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ience of good and evil』 서평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셔머는 『Science od good and evil』에서 다양한 도덕과 윤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주된 내용을 다루기 앞서 셔머는 프롤로그에서 도덕과 윤리에 대한 주장을 다룰 때 그 모든 주장들은 잠정이라는 사실을 염두해두고 주장에 대한 의심과 확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 중 몇 가지 주제들에 대한 인상이 남았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태도로 그 주제들에 대한 그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첫 번째로 기억에 남는 주제는 도덕이 진화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최소 3000년 전에 황금률이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황금률은 이전의 조상들의 행동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한다. 그 근거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도덕적인 행동을 보이며 협력과 호혜주의는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하고 유전적 차이가 적은 유인원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인간의 사회를 살펴보면 사회의 크기가 확장됨에 따라 종교에 의해 도덕적 사상과 행동이 성문화되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150명쯤 되면 공식적인 도덕 규율, 분쟁 해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통제하기 위해 종교는 상호 이타주의를 바탕으로 협력과 이타주의를 장려하고 이기심을 억제하는 진화했다는 것이다. 셔머는 황금률과 보편적 인간의 특성을 밝히는 것을 통해 도덕이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었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토대로 도덕이 보편적으로 인류 본성 깊은 곳에 존재한다고 주장한다.우선 이러한 셔머의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수능 공부를 하면서 생활과 윤리, 윤리와 사상을 배우면서 각 철학자들이 주장한 윤리에 대한 주장이 당시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도덕이 내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 이것이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 진화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러한 셔머의 주장에 의문이 드는 점은 과연 정말로 보편적으지하면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속해 있는 사회가 정해준 기준에 맞춰 나가면 겉으로 보았을 때는 사람들의 행동이 교정되고 도덕성이 발전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이 소수가 아닌 다수로 이뤄진다면 그 사회는 도덕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 이기주의 관점에서 볼 때도 도덕이 진화한다는 셔머의 주장은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주제는 윤리적 문제를 대할 때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 지이다. 셔머는 도덕적 절대주의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으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은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하게 분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주의적 태도는 지나치게 편협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도덕적 상대주의는 도덕을 문화적, 개인의 신념에 따라 상대적이거나 조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은 다양한 도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도덕 원칙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그래서 셔머는 도덕적 의사결정에는 여러 관점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절충하자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과학적으로 명백한 증거와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언제나 잠정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셔머는 잠정적 윤리를 제시한다. 이 잠정적 윤리는 도덕 원칙을 잠정적으로 참이라고 결론 지어 대부분의 환경이나 문화권 그리고 사람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고 또 현실적인 문제를 피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이 주제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이 현재 우리 사회에 있어 정말 중요한 태도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서구 문화권과 우리나라를 보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줄여서 PC주의라고 불리는 현상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 무엇인지 도덕적으로 하자가 있는 사람으로 비춰져 버린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PC주의에 대응하는 부류는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끝까지 PC주의자들과 논쟁을 하는 부류, 두 번째는 그들과 생각은 다르지만 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가 비난을 받을까 봐서 아예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지 않는 부류, 마지막은 PC주의자들의 의견에 맞춰 자신도 목소리를 내어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즐기려는 자들이다. 우리나라의 댓글 문화를 보면 세 가지 부류 중 마지막 부류인 PC주의자를 따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신도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이고 첫 번째 부류처럼 논쟁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확인조차 되지 않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의견교류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게 자유가 보장된 것일 테니 말이다. 이렇듯 자신의 의견과 합치되지 않으면 강요하거나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태는 셔머가 소개한 도덕적 절대주의와 같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PC주의 또다른 문제점은 그들의 사상을 은연 중에 미디어에 노출시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만들어지는 미디어나 게임에는 동성애나 성소수자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거나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던 유색 인종을 캐스팅하는 등의 일들이 있다. 동성애나 성소수자 그리고 유색인종을 캐스팅하는 일은 단독적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들을 문제라고 하는 이유는 앞서 밝힌 것처럼 은연중에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개봉한 디즈니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가 있다. 이 영화는 ‘토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버즈’라는 캐릭터에서 파생된 동일한 캐릭터로 진행되는 번외편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가 개봉 후 논란이 된 이유는 영화 속에 동성 간의 키스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동성애가 무슨 문제가 되냐고 할 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질문한 학우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강의를 통해서 이러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질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동안 나를 복제한다고 하면 복제된 대상들이 왜 나를 위해 행동하거나 그 개체와 내가 동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는지 의문이 생겼고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았다.시험기간이나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우스갯소리로 내가 여러 명이 되어서 어떤 개체는 공부를 해주고 어떤 개체는 일을 해주고 어떤 개체는 또다른 무언가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종종하고는 했다. 아마 나와 같은 인식이 대중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복제에 대한 인식이라고 추측해본다. 일반적인 복제에 대한 인식은 같은 개체를 하나 더 만들어 내는 것으로 같은 인격과 자아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인식한다. 아마도 복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위와 같은 이유는 미디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예로 어린 시절 접한 전래 동화 중 자신이 하나 더 생기는 이야기에는 ‘옹고집전’과 ‘손톱 먹은 들쥐’가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본래의 나와 똑같은 존재가 나타나 누가 진짜인지를 두고 다투며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복제된 나는 나와 다른 독립적인 개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익숙하게 접했기 때문에 복제한 개체가 독립적이라는 인식이 없었을 것이다.다른 예시로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루는 복제라는 주제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 내고 그 복제된 나가 중심이 되어 극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으로 각본을 구성하기 때문에 본체와 정체성을 놓고 다투는 플롯을 구성한다. 인간 복제를 다룬 영화에는 ‘아일랜드’가 있다. 이 영화에서 복제된 인간들은 격리된 시설에서 세뇌를 받고 원본인 사람이 필요할 때 장기나 아이를 제공하기 위한 용도로 철저히 관리된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클론을 만드는 회사가 고객들에게 복제된 인간들은 식물인간과 같은 상태여서 고통이나 감정을 못 느낀다고 설명했기 때권리를 가진 인간이다. 3. 인간 클론은 우리 종의 구성원으로서 받아야할 존엄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미디어 속 인간 복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셔머가 제시한 복제의 3원칙과 설명을 통해 복제된 인간이라고 해도 그들은 우리와 같이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독립된 존재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처럼 장기를 복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거나, 동화나 소설 속에서 정체성을 위해 한 명은 사라져야 하는, 마치 서로 마주치면 죽여야만 하는 도플갱어 미신과 같은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한다.그리고 셔머는 도덕주의자들의 이러한 걱정이나 불안감 때문에 복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실험을 통해 결과를 지켜보자고 주장한다. 이 같은 셔머의 주장은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지라도 검토되어야 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1,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과학과 인간의 이성을 맹신했던 계몽주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1,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는 대략 1차 3000만명 2차 5000만~7000만명이다. 이전의 전쟁과는 달리 짧은 시간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던 이유는 과학기술을 통해 개발한 대량 살상 무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핵폭탄이나 생화학 무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개발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며 과학의 발전을 금지하거나 제한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원자력 기술도 방사능이나 핵폭탄과 같은 여전히 많은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원자력을 통해 발생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연구를 이어갔기에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으로 원자력 발전이 등장할 수 있었다. 복제 기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걱정하는 상상 속 문제가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 한 원자력 기술보다 복제 기술은 위험도가 훨씬 낮은 기술이기에 원자력도 연구되고 관리되는 세상에서 복제 기술을 금지할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연구가 진행될수록 발생할 수 있는 위험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형이상학 중간고사 답안?'그것은 무엇인가?(ti esti)' 질문은 학문의 근원적 질문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앞서 '그것이 있는가?(ei esti)'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있는가?(ei esti)'라는 질문은 둘 이상의 존재자와 그 사이의 관계를 전제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질문과 전제가 모순을 일으킨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창조와 같은 것은 비약이다. 비약은 학문으로 취급되지 않으며 이는 학문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다. 따라서 학문은 존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존재론이며 철학은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는 존재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존재자로서의 존재자(on heon)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하였다.??'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는 감각물이라는 주장과 지성을 통해 파악하는 가지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존재는 감각물이기도 하며 가지적인 것이기 때문에 양자 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존재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류와 종차를 합쳐야 하는데 존재는 류도 없도 종차도 없기에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존재는 무(無)가 아닌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파르메니데스는 '존재는 무가 아니다'라는 존재와 무의 대립을 바탕으로 존재를 탐구하였고 존재에 대해 여섯 가지를 주장한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1)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2) 생성과 소멸이 없다, 3) 운동이 없다, 4) 나눌 수 없다, 5) 모든 것은 하나다, 6) 완벽한 존재는 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다(多)와 운동'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존재론이다. 제논은 스승인 파르메니데스의 극단적 존재론을 증명하기 위해 1) 나는 화살의 역설, 2) 이분법의 역설, 3)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 4) 스타디움의 역설을 제시하며 운동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플라톤이 보기에 이 세계는 존재와 무의 대립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고 다와 운동이 있는 세계였기 때문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현실의 사물은 없지 않고 있으며 연속적이고 상대적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그 예로 나는 화살의 역설의 경우 나는 화살은 한 지점에 머물면서 동시에 머무르지 않는데 이는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상계의 사물들은 시공간 속에 존재하기에 상대적이고 연속적이며 생성 소멸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존재론을 세우기 위해서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을 극복해야 했다.?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를 극복할 때 파르메니데스의 사유를 끝까지 밀고 나가 그의 주장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드러나는 딜레마를 변증법을 통해 논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플라톤도 '존재는 무가 아니다'에서 출발한다. 학문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있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없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 그리고 모순을 발생시키는 존재도 무도 아닌 것(연속성)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면 완전한 하나 즉, 진정한 존재(ontos on)가 된다. 완전한 존재는 안과 밖, 내용과 형식의 구별이 없어 들여다 보면 속까지 보이는 절대상으로 드러난다. 플라톤은 이 절대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이데아(idea) 또는 에이도스(eidos)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학문의 기반이자 각 학문이 추구하는 최후의 근거이다.?완전한 존재는 즉자성, 일자성, 존재성 세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안 된다. 이 때문에 하나이지만 세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첫 번째 딜레마가 발생한다. 두 번째 딜레마는 완전한 존재가 무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발생한다. 이데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곳 속에도 없으며 무와 대립하여 무 속에 존재한다. 무 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이데아들은 그들 사이에 간섭이나 방해 없이 존재한다. ?여기서 무를 이해하는 입장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언어와 사유의 입장이다. 무에 대해 생각하고 말은 하지만 그 대상은 없다. 언어와 사유는 모방을 하기 때문에 무 자체는 아니라서 무 자체라는 것은 성립한다. 이는 이데아와 마찬가지로 딜레마가 발생한다. 두 번째는 무 자체의 입장이다. 무는 없는 것이기에 '생각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다'라는 것도 말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무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완전한 무가 없으면 완전한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완전한 존재와 완전한 무가 없으면 경계가 없는 어중간한 무엇인 존재도 무도 아닌 것(apeiron)만이 남는다. 존재도 무도 아닌 것만 남는다면 이 세계는 카오스 상태가 되기에 이 세상은 연결과 구분이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현상을 구제하기 위해 변증법을 통해 경계(peras)가 있음을 밝혀야 했다.?파르메니데스 편 2부에 나오는 변증법이 바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다. 제 1 가정은 타자와의 관계 더 극단으로 나아가 존재와의 관계마저 끊은 완전한 하나를 가정한다. 이렇게 되면 일자는 운동이 없으며 모든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자기동일성도 성립하지 않고 시공간을 벗어났기 때문에 있었다 거나, 있다 거나, 있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일자는 없는 것이 되기에 무의 딜레마와 같은 즉자존재론의 난점에 부딪히게 된다. 제 1 가정과 짝을 이루는 제 4 가정의 경우 일자가 관계를 끊으면 타자들 또한 어떤 성질도 가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제 6 가정과 제 8 가정은 처음부터 일자가 완전히 없음을 전제로 하는데 이 가정들도 앞의 두 가정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가정들의 결과에 따르면 일자는 그 자체의 논리로 인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일자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앞선 가정들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자가 존재하는 경우이다. 일자는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일자로서 존재할 수 있다. 일자는 양적 측면이고 존재는 질적 측면이기에 둘 사이의 관계는 '있는 하나(hen on)'를 이룬다. 있는 하나는 일자와 존재가 연속적이라는 데에 기인하며 수에 있어서 무한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다. 이러한 연속성 때문에 모든 것과 관계할 수 있고 제 1 가정에서 나타난 모든 성질과 관계 맺을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곧 자기동일성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일자의 자기동일성은 존재도 무도 아닌 것(apeiron)에 구분과 단절(peras)를 불러와 학문의 가능성을 확보해주며 인간 인식의 한계가 '있는 일자'까지라는 것을 확인 시켜준다.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신화화된 유토피아에는 스탈린주의가 있다. 스탈린주의는 1920년 후반부터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의 소련 정권의 본질이다. 스탈린주의라는 말은 스탈린 생전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제20차 소련 공산당 전당 대회 이후 경멸적인 의미와 좌익 편향된 개인 또는 정권이 독재적, 임의적, 억압적인 행동양식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스탈린주의의 특징으로는 절대권력이 있다. 스탈린주의는 스탈린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기에 러시아의 역사적 맥락과 볼셰비키 정권이 직면했던 문제들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탈린의 독재는 스탈린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스탈린주의 초기 국면인 1929부터 1933년에 스탈린주의는 위로부터의 혁명을 뜻했다. 위로부터의 혁명의 예로 농업의 집단화와 중공업화 계획이 있다. 전자는 농촌의 저항을 묵살한 결정과 수많은 인적 물적 대가를 치르고 시행되었고 후자의 경우 국가에 사회의 모든 방면이 완전히 복종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 스탈린 이전에도 국가 명령에 대한 절대복종을 요구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그래서 공산당은 스탈린의 의지에 따르는 기구과 되었고 외국 공산당 역시 스탈린이나 그의 참모들의 결정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스탈린주의의 초기 이후 억압은 더 교묘하고 임의적으로 바뀌었다. 볼셰비키 혁명의 주요인물들은 재판에서 소련 정권의 전복, 자본주의 회복과 소련의 해체를 공모하였다고 몰살당했다. 소련 엘리트들은 소련 정권으로부터 많은 특권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특권을 받는 대신 그들이 지불했던 것은 갑작스런 체포, 유배형을 당하는 것 그리고 죽음의 위험이었다.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권력 엘리트의 자리는 자주 공백이 생겼고 공백을 채우기 위해 관료주의적 수직체제의 비정상적인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새롭게 채워진 그 자리도 이전처럼 억압을 받았다. 그러나 1939년까지는 많은 경제, 사회적 발전과 함께 해외에서 보기에 소련의 억압적인 면을 희석시키는 업적이 있었다. 1936년 스탈린 헌법 공표가 그 사례에 속하며 이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대한 소련의 파시즘 반대 관점이다. 1934년에 소련은 국제연맹에 가입하였고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급진주의자, 자유주의자 등 모두가 파시즘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반복되는 파시스트의 공격에 소련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가장 견고한 보루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나치-소련 불가침 조약으로 타격을 받았으나 히틀러가 조약을 어기고 소련을 공격하면서 잊히게 된다. 전쟁에서 승리 이후 스탈린은 소련에 인접한 국가 중에 소련에 우호적인 정권이 설립되길 바랐고 이미 소련에 합병된 폴란드와 발틱 국가들 외에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고 동독에서 스탈린화된 정권들이 나타났다. 전쟁이나 승리의 여파도 스탈린 정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하였고 오히려 지식인과 모호한 사상을 가졌다고 의심이 드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박해하여 지적, 문화적으로 스탈린주의의 정통성을 부여하려 했다. 이러한 억압과 테러는 스탈린 사망 후 후계자들이 정권의 구조를 변경하지는 않았지만, 대중탄압과 테러를 중지하며 끝났다. 스탈린주의는 무비판적,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특징이다. 는 스탈린 시대의 공식적 진리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정치적으로 간략한 요약을 제공하였으며 역사, 경제, 언어학 등의 분야에 관여하여 스탈린과 참모들의 의견은 모든 소련 시민을 구속하는 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스탈린주의의 수많은 독단적 신념이 지적되지만, 그중에서도 일국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가장 큰 비판을 받는다. 스탈린주의는 사회주의적 기초를 유지하고 확대했다는 점과 경제활동 수단을 공동화시켰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계승 또는 응용이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국 사회주의는 강한 민족주의적 함축성을 지니고 있었고 마르크스의 교리대로 국가가 소멸하기 전에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를 전제적인 국가의 종속시켰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모순된다. 이어서 유토피아주의의 문제를 보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유토피아적 접근법은 ‘모든 합리적 행위는 목적이 있어야 하며 행위가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목적에 따라 행위의 수단을 결정하면 된다’로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합리적 행동을 위해 목적을 선택해야 하며 이는 신중하고 중간적인 목적과 구별해야 한다. 실제로 행동에 나서기 전에 궁극적인 정치적 목적 또는 이상국가를 결정해야 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사회공학에 필요한 준비작업이며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점진적 공학에 비판받는다. 점진적 공학은 방법론적으로 건전한 접근법이다. 점진적 공학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제도적인 방법은 없기에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점진적 공학자는 최대의 악과 긴급한 악을 찾고 이에 대항하는 방법을 적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대다수의 인간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조건에 따라 계획을 조정해나갈 수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유토피아적 접근으로 전체 규모의 청사진을 제시할 경우 누구도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점진적 접근은 단일제도에 대한 청사진이기 때문에 판단하기 쉬우며 악용이 된다고 하더라도 재조정하기 쉽다. 점진적 접근 과정에서 개개인의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부딪힐 수는 있지만 타협을 통해 맞춰나갈 수 있다. 반면 유토피아적으로 이상국가를 만드려는 시도는 소수집권적 통치를 요구하는 행위기에 독재로 이어지기 쉽다. 아무리 독재자가 자비로운 존재라고 할지라도 피지배들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기 때문에 그가 내린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 사회의 재건설은 많은 불편함을 불러오는 사업이기에 여러 불평등에 대한 의견을 무시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합리적인 비판도 억압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후계자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의 재건설은 한 세대에서 끝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후계자가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만약 후계자가 동일한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전까지의 희생은 모두 무가치한 것이 된다. 그래서 후계자가 새로운 목적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향방을 바꾸면 사회는 이전과 같은 위험과 희생에 부딪히게 된다. 이처럼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치가 이상과 거리가 먼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a) 언제나 이상이 무엇인지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결정하는 합리적 방법이 있으며 (b)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 확실하게 결정하는 합리적 방법이 있다고 가정하면 플라톤적 신념만이 유토피아적 접근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 목적을 결정하는 합리적 방법은 없고 단지 직관에 불과하기에 (a) 가정은 틀렸다. 따라서 합리적 방법이 없는 유토피아적 접근에서는 이성 대신 폭력을 통해 해결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은 이상이 결코 실현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사회의 재구성은 개인의 제한 경험으로 인해 실제적인 결과를 계산하기 너무 어려우며 너무나 전폭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사회적 실험이 있어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것은 맞지만 유토피아적 공학은 지나치게 대규모적 실험을 강요하기 때문에 결정에 따른 여파가 너무 크다. 반면 점진적 사회 실험의 경우 현실적인 조건하에 소규모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를 혁명화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이런 소규모 실험은 사회의 혼란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실험의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제도와 어떻게 조화되는지 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조정해야 할지 배울 수 있다. 이는 과학적인 방법을 정치에 도입한 것이다. 정치에 있어 플라톤적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마르크스가 유토피아주의를 비판한 것 모두 현실적이기를 요구한다. 마르크스는 유토피아적을 포함한 모든 사회공학을 비난하고 사회란 역사적 법칙에 따라 성장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역사주의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는 플라톤의 사회를 전체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비타협적 급진주의를 부정하지 않아 두 사람은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경하려는 계시적 혁명을 꿈꾸었음을 드러낸다. 이 부분이 유토피아주의가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주체와 유토피아: 우토푸스의 꿈 기말 대체 과제이상향이나 낙원에 대한 생각은 오래전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고 다양한 상상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런 낙원에 대한 희망은 인류 사회에서 집단적,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간된 이후부터 사용되던 용어이다. 그래서 유토피아에 대한 내용은 정확히 말하면 16세기 이후의 내용을 다루는 것이다. 16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적 이상향 구조는 근본적으로 종교, 신화와 결부되어 있어 개인화된 상상보다는 집단적이고 장기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또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단순 부정의 상상들의 산물이다. 반면 16세기 이후의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을 보면 단순 부정의 체계보다는 현실적인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유토피아적 상상이 강화된 것은 그러한 상상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14세기 유럽에는 페스트가 창궐하게 되면서 당시 유럽의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게 된다. 페스트만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페스트를 통해 중세 유럽의 중심이 되었던 종교가 대재앙 앞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게 되면서 기독교의 중심성이 흔들리게 되었다. 중세 봉건제 역시 대량의 인구가 사망하게 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서 시스템의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 사회는 질병으로 인한 죽음뿐만 아니라 생계유지에 대한 불확실로 사회 전체의 불안감과 고통이 커져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과 상상을 하게 되고 그 상상을 강화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간될 때의 시대적 배경은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되었고 종교 개혁이 발생했으며 대항해 시대가 펼쳐지는 변화의 시대였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정치 권력이 부상했고 많은 부를 축적한 인원들이 나타났는데 이들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권력과 부를 욕망하게 되었고 그들새로운 아틀란티스는 보수적인 면모를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가장 늦게 출간한 새로운 아틀란티스가 이전 저작들의 대안보다 후퇴한 인상을 준다. 이 세 작품은 이전의 낙원에 욕망을 넘어서 현실 비판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뛰어난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도 여러가지 한계점을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타당하다고 납득할만 설명이 어려운 부분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높은 도덕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구성원들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법률도 최소화할 수 있지만 실제로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도덕성을 갖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설계의 미흡함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사회의 모델을 과거 플라톤이 제시한 국가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현실 사회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과거에서 대안을 찾려는 시도는 결국 더 나은 사회는 과거 사회의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은 시대 인식을 벗어나지 못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고기를 얻기 위해 노예를 통하여 도축을 하게 하는 점, 태양의 나라는 법을 통해 교만을 처벌하려고 했다는 점, 새로운 아틀란티스는 당시 유럽의 식민지를 정당화했던 편향된 사고가 드러난다는 점 등은 급진적이고 획기적이었던 다른 대안들과는 달리 당시의 사회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 유토피아 저서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꿈꾼지 500년이 지났지만 유토피아의 설계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바뀌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변화는 상당히 더디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16세기에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기반으로 18세기에 들어서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제안이 등장한다. 18세기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고 과학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이전과는 달리 실제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치들을 합리적이고 논리정연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18세기보다 앞선 인물이긴 하지만 홉스와 루소가도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예비조항 이후 확정 조항은 국제적인 평화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제안들이다. 첫 번째 조항을 보면 칸트는 공화정과 민주정을 나누었는데 지금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18세기의 공화정은 지금의 민주주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정치체제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에 공화정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입헌군주제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당대 정치세력이 칸트의 의견을 덜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눈치를 보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조항은 홉스가 전제군주제를 떠올렸던 것처럼 국가 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상위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국가보다 위의 연맹이 있다면 실제로는 국가의 개념이 사라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너무 비약적인 생각이어서 칸트는 그렇게 되기 전에 국제 연맹이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제시한 것이다. 18세기에는 국가 간의 교류가 약탈이나 침략의 형태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지막 세 번째 조항을 제시했다. 적대적인 의도를 가지고 국가 간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고 우호를 바탕으로 교류를 한다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확정 조항 이후 추가 조항들도 있는데 추가 조항에서는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칸트가 제시한 이유는 영원한 평화는 우주의 섭리이자 신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앞선 세 명의 우토푸스들처럼 칸트 역시 시대적인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치적으로 무력함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비밀 조항도 제시한다. 칸트의 이 같은 제안들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미래에는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8세기 또 다른 우토푸스인 윌리엄 고드윈은 칸트와는 다른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혁명 전쟁, 왕정복고가 가능한 범위로 권력을 분산시킨다면 범법행위에 더 밀접하게 대응할 수 있고 전쟁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고드윈은 교육을 중요시하여 일정시간의 노동 이후 여가시간을 보내는 여가시간은 지성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기에 인류는 점점 더 합리적이고 선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이전의 유토피아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높은 도덕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모든 구성원이 도덕적으로 뛰어나기는 어려우며 여가시간에 지성을 발전시킨다는 계획 역시 당대에는 여가시간이 없었기에 생각할 수 있었던 선한 계획이다. 하지만 미래 사회에 대한 그의 낙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현실 사회는 기술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호혜보다는 수탈이 늘어났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어 근대의 유토피아가 꿈꾸었던 이상과는 역설적인 결과에 부딪히게 된다. 18세기 칸트와 에덤스미스는 자본주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근대 사회는 겉으로는 풍요롭지만 내부는 억압적이고 가혹한 시대였다. 표면적으로는 16세기 유토피아가 꿈꾸던 것 중 일부가 실현되는 듯 했지만 절망은 확산되었고 빈곤함 앞에 평등은 명목적인 것에 불과했다. 자본주의로 인한 문제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우토푸스로 초기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주의의 반대개념의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여 근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로버트 오언의 경우 교육과 노동환경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고 샤를 푸리에는 팔랑스테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여 억압적인 사회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또 다른 대안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 생 시몽과 폭력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였던 오귀스트 블랑키가 있었다. 하지만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은 유토피아적인 제안에 가까웠기에 실질적인 사회 문제의 해결보다는 사회주의의 기초를 만드는데 그쳤다. 그래서 실증적이고 분석에 집중한 만들어왔는데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눈에 띄었던 것은 당시 만연해있던 역사 단계에 대한 재해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낭만주의 시대의 통념이었던 '인류의 역사는 발전한다'와 헤겔과 다윈 등의 인물에 영향을 받아 사적 유물론을 제시한다. 그는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부구조보다 기초가 되는 토대 즉, 경제적인 요소가 먼저 바뀌고 통념이나 사상과 같은 정신이 변화하면서 한 시대가 무너지고 다음 시대가 도래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문제가 많은 자본주의는 자기 모순과 자가 당착으로 인해 위기를 겪을 것이고 노동자들이 결집하여 주체적으로 권리를 찾으려 한다면 공산사회의 중간다리인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볼셰비키 혁명에도 영향을 미쳐 현실에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을 등장시켰고 뒤이어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스탈린의 왜곡된 사회주의로 전세계의 사회주의는 약화되었으며 오히려 세상에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스탈린이 소련을 통치하던 시기는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혼란한 시기였다. 당시 소련의 사회주의와 독일의 나치즘은 많은 사회적으로 참혹한 결과들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칼 포퍼는 유토피아 주의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게 된다. 칼 포퍼가 분석한 소련의 사회주의와 독일의 나치즘은 역사주의를 기반에 두고 과학을 통해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정치체제를 종교화 시키는 미신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두고 있는 정치시스템이었다. 역사주의와 미신적인 사고로 20세기는 참혹한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기에 포퍼는 역사주의를 부정하고 유토피아 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퍼는 반증 가능성에 기반한 이론을 제시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반증 가능성에 기반한다는 것은 경험과 관찰에 의해 획득된 진리라고 할지라도 진리는 단번에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줄여나가면서 확보되는 것이다. 이를 사회 문제에도 확대시켜 더 나은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리인지 규정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기반으로 한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라는 표제를 보고 영원한 평화에 대해 정치 이론가의 입장에서 다루고자 한다. 제1장에서는 국가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예비 조항 6가지를 제시한다. 1조항은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어진 어떠한 평화 조약도 결코 평화 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이다. 앞으로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맺어진 평화 조약은 영원한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단지 임시적인 휴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전쟁의 화근을 암암리에 유보하는 행위는 의식된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어도 잘못되었다고 평가한다. 평화 조약을 맺은 후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조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이 체결 당시에는 몰랐다고 할지라도 따져보았을 때 다시 전쟁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는 평화 조약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 전쟁을 한 두 나라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피폐해져서 평화 조약을 맺을 때 심리적으로 유보한 상태로 맺었다면 이는 서로에 대한 그릇된 신의를 바탕으로 맺어진 조약이기 때문에 영원한 평화조약으로 볼 수 없다. 2조항은 “어떠한 독립 국가도 상속, 교환, 매매 혹은 증여에 의해 다른 국가의 소유로 전락될 수 없다.”이다. 칸트가 생각하는 국가는 국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지배를 받지 않는 도덕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사회다. 그렇기에 한 국가를 다른 국가에 합병하는 것은 그 국가의 지위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물건으로 간주하는 인격적 파괴 행위다. 하지만 유럽의 국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국가간의 결혼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잘못을 저질러서 군대를 물건처럼 소모되게 만들었다. 3조항은 “상비군은 완전히 폐지되어야 한다.”이다. 상비군을 유지하게 되면 국가 간의 군비경쟁이 일어나게 되어 군비의 과잉 지출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보다 싼 값을 지불하는 단기간의 전쟁을 선택하게 된다. 또 국가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무기인 재력을 축적하는 것 역시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다. 전쟁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게 이용하는 인권 침해적 행위이기에 칸트는 상비군과 부의 축적을 반대한다. 하지만 타국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정기적인 훈련을 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4조항은 “국가간의 대외적 분쟁과 관련하여 어떠한 국채도 발행되어서는 안된다.”이다. 국내 경제를 위해서 발행되는 국채라면 문제가 없지만 전쟁을 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게 되면 국채가 다른 모든 국가의 재정을 초월한 비용이 된다는 점과 돈을 구하기 쉬워져 전쟁을 하기 쉬워진다는 문제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5조항은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의 체제와 통치에 폭력으로 간섭해서는 안된다.”이다. 한 국가의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무정부 상태에 처해있는 것이 아닌 이상 국가는 자율성을 가지고 있고 국민들도 권리를 시행할 수 있다. 때문에 폭력으로 간섭을 할 경우 한 국가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6조항은 “어떠한 국가도 다른 나라와의 전쟁 동안에 장래의 평화 시기에 상호 신뢰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 틀림없는 다음과 같은 적대 행위, 예컨대 암살자나 독살자의 고용, 항복 조약의 파기, 적국에서의 반역 선동 등을 해서는 안된다.”이다. 암살자를 고용하거나 항복 조약을 파기하는 것은 전쟁 중이라고 해도 서로의 신뢰를 무너트려 평화 조약을 체결할 수 없게 하고 그로 인해 초토화 섬멸전으로 번지게 한다. 그리고 극악무도한 수단은 사용하기 시작하면 전쟁시에만 사용되지 않고 평화시에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어서 영원한 평화를 지속시키지 못한다. 칸트는 이 6가지 조항 중 1, 5, 6조항은 즉각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엄격한 조항이라고 보았고 2, 3, 4조항은 급히 시행하려 하면 추구해오던 목표를 손상시킬 수 있어 사정에 따라서 조항의 목적을 잃지 않는다면 시행을 연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금지 조항은 허용될 수 없는 취득 방식에 적용되는 것이지 법적으로 소유 상태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서 2장에서는 국가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확정 조항 세 가지를 제시한다. 칸트는 자연 상태를 전쟁의 상태로 본다. 적대행위가 지속되지 않더라도 전쟁의 위협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를 정초시키기 위한 첫 번째 확정 조항으로 “모든 국가의 시민적 정치 체제는 공화 정체이어야 한다.”를 제시한다. 공화정은 사회 구성원의 자유의 원리에 의해, 공통된 입법에 의존하는 원리에 의해, 평등의 원리에 의해 확립되기 때문에 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모든 형태의 시민적 헌법의 원초적인 토대를 이룬다. 또 공화정은 전쟁을 시행할 때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에 공화정이 아닌 다른 체제에 비해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어 영원한 평화를 위한 바람직한 전망을 제시한다. 칸트는 공화적 체제와 민주적 체제를 구별한다. 공화제는 대의적이지 않은 통치 방식에 여지를 남겨두는 결함을 가지고 있어도 대의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통치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제는 모든 사람이 지배자이길 원하기 때문에 대의적인 정치가 불가능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적을수록 대의주의를 취하기 쉬우며 대의적인 통치방식은 독단적일 수 없기 때문에 공화제가 완전한 합법적인 체제라고 보았다. 2조항은 “국제법은 자유로운 국가들의 연방 체제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 역시 자연 상태에서는 전쟁 상태에 놓여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공민적 체제와 비슷한 체제에 귀속되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국제 연맹이다. 하지만 국제 연맹이 국제 국가가 될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국가는 상위자와 하위자의 관계로 이루어져있어서 국제 국가가 될 경우 ‘자유로운 국가’라는 조항의 전제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각 국가가 법의 개념에 대해 최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악을 극복할 수 있는 도덕적 성향이 있다고 보아 국제 연맹이 가능하다고 본다. 여러 국가들은 전쟁을 통해 권리를 추구하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권리가 결정되지 않으며 평화 조약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미봉책일 뿐 영원한 평화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각 국가는 자체적으로 내적인 법률 제도가 있어서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평화 상태를 의무로 부과해도 국가간의 계약이 없이는 평화가 정착되거나 보장될 수 없다. 그래서 평화 연맹이라고 하는 특별한 연맹이 존재해야 한다. 평화 연맹은 영원히 모든 전쟁의 종식을 추구하며 국가의 자유를 보호하고 지속시키며 강제력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경우 타 국가들의 자유 역시 보호하고 지속시킨다. 공화국을 형성한 나라가 있으면 이 나라를 중심으로 평화 연맹은 점점 확대되고 연맹에 가입한 국가들은 국제법의 이념에 따라 자유 상태를 확보하여 영원한 평화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국가들은 자연 상태를 포기하고 공법의 규제 맡겨 세계 공화국이라는 국제 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옳은 일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평화 연맹이라는 소극적 대안을 제시한다. 마지막 3조항은 “세계 시민법은 보편적 우호와 조건들에 국한되어야 한다.”이다. 이 조항은 이방인에 대한 권리를 말하고 있다. 우호는 이방인이 낯선 땅에 왔을 때 적이 아닌 손님으로 대우받을 권리를 뜻한다. 인간은 지구 위에서 흩어져 살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지구 표면에 대한 공통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서로 교제한다. 하지만 우호의 권리는 교제를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조건에 국한될 뿐 그 이상은 넘어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호의 방식에 의해 지구상에 멀리 떨어진 국가 간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러한 평화적인 관계는 결국 공법에 의해 확립되어 인류는 세계 시민적 체제에 점차 가까워질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의 문명화된 국가나 상업 국가들은 이러한 평화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닌 방문한 지역의 거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전쟁과 기아, 폭동 등의 죄악을 퍼트렸다. 저러한 문제는 일부 지역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구상의 공동체는 점차 발전되어 한 곳에서의 권리 침해가 타 국가로 전파되기 때문에 세계 시민법은 공상이나 과장된 것이 아닌 공적인 인간의 권리와 영원한 평화 유지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