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가 경제 내 미치는 영향강의명담당교수님학년학번이름오늘날, 국가 간 인적·물적 교류가 증가함에 따라 국가의 경계가 무색할 만큼 전 세계는 국가 간, 서로 필요한 물품이나 기술, 서비스 등을 거래하며 거대한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FTA의 등장과 정보통신 기술, 교통물류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영위시켜주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FTA의 발전으로 인해 세계국제무역의 규모와 범위를 광범위하게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이번 과제를 준비하며 FTA를 체결함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따라서 본고에서는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의 생성배경과 확산원인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 세계무역의 중심적 체계가 되는 FTA는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 알아본 후 FTA의 정의와 형태를 알아볼 것이다. 또한 FTA가 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알아본 후 나의 생각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자유무역협정의 생성배경과 확산원인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의 이익만 고려한 보호무역정책에 대한 과거의 반성과 자유경제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GATT 체제가 설립되었다. GATT는 관세율 인하와 양적제한의 철폐를 통한 자유무역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으며, 최혜국대우원칙과 내국민대우원칙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후 케네디라운드, 도쿄라운드 등의 이름으로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협상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선진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어, 다른 도상국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UR협상에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대상을 협상의제로 함으로써 모든 무역관련 현안이 다루어졌다. 내용은 시장개방분야, 무역규범분야, 신무역규범분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농산물과 섬유류 교역이 새로운 의제로 포함되었고 무역규범분야에 있어 개도국의 주요 관심사항이었던 반덤핑조치와 세이프가드가 논의되었으며, 지금까지 협상의제가 되지 않았던 지적재산권, 무역 관련투자, 서비스교역이 새로운 의제가 되었다. 이는 WTO의 설립을 위한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WTO는 ‘UR 최종협정의 이행 기구’ 및 ‘국제무역에 관한 UN’으로 역할을 수행하여, GATT가 지녔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를 구축해나갔다. WTO는 인사문제, 반덤핑조치와 보조금 기준강화하며 무역자유화 강도를 강화시켰다. 또한 지적재산권, 무역관련 투자조치에 대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무역자유화와 관련제도를 규정하여 무역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담 분쟁해결기구를 상설기구로 개설하여 분쟁 발생 시 신속히 처리하는 방편을 마련하였다. 대폭 강화된 WTO의 출범 이후 회원국수는 164국으로 빠르게 올라갔으며, 법적구속력과 감시기능을 갖추고 있어 보다 강력한 국제무역질서를 규율하였다.그러나 모든 회원국에게 최혜국대우를 보장해주는 다자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는 WTO또한 선진국이 후진국의 상품시장을 지배하는 악영향이 발생하였다. 이상적으로 바람직하나, 현실과는 부합하였다는 한계점과 DDA협상의 중단으로 인해 ‘양자주의’와 ‘지역주의’가 급속도로 성장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FTA이다. FTA는 협상 체결국의 수가 적어 당사자 간 협의 점에 이르는 기간이 짧아 다자주의에 질린 국가들이 FTA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현재는 164개국이 FTA를 사용하고 있다.지역경제통합의 형태지역경제통합은 자유무역지대, 관세동맹, 공동시장, 경제동맹, 완전경제통합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기초적인 자유무역지역은 둘 이상 국가가 상호간 협상하여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없애고 비회원국에 대해서 개별관세를 부과한다. 기존 관세동맹보다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협상 국가 간 합의에 이루는 경우가 많으며, 각 회원국의 경제주권을 조정 및 통합하는 별도의 의사결정기구가 필요 없는 미약한 경제통합의 형태를 띠고 있다.두 번째론 관세동맹이다. 둘 이상의 국가가 관세영역을 하나로 만드는 지역무역협정을 말한다. 해당 국가들이 공동으로 통상정책을 논의하고, 비회원국에 대해서 공동역외관세를 부과하는 단계이다.세 번째로는 공동시장이다. 관세동맹을 맺은 회원국 간 자본이나 노동력등 생산요소를 자유롭게 역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협정을 말한다. 공동시장에서는 공동 대외관세를 중심으로 한 대외공동무역정책이 수립되며, 한 회원국 내 법적으로 옳은 절차에 의해 수입된 3국 상품 또한 역내에서 생산된 상품과 동일한 효과를 받는다. 공동시장은 상품과 서비스의 제약 없는 이동을 위하여 관세의 철폐에만 그치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 같은 제약 없는 이동을 위하여 비관세 조항까지 철폐를 목적으로 하여 자본, 노동 및 생산요소의 시장 통합을 추구하여 회원국 간 하나의 큰 시장을 이룩함을 목적으로 한다.네 번째론 경제공동체이다. 공동 회원국 간 금융이나 재정정책에서 공동의 정책을 수행하는 수준의 경제통합단계를 말한다. 역내에서 법과 제도 및 정책까지 공동으로 수립하고, 필요경우에 따라 조정이나 접근은 물론 단일 정책의 채택까지 진행하고 있다.마지막으론 완전경제통합이다. 경제통합의 마지막 단계로, 무역통상, 경제제도뿐 아니라 정치, 사법제도 등 경제는 기본으로 통합하고, 사회 전반의 완전한 통합을 이야기한다. 완전경제통합에 속해있는 회원국 전체를 동일한 시장으로 간주하고, 회원국 사이 집행위원회를 꾸려 모든 회원국의 사회 경제정책을 통합하고, 조정, 관리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유럽연합이 있다.FTA의 경제적 효과.그렇다면 FTA를 추진함으로 얻는 목적은 무엇이 있을까? 주로 FTA를 체결할 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로는 FTA의 정태적 효과, 동태적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첫 번째, 정태적 효과에서는 무역창출 효과, 무역전환효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무역창출 효과란 높은 수입관세로 수입이 되지 않고 국내에서 자급자족하던 재화가 경제통합결성으로 역내관세가 제거되면서 역내 다른 회원국에서 수입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체결로 인해 회원국과 비회원국 사이에 상품과 서비스의 교역 및 투자가 이전보다 확대되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론 무역전환 효과이다. 종전 역외에서 상품을 통합 후에는 역내, 외 관세차이로 역내 가맹국에서 수입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회원국과 비회원국 사이 교역과 투자가 감소하고 FTA회원국 사이만 확대되어 후생의 이익을 저해한다고 인식한다.두 번째론 동태적 효과이다. FTA는 양국 간 광범위한 경제 분야에서 일어나며,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단기간 단순한 무역 증가와 같은 정태적 효과보단 장기간에 거쳐 변화를 가져오고 넓은 범위의 산업연관효과를 고려한 동태적 효과가 더 중요시 여겨진다. 동태적효과에서는 시장 확대로 인한 투자의 집중유발, 규모의 경제 효과, 경쟁격화에 의한 생산성 향상, 기술력 향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교역조건의 측면에서 경제통합의 실현은 역내국들의 교역조건을 개선한다. 이는 대상 회원국들이 공통의 통화정책 및 대외정책을 추진함으로 역외 국가들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하기 때문에 역내국들은 가입하지 않는 국가에 대하여 수입의존도를 저하시켜 교역조건을 개선한다. 경제통합의 결과로 관세 및 비관세장벽이 철폐되어 생기는 직접적인 효과 외에도 특화나 소득증대 등도 교역조건 개선에 도움을 준다. 결국 유리한 교역 조건으로 인해 시장이 확대되고, 투자를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론 규모의 경제 효과이다. 경제통합에 참여하는 국가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경우, 생산성 향상을 통하여 수출을 증대한다. 과거 좁은 시장규모로 활용할 수 없었던 기술의 수준과 기업규모가 규모의 경제로 확대될 수 있었다. 경제통합으로 인해 시장, 기업 규모가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대규모 공장의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경쟁격화로 발생한 생산성 향상이다. 무역 개방은 같은 시장으로 상품을 파는 동종기업과 경쟁을 의미한다. 경제통합을 실현하게 되면 특정 국가 내 수입대체산업이나 수출산업을 보호하고 있던 조치가 사라진다. 즉, 국내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이 경제통합을 통해 외국시장과 경쟁하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품질의 개선, 생산성 향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기술개발의 이전 촉진, 혁신효과이다. 시장의 확대로 인해 물품의 개발뿐 아니라 기술발전의 속도도 증가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阿Q正傳?을 읽고 가짜양놈의 시각에서 본 당대 사회의 모습상중국 근대 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노쉰은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의학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그는 당시 민중들의 계몽이 최우선임을 깨닫고, 다양한 작품을 출범하였다. 그는 아Q정전, 광인 일기와 같은 작품의 창작동기를 “국민의 약점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라 밝혔고 소설을 통해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중국 국민을 그려냄으로써 그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각성시키려고 하였다.라며 중국의 오래된 관습을 작품 속에서 규탄하며 중국 문학 세계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이 소설의 주인공 아Q는 조그만 마을인 웨이주앙에서 사는 무식한 농촌 품팔이꾼으로, 일정한 직업 없이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농촌 노동자이다. 아Q를 통하여 다양한 사람이 내용에 일상에 들어오게 되는데 나는 ?아Q정전?속 가짜 양놈의 입장에서 당시 시대적 배경과 가짜 양놈의 평가와 내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그는 얼마 전 성안에 있는 서양학교에 들어갔으나 무슨 까닭인지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반년 후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걸음걸이도 변하고 변발마저 없어졌다.특히 아Q가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것은 그의 가짜 변발이었다. 변발이 가짜라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위의 인용문처럼 가짜 양놈은 스스로 변발을 잘라버리고 걸음걸이를 바꾸는 등 중국 사회에서 보지 못했던 변화가 나타났다. 주인공 아Q는 가짜 양놈이 가짜 변발을 쓰고 돌아다니는 행위에 대하여 인간의 자격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성에서 돌아온 아Q가 혁명에 대하여 지배계급에 두려움을 더하고 있을 때, 아Q보다 먼저 웨이주앙에 위치한 정수암에 가서 용패를 산산조각 내는 행위. 치엔씨댁의 집에서 변발을 모두 풀어헤치고, 까만 양복을 입으며, 사람들에게 선동하는 모습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맞게끔 변화시키는 가짜 양놈의 성격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사람들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혼란의 시기에 겹치게 되면서 이도 저도 아닌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실망감을 작품에 표현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노신은 신해혁명 당시 농촌 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주인공 아Q가 작품 속에서 건달이나 왕 털보에게 구타를 당하는 상황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는 아Q의 정신 승리는 이 책을 보는 우리에게도 웃음을 준다. 하지만 짜오 어르신, 수재선생, 가짜 양놈 같은 이 책의 상위권에 위치한 등장인물들이 당대 사회의 흐름에 대한 무지함에서 색다른 고민을 주었다는 면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 ‘알렉산더’에서의 알렉산더 대왕목 차1.영화정보2.시대적 배경3.영화 줄거리4. 제작자의 시각5. 나의 시각1. 영화정보제목: 알렉산더(Alexander, 2004)개봉: 2004.12.30장르: 전쟁, 모험,감독: 올리버 스톤출연: 콜린 파렐(알렉산더 역) 안소니 홉킨스 (늙은 프톨레미 역) 안젤리나 졸리(올림 피아스 역) 발 킬머(필립역)2. 시대적 배경이 영화의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필립 2세가 집권한 이후부터 알렉산더 사후와 더불어 3국의 분열시기까지의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필립 2세가 집권한 이후로 그가 그리스와 그 주변국들과의 전쟁을 통하여 영토를 넓혀가고 동맹을 통해서 마케도니아의 이익을 증가시킴으로써 마케도니아는 예전의 그리스가 누렸던 제국의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필립 2세는 제국의 영광을 위하긴 보다도 자신에게 진정한 목표가 있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페르시아에 대한 복수가 있었지만, 진정한 내면적인 면에서는 영토 확장을 위한 자국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실현하고자 했으나 하기도 전에 한 병사의 암살로 인해 그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1하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를 잘 알고 있던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가 그의 아버지 사후에 평소에 마케도니아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주변 그리스 국가들이 이틈을 타 반란을 일으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알고 있다 시피 이것으로 인해 테베가 멸망을 하였고, 테살리아도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유일하게 용서해준 나라가 바로 아테네였다. 주변 그리스 국가들의 반란이 종식된 이후, 그는 아버지의 목표를 계승하여 동방원정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동방의 대제국이면서 걸림돌이자 보복을 위한 나라인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펼치는 것이다. 이 국가 간의 3차례에 걸친 전쟁 끝에 마케도니아가 승리하게 되고 이에 멈추지 않고 그는 계속 동방원정을 감행했으며 박트리아까지 나가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인도 였는데, 여기서 그는 참으로 어리석은 실수를 한 것이 인도에 대한 잘못된 지 인한 휴유증, 과도한 음주로 인해 그는 열병에 걸리게 되어 결국 33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그의 사후에는 그의 부하들에 의해서 제국이 처음에는 4국으로 분열되었다가, 전쟁으로 한 국가가 멸망하게 되면서 3국 체제로 유지하여 각자 통치하게 된다. 또한 사후에 대한 그의 영향력과 평가는 그는 동방원정을 감행하면서 많은 제도들도 개편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동ㆍ서양의 문화를 융합을 하려 노력하였고 그로 인해 헬레니즘 문화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다.3. 영화 줄거리영화의 구성 및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면, 일단 이 영화는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약간의 역순행적 구성을 엿볼 수 있으며, 첫 장면에서 알렉산더가 병들어서 죽기 직전의 모습을 살필 수가 있다. 그의 부하들은 후계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 위에 있는 양탄자를 향해 힘 없는 손짓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퍽하면서 열린다. 어찌보면 제작자가 알렉산더 대왕의 신적인 모습을 영화 속에 반영한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양탄자 를 향해 반지를 들어올리다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장면이 바뀌게 된다. 이 때 무언가 딱딱해 보이는 인상의 할아버지가 나오는 데 그가 바로 이집트의 파라오인 늙은 프톨레마이오스이다.그는 자신의 왕이 였던 죽은 알렉산더 대왕을 신적이자 영웅적인 존재라는 전제와 더불어 영화의 내용이 전개 된다.첫 장면은 45년 전의 가우가멜라 전투가 시작되기 전 그와 부하들 간의 회의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군의 진열이 분열되었을 때 다리우스 왕을 죽이자고 하지만, 파메니온이라는 장군이 페르시아 군대가 대규모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는 듯이 빈정댄다. 이에 카산더는 그러면 기습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알렉산더는 그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잠깐 가만히 듣던 파메니온 장군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미친 짓이라고 하며 병력을 재정비하자고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끝까지 자기 고집을 꺾지 않게 된다. 알렉산더는 나오면서 달을. 이 장면에서 페르시아가 활을 쏘는 것을 시작하여 상당히 스펙터클하게 진행된다. 여기서 내가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마케도니의 팔랑크스 대형이다. 이 영화에서 그리스와 똑같은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 다른 면이 보인다. 물론 그리스에서부터 팔랑크스 대형이 유래되었으나, 다른 점을 분석해보면 그리스는 뒷부분에 거의 완전하게 세워서 진군하는 한편 알렉산더는 기울어서 진군한다. 다시 말해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 대형은 보다 빠르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여 그리스의 단점을 보완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내용에 들어가면 알렉산더 대왕은 치열한 전투 속에 다리우스 왕을 발견하고 돌격하여 공격하지만 안타깝게도 빗나가게 되고 그것에 놀란 다리우스 왕은 도망치게 된다. 이에 알렉산더는 그를 쫓아갈려고 하였지만 부하인 파메니온 장군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하여 다리우스가 아닌 파메니온을 향해 말을 돌리게 된다. 결론은 알렉산더 대왕의 승리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장면에 있는 부상자들을 보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엿볼 수가 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은 부상이 난 한 부하와 대화를 하면서 갑자기 정으로 그를 죽인다. 이 점에서 이성을 잃어가면서 정복욕에 대한 그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다.그리고 장면이 바뀌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 시간보다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이 장면에서 처음 부분에서 어머니인 올림피아스가 알렉산더에게 뱀과 교감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갑자기 술에 취한 필립이 갑자기 들어와서 올림피아스를 괴롭힌다. 여기서 보면 필립은 술을 좋아하는 주정뱅이와 미치광이처럼 표현되는 것 같다. 그는 괴롭히다가 알렉산더를 보고 갑자기 진노하여 올림피아스를 죽일려고 하였다. 겨우 알렉산더와 그의 시녀들이 말려서 다행히 올림피아스는 죽음을 면했지만 분노에 가득찬 그를 복수할 것이라고 울분 짓는다.이 일이 일어나고 7년 후 알렉산더는 어느 정도 성장하여 전투 교육하는 장면과 어떠한 노인한테서 교육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노인 왠지 아리스토텔레스인 것 다고 한다. 이에 알렉산더는 그가 말한 땅들이 왜 신화에만 거론되냐고 질문하면서 그럼 이 땅들은 허구냐고 하면서 반문을 하게 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정복욕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페르시아를 왜 정복을 하지 않느냐고 할 뿐만 아니라 왜 신화처럼 하면 안되냐고 물어본다. 그는 단호하게 신화는 무지한 사람들이 믿는 것이고 그것을 교육을 통해서 무지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말을 하였으며, 동방에 대한 정복의 꿈은 헛된 것이며 지나친 야망에 대해서 경계할 것을 강조했다. 교육이 끝나고 그는 말타기 구경하러 왔는데 아무도 그런 거친 말을 상대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자신이 해보겠다고 자진한다. 이 때 알렉산더는 그가 예전에 어머니인 올림피아스에게 뱀과의 교감에 대한 교육을 받을 것을 통해 그 말한테도 교감을 하면서 아무도 못탔던 말을 타게 된다. 이에 필립은 자신의 아들의 그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그 후 펠라 동굴에서 필립은 신화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아들인 알렉산더에게 영웅되기 위한 과정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다시 13년 후 그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승리하여 바빌론에 입성하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이 때 군중들이 입성하는 알렉산더 대왕을 열렬히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입성한 후 그와 그의 부하들은 궁 안에 있는 다리우스의 시녀들을 보고 넋이 나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여기 있는 시녀들을 고향으로 보내라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다리우스 왕의 딸이 나타나서 자신의 가족들을 살려주라고 간청한다. 그는 그의 제대로 된 진심을 듣고 그녀의 간청을 들어 주게 된다. 또한 그는 올림피아스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그녀는 최측근들은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알렉산더는 그녀의 야망을 알고 못마땅하게 여긴다.바빌론 입성 후 알렉산더는 동방원정를 계속하여 박트리아에 다다랐는데 거기서 록산느라는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그는 이 때 자기를 위해 싸워준 병사들을 위해 빚을 탕감할 것을 약속하며 또한 박트리아인들이 그리. 이 때 그녀는 알렉산더가 이상하다고 여겨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는 그녀의 거부감을 사그릴 수 있도록 마음을 달래 주었다. 여기서 내가 느낀 것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비슷한 면을 볼 수 있는데, 알렉산더가 어렸을 때 필립이 올림피아스를 괴롭힌 것처럼 그도 그 상황과 비슷한 장면을 보고 알 수 있다. 또한 올림피아스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여 얘기했을 때도 아마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한다.장면이 또 다시 바뀌게 되는데, 이번에는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장면에서는 필립이 아탈루스라는 인물의 조카딸과 재혼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올림피아스가 필립을 증오하고 그와 재혼할 여자를 증오하는 말을 하는데 여기서 그녀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내비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10년 후로 돌아와서, 갑작스럽게 알렉산더에 대한 음모가 벌어졌는데 그게 어린 시절의 친구인 필로타스하구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혼란스러웠고 친구인 필로타스의 진실을 듣길 원했는데 끝없는 변명으로 결국 필로타스는 처형 당하게 된다. 그를 죽이기 전에 파메니온이 심상치 않다고 여기던 알렉산더는 조사하여 그의 유죄를 인정하고 파메니온을 처형하도록 클레이투스와 안티고누스에게 명령을 내려 결국 알렉산더의 걸림돌이었던 파메니온을 죽이게 된다.그는 힌두 쿠슈까지 다다라서 동방원정을 계속하였지만 군사들의 사기저하로 인해 동방원정의 진행이 실패하고 그 속에서 알렉산더는 싸우다가 부상을 입게 된다. 부상에서 깨어난 그는 동방원정을 중단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다가 헤파이스티온이 갑작스런 병사로 인해 죽게 되는데 이에 분노한 알렉산더는 록산느의 독살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그는 자기가 어렸을 때 들었던 신화 얘기에 떠오르게 되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축제를 즐겼고 부하에 의해 준 술을 마시게 된다. 그런데 그 때 준 부하의 얼굴을 보니 무언가 독을 탄 것 같다는다.
Ⅰ. 서론Ⅱ. LG 전자의 성장기Ⅱ-1. 창설기부터 80년대 이전Ⅱ-2. 80년대부터 90년대 이전Ⅱ-3. 90년대부터 현재.Ⅲ. LG전자의 포지셔닝 사례Ⅲ-1. LG 트롬 세탁기Ⅲ-2. LG 크리켓TVⅣ. LG전자 가치사슬 분석Ⅴ. 대안점 및 시사점참고문헌Ⅰ. 서 론시시각각변하는 현지 시장에서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필수적인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 또한 국내기업에 존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진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여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은 국제시장 세분화와 포지셔닝을 통해 특성이 비슷하거나 같은 집단을 확인하고, 소비자가 선호하는 마케팅과 목표시장의 범위를 설정해야만 기업이 추구하는 마케팅성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에 진출하기에 앞서 올바른 정보수집으로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이번과제에서 선정한 기업은 LG전자이다. LG전자는 한국 최초 전자산업을 시도한 기업이며, 한국 경제가 제조업에서 전자업으로 수출기반이 변화하며 비약적으로 상승했을 당시 해외수출을 주도하여 다른 기업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어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많은 국가들에 진출한 사례가 있음을 이유로 이번 과제에 알맞아 선정하게 되었다.본고에서는 LG전자가 창설되었던 초반부터 80년대 후반과 기업이 위기를 겪은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을 살펴보고 90년대 후반부터 지금의 LG전자의 시대의 흐름까지 3분야로 걸쳐서 알아볼 것이다. 또한 LG전자의 포지셔닝을 통해 진출한 제품과 가치사슬을 분석하여 LG전자의 대안점과 시사점을 작성하며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Ⅱ-1. 창설기부터 80년대 이전우리 생활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LG전자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는 LG전자의 역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 6.25전쟁으로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전자제품을 스스로 만들기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LG의 초대회장인 구인회회장은 국민생활에 필수적인 전자산업을 피술이사로 채택하고 1959년 국산 라디오 A-501을 처음으로 출범하였다. 초반엔 신문, 라디오 등 LG전자의 홍보를 널리 알렸지만 외국제품의 밀수와 수요자들이 외제품을 선호하면서 판매부진을 면치 못하였다. 생산부진을 겪던 LG전자가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정부의 출범 때문이었다. 군사정부는 외부 제품의 밀수금지와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으로 국산 라디오의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렸으며, 국내 전자제품 시장에서 LG전자 라디오는 없어서 안 될 존재로 부상하였다.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전자제품 생산에 있어 탄력을 받은 LG전자는 제품 부품의 국산화를 통해 생산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으며, 라디오에 이어 냉장고, 흑백TV, 에어컨 등 전자제품을 내놓으며 산업의 기반을 다졌다.1970년은 한국경제에 있어서 고도성장기라고 평가받는 시기이다. 정부는 전자산업에 아낌없는 지원으로 산업화의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이 비약적으로 이루어졌다. LG전자는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미국, 중남미, 일본과 특허와 기술도입계약을 체결하고, 현지 판매법인의 설립을 통해 각국의 수입규제 움직임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기 위한 대처를 진행하며 발 빠르게 해외시장으로 진출하였다.Ⅱ-2. 80년대부터 90년대 이전1980년에 이르러 LG전자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계 무역의 흐름에 대응하고 국제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판매법인과 해외 생산기지 확보에 주력하기 시작하였으며, 매출1조원 달성이라는 쾌거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1980년 후반부터 한국시장에 대한 선진국들의 개방 압력이 거새지고, 노사와 갈등으로 위기를 맞았다. 국내외적으로 위기를 맞은 LG전자는 경영혁신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 21세기에 진입하여 발생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회사와 노조 간 대립관계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상호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Ⅱ-3. 90년대부터 현재.80년대 LG전자의 노사문제로 인하여 곤경을 겪은 LG전자는 혁신적인 경영0년대에 이르러 조직구조 및 운영체제 개혁, 사업문화단위에 의한 경영, 자율경영 및 인재육성에 바탕을 둔 ‘21세기를 향할 경영구상’을 1990년 2월 공식발표하였다. 또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를 중심으로 성장해나갔으며, 유럽현지에 생산법인 설립과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 생산 인프라를 확충하여 세계화 진출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LG전자는 2004년 글로벌 탑3 비전을 발표하고 글로벌 일등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현재 142개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약 74000명의 사람의 LG전자의 임직원으로서 글로벌 선두를 달리고 있다.Ⅲ. LG전자의 포지셔닝 사례포지셔닝이란 제품에 대한 수많은 특징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말한다. 포지셔닝을 선택하기 위해서 기업은 타켓 소비자를 정하고, 경쟁자가 누구인지 알아봐야할 필요가 있으며, 나만의 특성을 가져야 성공적인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또한 타켓을 정한 후 경쟁자를 누구로 설정하는지에 따라 차별점이 다르게 정해지기 때문에 경쟁자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다.Ⅲ-1. LG 트롬세탁기LG 전자는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세탁기를 만든 후, 1996년에 통돌이 세탁기를 내놓아 포화상태였던 국내시장에서 우위를 가졌다. 이에 힘입어 1998년 소음, 옷감의 엉킴을 개선한 터보드럼세탁기를 시장 최초로 공개하며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경제적인 풍요를 얻게 되자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일반 세탁기와는 다르게 살균기능을 추가하여 월빙을 중요시여기는 잠재적 고객층들을 대상으로 TROMM이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여 세탁기 시장에 진출하였다. TROMM은 독일어로 TRMMEL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이름인데, 영어로는 True Riches Of My Mind로 ‘내 마음 속의 진정한 풍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정통 유럽형 세탁기의 이름이다. LG TROMM은 유럽, 미국, 중국 등 다양한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여 판매하고 있지만, 트롬 세탁기를 중점으로 확인할 것이다.LG전자는 중국 시장에서 시장선점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현지기업과 합작형태로 법안을 설립하였다. 대부분 세계기업이 중국에 진출해있기 때문에 경쟁서 이길 수 있는 방안으로 중국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을 모티브로 삼고 집중화, 전문화, 현지화로 만든 제품을 통해 국민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중국시장에 진출하기 전 LG 현지법인은 설문을 통해 세탁기에 대한 중국국민들의 인식을 조사하였다. 당시 사스, 황사로 인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소독을 진행한 후 빨래를 돌린다고 응답하였고, 사람들이 세탁기보다 손빨래를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착안해 LG전자는 살균기능이 있는 트롬 세탁기를 포지셔닝하며 세탁기시장 점유율을 높게 끌어 올렸다.트롬이 중국시장에 진출하였을 때 LG전자의 경쟁기업은 중국 세탁기 브랜드인 하이얼이 33%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이얼 브랜드는 중국기업이며,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탁기의 소음, 세탁물에 넣을 용량이 적어 소비자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LG전자는 이와 반대 포지셔닝을 통해 프리미엄 세탁기를 중심으로 중국시장에 출시하였으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하이얼브랜드와 다르게 낮은 소음, 많은 양의 빨래를 적재할 수 있으며 살균이 가능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보였다. 그 결과 LG 세탁기는 중국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LG전자 글로벌 세탁기 시장점유율이 높아진 이유로 지역 맞춤형 마케팅 전략 활동과 제품의 우수한 성능 이외에 가장 큰 이유로 디자인 우수성과 차별성을 꼽고 있다.LG세탁기는 제1의 글로벌 생산기지인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중국 현지법인에 IT 인프라를 구축하여 역량을 확대시켜나갔다. 또한 현지 마케팅을 적극 포지셔닝 하여 중국 특유의 감성적 품질과 디자인을 고려한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의 상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Ⅲ-2. LG 크리켓TV1963년 LG전자는 KBS, MBC등 국영, 민영 방송어 1966년 첫 TV를 선보였다. 이후 컬러TV, 디지털 TV 등 LG전자는 한국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였으며, 국내 소비에만 만족하지 않고 90년대 개도국들을 중심으로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특히, 인도는 약 13억 8천만명의 인구로 세계에서 2번째로 풍부한 인구수가 있으며, 안정된 경제 체제와, BRIC’s와 같은 경제성장기에 오른 국가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다.LG전자는 대부분 인도국민들이 크리켓을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라는 것에 영감을 받고 시장에 진출하였다. 다른 기업과 달리 크리켓 월드컵의 전자 독점 공식 스폰서로서 계약을 맺어 차별점을 두었으며, 또한 월드컵 기간마다 인도시장에서 크리켓TV를 선보이며 스포츠를 좋아하는 인도 국민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프리미엄 제품을 홍보하며 전자기기의 높은 성능과 비용을 통해 신뢰를 얻는 시장과 달리 인도시장에서 낮은 가격으로 중, 서민층 국민을 대상으로 보급형 TV를 선보이고 있어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2011년 크리켓 월드컵 당시 LG전자가 진행한 한정판매 TV 경우 29인치 TV판매량이 91% 늘어났으며 21인치 경우는 23%증가하였다.Ⅳ. LG전자 가치사슬 분석LG전자는 제품 개발에 있어 고객의 의견반영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강하다. 제품 개발 시 폭 넓은 조사를 통해 다각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며, 소비자 층에 따라 기존에서 변형된 상품으로 출시한다. 또한 제품기획, 마케팅, 판매에 이르기까지 해당 시장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여 해당지역의 정서와 고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LG전자는 강한회사가 강한 인재를 만들고 강한 인재가 강한 회사를 만든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인재를 육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1등을 추구하는 LG전자는 핵심인재의 확보와 육성은 기본적, 핵심적 과제로 보고 인력의 Flow관리와 우수 리더십 인력의 확보를 통해 인사시스템을 개편하고, 직급별로 활용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여 중요한 직책을 우선적으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