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아저씨, 잘 지내시죠?얼마 전, 어떤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가 주민과 다툼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뉴스를 보았다. 아침에 마시고 있던 커피가 씁쓸했다. 이중주차 논란으로 갈등을 겪던 주민의 폭언과 폭력을 견디다 못한 나이 지긋한 노년의 선택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경비아저씨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경비가 된 것이..6년 전에 나는 서울에서의 교단생활을 접고, 전주로 내려왔다. 남편과 결혼을 했고 그의 직장을 따라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터를 잡은 이 곳은 초가을이 되면 감나무가 아름답게 자라난다. 초록빛이던 감이 주홍빛으로 물들 때면, 나는 어김없이 호두아저씨가 떠오른다. 호두아저씨는 내가 초등학생 때 살던 아파트의 경비아저씨 별명이었다. 매일같이 호두 두 알을 손 안에서 굴리시던 습관 때문에 나와 내 친구들은 그를 호두아저씨라고 불렀다. 유독 작은 키에 연세는 많으셨지만 아파트는 호두 아저씨의 부지런하고 깐깐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하교 후 친구들과, 놀이터로 향했다. 가방을 집어 던지고 그네에서 멀리 뛰기, 미끄럼틀에서 숨바꼭질, 구름사다리 건너기. 머리부터 발 끝까지 흙 먼지를 뒤집어 쓸 때쯤 저녁식사를 알리는 엄마가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우리는 아쉬운 손을 흔들고 헤어지곤 했다. 유난히 하늘이 파랗던 날, 구름 사다리를 건너던 난 고개 위로 파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동그란 아기 주먹 만한 감들이 조금씩 주홍빛의 옷을 입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재빨리 꼭대기에 올라, 감 2개를 따서 내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감을 자랑할 마음에 허겁지겁 구름사다리를 내려오는데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서 불이 났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아! 이 감을 따면 어떻게 하느냐! 이 감나무가 네 것이냐? 여기 아파트 사람들 보라고 심어놓은 감을 이놈아!” 호두아저씨의 불호령이었다. 나는 너무 놀란 마음에 이마가 아픈지도 모르고, 호주머니에 있던 감을 모래에 내려놓은 채 으앙~ 하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아파트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감나무에서 감 두 알을 딴 것이 이마가 얼얼할 만큼 딱밤을 맞을만한 일이었던가.... 그 후 호두 아저씨가 아파트를 순회할 때면, 일부로 빙 돌아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눈을 땅바닥으로 내리깔고, 급하게 걷곤 했다. 호두아저씨가 나를 기억하고 또 야단을 치실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정주영입니다.수상부문 : 대학·대학원생, 일반 부문 / 동상성 명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이 땅에 태어나서’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벅찬 울림이 있다. 그리고 이어서,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질문이 있다. 지금 이 책을 읽은 당신은 이 땅에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 삶은 무엇을 위함인가? 책이 주는 여운이 짙어 한동안 내 마음은 정주영 회장의 발걸음을 따라 찬찬히 걸어간다. 눈을 감고 그가 남긴 족적을 더듬다보면, 숱한 파도가 느껴진다. 때로는 캄캄한 밤을 가득 메운 강한 태풍의 습기가 가득차고,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등불이 켜지고,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초등학교를 다니던 때, 정주영 회장에 대해 열정의 기업인으로 듣고 자랐다. 비록 학식을 짧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현대를 일으켜 세운 기업가. 그래서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 이것이 어린 시절에 정주영 회장을 기억하는 단어였다. 격동의 시대를 겪어온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발전하기까지 정주영 회장의 신념과, 그리고 남다른 행동력은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나는 다짐했었다. 나도 꼭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겠노라고...내 인생은 실패했다.얼마 전 13년을 일했던 학교를 퇴사했다. 해외봉사를 다녀온 뒤 자퇴위기에 놓인 학생들을 상담하는 봉사활동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 2,30대 나의 청춘을 그곳에 드렸다. 가르치는데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왕따, 이혼가정, 학습부진 등 각자의 이유로 모인 아이들을 위해 뭔가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위기에 놓인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졸업해서 저마다의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들이 사회 곳곳에서 잘 살아가길 바랐고, 또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기도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학교에서 반짝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내 인생에 시련이 찾아왔다. 6살이 되도록 기저귀를 떼지 못하고, 엄마, 아빠조차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장애인 아들을 얻게 되면서 내 삶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빠는 사업실패를, 엄마는 손주를 보시다가 뇌경색을 얻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더 이상 육아와 학교일을 동시에 할 수 없어서 퇴사를 알리고, 집에 와서 엉엉 울었다. 꼭 내 인생이 무너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정말 형편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 하는가그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제목에 끌렸다. 왜 나는 이 땅에 태어나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정주영 회장에게, 신비한 위로를 받았다. 왠지 모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과 희망이 생겼다. 처음으로 정주영 회장이 이룬 결과보다, 그 과정에, 정주영 회장이라는 사람 자체에 눈길이 갔다. 정주영 회장이 만난 어려움은 나와 비교가 될 수 없는 고난과 시련 그 자체였다. 6천 5백만 적자를 낸 고령교 사업,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겪는 혼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올림픽 유치과정 등, 내가 기억하는 놀라운 성과 뒤에는 말할 수 없는 고생과 험난한 실패과정이 가득했다. 한계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는 그런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너무나 궁금해서, 책 속으로 들어갔다. 정주영 회장이 한계를 넘어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현재 내가 어려운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황 자체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마인드에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힘든 순간마다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을 위한 일인가? 그 질문 끝에는 항상 국가가 있었다. 국가의 발전은 그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었고, 방향이었다. 국가발전을 향한 뛰는 가슴은 각종 어려운 현실보다 컸고, 비판의 목소리보다 더 빨랐던 것이다. 특히 6.25를 겪으며 후손들에게 절대 가난과 혼란을 물려주기 싫었던 그는 자국의 힘을 키우는데 모든 걸 쏟아 부었다. 배를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던 그가, 500원 지폐 한 장과 설계도 한 장을 들고 차관을 받아온 일들, 방법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계속해서 사고하며, 도전한 결과 현재의 대한민국의 모든 근간이 만들어졌다. 만약 정주영 회장이 안 된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포기했다면, 이런 놀라운 성장과 결과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형편 앞에서 흔들리는 나와, 그 형편을 자신이 가진 신념과 믿음으로 맞서고 넘어간 정주영 회장의 마인드의 격차가 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형편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나에게 질문해보았다. 아니라면, 나는 무엇보다 그의 마인드를 배우고 싶었다. 아니 배워야했다.그의 정신은 흐른다면, 당신은 또 하나의 정주영이다.어쩌면, 나는 기업가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지금은 직장일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로 살아가는 평범한 독자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우리아이는, 앞으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며, 나는 인재를 키우는 중요한 사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우리 아이는 장애로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건강한 온전한 아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그러자 내 삶의 곳곳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이에게, 눈을 뜨자마자 이야기해준다. “넌 온전해!, 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 밥을 먹일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 나라의 일꾼의 식사를 돕는 중요한 일을 한다고.. 아이에게 걸음마 운동을 시키면서 이야기한다. “아들아, 이 나라를 위해 네가 일할 날이 올 거야. 지금 힘들지만, 한 번 더 하자.” 그동안 밥을 흘리는 아들을 보면 짜증나고, 걷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불행한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어느 덧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라, 삶은 내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악성간질로, 3시간마다 경기를 하던 아들이 경기를 멈추고, 뒤집기도 못하던 아들이, 지금은 벽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6년간 말하지 못하던 아들은 얼마 전, 나에게 처음으로‘엄마’라고 불러주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아니었다. 오늘이라도 정주영 회장처럼, 적극적인 모험심과 용기를 무기삼아 순간순간을 살아간다면 나는 이미 작은 정주영 회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창작물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예술가라면,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혁신적인 방법을 고민한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법을 개선하는 환경 미화원이라면, 그가 어떤 역할을 하든지, 그리고 그것이 자신만의 행복과 만족이 아닌, 사회와 국가, 또는 더 큰 이상이 방향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그’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정주영 회장이다. 우리가 놓인 각 위치에서, 이렇게 살아간다면 사회가 너무나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다함께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실패한‘나’로 살아가지 않는다. 늘 가슴속에 어떤 마인드가 흐르는지 살펴보며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주영 회장의 마인드는 오랜 시간 나를 짓누르던 패배의식을 밀어내주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변화이자 행복의 이유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면 살았을지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타인과 비교하는 대신, 오늘도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든 결과 나는 직장을 다닐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학교에 더 이상 나가진 않지만, 졸업생들의 진로 멘토를 자청하고, 그들과 함께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한다. 고민 상담을 하며, 그들에게도 정주영 회장의 마인드를 전파한다. 늘 인생이란 시련의 연속이며 연속되는 시련과 싸우면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고 했던 그가, 5천년 문화민족인 국민의 잠재력과 저력을 믿었던 그가, 오늘도 나를 향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