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적 리더십의 필요서론‘리더십’이란 말은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고유명사처럼 들여오던 단어다. 여기에 최근 수식어 하나가 더 붙었다. ‘변혁적 리더십’. 검색어에 이 어휘를 넣어보면, 이런 문장이 먼저 뜬다.‘21세기에 적합한 리더는? 변혁적 리더십’ 자문자답형 정리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구심이 든다. 어디에도 변혁적 리더십이 갖는 개념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성요소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변혁적’이란 말에 사람들의 상식적 이해를 함의로 깔고 있는 듯 하다.그래서 이번 글에선, 사회 변화의 핵심으로 ‘변혁적 리더십’의 개념과 실현을 위한 하위 요소를 상세 기술하고, 이를 적용한 사례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본론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조직과 구성원들을 위해 필요한 리더십은 바로 ‘변혁적 리더십’이다.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은 리더십 이론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 온 대표적 리더십 이론이다(Bass, 1985). 한 사회 내지는 기업의 조직문화에선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인데 이때 필요한 것이 그 사회의 장, 또는 기업 대표의 리더십 발휘다.변혁적 리더십은 Downton(1973)의 연구인 ‘거래적-변혁적 리더십’에서 처음 제시되었고 그 이후 Burns(1978)가 체계화 하여 발전시켰다. Burns는 조직구성원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며 공동체적 사명감을 갖추어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리더십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변혁적 리더십에 대해 정미순(2019)은 Burns(1985)가 거래적 리더십과 명확히 구분하여 개념차이를 설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거래적 리더십을 가진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력 행사로 부하를 복종시키려 하지만 변혁적 리더십을 가진 리더는 구성원의 가치와 신념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아실현을 통해 조직의 성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이후 몇 번 더 수정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변혁적 리더십의 개념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초월하여 매슬로우(Maslow)의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을 이루는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궁극적 결과로 삼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이를 위해 Burns(1985)가 정립한 리더의 자질을 정리하면 이렇다.첫째, 추종자들을 자극하거나 영감을 불어 넣어 탁월한(extraordinary) 결과를 성취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의 역량을 끌어낸다. 리더 자신보다 조직구성원의 욕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러한 리더의 영향력이 구성원의 생각과 태도를 자연히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리더의 하위 요소로는,둘째, 카리스마(charisma), 또는 이상적인 영향력(idealizes influence), 영감적 동기부여(inspirational motivation), 지적 자극(intellectual stimulation)과 개별적 배려(individualized consideration)의 4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참고로 영감적 동기부여는 자신의 최초 이론(Burns, 1985)에서 수정이론(1990)으로 추가한 변혁적 요인이다.Keller(1995)는 변혁적 리더십은 혁신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으며 조직의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정미순 재인용;2019) 또한, 조직구성원들에게 리더에 대한 신뢰를 느끼도록 하여 기대된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한다(Yukl, 2006; 안성철,2009) 이렇듯 변혁적 리더십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선행 연구되고 발전되면서 구성요인도 점차 확충돼 갔는데, 그중 ‘권한위임’ 항목은 실리콘 밸리 공룡 기업의 리더십으로 쓰이는 항목이다.세계최대 OTT 플랫폼으로 성장한 ‘넷플릭스’. 이곳의 경영방침은 ‘권한위임’이다. 최고의 성과를내기 위해서 프로 스포츠팀처럼 성과 중심으로 운영되는 환경에서, 최고 경영자는 조직구성원들에게 ‘권한위임’을 통한 능동적 대처와 이에 따라 발생할 주체적 창의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이것이 넷플릭스가 세계 최대 콘텐츠 공룡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프로 스포츠팀처럼 일한다는 것의 의미는 구성원이 곧 스타 플레이어가 되어 일하는 방식에서 자유와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간단하게 말해 구성원들을 ‘성숙한 어른’으로 대접하는 리더의 자세다. 권한위임과 이에 따른 자유와 책임 안에서 휴가 제한도 없고, 회사 비용 사용 규정도 없이 이들은 최고의 퍼포먼스를 오늘도 써 내려가고 있다.결론넷플릭스의 사례는 비단 일개 사기업의 특성만으로 규정되기에는 리더십의 유형과 운용에 있어 세계적인 큰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한 국가와 사회에 적용될 변혁적 리더십의 살아있는 한 형태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자유민주주의의 궁극적 실현은 자본주의에 충실한 생산경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 구성원과 국가간 관계가 ‘성숙한 어른’으로 수평적 관계에 놓여 보이지 않는 주종 관계가 기저에 깔리지 않은, 건강한 사회적 분위기를 의미할 것이다.곧 있으면 대선이다. 매일이 변화라 해도 무방한 이 시대, 변혁적 리더십을 이해하고 구성요소로 사회를 꿰어낼 리더십을 갖춘 이의 탄생을 부디 지켜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글을 마친다.참고문헌정미순(2019), ‘학교장의 변혁적 리더십이 학교조직역량에 미치는 역량:학습조직과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매개효과를 중심으로’, 한국항공대학교 대학원김강식(2011), 변혁적리더십과 부하의 혁신 행동의 관계, 질서경제저널PAGE * MERGEFORMAT2
나의 이미지 메이킹 포트폴리오1. 자기소개서유년기까지저는 경북 상주 태생이며, 태어나서 생각나는 가장 첫 기억은 가정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는 겁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 폭력이 심했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 하셨고, 형과 저도 힘든 날들을 보냈습니다. 주위에 평범한 가정 속 친구들이 너무나도 부러웠습니다.가장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가족들의 생활은 너무 힘들고 지쳐 있었고,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너무 힘들어 하시던 어머니가 이혼소송 진행 등을 하시게 되어 부모님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형과 저는 친할머니 댁에 보내져 유년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할머니께서는 가내 수공업 소일거리를 하시며 생활을 이어나가셨습니다.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할머니, 형, 저는 제법 오순도순 잘 지냈습니다. 힘든 할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형과 저는 고등학생 시절까지 새벽에는 신문 배달, 저녁에는 식당 등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방학 때는 소규모 건축 현장 등에 일용직 일 등을 하며 할머니께 팔순 선물로 금반지를 사드린 기억이 납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학업과 인성을 스스로 중요시하는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생각만큼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여 생활하였기에 후회하지는 않습니다.사회생활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공업고교 토목과를 졸업 후 수도권에서 건설회사 기술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하였습니다. 학력으로 인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야간 2년제 대학에 진학하여 주경야독을 하였습니다.경제적인 어려움으로 1학기를 마친 후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 제대 후에는 소규모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낮에는 일로, 밤에는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전문대학 졸업 및 자격증 취득도 여러 개 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국내 대형 건설회사로 이직하여 토목분야 도로, 터널, 교량 공사 현장에서 주로 설계변경, 실행관리, 대관업무 등을 주로 하는 공무 담당자로 일을 하였으며, 맡은 직책이 올라갈수록 업무의 강도가 심해져 힘은 들었지만 많은 노하우를 습득 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및 직장동료들에게도 높은 업무실력을 인정받았고, 예산절감 및 현장 기술 제안서를 제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현재는 건설회사 퇴직 후 국내 유명 설계용역엔지니어 회사로 이직하여 건설현장에서 건설사업관리(감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학업목표직장 생활을 하며 업무적인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전문대학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계속 달고 다녔습니다. 더 나은 직장으로 이직 기회가 찾아온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업무처리 능력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이 입사서류를 요청해서 제출을 했는데 그 후 소식 없는 일이 빈번 했었습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학업을 계속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은 항상 있었습니다.그러나 결혼 및 2세 출생 등으로 시간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겨났고 대학편입을 결국 미루다 하지 못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는 경력 위주로 채용하는 국내 건설엔지니어링 중견기업에 임원으로 재직 중이며,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아이들도 크고, 와이프도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많이 생겨 좀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학창시절 꿈꾸던 학업을 이어가고자 배움 사이버평생교육원을 통해 학사학위 교육 중에 있습니다. 금년 1학기를 끝으로 학사학위 취득 후 2학기에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까지 밟고, 가능하다면 박사학위 과정도 밟을 계획입니다. 더 나아가 현장실무 중심의 교육을 강의하는 강단에도 서보고 싶습니다.가정생활 및 인생 목표가족은 저 포함 4명이며, 사랑하는 와이프, 똑똑하고 착한 과학고에 재학 중인 아들, 귀엽고 예쁜 딸이 있고, 우리는 대도시에서 가정을 이루고 20여 년 째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머리에는 지식을, 가슴에는 사랑을, 손발에는 근면을” 이라는 가훈 아래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50년 가까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 온다는 것입니다. 항상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사랑하는 와이프, 그리고 우리 두 아이들과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오래도록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목표이자 소망입니다.2. 나의 이미지 분석가. 일단 내가 생각하는 나의 첫 이미지- 밝게 웃는 인상에 굵고 저음의 음성 및 긍정적이며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 항상 등을 곧게 펴고 다니는 스타일, 용모 단정- 글로서 표현이나 작성을 하는 일은 잘하지만 공개적인 토론 등을 말로 표현 시 조리 있게 편하게 의사전달은 못하는 편.나. 타인이 보는 나의 첫 이미지- 얼굴이 밝으며, 인상이 좋아 착하게 보임. 회사 이직 시 좋은 요인이 된 적이 있음- 저음의 목소리로 간혹 알아듣지 못하는 단점이 있음-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좋으며, 직장 내 20,30대에게 절대 꼰대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있음.-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 동일하게 항상 등을 곧게 펴고 다니는 스타일다. 기타- “커뮤니케이션”: 주변에서는 후배, 동기들과의 대인관계가 좋습니다. 활동하기를 좋아하여 대학교, 향우회 계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있으며, 군대동기 모임을 적극적으로 나 서서 만들어 현재 회장을 맡아 끈끈한 전우애를 다지고 있습니다. 직장 동료 선후배들과도 동생, 형처럼 잘 대해주는 등 좋은 분위기에서 지내 왔습니다.- “책임감이 강합니다” :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성적으로 업무처리를 해왔으며, 건설회사 재직 시 남들이 꺼려하는 현장 준공업무를 끝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해왔습니다.- “위기관리” : 충동적인 성향보다는 매사에 이성적인 판단에 주의를 기울이며 문제가 닥쳤을 경우 주변 사람과 상의해가면서 문제를 극복해 나가는 스타일입니다- 기타 : 오지랖이 넓어서 전 직장 본사에서 구인요청이 오면 연결해 주기도 하고 전 직장 후배들 을 아직까지 회사 이직 시 회사를 알아봐주고 취직 후에도 업무적인 지원을 해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구조기능주의와 갈등주의에 부쳐-사회학개론_고령화에 대해-지난해 말(2021.12.09) 통계청이 발표한 ‘2020~2070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0년 815만명이던 고령인구가 2024년 1천만 8천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5.7% 수치를 보인 고령인구가 2049년 39.8%까지 늘어나 정점을 찍고 2070년 1747만명으로 46.4% 감소 추이로 예측된 수치다. 이렇게 되면 약 50년 뒤에는 3766만명으로 추정되는 인구의 약 절반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되는 셈이다. 고령 인구는 만 65세 이상을 뜻하는 층위로 2056년부터는 생산연령인구보다 부양할 유소년과 고령인구가 많아진다. 이에 따른 한국의 총 부양비 역시 2070년에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언론의 분석도 따른다.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할 근거로는 기획재정부가 내 놓은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다. 기획재정부는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서 국민연금이 2041년 적자로 전환해 2056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연금 개혁의 필요성이 사회 곳곳서 대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의 부양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고령화 가속에 따른 연금 개혁은 출산율은 최저이고 고령화 속도는 가장 빠른 나라가 맞닥뜨릴 예고와 같다.한국사회 고령화 가속 추이에 대한 고찰을 위해 이 장에선 ‘구조기능주위’와 ‘갈등주의적’ 시각으로 각각 들여다 보겠다.두 이론은 사회학의 기본이론으로 제시되어 왔다. 구조기능주의는 모든 체제에는 충족시켜야 하는 기능적 요건이 있는데 이러한 요건이 어떤 구조에 의해 충족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인간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생물 유기체에 비유하여 보는 시각인 셈이다. 주로 사회 체제의 이해와 분석에 적용하고 있는 이론으로 구조기능주의는 단적으로 말해 사회가 기본적으로 적대적 환경에 직면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균형과 평형이라는 사회 존속을 유지하기 위해 순기능적 역할을 하는 것이 구조기능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그 일례로 스포츠의 사회문화적 효과를 분석하고자 할 때, 이 기능이론을 많이 차용한다. 상식적으로도 떠올려지는 범주이지만, 스포츠의 사회통합적 기능, 목표성취에 관한 기능, 참가자에게 성취욕구를 통한 생산성 재고 역할 등이 스포츠에 대한 기능주의 시각으로 본 순기능에 관한 내용이다.갈등이론은 이와 반대다. 사회의 여러 집단 간에 존재하는 갈등 현상에 초점을 두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박현찬(2012)은 근본적으로 갈등 현상은 사회학의 모든 이론에 있어서 이론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근세에 들어와 모든 사회현상을 사회통합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구조기능주의(structural functionalism)가 사회학 이론의 주류를 이루게 되자, 빛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갈등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이론화 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추세라고 밝힌다 있다.한국의 고령화 이슈를 구조기능주의 시각으로 보자면, 바로 ‘사회통합적’ 순기능이다. 계층을 생산성 지표로만 그 가치에 대해 규정 짓고 쓸모를 논하는 것은, 단순한 산술에 갇힌 해석이다. 그것은 보통 연령 대비 얼마나 돈을 벌어들이고 재화를 창출해 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인간에겐 물리적 생산성보다 숫자로 즉각 환치 될 수 없는 지식과 경험의 총합이 더욱 크다. 이는 개인 고유의 영역에 그대로 존재하는 가치이며 세월만큼이나 쌓일 지식과 경험의 총합이란 점에서 고령층이 더 유리한 위치다. 이러한 고령 계층이 지닌 가치가 아이디어적으로 발굴된 일례가 있다. 바로 기업내 젊은 신입사원에 대한 멘토링 제도의 도입이었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해당 아이디어는 제도화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는 계층간 지적 가치의 통합이란 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생각일 것이다.일각에선 고령화에 대한 사회통합적 순기능의 구조기능주의 시각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선 투표권이 있는 연령의 규모화 된 집단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고령화 계층의 표를 얻기 위해 사회통합론을 운운할 때가 자주 발생한다. 사회학적으로 고령층을 접근하는 구조기능주의에 대한 정치적 도구화 시각이 개인적으론 안타깝다.한편, 갈등 이론 시각으로 풀자면, 이론의 선구자들 이념부터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K. Marx), 베버(M. Weber), 짐멜(G. Simmel) 등이 갈등 이론의 선구자로 꼽힌다. 혁명주의자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를 계급간의 갈등의 역사로 보았으며, 모든 사회변화는 생산수단의 소유 집단과 그것을 쟁취하려는 비 소유 집단 간의 갈등과 투쟁의 결과라고 보았다. 여기에 이석인(외 김제영, 2001)은 갈등 이론은 사회 안에서 늘 존재하는 것인데 사회 질서는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강제로 복종 시키는 가운데서 성립하며 이와 같은 갈등을 통해 사회의 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고 기술한다. 두 관점에 기대어 볼 때, 한국사회의 고령화 이슈는 ‘세대간 갈등’의 기폭제가 될 요지가 충분히 있다.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어렴풋하게 ‘문화와 양식의 차이’를 논한다. 그러나 필자는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이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생기는 계급 차이, 즉, 빈부 격차만큼이나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간 경제적 자유도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물론, 개인의 역량이 절대적 변수로 끼어 있지만, 정보가 곧 경제로 환원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에서 정보의 소유와 취득력, 접근성이 열세할 것으로 예상되는 계층에게 현 시대의 정보 경제는 그만큼의 빈부차를 발생시키는 범주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 경제와 활용성에서 오는 신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사회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다. 갈등이론은 사회 내에서 불평등한 분배에 의한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놓고 볼 때, 정보경제 사회에서 고령화가 초래할 빈부격차라는 파생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을 둘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고령화 정보 IT 교육 및 평생 교육의 개념은 유의미한 사업분야이다. 단, 생애 주기에 맞춘 지적 능력을 고려한 정보학습 콘텐츠 개발과 현실에서 유용한 IT 디바이스 사용법을 익히게 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 단적 예가, 오프라인 상 키오스크 결제 시스템의 등장에 따른 고령자 눈높이 학습의 필요와 온라인 커머스 활용에 있어서의 자유도와 연관이 깊다. 결국 갈등이론의 시각에서 들여다본 이슈를 풀면 구조기능적 시각이 갖는 사회 통합 순기능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합치되는 양상으로 흐를 수 있음을 시사하며 글을 마친다.참고문헌박현찬(2012), ‘기능주의와 갈등이론으로 본 고교 축구선수들의 인식에 관한 고찰’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1995), 교육학 용어 사전, 하우동설.고영복 편(2000), 사회학 사전, 사회문화연구소
가족주의로 본 현대 가족의 변화-톨스토이의 관점은 과거적 서사일까?-서론레프 톨스토이의 책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일리치는 전형적인 엘리트 집안에서 나고자란 인물로 등장한다. 고위직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교육의 질도 달랐고 자신이꿈 꾸는 삶의 기회를 순조롭게 잡아왔다. 선대가 그러했듯 이반 일리치 또한 고위직 판사에오르면서 상류층 사회의 최정점을 찍는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게 한 이반일리치가 스스로에게새긴 삶의 모토가 있다. ‘가볍게, 즐겁게, 체면 있게, 품격 있게’ 가 바로 그것이다. 하루의 업무가끝나고 동료들과 하는 브릿지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기분 좋게 그 순간에 와인이있다면 이반일리치에게는 그 하루를 정말 잘, 그리고 행복하게 산 것이다. 그럼 그런 이반일리치에게 가족은 어떨까? 자신의 삶의 모토인 가볍게, 즐겁게, 체면 있게, 품격 있게처럼 가족에게 생긴 골치 아픈 일은 아내에게 밀고 자신은 들여다 보지 않는다. 이반일리치는 결혼은 분명 편리한제도이지만, 가정은 복잡하고 미묘한 일들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다. 가족도 일터처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곳으로 여기고 가족이란 링 위에같이 서길 마다한다. 이 서사의 끝은 어떻게 될까?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이지만, 모두 거짓과 위선자라는 생각에 이반일리치는 쓸쓸한 죽음을 맞으며 문학은 끝난다.19세기 톨스토이 역시 시대와 가족이라는 모티프에서 진실과 진심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가족의 진심을 찾고자 가출이란 돌발 행동으로 어느 역사에서 싸늘히 죽어간 만큼19세기에도 가족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게 하는 거대한 화두였다. 이반일리치는 19세기에만머물러 있는 인물일까. 21세기 가족상에 대한 이반일리치 같은 인식주의자들은 없을까?본 글은 가족주의란 개념에 기반하여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 이슈를 한국 상황과 연결 짓고 이를 통해 한국적 가족주의의 양태를 함께 조명해 보고자 한다.본론가족은 고전적인 시각에서 혼인과 출산으로 연국적 정서와 특이 사회 분위기가 그 사례다. 몇 해전, 많은 학부모들의 공감을 산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대히트는 한국 사회 ‘교육’에 관한 가족주의를 극단으로 담은 콘텐트였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 가족주의를 새롭게 형성하는 새로운 이슈는 무엇이 있을까?돌봄 노동지난 2020년, 시사다큐프로그램 는 ‘간병 살인’이란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대중에 던졌다. 순화해서는 ‘돌봄 노동’에 지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병환을 앓고 있는 가족을 고의로 죽게 만드는 일이었고,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상황에 대한 시사였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사례자들을 통한 메시지였지만, 그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그래서 모두가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감은 더욱 컸다. 방송은 이후, ‘돌봄 노동’에 대해 조명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기능하였다. ‘돌봄’에 ‘노동’이란 단어가 조합될 수 있는 점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것도 비교적 근래 일이다. 가족 내 환자 돌봄은 오롯이 가족 공동체 내에서 해결해야 할 ‘그들만의 문제’로 다뤄졌다. 이것이 전통적 가족주의 내에서의 ‘돌봄’에 대한 인식이었는데, 팬데믹을 접점으로 ‘돌봄’은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확진 환자를 확인하고 격리, 치료하는 사회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돌봄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돌봄 노동’은 과거 한국 현대사에서 경시되어온 풍토였고, 이러한 성찰은 사람들에게 복기되기 시작했는데,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흔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돌봄 노동은 아무도 관심이 없고 돌아보지 않으며, 결국 ‘간병살인’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케이스다. 연명중단의향서가 등장한 배경엔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깊은 성찰에서 나온 방안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합의가 수용되기까지, 연명중단의향서만 보더라도 분쟁의 소지가 많았다. 바로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당사자의 안타까움과 남겨진 가족간 윤리적 문제파편적이고 모래알 같은 사회 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가족 단위에서 이러한 인식 확산은 ‘초개인화’를 만들며, 사회적 무관심과 관계의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양상을 지닌다. 서두에서 밝힌 개인의 고독감, 타자의 냉혹함, 신적 무심함에 죽어간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21세기에도 재현되는 서사다.1.2 일과 생활 균형표준어국어대사전에서는 가족주의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에 가치의 중심을 두는 사고방식’이라고 나와 있다. 두산 백과사전은 가족주의에 대해 보다 확장된 사회 범주로 연결 짓고 있는데,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개의 가족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 인간관계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의제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과 생활에 있어 한국의 가족주의는 어떤 상관성(매개체)을 맺고 있을까.마리아(2016)는 외국인 연구자로 한국 드라마를 매개로 현대 한국의 가족주의 양상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여 관심을 갖고 돌보려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 나타나는 확장된 가족주의의 하나이다’라고 적시하였다. 동료를 단순히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마치 가족과 같이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오래전 광고이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광고 하나가 있다. S그룹의 ‘또 하나의 가족’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CF가 그것이다. 아마도 이 카피가 적어도 5년 전 한국 사회상을 반영했지 않았나 추측한다. 직장에서 만난 관계들에 대해 ‘또 하나의 가족’이란 공동체로 여기는 이 현상을 마리아(2016)는 ‘정서적 유대감’ 요소라 분석하였다. 당시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매개로 한 이 연구는 극중 회사의 비서가 회사의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사 가족의 일까지 신경 쓰는 장면을 사례로 들었다. 또, “윤 이사, 너 왜 결혼 안 하냐?”처럼 직장 상사가 부하의 사적인 문제에 질문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증례 삼는다. 회사의 회식 문화도 장면을 화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전보다 업무 스트레스가 늘었다’(52%),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늘고(48%)’로 나타났다. 3년간 지속되어온 거리두기와 방역 조치의 영향을 반영하듯, 직장인 중 76%가 코로나19이전보다 ‘회식 빈도가 줄었다’고 답했다. 또한 ‘회의 시간, 전체 근무 시간이 줄었다’는 직장인의 답변도 각각 30%, 23%를 차지하였다. 물론 이 수치가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코로나 이전과의 상반된 관계를 구축한 배경을 담보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코로나 이전의 ‘확장된 가족주의’ 패턴이 ‘1차 단위의 가족주의’로 더욱 폐쇄된 양상을 가져왔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동시에 코로나 전후, 일과 생활에 있어 ‘확장된 가족주의’ 또한 큰 변화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결론팬데믹으로 인한 1차 단위별 가족주의 심화는 장경섭(2009)이 말한 ‘상황적 가족주의’와 김혜경(2013)의 ‘제도적 가족주의’가 병합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제도적 가족주의’는 가족의 형태, 기능과 규범과 같은 가족내적 성격을 의미하며 이중에서도 부계적 직계성이라는 제도 가족의 측면을 강조한다(김혜경, 2013). 특히 제도적 가족주의는 사회정책과 연결시켜 유사한 의미로 해석한 연구들이 많은데, 홍경준(2000; 장경섭 2009 재인용)은 개인들이 필요로 하는 복지 재화와 서비스를 가족이 제공하는 것을 가족주의로 해석하였고, 왕혜숙(2013)은 국가나 시장의 복지제도가 가족을 기본단위로 설계되는 것을 가족주의로 해석하였다. 팬데믹은 이 두 가지 측면의 해석을 더욱 강화시킨 면이 있으며 일례로 긴급재난비 지원 등은 혈족 관계로 묶인 기능적 가족단위로 계산 되어진 복지정책이었다. 긴급 정책의 연장선상인 국가의 소득보장제도는 가족 간의 상호 부양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노동을 통한 자기 부양이 불가능할 때 가족부양이나 사적이전에 의존하지 않고 생활이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공적장치(장경섭, 2009)는 팬데믹을 통해 더욱 부각되었으며, 금의 40%를 육아휴직금으로 받아도 생계유지가 가능한 계층은 중산층 맞벌이 부부로서 이런 경우 복지정책 마저도 가족에 따라 배타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즉, 복지정책의 수혜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운 가정은 자유 선택에 있어 일과 삶의 균형에 부조화가 따르기 마련이다. 자녀가 있는 기혼 가족에서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지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자녀의 교육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민간교육시장에 상당부분 교육이 맡겨지고 있는 한국의 사회적 특성상 사교육비 제공은 부모가 학부모로서 제공해야 하는 당연시되는 부분으로 간주되며, 자녀의 명문대 진학 등은 부모의 부모의 경제력과 맞물린 한국의 사회구조 형태를 더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는 자칫 가족 내부적으로 가족주의적 가치관과 인식을 공유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의 생존과 기능을 사회적으로 강요당하는 측면을 발생시키고, 부양과 돌봄, 교육 등 가족이 안고 있는 관계적 갈등을 치르게 된다. ‘일과 생활’은 여기서 빚어지는 간극에 달려있다. 생계유지와 부양,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위한 일과 가족 내 생활의 양립은 과거 가족주의라는 정서적 인식이 탄탄한 기반을 하였다면, 현대 사회는 경제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이에 대해 장경섭(2009)은 결국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제도의 지향점과 제도가 도입되는 토양에서 의도적, 비의도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가족주의를 적확하게 진단하고 검토하는 것이라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도 놓을 수 없는 거시적인 담론일 것이다. 가족주의 양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여기서 일어나는 특징들에 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멈추지 않는 것, 여기에 정책 관계자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현대 사회가 가족 구성원 개인에게 의무 지어버린 다양한 과제들이 사회적으로 환기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제언하며 본 논의를 마친다.장경섭외 3인(2009), 한국사회 제도적 가족주의적 진단과 함의-소득보장, 교육, 돌봄 영역을 중심으로, 가족과 문화 제27집 3호 pp.1~38마리아(201ge.
-가족치료, 집단적 불안의 정서분화 중심으로-서론레프 톨스토이의 책 ‘이반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반일리치는 전형적인 엘리트 집안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등장한다. 고위직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교육의 질도 달랐고 자신이 꿈꾸는 삶의 기회를 순조롭게 잡아왔다. 선대가 그러했듯 이반 일리치 또한 고위직 판사에 오르면서 상류층 사회의 최정점을 찍는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게 한 이반일리치가 스스로에게 새긴 삶의 모토가 있다.‘가볍게, 즐겁게, 체면 있게, 품격 있게’가 바로 그것이다.하루의 업무가 끝나고 동료들과 하는 브릿지 카드 게임에서 이기는 것, 그리고 기분 좋게 그 순간에 와인이 있다면 이반일리치에게는 그 하루를 정말 잘, 그리고 행복하게 산 것이다. 그럼 그런 이반일리치에게 가족은 어떨까? 자신의 삶의 모토인 가볍게, 즐겁게, 체면 있게, 품격 있게처럼 가족에게 생긴 골치 아픈 일은 아내에게 밀고 자신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이반일리치는 결혼은 분명 편리한 제도이지만, 가정은 복잡하고 미묘한 일들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다. 가족도 일터처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곳으로 여기고 가족이란 링 위에 같이 서길 마다한다. 이 서사의 끝은 어떻게 될까?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이지만, 모두 거짓과 위선자라는 생각에 이반일리치는 쓸쓸한 죽음을 맞으며 문학은 끝난다.19세기 톨스토이 역시 시대와 가족이라는 모티프에서 진실과 진심을 찾고자 했을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가족의 진심을 찾고자 가출이란 돌발 행동으로 어느 역사에서 싸늘히 죽어간 만큼 19세기에도 가족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게 하는 거대한 화두였다. 이반일리치는 19세기에만 머물러 있는 인물일까. 21세기 가족상에대한 이반일리치 같은 인식주의자들은 없을까?본 글은 21세기 가족주의란 개념에 기반해 현대사회에서의 가족 이슈를 한국 상황과 연결 지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 해보려 한다. 이를 위해 펜데믹을 변이로우리 사회 집단적 불안으로 통하는 정서적 분화 양상이 가족주의’를주제로 제시한다.본론가족은 고전적인 시각에서 혼인과 출산으로 연결된 정서적 친밀감을 지닌1차 공동체를 뜻한다. 가족주의 개념은 가족을 사회의 기본단위로 그 가치를 우선시하고 친족 집단의 이익을 구성원인 개인의 이익보다 중요시하여 이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동양식을 의미한다(이광규, 1990).여기서 한국의 가족주의는 주로 이념적 차원에서 정의돼 왔는데, 최재석(1976)은가족주의를 ‘모든 가치가 가족의 유지 존속과 관련되며, 가족의 단결과 영속화와가족의 공동 이익을 추구하려는 집단적인 노력’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한국인의 사회적 성격 중 하나로 규정하였다(장경섭외 3인, 2015; 재인용). 최재석의 연구는한국 사회 변화에 따라 분과 돼 왔는데, 그중 하나가 상황적 가족주의에 대한 개념의 정립이다. 상황적 가족주의는 특정한 가족 이념이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가족 중심적 행위나 관계가 상황적 합리성을 가질때, 널리 발견되는 형태로서, 가족중심주적 교육열이 바로 그 예다(장경섭,2009;Chang, 2010). 이는 교육을 매개로 자녀들의 신분상승을 주도하는 부모세대를근거로 한다.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몇 년의 생을 바치다시피 하는 한국적정서와 특이 사회 분위기가 그 사례다. 몇 해전, 많은 학부모들의 공감을 산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대히트는 한국 사회 ‘교육’에 관한 가족주의를 극단으로담은 콘텐트였다. 그렇다면, 펜데믹이 가속시킨 작금의 한국 가족주의를 새롭게 형성하는 새로운 이슈는 무엇이 있을까?1.1. 돌봄 노동펜데믹이 막 시작된 지난 2020년, 시사다큐프로그램 는 ‘간병 살인’이란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대중에 던졌다. 순화해서는 ‘돌봄 노동’에 지친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병환을 앓고 있는 가족을 고의로 죽게 만드는 일이었고,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는 상황에 대한 시사였다. 특정한 상황에 처한 사례자들을 통한 메시지였지만, 그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그래서 모두가 맞닥뜨릴 봄 노동’에 대해 조명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기능하였다. ‘돌봄’에 ‘노동’이란 단어가 조합될 수 있는 점이 사회적으로 수용된 것도 비교적 근래 일이다. 가족 내 환자 돌봄은 오롯이 가족 공동체 내에서 해결해야 할 ‘그들만의 문제’로 다뤄졌다. 이것이 전통적 가족주의 내에서의 ‘돌봄’에 대한 인식이었는데, 팬데믹을 접점으로‘돌봄’은 질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확진 환자를 확인하고 격리, 치료하는 사회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돌봄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돌봄 노동’은 과거 한국 현대사에서 경시되어온 풍토였고, 이러한 성찰은 사람들에게 복기되기 시작했는데,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흔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의 돌봄 노동은 아무도 관심이 없고 돌아보지 않으며, 결국 ‘간병살인’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케이스다. 연명중단의향서가 등장한 배경엔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깊은 성찰에서 나온 방안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적 합의가 수용되기까지, 연명중단의향서만 보더라도 분쟁의 소지가 많았다. 바로 가족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당사자의 안타까움과 남겨진 가족 간 윤리적 문제가 죄책감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장경섭(2009)의 상황적 가족주의가 가져온 사회적 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질병이라는 특정한 상황은 가족중심주의라는 1차 집단 내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는 사회적 합리성이 이 가족주의에 맞아떨어져 얽혀있다.특히, 팬데믹 사태 후반 들어 정부는 돌봄 노동의 한계와 환자 포화를 치러내며 가족 구성원 내 확진자 발생 시 가정 안에서의 모두 격리로 상황적 가족주의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다. 쉽게 풀어 사회적으로, 또 환경적으로 어떠한 재난 상황 시 ‘가족 내 자구책’을 다시 가동시킨 것인데, 이는 가족 단위의 사회적 고립을 택함으로써 퇴행적인 가족주의를 견고하게 다진 계기가 되었다. 상황적 가족주의가 갖는 폐단은 양태적인 면모로 그치지 않는다.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크다. 은 초 개인주의를 의미 한다 가족의 기능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회적으로도 유대 관계가 불러오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상황적 가족주의는 더욱 견고해 졌고, 이는 “우리 가족만 아니면 돼”라는 파편적이고 모래알 같은 사회 분위기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와 개인을 연결하는 가족 단위에서 이러한 인식 확산은 ‘초개인화’를 만들며, 사회적 무관심과 관계의 거리두기로 이어지는 양상을 지닌다. 서두에서 밝힌 개인의 고독감, 타자의 냉혹함, 신적 무심함에 죽어간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21세기에도 재현되는 서사다.1.2 일과 생활 균형 - 이기적 가족중심주의표준어국어대사전에서는 가족주의를 이렇게 정의 내린다.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에 가치의 중심을 두는 사고방식’이라고 나와 있다. 두산 백과사전은 가족주의에 대해 보다 확장된 사회 범주로 연결 짓고 있는데,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개개의 가족성원보다 중시하고 가족적 인간관계를 가족 이외의 사회관계에까지 의제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과 생활에 있어 한국의 가족주의는 어떤 상관성(매개체)을 맺고 있을까.마리아(2016)는 외국인 연구자로 한국 드라마를 매개로 현대 한국의 가족주의 양상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여 관심을 갖고 돌보려고 하는 것은 한국에서 나타나는 확장된 가족주의의 하나이다’라고 적시하였다. 동료를 단순히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마치 가족과 같이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오래전 광고이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광고 하나가 있다. S그룹의 ‘또 하나의 가족’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CF가 그것이다. 아마도 이 카피가 적어도 5년 전 한국 사회상을 반영했지 않았나 추측한다. 직장에서 만난 관계들에 대해 ‘또 하나의 가족’이란 공동체로 여기는 이 현상을 마리아(2016)는 ‘정서적 유대감’ 요소라 분석하였다. 당시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매개로 한 이 연구는 극중 회사의 비서가 회사의 일만사, 너 왜 결혼 안 하냐?”처럼 직장 상사가 부하의 사적인 문제에 질문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증례 삼는다. 회사의 회식 문화도 장면을 통해 다루었는데, 직장 동료가 이른바 ‘원샷’을 다 이룰 때까지 기다리는 행위를 통해 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한 가족으로 같이 행동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이 논문에선 직장 동료 사이에 서로의 가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로하며, 가족사에 관심을 갖는 극중 장면이 여러 차례 사례화 되고 있다. 이를 통해 ‘직장의 동료 사이에서의 관계는 단지 일을 함께 하는 사람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결론지으며, 이를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 확장으로 진단하였다. 이 논문의 출현 시기가 2016년인 것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이때를 포함한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직장과 일터의 개념은 ‘우리’로 묶이는 공동체 의식 내지는 가족주의 확장의 면모가 있었다고 추론된다. 이는 ‘정서적 유대감’ 으로 지속 가능했으며 관심과 취미를 공유하는 양상으로 도모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의 일과 생활은 ‘정서적 유대감’의 공동체 의식이 잔존하는가?팬데믹 이후, 삶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면서 ‘정서적 유대감’으로 결속되는 ‘가족주의의 확장’은 일터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되었다. 지난해(2021) 한국 갤럽이 조사한 코로나19전후 직장생활 변화 조사 결과, ‘코로나19 이전보다 업무 스트레스가 늘었다’(52%),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늘고(48%)’로 나타났다. 3년간 지속되어온 거리두기와 방역 조치의 영향을 반영하듯, 직장인 중 76%가 코로나19이전보다 ‘회식 빈도가 줄었다’고 답했다. 또한 ‘회의 시간, 전체 근무 시간이 줄었다’는 직장인의 답변도 각각 30%, 23%를 차지하였다. 물론 이 수치가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코로나 이전과의 상반된 관계를 구축한 배경을 담보해 줄 수는 없다. 다만, 코로나 이전의 ‘확장된 가족주의’ 패턴이 ‘1차 단위의 가족주의’로 더욱 폐쇄된 양상을 가져왔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하다.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