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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자의 인성론과 의의(대학교과제)
    인성론이란? 사람은 본래 타고난 성품 체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 상태를 해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인성론이 있는데,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 인간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 그리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백지 상태인 성무선악설이 있습니다. 춘추 전국 시대는 굉장한 무질서의 시대였습니다. 군주와 신하들 간의 불신이 팽배했고, 도륙이 심심찮게 일어났으며, 사람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던 시기였습니다. 탐관오리들은 숱하게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어지럽고 무질서의 시대를 바로잡기 위하여 공자가 등장하여 인仁과 의義를 설파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방법적 규율과 가르침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 공자의 후계를 자처한 맹자가 등장하여 그의 사상을 잇게 됩니다.
    인문/어학| 2021.06.27| 5페이지| 1,0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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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철학으로 보는 인간사회(대학교과제)
    1.공자가 세상에 나선 까닭과 배경2.인仁이란 무엇인가?1)정의2)인仁의 필요성과 의의3.인仁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에 적용4.결론1.공자가 세상에 나선 까닭과 배경공자는 인류 역사 4대 성인 중 한 명이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올라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자의 사상 중 핵심은 인仁이다. 인仁은 어떻게 나왔으며 왜 시대를 관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공자의 생애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공자는 대표적으로 흙수저 출신이다. 아직까지도 출생의 배경이 명확하지 않은데, 정말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도 늦게 세상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늦게 나간 덕도 제자 중 상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자로가 돈을 대주었기 때문이었다.보통 공자가 유랑 생활을 했다고 하는 것은 60살을 넘겨서 노나라를 떠나 춘추전국시대를 누비는 것을 일컫는다.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는 온 천하가 어지러웠고 혼란스러웠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인仁과 예가 없기 때문이고 인仁과 예를 따르는 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통치이론으로서 세상의 정세를 회복하고 기강을 세우기 위해 왕으로 하여금 군자君子가 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체계적인 사상(정명正名)을 최초로 제시한 것으로 당시 야만적이고 잔인한 정치 시대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형국을 만들고자 노력한 것이다.그는 세상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제나라,위나라,송나라,채나라 등 자신의 사상을 입혀줄 군주와 기회를 찾아다녔지만 실패하였다. 공자가 정착하지 못했던 것은 각 나라의 왕과 제후들이 공자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노나라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 후 그는 후학을 양성하여 자신의 뜻을 제자들을 통하여 세상 곳곳에 뿌리는데 집중하게 된다.이처럼 그는 자신의 꿈을 이뤄줄 군주를 찾음과 동시에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비록 실패하지만, 그의 사상을 수천 년간 지배하게 된다.2.인仁이란 무엇인가?1)정의그렇다면 그가 주장하는 제1원칙이자 이념인 인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문학적인 인仁을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자가 말하는 정치학적인 정명 사상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다. 앞서 말했지만 공자는 각국의 제후들이 무자비하게 날뛰는 춘추시대에 주나라의 이상적인 질서를 회복하려는 사상가였다. 그는 귀족들의 야만적인 행태를 지적하면서 하나의 질서를 세우는데, 자신의 자리에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 또는 원칙이다. 즉, “왕은 왕으로서 신하를 의롭게 대하고, 신하는 신하로서 왕을 진심으로 보좌해야 한다는 것”. 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이었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었기 때문에 공자는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니까 당시 왕은 왕답게 하지도 않았고 신하는 왕에게 진심으로 보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는 수신제가평천하에 따라 가정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들이면 아들답게 본연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과 애를 쓴다면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물론 수직적인 관계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고 위에서 똑바로 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지탄받아야 한다고 하였다.따라서 인仁은 사람에게 적용한다면, “사람은 사람답게”라는 구호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을 수양하여 도道를 따라 인仁을 행할 수 있다면 성인군자가 될 수 있는 덕목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그런데 공자는 인仁을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한 적은 없다. 다만, 논어를 통해 추리할 수 있는데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싫어할 줄 아는 마음, 상대를 적극적으로 배려하려는 마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상식을 기반으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려는 것이 인仁이다. 이러한 마음은 성인군자가 되기 위한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필수덕목이라고 공자는 이야기 한다.사실 유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으로서는 인仁이 상당히 상식적으로 보이면서도 모호해보인다. 왜냐하면 추상적인 개념이고 돌덩이를 얻어맞는 듯한 깨달음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본인은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려는 과정 또는 그 자체”라고 해석하였다.2)인仁의 필요성과 의의인仁과 예악을 기반으로 하는 당시 유교의 사상은 획기적이었다. 이러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있어도 통치술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대부분 체계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춘추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카오스 시대였는데, 군주와 신하들 간의 배신이 난무하고, 남녀 간의 근친상간과 육체적 쾌락이 절정이었고, 지배층과 탐관오리들이 득실대어 힘없는 백성들이 죽어나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공자의 유교, 즉 인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인仁의 사상을 토대로 정치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가?에 관한 궁금증은 논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데, 공자의 제자인 자공은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공자에게 질문하였는데, “정치란 백성들은 배불리 먹여야 하며,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하며, 민심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중 공자는 민심을 얻는 것이 첫 번째이고,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것이 제일 후순위라고 가르치었다. 이는 당시에 놀라운 주장인데, 춘추시대에는 국방이 제일 1순위였던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언제 다른 제후국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공자는 오히려 국방보다 민심을 우선시했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공자의 제자들은 국방보다 민심을 우선시해라는 이야기는 고개는 끄덕여질지 몰라도 당장 실행시키기는 매우 위험해보였다. 군대와 경제를 버리면서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태도는 상당히 비현실적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말하는 인仁을 가르침받았던 제자들이 오히려 난세에서 군주들을 함부로 배신하고 자리를 차지하는 춘추시대에 더욱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군주를 섬기고 신하된 도리를 다하는 자세는 당시 군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따라서 공자의 행적과 사상을 요약하면 “주나라의 어지러운 질서를 회복해서 자신의 맡은 바 소임에 따라 인仁(사람다움)을 실현하여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에 있었다.3.인仁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에 적용사실 본인은 유학과 공자를 접할 때마다 시시하다는 느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이라 마치 자기계발서에 나올법한 이야기를 어렵게 이야기 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배우기를 좋아하라” “타인을 사랑하라” “어른을 공경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라” “조상을 숭배하라”와 같은 논어의 구절들은 지엽적인 어른의 잔소리처럼 들린다.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우리는 인성과 예절에 대해서 교육받는 것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러나 공자의 사상은 현실에 적용시킬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중학교 때 도덕시험에서 우리 모두 고득점을 받지만 실제로 사회생활이나 가정에서 고득점을 맞는다고 볼 수 있을까? 가장 경악스러웠던 것은 최근의 N번방 사건이다. 이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끔찍할 정도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자화상을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면 전문가의 소견에 따르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남성들이 미성년이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우월감과 정복감을 느끼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단순 재미로 그랬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랬다고 하기에는 굉장히 끔찍하다. 이는 공자의 정명사상으로 볼 때 매우 어지러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인仁과 예禮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람은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N번방 사건의 주도범과 가해자들은 모두 무지의 소치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타인을 ‘도구’로서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고 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인문/어학| 2021.06.27| 4페이지| 1,000원| 조회(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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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자철학과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대학교과제)
    1.빨리빨리 문화1)역사적 배경2)장·단점3)빨리빨리 문화와 장자의 사상2.내가 얻은 장자의 사상과 가르침1.빨리빨리 문화1)역사적 배경제가 생각하는 한국의 가장 독특한 문화는 빨리빨리 문화입니다. 대한민국은 뭐든지 느린게 없는 속도의 나라입니다. 일하는 속도, 밥먹는 속도, 걷는 속도, 운전하는 속도, 인터넷 보급 속도 등 모든 면에서 느린 것이 없을 정도로 빠른 나라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보급조차 되지 않은 4G기가 인터넷이, 한국은 5G기가 광역속도 인터넷이 나오고 있습니다.왜 이렇게 빨리빨리 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합니다.Ⅰ. 국난극복과 전쟁6.25남북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민족의 역동성이 빨라졌다는 주장입니다. 전쟁과 고초를 겪게 되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움직임을 빨리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은 한창 경제 발전이 이뤄지던 와중에 서양인들로부터 “느려터진 일본인들” 이라며 조롱받는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조선인들을 교육시키고 수탈하면서 그대로 똑같이 자행된 것입니다.또한, 6.25전쟁은 3년 동안 한반도에서 국제적으로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소련과 미국의 치열한 이데올로기, 김일성의 적화 통일의지로 촉발되었으나 인명과 영토 싸움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은 각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한강 다리를 끊고 도피하였고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부산으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부산에 워낙에 말투가 공격적이고 날선 이유는 이때를 기점으로 대폭 증가했기 때문입니다.Ⅱ. 산업화 시대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온 국토가 황폐화되고, 6.25전쟁을 겪으며 한반도는 완전한 제로 그라운드로 빠지게 됩니다. 즉,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 돌입한 것입니다. 이때 쿠데타를 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은 박정희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뒤처지고, 자원은 없으며,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노동력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살고 싶어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미 앞서있는 다른 선진국들을 따라잡으려면, 밤낮없이 자지 않고 일하고 빠르게 따라잡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당시 전세계 가장 호황을 누렸던 업종은 지금처럼 서비스업이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사업이 아닌, 제조업,건설업,조선업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 시장이 기지개를 필 때였습니다. 이러한 업종에서 앞서 나가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있어야겠지만 매일 일하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예컨대 일본 기업이 설탕을 100g에 100원에 팔 때, 우리나라의 제일제당은 100g에 40원에 내놓는 파격적 전략으로 맞섰으며, 이러한 전략에는 값싸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조선업체보다 훨씬 빨리 수주를 내어주고,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놓는 현대의 전략은 엄청난 외화를 불러들이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한국이 빨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처럼 다른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지난 선진국들이 100년~200년동안 앞서나가 있는 것을 따라잡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때, 소수 업종에 일을 집중시키고 산업을 부흥시키면서 가장 우두머리격의 회사가 독촉을 하면 하청 중소 기업들도 빠르게 움직였던 것입니다.2)장·단점오늘날의 젊은이들도 이전 산업화 시대를 겪었던 세대들이 구축해 놓은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게 되면서 이제 이러한 속도의 문화는 한국의 고유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속도의 문화는 강력한 장점과 피곤한 단점을 가지기 마련입니다.우선 택배 배송을 보면 정말 빠른 시간 안에 배송이 됩니다. 요새는 웬만한 지역에서는 하루만에 배송을 받을 수 있으며 오지라도 일주일이 채 넘어가지 않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을 경우 배송기사들은 다른 기사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이며, 회사에는 클레임 전화로 업무가 마비가 됩니다. 수리 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서는 전자 기기를 고장내어 수리를 맡겼을 경우 최소 2주에서 한달 정도 걸리는데 비해, 한국은 다음날에 완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또한, 이번에 가장 크게 느꼈던 편리함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의료 시스템에도 빨리빨리 문화가 적용되어, 미국보다 10배 이상 많은 사람들을 검사할 수 있게 되었고, 조기에 방역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신속하게 많은 인원을 검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한국이 시초가 된 ‘드라이브 스루’가 탄생하여 전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TV비정상회담에 나온 외국인들이나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어쩔 때는 당황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생각을 하고 주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사람들은 앉자마자 종업원이 와서 “무슨 메뉴 하시겠어요?”라더라는 것입니다.여유가 없어보여 슬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보아도 ‘한국인들이 왜이리 쫒겨사는 것일까? 빠르다 못해 급박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쿠팡에서 일하는 배송 기사를 ‘쿠팡맨’이라고 부르는데 작년에도 사망자가 나왔으며, 이유는 과로와 빨리 배송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어난 사고라는 것입니다. 쿠팡과 같은 유니콘 기업들은 경쟁사 마켓컬리를 대항하기 위해 어떻게든 빨리 배송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비극을 낳게 된 것입니다.3)빨리빨리 문화와 장자의 사상대부분의 한국인들도 편리하지만, 약간 씩은 공감하기 때문에 이러한 단점들을 메우고 장점을 누리려면 현인의 사상과 지혜를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인상깊게 본 사상가는 바로 제자백가 시절의 장자莊子입니다.장자는 제가 아는 철학자 중 가장 유연하게 삶을 산 사람입니다. 장자의 철학은 노자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약간은 오묘합니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속도의 시대 아래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도움되는 일화가 몇가지 있습니다.어느날 ‘지리’라는 사람은 턱이 배꼽 아래 있고 어깨가 머리보다 높고, 오장육부는 턱 쪽에 붙어 있고 다리가 옆구리에 있었다. 그런데 바느질을 하여 입에 풀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또, 키질을 하여 쌀을 불려 열 식구를 먹이는데 충분했다.군인들을 징집하더라도 지리는 팔을 휘저으며 그곳을 노닐 수 있었다. 큰 부역이 있다 하더라도 지리는 언제나 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에 끌려가지 않았다. 불구자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줄 적에는 세 종의 곡식과 열 다발의 땔감을 받았다. 그의 형체가 불완전한 사람은 자신을 충분히 보양할 수 있었고, 그가 타고난 목숨대로 다 살 수 있는 것이다.불구자를 보면 대게 일반인들은 딱하다며 혀를 끌끌 찰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지리를 예로 들면서 몸이 엉킨 불구이기 때문에 부역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나라에서 먹을 것을 줄 때에도 불구라 넉넉하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긍정적으로 낙천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딱히 괴로울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빨리 살아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굳이 빠를 필요 없이 느리게 가도,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택배가 느리게 온다고 하여도, 파손되지 않고 오면 그만인 것이고, 또 느리게 오면 그 사이에 다른 좋지 않은 후기를 보고 변심하여 환불할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장자의 처가 죽자 혜시가 초상하러 왔다. 장자는 그 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동이를 두드리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를 본 혜시가 말하기를,"부인과 한평생 같이 살아왔고 자식을 기르고 같이 늙지 않았는가? 그런데 부인이 죽었는데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까지 부르고 있으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장자가 말하기를,"그렇지 않네. 그녀가 처음 죽었을 때에야 나라고 어찌 슬픈 느낌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전을 돌이켜 보니 본래 삶이 없었던 것이고,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형체조차도 없었던 것이었네. 그리고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운조차고 없었던 것이었네. 흐리멍텅한 사이에 섞여 있었으나 그것이 변화하여 기운이 있게 되었고, 기운이 변화하여 형체가 있게 되었고, 형체가 변화하여 삶이 있었던 것이네. 지금은 그녀가 변화하여 죽어간 것이야. 이것은 봄, 가을과 겨울, 여름의 사철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변화였던 것이네. 그녀는 하늘과 땅이란 거대한 방 속에서 편안히 잠들고 있는 것일세. 그런데도 내가 엉엉 하며 그의 죽음을 따라서 곡을 한다면 스스로 운명에 통달하지 못한 일이라 생각되기에 곡을 그쳤던 것이네."현대인이라면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통곡하며 슬퍼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화병에 걸리며, 사기를 당하면 화를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정 반대로 행동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본래 형체가 없었던 것이므로 변화하는 객체라고 생각한다면 전혀 슬퍼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점과 시각을 바꾸어 괴롭지 않게 살려고 하는 장자의 철학은 매우 유익합니다.장자의 철학은 노자에서 출발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노자는 거시적인 면, 즉 정치철학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면, 장자의 철학은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자의 사상은 무엇을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세우지 말고 ‘도’에 기초하여 본연의 자연적인 길을 따라 산다면 모든 것이 순박하고 아름답게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처럼 백성들이 ‘무위’의 상태로 이끌어 혼란을 사라지게 하고 모두 본연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자의 사상을 차용할 수 있다면, 백성들의 ‘불행한 마음을 제거하고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게 하는 철학이 장자의 철학인 것입니다.
    인문/어학| 2021.06.27| 5페이지| 1,000원| 조회(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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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수처와 검찰개혁에 관하여(대학교과제) 평가A+최고예요
    1.공수처의 정의2.사법개혁과 권력다툼3.사법?검찰개혁과 공수처의 시대 과제4.검찰과 공수처, 검찰과 경찰의 포지셔닝5.경찰의 역할과 권력 분산6.결론: “사법과 검찰개혁은 정치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서 현실의 국민들의 인권을 개혁해야합니다.”1.공수처의 정의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자신의 대선 공약에서 “모든 권력은 오로지 국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주는 준엄한 권리이다. ”라며 공수처의 필요성에 대하여 강력히 언급하였습니다.공수처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고위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비리들을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한 기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위공직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대법원장과 대법관,판사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며,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가진 대통령,국회의원,헌법재판소장 등은 수사권만을 가집니다. 그 외에도 금융감독원,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족에게도 수사권을 적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사실 공수처에 대한 청원은 옛날 공수처 법안이 가결되기 전, 청와대 청원이 30만명이 넘었습니다. 이것은 국민들의 공수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사법개혁, 권력기관의 개혁을 위하여 독립적인 기관을 설립해서 권력자를 수사하자는 것입니다.2.사법?검찰개혁과 권력다툼공수처란 새로운 국가기관을 만드는 것이라, 입법이 필요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가결되어 준비에 들어갔지만, 그 통과되기 전 이전에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야당과 여당의 권력 다툼이 원인이었습니다.다시 말해 공수처는 하루아침에 나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20년이 넘게 올라왔던 과제입니다. 가장 공식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준비했다고 합니다. 또한 참여정부 시대에 17대 국회에서도 특검, 공수처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으나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야권의 반발로 무산된 것이 아니라, 당시 기득권 세력들이 모두 반대했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자신의 권력와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거세개 반대하였고, 이해관계에 물려있던 보수 언론과 정당들은 모두 반대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요지는 “공수처를 청와대가 점령하여 야당을 탄압할 것이다.”가 반대 진영의 주요 논리인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국민의 힘 의원들이 아직도 주장한 것이기도 합니다.그러나 공수처 구성원을 대통령과 대법원장, 야당과 여당에서 각각 할당량만큼 임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수처장을 야당에서도 임명할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반대할 권리가 있고, 야당도 인정한 합의된 한 사람이 공수처장으로 됩니다. 이것은 공수처가 중립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이 부각되고 더 발전한다면 공수처가 정치적 탄압 기구로 오염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3.사법?검찰개혁과 공수처의 시대 과제공수처에 대한 필요성은 거두절미하고 검찰이 고위공직자들의 수사를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사실 고위공지자에 관하여 현존하는 검찰이 수사를 못하고 기소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권한이 있으나, 제5공화국 이후 행정부 소속 아래의 검찰로서 개편된 이래로 수많은 편법,탈법,불법을 저질러 왔었습니다.‘스폰서 검사’,‘성상납 검사’,‘그랜져 검사’ 등 고위공직자들의 수사를 해야 함에도 그들의 인맥과 이해관계가 충돌될 때 무시하고 넘어가버린 사건들이 매우 많습니다. 또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성접대 사건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덮어졌었습니다. 지금은 처벌이 진행되고 있지만, 처음에는 지지부진하게 넘어갔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검찰 출신의 범죄에 대해서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묵과하고 넘어간 것입니다. 경찰이 수사해도 검찰이 영장신청을 받아주지 않았고, 수사권이 검찰에 있기 때문에 수사권 종료를 선언하면 그 누구도 검찰의 잘못에 대하여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게 됩니다.여기에 관해서 검사의 범죄에 관해서 검찰의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의심을 가진 것입니다. 검사의 범죄건, 검사 외에 고위공직자들의 범죄 모두를 포괄하여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공수처가 개혁을 제대로 못하거나, 공수처가 다시 무산될 경우 다시 검사의 마음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검찰의 권력이 매우 막강합니다. 그 지표가 나와 있는데 검찰의 권력은 OECD 1위라고 암묵적으로 평가받습니다. 왜냐하면 기소 여부 판단권과 헌법상 영장청구권도 유일하게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소권과 기소편의주의 등, 경찰의 수사를 지휘할 수도 있으며, 경찰의 수사권을 자기가 가져와서 뺏어와서 수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권력이 매우 막강하기 때문에 정치권력, 경제권력이 검찰과 유착해서 범죄들이 무마되었습니다. 즉, 공수처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그런데 이러한 반박이 있었습니다. 공수처 말고도 특별감찰관을 설치해서 검찰을 견제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권의 반박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재 와서 그다지 많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특별감찰관은 청와대 실장과 비서, 참모들만 조사 대상입니다. 다른 공직자들을 기소할 수 없습니다. 또한 감찰관이기에 감찰만 하기 때문에 처벌할 수가 없고, 수사권을 검찰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래서 고위공직자에 관한 권력범죄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기대를 현재 청와대가 공수처에 믿고 있는 것입니다.4.검찰과 공수처, 검찰과 경찰의 포지셔닝검찰과 공수처는 서로 상호보완하고 견제하는 관계입니다. 공수처는 국회 입법안을 보면 검찰 출신을 그 구성원 비율의 1/2로 매기고 있습니다. 나중 공수처 법안이 더 발전되고 다시 수정되면, 그 구성원 비율을 더 규제를 강화하여 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검찰과 공수처가 서로 유착되어 비리를 감추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또한 퇴직 3년 미만인 전직 검사는 공수처장으로 임명이 완전히 불가하며, 퇴직 1년 미만인 전직검사도 공수처 차장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 또한 공수처장이 검찰과의 유착을 막기 위한 규제입니다. 그 구성원들은 변호사, 법학자, 판사 출신 등 굉장히 다양한 출신들이 모여들게 될 것입니다.사실 청와대는 이러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위하여 법학자 서울대 교수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였고, 윤석열 서울지검장을 총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와 윤석열 총장의 조국에 대한 부패에 가능성에 대한 의심, 조국 개인사의 부정 등이 휘말려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의 근본적인 과제가 퇴색되고, 번잡한 것들에 휘말려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향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원인도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들은 검찰에 대한 개혁과 사법 개혁을 여전히 필요성을 느낀다고, 리얼미터 조사에서 67% 이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별적으로 보아야 할 사안이라고 다수의 국민들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정치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나치게 강한 검찰의 권력을 누그러뜨리는데 동감합니다. 이번 기회에 조사하면서 굉장히 많은 권력을 검사가 독점해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이회창 보수진영의 대권후보가 주장한 것처럼 어찌보면 국민 인권이 달린 문제이기도 합니다.“국민의 인권을 말살하면서 수사를 하고 처벌해야 하는가? 검찰에게 왜 그렇게 많은 권력을 주었는가?”에 관한 의문점은 계속해서 달게 될 것입니다.그렇다면 경찰은 어떤 포지션을 찾게 될 것인가? 지금은 검사가 모든 사건에 관하여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습니다. 즉, 상사와 부하의 관계로서 경찰이 수사하는 것을 빼앗아 올 수 있고, 검사는 경찰에게 지휘,지시,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포지션을 새롭게 바꾸어 경찰이 수사할만한 것은 경찰이 하고, 검사가 할만한 사건은 검사가 하자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검사가 너무나 많은 업무량을 짊어지면서 그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검사가 일괄 지시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미국과 영국처럼 경찰과 검사는 서로 의논,보완,상호존중하면서 기소하고 독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권력 다툼으로 인하여 지금 화두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검사가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을 경찰에게 주고 경찰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경찰에게 일을 제대로 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경찰과 검사가 합의하고 토론하면서 사건을 기소하고 수사합니다. 그러나 한국은 검사가 일방적으로 경찰에게 지시하는 형태입니다.따라서 한국 경찰은 완전히 검사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고, 검사는 계속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권력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 권력의 속성인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경찰은 대한민국의 민생,경제,금융,정치 범죄에 관해서 95% 이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현행법으로 경찰이 담당하는 것을 다시 회부하여 수사할 수 있고, 경찰이 수사해서 기소유예라고 처분했던 것을 다시 테이블로 끌고와 기소를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검사가 독점하고 있는 권력입니다.
    사회과학| 2021.06.27| 4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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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철학과 나의 이해(대학교과제)
    1.노자 철학 탐구2.내가 이해한 노자의 사상1.노자 철학에 대하여는 중국 고전 책으로, 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는 종래 공자,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은 북방의 대표적인 학파이며, 노자,장자의 도가 사상은 남방을 대표하는 학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노자는 한 학파에서 누구나 원조격 창시자가 숭상받는 것과 같이, 그는 신선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노자의 가르침이 시대를 관통하여 오랫동안 읽혀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동양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 서양에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유명한 인물은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노자’라는 인물이 실재 인물인지, 초간본 는 진본인건지, 간추린 간본인건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혹은 은 여러 인물들의 개작 작업을 거쳐서, 판본으로 틀이 잡힌 뒤, 다시 시간이 지나서 정비 작업이 더해져 완비된 형태가 현재 판본이라는 것입니다.이러한 의 최초의 공식 기록은 사마천이 쓴 의 [노자신한열전]에 나옵니다. 여기 출처에 따르면, 공자와 노자의 담화, 노자가 도와 덕을 닦았다는 일화, 노자의 일생, 군자에 관한 이야기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마천도 의 초간본 원본을 보지 않고 쓴 것으로, 가 출토되면서 다음의 추측들을 결론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1)공자가 예를 물었다는 노담은 초간본 를 저술한 사람이다.(2)초간본 를 저술한 노담은 도가의 선구자로 춘추시대 말기 인물이다.(3)추후에 를 저술한 태사담은 노담 사후 100년 시대의 사람으로, 시간차가 100년이나 차이난다. 이후의 기록이 사마천의 노담의 자손을 기록한 태사담 후손들의 내용이라고 봐야 한다.이 대목들 중 핵심은 는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만들어진 책으로 여러 형태로 각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 내용에 있는 전부를 노자가 직접 말한 것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따라서 에는 여러 종류의 판본들이 있고 사람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게 나뉜다. 사실 이처럼 많은 내용과 또 노담이 쓴 이후 기간 동안 비어있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곽점죽간]이 메꿔주긴 하지만, 이것이 출토되기 전에 가장 의미있던 자료들이 있습니다.하나는 왕필의 입니다. 현재까지도 가장 훌륭한 판본이라고 인정받고 있으며, 청나라 이후에는 읽기의 기본 교재로 정착됩니다. 또한 작자 미상이지만 한나라 시대에 어느 선비가 쓴 가 있습니다. 그 다음 노자를 매우 신격화한 이융기가 만든 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백서본 가 있습니다. 백서란, 비단에 글을 쓴 책이란 것으로 처음에는 학자들이 시큰둥하게 여겼던 자료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태사담의 1차 개작본(금본에 가까운 것)을 다시 개작한 것으로 상당한 의미를 가집니다. 처음에 학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이유는 내용이 부실한 것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색될 때, 책 속의 글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달랐기에 순서가 섞여 있어 고증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에 정밀한 연구로 이 책의 중요성이 알려지게 됩니다.백서본 가 출토되고 나서, 20년 뒤인 1993년 8월 중국 호북성 곽점촌의 초나라 무덤에서 죽간으로 된 가 출토되었습니다. 이것은 백서본 보다 2세기 가까이 연대를 소급할 수 있는 것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통행본 와 비교할 때 저자 및 저술 시기가 다르고, 내용이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분은 비슷한 구절도 있었으나 분량과 장,절에서 순서의 차이도 보였기 때문에 노자와 도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연구 방향을 크게 바꿀 수 밖에 없었습니다.이는 중국학계와 물론 한국에서도 놀라움을 안겨주었습니다. 김충렬은 초간본 곽점죽간에 대하여 “학계에 경천동지할 만큼의 충격을 준 대사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속적인 발굴이 이루어졌고, 공자와 맹자로 이어지는 그 사이의 공백 기간을 메꿀 수 있는 내용도 발견하게 됩니다.곽점죽간이 발견 된 이곳의 묘지는 몇 차례 도굴된 적이 있었지만 내장물에 큰 손실은 없었습니다. 이 안의 부장품을 통해 추측핸 본 바에 따르면, 태자의 스승으로 학문 교육을 담당한 큰 학자였습니다. 그가 높은 학자였기 때문에 대량의 학술자료가 나올 수 있었고 동궁의 스승이라서 당대 최고의 자료들을 갖고 있지 않았나 추론할 수 있습니다. 옛 초나라 시대의 땅에 고적들이 대량으로 발견된 이유는 노자와 공자가 살던 기원전 500년대, 당시의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주나라의 왕이 죽음에 따라 왕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가담했던 관리와 학자들이 왕실에 있던 많은 책을 가지고 초나라로 도망간 일이 있었습니다. 주나라 학자들의 대이동으로 오늘날 초나라의 땅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호북성에서 더 많은 학술서적과 유물들이 발견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죽간에서 출토된 서적들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이 추리하기에 문제가 크게 없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나름의 기호를 붙여서 문장과 문장을 구분하고 내용을 읽어나가는데 가독성이 편리하게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는 앞의 구절이나 행이 중복됨을 표시합니다. “-”은 하나의 유사한 장과 절 가운데 같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줍니다. “■”은 장의 끝마침을 표시합니다. “∫”은 한 편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표시 기호들은 이전의 통행본 의 장과 절의 잘못된 구분을 판별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특히 통행본 와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납니다. 분량부터가 통행본 가 훨씬 많은데(초간본 가 통행본의 2/5), 이는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면서 개작하는 과정을 거쳤고, 상호 모순되는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고증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초간본 는 장과 절, 특히 많은 장 속에서 그 문장 내용 연결이 통행본보다 훨씬 훌륭하며 모순되는 것도 적습니다. 순서 또한 매우 다른데, 초간본에서 갑->을->병으로 이어지는 차례가, 통행본에서는 19장에 나오는가 하면 초간본 병의 내용이 17장에 나오기도 합니다.통행본과 곽점 죽간으로 미루어 보건대, 노담은 실존인물로 보아야 합니다. 사료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노자’가 말 그대로 늙은 선생을 의미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노담은 기원전 571년 이전의 하남성 녹읍현 출생이며, 공자가 방문했을 때, 그에게 예禮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는 것도 사실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맹목적으로 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를 노자의 사상과 통행본 는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마천은 죽간을 보지 못했고, 이후 태사담의 기술을 근거로 기록하였으며, 왕필본과 백서본 또한 태사담이 개작한 를 바탕으로 작성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가장 중요한 자료인 초간본 즉, 곽점 죽간은 의 뿌리와 연결고리를 설명할 수 있으며 현재 발견된 고증된 자료 중에서 노담의 사상을 가장 순수하면서 투명하게 (그가 적었든 제자가 적었던) 노장 사상의 뼈대를 설명하는데 훌륭한 자료가 됩니다. 다만 이것이 아직 원본으로 간주해야 할지는 조심스럽고 성급한 면이 있으므로 ‘고본’으로 지칭합니다.공자와 함께 노자의 사상과 말은 혼란기였던 전국시대에서 반드시 필요한 그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의의를 가진 고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2.내가 이해한 노자의 사상제가 지난 강의를 9주차 가량 수강하면서 가장 뭉클하게 느꼈던 노자의 사상은 이 세상을 이해하는 원리, 하나의 시각에 있습니다. 노담이 살았던 그 시대는 엄청난 혼돈기였습니다. 여기저기 나라가 생기고 파멸하고, 제후가 신하에게 뒤통수를 맞고, 다시 나라가 재정비되어 전쟁을 벌이는 등 끊임없이 혼돈이 이어지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 공자와 노자가 등장했던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자는 “인仁을 중심으로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자기 자리에서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면 질서는 정비되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유교의 정신이 됩니다. 그러나 노자는 이와 상당히 결이 다릅니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작위적으로 하려 하지 말고 본질, 순수한 원칙을 따라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노자}의 제13장 텅 빔을 이루는 것이 지극하고 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텅 비어있음’과 ‘근원으로 돌아감’을 말합니다. “모든 존재가 각기 자기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성찰해보아야 한다, 즉, 하늘의 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돌고 도는 것이다. 그래서 만물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이는 노장 사상의 핵심을 엿들을 수 있습니다. 이게 처음에 들었을 때 뭔소린가 싶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노자는 본질적이고 순수한 진리를 ‘도道’라고 지칭합니다. 사실 도라는 글자에 매몰될 필요가 없습니다. 노자는 자기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상을 간결하게 표현했을 따름입니다. 물론 그 내용은 간결하지 않습니다. 노자 본인도 도를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오묘하고 심오하여 잘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우주와 자연이 도라는 만물을 움직이는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사람은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지말고 어떠한 기준도 세울 필요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태어난 그대로 살아간다면 세상이 순박하게 평화로워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문/어학| 2021.06.27| 5페이지| 1,000원| 조회(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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