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소설1. 시대개황명대는 시와 문을 중심으로 정통문학은 부진해왔다. 하지만 소설, 희곡과 같은 통속적인 문학은 크게 발달해 명대 문학을 대표했다. 송, 원대에도 화본소설이 있었지만 본사부터 독자들에게 읽혀질 목적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었다. 명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눈으로 읽는 장편, 단편 소설이 발전했다. 희극도 원대에는 북곡인 잡극이 성행했지만, 명대에는 남곡인 장편의 전기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명대 장편소설은 장 또는 화로 나뉘어져 있다. 장화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속칭 사대기서라 한다. 단편소설에는 삼언, 이박, 금고기관이 대표적 작품이다.상업의 발전으로 부의 불균형이 시작됐다. 대규모 토지를 겸병 현상이 일어났다. 많은 농민들은 토지를 잃고 유민이 되었다. 유민들은 폭동을 일어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명 말에는 정치가 더욱 부패해졌다. 안으로는 유민들의 폭동, 밖으로는 외족의 침입이 잦아졌다. 혼란을 만회할 계기가 없었다. 이런 혼란 속에 만주족이 중원을 점령해 청나라를 세웠다. 그런 와중에도 과거에서 팔고문 사용과 철학 사상은 특히 명대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팔고문은 문장의 구성 형식과 글자 수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격식이 있고, 전체가 대우를 이루는 문체이다. 명나라 지식인들은 급제를 위해 형식화 된 문장을 공부해 문장이나 시, 사도 모두 형식적 경향이 있다.자기네 문화와 학술을 만회하는 노력을 통해 문학에도 복고주의 경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왕지인이 양지를 내세우고 지행합일을 주장해 주자학으로 인한 교조주의적 경향을 무너트렸다. 복고주의를 반대하며 개성적인 문학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나왔고, 마침내 공안파와 경릉파의 문학개량운동이 전개되었다.2. 문학개황명대는 시, 문을 중심으로 하는 정통문학에 있어 전칠자와 후칠자가 대표하는 옛날과 같은 문학으로 되돌아가려는 복고 또는 옛날 문학을 흉내내려는 의고주의적 문학이 주류를 이뤘던 시대이다. 창작의 기운을 떨치지 못해 대가는 한 명도 출현하지 않았다. 송대 화본과 원대 잡극의 유행을 뒤이어 시대 요구를 따라 발전시킨 장편의 장회소설과 전기가 성행했던 시기이다.문화와 한족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욕심이 관리와 인민에 대한 탄압과 여러 번의 문자옥 등을 통한 지식인과 문학가들의 통제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문학은 공덕을 송양하고 시대의 태평을 노래하는 대각체의 시문을 낳게 했다. 뒤이어 전후칠자가 나와 “글은 반드시 진, 한, 시는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는 복고주의를 내세운 문학이 주류를 이뤘다.희곡은 주유돈, 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 문인들이 처음부터 희곡 창작을 지배하고, 연극을 궁중의 오락으로 삼았다. 연극 내용은 신선수를 즐기는 종류가 대부분 이고, 문장과 내용과 귀족화해 작품은 대체로 형식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일어난 소설과 희곡이란 민중문학의 기운이 창작에 있어 현실주의적 방향으로 흐르려 하자 소설과 희곡의 창작이나 유행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소설 희곡도 권선징악의 테두리를 못 벗어나는 형식적 경향을 지녀 발전에 제약이 되었다. 귀족주의적 경향을 벗어난 작가들이 부단히 출현했다. 시에는 심주, 당인이 있고 산곡에는 풍유민, 잡극에는 서위, 전기는 이개선이 있다.가정부터 문단이 다양해지고 활발해졌다. 복고주의를 반대하고 개성적인 문학을 주장했던 서위, 이지, 탕현조, 초횡 등에 뒤이어 원깅도 형제를 중심으로 공안파가 나와 “홀로 성령을 펴내며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의 가슴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면 붓을 대려 하지도 않는다.”는 개성적 문학의 창작을 주장했다. 이들은 너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치우쳐 남이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엷었다는 것이 결함이다.명대에 들어 남희에 눌려 몰락하기 시작한 잡극은 이전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단막극 등 자유로운 격식의 작품들이 나왔다. 전기에 있어 곡률파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격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개성을 발휘해 작품을 쓰는 작가 나왔다.이들은 역대 중국 문인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희곡과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크게 내세웠다.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도 크게 성행했다. 장편 장회소설로 서유기, 수호전, 삼국지연의, 금병매 등 이른바 사대기서가 나왔고 백화 단편소설도 성행해 유세명언, 경세통언, 성세항언의 삼언소설이 나왔다.민간 문학도 성행해 민가집으로 산가와 괘지아가 나왔고, 남방에는 탄사, 북방에는 고사가 성행했다.명대의 시문1. 명초의 시문문학에 있어서 원나라 문풍을 벗어나 이전 한족의 것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때 시문가 중에 가장 후세의 영향을 끼친 작가가 유기, 고계, 송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