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 서평-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1. 저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에 관하여2. 저술 배경 및 목적3. 책의 특징4. 내용1) 장별(시기별) 내용2) 전체 내용 요약5. 평가6. 한국교회에 대한 적용점Ⅲ. 결 론Ⅰ. 서론우리나라는 선교대국이다. 복음이 이 땅에 전파된 역사는 길지 않지만 지금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로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하는 대표적인 나라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교회 안에서는 영혼 구원과 선교를 열심히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선교사역에 헌신하려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이 보인다.그런데 그런 표면적인 외침들 속에서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과연 선교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을 전파할 사명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본질적이고 심각한 질문을 하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술의 구호와 명성에 걸 맞는 신앙과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도 많다.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이런 우리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해법을 그의 삶으로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짧은 삶을 통해서 진정한 선교자의 사명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자의 자세와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진한 감동으로 보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비추어 보게 되고 이 시대의 왜곡되어 가고 있는 신앙과 삶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몸부림치면서 자신을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들고 달려갔던 그의 삶은 어떠한 구호나 설명보다 우리에게 값진 도움을 줄 것이다.Ⅱ. 본론1. 저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에 관하여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1718년 코네티컷 주 하담에서 태어나 1739년 깊이 회개하고 예일대학에 진학하였다. 1742년 사소한 잘못으로 퇴학을 당한 후 신학을 공부하여 설교할 자격을 얻었다. 스코틀랜드 포교협회는 그를 인디언선교사단 에드워즈의 손을 거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신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에 한해서만 출판을 허락하겠다고 승낙했다고 한다.에드워즈는 서문에서 일기에 나타나는 브레이너드의 인간적인 연약함과 몇몇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실함과 경건함을 실생활에서나 그 심중에 놀람만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점이 그가 경건의 능력은 물론이고 참으로 생명력 있는 신앙을 소유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해준다고 에드워즈는 밝힌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며 진실하게 살펴보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영적인 유익을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판 목적을 밝힌다.3. 책의 특징이 책은 브레이너드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신앙적 관점에서 자신이 직접 쓴 일기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1~3장은 선교사로 임명되기까지의 기간을, 4~9장은 본격적으로 인디언 선교활동을 수행하는 기간에 기록한 내용이다. 시간적인 순서로 배열하여 날짜별로 짤막하게 기록한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직접 사역의 성과와 의미를 신앙적, 신학적으로 평가한 내용도 간혹 기록되어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 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약간의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일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한 연약한 인간이 내면으로 겪는 갈등과 신앙적 고뇌 그리고 사역의 수고가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 어려움들 속에서 서서히 성숙해 가는 한 신앙인의 모습도 잘 그려지고 있다.4. 내용1) 장별(시기별) 내용제1장 [1718년 4월 20일 ~ 1741년 2월]태어나서 목회 수업을 하기까지의 과정이다. 데이비드 자신의 이야기와 예일 대학과의 관계, 그리고 그가 제적된 배경 이야기를 담고 있다.제2장 [1742년 4월 1일 ~ 7월 29일]신학 수업을 시작하여 설교자격을 인정받기까지의 기간의 일기이다.제3장 [1742 7월 30일 ~ 11월 25일]그가 설교할 자격을 얻고 나서 선교사로 임명되기까지의 내용이다.제4장 [1742년 11월 26일 ~ 1743년 3월 31일]선교사로드 브레이너드는 1740년~1743년 무렵 뉴잉글랜드 대각성운동 기간에 성년이 되었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열네 살에 어머니를 잃은 그는 천성적으로 우울함과 낙담에 빠지기 일쑤였다.1740∼1743년의 뉴잉글랜드 대각성운동 기간에 그는 성년이 되었다. 그는 기독교 가정의 젊은이로서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자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칼빈주의 교리를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그가 부흥운동가들의 영향을 받아 개인적 구원체험을 얻고자 할 때부터 개인적인 고민이 시작되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복음주의적 설교가 와 닿지 않았다.그는 구원문제를 앞에 두고 1년 이상을 기도와 금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기도했다.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종교적 갈망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어느 주일 저녁 숲길에서 그의 영혼에 말할 수 없는 영광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과 위대하심과 완전성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의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 앞에 복종시켰다.이 시기 체험한 하나님의 임재감이 그의 생애동안 고통의 시기에도 자주 나타났다. 그가 가톨릭 신자였다면 그는 수도원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청교도였기 때문에 공부와 교제가 엄격한 경건생활을 방해할 지도 모른다는 예감에도 불구하고 예일대학에 진학하여 목회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예일대학의 교수들은 그때 불고 있는 대각성운동에 별로 공감을 느끼지 못했다. 브레이너드가 2학년 때, 학생부장이 기도모임 때마다 분위기를 썰렁하게 하자 브레이너드는 그를 은혜가 아주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제적된 후 브레이너드는 여러 목사들로부터 신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는 경건생활 가운데 불쌍한 영혼들과 그리스도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이교도의 구원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느낀 그의 선교에 대한 헌신은 그 무렵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인디언 구원을 위하여 뭔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서 한 마일 반쯤 가서, 마루도 없는 통나무집에 짚 더미를 깔고 생활하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묵었다. 내가 인디언들 틈에서 어떤 봉사를 한다거나,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5월의 일기장에는 사역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매우 외로운 황무지에 살고 있다. 영어를 말하며 교제를 나눌 사람은 나의 인디언 통역자 단 한 사람뿐이다. 나는 인간적 처지로 볼 때 외롭게 살고 있다. 내 식사의 대부분은 삶은 옥수수나 옥수수 죽이다. 거처래야 짚 더미 속이다. 내 사역은 어렵고 매우 힘들다. 인디언들은 살 땅이 없다. 지금 사는 곳도 독일인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들이 강압적으로 빼앗아 버렸다. 그들은 불쌍한 인디언의 삶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날 미워하고 있다. 내가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왔기 때문이다.”어려움 속에서 그는 선교의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카우나우믹에서 일 년간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사역을 하고 나서 뉴욕에 있는 펨버튼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사역의 성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저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들의 형편에 가장 적합한 선교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생활 자체가 죄 덩어리였습니다. 사악한 마음과 타락한 성품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에 합당치 못한 형편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에게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그들에게 알려주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형편에 맞는 몇 가지 기도문을 작성했습니다. 이것을 다시 인디언 말로 번역했습니다. 찬송가 몇 편도 인디언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많은 역경과 난관에 부딪혀 좌절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또 11월 4일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집회에는 많은 눈물과 격렬한 흐느낌과 애통이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 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웃과 친구를 위해서 우는 사람도 있었다. 세상일에 실패하여 우는 것보다 영적인 문제로 우는 것이었다. 23명의 인디언들이 신앙을 고백했다.”브리에너드는 자신의 인디언 선교 사역을 평가하는 글도 남겼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 어느 시점에서 인디언 가운데 일을 시작하신 것이 분명한데 그 시점은 나의 힘이 한계에 도달해 있던 시점이었다. 나의 건강은 말이 아니었고 인디언 선교는 절망적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신 것이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곳저곳에 사는 인디언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시고 큰 일을 행하셨는가를 나는 표현할 길이 없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남자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는데 며칠을 지내지 않아 그들은 사방에 몰려들었다. 20마일 40마일이 넘는 곳에서 인디언들이 몰려들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것이었다. 셋째, 못된 사람들이 내가 전한 복음을 비방하고 다녔지만 하나님께서 이 불쌍한 인디언들을 그 악랄한 비방에서 지켜주셨다. 기독교를 비방하는 음모가 백인 몇 사람들에 의해서 꾸며졌다. 이 못된 사람들이 인디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중상모략을 하곤 했다. 내가 사기꾼이고 악당이며 그들을 영국에 노예로 팔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악랄한 술책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간섭으로 산산이 부서졌다.”브레이너드는 주님 사모와 천국 사모에 사로잡혔던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가슴은 항상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였다. 마치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이 항상 주님과 천국을 사모했던 것처럼 브레이너드도 항상 주님과 천국을 사모하면서 살았다. 그의 기도와 일기는 온통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다.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마음은 하나님과 하나 되고 싶은 갈망으로 하나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