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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요나서의 숨결 요약 + 서평
    요나서의 숨결 요약 + 서평
    요나서의 숨결1.요약-’팽’ 당한 하나님과 요나의 바다요나서는 예언자에게 부여된 신적 카리스마를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하나님이 주어인 성서의 세계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팽’한다. 그렇다면 요나가 하나님을 버리고 도망간 이유는 무엇일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대한 지독한 혐오 때문일것이다.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깊은 수면에 빠진다. 이 깊은 수면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시던 때의 그 수면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 잠을 이룬 요나의 계획은 깨어진다.요나가 보여준 삶의 자취는 야훼 하나님 경외와 거리가 멀었다. 육지를 포함하여 바다까지 지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육지에서 바다로 도망치다니. 오늘날의 다수 기독교인들이 떠오른다. 선원들은 요나에게 구원의 길을 묻는다. 위기의 순간, 해법은 신앙지성인에게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신앙인은 역사 속에 발생한 위기의 원인이자 동시에 해결자다. 이에 요나는 자신을 바다로 던지라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을 희생한다기 보다는 바다라는 혼돈, 즉 죽음과 짝하는 상징인에 자신을 던지운다는 것이다. 혼돈의 바다 한가운데 요나의 혼돈이 자리한다. 혼돈의 바다는 곧 요나의 혼돈이다-던짐의 패러독스와 참다운 신앙요나는 자포자기하고 있다. 아무리 도망을 쳐봐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기란 불가능했음을 실감한 것이다. 하나님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일 외에는 없다. 죽어 음부에 내려간 자는 야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시 115:17).그런데 선원들을 요나를 던지기는 커녕 힘써 노를 저어서 배를 육지로 돌리려 한다. 곧 배가 뒤집어지기 직전인 순간에 이들은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것이다. 자신을 던지라는 요나의 제안보다 선원의 노젓기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일이 가장 아름답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음이다.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끈기가 필요하다.야훼는 역사의 한끝에서 파장을 일으키시고 그 반대편에서 결실을 거두시는 것 같다. 요나는 죽기를 선택하였으 만다.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해서 이방인 선원들의 태도는 너무 모범적이다. 그들의 마음과 생각은 야훼 중심적이다.그들이 이제 야훼께 부르짖는다. “야훼여 구하고 구하오니……야훼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14절). 이 기도문에 중요한 사실이 들어있다. 생명의 죽고 살림이 야훼께 있다는 점. 자기들의 행위는 결코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으며 결백하다는 점. 야훼는 절대 주권자이며, 그 뜻을 이루실 것을 알고 있다는 점 등이다. 굉장히 역설적인 사태이다. 믿는 자는 가장 불신자답고, 불신자로 여긴 이들은 가장 신앙인답다. 신앙인이든 불신앙인이든 교리적 가르침에 따라 선과 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함을 교훈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하나님 신앙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참다운 인간이 되는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닮을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구원받은 신앙인의 모습이다. 한국교회가 그런 신앙을 회복하고, 살 맛 나는 사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가는 그런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하나님의 관심은 이제 우리가 아니라 저들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목표삼아 일하시는 세상의 주인공, 초미의 관심사는 저들 불신앙인들이다. 우리는 그 일의 도구일 뿐이다. 우리 일에 골몰하느라 저들을 보지 못하면 1장의 이야기처럼 언제 거친 파도와 위험한 풍랑이 일어나 우리와 저들, 아니 우리 때문에 저들의 목숨까지도 희생당하게 만들지 모른다.-회개의 미학, 불평의 신학 그리고 합당한 길다시 야훼의 말씀이 떨어졌다.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구약성서를 수놓은 사건들 역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은 집요한 분이다.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열심이 꺼지지 않으시는 분이다.외양은 주는 척 하고 마음마저 몽땅 주지 못한 요나의 모습은 여전히 변화할 영역이 많은 한국교회와 쏙 빼 닮았다.하나님의 선민 이 입었다.”(5절) 야훼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기대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태도가 아닐까? 심판의 위협 앞에 그것을 거짓이며 왜곡이라고 부정하기보다, 그럴 만한 일이 있는지를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잘못이 있다면 정직하게 시인하고 개혁하는 자세 말이다.예언자의 단말마적 외침은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니느웨 백성들의 악이 무너지고, 왕이 무너졌으며, 급기야 하나님의 악도 무너지게 만들었다. 요나의 짦은 소견에 니느웨의 보존은 자기 예언의 거짓됨을 반증하는 증거로 우뚝 선다. 그러므로 니느웨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건만 기뻐하기는커녕 요나는 불평과 불만이다.정의를 위해 생명을 소멸시키는 행위란 언제느 합당한 일인가? 생명들이 악의 자리에서 돌이킨다면 그것을 보호해주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정의는 생명을 위해 작용할 때 정의답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정의로운 행동은 생명을 위해 합당한가?-‘아낌’의 신학과 시지푸스적 요나 극복하기과거의 경험이 신앙인의 하나님 이해를 촉진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 이해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과거와 전통은 하나님 이해의 시작과 밑거름일 뿐, 현재와 미래에 경험할 하나님의 모습을 제어하는 잣대로 사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기초석은 신앙공동체가 장차 건축할 다양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건축물을 지탱할 수 있으면 족하다.죽음의 도시 니느웨를 살리신 야훼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거룩한 자유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요나를 닮기보다 야훼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 한국 교회는 파괴되므로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죽음의 도시를 다시 살려내는 거룩한 하나님의 행위에 성실하게 동참하는 순간순간을 자랑삼아야 한다.요나에게는 죽는 일보다 우선적으로 깨달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아껴줌(후쓰)이다. 요나서를 통틀어 그 어떤 것에도 요나는 자기의 긍휼을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나누거나 베푼 적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요나가 무엇인가를 아꼈다(박넝쿨)는 점이다. 그리고 만일 요나가 그토록 아낀 아낌이 자기의 목관계도 없이 베풀어진 것이엇다.야훼 하나님은 요나에게서 분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지적하신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아낄 줄 아는 마음이다. 요나 자신도 몰랐던 마음이었다. 야훼는 요나가 이 사실에 눈뜨기를 바라신다. 그(한국의 교회 지도자)는 스스로 설정한 한계와 범주를 벗어나 자기를 극복하고 이 하나님의 자유와 긍휼에 동참하는 사명자로 발돋움해야 한다.-요나서의 패러디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알려면 세상 속에 어떻게 하나님이 움직이시는지, 또, 이러 저러한 세상살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실 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관심사는 교회에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실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은 교회 자체의 운영에만 관심을 두시지 않음이 분명하다.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자세로 세상을 살도록 가르치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올바로 살아가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회의 지상 목적이다.요나는 진리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자신이 간직한 진리대로 살지 못하는 우스운 존재로 남는다. 신앙인은 패러디 속에 우스운 꼴로 남아 있고, 비신앙인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현실에 대처하므로 인정을 받는다. 우리가 신앙하는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를 알고도 진리대로 살지 못하면 그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를 알고도 진리대로 살지 못하면 그 진리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진리를 알면 자유하게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과연 진리가 요나를 자유하게 하는가?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이 일하라고 보내준 일터가 위기에 빠져 있다면 그것을 외면해서 되겠는가?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위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이 사회에 관심이 있는가?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듯이?2. 서평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것인가? 요나서의 숨결? 모두들 익히 알고 있는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인지, 예상하기 어려웠다.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요나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툴툴대면서 순종한 막내아들 느낌이 강했다. 그런 요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 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여러 부분을 깨닫게 되었다.저자는 요나의 이야기를 한국교회에 빗대어 설명한다. 요나의 이야기를 장의 순서대로 설명하면서, 매 장의 마지막에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사실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문제를 교회의 구성원 본인들은 애써 무시하는 느낌이 강하다는 생각을 종종하였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성도들이 종교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유지 되는 곳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사실 과제를 하는 중에 아는 청년에게 전화가 왔다. 그 청년은 자신이 교회에서 받은 상처와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회에서 왜 그래야 할까?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할까? 라면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가 서로 더 사랑할 수는 없는걸까? 마치 요나의 모습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하는 모습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한국교회의 모습 그대로임을 실시간으로 체험한 것이다.교회 안에서도 품어주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교회 밖에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가?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교인들이 떠나간 현 시점에, 우리가 코로나만 탓하며 서로를 위로해야 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년과 통화를 마치고, 청년이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금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마치 요나의 모습과도 같지 않은가? 나부터 돌아보고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한국교회는 결국 나와 같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이다. 요것이다.
    독후감/창작| 2024.06.04| 5페이지| 2,000원| 조회(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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