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성적 지향에 대한 이해ㅎㅅㅎ동성 간의 사랑을 종교적 죄악이나 사회적 범죄, 도덕적 타락, 정신적 질환으로 보는 것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일까?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자. 고대 서구사회는 기독교가 사회의 주류 문화가 되면서 수태를 목적으로 하지 않은 모든 성행위는 죄악으로 간주하고 금기시하는 사회로 변화했다. 종교적 권위가 정치적 권력으로 변질되며 종교적 금기 사항들은 사회적 범죄로 낙인 찍히기 시작했다. 1804년, 프랑스의 민법전에서 남성 간의 성행위를 기소 사유에서 제외하였다. 이렇게 종교적 단죄에서 풀려난 인간의 성은 근대 과학기술과 의료지식이 새로운 지식권력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억압인 정신병리의 문제로 이동하게 된다. 19세기에는 인간의 다양한 성행동이 정상/비정상으로 분류되었고 비정상으로 분류될 경우에는 질병이라는 새로운 이름표로 또 분류되었다. 1869년, 의학적 관점으로 볼 때 남성 간의 성행위를 형법을 어긴 것으로 처벌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나오며 법개정을 요구했다. 이 때 그리스어에서 ‘같은’을 뜻하는 호모(homos)와 성을 뜻하는 라틴어를 합쳐 ‘호모섹슈얼’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이성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증상인 헤테로섹슈얼리티라는 정신과 용어도 만들어졌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며 근대 핵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성애 섹슈얼리티가 정치 경제적인 이유로 장려되면서 이성애는 정상적 섹슈얼리티로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동성애는 유전, 질병이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고착의 하나로 인간의 심리 발달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병리화는 결국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이유로 무리한 치료가 시도되었다.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명분 아래 전기충격, 뇌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 거세를 비롯하여 강제적인 성관계, 감옥까지 수감되었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 될수록 동성애와 다른 정신적 결함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고 문제는 동성애가 아닌 동성애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편견이라는 반증이 나오기 시작했다. 1948년, 킨제이보고서는 그 당시 폐쇄적이었던 미국사회에 동성애자는 극소수의 정신병자들이며 이성애만이 보편적이라는 통념이 틀렸으며 이 모두는 편견에 불과하다는 큰 충격을 주었다. 1956년, 미국 심리학회의 연구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표본을 비슷한 연령, 학력, 경제적 위치에서 뽑아 각 집단의 심리학적 적응면의 차이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결과는 두 집단 간에 임상학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이 없음으로 나왔다. 동성애는 정신병리와 관련 없으며 오히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정신 병리를 만들어 내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1960년, 여성운동과 흑인민권운동, 반전운동 등이 진작되며 1969년 게이바로 들이닥친 경찰의 무분별한 체포와 폭력에 미국 전역에서 저항하는 ‘스톤윌 항쟁’이 일어났고, 처음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이 사회적 의제가 되며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기폭제로 평가받고 있다. 1973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시정하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이어지면서 지국정신의학회는 정신진단분류편람에서 동성애를 삭제했다. 또한 1975년에는 미국심리학회도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공식 발표했고, 1992년에는 마침내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에서 동성애를 삭제함으로써 성적 지향은 정신적 장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재차 천명하였다.인간의 성적 지향은 개인의 임의적 선택이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선천적이고 후천적인 요인들이 복잡하게 상호 작용한 결과이다.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할 수는 있으나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은 개인의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며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고 수용하게 되는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며 이러한 성적 지향들 간에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의 우열을 따질 수는 없다.이성애만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이성애 외의 성적 지향은 혼란과 방황, 일탈과 비정상의 결과로 여기며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해 이유 없이 공포, 혐오감, 반감, 두려움을 갖는 것을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라고 한다. 호모포비아는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조장되고 강화된다. 종교적 신념으로 위장하거나 도덕적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며 타락으로 몰고 동성애를 정신병이나 일탈 행위로 보는 과학 이론에 기대어 동성애자가 사회질서 붕괴와 문명의 몰락을 야기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막연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역사상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빚어낸 가장 비극적인 사례 중의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이 저지른 동성애자 학살이다. 나치는 1935년 동성애를 국가의 적이라고 천명하고 형법을 개정하여 동성 간의 성행위가 없어도 좋아했다는 증거나 증언만으로도 구속이 가능하도록 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동성애자들이 체로, 구금, 사형 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피해자는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형법은 1968년까지 존속되었고 독일 의회가 공식적으로 나치의 박해를 받은 동성애자를 추모하는 기념관 건립을 승인한 것은 2003년이었다.시민권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훼손당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권리 주체임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통해 확대되고 획득된다. 동성애를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볼 때 동성애자는 보편적 인간에 속하지 않게 되므로 한 명의 시민으로서 권리박탈도 정당화 된다.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를 대상으로 한 괴롭힘 협박 강간 살인같은 폭력은끈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법 제도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혼인과 유사한 권리를 주는 별도의 법을 새로 만드는 방법과 기존의 혼인 제도를 동성 간에도 개방하는 방법이다. 동성애자 커플에게 이성 간 결혼에 해당하는 독자적인 법을 만드는 반식은 1989년 덴마크에서 파트너십 등록법으로 세계 최초로 시행했고 현재는 영국,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다. 혼인과 유사한 법률 제정은 미국에서 1997년 하와이 주에서 시행하기 시작한 ‘동거등록법’이 있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동거를 하는 커플에게 좁은 범위의 법적 혜택을 주는 것이다. 동성 간 커플을 보호하는 차원의 의미는 적어서 미국 버몬트 주는 2000년도에 결혼과 유사할 정도로 법적 혜택을 확대하고 오로지 동성에게만 적용되는 ‘시민연대법’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11조는 모든 국민에게 행복추구권이나 평등권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으나 평등한 적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성혼에 대한 권리 주장은 동성애자도 이성애자와 똑같이 결혼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활 공동체를 꾸리고 적절한 사회적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지난 2003년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인권선진국이 되겠다는 목표로 제정을 준비하여 입법예고를 하였다. 그러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일부 정교인의 반대에 부딪치자 차별금지사유에서 성적 지향 등 7개 조항을 삭제한 채 최종법안이 확정되었다.동성애는 끊임없이 다양한 의견으로 나눠지며 문제시 되고 있다. 찬/반으로 갈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제로 인식하며 틀렸다고 한다. 심지어는 동성애자는 소아성애자와 다를 것 없는 정신병자이며 에이즈의 원인이라며 혐오한다. 소아성애자는 판단력이 제대로 서지 못한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으로 정신 질환에 해당한다. 더 큰 문제는 아이는 본인을 좋아하는 성인이 본인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소아성애자들이 범죄자가 되진 않지만 소아성애는 양 측의 사랑이 성립되지 못함으로 사랑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동성애자는 WHO가 공식적으로 정신질환이 아니라고 항목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을 한국 기독교인 일부들은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않는다. 2021년을 살고 있는 10대,20대를 보았을 때 기존의 40대 이상과는 확실히 동성애에 대해 조금 더 교육을 받고 혹은 여러 매체 등을 통해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인지 인식이 다르다. 남녀만의 사랑이 순리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하루 빨리 변화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