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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철학
    11월 3, 4일비스마르크와 유럽의 재편1. 제국주의의 발현과 비스마르크체제제국주의의 전개· 1871년 독일 통일 이전의 유럽- 프랑스 혁명 때문에 비롯된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유향 속에 빈체제를 통한 유럽대륙의 국가 간의 힘의 균형(BOP)을 위한 진통기· 독일 통일 이후의 유럽- 독일이라는 절대적으로 우세한 세력에 의해 비교적 안정과 평화를 유지한 시기- 한편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인 독점자본과 산업 발전은 과잉 생산에 다른 이윤 감소를 초래하며 장기적인 대불황이 시작되었고- 각 열강은 안정된 시장과 자원, 자본 투자 대상을 독점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제국주의 시대가 본격화통일 전후의 독일 정치경제 구조 비교· 통일 이전- 경제적으로는 농업 국가- 정치적으로는 프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연방조직으로 분권적 형태· 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프랑스로부터 50억 프랑의 보불전쟁 배상금과 알사스와 로렌이라는 공업지대를 확보, 이를 통해 방적, 철강 산업이 발전하며 공업 국가로 발돋움- 정치적으로, 연방정부가 집권적 정치조직을 지님으로써 통일성을 가하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의 신장으로 유럽의 강자로 등극비스마르크의 등장과 독일의 외교적 목표비스마르크 :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1815.4.1.~1898.7.30· 유럽정치 질서의 현상유지와 프랑스 고립- 프러시아의 토지 귀족 출신으로 1847년 프로이센 의회 의원에 당선- 185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독일연방의회에 프로이센 대표로 참석- 이때부터 독일 통일을 위해서는 ‘오스트리아를 배제해야 한다.’는 ‘소(小)독일주의’ 통일관을 주장- 러시아 및 프랑스 주재 대사를 역임하며 외교 감각을 지닌 정치이므로 성장- 1862년 빌헬름 1세의 지명으로 총리에 취임했고, 첫 연설에서 군비 확장을 주장한 으로 큰 반향을 일으킴-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비를 확장, 오스트리아 및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해 통일 독일 제국 수립에 기여- 1871~1890년 독일 제하기 위해선 얘네 말을 들어줘야 하므로 1의 중립을 들어준 건 거의 전쟁을 허락해준 거야. 대신에 독일 입장에서는 전쟁이 확대되길 원치 않음· 러시아는 영토 확장 의지가 강하기에 삼제협상을 통해 다른 국가를 묶어놓음. 독일은 일정한 갈등, 전쟁은 허용하되 유럽의 국제질서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은 원치 않아 확대는 안된다 함· 1차와 2차의 차이점- 1차, 독러 = 작위적 책무. 한 국가가 공격을 받을 경우 다른 국가가 지원해줌- 서로가 서로에게 방어적 협력을 함, 협정에 가입함으로써 책무를 줌- 2차 = 책무가 주어지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립의 책무를 줌· 2차 삼제협상의 영향 및 의의- 독일은 프랑스 고립과 유럽질서의 현상유지라는 목표를 재달성- 러시아는 발칸에서의 일부 이익(불가리아 등 합병)과 영국과의 전쟁 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중립을 확보- 오스트리아도 이태리와의 전쟁 시 최소한 러시아의 중립은 확보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병합을 재확인- 1887.6.18. 독, 러가 오스트리아를 빼고 양국 간에 독·러 재보장조약을 체결· 3국 동맹- 독일 + 오스트리아 + 이태리의 동맹으로 1882년 체결, 1887, 1891, 1902, 1912년에 조금씩 수정되며 연장됨- 내용 : “체약국은 다른 체약국에 적대하는 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으며, 어느 일국이 프랑스의 공격을 받으면 이를 지원하고, 공동전쟁 시 단독강화를 금지”1. 체약국은 다른 체약국에 적대하는 동맹에 가입하지 않는다 ? 우리끼리만 협력한다2. 프랑스의 공격을 받으면 이를 지원한다 ? 프랑스를 적으로 하고, 방어조약3. 공동전쟁 시 단독강화를 금지 ? 세 나라가 협력해서 전쟁한다면, 어떠한 이유에도 배신을 하면 안 된다.① 독일 : 이탈리아를 가입시킴으로써 프랑스에 대항하는 동맹을 강화② 오스트리아 : 이태리와의 관계악화나 전쟁을 방지하는 데에 역점을 둠③ 이태리 : 프랑스와의 갈등 (보불전쟁에서 교황청이 속한 로마를 이태리에 편입시켜 프랑스와 관계가 악화)에 대한 지원이 필요왜 3국 동, 서쪽에선 프랑스와 전쟁을 할 가능성 우려-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영·일에 밀리고 발칸으로 진출방향을 돌리는 경우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 분쟁을 유발하고 이에 따라 독일이 발칸 문제에 말려들 상황을 우려하여 영국의 1998년 제의를 거부→ 1901년 의화단 사견을 계기로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하자 영국은 2차 대동맹제의, 그러나 독일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동시에 독일의 세계전략 추진에 있어 영국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해 이를 거부→ 결국 영국은 일본과의 일본과의 동맹을 선택(영일동맹, 1902) 영독관계는 악화- 러시아의 팽창 방향은 독일과 프랑스 중국 등등,, 사진보기3) 회담정책- 청일 전쟁 이후 삼국간섭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킨 독일은 자국의 주도로 세계 여러 곳의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독일의 국제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봄- 이른바 ‘회담’을 통해 전쟁을 하지 않고도 세계적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계산- 그러나 회담정책은 1차 모로코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를 끝으로 자국의 국제적 고립을 확인하며 폐기되고, 이후부터는 당사자간 해결 원칙에 따른 강경한 외교정책 구산· 모로코위기란 모로코를 둘러싼 영, 독, 프의 대립문제- 모로코는 중세 이후 독립국가를 유지했으나 1880년 마드리드협정에 의해 서구에 개방- 독일은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팽창을 위해 마그리드조약 당사국간 회의를 소집, 1906년 알 헤시라스 협정이 체결- 모로코의 형식적 주권을 인정하되 치안과 재정(은행)을 프랑스가 장악하게 됨으로써 독일의 의도가 빗나가고, 오히려 독일 견제하기 위한 영-불 협상을 강화, 독일은 고립11월 19일· 독일의 세계정책의 좌절- 독일의 목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독일의 정치적 지위를 강화하고, 영국을 넘어서는 세계패권국가를 목표로 했음- 이를 위해 함대정책, 중립정책 및 회담외교를 추진하며 동아시아, 태평양, 아프리카 등지에서 해군기지와 식민지를 획득하고자함- 그러나 독일의 정책은 그 한계성으로 인해 결국 실패① 군사력의 열세- 190복수심과 독일의 예방 전쟁 위협, 벨기에와 북프랑스의 공업지대 병합을 원했던 독일, 자아르 탄광지대와 라인란트 지배에 대한 프랑스의 갈망 등의 영토적 대립이 민족 감정의 대립으로 발전② 발칸을 둘러싼 독일-오스트리아의 팽창정책과 러시아의 팽창정책 충돌- 영불러의 3국 협상 체제는 독일의 위기의식을 증대,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했고, 이를 위해 범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워 발칸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시도- 한편 당시 발칸지역에서는 슬라브어를 쓰는 모든 민족의 단결을 추구하는 범 슬라브 민족주의가 출현하며 반오스트리아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상황, 따라서 독-오의 범게르만 민족주의는 슬라브 민족주의의 맏형 격인 러시아와의 충돌이 불가피- 오스트리아가 1908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한 이후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 간의 민족 감정은 극도로 악화하였고, 오스트리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슬라브족과 세르비아가 연합해 大 세르비아 국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오스트리아는 제국의 분해를 우려해 극심하게 탄압, 이에 대해 세르비아는 계속 오스트리아에 복수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음.· 그림보슈~ 11월 24일 9:45- 남부 슬라브 계다 민족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일명 베오그라드 왕국)의 일원이었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참고- 1878년 오스만제국-독일의 으로 세르비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방이 분리, 세르비아가 투르크에서 독립; 반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니나는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 하에 발칸의 중심국가가 되길 희망, 특히 보그니아-헤르체고비나를 차지하여 아드리아해로 나가는 출구 확보를 기대- 오-헝 제국은 세르비아의 야심이 실현되면 다민족국가인 제국의 분열 초래할 것으로 우려,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1906년 제국의 복잡다단한 민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오스트리아 합중국’론 제창(제국 내의 각 민족에게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연방제를 제안)-공헌을 했는데, 터키의 참전으로 러시아는 영, 불과의 연결이 차단되었고, 영국은 러시아와의 연결을 위해 다다넬스 해협에 원정군을 파견해야만 했고,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아라비아반도에까지 원정군을 파견하느라 유럽 전선에만 주력할 수가 없었음.- 그러나 터키의 참전으로 연합국들이 향후 오스만제국의 분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오스만제국의 분할과 몰락을 초래② 발칸제국의 참전- 발칸지역의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등은 각각 양 적대 진영의 쟁탈 대상- 전쟁 발발 직후 이들은 중립을 선언하고 관망하는 태도를 보임-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를 사이에 두고 세르비아와의 불화를 겪고 있던 이유로 세르비아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고, 영불연합국은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각기 마케도니아와 카비라를 불가리아에 돌려주는 대가로 불가리아를 연합국 측에 감담 시키려 했으나 세르비아와 그리스가 모두 반대하여 실패· 1914년 말 오스트리아는 불가리아가 요구하는 세르비아 영토를 불가리아가 병합하는 동맹국 측에 가담할 것을 제의했으나 불가리아는 계속 중립을 고수· 1915년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에 대패함으로써 전세가 동맹국 측에 유리하게 되자 불가리아는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9월 14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 루마니아는 1883년 이래 오스트리아와 동맹 관계에 있었으나 1916년 8월 이전까지는 중립, 루마니아가 요구하는 모든 영토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와도 조약을 체결하고 호의적 중립을 유지· 1915년 5월 이탈리아가 연합국 측에 가담한 후 루마니아는 계속 연합국의 참전권유를 받았고, 1916년부터 유럽전쟁이 연합국 측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8월 17일 영·불·러 이와 조약을 체결, 러시아와는 군사동맹을 맺고 8월 28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③ 미국의 참전- 미국의 참전은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국제정치의 중심이 유럽이었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 전후 미국이 한동안 다시 고립주의로 복귀하며 유럽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으나 이미 세계의 중심은 유럽을 떠나였음
    인문/어학| 2021.07.12| 27페이지| 1,000원| 조회(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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