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SR)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반대되어 일컫는 용어이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은 2010년 11월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지침(ISO 26000)을 통해 사회적 책임(SR)의 영역이 기업에서 정부, 노조, 시민단체 등 여러 이해당사자에 적용되는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며 등장한 개념이다. USR은 노동조합 활동 시 정부, 기업, 소비자, 비정규근로자, 하청근로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포함하고 투명한 운영과 법적 윤리적 행동 준수의 책무를 의미한다. 정부, 상업계, 노동계, 소비자, 비정부기구(NGO) 등 7개 경제 주체를 대상으로 인권, 지배구조, 공동체 참여, 노동관행, 환경, 소비자 이슈, 공정거래, 및 개발 등 7대 의제를 사회적 책임 이슈로 정하고 있다. USR의 핵심주제 중 두 가지를 설명하면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핵심 주제 중 다섯 번째 주제는 공정 운영은 집행의 민주성, 윤리적 행동 기준의 준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노동조합의 활동에 있어 투명한 조직 운영과 공정 운영, 윤리적 행동 기준의 준수, 법규의 존중, 부패 방지의 책임감 있는 활동이 세부과제이다. USR의 핵심주제 중 일곱 번째는 지배구조이다. 구체적으로 노동조합도 조직으로서의 투명성과 법칙 준수 및 의사결정과제에서의 투명성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기업의 ESG활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패러다임과 궤를 같이한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의 입장에서 시너지를 기대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ESG의 G(Governance) 기업의 경영 투명성 확보를 위해 필수 불가결 요소를 USR에서 정의할 수 있다. S(Social)는 책의 예시 활동과 같이 다문화가정 지원, 독거노인 지원, 지역사회 지원 등.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Governance(G)를 위해서는 기존의 기업 경영에서 완연했던 노사대결이 아닌 기업과 노사의 책임을 통한 지속가능한 경영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2. 노사가 공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방법먼저 노사의 사회적 책임은 고용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노사 공동의 사회적 책임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고용, 양질의 일자리 확대, 일과 삶의 균형 있는 발전, 노사 신뢰를 기반으로 한 올바른 기업 문화 조성이 있다. 자세한 예시로는 협력업체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 취약계층을 위한 적극 고용, 지역인재 우선 고용 및 사회적 기업으로의 실천 등이 있다.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네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기업들이 솔선해서 적극적인 고용을 펼치는 것이 있다. 지역인재 우선 채용, 취약계층 우선 채용 및 가산점 부여 등을 통해 적극적인 고용을 실천할 수 있다. 기업경영자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두며 더 나은 근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지원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노동자 측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확대하고 올바른 노사관계가 성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노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정책적으로 여성과 중장년층과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마련하고 이에 맞는 행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사내 보육시설과 같은 편의시설을 대기업에 한해서 규정하거나 중장년층을 위한 정년 연장제 도입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노사가 공동으로 올바른 사회적 기업문화 창출과 사회적 기업으로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노사 공동의 노력으로 사회적 기업으로서 세계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있다. LG전자와 LG전자 노동조합은 에티오피아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생활지원금 지원 사업과 캄보디아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한국 전쟁 참전 용사 생활 지원금 지원 사업은 노조 기금으로 한국 전쟁 참전 용사 한 명당 200달러씩 지원하는 것이다. 캄보디아 지원 사업은 낙후된 지역을 찾아가서 우물 파기, 마을 회관 건립, 공용 화장실 건립 등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와 노동조합이 함께 힘을 모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 여러 나라에 LG 희망마을을 만드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LG가 설립한 연암대 학생 및 교직원들과 현지를 방문해 참전 용사들에게 옥수수와 닭 등을 키우고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등의 활동도 전개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다문화 가정 가족 고향 보내주기와 같은 활동을 통해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을 시행 중이다. 사회, 경제, 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3.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은 서로 다른 것인가? 서로 다르다면 그 이유를 작성하고 동일하다면 이유와 의견을 작성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은 이해관계자에 대한 책임을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기에, 기업의 이해관계자인 노동조합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과 온전히 분리할 수는 없는 개념이다. 다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더 큰 범주로 정의하여, 이를 강화할수록 노동조합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관점과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수록 기업의 이해관계자(노동조합)의 권리가 증대하며 이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의 확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간단한 예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 자발성 측면은 기업 스스로 법을 준수하여 권리보장 측면에서 노동조합에 기회를 제공하지만 이와 동시에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며 법과 제도를 잘 준수하면 할수록 노동조합의 역할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두 개념은 상호 보완적일 수도 동시에 사회적 책임 전체를 양분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체계화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이고, 어떤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지, 사회적 책임 활동의 성과의 책정 등 구체적인 방향성이 필요하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초창기 기업의 사회적 책임처럼 단순한 기부활동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기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 단순 기부에서 기업의 강점과 경쟁우위를 사회적 책임과 접목해 공유가치 창출(CSV)을 탄생시킨 것처럼, 노동조합도 그들의 전문성을 살려 사회적 책임을 전략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기업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의 골자와 목표는 최종적으로 동일한 방향성 혹은 상호 보완적인 형태를 지향하여 기업 내의 한정적인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 모델의 구축이 요구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은 한정적인 자원을 기업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사회적 책임(주로 외부 활동)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고, 반대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중 고용 관계에 대한 책임이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비교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차이점을 꼽자면 단연 '인간적인 감정'일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등장한 신고전주의는 '인간의 영웅적인 면모', '공적인 가치에 대한 진지한 질문', '세대를 넘어서 전해지는 의미 있는 예술'과 같이 보다 큰 의미, 인간의 감정보다는 더 큰 공공의 목적에 중심을 둔 사조였기에 보다 신화와 영웅적인 행동에 집중이 된 경향이 있다. 반면 낭만주의는 '보다 인간적인 감정과 심리, 주제에 담긴 정서적 표현'에 집중하였다 할 수 있다.신고전주의의 직전 사조였던 '로코코 미술'에 대해 '사적인 공간에서 사랑의 꿈에 도취되어 흐느적 거린다'고 비판한 신고전주의 작가들은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분위기의 '인간의 평등 및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였으며 '조국애, 영웅주의, 자기희생정신'등을 예술에 담고자 하였다. 그러나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의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에 보다 '인간적인 감정'을 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예컨데 제리코의 에서 확인 할 수 있듯 역사적 사실을 담는 동시에 그 안에 담긴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있는 그대로 혹은 보다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는 신고전주의 작가인 다비드의 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다비드의 작품에서 보다 중심이 되는 내용이 '신화의 내용, 구도, 형식, 엄중함'이라는 점에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작가들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할 수 있다.이러한 차이는 아카데미가 지닌 억압을 깨고자 한 낭만주의 작가들의 행동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으며 보다 '자연을 숭배하고 풍경을 지향하며 낭만적인 감수성으로 극적인 표현'을 하고자 한 이들의 행보는 '고요하고 정적인 질서'가 지배적이었던 신고전주의의 분위기를 정반대로 걷는 결과를 낳는 동시에 '당대의 진실을 포착하고자 하는' 태도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정리하면 신고전주의는 '보다 엄숙하고 진중하며 신화적이고 영웅적인 것'들을 지향한 반면, 낭만주의는 '보다 감정적이고 활력이 있으며 심리와 감수성'에 중심을 두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작가의 작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신고전주의의 '소묘와 선을 중시하고 붓자국을 내지 않는' 기술과 낭만주의의 '재빠른 화필과 강한 명암을 대조하는' 기술은 보다 객관적이고 신화적인 신고전주의의 지향점과 보다 사실적이고 감정적인 낭만주의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스포츠폭력, 당연시하다가 전염된다.스포츠폭력 근절 토론문- “맞으면서 크는 거죠”; 구시대의 비윤리적 산물로청장년층 세대들이 만약 다시 학교를 간다면 가장 달라졌을 걸 꼽으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수많은 환경들이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함께 따라 바뀌었으나 가장 크게 체감할 수 있는 것은 훈육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맞으면서 훈육을 당하는 방식이 기본적이었다. 사실 필자 역시 어렸을 때 운이 안 좋게 딱 맞으면서 컸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었다. 내 바로 밑 세대부터는 학생 체벌에 대해 전면적인 금지가 이루어져 훈육 방식이 대폭 바뀌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체벌이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았을 때 바로 납득이 되는 건 아니다. 당시에는 학생의 인권 위에 선생의 인권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체벌을 하는 훈육과정에서 어떤 반항을 하는 것 자체가 용인될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면 다소 모순적인 게 한국은 오랜 시기 때부터 교육 과정에서 많은 훈육 방법을 개발했다. 이 때 근대적인 교육 방식이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 시기로 그 때 학생들의 인권을 수호해주지 않는 환경에서 학생들이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렇게 자주 노출된 학생들은 다시 사회의 문화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훈육받은 학생들은 그러한 방법이 자신이 사회화 과정에 거쳤던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당연시하게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맞으면서 크고, 혼나면서 크는 것은 당위성이 있는 명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이 체벌을 하는 과정에서도 죄책감이나 문제점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학습 방식인 폭력을 통한 훈육방식은 결국 꾸준히 사회적 담론을 통해서 문제 제기를 당해왔으며 많은 시민들의 합의 끝에 결국 전폭적으로 금지되었다. 물론 기존에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훈육을 하다가 체벌이 없어진 훈육을 하게 되는 교사 입장에서는 생소하며 불편할 수 있었다. 체벌이 전면 금지된 이후 실제로 인터넷에 체벌 없이 훈육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 종종 게재되곤 하였던 것을 보았을 때 체벌은 우리 삶에서 제법 큰 영향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동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플랫폼에서는 종종 체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식의 동영상이 생산되고는 하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 정부와 교육 기관 등에서는 체벌을 금지하고 폭력을 지양하는 분위기로 재구성하는 등의 노력을 하여 우리 사회를 체벌을 하면서 교육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비윤리적인 구시대의 산물로 취급받게끔 인식을 변화시켰다. 이로 인하여 젊은 세대들은 중장년층에 비하여 체벌에 대해서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체벌 없이도 충분히 훈육할 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믿으며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다. 이것이 바뀐 풍조이며 앞으로도 꾸준히 지향해야 하는 특정점이다. 한편 우리는 뉴스 기사를 보면 종종 ‘스포츠폭력’과 관련된 부분이 보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앞에서는 사회적으로 훈육 과정 중 체벌이 전면 금지된다고 하였는데 다소 모순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스포츠폭력, 과연 정당한가?안타깝게도 스포츠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 고질병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괴상하게도 몸을 통해서 능력 발현이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스포츠 영역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법의 수사망 아래 사각지대에서 계속해서 스포츠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스포츠 폭력은 스포츠 영역에서 스포츠와 관련된 종사자를 대상으로 신체적으로 폭행을 가하거나 특정한 행동을 하게끔 강요하는 것, 그리고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것까지 방대하게 인륜적으로 반하는 행동을 강제적으로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적으로 스포츠 폭력이 계속해서 자행되고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스포츠 폭력 예방 안내를 위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꾸준히 의무적으로 교육을 하는 데에 반해 여전히 스포츠 폭력은 사회면으로 종종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부분이다.스포츠 폭력은 단순히 코치가 선수들에게만 자행하는 것이 아니다. 스포츠 폭력은 권력이 있는 사람이 관계에서 아래에 점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으로 같은 선수들끼리도 일어날 수 있으며 다양한 관계에서 권력의 불평등이 생기는 경우에 발생하곤 한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만 동등한 선수 입장에서도 같은 무리 안에서 서열이 높은 경우 낮은 경우한테 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음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스포츠 폭력은 아직까지 스포츠 분야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져 있다. 아니고서야 이렇게 꾸준히 스포츠 폭력으로 인하여 고발하는 보도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스포츠 폭력에 대해서 스포츠 분야의 종사자들과 제도 수립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이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데에는 우선 앞서 설명한 것처럼 몸으로 스포츠를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너무 당연히 몸으로 체벌 받아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상식 밖의 논리가 기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체벌 받지 않으면 스포츠 역량이 길러지지 않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체벌과 스포츠 역량은 무조건 연관이 있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다. 해외의 체벌이 당연하지 않는 해외 스포츠 분야에서의 유명 스포츠 스타들은 체벌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량을 다한다. 따라서 결코 스포츠 역량은 체벌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체벌이 스포츠 역량을 기르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소 모순적인 말일 수 있다. 스포츠는 말 그대로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수들의 몸에 가지는 가치는 그 값을 함부로 매길 수 없다. 다리가 다친 축구선수는 쉽게 경기를 뛸 수 없는 것처럼 스포츠는 신체적으로 굉장히 큰 영향력을 준다. 또한 선수들 경우에 자칫하면 한 번의 경기에서 자신이 그동안 노력해온 산물을 한 번에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따라서 정신적인 부분에서 관리를 하는 것은 선수들의 당연한 덕목이자 필수적인 역량이다. 따라서 이렇게 다른 직업보다도 신체 및 정신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역량 확인을 할 수 있는 스포츠 부분에서 폭력을 사용해야 그 역량을 제고할 수 있다는 괴상한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스포츠 폭력을 당한 선수가 역량을 기르는 데에 폭력이 효율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은 자신이 과거에 폭력을 당했을 때에 상대방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기 때문에 인지를 못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자신이 그 구조에 이제는 가담하고 있기 때문에 눈치를 못 채는 것일 수도 있다.- 스포츠 폭력, 가만 놔두면 우리 사회로 재생산된다.스포츠 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에 보도되면서 이상한 문화를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신히 수많은 사람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체벌 문화가 한 번씩 발생하는 스포츠 폭력의 부상으로 인하여 다시 용인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해서 사회 아래에 자리 잡게끔 한다. 스포츠 분야에서 폭력과 관련하여 종종 문제점이 발생하다 보니 미래에 스포츠 분야로 진로를 희망하는 세대들이 보았을 때에 폭력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폭력을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연스럽게 자리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폭력을 당한다고 했을 때 이를 거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닌 이를 수긍해버리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다.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에 조직에 들어가서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하였을 때 버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스포츠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특히나 스포츠 영역은 잠깐의 경기로 인하여 자신의 실력이 증명되는 냉정한 세계이기 때문에 종사자 본인이 강력한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그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것 자체가 장벽이 높다. 따라서 한 번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입문하였다는 이유로 부당한 점에 대해서도 무작정 버티려고 하는 풍조도 강하다. 이러한 풍조가 강하기 때문에 더더욱 스포츠 계의 폭력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악랄한 것이다. 개인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일을 다 하려고 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그의 신체 및 정신적으로 우위를 다하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윤리적인가?나아가 스포츠 업계의 폭력이 계속되어 자행될 경우, 힘들게 해서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고통스러운 경우에도 절대 참아야한다는 사회적 풍조를 만들 수 있다. 사회의 풍조는 쉽게 전염된다. 이탈 행위는 더더욱 그렇다. 과거에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랜 기간 체벌을 통한 훈육이 당연시되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려는 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사회가 의식적으로 고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돌려 말하자면 의식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아직까지는 예의주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종종 사회 및 스포츠 면에서 스포츠 폭력으로 인하여 자신이 받은 상처를 토로하는 선수들을 접할 수 있다. 그들의 대단한 기록이 나오기 위해서 당연히 인고해야 하는 부분도 당연히 있다. 이 때 우리는 그 인고를 너무나도 당연한 미덕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쉽게 고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스포츠폭력은 앞에 ‘스포츠’를 붙였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용인되기 때문에 스포츠폭력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자주 있는 사건 정도로 넘겨지는 비극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추가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으로 제도화되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소요했다. 제도 설치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더욱 공공연하게 하여 인지할 수 있다. 스포츠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직장과 같은 생계가 달려있는 부분이다. 스포츠는 더 이상 누군가를 우위에서 누르기 위하여 당연히 전제되어있는 분야가 아니다. 하루빨리 스포츠 영역이 개선되어 모두가 안전하고 평등한 구조에서 그들만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