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히스토리쿠스 서평*목차Ii. 머리말II. 본론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2부. 역사의 영역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III. 맺음말I. 머리말대부분의 역사 관련 도서는 친절하지 않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책이면 더욱 그렇다. 역사학도가 되고 싶어 읽었던 수많은 책이 그러했으나,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했으며, 나와 같은 역사학도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다. 역사에 대한 애정은 입시 준비 기간보다 더 오래되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애정은 그저 입시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 또한 스스로 역사란 무엇일까, 어떻게 보아야 할까 등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했고, 이 책은 그런 내 생각에서 한 걸음, 두 걸음 더 나아가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준 느낌이다. 저자가 역사학자는 역사를 기록하고 이야기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역사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그동안의 나 같아서 너무 공감이 갔다. 아직 배우고 있는 입장이고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으나 나는 역사학자가 그렇게 거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사료를 읽고, 해석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사람. 혹은 사료를 읽고, 해석하고,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역사를 고쳐주는 사람, 이 정도.역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책이었다. 유치원, 초등학생부터 나는 특이하게도 닥치는 대로 책을 마구 읽어댔던 아이였다. 하루에도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고, 하루에 빌릴 수 있는 책이 2권밖에 안됨을 슬퍼하는 그런 특이한 아이였다. 그런 내가 초등학교에 있던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읽었던 것은 이야기책이었다. 소설이던, 역사던. 아마 이때부터 노빈손이나 용선생과 같은 역사 이야기책을 빌려 읽으면서 역사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다, 라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역사책을 많이도 읽었고, 역사렵고 짜증나도 역사도, 배우는 강의들도 재미있기만 하더라. 역사를 읽으면서 신기했던 건 또 있었다. 역사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역사 안에 농업, 상업, 과학, 정치 등 수많은 분야들이 있음이 그러했고, 딱딱하고 피 묻은 왕실의 이야기도 알고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는 점이 그러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는 그저 시험을 위한 역사였기 때문에 이건 이러하다, 저건 저러하다고 머리에 집어넣기만 하면 되었지 나의 생각을 묻지 않았다. 게다가 오로지 고대부터 지금까지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 굵은 선만을 좇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텐데. 그리고 그 굵직한 사건들에 휘말리면서 삶을 살았을 텐데 말이다. 또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사건을 만들고, 결과가 된 그 사건들이 다시 원인이 되어 역사를 만들어가는 그 유기적인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 말이다. 나는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이게 무엇일까, 하면서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해주었다. 역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며, 사건은 구조와 의지, 그리고 우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했던 유기적인 사건의 연속의 처음이 이것이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책의 순서대로, 책을 읽고 들었던 나의 생각들, 나의 작은 역사들을 한번 써보려 한다.II. 본론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1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역시 ‘모든 사건에는 언제나 객관적 조건, 사람의 의지, 그리고 우연이 함께 들어있다’라는 말일 것이다. 저자는 사도세자 사건, 이봉주, 그리고 워털루 전쟁을 예로 들어 조건, 의지, 그리고 우연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었다.나름대로 역사를 이해하고 공부해도 언제나 모호하게 알고 있던 것인데, 이렇게 쉬운 명제로 내 앞에 나타났다. 저자는 역사는 경험이고 기억이며, 또한 역사는 경험에 대한 기록이고, 경험의 전달이고,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럼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가장 뇌다. 타고나거나 살아갈 때 주어진 조건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의 조건은 무엇일까. 서울에서 태어났고, 태어나보니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였고, 여성이다. 태어나보니 엄마와 아빠의 딸이 되어 있었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의무교육을 이행해야 했다. 나는 그렇게 객관적 구조에 의해 집 근처 소재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나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읽어야겠다는 나의 의지에 의해 도서관으로 향했고, 우연히 그 도서관에 있었던 역사 관련 책을 읽었다. 구조와, 의지와, 우연에 의해 역사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나는 역사를 전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구조에 의해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우연히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좋은 역사 선생님을 만났다. 미지의 공간이었던 고등학교에서 같은 문화권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집단을 이루는 것은 인간의 객관적인 조건이자 구조이다. 역사를 전공하려는 좋은 친구들 또한 만나 역사를 전공하겠다는 일치된 의지로 함께 동아리를 만들어 나름대로 많은 활동을 했다. 나는 이를 세상 다시 없을 운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2부. 역사의 영역저자는 ‘역사란 역사를 남기는 일, 전달하는 일, 이야기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로 역사는 기록에서 시작해, 남겨진 사료들을 사실에 기반해 해석해 전달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역사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바로 지난 강의에서 배운 것을 예로 들어보겠다. 신라가 어떻게 해서 당을 물리치고 통일 신라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중고등학교에서는 그저 신라가 당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어 통일 신라를 이루었다고만 배웠다. 하지만 지난 강의에서 보면 사실 신라는 당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것이 아니었다. 당이 웅진도독부, 계림대도독부를 세우고 두 도독부 사이에 화친을 강요하면서 신라는 당을 공격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 신라가 웅진도독부를 공격해 점령한 것과 675년 임진강과 금강 티벳 지역의 토번과의 전쟁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은 30년간 동과 서에서 전쟁을 진행하면서 국고가 고갈되었고, 심지어 토번이 공격해오는 방어선은 수도에서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은 선택과 집중을 했어야 했다. 신라와의 전쟁을 단기에 끝낼 수 없음을 안 당은 상대적으로 강대국이고 수도에 위협이 되는 토번과 집중적으로 대치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사도세자의 당쟁희생설 등이 있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원하는 대로 해석하려고 하는 이런 현상이 역사와 국사가 같은 것이라고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사는 역사의 일부분으로, 역사 자체를 국민국가사라고 느껴서는 안된다. 역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던 인간과 역사를 배우는 인간 사이의 괴리만 크기 때문이다. 나 또한 역사라고 하면 으레 한 국가의 국사를 떠올렸다. 중고등학교 때 역사가 흘러온 굵직한 사건들만 배우면서 아쉬워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또한 저자는 근대주의와 진보사관이 가져온 고대-중세-근대에 대해 비판했다. 이 또한 지난 강의에서 배운 가야에 대한 내용을 예로 들어보겠다. 연합국보다 왕을 가진 삼국이 더 진보된 국가였을까? 하는 내용. 현재 교육과정은 국가가 고대부터 진화해 연합국에서 왕 중심의 중앙집권국가로 진화했다고 하며, ‘발전’이라는 워딩을 사용한다. 이는 근대주의와 진보사관의 오만이다. 근대주의는 사실의 측면으로 어느 사회든지 적절한 과정을 거져 목적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는 또 다른 예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내세웠던 근거와 같다. 조선이 근대화되지 않았으니 일본이 돕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시대가 변하고 산업혁명이 시작하면서 역사를 목적을 위해 왜곡한 것이다. 저자는 사료 비판과 검증, 논리를 갖추지 못한 책들이 역사대중화의 탈을 쓰고 합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유사 역사평론이 사람들에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재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가 나아갈 길은 사료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일이며, 역책과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다. 기록된 사실을 우리는 해석을 통해 읽고 이해한다. 역사학은 사실을 기초로 하는 학문이고, 해석은 사실에 담긴 진실을 알기 쉽게 나타내 주는 도구와 같다. 강의에서 사료 해석에 대해 배우면서 사료를 쓸 때 인용한 사료도 왜곡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치 일본서기처럼. 당대에 있던 사료를 교차 검증하여 왜곡되지 않은 기록인지 판별하거나, 그것을 기록한 사람의 관점, 이 사료를 쓴 이유 등을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저자는 2015년 가을에 ‘강원 고교생 인문학 독서토론 캠프’에서 ‘기록의 객관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저자의 첫 마디는 객관성이 좋은 것이냐는 것이었고, 나는 의문이 들었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해석하려면 무엇보다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객관성이 나쁜 것인가? 다음 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의 행동을 복기하고 왜 했으며 결과가 어땠는지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미 나는 내가 주체가 되어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주관이 들어간 것이다. 주관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은 대립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니다.지난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는 역사는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고 듬성듬성 구멍이 뚫린 채로 이어져 전해져 왔다. 이런 줄거리의 특성 때문에 역사는 영화나 소설 등의 소재로 쓰인다. ‘역사와 미디어’ 강의에서 보았던 지슬, 알제리 전투, 라콩브 뤼시앵, 범죄군단, 서프러제트, 쉰들러 리스트가 바로 역사를 소재로 만든 영화들이다. 이들은 사실에서 시작된 추론의 결과다. 나는 역사가 소설이나 영화로서 소비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며, 이들이 좋은 영향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주로 전문가들에 의해 다루어지는 역사를 대중들이 소비하기 쉽게 해주어 역사의 대중성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물론 영화에 허구는 반드시 필요한 장치이긴 하나, 역사로서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나 감
1.'어떤 색깔의 셔츠를 원하십니까?'를 스페인어로 할 때 밑줄친 부분에 들어갈 적당한 말을 쓰시오?답확인: De color2. 다음 밑줄친 부분에 들어갈 말로 가장 알맞은 것은?Por que tiene ______ Susana?답 : 4번 prisa3. '나는 배가 매우 고프다'를 스페인어로 할 때 밑줄친 부분에 들어갈 적당한 말을 쓰시오. 답: Tengo mucha hambre문제 4. 다음 밑줄친 부분에 들어갈 적당한 말을 쓰시오- Donde pones tus fotos?- Las ___ en la mesa.답. pongo문제 4. 다음 밑줄친 부분에 들어갈 적당한 말을 쓰시오- Donde pones tus fotos?- Las ___ en la mesa.답. pongo<중 략>1. 밑줄 친 부분에 들어갈 가장 적당한 말을 고르시오.- ¿__________ es tu novio?- Es delgado y guapo.1. Qué 2. Dónde 3. Cuál 4. Cómo 5. Quién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 여기서 대략 6 7세기 사이에 사용했다고 추정되는 목간들이 대량으로 발견됨. 성산산성이 어떤 성격의 유적인지부터 확인해보면 6세기 중후반 신라의 경남 지방 거점. 문헌 기록 2개. 삼국사기 지리지. ~. 아시량국은 또는 아나가야라고 했다고 주석. 법흥왕 시기, 6세기 초중반에 신라가 이 지역에 있던 아시량국을 멸망시킨 후 이 일대를 하나의 군으로 설정했다는 내용. 현재도 사용하는 함안이라는 명칭이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것. 함안 일대를 지방 행정 단위로 설정했다면 이곳과 관련된 각종 행정을 처리할 군청을 마련해야했을 것.
[내가 관심을 가진 비정부 기구(NGO) 개선방안]초등학교 때부터 동전 모으기나 크리스마스 씰 구매하기 등 어려운 사람을 돕는 비정부 기구의 활동은 우리와 매우 가까이 있었다. 텔레비전만 틀어도 연예인이 더빙하는 비정부 기구의 광고들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수능이 끝나고 나서 ‘세이브 더 칠드런’에서 진행하는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하려고 했었다. 당시 나로서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재고가 소진되어 참여할 수 없게 되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음에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때의 경험을 계기로 나는 아동과 관련된 비정부 기구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아동을 위한 비정부 기구 중 메이저로 인식되는 ‘세이브 더 칠드런’, ‘유니세프’, ‘굿네이버스’, ‘월드비전’에 대해 조사하고 직접 본 홈페이지도 들어가 보았다. 네 곳 모두 투명 경영을 내세우며 국내 아동과 해외 아동에 대해 후원을 받고 있고, 아동 결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후원자들의 후원을 위한 광고와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후원을 하게 되면 피드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홈페이지를 살펴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비정부 기구는 광고를 통해 후원을 받아 아동들을 돕는다. 비정부 기구의 시스템을 따라 광고부터 생각해보자. 국내 아동 대상 광고의 경우 대부분 우울한 표정의 아이들이 제대로 정리 정돈이 되지 않은 집이나 골목길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을 사용한다. 광고에는 큼지막하게 여러분의 도움이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게, 아니면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돕는다는 내용의 문구가 있다.오늘이 되기까지 몰랐던 사실은 이러한 장면들이 모두 대역 연기자를 통해 연출된 장면이라는 것이다. ‘생활이 어려운 조손 가정이기 때문에 따로 준비할 건 없고 허름한 옷과 화장기 없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오시면 됩니다.’라는 내용이 영상 및 영화 제작자와 연기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NGO의 모금 콘텐츠 제작’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대부분의 NGO들이 암울한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고 자극적으로 드러내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모금 활동을 진행해왔다. 후원 대상자에 대한 인권침해, 사생활 노출 등의 문제로 현재는 대역 연기자를 쓰는 것으로 추세가 바뀌었다. 하지만 실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을 뿐 어려운 환경을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대로다. 오히려 전문가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장소나 상황을 연출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다.이는 ‘빈곤 포르노’, ‘기아 포르노’로써, 연출된 상황과 인물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미지를 한정시킨다. 대역 연기자를 통해 특정 표정과 자세를 묘사하면서 어려운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뿌리내리게 하고, 지속되게 만든다.이러한 문제는 국외 아동 대상의 광고에도 해당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아동들의 사진과 함께 도움을 청하는 문구가 들어간 광고들이 부지기수다. 이 경우에는 대역 연기자를 쓰는지 아니면 실제 아동인지 설명문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누구입니다.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탄광에 갑니다’ 등의 문구를 넣은 광고들로 인해 지속해서 개별 아동의 비참한 이미지에 노출되다 보면 대중은 빈곤을 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기보다 개인적 불행으로 인식할 수 있다. 또한 광고 속 아동이나 도움받는 아동들을 살펴보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한정되어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아동을 자비와 기부의 대상으로, 선진국 후원자를 구원자로 만들며 개발도상국의 아동은 모두 빈곤 속에 살 것이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낳을 수 있다.후원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있다. 여러 비정부 기구에서 사용하는 메시지에는 ‘나도 달라질 수 있어요’나 ‘당신의 사랑이 아이들에게는 평생의 희망이 됩니다’ 등이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보고 후원하려는 후원자들은 자신의 기부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 또한 후원자가 기부에만 치중해 비정부 기구에 기부하는 행위만으로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후원금을 자동 이체하는 방식이 후원자에 하여금 기부 이후의 일을 더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든다.대부분의 아동 관련 비정부 기구들은 ‘아동 결연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비정부 기구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아동 결연 후원하기에 들어가면 결연 대상으로 선정된 아이들의 여러 정보가 나타난다. 국가, 지역, 이름, 나이, 외모 등을 후원자가 모두 확인할 수 있으며, 후원자가 아동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는 완화되었다고 하나 아프리카/아시아, 9세-15세 등의 선택지가 있는 경우도 있고, 굿네이버스와 같은 경우 아동의 사진과 이름, 국가, 나이, 성별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후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비정부 기구들은 이런 시스템에 대해 후원자들의 선택과 참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다고 반박하지만 그것은 아동 인권침해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또한 이런 아동 결연 프로그램은 아동에게 개별화된 접근을 한다고 광고하고 프로그램이 아동과의 서신 교환 등과 같이 진행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중은 빈곤을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아동 결연 프로그램의 후원금을 지역 사회 발전에 쓰고 있는 추세지만 이는 사회적으로도, 후원자 본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후원금 사용 방식이 바뀌었음에도 기존의 개별화된 접근을 강조하는 마케팅으로 신규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현재의 아동 결연 후원금을 개개인이 아닌 지역 개발에 사용하는 것은 기존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동을 선택한다는 근본적인 윤리적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아동을 돕고 나서도 기부금에 대해 논란이 있다. 각 비정부 기구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후원자들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 원형 그래프를 통해 기부금이 얼마나 분할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표를 통해 기부금이 어떻게 나뉘었는지 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후원자들에게서 지속해 나오는 논란은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볼 수 있다.그렇다면 이런 문제점들은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까. 먼저 빈곤 포르노나 기아 포르노로서 사회적 약자의 이미지를 한정시키기보다는 광고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도움받는 사회적 약자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그들이 도움을 받음으로써 사회의 약자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의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 라인’ (아동을 동정 및 시혜의 대상이나 약자, 피해자로 묘사하지 말고 삶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자로 표현할 것)을 권고하는 것에서 조금의 강제성을 가지도록 만듦으로써 달라질 수 있다.비정부 기구들의 감정에 호소하거나 죄책감을 유발, 또는 모성애나 부성애를 유발하는 방식의 광고 홍보 전략 대신 후원받는 아동들이 후원을 받게 된 이후를 중점적으로 그리는 광고 홍보 전략으로도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어려운 현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효과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후원이라는 목적을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편견과 차별을 계속해서 조장하는 것은 본말전도이다.대역 연기자를 쓴다는 사실을 모든 사진마다 작지 않은 글씨로 기재하고, 화장이나 염색, 옷과 같은 부분에서 엄격한 제재를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사회적 약자가 그렇다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해외 아동 광고의 경우에도 기아 포르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나는 누구입니다. 나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탄광에 갑니다’ 등의 문구와 아동의 사진 대신 지역의 구조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 빈곤의 문제가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음을 시사해야 한다. 고운 말이 가야 고운 말이 되돌아온다는 것처럼 올바른 인식이 먼저 있어야 올바른 기부가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식을 위해선 개발도상국이나 아프리카, 아시아에만 사회적 약자가 한정되어 있지 않음도 보여주어야 한다.코로나19로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면서 후원을 받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비정부 기구의 광고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아동에 대한 동정심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비극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선한 영향력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다.비정부 기구에서 후원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메시지가 달라져야 한다. 후원자 본인이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단편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야 한다. 후원자의 역할이 후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도 담아야 한다. 후원자의 역할은 단순히 기부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기부하는지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라는 뜻이다. 단순히 기부를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달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기부금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 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서 그치지 말고 비정부 기구와 단체에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부금은 end가 아닙니다. start입니다.’ 라던가 카카오톡 등의 화면에 기부금을 송신하고 NGO의 대답으로 ‘이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라는 메시지를 넣어 기부금을 후원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