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조선 역대 왕과 왕비 또는 추숭된 오아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하고 제하는 묘 -현재는 정면 19간에 측면 3간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건물이다. 이익공식 건물이며 외부에 1출목을 가져 행공첨차를 놓았으며, 익공의 초각은 매우 고졸하여, 보뺄목은 삼분두형으로 되어 있어 중기 초경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정전 서편에는 담장으로 둘려 있는 다른 일곽의 건물인 영년전이 배치되어 있다. 건축구조 형식은 정전 과 흡사하며 초익공식의 집으로 초각이 중기의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종묘의 배치계획은 비대칭 속에서 대칭적인 공간구성을 갖고 있어 한국 건축의 특성을 매우 잘 나타내고 있다. -공간구성은 은유적이며 암시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을 느끼게 한다. -형태 요소와 공간의 반복을 통해서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반복적인 제례의식을 통해 영구회귀의 분위기를 추구한 공간을 창출했다.
-유학이 융성함에 따라 조선 초기부터 공자를 봉사하는 문묘가 서울을 위시하여 각 도, 도읍에 건축되 게 하였고, 유교경전의 간행과 강학을 담당하게 되어, 일반 사회생활에 유교도덕이 강조되게 하였으며, 관학 교육기관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서울의 문묘 성균관은 가장 규모가 큰 대표적인 것. -중앙의 높은 기단 위에 서 있는 공자묘인 대성전을ㅇ 중심으로 전면 72제자와 홍유향현의 신위를 안 치한 동서양무가 있고, 그 앞쪽에 대성전 중심축 선상에 남향하여 중문이 서 있으며, 좌우에는 담 벽이 연결되어 있어 대성전 앞에 큰 중정이 형성되어 있고, 동무 앞에는 비각이 서 있다. -대성전 뒤에는 넓은 중정을 두고 좌우에 협실이 있는 명륜당이 서 있다. 명륜당 전면의 좌우에는 동재 와 서재가 있으며, 이 건물들은 수많은 개실과 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륜당 뒤의 동측에는 존경각이 있으며 서북쪽에는 공자의 부친을 제사하는 계성사가 있었으나, 지금 은 없다. 서울 문묘는 대성전인 공자에게 제사를 하는 제향 공간과 명륜당인 유학을 전공하는 강학 공 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조선왕조시대 가람배치는 고려시대의 선종 가람형식을 계승하여 자유롭게 발전시킨 것. ⦁ 조선왕조시대의 산지가람 형식을 나타나낸 용문산 상원사의 관음현상도 존재⦁ 주전 앞 좌우에 요사를 두고 중정을 건너 앞쪽에 누나 문을 세우는 형식은 근세에 건축하였던 묘사 및 서원의 배치형식과도 상통되는 점이 있다.⦁ 가람은, 경치 좋은 곳을 택하여서 조영되었으며, 규모의 대소에 따라 전물의 수와 종류에 차이가 있다. ⦁ 조선왕조시대 대부분이 통일신라 또는 고려시대의 불사배치를 계승한 것으로 그 중에는 조선왕조 시대에 변경을 가한 예도 적지 않다.⦁ 건물의 배치방법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왕조 시대에 이르러 점차로 한국 고유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으로, 가람의 배치가 좌우대칭이 아니고 불규칙하게 되며, 필요한 건물을 편의에 따라 적당한 곳에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
제1장 개요1. 답사 개요 답사 장소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185 창경궁 답사 날짜 : 2021. xx. xx2. 머리말본 답사는 한국 건축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진행되었다. 답사 장소로 창경궁을 선택한 첫 번째는 굴곡 있는 역사에 따라 변화된 곳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동궁이라는 특징과 동향이라는 특수점을 지닌 곳이기 때문이다.남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은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대부분이 남향을 중시하는 가운데 한 국가의 왕이 살아가는 궁궐이 동향이라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창경궁 답사를 통해 이를 알아보고자 한다. 더불어 왕실 일가가 살아가는 것에 주안점을 둔 창경궁에서 한국 건축의 특징을 찾아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제2장 연역 및 현황1. 창경궁의 연혁 가. 창경궁의 자연·지리적 환경창경궁은 창덕궁과 담 하나를 경계로 하여 붙어 있는 동궐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두 궁은 응봉 줄기에 놓여 있어서 경복궁을 좌측(동쪽)에서 감싸 호위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북악의 한 줄기가 내청룡의 자세로 남향하여 뻗은 완만한 산줄기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창경궁의 위치에 대해 증보문헌 비고 무역조영선조에 “옛날부터 태후의 거처는 반드시 대내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동향하며 창경궁도 이런 연유에서 동쪽을 택한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나. 창경궁의 고고·역사적 배경본래 수강궁이었던 것을 성종 대에 다시 고쳐서 지었다. 수강궁은 세종 즉위년(1418)에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상왕이 되어 머물기 위해 지은 신궁이었다.세조비인 정희왕후와 덕종비 소혜황후와 예종비 안순왕후는 창덕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런데 궁이 비좁아 세 대비는 거처를 수강궁으로 옮겼다. 기존의 수강궁은 태종이 지은 작은 별전에 불과했으며 낡아 수리를 필요로 했다. 이에 성종13년 삼전이 거처할 수강궁을 낮고 해가 잘 들며, 쓰일 곳이 많게 하되 아주 높지 크지 않게 수리해 짓도록 명령하였다.
19장. 조선왕조 궁궐건축1. 경복궁(1) 궁궐배치 및 광화문⦁태조 3년에 처음 건축⦁고종이 덕수궁으로 천궁하기까지 30년여년간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며, 일제 때에 건물 일부분이 철거되고 내전이었던 강령전과 교태전이 창덕궁으로 이건돼 건축 규모가 축소되었다.⦁배후에 백악과 멀리 삼각산을 배경으로 하고, 한성 중심 좌우에 육조관아가 병립하여 있는 대로광장에 면해서 평지에 조영된 궁궐⦁남북 축선상에 좌우대칭(중심건물)⦁종전의 광화문은 석조기층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었고, 그 위에 정면 3간의 중층 우진각 지붕으로 된 목조문루가 있었으며, 공포는 다포식으로 상하층 모두 외2출목, 내3출목으로 조선후기의 수법을 따라 외부는 제공 뿌리를 양서 형상으로하고, 내부는 운공을 만들었으며, 점차 양 측면에는 모두 파련 초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