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람들이 명품을 소비하는 심리와 근본적인 이유사람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그 이면의 의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오늘날 우리는 자본이 지배하며 사회계급이 나뉘는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그에 맞춰 소비행위가 즐비하는 소비사회에 살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서의 소비의 개념을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설명했는데,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넘어선 어떤 행위로 특정한 상품에 대한 욕구가 아닌 차이에 대한 욕구”라고 규정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명품을 사는 이유에 타인과 구별되고자 하는 욕구가 존재하듯이 우리가 상품을 살 때 오직 그 상품 고유의 가치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을 타인과 구분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채우는 것이다.우리 현대사회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점점 더 물신화가 만연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김난도 교수가 언급했던 것처럼 공허함+존재감의 결여에서 오는 불안으로 우리의 정체성마저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찾으려 하는 실태이다. 이의 예시로는 명품, 브랜드 소비 중독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명품 소비에 중독되어 남들보다 더 빠르게 신상을 구입하거나 남들보다 뛰어나 보이려는 이유로 경제 여건이 되지 않음에도 무리하게 명품을 구입하는 사례들이 있다. 이것은 분명 지지할 행태는 아니다. 물론 정말 그 브랜드가 마음에 들어 적절히 나를 치장하는 용도는 좋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바뀌어 나의 내면을 채우려 하기보다 명품과 같은 물질적인 것들, 일시적인 것들로 나를 채우려 할수록 일시적인 만족감을 가져다 줄 뿐 본질적인 공허함과 상실감을 채워주지는 못하고 이에 대한 갈증만 더욱 느끼게 될 것이고, 결국 나중에 와서는 허무함만 남게 될 것이다.다음으로 한 미국 패션 잡지의 “샤넬을 하나라도 갖지 않은 여성은 패션의 승리자가 될 가망이 없다.”라는 발언에 대한 나의 견해도 앞의 내용처럼 비판적이다. 그저 내 주관적인 견해로 말하자면 솔직히 딱 바로 봤을 때 불편한 표현들이 몇 개 보였다. 이 발언을 한 패션잡지가 옛날에 나온 것인지 언제 나온 것인지도 모르고, 물론 샤넬하면 여성성을 띄는 의류들이 생각나는 것은 맞지만 요즘 세대에는 지디같은 핫한 샤넬 남성 모델과 남성 셀럽들이 샤넬 의류를 착용하는 모습도 꽤 자주 볼 수 있는데 “샤넬을 갖지 않은 ‘여성’”이라고 특정 지어 말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샤넬이 아무리 명품의 대명사처럼 쓰인다고 해도 꼭 샤넬같은 명품이 아니어도 충분히 저마다 패션의 개성과 매력들이 있는 것인데 샤넬이 패션의 기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 “샤넬을 가진 사람은 패션의 승리자다”라는 표현과 “샤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패션의 승리자가 아니다”라는 표현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첫 번째 문장은 샤넬을 가진 사람에 대해 칭찬하는 것이고, 잡지에서 발언한 방식과 같은 두 번째 문장은 샤넬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폄하하는 것이다. 샤넬의 패션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으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또, 사람들이 샤넬과 같은 명품을 사는 요인에 패션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 거액을 들여 명품을 구매하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해 명품을 구매하게 만드는 심리 마케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트인사이트’라는 문화 관련 플랫폼의 글은 심리 마케팅에 대해 “소비자는 각 명품 제품이 주는 상징으로 인해 소비 욕구를 갖게 되고 그 브랜드가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얻기 위해 지갑을 열 수밖에 없다. 그 환상적인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소비를 하게 되고, 이러한 소비 형태는 소비자가 점점 더 고급스럽고 개성 있는 제품을 찾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 소비자는 명품을 구매하게 된다.”라며 명품의 상징성, 이미지성을 이용한 마케팅이라고 설명한다. 또, 동아일보에 따르면 “샤넬의 대표 상품인 클래식 미디엄백은 2011년 8월 550만 원에서 현재 846만 원으로 9년 만에 가격이 53% 올랐고, 이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1% 상승한 것을 고려했을 때 물가 대비 가격 상승률이 5배에 가깝다”고 했고 샤넬 뿐 아니라 다른 명품도 단기간에 몇백대의 가격상승을 보였다. 심지어 구매 현장에 가기 힘든 사람들은 구매 대행 아르바이트를 쓰면서까지 구입한다고 한다. 미국 경제학자 베블런은 "부자들은 명품 소비로 인해 자긍심을 느끼는 동시에 주위 동료나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명품 소비를 지향한다."고 했고, 사상가 부르디외는 “고급 의상의 세계라는 특수한 장의 지배자들은 ‘상표’라는 수법을 통해 그 상품을 희귀한 것으로 만드는 힘을 최고로 지닌다. 그 상표에는 최고의 값이 매겨진다”라며 고급 의류의 상표, 즉 로고의 희소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단순한 디자인과 실용성이 아닌 명품, 브랜드 로고가 주는 상징성과 환상적 이미지를 얻고 그에 따른 희귀성으로 자신을 남들과 차별화하며 남들에게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비싼 명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제목: 아니메, 그 견고한 성공의 비결과연 우리나라에는 없는 아니메의 성공의 요인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저는 이번 과제들 중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실제로 제가 관심이 꽤 있는 분야인 일본 애니메이션, 즉 아니메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지금도 저는 아니메를 종종 사이트를 통해 보곤 하는데, 저뿐만 아니라 당장 제 주변 친구들도 보고 있고, 심지어 제 친구들은 한국 방송보다 좋아하며 특정 아니메 캐릭터들의 팬이 될 정도로 과몰입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주변에서 아니메를 즐겨보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최근엔 ‘귀멸의 칼날’이라는 일본 아니메 영화가 누적 관객수 1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왜 자국이 아닌 타국의 아니메가 이토록 인기를 끄는 걸까요? 또, 일본 아니메와 우리 애니메이션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이 두 질문의 답은 나뉘지 않습니다. 두 애니메이션의 차이가 결국 우리나라에서의 아니메 인기를, 일본과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격차를 초래했으니까요. 먼저, 일본 아니메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어린 아이들, 초등학생 저학년들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연령층 폭이 넓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주로 보았던 뽀로로, 코코몽, 구름빵 같은 애니메이션들은 조금만 자라고 나면 자연스레 보지 않게 됩니다. 이같이 우리나라 애니는 잘못된 편견이 있는 것인지 지원이 부족한 것인지 주로 아이들을 위한 내용들로만 한가득 입니다. 하지만 일본 아니메는 판타지, 하이틴 로맨스, 스포츠, SF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폭넓은 주제, 미야자키 하야오나 신카이 마코토 작가들 같은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만화를 만든다는 점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이렇게 소비자의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 자연스레 즐기는 연령층의 폭도 넓어지는 것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협회 AJA 소속 이시카와 나오시 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평범한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 수 있어 장르가 매우 다양하다”라며 “그러므로 어른도 애니메이션을 소비하는 문화가 일본에 발달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웹툰들만 보면 현 드라마보다 명작이라 불릴 정도로 스토리도 탄탄하고 장르도 다양한 작품들이 많은데 여전히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드라마나 영화 시장에 비해 훨씬 작은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또한, 이러한 일본 아니메 인기의 원인 중에는 초반부터 일본에서 도입한 애니메이션 기법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니메가 보고싶다’라는 책에는 일본 아니메 흥행의 기반을 구축한 데즈카 오사무와 그가 일본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독창적인 기법을 어떻게 도입했는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왜 다른 영역들에 비해 미미하게 된 것인지 아래와 같이 나와있습니다. (원문 조금 간추림)미국에서 발달된 초기 상업 애니메이션은 인물의 움직임을 가능하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미려한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실사영화와 같은 초당 24프레임이 사용되었는데, 한 콤마씩 촬영하는 애니메이션 촬영기로 초당 24콤마를 촬영해야 하므로 많은 제작비가 소요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이 기법을 풀 애니메이션이라 부른다) 반면, ‘제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의미의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은 초당 사용되는 셀 매수를 가변화시켜 다양한 움직임과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기법이다. 데즈카는 UPA(United Productions of America)가 처음으로 사용한 이 기법을 받아들여 제작비를 대폭 절감시켰다. 이러한 기법은 하나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부분도 함께 움직이는 풀 애니메이션과 달리 딱딱한 액션을 연출해냈다. 결국 아니메는 ‘딱딱하고 직선적인’ 움직임에 맞는 작품들로 정착되어 갔다. 이후 이러한 리미티드 기법은 아니메의 창작방법으로 정착되어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어떻게 하면 셀의 사용매수를 줄일지와, 셀을 적게 쓰면서도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미국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움직임과 연출로 무장한 아니메가 가능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동양 방송은 경쟁력이 없다며 동화부를 해체했고, 그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미국, 유럽, 일본 애니메이션을 하청받아 작업하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사업으로 자리잡았다.이처럼 우리나라와 일본의 애니메이션 인기의 격차에는 앞서 언급했던 단지 표면적인 장르나 주제 차이 뿐만이 아니라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애니메이션계의 초반 구축부터 일본과 격차가 났던 것이었습니다. 책에도 나와있던 것처럼 만약 우리나라도 일본 아니메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즈카와 같이 차별성 있는 모험을 하고, 그 모험에 여러 조력자들이 힘을 실어 주었다면 적어도 지금의 저처럼 라라의 스타일기, 달빛 천사, 꿈빛 파티시엘과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으로 착각하며 크는 사태까지 오지 않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집니다.일본 애니메이션 인기의 또 다른 요인으로는 일본의 집중적으로 한 곳만 파는 장인정신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라는 책에 따르면 “1960년대에는 영화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에이 동화 초창기에는 많은 인재가 도에이 영화부에서 옮겨왔다.”라고 되어 있듯이 일본의 인재들은 분산되지 않고 한 분야에 집중되어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에서 장인정신이 발휘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사실 아주 대성공적으로 흥행했던 애니메이션도 실사 영화판으로 제작하면 망작 수준으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 않은 영화, 드라마는 다른 나라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편인데, 만약 할리우드나 우리나라의 드라마처럼 다방면으로 인재들이 분산되었다면 과연 지금처럼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성행할 수 있었을까 생각됩니다.이제 애니메이션 하면 빠질 수 없는 미국 애니메이션의 대명사 월트 디즈니, 그리고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를 간략히나마 비교해 보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우선 우리는 디즈니 하면 꿈과 환상의 나라, 아이들의 동심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지브리에는 무언가 동심도 있지만 어른들의 감성까지도 건드리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있습니다. 초반에 말했듯이 지브리는 아이뿐 아닌 전 연령층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저도 어릴 때 마냥 재밌게, 신기하게만 봤던 지브리의 , 이 이제 좀 크고 나서 다시 보니 이상하게도 그 밝고 신기하기만 했던 영화가 그저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 동화 같은 분위기인데 어딘가 현실적이고, 마음을 따뜻하게 힐링시켜주며 그 대사들이 어쩐지 공감되고 위로를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디즈니에도 , , 최근 나왔던 과 같이 어른들까지 함께 위로받고, 오랜 여운을 주는 영화들이 있는데요. 저는 여전히 디즈니에서는 지브리에서 느꼈던 만큼의 깊이 있는 감성을, 성찰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게 도대체 왜 이런 건지 아래와 같은 기사에서 든 예시들을 보고, 제 모호했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