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를 보며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일제강점기에 대한 평가를 논할 때 식민지 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은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개념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이 현재까지 빠른 속도로 근대화될 수 있는 요인은 일제강점기 때 일제의 철도 송전탑 발전소 등 조선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식량 증진 정책 그로 인한 인구 증가가 주된 기초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반면 내재적 발전론은 일제의 인프라 투자와 식량 증산은 태평양 전쟁의 목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한국 근대화에 기여하지 못한 것이며, 굳이 일제가 아니더라도 조선은 자본주의 체제를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결국 스스로 근대화할 것이라고 평가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쟁에서 상록수는 내재적 발전론에 힘을 실어 준다. 박동혁이 주도하는 농우회는 관제(일제) 주도의 농촌 진흥회의 방해를 받아 농촌 계몽 운동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채영신 또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만일 이러한 외세(일제)의 방해가 없었다면 박동혁과 채영신의 농촌 계몽 운동은 훨씬 더 활발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음을 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다. 브나로드 운동은 ‘민중 속으로’라는 러시아말로 지식인들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면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구호이다. 동아일보사가 주도했으며 주로 농촌 계몽 운동, 문맹 퇴치 운동의 일환으로 한글 보급 운동 등을 실시하였다. 브나로드 운동도 일제에 의해 가로막혔고 이를 반영한 상록수에서도 일제가 후원하는 단체에 의해 농촌 계몽 운동이 가로막혔으니, 상록수는 가상으로 단순 일제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일제가 조선의 근대화를 방해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일제가 고의적으로, 조직적으로 조선인들의 자력갱생을 방해한 실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재적 발전론 또한 분명 한계점이 존재한다. 내재적 발전론의 주요 주장 중 하나는 자본주의 맹아론으로 이미 조선 후기부터 화폐가 유통되고 농업 · 상업 · 무역이 발전되었다는 주장인데, 이는 맹점이 있는 주장이다. 가장 큰 반론은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 조정의 부패로 조세제도의 붕괴로 일반 백성들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자본적 성취를 이뤄야 할 동기를 잃어버리게 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조선 조정이 부패 했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는 1885년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한 사건으로 거문도 사건으로 명명되는데, 영국군은 강제 노역을 강요한 조선 관료와 달리 거문도 주민에게 일정한 노역의 대가를 지불했으며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도 제공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호감을 샀다. 1887년 영국군이 철수하려 하자 다시 가혹한 통치가 걱정된 거문도 주민들은 영국군에게 떠나지 말 것을 호소했다는 것으로 전해 전다. 영국의 제국주의적 야욕과는 별개로 당시 거문도 주민들이 침략군 영국군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그들의 통치를 원했다는 것은 조선의 가혹한 통치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반론은 조선의 유통망으로 조선의 유통망은 상품을 전국 곳곳으로 보내기 위한 마차가 다니기 힘든 도로였다. 이유는 ‘무도(無道)는 곧 안정(安定)’ 즉 도로가 잘 닦여 있으면 외세가 침입하기 좋다는 거였다. 어떤 사회든 자본주의 사회가 되기 위한 주요 기초는 잘 짜인 운송망이다. 운송망을 통해 다양한 주체와 교역을 해야 비교 우위 전략으로 인해 효용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생산을 늘려 수익을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망 없는 상업 발달은 그저 그 지엽적인 발전만 가능할 뿐이고 대규모의 상업 발달은 불가능하다. 대규모의 상업 활동 없이는 자본주의의 탄생은 불가능하다. 본격적으로 조선이 교통망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구했던 시기가 한일수호조약 체결 후 고종 13년 김기수의 수신사 이후이니 다른 선진국보다는 확실히 시기가 늦음이 틀림없었다. 상록수에서 농촌 계몽운동의 과정에서 채영신와 박동혁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일제의 탄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근간에는 분명 과거 조선의 안일함과 무능함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내재적 발전론의 맹점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지 근대화론보다 강한 타당성을 가진다. 우선 조선은 흥선대원군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세를 받아들이며 여러 형태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일제는 오히려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해 조선에 자원을 수탈했으며, 각종 인프라 건설의 대가로 조선을 빚더미에 안기게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일제는 당시 현재 북한 지역에 주요 에너지 시설과 공장들을 지었고 남한 지역은 주로 식량을 생산케 하였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때 그나마 존재하던 남한의 생산 시설들은 초토화 돼버린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 순위 세계 10위권 국가로 세계에서 유래 없이 빠른 발전을 이루어 냈다. 반면 일제의 생산 시설을 비교적 온순히 보존하고 있던 북한은 현재 세계 최악의 기근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일제의 흔적이 거의 전무한 남한이 비교적 일제가 남긴 인프라를 충분히 가진 북한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게 발전을 이루었으니, 이러한 극적인 단순 사실만으로도 내재적 발전론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과거의 논쟁은 미래의 증명으로 정리 되는 것이다. 조선의 근대화 저해 요인은 근본적으로 한민족의 잠재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정부의 무능과 탄압이 주된 이유라고 본다. 오히려 한민족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맞는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상록수의 박동혁과 채영신에게 확인할 수 있다. 암울한 시대 상황과 주위의 견제 속에서도 박동혁과 채영신은 좌절하기보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성과를 이루어 냈다. 계몽 교육을 받는 농촌 사람들의 태도도 인상적인데, 특히 채영신이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내보내야 했지만, 그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교실 밖에서 청강하며 배우고자 의지를 보여 주었다. 이미 상록수에서 어려울수록 극복의 의지가 더 강해지는 한민족의 특유의 의지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교육에 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개인의 욕망(부정적 의미보다는 이상 추구의 개념이다) 실현이 최우선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의 정신과 자기 발전과 투자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