견을 넘어 한 사람의 발행인이 된 것이다.3)언론의 연대, 그리고 진정한 언론영화는 특종 경쟁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기밀 문서의 내용은 시작하자마자 나오며, 주인공은 타임스가 아닌 포스트이기 때문이다. 주도하고 특종을 낸 것은 타임스인데, 왜 후속 기사를 낸 포스트를 주목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연대’를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뛰어난 언론인들의 활약상보다는 2등의 자리를 선택한 포스트의 윤리적인 태도를 통해 여러 언론사들의 연대의 힘과 이러한 힘에 의한 승리의 경험이 훗날 ‘워터게이트 사건’과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닉슨을 사임시킬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 하고, 제제하고 싶어 하는 트럼프의 시대(이제는 끝났지만)이기 때문인지 요즈음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와 역전된 상황인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우리는 힘있는 정권이면 정부가 정해주는 기사를 쓰다가, 민주적인 정권이면 언론사들이 이 영화와 반대되는 형태의 ‘연대’를 하고 있기에 세대 갈등을 조장하고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인지, 우리의 상황과는 다른 모습을 한, 해외의 언론사들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현재도 일본은 세계 시장에서 광범위하게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화강국이다. 특히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일본을 대표하는 콘텐츠 사업으로서, 국내는 물론이요 해외에서도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붐은 1960년대 을 기점으로 일어났다 볼 수 있는데, 이를 시작으로 , , 의 히트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009-2013년도 사이에는 애니메이션 산업 시장이 잠시 주춤했었으나, 2016년 의 대 흥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24조원 상당의 시장 규모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나 일본 애니메이션은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데, 해외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관심도에 따라 전체 시장 파이가 유의미하게 변동할 정도이다. 따라서 2018년도 일본 문화청에서 발표한 에 의하면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의 지원액은 121백만 엔으로, 일본 정부는 애니메이션을 쿨 재팬 전략의 중심 산업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내 불공정거래에 관한 이슈는 계속 이슈로 남아있다.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 볼 수 있는 특이한 수익구조가 주된 원인으로, 지금부터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일본 애니메이션 , , 등을 살펴보면, 3D 그래픽만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해외와 달리 앞서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이펙트나 배경 부분만 3D 그래픽을 사용하고, 전체적으로는 셀 애니메이션 형태를 고집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3D 애니메이션 을 보면 캐릭터들이 마치 사람이 움직이듯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데, 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전체적으로 흐르지 않고 마치 만화 속 장면을 보듯이 중간중간 멈추기도 한다. 이는 셀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그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셀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셀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손으로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작화력이나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능력 등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많은 인원과 경비이다. 손으로 하나하나 그려야 하는 셀 애니의 특성상 한 편을 위해 그려야 하는 그림 수는 엄청나게 많은데, 일반적인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원화 수는 1800개로 제작에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애니메이터가 필요하기에 투자 자본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는 회사들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자본을 지원해주는 투자자, 즉 제작위원회이다.일본 애니메이션은 다수의 스폰서들에게 작품의 제작비를 투자받는 형식으로 투자 회사는 주로 방송사, 콘텐츠 유통업체, 장난감 제조업체 등이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회사 안 애니메이터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애니메이션 제작 시 제작회사에서는 하청 업체 애니메이터들에게 일감을 분배해서 맡기고, 제작 회사에서 하청 업체에서 제작한 그림들을 편집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즉 정리하자면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은 제작위원회에서 조달된 자금을 받은 제작 회사가 하청 업체에게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그림을 의뢰하고, 의뢰받은 그림들을 총 편집하여 애니메이션을 방영하는 다단계 형식의 재위탁 형태를 띄고 있다. 제작위원회 구성을 통한 자금 조달은 작품이 흥행에 실패를 하는 경우에도 큰 손해를 입지 않고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분명 효율적인 부분이 있지만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겪는 수익성의 위기로, 문제는 애니메이션 방영 후 발생한 수익을 배분하는 부분에서 일어난다. 애니메이션에서 발생한 수익의 대부분을 투자자인 제작위원회가 투자한 만큼 배당금을 회수해가기 때문에, 제작위원회가 가져가는 배당금을 제외하고 나서도 의뢰를 맡긴 하청 업체에게도 수익을 나눠주면 제작회사가 가져가는 수익금은 매우 적기에, 막상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애니메이터들이 가져가는 돈은 매우 적다.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 구조상의 큰 문제로, 현재까지도 애니메이터들의 불공정 급여에 대한 이슈는 식지 않고 있다. 또한 제작위원회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이 종영된 후에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며, 하청 업체 측에서는 일감이 끊겨 재정상으로 매우 불안정해지며 이로 인한 피해는 애니메이터들이 고스란히 안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작위원회는 한 회사가 아닌 여러 회사로 구성되어있기에 각자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의견이 한 군데로 잘 모이지 않는데, 투자자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제작회사는 각 투자자들의 비위를 맞춰주다보니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어지고 갑자기 이상한 결말로 종영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스토리가 산으로 간 애니메이션들의 원인의 9할은 제작위원회의 입김이다.이러한 불안정한 수익구조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의 희망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애니메이션의 팬들과 넷플릭스이다. 제작회사에서 그나마 수익을 많이 주는 것은 OVA(Original Video Animation)로, 텔레비전 방영이나 영화관 상영 등을 하지 않고 비디오나 DVD 등의 매체로만 판매되는 애니메이션을 말한다. 앞서 서술했듯이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본편만으로는 별 수익이 없으며 실제 수익은 투자자가 취급하는 장난감이나 음반 같은 상품의 판매로 얻는다. 하지만 OVA는 비디오 판매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OVA 판매는 제작회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넷플릭스는 앞서 서술한 불공정한 수익의 고민에 시달리던 제작회사에게 있어서 파격적인 접근이었는데, 넷플릭스는 작품 제작에 필요한 자본을 제작 회사에 직접적으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제작위원회처럼 제작 과정에 큰 터치를 하지 않으며 오직 애니메이션의 단독 방영권만을 가져간다. 이와 같은 제작위원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파격적인 메리트에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들은 “업계가 미국 대자본에 종속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앞다투어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특히 여성들-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는 ‘카와이’이다.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많이 소비되는 나라인 만큼 카와이라는 단어는 일본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더욱이 카와이는 경제를 움직이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말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카와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따라서 카와이 컬처의 장단점에 관해 논하기 전, 우선 이들의 탄생 배경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카와이 컬처의 탄생 배경은 70-80년대에 만들어진 시부야 문화로,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시부야 문화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시부야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언덕이 많은 고급 주택지 지역으로, 당시 젊은이들의 중심지이던 넓은 광장을 가진 신주쿠와 달리 골목길이 많은 비인기지역이었다. 그러나 60년대 학생 운동자 출신이었던 쓰쓰미 세이지를 대표로 하는 세존 그룹은 오히려 시부야의 골목이 많은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시부야 골목마다 다양한 백화점을 건설했는데, 점포와 점포를 유기적으로 이어 고객들이 디즈니랜드를 구경할 수 있게 해 기존 주택지에서 고객들이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즉 문화와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세존 그룹은 패션 상품, 문구류, 악세사리 등 다양한 상품을 많이 판매했는데, 당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하던 사람들은 세존 그룹 백화점에서 예쁜 상품들을 싼 가격에 구입해 자신들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시부야 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소비품으로 자신을 꾸미는 카와이 컬쳐가 형성되었다.세존 그룹에 의해 새로운 소비공간으로 발돋움된 시부야에서는 싼 가격으로 자신들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 10-20대 여성이 주 고객층으로, 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는 패션 잡지였다. 특히 잡지 올리브는 시부야 문화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올리브는 전문 모델을 기용하는 타 패션 잡지와 달리 매력있는 일반인인 독자 모델을 내세우면서 모델이 착용한 상품들의 구입처와 가격을 알려주는 지침서 역할을 했는데, 이는 시부야와 10-20대 여성들을 잇는 메신저였다. 이후 다양한 패션 잡지들은 올리브의 노선을 따라 싸면서 귀여운 옷으로 코디한 친근감이 드는 독자 모델을 기용해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즉 카와이 컬처는 다양한 상품을 표현 수단이 없던 여성들에게 제공함으로서 스스로 자신을 연출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한 시부야 문화, 패션 잡지의 메신저 역할, 그리고 10-20대 소녀들의 소비를 기반으로 등장했다 볼 수 있다.시부야 문화는 일본 내에서 옹호 또는 비판하는 데 난항을 겪는다. 옹호 측은 세존 그룹이 예쁘면서 값싼 상품들을 판매한 것이 대중들이 문화적으로 풍족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바라보는데, 특히 여기에는 60년대 학생 운동 출신자 출신인 대표 쓰쓰미 세이지가 싸고 질 좋은 상품을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제공하고자 했던 사상이 담겨있었다 주장한다. 당시 시부야에서 개성넘치는 물건들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던 계층은 주로 10-20대 여성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오피스 레이디의 학력을 살펴보면 60년대에는 중졸 출신이 압도적이었으나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중졸 비율은 대폭 감소하고 고졸과 전문대졸 출신 비율이 가파르게 성장했다. 즉, 고졸 및 전문대졸 출신 오피스 레이디들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문화를 찾던 와중 이러한 욕구는 시부야 문화의 난개와 맞아 떨어져 문화적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제공하고 대중이 자신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기제를 제공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시부야 문화는 그동안 문화를 질길 여유가 없던 대중들에게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주었다는데에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시부야 문화로 인해 탄생한 카와이 컬처는 현재 일본의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말로 문화 전략으로서 활발히 활용하고 있는데, 실제로 카와이 컬쳐 외교는 매우 성공적인 성과를 얻어내고 있으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 문화 속에도 스며들었다.
I. 서론삶은 정신적으로 완벽해질 수 없다. 정신 치료 역시 완전하지 않은 정신을 조금 더 나은 정신으로 대체하는 것일 뿐, 정신적으로 완전히 충족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간혹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는 이들에게서 불안정한 이들이 생성되는데, 우스갯소리인 “정신병 있는 사람은 정신병원에 가지 않고, 정신병 있는 사람한테 상처입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에 간다”는 말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스트레스의 만병통치약은 충분한 휴식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나 메신저, 핸드폰 등의 발전으로 인해 공간의 한계가 사라지자 퇴근이라는 존재는 무색하게 됐으며, 결국 현대인은 24시간을 꼬박 스트레스와 긴장,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무거운 권력의 압박과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에게서 번아웃 증후군, 범불안장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비율은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남자 8.9%, 여자 8.0%로 전체 8.5%에 육박했다. 그러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2006년에는 11.0%, 2011년 14.3%, 2016년 16.5%으로 상승폭을 보였으나 2021년에는 11.5%에 그치는 등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와 같은 수치는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이 불안정한 정신을 치료를 통해 더 나은 정신으로 대체할 시간조차 없음을 방증한다.II. 본론1. 현대인의 정신건강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앞서 서술했듯 마음의 병인 정신질환을 뇌의 문제로 간주해 이루어지는 약물 처방은 임시적인 치료책이며, 근원적인 해결책은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충분한 정서적 안정의 시간을 갖는 것뿐이다. 그러나 “빨리빨리”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스트레스의 근원을 파악하고 어루만지는 시간을 갖기는커녕 상담 혹은 약물 치료를 받을 여유조차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구태여 시간을 마련하지 않아도 스트레스를 분출 할 방법은 존재하는데, 이는 바로 ‘자극을 좇는’ 것이다. 시간이 없고 넘쳐나는 스트레스에 잠식된 현대인이 원인을 해결하는 대신 지친 심신을 무시할 수 있는 자극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당장의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자극적이고 도를 넘은 미디어 매체만을 좇다 자극에 잠식된 현대인은 더 이상 기존의 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되는, 일명 도파민 중독 상태에 이르게 된다. 특히나 미디어 매체의 발달로 우리는 건조기후에 살아가는 선인장이 열대우림에 던져진 것처럼 현재 과도한 도파민에 둘러싸인 환경에 살고 있는, 일명 도파민 중독 가능성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로서, 신경신호전달 뿐만 아니라 의욕, 행복, 기억, 인지, 운동 조절 등 뇌에 다방면으로 관여한다. 즉 도파민은 인간을 흥분시켜 인간이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부여하는 신경전달 물질 중 하나인데, 문제는 과도한 도파민 분비는 중독 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도파민은 분비되면 될 수록 쾌락을 느끼게 되는데, 강렬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는 동안 뇌는 해당 도파민에 중독이 되며, 뇌 구조는 중독되는 행위 외에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게 되는 형태로 변형된다. 도파민은 앞서 말했듯 뇌의 식량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기에, 허기를 느끼는 즉시 즉각적인 만족을 약속시켜주는 행위에 집착하게 된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알코올, 게임, 성, 흡연, 도박, 식이, 코인 중독-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이 바로 도파민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현대사회의 불확실성과 복잡화는 우리를 갖가지 중독의 세계로 인도한다. 중독적인 것들은 초반에 강렬한 쾌락을 선사하나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초반의 황홀함보다 배로 심한 고통과 불안함을 야기한다. 점점 쾌락을 느끼는 임계치가 높아지면서 내성이 생기고, 생성 이후에는 더 이상 초기의 쾌락 수준에서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즉 즐거운 자극에 오랫동안 반복해서 노출되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감소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우리의 기준점은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이 그 예시이다. 음주 시에 도파민 분비는 일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게 되면 우리의 뇌는 늘어난 도파민 분비량에 적응하기 위해 도파민 수용체를 늘린다. 알코올이 주는 만족감을 위해 음주를 지속할 시 늘어난 도파민 수용체만큼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되어야만 모든 수용체에 도파민이 결합하게 된다. 수용체와 도파민의 결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이 필요하게 되고, 이는 당연하게도 중독에 빠지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늘어난 도파민 수용체에 충분한 양의 도파민이 결합하지 못하면 중독 증상이 일어나는데, 대표적으로는 불안, 초조, 경련, 구토, 손떨림 등이 있다. 이러한 중독 증상을 잊기 위해 많은 이들은 또 다시 술을 찾게 되며, 날이 갈수록 알코올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는 ‘알코올 중독’ 상태에 도달한다.알코올 외에도 정제설탕, 카페인, 니코틴, SNS, 쇼핑, 음란물, 악성 댓글 등 쾌락을 느끼는 행위에서 대부분 도파민이 분비된다(중독되는 수순은 알코올 중독과 동일하다). 특히나 SNS 중독이 최근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는데, 2020년 9월 7일 KT경제경영연구소와 디지털랩 DMC미디어의 ‘소셜미디어 현황 및 전망’ 자료에 따르면 컨설팅 업체 위아소셜 조사 결과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SNS 이용률은 87%로, 세계 평균(49%)의 약 1.8배를 기록했다. 이는 국가별 순위로 보면 무려 3위해 해당하는 것이다. 적당한 SNS 이용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나, 몇 초 단위로 새롭게 올라오는 글이 많은 SNS의 특성 상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 되어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중독에 도달하게 된다. 구태여 알코올 내지는 니코틴, 마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도파민 중독이 될 위험에 처해있으며, 심지어는 이미 도파민이 주는 쾌락에 중독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2.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일상에 매몰되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은 채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편안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울뿐더러, 오늘날 큰 보상을 약속하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다. 중독성 물질과 디지털이 결합된 현실에 우리는 스트레스의 돌파구인 쾌락의 중독, 즉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도파민 단식 운동’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강렬한 도파민을 제공하는 요소들을 피해 30~40일간 ‘도파민 단식’을 취하게 되면, 뇌는 유연하기에 도파민 과다분비로 중독되는 행위 외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잃는 뇌구조에서 도로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하는, 즉 뇌가 리셋 되어 도파민 의존성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도파민 단식의 이론이다. 그러나 UC 샌프란시스코의 신경과학자인 조슈아 버케 박사는 ‘도파민 단식’의 이면에 있는 과학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또한 도파민 단식이 비합리적이라는 측의 의견은 도파민은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호르몬이며, 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술, 담배, 커피, 스마트폰 중독에서 멀어지기 위해 해당 행위를 ‘단식’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그 행위로 인해 분비되는 ‘도파민’에 중독 된 것이므로, 해당 행위를 단식하더라도 또 다른 도파민을 제공하는 행위에 중독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도파민은 보상 그 자체의 쾌락을 느끼는 과정보다 보상을 얻기 위한 동기 부여 과정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원을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도파민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파민에 중독되는 현실을 살펴보아야 한다.한국의 일상생활 스트레스와 직장인의 직무 스트레스 수준은 타 국가와 견주어 봤을 때 가히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라이나생명 모기업 시그나그룹에서 23개국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웰빙지수는 가장 낮았으며, 스트레스 지수는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한국사회의 사회·심리적 불안의 원인분석과 대응방안’에 의하면 대한민국 성인 중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또는 매우 많이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은 37.9%로 약 10명 중 4명 꼴로 나타났으며, 이는 우리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단순히 개인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함께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하는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21년 기준으로 11.5%에 머물러 있는데, 저조한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의 원인은 2021년 발표한 OECD의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 평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1908시간으로 지난해 수치가 집계된 OECD 국가 중에서는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 번째로 일한 시간이 가장 길었다. 즉, 우리나라 현대인은 과도한 노동으로 정신건강서비스 이용은커녕 자신의 마음을 돌볼 시간조차 없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더욱 더 강한 도파민-‘오늘은 힘들었으니 한 잔만 더‘ 혹은 ‘자야하지만 SNS 5분만 더‘ 와 같은 만족감-으로 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 노동시간의 단축은 많은 논의와 필요하며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이지만, 노동은 현대인 스트레스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근본적인 원인이기에 필자는 도파민 중독의 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길은 국가적 차원에서노동시간 단축의 선행이라 주장한다.
Ⅰ. 들어가며는 일본이 개항을 하고 난 후에 보수 세력이자 구식 군인인 사무라이 세력과 진보 세력이자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개항자들의 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보다 한 가지 흥미가 있던 부분은, 사무라이 정신인 무사도를 너무 좋게만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사를 현대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안 되지만,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를 볼 때 영화에서 나타내는 것이 군국주의의 미화화 혹은 합리화하는 내용은 현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에 나오는 사무라이 정신을 보면,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윗사람에게 충성하는 멋있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무사도의 역사를 보면 멋있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Ⅱ.사무라이와, 그리고 무사도의 변질1) 사무라이의 등장사무라이의 어원이 현 사무라이로 변모한 데에는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으나, 통상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사무라이란 일본 봉건시대의 무사 계급을 일컫는 말로, 헤이안 시대 천황 정부의 9-10세기경 무력의 소유를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 출현했는데, 그들은 부시 혹은 사무라이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사무라이란 본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군사적 기능으로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집단이었으며, 그들은 군사 전문가로서 명확한 자기정체성을 갖는 일본의 한 사회집단이었다.사무라이 문화가 성숙해감에 따라 농지를 지배해가던 중 기존 사회의 권력 구조가 무너져 왕실 세력이 쇠퇴하자 일본의 중세 사회가 발전했는데, 동시에 사무라이 계급도 함께 지위가 상승했으며 이에 따라 사무라이 무사들은 독자적인 위계 구조를 가진 정치조직을 구축하게 된다. 이후 사무라이는 공식적으로 제도화되며,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구축해갔다. 사무라이는 그들의 폭력성-뛰어난 군사력을 바탕으로-을 통해 지배 영역을 확대해갈 뿐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했다. 즉, 사무라이는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힘을 가지는 사람들로 인식된 것이다.2) 무사도의 변질사무라이의 등장으로 평화가 찾아오자 당시 사무라이들은 과거의 사무라이들을 동경하게 됐고, 동시에 이념으로서의 무사도가 등장했다. 당시 사무라이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사도 관념은 대체로 비겁한 행동 없이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는, 유럽의 기사도와 버금가는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무사도는 쇠퇴하였다. 혼란스러운 전국시대에는 생존이 우선시되었으므로 정정당당한 일기토는 사치가 되었으며, 특히나 당시 지배층이었던 문맹의 하인 출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통적 무사도의 소양을 갖춘 귀족들과 관련이 없었다. 따라서 전국시대 이후 무사도는 사실상 소실되었고, 메이지유신 이후 신분제의 철폐로 무사 계급은 소멸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급격한 군국주의 파시즘화와 군국주의 체제 정비로 무사도는 대외 침략을 개시하면서 메이지 일본 고유의 정신으로서 재조명되었다. 재조명되는 과정에서 무사도는 전란 중 이용가치가 훌륭한 부분인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변형되었으며, 사실상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정신이 되었다. 현재 무사도의 대표적인 저작인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 역시 이 시기에 출판되었다. 일본의 침략전쟁이 본격화되며 무사도 찬양은 점점 강도를 더해갔는데, 특히나 러일전쟁 후 자부심이 극에 달한 일본에서는 ‘일본이 러시아에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정신력’이라는 목소리가 커졌다.오늘날 일본의 만화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에 따르면, 무사도란 “실행에 따르는 일종의 정신적 훈련이며 무릇 일본 고유의 상무 기상을 기초로 하여 후에 유교와 선이 이에 합쳐져 이러한 삼자가 융합, 조합되어 발달된 것”으로, 일본 민족은 무사도에 바탕을 둔 정신적 공동체로 상정되었으며 무사도는 국민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켜야 할 의무이자 당위를 뜻하는 국민도덕으로 규정되었다.일본 민족의 고귀한 정신적 가치로 새롭게 포장된 무사도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되었는데, 특히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는 무사도를 미화하고 찬동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즉,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무사도는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정신으로, 기존에 존재하지도 않던 문화를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와 일본의 지배계층이 군국주의에 맞춰 변형한 것이다.3)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가 끼친 영향메이지유신 이후 사실상 소실된 무사도를 새로운 형태로 가공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이는 니토베 이나조이다. 니토베는 ‘무사도’라는 단어를 세상에 퍼트린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인 지인에게 받은 “일본에서는 어떤 방식의 도덕 교육이 이루어지냐”라는 질문이 『무사도』를 집필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무사도』가 단순히 일본의 도덕 교육을 소개하는 저서가 아니었다는 점인데, 그는 무사도가 충·의·용·인·예·성을 기본으로 하는 일본 민족의 아름다운 이상이자 도덕적 규범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니토베가 출판한 무사도는 근대 일본이 탄생시킨 자기 환상에 불과하다. 그는 당시 일본에 존재하지도 않던 무사도 개념을 기사도에 빗대 무사를 칼로 수양하는 계급으로 미화했으며, 지적인 일본, 혹은 도덕적인 일본은 직간접적으로 무사도에 의해 완성되었다 주장했다. 참고로 『무사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즈음에 출판된 책이다.이러나 저러나 서양에서 영어로 제작된 이 책은 서양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서구 열강 모두 러시아가 승리할것이라 예측했던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제국의 승전보는 서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으며 그 이유를 찾던 도중, 서양인들은 그 해답을 『무사도』에서 찾게 됨과 동시에 『무사도』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서양에서 큰 인기를 끈 『무사도』는 일본어로 역수입이 되어 자국 내에 점차 퍼지자 일본인들은 무사도를 일본의 고유한 정신으로 믿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무사도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일본인의 정체성으로 확립된 것은 애국심에 대한 찬양(참고로 일본은 전범국이다)을 합리화함과 동시에 군국주의적 선동에 매우 적합한 논리로 사용되었다. 또한, 와 같은 할리우드 사무라이 영화의 여파가 일본의 무사도 붐의 기폭제가 됐음은 물론이요, 대중의 기억 속에 주기적으로 상기되어, 일본인들 사이에서의 동질감을 느껴지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역사란 ‘만들어진 전통’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